휴전 55주년: 전쟁의 하프타임 속에서

휴전 이후 4712명의 국군이 戰死했다.
오늘은 1953년 7월27일 6.25 남침전쟁이 휴전된 지 55년이 되는 날이다. 용산 전쟁 기념관의 가장 소중한 볼거리는 회랑에 새겨진 전사자의 이름들일 것이다. 이런 통계표가 붙어 있었다.

*한국군 戰死者

6.25 전 創軍期: 8824명
6.25 전쟁기: 152,279명
월남전: 4770명
휴전 이후: 4712명
합계: 170,585명

이 표는 한국이 아직 金正日정권과 전쟁중이란 현실을 잘 보여준다. 휴전이 발효된 1953년 7월28일 이후 국군 4712명이 침투하는 북한군과 전투를 벌여 죽었다. 이라크戰에서 전사한 미군보다 많다. 한국은 休戰期에 다른 나라의 전쟁기보다 더 많이 싸운 셈이다.

국제법적으로도 한국은 휴전중일 뿐이다. 축구에 비교하면 우리는 하프타임에 와 있다. 전반전에서는 남북한이 1-1로 비겼지만 후반전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가운데서 불안한 流血속 평화인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6.25남침 전쟁은 언제 종료되는가. 이 표가 말해주고 있다. 북한 정권이 무너질 때 전쟁은 한국과 자유진영의 최종승리로 끝난다. 6.25는 1950년 6월25일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45년 8월 북한에 소련군이 진주하고 소련의 꼭두각시인 김일성 정권이 등장하여 對南적화공작을 시작하면서 사실상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6.25 전에 이미 북한군 및 남한내 좌익반역세력과 싸우면서 국군이 8824명의 전사자를 낸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6.25전쟁, 지금도 계속되는 6.25熱戰. 그 무대인 한반도에서 냉전이 이미 끝났으니 對北경계태세를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10년간 국가를 경영하면서 경계심과 애국심을 해체해갔다. 소련과 미국이 대결한 냉전이 끝났다고 해서 남북한이 대결하는 6.25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6년 전엔 서해상에서 전투가 발생하여 한국군 수십명과 북한군 수십명이 죽거나 다쳤고 두 주 전엔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에 사살당했다.

전쟁중인 조국의 상황을 평화시기라고 속이려 드는 자들은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으니 조심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을 냉전세력, 反통일세력, 反민족세력이라고 매도한다. 이들은 영하 30도의 혹한이 계속되고 있는 한겨울인데도 '사하라 사막은 지금 영상 40도라고 하니 우리도 속옷 벗고 바깥으로 나가자'고 어리석은 자들을 선동하여 집단凍死로 몰고가려고 한다. 냉전세력이란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자는 지극히 당연한 사람들인데, 그들을 守舊라고 매도하는 자들은 북극에서 웃통을 벗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일종의 정신질환자들이다.

핵무장한 김정일 정권은 미국을 상대로 평화협정을 맺자고 나올 것이다. 평화협정이란 말의 뒷장에는 주한미군철수와 韓美동맹 해체란 말이 쓰여 있다. 핵무장한 남침정권이 북한지역에 살아 있는데 평화협정을 백 번 맺은들 한반도에 평화가 올 것인가. 김정일 무장집단은 1995년부터 4년간 비무장 북한주민들을 상대로 식량배급을 끊어버리는 '餓死전쟁'을 벌여 북한주민쪽에서 300만명의 戰死者가 발생했다. 김정일 정권이 지속되는 한반도의 평화는 공동묘지의 평화일 뿐이다.

우리는 평화협정의 전제조건으로 북한독재정권의 해체, 6.25 남침 사과 및 배상, 북한의 실질적 민주화, 핵무기 폐기, 생화학무기 폐기,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대한항공 폭파 및 아웅산테러범 처벌과 보상 등을 요구해야 한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공존하고, 노예와 자유인이 붙어 사는 가운데서 맺는 평화협정은 전쟁이나 內戰의 초대장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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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김정일과 맺은 모든 약속은 북한에 의하여 파기되었다. 7.4 공동성명이 맺어진 2년 뒤 김일성 김정일은 문세광을 보내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려다가 육영수 여사를 사망케 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북한정권의 핵도발로 死文化되었다. 1994년의 제네바 합의는 김정일 정권의 우라늄농축방식 핵개발 시도로 파기되었다. 남북간의 비핵화 선언은 2006년 10월9일 김정일의 핵실험으로 무효가 되었다. 남한 정권이 김정일 눈치를 보느라고 무효선언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6.15 선언도 민족공멸의 핵실험, 김정일의 서울 답방 약속 이행 거부로 무효가 되었으나 李明博 정부는 이의 失效 선언을 하지 않고 있다.

북한정권을 상대로 한 약속중 잘 지켜지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휴전협정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군과 미군이 김정일을 믿지 않고 오로지 총을 믿었기 때문이다. 김일성 김정일의 善意를 기대하고 만든 모든 약속은 깨졌으나 그들의 악마성을 간파하고 武力의 뒷받침을 받은 약속은 지켜지고 있다. 김정일이 약속을 지키도록 하는 방도는 말이나 글이 아니라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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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걸어서 휴전선을 넘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 있는 이 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이었다”며 “이 장벽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우리 민족들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아왔고, 또한 발전이 저지돼 왔다”고 말했다.

盧씨는 “이제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간다”며 “제가 다녀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이며,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이다. 장벽은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의 이번 걸음이 금단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고통을 해소하고 그동안 당해왔던 우리민족의 그 많은 고통들을 넘어서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조선일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휴전선이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소련, 김일성, 김정일이 우리 민족을 갈라놓았다.

38선은 원래 미국과 소련이 일본 패망 때 군사관할 경계선으로 합의한 것이지 한반도 분단선으로 합의한 것이 아니다. 38선 以北의 일본군은 소련군에 항복하고 以南의 일본군은 미군에 항복하도록 편의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 선을 禁斷의 선으로 만든 것은 소련과 김일성이었다.

남북한 사람들의 자유왕래를 금지시켜 生死가 갈리는 禁斷의 선으로 만든 것이 저들이었다. 김일성 남침의 유산인 휴전선은 두 가지 의미를 갖게 되었다. 민족분단의 아픔이 서린 곳, 그리고 대한민국 번영의 방파제. 지금은 이 휴전선이 무너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김정일이다. 진실과 돈과 자유의 바람이 들어오면 허위의 공화국이 무너진다.

노무현씨는 레이건처럼 말했어야 했다. 1987년 레이건 대통령은 베를린 장벽을 마주 보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 저 장벽을 당신 손으로 허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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