建國의 주인공들에 대한 감사 실종
2008년 8월15일 오전 옛중앙청 광장(경복궁 앞뜰)에서 열렸던 '제63주년 광복절 및 건국 60년 중앙경축식' 행사에 참석했다. 李明博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성공의 역사, 발전의 역사, 기적의 역사였다'고 강조했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좌파후보가 당선되었더라면 '정의가 실패한 역사'였다는 저주를 듣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정권 교체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다.
李 대통령은 '기적의 역사는 국민 여러분이 모두 함께 써내려간 것'이라고 했다. 李 대통령은 이어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던진 순국열사, 6.25 전쟁에서 산화한 무명용사, 이역만리에서 고생한 간호사와 광부들, 불의와 독재에 맞서 싸운 학생과 시민' 등이 없었다면 자유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 민주화의 길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李 대통령은 '건국 6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끝내 건국의 주인공인 李承晩 대통령과 건국세대를 언급하지 않았다. '태안바닷가에 내 일처럼 뛰어나온 자원봉사자들'에겐 감사하면서 악랄한 좌익과 멍청한 美 軍政 당국과 싸워서 자유민주 국가를 건설한 주인공들에겐 감사하지 않았다. 국가의 생일 잔칫날 축하연설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뺀 것은 실수가 아니라 이유가 있을 것이다. 좌익들이 建國 60주년이란 말의 사용에 대해서 시비를 거니까 연설문 작성자가 뺐는지도 모른다. 연설문 초안엔 들어 있었는데, 대통령이 삭제했는지도 모른다. 李 대통령이 세계가 알아주는(일본만 빼고) 우리 建國 대통령의 위대성을 알아볼 안목이 없다면 이는 국가적, 인간적 불행이다.
경위야 어떻든 李明博 대통령은 그의 생애에서 결정적 의미를 갖는 연설에서 결정적 실수를 했다. 신라의 三國統一을 축하하면서 金庾信을 거명하지 않는 것과 같다. 미국의 독립을 이야기하면서 워싱턴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성경을 가르치면서 예수를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한글의 내력을 이야기하면서 세종대왕을 언급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한민족사상 가장 성공한 나라 대한민국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 대한민국의 始祖(시조)격인 李承晩에게 감사하는 말이나 평가하는 말이 한 마디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현대사 교육이 제대로 될 것이 아닌가? 그래야 교육부가 전교조의 현대사 왜곡을 단속할 생각이라고 할 것 아닌가?
김일성의 남침을 同族相殘이라 표현
대한민국의 건국은, '국민의 작품'이라기보다는 '李承晩과 국민들'의 작품이다. 李承晩이 없었더라면 국민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세울 수 없었던 대한민국이다. 李明博 대통령은 '독재와 싸운 수많은 학생과 시민'이라고 칭찬하였는데, 전 정권을 '독재'라고 욕하려면, '친북정권과 맞서 싸워 정권을 되찾아온 수많은 시민'에 대해서도 감사의 표현이 있었어야 공정할 것이다. 최근 촛불亂動 사태를 당하여 쩔쩔 매는 그를 구해준 국민과 신문과 경찰에 대한 감사의 표현도 없었다.
日帝를 쳐 한민족을 해방시켰고, 건국-호국-산업화-민주화의 든든한 동반자였던 미국에 대한 감사가 없었던 것도 충격적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하였던 버시바우 미국 대사가 행사를 본국에 어떻게 보고했을까?
建國 60년의 가장 큰 훼방꾼 김일성이 저지른 6.25 남침을 李明博 대통령은 '동족상잔' '6.25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동족상잔이란 동족끼리 서로 죽였다는 의미이다. '6.25 전쟁'이란 말에도 가해자가 없다. 외세를 업고 동족을 친 민족반역자의 범죄는 왜 굳이 애매모호하게 표현하면서 민족의 영도자 이승만 대통령의 建國 의미와 미국의 도움은 왜 굳이 말살하는가?
李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군에 의한 금강산 관광객 사살 사건'이라고 표현해야 할 사건을 '금강산 피격 사건'이라고 지칭했다. 피격이라면 총을 맞았다는 뜻이지 죽었다거나 죽였다는 뜻이 없다. 국군통수권자가, 북한정권과 친북세력의 눈치를 보는 듯한, 겁 먹은 듯한 용어선택을 했다. 그런 사람이 法治 수호를 강조하니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고 공허하게 느껴졌다.
惡에 대해서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은혜에 대해서도 고마워할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축식을 끝내고 청계광장에서 예정된 '이승만建國대통령에 대한 국민감사 한마당' 행사장으로 걸어가면서 한 애국운동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李 대통령은 좌익을 아직도 두려워하는 듯하다'면서 '평생 다시 오지 않을 역사적 자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걸 비전으로 제시한 대통령'을 비판했다. 국민들은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대통령은 감정과 소신이 실리지 않은 연설로 찬물을 끼얹었다는 평이었다.
李 대통령을 지지했던 인사가 그의 연설을 듣고 이렇게 한탄할 정도라면 좌익깽판 세력은 이날 연설에 고맙다고 생각할까, 경멸할까? 제대로 분노할 줄도, 제대로 감사할 줄도 모르는 사람은 제대로 사랑할 줄도, 제대로 싸울 줄도 모른다. 이념은 감정이다!
자유를 선물한 사람에게 바친 감사의 연설문
8월15일 정오 서울 청계광장에선 '이승만 建國대통령에 대한 국민감사 한마당'행사가 있었다. 국민행동본부 등이 주최했다. 정부 행사에서 빠진 건국 대통령에 대한 감사를 애국단체가 대신한 셈이다. 여기서 필자는 이런 연설을 했다.
이승만이 건국대통령이 된 것은 한민족의 축복이었습니다. 광복당시 3000만 한국인중 가장 학력이 좋은 사람,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 가장 識見이 높은 사람, 가장 배짱이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 건국 60주년의 주인공은 이승만 건국 대통령입니다. 건국 대통령을 기리지 않는 건국기념식은 예수를 말하지 않고 성경을 공부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영혼이 없는 껍데기 기념식에 불과합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 분들은 고마움을 아는 분들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건국대통령을 알아줌으로써 그분과 닮은 사람이 되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2. 이승만은 한국인들에게 생명만큼 귀중한 것, 즉 자유를 선물한 분입니다. 한국인들은 이 자유를 피땀으로 지켜내고, 이 자유를 천금처럼 사용하여 오늘의 근사한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자유를 얻었기에 백성이 국민이 되고 노예근성을 버리고 주인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3. 이승만 대통령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자유투사, 위대한 프리덤 파이터였습니다. 赤化된 유라시아 대륙의 마지막 교두보인 대한민국을 홀로 지켜내고 이 땅을 자유의 기지, 번영의 쇼윈도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20세기의 세 악당, 소련의 스탈린, 중공의 모택동, 북한의 김일성을 1 대 3으로 상대하여 이겼습니다.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을 친 김일성의 비겁한 기습공격을 당했던 이승만 대통령이지만, 미국과 유엔의 도움으로 버티어내었고, 끝장에 가서 결국 망한 것은 저 세 악당이었습니다.
4. 김대중, 노무현이 아니라 이승만이 가장 위대한 민주투사이십니다. 그는 전쟁중에도 언론검열을 하지 않았습니다. 戰時중인데도 한국의 신문들은 정부를 마음대로 비판했습니다. 전쟁중인데도 국회를 해산하지 않았고, 전쟁중인데도 최대규모의 지방선거를 실시했습니다. 학교에선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쳤고, 그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때 부상한 학생들을 위문한 李 대통령은 '불의를 보고도 저항하지 않는 젊은이는 희망이 없다'면서 이들을 격려하곤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이런 이승만 대통령을 누가 독재자라고 부릅니까?
5. 요사이 진보와 개혁을 자칭하는 얼치기들이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이 가장 위대한 진짜 진보주의자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00년 전에 이미 개방과 경쟁만이 우리의 살 길임을 천명했던 위대한 개혁가이십니다. 1904년 獄中에서 쓴 ‘독립정신’이란 책에서 스물아홉의 이승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세계에 대해서 개방해야 한다.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근본이다. 경쟁하는 마음이 없으면 살아 갈 수 없다>
6. 김일성이 아니라 이승만이 위대한 민족주의자이자 진정한 주체사상가였습니다. 김일성은 박헌영과 함께 스탈린 앞에 불려가 필기시험을 친 뒤 그들의 꼭두각시로 발탁되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던중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화를 내면서 퇴장하자 그 등을 향해서 '저런 고얀 사람이 있나'라고 호통을 쳤던 자존 자주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너그러운 나라 미국과 당당하게 친구가 되도록 했습니다. 김일성은 세계에서 가장 악질적인 소련과 중공과 한 패가 되었다가 망했습니다.
7. 노무현이 아니라 이승만이 독도를 지켜냈습니다. 노무현은 독도를 '타케시마'라고 불렀지만 이승만은 6.25 전쟁중에 평화선을 그어 독도를 확보하였습니다. 평화선을 침범한 일본배를 380척, 선원을 3900명이나 나포했던 이승만이었습니다. 이런 이승만을 고마워하지 않는 심보론 독도를 지켜낼 수 없습니다.
8. 朴正熙의 산업화와 박태환 선수의 금메달도 이승만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산업화와 민주화와 복지사회의 레일을 깔았고, 박정희는 그 레일을 힘차게 달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박정희가 만들었고, 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은 이승만이 만들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에 입각한 대한민국 건국, 농지개혁, 교육개혁, 人材양성, 强軍 건설, 그리고 韓美동맹의 구축이 있었기에 공장도 만들고 원자력 발전소도 돌리고, 민주주의와 法治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9. 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 조선 등등 여러 나라가 있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한민족 역사상 가장 성공한 나라 대한민국의 始祖격이십니다. 그분이 선물한 자유를 공짜로 쓰면서 건국의 아버지를 저주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 먹고사는 깽판세력이 있습니다. 선동, 난동, 친북, 거짓, 위선, 무능, 무식, 무법, 무례한 이 자들은 밤만 되면 기어 나오는 어둠의 세력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들이 누리는 깽판의 자유를 박탈하고 이들이 펼치는 저주의 굿판을 걷어 치워야 합니다. 이들이 든 거짓의 촛불을 제대로 끄지 못하는 정부가 들불, 산불을 어떻게 끄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쉽게 끌 수 있는 게 촛불 아닙니까?
10. 이승만 대통령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켰으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던 모세와 같은 분입니다. 민족과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도 조국에서 잠들 수 없었던 분, 역사의 십자가를 진 어린 양과 같은 분이십니다. 이승만 박사는 말년에 하와이의 病床에 누워서도 양자 이인수씨한테 '지금 누가 통일을 추진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자유통일은 이승만 대통령이 후세에 남긴 유언이고 우리의 과제입니다. 그분이 선물한 자유의 힘으로써 북한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이 자리에서 김정일 일당을 처단하고, 2300만 동포를 해방하고 일류국가를 건설하여 행복하고 멋지게, 당당하게 살아봅시다!
11.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 자유통일할 때까지는 남북한에 남아 있는 역사의 쓰레기들, 저 극악무도한 깽판세력, 건달세력과 대결하는 일을 피할 수 없는 것이 한반도의 삶의 조건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투쟁해야 하고, 세계시장에서 이기기 위하여 경쟁해야 합니다. 한 손에 총을 들고, 한 손에 망치 들고,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는 것은 한국인으로 태어난 우리의 숙명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 여러분, 이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치열하게 살아갑시다!
12. 이승만 대통령이 생전에 자주 인용했던 성경 귀절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1절: “그리스도가 너희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인 모두를 노예나 백성이 아니라 자유민, 국민, 그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로 만들어주었습니다.
13. 이승만을 증오하는 저 좌익 깽판세력, 건달세력은 국민들을 속여서 공동체를 파괴하고 다시 종의 멍에를 메도록 하려 합니다. 우리를 김정일의 종으로 팔아넘기려 합니다. 노예근성의 소유자들인 저들은 거짓, 트집, 억지, 위선, 남 탓하기가 체질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저런 저질 노예근성과 단절하고 모범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법을 잘 지키고, 세금을 꼬박 꼬박 내고, 내 권리가 침해되면 싸우고, 예절과 절도가 있는 강건하고 실질 있는 국민이 되는 것, 그런 국민들이 모여야 선진국, 일류국가, 강대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14. 이승만 대통령은 한민족의 링컨 같은 분이셨습니다. 한민족을 노예상태, 백성상태에서 해방시켜 자유민으로 만들어 주신 분, 그런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알기에 우리는 복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승만 박사를 알기에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고마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건국 60주년을 맞는 오늘 이승만 대통령의 드높은 뜻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품고 자유통일과 일류국가 건설을 향해서 손에 손잡고 함께 달려갑시다. 그분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대한민국 만세, 이승만 대통령 만세, 자유통일 만세! 감사합니다.
29세의 李承晩, '첫째, 우리는 세계에 대해 개방해야 한다'
李承晩이 1904년 獄中에서 썼다가 출옥한 뒤 출판했던 '독립정신'을 읽어보면 그는 20代 후반에 이미 정신적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옥중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여 거듭 태어난 사람이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인 특유의 노예근성과 피해의식, 그리고 대책 없는 저항, 배타주의를 극복한 큰 인물이 된 것이다.
‘독립정신’ 에는 ‘요약과 결론’에 해당하는 ‘後錄’이 있다. 여기서 뽑은 말들을 소개한다. 이 글이 104년 전 29세의 조선 청년에 의하여 쓰여졌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보자.
첫째, 우리는 세계에 대해 개방해야 한다.
1. 우리는 세계와 반드시 교류해야 한다.
2. 通商(통상)은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3. 오늘날 通商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근본이다.
4.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오는 것은 우리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5. 외국인들을 원수같이 여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둘째, 새로운 文物을 자신과 집안과 나라를 보전하는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1. 외국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2. 경쟁하는 마음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3. 외국인의 압제에 대해선 싸워야 한다. 외국인에게 뭇매를 맞은 한국인이 그 외국인을 죽이고 경찰에 자수한 일은 칭찬할 것이 못 되지만 그 의지는 본받을 만하다.
4. 동양의 옛날 책보다는 새로운 학문에 대한 책들을 공부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국제법, 통상조약,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5. 과거의 제도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것조차도 버리고 바꿀 수 있다는 각오를 가지고 사람과 가정과 나라가 모두 새롭게 됨으로써 우리나라가 영국과 미국과 같이 되도록 한마음으로 힘쓰면 일본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6. 물건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긴급하다.
7. 신학문을, 한글로 번역하여 한문을 모르는 사람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8. 공부하는 것은 잘 살기 위한 투자이다.
9. 유학을 간 사람은 나라를 위해 시급한 것부터 공부하여야 한다. 귀국할 형편이 못 되더라도 뿌리치고 반드시 귀국하여 어두운 세상에 등불이 되어야 한다.
셋째, 외교를 잘해야 한다.
1. 고립되면 강대국의 침략을 막을 수 없다.
2. 모든 나라를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3. 도덕적 원칙과 진실함이 외교의 근본이다.
3. 다른 나라들과 공통된 특성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4. 외국인의 횡포에 대해선 생명을 바쳐서라도 시비를 가려야 한다. 외국인에게 내가 당한 수모는 곧 모든 백성이 당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넷째, 나라의 주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1. 외국인들에게 부여한 치외법권은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2. 이를 위해선 우리의 行刑 제도를 개선하여 사람을 구속하고 재판하는 데 규정을 따라야 한다.
3. 법을 어긴 상관의 명령은 결코 따라선 안 된다.
4. 나라에 이롭고 나에게도 이로운 일을 해야 한다.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나라에도 이로운 것이다.
5. 우리나라 사람이든 물건이든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 수치를 당하는 것을 보면 어떤 일이 있더라고 이를 막아내야 한다.
6. 우리는 國旗(국기)를 존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7.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외국 국적을 갖지 말아야 한다. 괴로움을 피하여 몇 만리 떨어진 남의 나라로 가서 그 나라 국민이 되어 안락한 생활을 하다가 죽는다면 어찌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 있다고 할 것인가.
8. 우리는 外債를 빌리는 것을 삼가야 한다.
다섯째, 도덕적 의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1. 뜻이 같은 사람에게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2. 公的인 의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라를 위해 이로울 일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원수 같은 사이였을지라도 모두 한 마음으로 나서야 한다.
3. 나라를 위한 충성은 용기 있는 행동으로 해야 한다.
여섯째,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1. 자유를 자기 목숨처럼 여기며 남에게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2. 다른 사람의 권리 또한 존중해야 한다. 우리 집 종이나 다른 사람들의 하인, 또는 부녀자들과 아이들까지 모두 존중해야 한다.
3. 개화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어서 폐단이 있더라도 윗사람들이 어느 정도 손해를 보는 것이 옳다.
3. 부디 깊이 생각하고, 고집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힘껏 일하고 공부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자유의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스스로 활력이 생기고, 관습이 빠르게 변하여 나라 전체에도 활력이 생겨서 몇 십 년 후에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근본이다.
4. 사람의 마음은 법률로 바로잡지 못하고 오직 종교, 그중에서도 기독교를 통하여 바로잡을 수 있다.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온 세계와 접촉할지라도 참된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哲人통치자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근본이다”라는 말을 스물아홉 살에 했던 분이 73세에 한국의 대통령이 되어 12년간 통치했다. 한국을 자유의 근본 위에 세운 분이 李承晩이다. 자유에 대한 확신을 가진 것만 해도 대단한데 그런 사상을 가진 분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에 한국인의 행운이 있었다. 李承晩 대통령이야말로 플라톤이 말한 ‘哲人통치자’이다. 아인슈타인이 이스라엘의 대통령이 된 격이다.
李承晩의 위대성은 자유를 단순히 정신적, 정치적 측면에서만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유를 누려야 관습이 변하고, 나라에 活力이 생겨,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强軍을 만들어 强國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자유가 민주주의와 富國强兵의 기본임을 간파한 것이다. 건국 60년은 스물아홉 이승만 청년의 거대한 비전이 실천된 기간이었고, 그 정당성을 입증했다. 한민족에게 처음 주어진 자유가 한국의 민주주의와 富國强兵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전쟁중에도 언론자유를 제한하지 않았고, 선거를 치렀다. 한국인에게 자유를 책임 있게 사용하는 연습을 시킨 것이다. 李承晩은 자유를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사람이 처음 맛 보는 자유를 남용할 위험성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그런 시행착오조차 필요하다고 보았다. 104년 전에 이미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화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어서 폐단이 있더라도 윗사람들이 어느 정도 손해를 보는 것이 옳다>
요사이 수도권에 대한 각종 규제가 기업을 외국으로 내몰고 있다고 개탄하는 이가 金文洙 경기도 지사이다. 그는 서울을 못 살게 해야 지방이 잘 살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을 '공산주의식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金 지사는 '대한민국은 규제감옥이다. 탈옥하고싶다'는 말도 한다. 그는 '한국은 중국의 한 省보다도 인구나 면적이 작다. 우리끼리 지방, 수도권 하면서 서로 싸울 여력과 여유가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중국, 일본, 한국이 경쟁할 때 한국의 비교우위가 하나 있다. 그것은 자유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기업할 자유에 관한 한 공산중국보다 한국이 더 부자유하다'고 했다.
李承晩이 심은 자유를 朴正熙가 가꾸었고, 그 열매를 우리가 따 먹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무를 심은 사람, 우물을 판 사람의 고마움을 모른다. 고마움을 모르는 이유는 李承晩의 위대성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알고 나선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이승만을 이해하고 고마워하는 이들이 우리의 자유를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 다듬어 이를 국가경쟁력의 源泉으로 삼고 다음 시대를 주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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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國 60년, 열 명의 대통령 이야기
자유를 심고 가꾼 두 위대한 대통령, 두 부지런한 대통령, 두 반역적 대통령, 두 과도기 대통령, 한 명의 '좌파宿主' 대통령, 그리고 또 한 명의 미지수.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 이후 두 명의 위대한 대통령(李承晩, 朴正熙), 두 명의 부지런한 대통령(全斗煥, 盧泰愚), 두 명의 반역적 대통령(金大中, 盧武鉉), 한 명의 '좌파宿主' 대통령(金泳三), 그리고 군사변란을 묵인했던 두 과도기 대통령(尹潽善, 崔圭夏)이 있었다. 열번째 대통령(李明博)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李承晩 건국 대통령은 한국을 자유민주주의 이념 위에 세우고 6.25 휴전기에 미국을 압박하여 韓美동맹이란 자유와 번영의 생명줄을 만들었다. 그는 6.25 남침 직전에 농지개혁을 단행하여 좌익의 공격목표를 사전에 소멸시키고 민주주의 교육으로 '不義와 不正에 저항할 줄 아는 젊은 세대'를 키웠다. 이 젊은 세대가 4.19 학생혁명으로 李대통령을 몰아냈으니 그는 자기성공의 희생자였다.
미국의 名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한국 최초의 박사가 된 그는 동서양의 교양을 한 몸에 통합한 카리스마와 세계大勢를 꿰뚫어볼 줄 아는 안목, 그리고 자유에 대한 확신으로 한국을 해양세력권에 묶어놓고 세계사의 主流 속에 집어넣었다. 1948년 건국 당시 한국인중 知的 능력이 가장 탁월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한국인의 축복이었다.
아시아에서 두 개의 기적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실용적인 중국사람들이 공산화된 것. 이는 毛澤東의 군사적 천재성에 기인하는 바 크다. 또 다른 기적은 관념론의 포로였던 한국인이 공산화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공산주의의 악마성을 1920년대에 이미 간파했던 李承晩의 지도력에 힙 입은 바 크다. 李承晩을 매개로 하여 기독교적 자유민주주의가 대한민국 헌법속으로 들어와 건국이념이 된 것이다. 2008년의 한국이 세계 10大 경제력, 26위의 삶의 질을 가진 거의 선진국 수준의 나라가 된 데는 李 대통령이 만든 자유와 동맹의 울타리가 결정적 기여를 했다.
한국역사상 800년만에 처음으로 효율적인 군사문화를 도입하여 후진국을 선진국 문턱까지 밀어올린 '근대화의 旗手'이자 '시스템 운영의 鬼才'였던 朴正熙는 6.25 전쟁의 産物이다. 이 전쟁으로 한국 사회의 最强집단이 된 국군장교단이 무능한 文民지배층을 교체한 것이 5.16 군사혁명이었다. 朴 대통령은 '서구식 민주주의는 하느님이 아니다'면서 민주주의를 한국식으로 변형하여 근대화를 성공시킨 진정한 주체사상가였다. 그는 富國强兵策으로 민주주의의 물질적, 제도적, 계급적 토대를 만들었다.
이른바 유신독재로써 정치코스트를 최소화하여 국력을 조직화하고, 능률을 극대화해갔던 1970년대, 朴 대통령은 중화학공업 건설에 매진했고 이것이 성공하여 한국을 重量級 국가로 올려 세웠다. 1979년에 들어서서 朴正熙式 근대화의 産物인 도시중산층이 장기집권에 싫증을 느끼고 지식인 및 학생들과 손잡고 정치적 자유의 확대를 요구하고 나섰고(釜馬사태), 이것이 朴정권의 실력자 金載圭 정보부장을 변심시켜 대통령을 사살하게 만들었으니 朴正熙 또한 자기 성공의 희생자였다.
1961년 朴正熙 소장이 이끄는 약5000명의 혁명군이 서울에 진입하였을 때 張勉 총리는 달아나 연락이 두절되었다. 군통수권자이던 尹潽善 대통령은 유엔군 사령관의 진압군 동원 요청을 거부함으로써 內戰을 막고 군사혁명의 성공을 보장했다. 朴 대통령이 피살된 직후 군부의 새로운 실력자로 등장한 全斗煥 장군이 12.12 군사변란을 일으키자 崔圭夏 대통령도 流血사태를 걱정하여 진압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尹, 崔 두 대통령은 이 조치로 해서 비판을 받았으나 북한군과 지척에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국군을 동원하여 국군을 진압하도록 명령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全斗煥, 盧泰愚 두 대통령은 장교 시절부터 朴 대통령의 총애를 받은 인연과 인맥으로 혼란기를 수습할 수 있었다. 全斗煥 대통령은 12.12사건, 광주사태 등 流血사태를 통해서 집권했으나 민주화 약속을 지켰고 세계1위의 경제성장을 기록했으며 盧泰愚와 함께 서울올림픽을 성공시켰다. 盧泰愚 대통령은 1987년 6.29 민주화 선언으로 기득권을 포기하고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요구를 수용했다. 이 대통령 선거에서 盧泰愚는 金泳三-金大中의 분열을 틈타서 당선되어 전면적인 민주화를 주도했다. 그는 공산권 붕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중국, 소련, 동구국가들과 수교함으로써 한국인의 활동공간을 넓히고, 북한을 후방에서 고립시켰다. 신도시 건설, 인천공항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적극적으로 했다. 盧대통령은 또 3당 合黨을 통해서 보수연합정당인 민자당을 만들고 金泳三씨를 후계자로 밀었다.
안정적인 보수연합구도의 지원하에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金泳三 대통령은 좌파적 영향하에 들어가 보수연합구도를 깨고 한국 현대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기 시작하여 좌파득세로 가는 카피트를 깔았다. 그는 보수를 자칭했으나 사실상 좌파적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의 분열적 정책이 金鍾泌의 충청도 세력과 대구-경북세력을 民自黨에서 이탈시켰고 外換위기를 불렀다. 이런 정책실패와 보수분열 구도하에서 金大中이 1997년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좌익활동가 출신 金大中은 대통령이 된 이후 좌경적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현대그룹을 통해서 4억5000만 달러를 金正日의 해외비자금 계좌로 보낸 끝에 2000년 6월의 평양회담을 성사시켰다. 비밀송금으로 김정일에게 약점이 잡힌 바가 된 그는 김정일의 對南적화전략지침을 그대로 수용한 6.15 선언에 합의함으로써 한국을 좌경화의 길로 내몰았다. 金大中의 노선을 이어받아 2002년에 당선된 盧武鉉은 金大中의 反헌법-反국가적 노선을 더욱 심화시켰다. 그는 위선적 평화론의 전도사가 되었고, 金正日의 對南赤化전략의 핵심인 韓美연합사 해체, 보안법 폐지, 연방제 통일안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여 한국을 북한 정권의 인질로 전락시킨 끝에 北의 戰犯집단이 핵무장하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金日成이 일으킨 민족반역적 6.25 전쟁으로 약300만, 金正日의 사회주의 실패로 약300만 명이 죽음으로써 공산주의의 본성을 보여주었는데도 한국의 유권자들은 선거를 통해서 민주투사로 위장한 親김정일 세력을 정권담당자로 만들었다. 독일인들이 선거를 통해서 히틀러를 뽑은 것과 같은 실수를 한 셈이다. 金泳三 이후 14년간 한국정치는 조선조의 朋黨정치 시대로 회귀했다. 국가엘리트層이 약해지고 지역, 계급적 이해관계로 國論이 분열되면서 국민들의 정신도 많이 망가졌다. 다행히 民間부문이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에 충실하여 기우는 나라를 버티어냈다.
좌파세상 10년을 겪으면서 각성한 다수 유권자들이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를 통해 반역적 좌파정권을 평화적으로 종식시켰다. 열번째 대통령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기업인 출신이다. 유권자들은 李明博 대통령이 일하기 편하게 해주기 위하여 지난 4월 총선에선 국회에서도 親北의원들을 거의 일소해주고 집권여당을 과반수 정당으로 만들어주었다.
李 대통령은 그러나 취임 직후부터 '한반도에선 이념의 시대가 끝났다' '나는 보수가 아니다'고 말하는 등 배신의 신호탄을 올리더니 그를 만만하게 본 좌익들의 촛불난동을 부르고 말았다. 李 대통령은 법집행을 포기하고, 거의 석달간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좌익의 해방구로 내어주었다. 건전한 국민들과 보수신문들이 공권력의 도움 없이 체제수호를 위해 반격에 나서는 바람에 거짓의 촛불을 끄긴 했으나 배신감을 느낀 보수층이 이탈하여 李 대통령의 지지율은 폭락했다.
2008년 8월15일 건국기념사에서 그는 “지난 60년은 성공의 역사, 기적의 역사”라고 말했으나 李承晩과 미국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않았다. 그는 갈림길에 서 있다. 김영삼類의 좌파宿主 대통령이 될 것인지, 대처나 레이건 같은 反共자유민주 투사로 거듭 태어날 것인지, 선택은 그의 몫이다. 李明博 대통령에게 역사가 부과한 책무는 '法治주의를 정착시킴으로써 어린 한국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것'이다. 그가 '법대로'를 선언하고 실천하기 시작하면 한국도 그도 성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대로'의 길은 자유통일과 一流국가 건설로 통한다. 남북한 대결에서 대한민국은 진실, 正義, 자유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4대 조건-자유민주 체제, 한미동맹, 위대한 지도자, 건실한 국민-이 앞으로도 유지된다면 한국은 머지 않아 프랑스 수준의 國力을 갖춘 一流국가로 도약할 것이다.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근본이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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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8-19, 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