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부하에게 시키지말라』

白善燁, 박정희, 웨스트모어랜드, 인도 통치 영국 공무원들의 리더십 연구
1. 白善燁의 「위기의 리더십 8개항」



6·25 전쟁 때 낙동강 전선을 방어하여 한국을 구한 白善燁 장군(육군참모총장 역임)은 月刊朝鮮과의 인터뷰에서 위기에 대처하는 리더십 8개항을 이렇게 피력한 적이 있다.

1. 과학적으로 예측하라. 리더는 수많은 생명의 안전을 책임진 사람이다.
2. 바닥을 살펴라. 지휘자는 부하 속으로 들어가고 현장을 뛰면서 민심과 士氣와 환경을 파악해야 한다.
3. 앞장서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부하에게 시키지 말라.
4. 공격하라. 방어로는 이길 수 없다.
5. 선동하지 말고 士氣를 올려라. 신바람은 오래 가지 못한다.
6. 부하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라. 칭찬하라.
7. 진심으로 설득하라. 설득은 선동이 아니다.
8. 위기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 실패하면 원칙을 점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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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풍 속에서 혼자 뛰어내린 사단장

월남전 때 미군사령관이었던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1958년 미국의 정예부대인 101 공정사단의 사단장으로 부임했다. 켄터키주 포트캠벨에 본부가 있었다. 부임한 직후 낙하훈련이 있었다. 낙하지점에 나간 장교가 풍향과 풍속을 잰 다음 녹색 연기를 뿜었다. 낙하해도 좋다는 신호였다.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을 포함한 502 연대 장병들이 낙하했다. 웨스트모어랜드가 着地(착지)하니 예상하지 못했던 강풍이 낙하산을 몰고 갔다. 그는 수백 미터를 끌려가다가 다른 장병들이 낙하산을 주저앉혀 다치지 않았다. 이 强風에 걸려 일곱 병사들이 사망했다.

웨스트모어랜드 사단장은 악조건을 이유로 훈련을 중단할 수 없다고 결심했다. 전쟁은 원래가 악조건하에서 치러지는 것이므로. 다음날 그는 훈련 강행을 명령했다. 다만 낙하훈련의 경우엔 자신이 먼저 뛰어내려 바람상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다른 사병들은 대기하도록 한 뒤 사단장이 혼자서 뛰어내렸다. 전날처럼 강풍이 불어 웨스트모어랜드는 착지한 뒤 한참 끌려가다가 설 수 있었다. 그는 낙하훈련을 중단시키고 육상훈련만 하도록 했다. 이 사고를 분석한 미군은 着地한 뒤 낙하산을 빨리 분리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 일곱 명이 낙하훈련중 죽는 사고가 한국군에서 일어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사단장은 조사받기에 바빴을 것이고, 훈련은 물론 중단되었을 것이다. 웨스트모어랜드 사단장은 이 사고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고 판정된 때문일 것이다. '전쟁은 피크닉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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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朴正熙 리더십 12계명

1. 화합형 정책 결정: 朴대통령은 무엇보다도 듣는 사람이었다. 엉터리 보고라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좀처럼 즉석에서 반대하지 않았다. 일단 본인의 의견을 제시한 뒤 주무장관이 다시 한번 심사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라 주무장관이 발안한 정책이 채택되는 방식을 취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야 정책에 대한 주인의식이 생기고 일을 할 때 신바람이 나는 것이다. 朴대통령은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남을 통해서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2. 민주적 정책 결정: 朴 대통령은 어떤 회의에서도 먼저 발언하지 않았다. 토론을 시켜 문제가 제기되고 찬반의견의 방향이 잡혀가면 그때 결론을 도출하고 필요한 보충지시를 내렸다. 당시의 정치체제와는 다르게 경제정책의 결정과정은 민주적이었다.
3. 생산적 회의: 朴 대통령은 월간경제동향보고, 수출진흥확대회의(무역진흥회의), 청와대 국무회의, 국가기본운영계획 심사분석회의, 방위산업진흥확대회의를 정례화하였다. 이들 회의는 대통령이 국정을 종합적으로 규칙적으로 파악 점검하고 살아 있는 정보를 얻는 기회였다.
4. 철저한 확인과 일관된 실천: 朴 대통령은 계획수립에 20%, 실천과정의 확인에 80%의 시간을 썼다고 한다. 중앙부처 및 지방 순시 등 현장 시찰을 자주 한 것도 집행의 확인과 사람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계획의 수정이 필요할 때는 토론절차를 거쳐 신속하게 했다.
5. 국민의 각성과 참여: 朴 대통령은 국민들이 自助정신을 발휘하여 자발적으로 건설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는 인간과 조직의 정신력에 주목한 사람이다. 그는 민족성처럼 되었던 패배의식과의 싸움에 이긴 사람이다. 그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같은 눈에 뜨이는 구체적 업적을 통해서 국민들의 체념과 자학을 자신감으로 교체해갔다. 의욕을 불어넣기 위해 '새마을 노래', '나의 조국' 도 작사 작곡했다
6. 정부는 맏형, 기업은 戰士: 朴 대통령은 경제관료와 기업인이 이견을 보이면 대부분의 경우 기업인 편을 들어주었다. 그는 정부 주도형 경제개발정책을 채택했으나 기업이 엔진이고, 경제전선의 戰士는 기업인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은 기업 엘리트를 존중해주었고, 기업인들은 '대통령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다.
7. 내각에 권한과 책임 위임: 청와대 비서실이 장관 위에 군림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장관의 인사권을 존중했다.
8. 관료엘리트 중시, 학자들은 자문역: 실천력을 중시하던 朴대통령은 집행기관장으로서는 학자를 거의 쓰지 않았다. 학자들은 자문역으로만 부렸다. 거의 유일한 예외는 서강대학교 교수 출신인 南悳祐 부총리였다. 南부총리도 실무능력의 검증을 거친 다음에 중용되었다.
9. 정치와 군대의 압력 차단: 그는 관료들이 국익과 효율성의 원칙하에서 소신대로 일할 수 있도록 군인들과 정치인들의 경제에 대한 개입을 차단하고 견제했다. 군대의 힘으로써 집권한 사람이 군대의 영향력을 차단한 예는 매우 드물 것이다.
10. 경제발전 우선주의: 朴대통령은 경제발전이 결국은 안보와 민주주의 발전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先 경제발전, 後 민주화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에 따른 비난에 대해서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로 대응했다.
11. 시장의 한 멤버로서의 정부: 朴 대통령은 정부가 시장의 규제자가 아니라 한 참여자라고 생각했다. 朴대통령 시절의 정부는 시장 지배자라기보다는 시장의 일원으로서 시장 기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정부는 기업가, 은행가, 개혁가로서의 역할도 했다. 전력, 철강 등 민간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은 정부가 공기업을 만들어서 맡아서 하되 경영은 민간기업 방식으로 운영되도록 했다.
'官治경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CEO로 뛴 주식회사 대한민국이었다(김용환)'
12. 주요 전략 선택의 적중: 朴 대통령이 채택한 수출주도형 공업화정책, 중점 투자전략, 先성장-後분배 전략, 과감한 외자유치 전략은 모두 성공했다. 朴 대통령은 정책과 전술은 수시로 변경했지만 철학과 전략은 18년 동안 그래도 밀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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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타이타닉호에서 죽음을 택한 부자들
-1등석 승객중에서 어린이 全員과 144명의 여성중 139명이 살았고 남성은 70%가 죽었다. 어린이와 여성들을 우선적으로 구명보트에 태웠기 때문이다.


1912년 대서양에서 빙산에 충돌하여 침몰한 영국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에 대한 통계가 있다. 1500여명이 침몰한 배에 남았다가 죽었고, 그 정도 숫자가 17척의 구명보트에 옮겨가 구조되었다. 1등석 승객중에서 어린이 전원과 144명의 여성중 139명이 살았고 남성은 70%가 죽었다. 어린이와 여성들을 우선적으로 구명보트에 태웠기 때문이다.

2등석 손님중에선 여성의 80%가 구조되었고, 남자의 90%가 죽었다. 1,2등석 손님들은 당시 미국과 영국의 최상류층이었다. 미국 최고의 부자라고 불리던 존 제이콥 아스톨씨는 아내를 데리고 와서 보트에 태운 뒤 동승하기를 거부하고 배에 남아 있다가 죽었다. 또 다른 巨富 벤자민 구겐하임은 자신에게 돌아온 보트의 자리를 여성에게 양보하고 죽었다. 그는 그 여성에게 '내 아내에게 내가 정정당당하게 행동했다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영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누가 만들어서 준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이 王權과 싸워 쟁취한 것이다. 그들은 富에 따른 명예와 의무를 생활신조로 삼았다. 영국의 신사는 힘 센 사람이 아니라 '신사답게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이 자본가였다. 체제를 만든 사람들이 그 체제의 혜택을 보면서 또 그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할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자본가들은 독재자와 선동가로부터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 자유민주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인 자본가와 기업인들은 애국운동단체를 돕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敵들을 돕고 있다. 그들은 독립투사들과 군인들과 혁명가들과 엘리트 관료들이 만들어준 체제의 혜택만 볼 뿐 체제를 싸워서 지켜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 비겁한 富者들이다. 그러니 좌파들의 밥이 되는 것이다.

19세기말 영국이 인구 3억의 인도를 다스릴 때 인도엔 약15만 명의 영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6만 명은 군인이었다. 영국 군인들은 이 광활한 대륙의 변경에 퍼져서 주둔했으므로 보통 인도인들은 영국 군인들을 볼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하여 이런 少數로써 多數를 다스릴 수 있었는가.

인도행정청(India Civil Service: ICS)이 그 비밀이었다. 인도행정청에는 약1000명의 영국 공무원들이 근무했는데, 이들이 인도 각지에 파견되어 식민지 행정을 맡았다. 이 천명이 사실상 3억 인구를 다스린 것이다. 이 3억 인구는 언어만 해도 20가지이고 지방語는 셀 수 없을 정도인데다가 종교 인종도 각양각색이었다. 이런 인도를, 영국 공무원 한 사람이 30만명씩 안정적으로 관리했던 셈이다. 이 불가사의한 행정의 비밀에 대한 연구서적이 최근에 출판되었다.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라는 사람이 쓴 '지배계급'(The Ruling Caste: 출판은 Farrar, Straus, Giroux, 381페이지, 27 달러)가 그것이다.

인도행정청에서 근무할 영국인을 뽑고 훈련하는 과정에서 영국정부는 애국심과 자부심에 기반한 公人윤리를 반복교육으로 깊게 심었다. 학생들은 인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었다. 영국정부는 이들에게 그런 현지 관련 지식보다는 '제국의 魂'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인도에 대한 지식은 현지에 부임하여 배우도록 했다. 그 대신 大英제국의 知的이고 도덕적인 우월성에 대한 교육이 행해졌다. '유럽 도서관 한 개의 선반위에 올라 있는 책이 인도와 아라비아 전체의 문학작품을 모두 모은 것보다 더 우수하다'는 식의 교육이었다.

著者 길모어씨는 이 책에서, '제국주의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으로 무장한 이 젊은 관료들은 '책임을 떠 안는 것의 쾌감'을 간직하고 어떤 경우에도 조국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이 인도에 가서 부임하는 곳은 교통이 불편한 奧地(오지)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무슨 사고가 일어나도 상부 지시에 따라서 행동할 수가 없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결단력이 요구된다. 영국관료들은 실용주의와 상식에 기초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을 부임 초기부터 터득해나갔다.

소요사태를 예방하려면 우선 지배층이 민중을 자극하지 않아야 했다. 영국관료들은 인도사회의 풍습이나 사회적 관행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았다. 다만, 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불태워죽여서 순장하는 식의 야만적인 풍습은 금지시켰다. 인도사람들은 세금을 내고, 지역관리들을 죽이지만 않는다면 영국인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영국관리들은 그들이 다스리는 현지의 언어에 숙달해야 했다. 이 식민통치 관리들의 행동윤리는 피지배층을 대할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듯이 자선적이고, 공평하며, 청렴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영국관리들은 절대로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인도민중의 定評이 이들의 통치를 수월하게 해주었다.

인도는 독립한 뒤에도 영국행정청의 이름을 India Administrative Service로 바꾸고 그 골격을 이어갔다. 물론 영국인은 인도관리로 교체되었다. 인도는 영국관리들이 남긴 전통, 즉 자선적이고 공평하며 청렴한 공직규범을 그대로 계승하여 오늘날 세계최대의 민주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 행정관료의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慈善, 公平, 淸廉은 어느 시기, 어느 나라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국가엘리트의 행동규범이다. 영국의 인도통치의 예에서 보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기도 하다. 자선, 공평, 청렴의 행동규범을 뒷받침한 것은 애국심과 자부심이었다.

국가, 전통, 그리고 자신에 대한 자존심으로 무장한 국가엘리트가 이끌어가는 대한민국은 언제 만들어질 것이며, 이런 엘리트 집단을 양성할 국가적 교육기관은 또 어떻게 만들 것인가.

李承晩 대통령은 독립투사 엘리트의 대표였고, 朴正熙 全斗煥 盧泰愚는 군 장교단의 대표였다. 이들은 국가를 찾겠다고 싸우고, 국가를 지키려고 고민하고 피를 흘리는 과정에서 國益을 중심에 놓고 思考하는 습관을 길렀다. 그 뒤에 등장한 소위 민주투사 출신들은 당파, 지역, 계급의 이익을 국민과 국가의 이익보다 우선시키면서 국가 엘리트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 민주투사 출신들은 역대 정권과 싸우는 과정에서 정권과 국가를 혼동하였다. 그들은 정권에 대한 유감이 국가에 대한 유감으로 변질됨으로써 애국심의 근저를 이루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역사와 전통에 대한 존중심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니 정권을 잡고도 대한민국의 주인이란 의식보다는 손님의식, 또는 백성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좌파정권 담당자들에게 국민들에 대한 善意와 공평과 청렴을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동떨어지게 보이는가.

역사, 철학, 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애국심과 자부심으로 자신을 가득 채운 국가 엘리트층의 再建이 바로 가장 중요한 대한민국 再建사업이다.


두 달 전 서울의 부자동네 사람들이 많이 나온 모임에 갔다. 구청장이 자랑을 했다.
'그곳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우리 區가 무너질 것이란 위기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를 설득하여 그곳에다가 테니스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강북에 사는 나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공무원이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도 되나'하는 생각이 하나이고, 이런 말을 듣고도 모두가 잘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부자마을 사람들의 양심은 도대체 몇 원짜리인가 하는 분노였다.
임대아파트가 옆에 들어서면 주거, 교육환경이 나빠지고,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고 건축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부자들이 있기 때문에 좌파들이 득세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양극화 선동'이 먹히는 것이다. 임대아파트 입주자를 마치 백인이 흑인 보듯이 하면서 합법적인 건축을 방해하는 이런 부자들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계급적으로 분열시키는 사람들이며 도덕적으로 평가해도 친북좌파보다 못한 존재이다. 임대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용감하게 억지를 부리는 부자들일수록 평소엔 호화판 생활을 즐기면서 애국운동을 기피하고, 투표일엔 외국여행을 나가는 경우가 많다. 좌파의 도전에 대한 위기의식도 거의 없다. 자신들의 자유와 재산은 그 누군가가 대신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富者들은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의 위협에 직면해서도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체로서의 존립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에 대해서는 싸워야 할 생명체로서의 의무가 있다. 생명의 핵심은 자유이다.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싸우지 않는 순간 그런 생명체는 생명력을 잃고서 無생물이 되는 것이다. 밟았을 때 꿈뜰대는 지렁이는 생명체이지만 밟아도 반응이 없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시체이든지 돌과 같은 무생물이다. 무생물체는 자유를 상실하여 아무런 가치가 없으므로 쓰레기 취급을 받아도 할 수 없다.

친북좌파들은 자신들의 존립을 보장받기 위하여 피나는 투쟁을 계속해왔다. 여론과 언론과 권력면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하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하여 싸웠다. 그들의 지향점은 틀려먹었으나 생명체로서의 의무는 다한 셈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봐서도 싸우는 좌파는 안 싸우는 우파보다 우월하다.
가장 경멸해야 할 부류는 못사는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면서 권력을 쥔 좌파에 대해서는 싸움을 기피하고 굴복해버리는 '잘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만함으로써 좌파들을 키웠고 비겁함으로써 좌파들을 강화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大選에서 사이비 좌파를 물리치고 정상적인 사람이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남사람들부터 보다 겸손해지고 보다 용감해져야 할 것이다.

[ 2006-06-07, 0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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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가을 닉슨이 서울에 도착했을 때 그는 李承晩 대통령에게 보내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親書를 갖고 있었다. 닉슨을 만난 駐韓 미국 대사 엘리스 브릭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비슷한 불안을 품고 있었다. 휴전에 반대해온 李承晩 대통령이 북한군을 독단으로 공격하여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일지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李 대통령은 자신이 그런 공격을 해놓으면 미국은 한국을 돕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誤判하고 있을지 모른다. 닉슨은 브릭스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대사관에서 만났다. 특별 협상팀을 이끌고 있던 아서 딘은 닉슨이 이승만에게 전달할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한 것을 알고 말했다. 그는 李承晩 대통령을 매우 존경하고 있었다.
“李 대통령의 이빨을 뽑고 그로부터 무기를 빼앗아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우리의 친구들이 거의가 상황이 좋을 때만 친구인 척하는 데 반해 李 대통령은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입니다.”

다음날 닉슨은 경무대로 李承晩 대통령을 방문했다. 닉슨이 관찰한 李 대통령은 날씬한 몸매에 걸음이 활달하고 악수할 때의 힘도 세었다. 78세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곤색 양복에 곤색 넥타이를 맸다. 李 대통령은 닉슨 부통령이 “개인적으로 논의할 사안이 있다”고 하니 배석자를 물렸다.
닉슨은 “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대표할 뿐 아니라 한국의 친구로서 활동한 오랜 기록을 가진 사람이다”고 말했다. 李承晩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하는 닉슨을 凝視(응시)하였다. 닉슨은 아이젠하워의 친서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건네주었다. 李 대통령은 그 편지 봉투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그는 천천히, 계산된 행동을 하듯이 봉투를 열고 편지를 꺼냈다. 그는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위엄 있고 정확한 발음이었다. 이 親書에서 아이젠하워는 한국이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한 뒤 李 대통령이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줄 것을 요청했다.
李 박사는 편지를 무릎 위에 놓고 한 참 내려다보았다. 그가 얼굴을 들었을 때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는 “아주 좋은 편지입니다”라고 했다.
李 대통령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친서 내용과는 다른 話題로 옮겨갔다. 일본문제, 아시아-태평양 정세의 미래를 이야기하더니 미국정부가 對韓원조를 해주는 방식을 비판했다. 닉슨은 話題를 다시 親書쪽으로 돌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린다”고 했다.
“나도 귀하에게 솔직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미국으로부터 받은 도움에 대해서, 그리고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에 대해서 나는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관계로 해서 나는 미국의 정책과 맞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나는 노예상태의 북한동포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평화적 방법으로, 그러나 필요하다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 한국인의 지도자로서 나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잠시 멈추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미국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심초사하는 것을 잘 이해합니다. 그러나 한반도를 분단된 채로 남겨놓은 상태의 평화는 불가피하게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 전쟁은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파괴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평화에 동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李 대통령은 닉슨을 향하여 몸을 숙이더니 말했다.
“내가 일방적인 행동을 취하기 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미리 알려드릴 것임을 약속합니다.”
닉슨 부통령은 이 정도의 약속으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상호합의하지 않고선 어떤 (도발적) 행동도 한국이 단독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두 사람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헤어졌다. 미국 대사관에 돌아온 닉슨은 대화내용을 자세히 기록했다. 그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닉슨은 자신의 침묵이나 무능으로 하여 李承晩 대통령이 오해를 하도록 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미국 정부가, 李 대통령이 한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일방적으로 군사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이해시켜야만 한다.
李承晩 대통령은 닉슨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닉슨 부통령을 통하여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설득하여 한반도의 이 문제를 끝장내게 할 수 있을 것이다”는 말을 했다. 이것도 닉슨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에 닉슨 부통령 부처는 한국 무용과 음악 공연에 초대되었다. 어린이 합창단이 출연했다. 공연도중 무대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으나 어린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지휘자는 貴賓(귀빈) 앞에서 이 무슨 창피냐는 듯이 퇴장해버렸다. 닉슨은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동양에서 손님 대접에 실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수치인지를 잘 아는 그는 이 난처한 처지를 수습하고 싶었다.

닉슨 부통령 부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한 사람씩 나중에는 관중들이 전부 다 일어나 함께 박수를 쳤다. 어린이 합창단도 웃기 시작했다. 지휘자도 무대로 돌아와 공연을 계속할 수 있었다.
다음날 닉슨은 李承晩 대통령을 다시 만났다. 李 대통령은 지난 밤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보고를 받은 듯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대통령은 두 사람만 남게 되자 두 페이지짜리 종이를 꺼내서 펼쳤다. 그는 “보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내가 직접 타이프를 쳤다”고 말했다. 李 대통령이 말했다.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은 이승만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貴國은 가장 중요한 협상력 하나를 잃는 것이 될 뿐 아니라 우리는 모든 희망을 잃는 것이 됩니다. 내가 모종의 행동을 취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늘 공산주의자들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우리 서로 솔직합시다. 공산주의자들은 미국이 평화를 갈망하므로 그 평화를 얻기 위하여는 어떤 양보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들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들 공산주의자들은 나는 미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자들이 가진 그런 불안감을 없애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귀하가 도쿄에 도착했을 때인 내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답신을 보내겠습니다. 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 편지를 읽어보고 파기해주셨으면 합니다.”
李承晩 대통령은 메모한 두 페이지짜리 종이를 닉슨에게 건네면서 “보고용으로 이를 이용해도 좋습니다”라고 했다. 그 메모엔 이승만 대통령이 필기한 한 구절이 첨가되어 있었다.
<너무 많은 신문들이 이승만이 단독으로 행동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한다.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은 우리의 선전방침과는 부합되지 않는다>

경무대에서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헤어졌는데, 李 대통령은 이때 이렇게 말했다고 닉슨 회고록은 기록하고 있다.
“내가 한국은 단독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부 다 미국을 도와주는 일입니다. 나는 한국이 단독으로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우리는 미국과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가면 모든 것을 얻을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닉슨은 퇴임후에 쓴 회고록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한국인의 용기와 인내심, 그리고 李承晩의 힘과 지혜에 깊은 감동을 받고 떠났다. 나는 李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를 상대할 때는 ‘예측불가능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통찰력 있는 충고를 한 데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그 후 더 많이 여행하고 더 많이 배움에 따라서 그 노인의 현명함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닉슨은 冷戰을 서방세계의 승리로 이끈 3大 전략가중 한 사람이다. 냉전 승리의 틀을 만든 트루먼, 소련을 압박하여 총 한 방 쏘지 않고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만든 레이건, 그리고 중국과 화해하여 세계 列强의 질서를 재편했던 닉슨이 그들이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 후 물러난 뒤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는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함에 있어서 “우리는 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강조했다. 이 깨달음은 李承晩 대통령으로부터 배운 ‘불가측성의 중요성’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 어쨌든 최고의 反共전략가인 닉슨이 李承晩 대통령을 극찬한 것은 요사이 조국에서 잊혀진 존재가 된 이 위대한 先覺者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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