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이 만난 1950년대 아시아 지도자들

말레이시아의 영국총독은, "인도차이나가 정말 필요로 하는 인물은 바로 그 이승만입니다.”라고 했다.
1953년 10월 리처드 닉슨 미국 부통령은 한 달간의 旅程(여정)으로 아시아 巡訪(순방) 길에 나섰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닉슨에게 특별히 부탁한 여행이었다. 아이젠하워는 유럽은 잘 알지만 아시아에 대해선 잘 몰랐다. 이곳 지도자들을 만난 적도 거의 없었다. 그는 닉슨에게 아시아 지도자들을 만나 미국의 정책을 설명하고 현지 상황을 직접 관찰하여 보고해달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닉슨은 현지 미국 대사관에 電文을 보내 “가능한 한 많은 사람, 그것도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해줄 것”과 “외교적 행사는 최소한으로 줄여줄 것”을 요청했다.

맨 처음 도착한 곳은 뉴질랜드와 호주였다. 그는 호주 수상 로버트 멘지스를 만나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이 사람이 영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윈스턴 처칠과 같은 큰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고 생각했다. 다음 방문지는 인도네시아였다. 대통령 수카르노를 만났다. 닉슨은 나중에 자신의 회고록을 통하여 그를 혹평했다. <국민들이 가난한 만큼 수카르노는 부자였다>는 것이다. 자카르타는 거대한 쓰레기더미를 연상시킬 정도로 貧民街였다. 도심지 한 복판으로 쓰레기 처리장 같은 下水가 흐르고 있었다.

수카르노의 궁전은 이런 가운데서도 별천지였다. <주민들의 가난함과 대통령의 호사함이 이처럼 대조적인 곳은 달리 없었다>고 닉슨은 회고록에서 썼다. 수백 에이크를 점유한 궁전엔 환상적인 정원이 있었고, 금으로 만든 食器에 담겨 나온 요리를 먹는 동안 호수엔 촛불을 실은 배가 떠 있었다. 樂士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했다. 궁전엔 아름다운 여인들도 많았다. 수카르노는 자신의 精力을 자랑했다.

닉슨은 <수카르노는 위대한 독립투사였으나 국가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데는 전혀 맞지 않는 인물이다>고 평가했다. 이집트의 낫셀, 가나의 엔크루마도 그러했지만 수카르노 같은 지도자는 舊체제를 때려 부수는 데는 유능해도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내는 데는 맞지 않았다. 신생 독립국의 지도자는 거의가 이런 類型(유형)임을 닉슨은 알게 되었다.
닉슨은 말레이시아에 도착했다. 당시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지로서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산게릴라들이 정글에서 반란을 일으켜 영국군이 진압작전을 펴고 있었다. 영국은 공산게릴라들과 싸우는 데 있어서 미국이 나중에 월남전에서 했던 실수를 범하지 않고 있었다. 영국은 말레이시아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의 지지를 얻은 바탕에서 반란군과 싸우고 있었다. 콸라룸푸르에서 닉슨이 만난 사람은 영국총독인 제랄드 템플러 元帥였다.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나는 말레이시아의 지도자들과 군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당신들의 전쟁이다. 당신들은 독립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 당신들이 공산게릴라들을 무찌른 후에는 독립할 것이고 영연방에 머물 것인지 말 것인지도 당신들이 결정할 것이다.”

템플러와 부인은 말레이시아 현지 사람들을 대할 때 그들을 아주 존중해주었다. 닉슨은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 사람들이, 월남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현지인을 멸시하는 것과는 다른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닉슨 부통령과 템플러 총독은 인도지나 情勢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템플러는 머리를 흔들면서 비관적으로 말했다.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 싫습니다만, 왜냐 하면 그는 SOB(Son of a Bitch)이니까요. 인도차이나가 정말 필요로 하는 인물은 바로 그 이승만입니다.”
닉슨은 회고록에서 <그 뒤의 사태 전개는 그가 맞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강력한 지도자가 없으면 공산당과 싸울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썼다.
닉슨은 공산세력의 위협을 받고 있던 월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잇따라 방문했다. 1953년 가을 현재 월남은 프랑스 군대가 지배하고 있었고, 형식상 바오 다이라는 왕이 다스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바오 다이는 프랑스가 월남의 독립을 허용한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면 공산게릴라와 싸우는 프랑스를 지원해줄 수 없다는 태도였다. 프랑스는 그런 약속을 거부하고 있었다.

바오 다이 왕은 닉슨을 高原의 호화판 별장으로 초대했다. 여기서도 닉슨은 근사한 대접을 받았다. 바오 다이는 “공산주의자들과 협상을 하면 그 회의장에서 월남이 분단되고 말 것이다”고 예언하였다. 그는 공산당과 협상하는 것은 헛일이라고 강조했다.
닉슨은 라오스를 거쳐서 北월남의 하노이를 찾았다. 닉슨은 北월남을 다스리는 프랑스 총독의 환대를 받은 뒤 공산게릴라와 전투중인 프랑스 군의 兵營을 찾았다. 여기서 닉슨은 프랑스 군인들이 같은 편에서 싸우는 월남 군인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고 차별대우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점심 식사시간에 나온 알지에産 포도주가 너무나 맛이 있어서 감사했더니 프랑스 군 장교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늘 이렇게 마십니다”라고 했다.

같은 병영 안에 있는 월남군 식당을 방문하려고 하니 프랑스 장교는 싫은 표정을 지었다. 닉슨은 그래도 방문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프랑스 장교가 할 수 없이 안내를 해주었는데, 월남군 병영에선 지독한 냄새가 났다.
“이것이 무슨 냄새냐?”고 했더니 프랑스 장교는 “아마 원숭이를 잡아먹는 모양입니다”라고 비웃듯이 대답했다.
닉슨의 다음 기착지는 캄보디아였다. 시아누크 왕을 만났다. 닉슨은 회고록에서 그를 “허영심이 많고 엉뚱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자질보다는 음악적 자질을 더 자랑했고, 이 나라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닉슨은 월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떠나면서 이곳을 군사적으로 장악한 프랑스가 실패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현지인을 제대로 훈련시키지도 않고, 왜 함께 공산주의자들과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공통된 목표의식을 심어주지도 않았다.

닉슨은 대만으로 가서 蔣介石 총통을 만났다. 그는 중국 본토를 修復(수복)하는 꿈에 매달려 있었다. 닉슨은 “본토 침공에 미국은 협력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닉슨은 蔣 총통의 높은 지능과 獻身性을 평가했다. 그의 다음 목적지는 한국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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