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 문을 닫다
탄광노조의 파업기간에 여론은 항상 노조의 파업에 불리했다. 좌익신문을 제외하곤 파업을 지지하는 언론이 없었다. 1984년말의 여론 조사에서 파업지지는 7%, 반대가 88%였다. 논리적으로 잘 정리되고 쉽게 표현된 대처 수상의 단호한 연설과 논평이 이런 여론을 만들어낸 가장 큰 요인이었다. 대처는 1984년 11월 칼톤 클럽 연설에서 법치의 소중함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를 쟁취한 지가 오래인데 아직도 문명을 건설하기 위하여 泥田鬪狗(이전투구)를 하고 있는 시대인 것처럼 생각하고 法治(법치)의 나라를 비웃는 것은 영웅적 행동이 아닙니다.”
이런 말은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했어야 했다. 민주의 이름으로 법치를 파괴하려고 했던 촛불시위대에게. 1987년 6.29 선언과 그해 직선제 대통령 선거 이후 한국은 민주화되었다. 민주국가의 법은 정당하다. 惡法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말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오늘날 한국에선 民主의 이름으로 법을 어기는 행위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대처는 의회토론에서 야당인 노동당의 당수 킨노크를 향하여 직격탄을 퍼부었다. 수상은 노동당이 탄광노조의 폭력과 불법에 침묵한 것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대처는 “나는 지금부터 야당 지도자에게 도전장을 내겠다”고 하더니 이렇게 쏘아붙였다.
“탄광노조에 대해서 그 합의를 수용하라고 권하겠습니까, 안하겠습니까(場內에서 ”대답하라”는 고함)? 그는 대답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대답할 용기가 없으니까요.”
1985년 2월27일 드디어 파업에 불참한 광부 숫자가 전체 노조원의 과반수에 도달했다. 스카길이 더 버틸 명분은 사라졌다. 3월3일 탄광노조 대의원들은 파업중지를 결의했다. 그날 대처는 다우닝 10번지 관저 앞에서 기자들 앞에 섰다.
“일터를 지켰던 광부, 항만 노동자, 발전소 직원, 운전사, 철도원들, 그리고 간부들이 진정한 승리자들다. 이들이 영국의 바퀴가 계속해서 돌아가도록 했다. 영국이 정지하지 않도록 했던 모든 노동자들이 이긴 것이다.”
대처 정부는 탄광노조를 패배시킨 뒤 채산성 없는 탄광의 폐쇄에 착수했다. 1994년 탄광이 민영화될 때 남은 것은 15개애 불과했다. 2005년엔 8개가 가동중이었으나 지금은 全廢(전폐) 상태이다. 탄광노조의 아서 스카길 위원장은 2000년까지 재임했다. 그는 1996년에 노동당을 탈당, 사회노동당을 창당한 이후 두 번 하원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는 2.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사회? 그런 건 없습니다”
1999년에 미국의 주간지 타임誌는 마가렛 대처를 20세기의 20大 정치인 가운데 한 명으로 뽑았다. '대처리즘'이란 말을 남길 정도로 대처의 정치적 유산은 영국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지금도 큰 영향력과 상상력을 행사하고 있다. 法治주의, 작은 정부, 시장경제, 민간의 자율과 책임을 강조한 대처의 신보수주의적 개혁은 한국에서도 유력한 모델로 연구되고 있다.
대처는 아마도 가장 많은 名言을 남긴 정치인중 한 사람으로 꼽힐 것이다. 대처는 1987년 9월23일 '우먼즈 오운(Woman's Own)'이란 잡지의 더글라스 키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나 많은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잘못 가르쳤다고 생각합니다. '내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주어야 한다' '내게 문제가 있지만 정부를 찾아가면 경제적 지원을 해줄 것이다' '나는 집이 없다. 정부가 집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식이지요.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사회에 轉嫁(전가)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회가 누구예요? 사회? 그런 건 없습니다! 개인으로서의 남자와 여자가 있고, 가족들이 있는 것뿐입니다. 정부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들을 통해서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먼저 스스로를 도와야 합니다. 스스로를 돕고 이웃을 돕는 것은 여러분들의 의무입니다. 삶이란 것은 주고 받는 거예요. 주는 것 없이 받을 생각만 하면 안 됩니다.'
'사회? 그런 건 없습니다!'라는 말이 유명해졌다. 한국의 자칭 진보적 인사들은 인간의 모든 문제들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돌린다. 30명을 연쇄살인한 犯人의 책임도 사회의 냉대에 있다고 한다. 북한의 배고픔과 살육도 김정일이 아니라 국제사회에 있다고 한다. '사회'라는 개념을 만들어 모든 책임을 거기에 떠넘기곤 '우리는 결백하다'고 홀가분해하는 꼴이다. 이런 위선적 태도에 대해서 대처는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한 것이다.
'사회? 그런 건 없습니다.'
“파쇼좌익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힘”
대처는 1981년 9월20일 연설에서 자신의 정치철학을 이렇게 말했다.
'나의 정치는 나와 수백만의 나 같은 사람들이 자라면서 배운 것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루를 정직하게 일한 代價로 정직한 돈을 번다, 분수에 맞추어 살아라, 비 오는 날에 대비하여 달걀을 남겨두라, 낼 돈은 제때에 내고 살아라, 경찰에 협조하라!'
대처 여사는 퇴임 후에 회고록과 ‘국가운영술’(Statecraft)이라는 책을 썼다. ‘국가운영술’에서 대처는 對北정책에도 참고가 될 만한 충고를 많이 하고 있다. 그는 소련전문가들이 소련의 지도부를 강온파로 분류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지적했다. 전체주의 체제 안에서는 의미 있는 정책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한때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도 북한 권력층 내부를 강온파로 나누고 김정일을 개혁온건파, 군부를 反개혁강경파라고 설명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 黃長燁 선생은 “북한에서는 김정일만 결정권을 갖고 있는데 무슨 강경, 온건이냐”고 비웃었던 적이 있다.
대처 여사는 또 對蘇강경정책이 소련의 강경한 대응을 부를 것이라는 서구사회의 비판도 틀렸음이 확인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해선 안 된다, 안전을 원하면 안전을 위협을 해선 안 된다, 협력을 원하면 타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접근법은 완전히 틀렸다. 닉슨, 포드, 카터가 이끌던 미국이 데탕트 정책으로 소련을 상대로 타협적으로 나왔을 때 소련은 군비를 증강하고 침략정책을 추구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등장하여 군사적 優位, 체제경쟁, 그리고 소련의 침략에 대한 반격작전을 펴자 소련은 협조적으로 나왔고, 무장해제했으며, 마침내 무너졌다>
레이건, 대처, 요한 바오로 2세, 바웬사는 1980년대에 서로 협력하여 공산권을 무너뜨린 거인들이다. 탄광노조이든, 소련이든 ‘파쇼 좌익’에 대해선 힘만이 먹힌다는 대처의 경험적 관찰은, 개혁저항세력화한 자칭 진보세력의 도전을 극복해가면서 햇볕정책을 代替(대체)할 새로운 對北정책을 모색해야 하는 李明博 대통령에게 하는 충고처럼 들린다. 좌익이념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省察(성찰)이 대처의 정책과 전략을 뒷받침하였다.
진실, 正義, 자유
대처는 ‘국가운영술’에서 소련을 誤判한 지식인들을 가차 없이 비판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갈브레이스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경쟁을 하다가 보면 ‘수렴’(convergence) 현상을 일으켜 사회민주주의 체제로 변할 것이라고 터무니 없는 예언을 했다. 그는 1984년 소련의 경제가 도저히 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는데도 소련방문記에서 “소련 시스템이 거대한 물질적 진보를 이룩한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썼다.
영국의 생물학자 줄리안 헉슬리는 소련이 大饑饉을 겪고 있던 1932년에 소련을 방문하고 “소련 사람들의 건강상태와 육체적 조건은 영국인보다 높다”고 말했다. 영국 문학가 조지 버나드 쇼는 “스탈린은 10년 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물건들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영국 정치학자 해롤드 러스키는 “소련의 감옥은 수감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있을 정도로 좋다”고 썼다.
대처는 이런 위선적인 지식인들이 공산주의가 붕괴된 뒤에도 그 공을 레이건에 돌리지 않는 것은 “거의 범죄에 가까운 행위”라고 비판했다. 대처는 소련은 무너진 것이 아니라 무너뜨린 것이며 서방세계의 승리는 “진실, 正義, 자유가 이긴 것을 뜻한다”고 정의했다. 여기서 正義는 공정한 법치를 뜻한다.
해방 뒤에 독립투쟁하는 시대착오적 민주투사들에게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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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8-28, 14: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