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共에서 勝共으로

한국판 레이건 대통령이 나와야.
1981년부터 1989년 퇴임 때까지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惡의 제국’ 소련을 전방위로 몰아붙였다. 그 결과는 1989~1991년 사이에 일어난 東歐공산국과 소련의 해체였다. 레이건은 세계최대 强國이자 富國인 미국이 正義感을 갖고 국가자원을 총동원하면 국제 공산주의 세력을 끝장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이념적 압박을 병행했고 중단 없이 일관되게 추진했다. 그는 惡의 제국과 공존하려는 정책(데탕트)은 惡을 방치하는 죄악이란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에게 국제공산주의는 없애버려야 하는 존재였다.

1. 경제회복-군사력 증강: 5년간 군사비 지출이 두 배로 늘었다. 소련이 출혈적인 군비경쟁을 하도록 유도.
2. 동맹강화: 전두환 정권과 같은 反共권위주의 정부를 인정.
3.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 지원: 폴란드가 공산세계를 폭파 해체하는 수류탄 핀과 같다고 판단했다.
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협력: 특히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을 지원하는 데 일종의 神聖동맹을 맺었다.
5. 아프가니스탄 叛軍 지원: 스팅어 미사일 제공하여 무장헬기 공격토록 함. 소련이 撤軍할 때까지 밀어붙였다.
6. 소련의 外貨 수입원 차단: 對유럽 송유관을 복선화하지 못하게 하고 사우디의 원유 增産을 유도하여 원유 값 폭락. 원유수입에 의존하던 소련 경제에 위기.
7. 소련에 불량 기술 수출하여 각종 사고 유발.
8. 레이건은 수많은 연설을 통하여 소련을 악의 제국, 망할 나라로 규정, 소련 지도부를 화 나게 만들고 국민들에겐 용기를 주었다.
10. 스타 워즈 계획(우주에서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시스템) 발표: 소련 지도부가 군비경쟁의 공포감을 갖도록 유도.
11. 평화적인 軍縮 제안: 對蘇강경정책과 가장 혁명적인 군축제안을 병행.
12. 유럽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 강행. 나중엔 중거리 미사일 폐기 협상 성공.
13. 고단수 심리전: 소련체제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소련 지도자에 대해서는 부드럽게.
14. 미국인의 자신감 회복: 그레나다 침공, 리비아 폭격 등으로 미국의 군사력 사용.
15. 소련 인권 문제 거론: 미국 대통령이 직접 사하로프 부인의 해외 여행 허가 요청.
16. 군사력을 회복한 뒤 고르바초프와 회담 시작: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 원칙 고수.
17. 對蘇붕괴전략을 직접 챙겼다. 대통령 직속의 비밀회의 주재했다. 관료들의 방해와 반대를 묵살했다.
18. 召命의식: 레이건은 자신에게 하나님이 악의 제국을 무너뜨리란 召命을 주었다고 확신했다. 그는 평생을 반공투사로 살아오면서 공산주의의 본질과 약점을 정확하게 간파했다. 언론, 학자, 야당의 비판을 묵살했다.
19. 낙관적 태도: 레이건은 敵과 동지를 항상 웃으면서 대했다. 냉온탕식 대응을 워낙 자연스럽게 하는 바람에 소련 지도부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는 핵 전쟁 위협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며 핵무기를 없애야 한다고 믿은 진정한 평화주의자였다. 그는 강공책으로 욕을 먹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여 冷戰을 종식시킴으로써 세계 평화를 위한 巨步를 내디뎠다. 어떤 위선적 평화운동가보다 더 평화에 기여했다. 미국적 낙천주의와 남자다운 天性을 바탕으로 하여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惡의 제국을 웃으면서 죽여준 사람이었다.


레이건과 닉슨의 공통점은 反共이었지만 레이건은 反共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勝共을 지향했었다. 이것이 데탕트에 만족했던 닉슨과의 차이점이었다.

한국판 데탕트인 햇볕정책이 북한정권과 공존을 추구한 것이라면 이젠 북한정권을 소멸시키고 북한동포를 해방시키는 새로운 對北정책이 나올 때이다. 李明博 대통령이 한국판 레이건이 될 때 가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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