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늘 漢字 紀行: 勿忘草

大邱에서 凡勿이란 글을 보고 나서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勿忘草(물망초·Forget-me-not)
오늘 오후 대구 壽城區(수성구)에서 주최한 교양 강연회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강연장으로 가는데 교통 표지판에 凡勿(범물)이란 글이 보였다. 대구의 교통 표지판엔 한글, 영어, 漢字가 같이 쓰인다. 동행한 분에게 물어보니 凡勿洞이란 곳이 수성구에 있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 구글 검색을 했다. 凡勿이란 이름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는데 범이 놀았던 산 밑에 우물이 있었다고 해서 '범물'이라고 지어놓고는 한자 凡勿을 발음요소로 갖다 붙였다는 說이 유력한 모양이다. 勿은 '말勿(물)'이라고 한다. '말다', 즉 영어의 don't처럼 부정할 때 쓰이는 한자이다. 勿이 들어간 낱말이 없나 하고 생각하다가 勿忘草(물망초·잊지 말기 풀)가 떠올랐다. 물망초는 청색 입사귀가 다섯 개, 한 가운데 노란 꽃술이 있다.

구글검색을 해보니 Myosotis alpestris란 학명을 가진 유럽이 원산지인 꽃이라고 한다. 꽃 이름도 영어로 'forget me not'인데 프랑스 단어를 번역한 것이다. 16세기부터 이 이름이 쓰였다. 꽃 이름에 따른 전설이 많다. 여자들이 이 꽃을 가슴에 꽂으면 정숙함, 연인이나 남편에 대한 충실함을 나타낸다고 한다.

캐나다의 '치매협회'는 물망초를 상징으로 삼는다. 치매의 한 증상이 健忘症(건망증)이므로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뜻이 담긴 물망초가 그럴 듯하다. 앨라스카州의 州花(주화)가 산에서 자라는 물망초란 사실도 알았다. 1949년에 정했다고 한다. 눈과 얼음의 앨라스카는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진 거의 잊혀진 존재였다. 미국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겨울이 긴 고독한 大地였다. 이번 미국 大選에서 앨라스카 여성 주지사 페일린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 매케인의 런닝 메이트가 되어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렇게 검색을 해가다가 보니까 1960년대에 보았던 '물망초'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테너 가수 펠루치오 탈리아비니가 주연한 영화인데 감미로운 노래 물망초가 불려졌다. 인터넷을 뒤지니 고마운 분이 파바로티가 부른 나폴리 민요 '물망초'를 들을 수 있게 올려놓았다. 凡勿로 시작된 지식검색은 여기서 끝났다.

漢字는 이처럼 생각의 실마리를 열어주고 이어준다. 凡勿로 해서 나는 유식해졌다. '범물'이라고만 써놓았으면 이런 지식 여행의 길잡이 역할은 커녕 아무 뜻도 없는 소리에 신경질만 났을 것이다. 대구사람들은 漢字표지판으로 해서 많이 유식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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