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紀行(1)

충북 단양을 지나니 양쪽으로 충주호의 일부가 보였다. 알프스 산에 둘러싸인 스위스의 호수 같다. 丹陽은 붉은 햇볕이란 뜻인데 햇볕을 받은 산과 단풍이 그렇게 보였다.
요즘 단풍은 경상북도 북부 지방이 절정이다. 강원도, 경기도 지방은 지난 週가 피크였다. 올해 단풍은 예년처럼 좋지 않다. 단풍 색깔이 선명하지 못하다. 단풍이 물들기 전에 비가 와야 하는데 9월에 가뭄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강가나 호수가의 나무들은 물기를 머금어 여전히 아름답다.

서울 근교에선 光陵 수목원 단풍이 최고이다. 樹種이 많고, 약500년간 손을 안댄 자연상태의 숲이 있고, 무엇보다도 잘 관리되고 있다. 요사이는 하루 5000명만 예약제로 받는다. 덕분에 숲이 그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숲속을 자주 다니면 땅이 다져져 딴딴하게 된다. 공기, 물이 스며들기 어렵게 되어 나무에 악영향을 준다. 지난 이틀간 단풍이 붉게 타오르는 강원도, 충북, 경북지방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원주 못 미쳐서 우회전,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드니 치악산이 온통 벌겋게 보였다. 터널과 다리가 많은 중앙고속도로는 고도가 높아 창밖으로 보면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 보는 느낌이다. 치악 휴게소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고속버스에 다시 탔다. 충북 단양을 지나니 양쪽으로 충주호의 일부가 보였다. 알프스 산에 둘러싸인 스위스의 호수 같다. 丹陽은 붉은 햇볕이란 뜻인데 햇볕을 받은 산과 단풍이 그렇게 보였다.

충주호로 인해 단양은 충주, 춘천, 안동과 비슷한 湖畔도시가 되었다. 호반도시는 안개가 많이 낀다. 단양을 지나면 석회암이 드러난 산과 시멘트 공장이 보인다. 단양에서 30분쯤 달리면 죽령을 터널로 지난다. 竹嶺은 소백산을 넘는 고개이다. 충북지방과 경상북도를 가르는 경계선이다. 옛날엔 고구려 땅과 신라 땅을 경계 지었다. 신라는 이 죽령과 소백산을 넘어 충북으로 진출, 고구려를 북쪽으로 밀어낸 뒤 한강 유역을 차지하게 되고, 이것이 삼국통일의 발판이 되었다. 농토와 인구가 많은 한강流域을 차지한 세력이 한반도의 주도권을 잡는다.

죽령 넘어가는 산길과 찻길은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가듯이 재미 있었다. 지금은 그 밑으로 4km가 넘는 터널이 달린다. 이 터널을 지나 남쪽으로 나오면 풍기 땅이다. 갑자기 新天地가 전개된다. 햇볕이 쏟아지는 개괄지이다. 정감록의 十勝之地(십승지지) 중 하나가 풍기에 있다. 亂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 하여 19세기 말부터 북한지역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온 이들이 많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비서실장 金桂元씨도 그런 집안 출신이었다. 이들은 6.25 전란은 피하지 못했으나 김일성-김정일의 亂은 피했다.

풍기는 요사이 영주시에 편입되어 있는데 소득이 높은 곳이다. 사과, 인삼, 인견사가 특산물이다. 영주엔 한국 불교의 대표 사찰중 하나인 부석사와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있다. 안동과 함께 한국 정신 문화의 한 중심이다. 부석사의 대웅전을 올려다 보는 경치와 대웅전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한국의 人工美와 自然美를 상징한다.

조선시대에 영주 근방에서 유명한 儒學者가 죽으면 서울에서 問喪을 오는데 코스가 이러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배를 타고 양수리를 거쳐 남한강을 지나 단양에서 내린 다음 말을 타고 죽령을 지나 영주에 도착한다. 이런 水路를 대운하로 재현시키겠다는 李明博 대통령의 계획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서울 강남의 센트럴 고속버스 터미널을 아침 8시40분에 출발한 우량 버스는 安東에 11시50분에 도착했다. 안동 터미널에서 택시를 불러 잡고 屛山서원으로 향했다. 壬亂 때의 영의정으로서 李舜臣을 발탁하고 戰局을 지휘했던 柳成龍이 공부했던 書院이다. 晩對樓(만대루)에 올라가 앞을 바라보니 숨이 막히는 절경이었다. 정면에는 屛山의 여러 봉우리가 屛風처럼 가로로 펼쳐져 있다. 紅葉滿山이다.

그 밑으로는 낙동강이 구비를 이루며 감돈다. 붉은 산, 푸른 강물에 이어 하얀 백사장과 드문드문 보이는 소나무가 눈 밑까지 다가온다. 晩對樓(만대루)라는 뜻은 저녁 무렵에 이 누각에 올라가서 앞산을 바라본다는 것이 아닐까? 자연이 완벽한 구도를 그릴 때 구경하는 이는 숨이 막힌다. 경주의 태종무열왕능이 있는 地形-左靑龍 右白虎-이 그런 예이다. 晩對樓에서 내려와 그 뒤에 있는 立敎堂 뒤로 돌아가서 열린 문틀을 통해서 병산을 향해 바라보니 문틀이 하나의 畵幅이다. 문틀이 그림을 자연상태로 담아내어 걸작을 만들어주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공부를 한 柳成龍 선생이니 위대한 기록문학인 ‘懲毖錄(징비록)’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柳成龍 선생의 고향은 안동 河回마을이다. 屛山서원에서 약6km 떨어져 있다. 이 마을 한 복판에 永慕閣이란 기념관이 있다. 壬亂에 대하여 쓴 柳成龍 선생의 手記인 懲毖錄도 이곳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강이 마을을 감싸고 돈다고 해서 지은 河回 마을에서는 일본인 단체 여행객들이 많이 보인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한 마을이다. 永慕閣 전시실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고 빨간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한다. 구두를 벗고 마루를 내려다보니 수십 켤레의 슬리퍼가 질서 없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다. 방금 나간 한국의 단체 관광객들이 남긴 모습이었다. 기자가 한 십여분 간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가려는데 깜짝 놀랐다. 그 어지럽던 슬리퍼가 칼날처럼 정리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금방 나간 일본인 관광객들이 그렇게 해놓고 간 것이었다. 그들은 거의가 50대 이상 여성이었다. 말없이 조용하게 행동했다. 껌을 소리 내어 씹고 떠들고 다니는 同年輩(동연배)의 한국 여성 관광단과 대조가 되었다. 흩어진 슬리퍼와 정돈된 슬리퍼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일 것이다.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보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미국發 금융위기를 만나 일본은 덤덤하고 한국은 아우성이다. 國力의 차이이다. 지금도 일본을 우습게 보는 한국인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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