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정부의 건설을 바라는 국민적 열망과 여러 정치세력들의 반대속에 1948년 5월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기 위한 총선거가 실시되었다(5·10 총선거). 총선거에는 김구와 김규식을 비롯한 남북협상 참가세력과 많은 중도계 인사들이 참가를 거부함으로써, 이승만과 한국 민주당, 그리고 일부 중도세력만 출마하였다. (중략). 국회에선 3권분립과 대통령 중심제, 국회의 간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출 등을 요지로 하는 헌법을 만들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마침내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 해 12월 파리에서 개최된 유엔총회에서 합법정부임을 승인받았다.>
금성출판사에서 낸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2002년 7월30일 교육인적자원부 검정)에 실린 建國 과정에 대한 記述이다. 反국가적이고 무엇보다도 사실과 맞지 않은 악랄한 편향과 왜곡이다.
<통일정부의 건설을 바라는 국민적 열망과 여러 정치세력들의 반대속에서> 총선거가 실시되었다고 함으로써 절대다수 국민들과 정치세력이 建國을 위한 총선거에 반대한 것처럼 쓰고 있다. 사실은, 절대 다수 국민들과 정치세력이 建國에 찬성하고 선거에 참여했다. 통일정부의 건설을 바라는 국민적 열망은 북한이 자유선거에 의한 建國을 반대하고 있음으로 우선 남한에서라도 민주국가를 세우자는 현실적 결단으로 昇華(승화)되었던 것이다. 공산당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10 선거에서 투표율이 95.5%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위 교과서 기술의 허위성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이다.
<이승만과 한국 민주당, 그리고 일부 중도세력만 출마하였다>란 표현은 '중도세력만'의 '만'에서 이 교과서의 필진들이 가진 편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만'이란 용어선택을 통하여 이 선거에 출마한 정치세력이 극소수임을 강조하려 했던 것이다. 사실은 무엇인가? '이승만과 한국 민주당, 그리고 일부 중도세력'은 당시 국내 정치세력의 主流였다. 48개 정당과 단체가 후보를 내어 '난립'이란 표현도 나왔다. 이들이 현실 정치를 대표하는 세력이었음으로 투표율이 90%를 넘었던 것이다. '민중' 중심 시각으로 쓰여졌다는 이 교과서가 90% 민중의 결단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무시하고 있다. 이는 이들이 쓰는 '민중'은 진짜 민중이 아니라 '노동자 및 농민 계급'을 주축으로 하는 친공적인 세력을 '민중'이라고 위장하기 위한 용어혼란 전술에서 나온 단어임을 알게 한다.
<이승만과 한국 민주당, 그리고 일부 중도세력이 출마하였다>고 써야 할 것을 <이승만과 한국 민주당, 그리고 일부 중도세력만 출마하였다>고 기술함으로써 이 교과서는 反대한민국적 관점을 스스로 폭로한 것이다. 이 교과서는 유엔이 이 선거가 공정했음을 인정했다는 사실과 공산세력이 武力으로 방해하였다는 사실을 생략했다. 민족사상 최초로 국민들이 투표에 참여하여 국회를 구성하고, 그 국회가 자유민주적 헌법을 만들고 거기에 근거하여 대한민국을 세웠다는 역사적 의미도 생략했다. 자유로운 총선거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기초한다는 점도 물론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자유선거를 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북한정권을 민족사의 이단이자 영토를 불법강점한 反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은 민족사상 등장한 최초의 국민국가가 절대다수 국민과 정치인들의 반대 속에서 태어난 사생아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민족사의 가장 영광된 순간을 치욕적인 사건으로 기억할 것이다. 국가정체성에 입각하여 정확한 역사를 배워야 할 학생들이 反국가적 이념에 입각한 편향된 史實을 배우고 있다. 이런 교과서를 인정해준 김대중 정부下 교육인적자원부는 국가의 의무인 '정확하고 긍정적인 역사관 교육'을 포기한 셈이다. 좌파정권에 영합한 이들 공무원이 지금도 정부안에서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이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에 대해서도 학부모들은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순진한 학생들의 미래를 가장 빨리 망치는 길은 부정적 역사관을 심는 것이다.
대한민국 建國을 국민과 정치세력들이 반대했다고?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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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1-14, 10: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