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無知는 힘」

말을 거꾸로 하는 자들이 한국인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있다.
『자유란「2+2=4」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이다』
(2003년 12월)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장 (mongol@chosun.com)


조지 오웰이 쓴 불후의 명작 「1984」는 大兄이 다스리는 오세아니아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眞理省에 근무한다. 보도, 연예, 예술을 관장하는 부처이다. 이 부처 곳곳에는 黨의 구호가 붙어 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無知는 힘」

오세아니아의 국방부는 平和省이라 불린다. 재정경제부는 豊富省이다. 주민들의 사상통제를 전담하는 부처는 愛情省이라 한다. 아우슈비츠 같은 집단 강제수용소는 쾌락수용소(Joycamp)이다.

이런 언어는 新語라고 불린다. 新語는 사회주의의 이념적인 필요에 따라 오세아니아가 창안한 언어이다. 1984년 현재로는 혼용되고 있으나 2050년부터 舊語는 없어지고 新語만 쓰일 것이다.

이 나라의 黨에선 略語를 많이 쓴다. 오웰에 따르면 略語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의도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眞理省은 眞省, 平和省은 平省, 愛情省은 愛省이라고 불린다. 이 略語의 원리는 이렇다.

예를 든다. 「국제 공산당(communist international)」이란 말은 보편적인 인류애, 붉은 깃발, 바리케이드, 칼 마르크스를 떠올리게 한다. 이를 줄인 「코민테른」이란 말에선 그런 연상이 중단된다. 단지, 엄격하게 조직된 기관과 명백하게 定義된 강령체가 떠오를 뿐이다.

「국제 공산당」이란 단어는 사람을 순간적으로 머뭇거리게 한다. 구체적인 연상과 思惟 기능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코민테른」에선 그런 사유와 고민이 중단된다. 眞理省이란 말보다는 眞省으로 줄일 때 연상작용이 더 약하고 따라서 통제하기도 쉽다. 즉, 略語를 정치적으로 많이 쓰면 대중을 맹목적으로 선동, 조종하기가 쉽다는 이야기이다.


선동기관을 眞理省이라 부를 때는 머뭇거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진리가 아니라 거짓을 알리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인데」 하는 반발과 의심이 생긴다. 眞省이라고 하면 하나의 부호가 된다. 연상과 주저가 사라진다. 「이회창을 사랑하는 모임」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창사랑」이,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보다는 「노사모」가,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시민모임」보다는 「조아세」가 연상과 懷疑를 줄인다.

「한민전」은 「한국민족민주전선」이란 정식 명칭보다도 金正日 정권의 공작에 유리하다. 그들은 「한민전」이란 애국단체가 서울에 있고 이들이 지하방송 「구국의 방송」을 운영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민족민주전선」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한국에 그런 단체가 있다고? 뭐 그들이 민족이고 민주라고?』라고 비웃는다.

「韓民戰」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한민전」이 더 간편하다. 한글 전용에 의해 의미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철부지들과 無知한 사람, 열등감과 증오감을 품은 대중을 속이고 포섭하고 동원하는 데 효과적이다.

殺人이라고 漢字로 쓰면 단순 교통사고를 낸 미군을 「殺人미군」이라고 호칭하는 데 주저하게 된다. 殺人이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는 어린아이들에게 한글로 「살인미군」이라고 하면 선동 구호가 된다. 그때부터 「살인미군」은 言語가 아니라 외침이 된다. 저주와 증오를 부르는 「얏」, 「씻」 같은 수준의 네 마디 부르짖음이다.

反美 촛불 시위가 한창일 때 많은 識者들이, 박사도, 교수도, 사장도 미군의 교통사고를 「살인미군」이란 말로 표현하는 데 놀란 적이 있다. 略語가 이들의 思考力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킨 때문이다. 「조아세」란 단체가 朝鮮日報를 비방하는 책자를 만들어 돌리고 있는데 책 제목이 「딱」이다. 딱은 「조선일보를 딱 끊는다는 뜻입니다」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국방부를 戰爭省(War Ministry)이라고 정직하게 표기한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선 전쟁을 하는 부서를 平和省이라 부르는데, 이는 음모를 품고 있다. 오세아니아가 벌이는 모든 전쟁은 평화를 위한 것이다. 이를 의심하거나 반대하는 자는 사상범으로 처단한다는 의미이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다. 金正日 정권을 「민주체제」로 보지 않는 자는 처단한다는 의미이다.

아우슈비츠를 방불케 하는 「양심수 강제수용소」를 金正日 정권은 「14호 관리소」란 부호로 부른다. 그 수용소 안에는 「독재 대상 구역」이 있다. 내용을 따져 보면 「민주 대상 구역」이다. 즉, 金正日 독재에 반대하거나 불평한 북한판 민주투사들이 붙들려 와 있다. 「독재 대상」이란 말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반대하는 소위 「계급의 원쑤들」에게는 독재를 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金正日 정권이 말하는 民主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한, 계급의 원수들에 대한 독재」이다. 金正日 정권은 「民主」란 말과 「독재」란 상반된 말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등 黨의 의도대로 써먹는다.

민중은 黨이 독재와 민주를 어떤 뜻으로 쓰는지를 알고 난 다음엔 무조건 그 해석에 따르면 되는 것이지 懷疑와 비판은 허용되지 않는다.


「1984」의 주인공인 眞理省 근무자 윈스턴은 일기장에 유명한 말을 남긴다. 「자유란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만 허용된다면 그밖의 모든 것도 이에 따르게 마련이다」

윈스턴은 줄리아란 여자와 연애한 죄로(오세아니아에선 아이를 낳기 위한, 쾌감 없는 섹스만 권장한다) 사상경찰에 체포되어 愛情省의 고문실로 끌려간다. 심문관 오브리언이 묻는다(김회진 번역, 범우사 출판본 인용).


『자네 기억하나? 일기장에 「둘에 둘을 더하면 넷이 된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자유다」고 쓴 것 말이야』

『예』

오브리언은 엄지손가락을 감춘 채 네 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했다.

『내가 몇 개의 손가락을 펴고 있지?』

『네 개입니다』

『그럼 만약 黨이 네 개가 아니라 다섯 개라고 한다면, 그럼 몇 개가 되지?』

『네 개입니다』

오브리언은 고문 기계를 돌린다. 그 후 다시 묻는다.

『윈스턴, 손가락이 몇 개지?』

『네 개입니다』

다시 고문기계를 돌린다.

『윈스턴, 손가락이 몇 개냔 말이야』

『네 개입니다. 네 개요!』

다시 고문 뒤 질문.

『윈스턴, 손가락이 몇 개지?』

『네 개요! 어쩌자는 겁니까. 네 개요, 네 개라니까요!』

『윈스턴, 손가락이 몇 개냔 말이야?』

『다섯, 다섯 개! 다섯 개요!』

『자네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아직도 네 개라고 생각하고 있어. 손가락이 몇 갠지 말해 봐!』

『네 개! 다섯 개! 마음대로 해요. 제발 그만해요』

『윈스턴, 자네는 배우는 게 느리군. 윈스턴 손가락이 몇 개지?』

『네 개요. 네 개 같아요. 다섯 개로 보고 싶어요. 다섯 개로 보려고 애쓰고 있어요』

『다섯 개로 보인다고 말만 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진정 그것을 다섯 개로 보고 싶은 거야?』

『정말, 다섯 개로 보고 싶습니다』

『다시』(고문기계 돌림)

『윈스턴, 내가 지금 손가락을 몇 개 펴고 있지?』

『몰라요, 모르겠어요. 차라리 나를 죽여요. 넷, 다섯, 여섯, 정말이지 난 모르겠어요』

『좀 나아졌는데』


사상 심문관 오브리언(영화에선 리처드 버튼 扮)은 윈스턴에게 말한다. 『종교재판은 회개를 받아 내지 못하고 이단자를 죽였기 때문에 실패한 거야. 그들은 순교자로 만들어졌고 많은 추종자들이 들고 일어났어. 나치와 소련은 강제로 자백을 받아 낸 뒤 죽였기 때문에 몇 년이 지나자 그들이 순교자가 되었어. 우리는 그런 식의 실수는 하지 않아. 우리는 자유의지에 의한 항복을 받아 낼 거야. 자네가 저항하는 한 우리는 처형하지 않아. 자네를 깨끗이 만들어 놓은 뒤 총살할 거야. 자네는 大兄을 사랑하게 될 것이야. 자네가 항복한다고 살아남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말아. 우리는 자네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멸시킬 것이네. 사랑, 우정, 삶의 기쁨, 웃음, 호기심, 용기, 성실성 등을 절대로 다시는 가질 수 없게 될 걸세. 자네는 텅 비게 될 거야. 우리는 자네를 텅 비게 만든 다음 우리 자신의 것으로 자네를 채워 줄 거야』

오브리언은 『자네는 복종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 大兄을 사랑해야 돼』라고 말한다. 그는 『진정한 권력은 고통과 모욕을 주어야 그 존재가 입증된다』고도 말했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를 썼을 때는 1948년이었다. 그는 스탈린의 소련을 염두에 두고 썼다. 그러나 1984년 소련에는 이미 강제수용소가 없어졌다. 당시 이 소설과 90% 이상 비슷한 체제는 金正日과 金日成이 공동으로 통치하던 북한뿐이었다. 金氏朝鮮의 왕은 신민들이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어버이 수령」이라고 부르짖으면서 매일 아침 일어나 벽에 걸어 놓은 大兄 金日成 초상화를 향해서 경배를 올리게 했다. 「1984」의 가장 유명한 상징물은 大兄이 노려보는 텔레스크린인데, 金日成 초상화처럼 집집마다, 방마다 걸려 있고 국민들은 이 화면의 視野 속에서 살아야 하며 이를 끌 수 없다.

인간성과 진실을 死守하려 했던 윈스턴은 결국 오브리언에게 굴복하고 大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거듭 태어난다. 그는 먼지 쌓인 탁자 위에 손가락으로 이렇게 쓴다.

「2+2=5」

그 직후 무장한 간수가 그의 뒤에 나타난다.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총알이 그의 머리를 관통했다. 윈스턴은 大兄의 미소를 바라다보면서 행복감에 넘쳐 죽어 간다.


이 소설을 최근에 읽은 필자는 「마지막 인간」 윈스턴이 黃長燁 선생 같고, 大兄과 사상 심문관 오브리언은 金正日과 金大中씨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자유 대한민국을 찾아가 金正日의 악행을 고발하기 위한 일념으로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死地에 보낸 黃長燁씨의 입을 막고 발을 묶어 진실을 봉쇄하려 한 金大中. 오브리언의 『진정한 권력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것으로 입증된다』는 말을 실천한 그는 大兄 김정일의 눈치를 본 것인가, 자신의 비밀을 지키려 한 것인가.

소설 「1984」에는 윈스턴이 사상경찰 고문실에 들어갔을 때 오브리언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신도 역시 붙잡혀 왔군요!』

『잡혀온 지 오래야』

오브리언은 조소를 띠며 말한다.

윈스턴은 그전에 오브리언을 민주투사라고 생각하고 찾아가 진실을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오브리언은 大兄의 똘마니였던 것이다. 윈스턴의 당황은, 黃長燁씨가 한국에 와서 느낀 배신감과 황당함 바로 그것일 것이다.


최근 盧武鉉 대통령의 국정원도 구청에 압력을 넣어 黃長燁씨에 대한 여권발급을 금지시켰다. 자유투사에게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거부하고 있는 권력은 무슨 말로 변명해도 그 본질이 大兄의 권력에 더 가깝다.

盧武鉉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朝鮮日報 등 일부 언론이 金大中 정부를 박해하였고 자신도 그런 피해를 받았으며 그 고통은 끝나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이 말은 과장이지만 진실을 담고 있다. 언론은 기관총도 없고 고문기계도 보유하지 않고 오직 노트북과 볼펜과 전화기만 갖고 있으므로 金大中씨를 물리적으로 박해할 수단은 없다. 金大中의 제왕적 권력을 박해했다면 주먹이 아니라 언론이 캐낸 진실이 한 것이다. 언론이 허위와 오보로 그를 박해했다면 국회의원의 우스개(「공업용 미싱으로 그의 입을 박는다」 운운)까지 검찰에 고소한 사람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진실이 권력을 박해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1984」에선 「2+2=4」란 진실을 死守하려던 윈스턴이 결국은 무너지지만 자유민주주의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한국에선 메이저 신문과 많은 기자들이 진실을 보도함으로써 권력자를 「박해」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희망이 있다. 진실보도를 박해라고 겁내는 권력자는 말 못할 약점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金大中씨의 경우 그 비밀은 「大兄 김정일과의 결탁」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2+2=4」란 진실을 수호하기 위하여 말로 다할 수 없는 희생을 치른 黃長燁씨는 탈북자동지회의 최근 회보(「탈북자들」 4월호)에서 「金正日 독재집단은 선전포고 없는 反인민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고 썼다. 그는 300만 명의 북한동포들이 굶어 죽은 것은 본질적으로 金正日 무장집단이 비무장한 북한동포들을 상대로 압제와 기만의 전쟁을 벌인 결과라고 지적한다. 평화시에 300만 명이란 餓死者가 생긴 것은 日帝 때도, 태평양 전쟁 때도, 6·25 전쟁 때도 없었던 일로 金正日 전쟁범죄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黃長燁 선생은 윈스턴처럼, 金正日과 그 추종세력이 말하는 「평화」란 낱말의 진짜의미는 「전쟁」임을 간파한 것이다.

한국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을 계기로 벌어진 反美·反戰 운동으로 위선자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부시의 對이라크 전쟁을 전쟁범죄라고 비판한 이들은 후세인의 독재와 화학무기 사용 및 두 번의 침략전쟁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이 위선적 가짜 평화운동세력은 反戰을 말하면서 전쟁광 金正日을 언급하지 않고 金正日에게 불리한 反核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쟁범죄자 金正日과 후세인을 옹호하는 「전쟁세력」이다. 그들은 大兄의 제자들처럼 「金正日의 전쟁은 평화」라고 생각한다. 이 「金正日 똘마니들」이 후세인의 독재와 살육을 편든 것은 이라크戰의 여파가 金正日에게 미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이라크 국민들은 미군을 해방자로 환영했다. 미군과 함께 후세인 동상을 때려 부수었다. 이제 한국의 가짜 평화운동세력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할 차례이다. 독재자 후세인을 비호한 데 대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선 大兄의 제자들(또는 똘마니)과 윈스턴의 동료들이 死鬪를 벌이고 있다. 그 싸움은 주로 말을 가지고 하지만 우리와 후손의 死活이 달린 결투이다. 이 싸움은 본질적으로 거짓과 正直, 문명과 야만, 자유와 예속의 대결이다. 이라크戰에서 미군이 압승한 것을 계기로 大兄 金正日은 한 걸음 더 벼랑으로 몰렸다. 大兄의 종말은 남한의 제자들을 파멸시키고 「2+2=4」라는 진실과 그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유를 한반도 전체로 확산시킬 것이다. 이 자유만 쟁취하면 평화·번영·문화·예술 등 그 이외의 것들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

정체가 탄로날 위기를 맞고 있는 大兄의 제자들은 최후의 반격을 시도할 것이다.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大兄의 제자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는 것을. 그들은 절대로 사과하지 않는다. 그들은 고백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짓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을 무릎 꿇릴 수 있는 것은 법치와 신념에서 우러나는 힘뿐이다. 大兄의 제자들을 설득하려 들기보다는 그들에게 속아 附和雷同(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을 잘 가르쳐 구제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덜 낭비가 될 것이다.

大兄 세력을 타도하는 무기는 진실이다. 진실이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無知는 힘」이란 大兄의 해석과 「독재는 진보, 反美는 자주, 反戰은 평화」라는 大兄 제자들의 헛소리에 대해 「2+2=4」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이다.

우리의 「2+2=4」는 「당신들의 反美는 사대, 反戰은 독재 비호, 진보는 퇴보, 자주는 예속, 평화는 전쟁, 당신들의 민족은 반역」이란 진실과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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