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이 말하는 中道는 기회주의이고 편법!

"김정일이 옳다, 대한민국이 옳다 따질 게 아니다"란 뜻. 우파의 요구는 단 하나 - '법대로 해달라'이다.
李明博 대통령은 22일 최근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 양상에 대해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문화일보가 보도하였다.

李 대통령은 이날 직접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나치게 좌·우, 진보·보수라고 하는 이념적 구분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 사회적 통합은 구호로만 되는 게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話頭 수준이라고 이해하면 되고 구체적 방안이 서면 말하겠다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이념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 이념적으로 이쪽이 옳다, 저쪽이 옳다 따질 게 아니고 핵심은 중도실용이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종잡을 수 없는 설명이다. 대충 李明博 대통령이 左도, 右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국사회에서 左는 그 핵심이 親김정일 세력으로서 대한민국의 헌법정신,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右는 대한민국 헌법질서를 존중하고 수호하려는 세력이다. 左는 대체로 不法과 폭력을 비호한다. 右는 法治를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左는 거짓선동이 전문이다. 右는 신념보다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이런 左右를 두고 李 대통령이 '양쪽 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善과 惡, 준법과 破法(파법), 我軍과 敵軍을 놓고 '양쪽 다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격이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은 左右 양쪽보다 더 우월한 어떤 존재임을 부각시키려는 위선이다.

이념이나 가치관에선 中道가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 중도가 있을 수 있나. 左右합작은 중도가 아니라 좌익들의 술책이고 함정이다. 정책에선 중도가 있을 수 있다.

'이념적으로 이쪽이 옳다, 저쪽이 옳다 따질 게 아니고 핵심은 중도실용이라는 이야기'란 말은 무식의 극치이다. 이념은 가치관이므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기준이다. 남북한이 左右로 갈려서 대결하는 현실에서 左는 나쁘고 右는 옳은 것이다. 우리 헌법은 좌익세력인 김정일 정권과 親김정일 세력은 惡이고 反헌법이고 反국가적임을 확실히 하고 있다. '이념적으로 이쪽이 옳다, 저쪽이 옳다 따질 게 아니고 운운'은, '김정일이 옳다, 대한민국이 옳다 따질 게 아니다'란 뜻인데, 이는 沒(몰)이념이고, 沒가치이며, 沒국가적, 기회주의적 자세이다.

李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은 이념적 원칙을 포기한 것이므로 편법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은 헌법을 모든 행동의 대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헌법을 뒷받침하는 것은 자유민주의 이념, 즉 우파이념이다. 이념을 포기한다는 말은 원칙을 포기하고 편법을 쓰겠다는 말이다. 헌법을 버리고 편법을 채용한 사람이 말하는 中道는 기회주의, 편의주의, 임시변통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李 대통령은 역사의식이 없는 것 같다. 역사는 국가와 민족이 걸어온 길에 대한 탐구이다. 역사의식이 있어야 역사의 産物인 국가의 존재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다. 역사의식의 부족은 국가의식의 부족으로 나타난다. 국가의 의지는 法에 담긴다. 즉, 역사의식이 없으면 국가의식도 약하고, 국가의식이 약하면 法治주의에 대한 집념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면 행동이 기회주의나 편의주의로 흐른다. 李 대통령은, 편법과 기회주의를 중도실용이라고 위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 발언에 의하여 새삼 확인된 셈이다.

右派의 소원은 '법대로 해달라'는 단 하나이다. 헌법을 위반한 6.15 선언을 폐기하라, 방송법을 위반한 MBC의 허가취소를 단행하라, 위헌 정당 민노당 해산절차를 밟아라, 대한민국에 침을 뱉는 교육을 시키는 전교조를 의법처리하라. 北核 개발 자금을 댄 혐의를 정부도 인정하였으니 김대중씨를 조사하라.

이런 주장을 극단적이고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은 헌법상의 취임선서와 대통령의 職務(직무)를 위반한 사람이므로 탄핵되어야 한다. 아래 한 독자가 이렇게 말하였다.

<돌격하는 줄 알고 따라 갔는데
막상 전투가 벌어지니
적진에 투항해 버리는 장수를 보는 심정이다.>

이념은 공동체의 利害관계에 대한 自覺(자각)이다(황장엽). 즉, 누가 공동체인 대한민국의 敵이고 동지인지를 구분하게 해주는 게 이념이다. 이념을 포기한 李 대통령은 彼我식별 기능이 마비된 듯하다. 좌익과 死活을 건 투쟁을 해야 하는 祖國의 현실에는 부적격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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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道詐欺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분명하거나 배타적 선택만이 가능한 조건


梁 東 安<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정치학>

1945년 전남 順天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 중앙대 대학원 정외과 석사과정
합동통신기자/ 경향신문 논설위원(비상임)
조선대 전임강사
경기대 조교수
(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대한민국건국사/ 한국의 정치현실/ 칼마르크스의 제이론에 대한 분석 외 다수

1~2년 전부터 이 나라의 정계와 지식인 사회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정치인들은 웬만하면 다 자기의 노선을 ‘중도’라고 말하거나 ‘중도’를 다른 용어의 앞이나 뒤에 붙인 노선, 즉 ‘중도개혁’, ‘중도보수’, ‘개(변)혁적 중도’, ‘보수적 중도’ 중의 어느 하나라고 말한다.

정당들도 민노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은 자기들의 노선이 ‘중도’노선 혹은 다른 용어와 ‘중도’를 붙여서 만든 복합어의 노선이라고 천명한다.

학계나 언론계에 종사하는 지식인들도 정치인들과 비슷하게 자기의 사상적 및 정치적 입장을 밝힘에 있어서 ‘중도’를 애용한다. 이와 같은 정계 및 지식인 사회의 경향을 반영해서, 이러 저러한 성격의 단체들이 만들어질 때마다 그 단체의 노선을 천명함에 있어서 ‘중도’가 애용된다.

정계나 지식인사회의 ‘중도’애용현상은 긍정적으로 이해할만한 측면이 없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사상적 대립이 심하여 그로 인한 국가적 피해가 커지고 있으므로 그런 대립을 완화해야 하겠다든지, 이 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대립하고 있는 기존의 노선이 부적절하므로 그 대결의 중간쯤에 있는 노선을 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든지 하는 애국적 善意에서 출발한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중도’, ‘중도ㅇㅇ’, ‘ㅇㅇ중도’를 자기의 노선으로 표방하는 사람들이나 단체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의 ‘중도’애용에 있어서 긍정적 측면을 인정해주기 어렵게 된다. 그들의 ‘중도’애용이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들은 현재 대립하고 있는 각 노선의 오류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자기들이 지향하는 노선의 구체적 내용을 분명하게 개진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중도’애용症을 보이는 개인이나 단체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은 채 ‘중도’, ‘중도ㅇㅇ’, ‘ㅇㅇ중도’ 만을 표방한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대립하고 있는 각 노선의 오류를 정확히 알고 있지도 못하며, 자기들이 지향·실천해나갈 노선의 구체적 내용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국가적 쟁점들에 대한 좌·우의 대립에는 중도 혹은 중간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가보안법을 존속시킬 것이냐 폐지할 것이냐, 주한미군을 유지시킬 것이냐 철수시킬 것이냐, 북한의 핵무기보유를 절대 반대할 것이냐 묵인할 것이냐, 한·미FTA를 체결하도록 할 것이냐 저지할 것이냐, 한·미동맹을 공고하게 유지할 것이냐 이완·해소할 것이냐,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희생시킬 우려가 있는 남북통일을 반대할 것이냐 지지할 것이냐 등등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우익과 좌익의 입장대립이다. 이들 각 쟁점과 관련된 입장에서 중도 혹은 중간이 끼어들 여지가 어디 있는가? 대립하고 있는 좌·우 두 진영의 입장에는 배타적 선택만 가능할 뿐이고 절충할 여지가 없다.

‘중도’애용자들은 중도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좌·우의 대립에 중도가 끼어들 여지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거나 의도적으로 가정하여 ‘중도’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중도’ 혹은 ‘중도ㅇㅇ’이나 ‘ㅇㅇ중도’를 표방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이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 대립하고 있는 각 노선의 오류가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하고, 자기들이 지향·실천해나갈 노선의 구체적 내용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좌·우대립의 본질이 배타적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점도 모른다는 사실은 그들이 애국적 선의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術策的 동기에서 ‘중도’를 사칭하는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

그들이 ‘중도’를 외치는 술책적 동기는 이 나라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 이 나라 국민은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 옳은 입장이 무엇인가를 정밀하게 따지려 하기보다는 양시양비론을 좋아한다. 또한 어느 편이 옳은가를 따져서 옳은 편에 가담하기보다는 중간에서 양쪽의 눈치를 보기를 좋아한다. 가시적 보상이 없는 일에 골치를 썩일 필요가 없다는 非公民意識과 이 나라의 거친 역사가 국민들에게 그러한 의식과 행태를 갖도록 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는 사상대립에 대한 깊은 지식도 없고 명백한 독자적 강령도 없으면서 ‘중도’ 혹은 ‘중도ㅇㅇ’이나 ‘ㅇㅇ중도’를 표방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은 이러한 이 나라의 문화에 편승하기 위해서거나 자신들의 사상적 정체를 위장하기 위해서 그런 입장을 취한 것이다. 또는 배타적인 선택을 요구하는 두 대립하는 입장들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어느 편에 가담할 용기가 없어서 그런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사회에서 깊은 성찰도 없이 ‘중도’를 표방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의 대부분은 詐欺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매도당할 만 하다.

하나의 옳지 않은 것과 다른 옳지 않은 것이 대립하고 있을 때 그 사이에서 옳은 中間을 취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입장이다. 그런 것을 철학적으로 中庸이라 하며, 이러한 중용적 중도는 항상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대립하고 있을 때 그 사이에서 중간을 취한다는 것은 매우 부도덕한 입장이다.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사이에서 중립을 취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옳지 않은 것을 편드는 것이 된다. 왜냐 하면 옳은 것을 지지하지 않는 모든 것은 옳지 않은 것을 지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중립 혹은 ‘중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말을 흔히 黑白論理라고 매도한다.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분명치 않다거나 타협과 절충이 가능한 조건에서 중립이나 중도를 비판하는 것은 흑백논리로 매도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분명하거나 배타적 선택만이 가능한 조건에서는 그러한 매도는 타당하지 않다.

오늘날 우리 정계와 지식인사회에서 걸핏하면 ‘중도’ 혹은 ‘중도ㅇㅇ’이나 ‘ㅇㅇ중도’를 표방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은 중도노선을 표방하기에 앞서 현재 이 나라의 당면문제들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좌익과 우익의 입장에 대해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가, 어느 쪽이 대한민국에 유익한 입장인가를 깊이 연구해보는 일부터 해보기 바란다. 그런 진지한 연구를 한 다음, 양쪽의 입장에 모두 오류를 발견하게 되면 그 오류를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독자적인 옳은 대안을 제시하면서 중도를 표방해주기 바란다. 그 때의 중도는 가치 있는 중도로 존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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