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진 씨의 석방과 대한민국의 對北정책

‘부당한 행동’을 하기만 하면, 언제나 예외 없이, ‘보상’을 받게 된다는 공식을 끝낼 때다.
유성진 씨의 석방과 대한민국의 대북정책

지난 3월30일 개성공단에서 아직도 풀려지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아 있는 정체불명의 ‘죄목’으로 북한 당국에 의하여 억류되었던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 씨가 억류된 지 136일 만인 8월13일 ‘추방’ 형식으로 풀려나서 남쪽 땅으로 돌아왔다. 유 씨가 자유를 되찾았다는 사실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그 동안 아마도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정신적ㆍ육체적 고통을 이겨냈을 유 씨 자신은 물론, 그의 무사 생환을 애타게 고대했던 부산에 사는 그의 노부모들에게 그 이상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고 그러한 뜻에서 유 씨의 석방과 송환을 위해 애썼던 당국과 민간 관계자들의 노고는 치하의 대상이 될 만 하다.

그러나, 유 씨가 자유를 되찾은 시점에서 우리는 보다 냉철하게 이 문제의 성격과 그의 석방과 귀국 이후에 전개될 남북관계의 상황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유 씨의 송환이 이루어진 뒤 “유 씨의 석방과 관련하여 정부가 북측에 대가를 지불하거나 사과 또는 유감 표명을 한 사실이 없다”는 주장을 서둘러 내놓았다. 우선, 이 같은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공신력이 있는 지는 좋게 말해도 미지수다. 과거에도 해외에서 테러단체들에 의한 우리 교민 납치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해당 교민의 석방이 이루어진 뒤에는 항상 이번과 같은 정부의 ‘주장’이 ‘한약의 감초’처럼 입에 붙어 있었지만 사후에 확인되기로는 거의 예외 없이 ‘대가’의 지불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번의 경우라고 해서, 더구나 상대가 김정일(金正日)의 북한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통례’의 ‘예외’가 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눈을 감고 아웅”하는 격이 아닐 수 없어 보인다.

문제는, 가령 이번 유 씨 석방의 ‘대가’로 예컨대 ‘납치범’들에게 지급하는 것과 같은 금전적, 또는 재정적 ‘보상’의 지불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보다 큰 문제는 유 씨 석방과 송환의 ‘대가’로 정부의 대북정책에 ‘동요’나 ‘표류’ 또는 ‘변화’가 생길 것이냐의 여부가 아닐 수 없다. 만약, 그같은 일이 생긴다면 그 의미는 참으로 부정적이 아닐 수 없다. 그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결국, 북한은 이같은 ‘부당한 행동’을 하기만 하면, 언제나 예외 없이, ‘처벌’을 포함한 불이익을 감수하기는커녕, 그와는 반대로,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을 뜻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은 항상 북한이 선택적으로 저지르는 ‘해적행위’의 ‘볼모’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유성진 씨의 석방과 송환이 이루어지기 무섭게 남한 사회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하고 있다. 유 씨의 석방과 송환을 가지고, 당치않게도, 북한의 ‘인도주의’를 운위하면서 “이에 상응하는 선물”의 차원에서 대북정책 수정의 기정사실화를 유도하는 논의가 일기 시작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뜻에서, 남한의 친북ㆍ좌파 세력과 민주당ㆍ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물론 심지어 정부ㆍ여당 안에서도 지금 방북 기간을 이틀 동안 연이어 연장하면서 김정일과의 면담 성사를 기다리고 있는 현정은(玄貞恩) 현대아산 회장이 평양으로부터 가지고 돌아올 ‘보따리’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고 있는 눈치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하게 지적해야 할 문제가 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유 씨의 석방과 송환은 이번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북한 당국이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는, 따라서 객관적 정당성이 의문시되는, 죄목”을 이유로 유성진 씨라는 ‘대한민국 국민’의 신병을 일방적으로 억류했을 뿐 아니라 그 후 이 같이 억류한 유 씨의 신병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국제적으로 확립되어 있는 절차는 물론 남북이 합의하여 발효시켰다는 관련 합의를 깡그리 무시ㆍ외면하고 마치 국제터러나 ‘해적’을 방불케 하는 일방적이고 무법자적인 태도를 고수했다는 데 있다. 이 같은 북한의 행보가 이번 유성진 씨 억류의 경우에 국한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작년의 금강산 총격 사건이나 최근의 어선 ‘연안호’ 예인 사건에 관해서도 북한은 똑같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유성진 씨의 석방과 송환이 실현된 시점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은 기본을 고수해야 한다. 정부는 귀환한 유 씨를 상대로 일정기간 억류 경위와 억류 생활 실태에 관한 진상조사에 착수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유 씨로부터 억류 경위와 억류 생활 실태를 소상하게 파악하여 그 전모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파악한 진상을 토대로 북한의 ‘무법자적’ 행위에 대하여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해야 하며 유 씨의 석방과 송환에 대한 ‘대가’와 ‘보상’의 차원이 아니라 북측과의 협상을 통하여 이번과 같은 사건의 재발을 근원적으로 방지할 뿐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발할 경우 이를 처리할 수 있는 합리적 절차를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북한이 진정 ‘인도주의’에 일말의 관심이라도 있다면 ‘연안호’ 선원과 선체야말로 지체 없이 즉각 송환해야 한다. 이 문제가 남북협상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 자체가 당치 않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 문제는 여전히 북측이 총격 사건의 진상 규명에 호응하여 밝혀지는 진상을 토대로 책임 소재를 가리고 처벌과 사과 및 보상과 함께 재발방지 조치가 강구되는 것이 일의 올바른 순서다. 개성공단 문제도 북한이 토지임대료 및 임금 문제에 관하여 기존 합의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제시한 부당한 요구를 먼저 철회하고 ‘경제논리’에 입각하여 남한의 입주기업들과 북한 당국 간에 합법적 절차에 의거한 협상을 통하여 원만하게 해결하는 데 북측이 동의하는 것이 또한 급선무다.

이같은 합리적인 처리 수순을 도외시하고 만의 하나라도 이명박(李明博) 정부가 이번 유성진 씨의 석방과 추방에 대한 ‘대가’의 차원에서 항구적인 안전장치의 마련 없이 금강산과 개성 관광의 재개를 허용하거나 개성공단 문제에 관하여 무리한 양보를 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과거 김대중(金大中)ㆍ노무현(盧武鉉) 정권 때의 대북정책보다도 더 강력한 국민적 저항을 각오해야 할 것임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의 기조는 여전히 미국 및 우방들과의 ‘찰떡 공조’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는 것과 함께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3대째의 권력세습의 실패로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대한 대비에 철저를 기하여 6.25 남침 60주년이 되는 내년 중에는 가능하다면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남북통일의 기적이 우리 세대 안에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전기를 마련하는 데 두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다짐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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