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비형 국가에서 공격적 국가로
우리는 왜 사는가?
法治확립-自由통일로 一流국가를 건설하자
공세적 國家의지: '북한노동당 정권의 해체에 의한 자유통일'
우리 헌법은 '북한노동당 정권의 평화적 해체'에 의한 자유통일을 國家의지와 國家목표로서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선언하고,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못박음으로써 북한지역도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는 國家의지를 확실히 하였다. 북한지역을 민주공화국으로 만들려면 통일을 해야 하는데,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추진하라고 명령하였다. 헌법 1, 3, 4조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正體性을 담은 헌법의 뇌수요 심장이다. 여기에 손을 대는 것은 國體변경을 가져오므로 개정 불가조항이라고 한다. 따라서 한국인으로 태어나면 '북한노동당 정권을 평화적으로 해체하여 북한지역까지 민주공화국으로 만드는 자유통일 사업을 위하여 헌신할 의무'를 지게 된다.
대한민국 헌법 1, 3, 4조는 한반도의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한반도의 이념-무장대결의 본질은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양식과 善과 惡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절대로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기 때문이다.
북한주민들의 각성
우리의 국가적 목표는 자유통일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의 최종적인 국가목표는 자유통일을 달성하여 북한주민들까지 자유민으로 만든 뒤 7000만 민족집단이 一流국가를 건설함으로써 구성원이 창조적으로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즉, '통일되고 번영하고 강력하고 자유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이런 국가목표에 同意하는 주변국가는 현재로는 미국밖에 없다. 韓美동맹은 우리의 생명줄이자, 자유통일과 一流국가 건설에 필수조건이다.
한반도의 再통일은 韓民族의 단결과 민족自決의 원칙에 입각하여 이뤄질 때 어떤 外勢도 이를 막을 수 없다. 결정적인 순간에서 북한주민들의 선택이 중요하다. 북한주민들이 남한의 同族과 합치겠다고 결단하도록 지금부터 그들의 마음을 잡아가야 한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人權문제 등을 꾸준히 제기하여 북한노동당 정권을 압박, 북한주민들에 대한 탄압을 약화시키는 것. 그리고 북한주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의 방도를 모색하고 확대함으로써 민족적 유대를 강화하는 한편, 돈, 자유, 人權, 진실을 들여보내 그들을 각성시키고 그들의 힘으로 북한노동당 정권을 몰아내도록 하는 것이다. 對北풍선보내기나 對北방송은 북한동포직접돕기의 좋은 예이고, 개성공단 사업이 상호주의적으로 진행될 때는 접촉면을 넓히는 데 좋다.
法治와 교양
북한의 자유화는 민주주의의 基地인 남한이 法治주의를 성숙시켜야 가능하다. 한국인들은 지난 61년간 建國-護國-산업화-민주화의 4단계 국민국가 건설과정을 지나왔다. 남은 과제는 민주주의를 성숙시켜 그 힘으로 자유통일과 一流국가 건설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성숙은 法治의 생활화를 뜻한다.
法治주의를 정착시키려면 정부, 정당, 언론, 대학 등 이 사회의 지도층부터가 憲法정신을 행동윤리로 신념화해야 한다. 反헌법적-反국가적 세력을 응징, 순화하여 약화시키고, 6.15 선언과 같은 反헌법적 정책을 폐기하여야 한다. 惡黨과 깽판세력을 응징할 수 없는 나라로 계속 간다면 통일도 一流도 안 된다. 惡을 응징하려면 국가엘리트의 自淨-自强 노력이 先決되어야 한다.
동시에 卑俗語(비속어) 및 암호로 전락하고 있는 韓國語를 교양어로 가꾸어 나아가야 한다. 언어가 思想을, 思想이 행동을 지배한다. 한국어가 깨끗하고 아름다워지지 않으면 나라도 정상적일 수 없다. 한국어의 2大 표기 수단인 漢字와 한글 중 漢字를 포기함으로써 반신불수가 된 한국어를 復元하는 길이 바로 선진화의 길이다. 한국은 인터넷 사용률은 세계 1등이지만 文盲率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漢字)문맹률 70%인 나라의 정신은 아무리 잘 살아도 3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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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을 사기 치려다가 사기를 당하고 있다!
-김정일을 속일 수 있다는 詐欺的 對北정책을 그만두어야.
*해설/김일성 김정일이라는 한반도의 巨惡을 도덕적으로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小惡을 다스릴 수 없다. 法治가 무너지고 국가기강이 해이해지며 국가목표가 흐리멍덩해진 가장 큰 이유는 정부와 많은 국민들이 김정일과 그 정권에 대한 엄정한 평가자세를 포기한 데서 비롯된다. 국회입법서기관 柳世桓씨는 노무현 정권 때 현직 대통령을 국가반역혐의로 고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대한민국憲法제3조'(조갑제닷컴)를 냈다가 징계를 당한 적이 있었다. 憲政질서를 수호하라고 연간 20조 원 이상의 월급을 받는 100만 공무원중 유일하게 정권의 反헌법적 행태에 반기를 들었던 이다. 그의 글을 소개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聯合-聯邦制 혼합식 통일이라는 6.15 內亂詐欺劇에 넘어가게 된 가장 핵심적이고 실질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유사회인 대한민국과 극단적인 공포사회인 김정일 집단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南北교류를 통해 점진적으로 김정일 독재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런 믿음을 갖게 된 것은 그간 대한민국 정부가 機能主義的인 對北정책을 통해 '남북교류를 통해 점진적으로 金哥 집단을 변화시킨다'는 관념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래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對北정책 기조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人的. 物的 교류를 확대해 나가다 보면, 김정일 체제는 대한민국에 의존적인 체제가 되지 않을 수 없고, 결국에는 金哥 집단이 개혁개방에 나서 金哥 독재체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기능주의적 對北정책이었다.
이는 결국 김정일을 속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당장은 김정일을 자극하지 않고 김정일이 원하는 달러와 물자를 주면서 남북교류를 확대해 나가면 결국 김정일에게는 毒이 되어 김정일을 몰아낼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김정일로 하여금 自滅에 이르게 하는 선택을 하게 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경제적 지원이 트로이의 목마가 되어 김정일 독재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기능주의적 對北정책은 김정일을 속일 수 있다는 일종의 사기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30년이 넘게 정부가 앞장 서서 이런 對北정책을 추구해왔기 때문에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태도와 믿음을 갖고 있다.
<나도 북한 인권문제가 심각한 것을 잘 알고 있고, 김정일이 정말 나쁜 놈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상황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여 김정일을 자극하는 것이 북한 人權문제를 개선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가? 그것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金哥 집단을 점진적으로 개혁개방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金哥 집단에 대한 경제협력을 통해 김정일 체제가 정상국가가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김가 집단에 대한 경제협력을 통해 김가 체제가 정상국가가 되도록 돕는 것은 단기적으로 평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북한지역의 경제수준을 높여 통일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人權문제 등으로 김정일을 자극하는 방식은 남북관계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불러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접근방식이다. 만약 현재 상태에서 북한지역의 김정일 체제가 붕괴한다면 대한민국은 감당할 수 없는 통일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므로 그것은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재앙이 될 것이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과 주장은 비단 김정일을 추종하는 세력들뿐만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 中道정부는 물론 보수세력이라고 알려진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 사이에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입장들이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이에 학습되어 공감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능주의적 對北정책의 결과, 지금 대한민국은 김정일에 대해 사기를 치려다 오히려 사기를 크게 당하고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김정일을 속이려다 보니 국민들에게조차 김정일을 대한민국의 동반자라고 속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되니 대한민국 사람들의 도덕적 정치적 판단기준은 혼란에 빠지게 되면서 김정일을 추종하는 반역자들이 대한민국 내에서 民主인사행세를 하게 되었고, 결국 그들이 대한민국의 정권을 장악하게 되자 대한민국은 속수무책으로 김정일에게 넘어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연합연방제 통일이라는 사기극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김정일을 속일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진행되어온 기능주의적 對北정책의 모순을 인식하고, 人權과 자유, 민주주의 진실에 바탕 한 原則主義的인 對北정책만이 북한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한다.
김정일 독재의 제1기반은 독재를 합리화하는 거짓말이다. 이 거짓에 대해서는 진실로 맞서야 한다. 우리가 민주주의, 人權, 자유의 기치에 바탕 하여 김정일의 독재체제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노예체제로 규정하고, 김정일이 물러날 것, 아니 대한민국에 투항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며, 모든 對北지원에 대해서는 人權개선과 민주화 조치의 시행을 전제로 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진실을 외쳐야 한다. 김정일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동반자가 아니다/柳世桓(국회입법서기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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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道노선을 法治와 安保에 적용하면 안 된다!
법치와 안보는 敵(적)과 惡(악)을 상대로 하는 분야이므로 중도는 결국 敵(적)과 惡(악)을 편들거나 묵인하는 것이 된다. 정책에선 中道(중도)가 가능하나 도덕성과 가치관이 걸린 문제에선 중도가 낄 수 없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이 중도실용 노선을 표방한 前後(전후)의 행적을 보면 몇 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다.
그는 국가 정통성 및 정체성과 관련된 부분에서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 우리와 交戰(교전)한 共産敵國의 호지명 묘소에 참배한 것, 형사피의자 신분에서 자살한 전 대통령을 국민장으로,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을 현직처럼 대우하여 國葬으로 특별 대우한 것, 그러면서도 近代化 대통령과 建國 대통령을 무시-냉대하고 있는 것, 6.25 남침 60주년 행사 위원장에 국가반역자 추모 사업위원장 출신을 임명한 것, 대한민국에 반대하여 김일성의 총애를 받은 작가를 이례적으로 외국 頂上회담 출장에 동반한 것 등이다. 이런 자세는, 李 대통령의 중도실용 노선이 反대한민국 세력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양보할 수 없는 국가의 핵심 가치까지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사게 한다.
中道는 헌법정신과 충돌한다. 헌법 1, 3, 4조는 ‘북한노동당 정권의 평화적 해체에 의한 자유통일’을 국가의지와 국가목표로 규정하였다. 헌법은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合法국가임을 선언, 북한정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李明博 정부는 명백하게 헌법을 위반한 6.15 선언의 폐기를 아직도 선언하지 않고 있다.
북한정권의 對南공작 노선에 동조하는 강령을 가지고 행동하는 민노당은 違憲정당임이 분명한데도 해산절차를 밟지 않는다. 이 민노당의 母胎이며 노선을 같이하고 특히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민노총에 공무원 12만 명이 가입하기로 결의한 사태를 막지 못한 것은 민노당에 대한 헌법적 판단을 구하지 않았던 것이 한 이유이다.
MBC의 총체적 방송법 위반, 전교조의 각종 법률위반, 과거사 위원회들의 反헌법적 활동에 대하여 법적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많은 공무원들은 대통령의 中道를 反헌법 세력에 대한 타협이나 양보 노선으로 이해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수호자여야 할 공무원 집단이 체제 수호를 꺼리고 주한미군 철수 같은 체제파괴적인 주장에 동조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中道 노선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보여준다.
안보는 國內 좌익반역세력으로부터 체제를 지키는 것이고, 國防은 북한군의 위협으로부터 조국을 방어하는 개념이다. 中道 노선이 체제의 敵에 대하여도 적용된다면 군대, 검찰, 경찰, 국정원은 主敵개념이 흐려진다. 북한군의 금강산 관광객 사살, 임진강 無斷방류에 의한 한국인 6명 사망, 개성공단 거주 한국인 수시 억류 사태에 대하여 제대로 문책이나 응징을 하지 않았다.
거의 1000만 명이 서명한 韓美연합사 해체 반대 운동을 무시하고 2012년 해체 계획을 밀고 나간다. 군 미필자를 핵심 要職에 집중적으로 起用한다. 무리한 군 복무기간 단축 계획을 수정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징병제 폐지나 減軍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재래식 군사력 감축을 별 생각 없이 북한에 제안하기도 하였다.
中道 노선이 對北관계에도 적용된다면 北核 폐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김정일이 거래에 의하여 核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死活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위기로 몰릴 때만 核을 폐기할 것이고 그렇게 하려면 한국은 一戰不辭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對北정책은 헌법과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여선 안 된다. 국군포로, 납북자, 탈북자, 강제수용소, 공개처형 등 북한人權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 평화협정 단계에선 6.25 전쟁범죄를 반드시 따져야 한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는 不法에 대한 응징력과 敵에 대한 보복력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 中道 노선은 해답을 주지 못한다. 中道가 脫이념을 의미한다면 理念전쟁이 한창인 한반도 정세에는 맞지 않는 노선이 된다. 法治와 安保 분야에 있어서도 沒가치적 개념인 中道노선을 추구하면 국민정신을 병들게 하여 체제수호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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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적 가치가 빠진 '그랜드 바게인'은 성공할 수 없다
李明博 대통령이 北核 문제 해결책으로 제안한 소위 ‘그랜드 바게인’이 꼬이고 있다. 우선 명칭이 좋지 않다. 무슨 일을 할 때 作名을 잘못하면 평생 고생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북한정권에 대하여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전폭적으로 하겠다는 게 그랜드 바게인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일괄타결(一括妥結)이란 말이 맞다. 왜 한국어가 있는데 생소한 영어를 썼는지 모르겠다.
1. ‘바게인(bargain)’이란 말은 적합하지 않다. 거래, 흥정한다는 뜻이 강하다. 北核 문제는 원칙적으로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북한정권은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하여 모든 核시설을 폐기하기로 약속하였다. 그 代價로 한국은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하고 수십 억 달러를 들여 공사를 진행하였다. 미국은 重油를 제공하였다. 김정일 정권은 그 사이 우라늄 농축 방식의 核개발을 불법적으로 진행하여 왔다. 이 사실이 폭로됨으로써 2002년 이후 제2차 核위기가 조성되었고 6者 회담이 진행되었다. 북한은 이 회담에서 2005년에 核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 1년 뒤 그들은 이 약속을 깨고 核실험을 하였다. 6자 회담은 2007년 2월에 또 다시 북한으로부터 핵 폐기 약속을 받아내는 합의를 하였으나 북한정권은 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올해 두 번째 核실험을 하였다. 북한은 받을 것은 다 받아 챙기고, 줄 것은 주지 않는다.
이런 북한을 상대로 장사꾼식의 거래와 흥정이 통할 것인가? 不法을 일삼는 집단에 대하여 흥정이란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법정신과 도덕성을 포기하는 것이며 심리적으로 이미 굽히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자세론 절대로 흥정에서 이길 수 없다. 敵과 惡에 대하여 법적, 도덕적 기준을 포기한 협상은 절대로 國益을 도모할 수 없다.
2. ‘그랜드 바게인’은 이행이 불가능한 제안이다. 일괄타결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김정일이 핵을 포기한 뒤에 지원을 해주는 게 맞다. 그런데 김정일이 먼저 무장해제를 하여 자신이 가진 카드를 버릴 리가 없다. 핵을 포기하기로 약속한 시점에서 지원을 해주면 지원만 받고 핵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實證되었다. 행동 對 행동 원칙으로 핵 폐기 과정과 단계적 지원을 맞바꾸는 방식도 시도해보았는데 북한이 시간을 끌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 실패하였다. 이런 단계적 방식은 일괄타결도 그랜드 바게인도 아니다.
동시 해결이란 방식이 이론상으론 존재한다. 내일 김정일이 핵시설을 모두 폐기하면 모레부터 지원이 들어간다는 식이다. 정말 核폐기를 했는지의 與否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북한이 이 확인 작업에 협조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김정일 정권이 정직하게 핵시설과 군사시설을 전부 공개할 리가 없다. 따라서 그랜드 바게인, 즉 동시적 일괄타결은 불가능하다. 북한정권에 대한 체제보장도 불가능하다. 東歐공산체제를 해체시킨 것과 같은 민중봉기가 일어날 때 國軍을 보내 김정일을 위하여 시위를 진압해주겠다는 말인가?
3. ‘그랜드 바게인’에 매달리면 김정일에게 이용당한다. 북한측에 흥정을 제안하였으니 지금부터는 김정일에게 강하게 나가기가 힘들다. 李明博 대통령은 김정일이 억지를 부려도 덮어야 협상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벌써 그런 경향이 보인다. 북한군의 임진강 무단방류 사태에 대한 미온적 대처가 한 예이다. 그랜드 바게인에 집착하면 아무 얻는 것 없이 금강산 관광과 對北지원도 재개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유엔 안보리의 對北제재 결의를 우리가 휴지로 만들게 된다.
4. 시간은 李明博 대통령 편이 아니다. 임기 없는 독재자를 상대로 임기 있는 한국 대통령이 초조한 마음으로 협상에 나서면 百戰百敗이다. 임기중에 성과를 거두려고 욕심을 내면 양보를 해야 한다. 私益을 위하여 國益을 희생시켜야 한다.
5. 이런 식의 6자 회담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미국과 한국이 군사적 대응책을 스스로 배제하는 한, 중국이 북한정권을 압박하지 않는 한 김정일이 핵무기를 포기할 리가 없다.
6.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첫째, 국제사회가 북한정권의 핵무장을 폐기시키지 못한다면 한국은 합법적으로 NPT를 탈퇴하고 자위적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다는 카드를 내밀어야 한다.
둘째, 韓美日이 공조하여 중국에 압력을 넣어야 한다.
셋째, 韓美日 세 나라의 민간부문을 중심으로 하여 김정일을 전쟁범죄, 대량학살, 反인류범죄 혐의로 국제법정에 세우는 운동을 전개한다.
넷째, 한국군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참수작전 개념의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작전계획을 도입하여야 한다. 정부는 북한의 민주화를 촉진시킬 對北공작을 재개하여야 한다.
다섯째, 국제적인 對北금융제재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
여섯째, 절대로 對北퍼주기를 재개하여선 안 된다.
일곱째, 헌법에 입각한 ‘북한노동당 정권의 평화적 해체에 의한 한반도 자유통일’을 對北정책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對北정책의 목표는 현상관리가 아니라 자유통일이어야 한다. 對北정책은 자유통일정책이어야 한다.
여덟째, 李明博 대통령은 일본과 중국이 가까워질 때 한국이 설 자리가 좁혀진다는 점을 直視하고 이를 견제할 韓美동맹 강화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런 점에서 韓美연합사 해체를 최우선적으로 막아야 한다.
아홉째, 국군은 휴전선상의 對北선전 방송을 再開하여 북한주민들에게 진실을 전해야 한다.
열 번째, 對北정책을 진실, 헌법, 正義, 자유의 원칙 위에 다시 세워야 한다.
결론적으로 ‘그랜드 바게인’은 성공할 수 없다. 김정일을 속이려 하다가는 스스로를 속이게 된다. 北核문제는 김정일 문제이다. 김정일이 대량살상무기 그 자체이다. 김정일을 無力化시키지 않는 한 核폐기는 없다. 북한사람들을 각성시켜 그들로 하여금 김정일을 권좌에서 몰아내도록 하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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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적 작전개념: 참수作戰과 선제공격
-우리는 기습을 허용할 수 없다. 기습 당하였을 때 물러날 공간이 없다.
權泰榮 박사는 육군사관 학교 제18기 출신으로서 KAIST 산업공학 박사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군 안팎에서 존경 받는 戰略연구가이다.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국방부 군사혁신기획단장 등 現業에 종사하였고, ‘21세기/통일대비 국방발전방향’ 등 많은 著書가 있다. 그가 노훈 박사(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와 함께 쓴 ‘21세기 군사혁신과 미래전’(法文社)은 우리나라가 급변하는 주변정세에 맞추어 ‘先制공격’을 포함한 적극적, 예방적, 억제적 방위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權 박사는 이 책을 포함한 자신의 著書에서 북한군에게 기습을 절대로 허용하여선 안 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였다.
1. 북한군은 핵무기, 화학생물 무기, 그리고 長射砲 등 장거리 기습 및 타격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2. 수도권에 인구의 반, 國富의 70% 이상이 집중되어 있는데다가 휴전선과 인접한 포천, 의정부, 고양 지역이 급격하게 개발되었다. 따라서 기습을 당하였을 때 물러날 공간이 없다. 물러났다가 반격작전으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수도권의 황폐로 實益이 없다.
3. 따라서 과거와 같이 敵에게 영토를 양보한 다음 반격해서 失地를 회복하는 방위개념으로부터 벗어나 영토 밖에서 단기간 내 결정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전쟁을 사전에 예방, 억제하는 방위개념의 채택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억제 및 예방차원의 방위(Preventive Defense)를 하려면 과거의 ‘守勢-소극’방위에서 ‘攻勢-적극방위’로 전환하고, ‘선제 기습적 공격/타격(Preemptive Attack/Strike)’도 필요시 허용한다는 ‘위엄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4. 방위의 목표와 수준을 ‘적극, 예방, 억제 방위’로 格上시키려면 군을 첨단 情報技術軍으로 탈바꿈시켜야 하며,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先制공격 개념은 이스라엘이 實戰에서 활용한 바 있다. 1967년 6월의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공군기는 아침 출근시간에 맞추어 이집트 공군 비행장을 기습, 수백 대의 전투기를 활주로와 격납고에서 파괴하였다. 이로써 전쟁의 향방을 전투 30분 만에 결정지었다. 당시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이스라엘 공격을 천명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의 先制공격은 自衛的 차원의 결단이란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주었다.
1973년 10월의 제4차 중동전쟁 때는 이스라엘이 오히려 이집트의 기습을 받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습을 허용하였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중대한 誤判을 하였다. 이집트 군이 開戰 전에 여러 차례 벌인 훈련은 전쟁 企圖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여기에 속아 넘어갔다. 이집트 군대가 수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알고도 “또 훈련이군”이라고 안심하였다. 전쟁 몇 달 전에 이스라엘은 이집트군의 훈련을 開戰준비라고 판단, 예비군에 비상을 걸어 약4000만 달러의 예산을 날린 적이 있었다.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 “이건 전쟁이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開戰 여덟 시간 전이었다. 골다 메이어 수상, 모세 다얀 국방장관, 그리고 참모총장이 모여 先制공격 與否를 놓고 토론하였다. 결론은 “얻어맞자”는 것이었다. 만약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하면 침략자로 몰려 미국으로부터 軍援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 대신 예비군 10만 명을 우선 소집하기로 하였다. 미국 닉슨 행정부에 긴급 연락을 취하여 소련과 아랍 국가들을 통하여 이집트가 기습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닉슨의 안보 보좌관 키신저도 메이어 수상에게 “먼저 공격을 하지 말라”고 주문하였다. 만약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하였더라면 미국은 여론의 악화로 이스라엘을 도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집트와 시리아로부터 기습을 당한 이스라엘 군대는 처음 1주일간 苦戰하였다. 한때 다얀 국방장관은 수상에게 핵폭탄을 사용할 준비를 하자고 건의하였다. 수십 개의 히로시마급 원자폭탄을 점검하였다.
곧, 이스라엘 군대는 미국이 急送해준 수만 톤의 신무기의 도움도 받고 해서 반격작전에 성공하였다. 보름간 계속된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은 약3000명의 전사자를 냈다. 부상자까지 합하면 1만 명이 戰死傷한 것이다. 그때 인구가 500만 명도 되지 않던 이스라엘로선 큰 손실이었다.
막강한 이스라엘도 기습을 당하면 이렇게 어려운 전투를 해야 하는 것이다. 權 박사는 “한국과 이스라엘은 안보 환경이 비슷하다. 특히 縱深이 얕아 기습을 받은 뒤 회복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先制공격 개념을 배제하여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군은 기습당하는 것을 前提로 한 防禦전략을 갖고 있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한국 내에 막강한 從北세력을 구축해놓은 현시점에서 기습을 허용하는 것은 自滅의 길이다. 초장에 북한군의 기습이 성공하여 서울이 대혼란에 빠지거나 북한군에 포위되면 從北세력은 폭동을 일으키고 연약한 정부라면 현위치 休戰까지도 감수할지 모른다. 수세적 방어개념을 가진 군대는 士氣에도 문제가 생긴다. 반면 북한군은 ‘武力통일’의 꿈을 버리지 않고 항상 공격적이다. 한국군은 자유통일을 뒷받침하는 武力이라는 自覺과 先制공격도 감행할 수 있다는 각오를 가져야 북한군을 누를 수 있는 '위엄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한국군은 先制공격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敵의 지휘부를 집중 타격하는 ‘참수작전’ 을 위한 신무기 개발에 돈을 쓰고, 첨단 NCW(Network-Centric Warfare) 戰力도 갖추어야 한다는 게 權 박사의 제안이다.
NCW는, 敵陣에 대한 실시간 정보와 敵의 지휘부와 신경계통을 同時병렬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신무기 체제의 결합을 의미한다. 敵의 戰略重心거점(Center of Gravity)을 수백, 수천 개 選定하여 놓았다가 開戰 즉시 미사일, 전투기, 유도폭탄 등으로 동시다발적 공격을 감행하면 순간적으로 敵의 지휘체제가 마비된다. 지휘체제가 마비된 군대는, 머리가 잘려나간 뒤의 몸통으로 변한다.
權 박사는 이런 공세적 방어체제를 구축하면서 김정일 정권에 대하여도 적당히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재자는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기는 자들이므로 전쟁을 企圖하다간 敗家亡身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전쟁을 포기한다는 논리에서다.
이런 공세적, 예방적 防禦戰略은 國家지도부의 意志 없이는 군인의 손만으로써 만들 수 없다. 文民優位의 군 통제가 시행되는 한국에선 민간인 대통령의 國防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自主국방 의지가 신념화되어 있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安保는 정치인들의 몫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의 몫이다. 安保는 보통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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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처럼 보복력을 가져야
국가公認암살단을 만들어 뮌 헨올림픽 테러 관련자들을 20년간 추적, 모조리 처단.
1972년 西獨의 뮌헨에서 열린 여름 올림픽의 선수촌으로 침입한 팔레스타인 '검은 9월단' 테러단이 이스라엘 선수 및 코치들을 인질로 잡아 경찰과 대치한 끝에 11명을 죽였다. 서독 경찰관 1명도 사망하였다. 테러단 5명이 총격전으로 죽었고 세 명이 잡혔다. '검은 9월단'은 그 뒤 서독의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납치하여 西獨 정부를 위협한 끝에 잡혀 있던 세 명의 동료를 구해냈다.
직후, 골다 메이어(여성) 이스라엘 총리는 이 테러를 기획하고 가담한 범인들을 암살하는 조직을 만들게 하였다. 정보기관 모사드와 이스라엘 군대가 합동으로 특수조직을 만들었다. 이 팀의 첫 작전은 1973년 4월 레바논의 베이루트로 침투하여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의 정보책임자 모하메드 유수프 알 나자르 등 세 명을 죽이는 일이었다. 이 特攻작전의 지휘관은 나중에 이스라엘 군의 총참모장, 그리고 수상이 된 에후드 바락(현재 국방장관)이었다. 이 국가公認 암살단은 주로 유럽과 중동을 돌아다니면서 팔레스타인 테러단을 추적하여 죽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실수를 하였다. 1973년 6월 노르웨이 릴리함메르에서 한 모로코인을 뮌헨사건 관련자 알리 하산 살라메로 誤認하여 암살하였다가 요원 다섯 명이 붙들렸다. 이스라엘 정부는 외교적 노력을 집중, 옥살이하던 요원(여성 2명, 남성 3명)을 2년 뒤 전원 송환받았다. 이스라엘 암살팀은 살라메에 대한 추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드디어 1979년 1월22일 그를 베이루트에서 발견, 원격조종 폭탄으로 죽였다.
이 보복작전은 '신의 분노'라는 암호명을 가졌다. 1992년까지 20년 동안 계속되었다. 얼마나 많은 테러관련자들을 죽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십 명으로 추정된다. 뮌헨 사건 관련자 중 생존자는 두 명이라고 한다. 이 보복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가 수년 전 개봉되었던 '뮌헨'이란 작품이다. 스필버그가 제작하였다.
한국이 이스라엘 같이 보복하였더라면 1.21 청와대 습격사건 관련자, 육영수 여사 암살사건 관련자, 아웅산 폭파사건 관련자, KAL기 폭파사건 관련자들은 다 죽었을 것이다. 거기에 김일성, 김정일이 포함되었을지도 모른다.
국가가 自國民에게 가해진 외부세력의 危害에 대하여 보복할 생각조차 갖지 않는다면 正義불감증에 걸렸다고 봐야 한다. 그 첫 징조가 法治파괴 현상에 대한 정부의 무감각이다. 두번째 징조는 主敵에 대한 적개심의 무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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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탄야후 이스라엘 수상과 李明博 대한민국 대통령
-6.25 전쟁의 원인을 생략한 대통령과 이란 대통령의 억지를 들어주었다고 화를 낸 수상.
벤자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수상은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면서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이란의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 계획 관련 문서를 들고 나와 연설하였다. 이런 요지의 말도 하였다.
'어제 이 연단에서 유태인 학살을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에게 항의하는 의미로서 이 자리에 오지 않았던 사람과 연설도중 퇴장한 분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여러분들들은 도덕적 분별력을 지키기 위하여 행동하였고 여러분들의 조국을 명예롭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태인 학살을 부정하는 연설을 한 자에게 귀를 빌려주신 분들에게 우리 국민들, 유태인들, 그리고 모든 교양 있는 분들을 대신하여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부끄럼을 모릅니까, 예의를 모릅니까?'
그 하루 전 李明博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면서 6.25 南侵전쟁 때 유엔군이 우리를 구해준 데 대하여 감사하였으나 북한군이 南侵하여 일어난 전쟁이란 사실을 고의로 누락시켰다. 善만 이야기하고 惡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설명하면 결국 善이 죽는다. 무기력한, 감동이 없는 연설이다. 네탄야후 같았으면 무엇이라고 연설하였을까? '여러분들은 부끄럼을 모릅니까, 예의를 모릅니까?'라는 직격탄은 북한정권 눈치를 보는 李明博 대통령을 향하여 한 말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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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임하에 명령했다. 엄숙한 主權 발동이었다'
-반공포로 석방 직후 李承晩-헌병사령관 談話文
1953년 6월18일 李承晩 대통령은 한국군에 명령하여 유엔군이 관리하던 포로수용소의 문을 강제로 열고, 북한으로 송환되는 것을 반대하는 북한군 反共포로들을 석방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국군은 유엔군 초병들을 감금, 또는 무장해제시키고 反共포로 약3만 명을 풀어주었다.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은 판문점에서 휴전을 위한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가장 큰 쟁점은 反共포로 처리 문제였다. 미국측은 자유의사 송환, 공산측은 무조건 송환을 요구하면서 2년간 휴전협상을 끌었다. 그 사이 戰線에선 치열한 高地戰으로 엄청난 희생이 계속되었다.
李承晩이 반공포로를 석방한 것은, 미국이 포로 문제에서 양보하고 적당히 공산군측과 합의를 본 뒤 서둘러 한국을 떠나려 한다면 한국군이 단독으로 北進하여 휴전협상을 깨겠다는 각오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李承晩의 이 도발적 조치에 경악한 것은 미국의 아이젠하워 행정부였다. 이들은 한때 李 대통령을 감금하는 쿠데타 계획까지 구상하지만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그를 제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韓美상호방위협정-한국군 20개 사단 현대화-경제원조 등의 약속을 하고 李 대통령을 달랜다. 李 대통령의 세계를 향한 도박은 韓美동맹이란 한국의 생명줄로 結實되었다. 한국군이 휴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것은 실수가 아니라 침략자와의 싸움을 무승부로 끝낼 수 없다는 이승만의 고매한 理想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1953년 6월20일자 조선일보는 반공포로 석방을 보도하면서 이런 제목을 달았다.
<反共韓人捕虜釋放을 完了>
<내 責任下에 命令했다-李대통령, 重大談話를 發表>
한국군 헌병사령관도 '엄숙한 主權발동. 국민은 (반공포로들을) 愛護善導하라'는 발표를 하였다.
'내 책임하에 명령하였다'는 李 대통령의 선언이나 '主權발동'이란 헌병사령관의 소신은 미국의 도움으로 延命하던 국가 지휘부가 지녔던 생존에의 무서운 의지와 自主정신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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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南侵 否定罪라도 만들어야
-유럽 13개국은 유태인 학살 否定罪를 두고 있다.
유럽의 13개 국가들-독일, 프랑스, 체코, 오스트리아, 폴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은 '유태인 학살 否定罪'를 형법에 두고 있다.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을 부인하거나, 나치를 옹호하거나, 학살의 규모를 축소하는 공개발언, 집필 등을 한 자에 대하여는 最長 징역 5년까지 살리도록 규정했다. 피해당사자인 이스라엘은 유태인 학살과 反인류적 만행을 부정하는 것뿐 아니라 인정하더라도 축소 표현을 하는 자도 처벌하도록 하였다. 나치에 의하여 희생된 유태인이 600만 명이 아니라 60만 명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쓰면 감옥에 간다는 이야기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표현의 자유에 위배된다고 주장하였으나 유엔 인권위원회, 유럽 인권위원회는 이런 주장을 배척하였다.
한국에서도 刑法에 '북한정권에 의한 학살 및 反인류적 행위를 부정하는 罪'를 신설할 만하다. 즉 김일성의 6.25 남침, 북한정권의 강제수용소 실태, 공개처형, 납치,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등을 부정하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자들은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를 저지하려는 이런 법률이 언론과 양심의 자유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은 人權 선진국 유럽의 경우가 증명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특히 국정원 검찰 경찰은, 공동체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국가보안법의 정당성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싸우는 행동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끼는 인간은 노예근성의 소유자이다. 좌익들이 그런 생각을 유도한다. 공동체의 자유를 파괴하는 첫 걸음은 6.25 남침과 같은 국가적 진실을 부정하여 국민의 기억을 말살하고 종국에 가서는 彼我식별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북한정권에 의한 학살 및 反인류적 행위 否定罪'를 신설하면 전교조 교사들은 反대한민국적 교육을 시킬 수 없다. 시키면 감옥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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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新羅의 決鬪정신을 되살리자
富者나라 宋은 왜 망하였는가?
경제와 문화가 체제를 지키지 못한다. 국민정신과 국가기강이 망가지면 잘 사는 것이 오히려 재앙이다.
13세기 칭기즈칸의 몽골 기마軍團이 文明세계를 정복하였을 때 몽골인구는 약 100만 명이었다고 한다. 이들의 지배를 받은 중국, 이란 등 文明圈의 인구는 1억 명을 넘었다. 一當百(일당백)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중국 역사상 경제, 문화적으로 가장 부유하였던 왕조는 서기 10~13세기의 宋이다. 경제적 풍요로 인구가 늘어 1억을 넘었다. 이 宋은 거란(遼)과 여진(金)의 침략을 받아 결국 망하고 양자강 남쪽으로 피난 가서 南宋을 세웠다. 거란과 여진족을 합쳐서 100만 명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宋은 130만 명의 군대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宋은 지폐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도입하고, 석탄을 사용하여 좋은 도자기를 만들었으며, 문학과 예술이 꽃피고, 생활 수준도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중국의 近世(근세)를 宋부터 잡기도 한다. 그런 宋이 인구수에서 100분의 1밖에 안 되는 거란과 금에 뜯어먹히다가 쿠빌라이의 元에 망해버렸다.
경제, 문화, 예술은 체제를 지켜내지 못하는 것이다. 宋은 尙武(상무)정신과 自主국방 의지가 없었다. 지도층은 敵前(적전)분열을 되풀이하였다. 임금들은 우유부단하였다. 王安石의 개혁은 기득권층의 반발로 실패하였다.
살찐 돼지 宋은 '야윈 늑대'들에게 뜯어먹혀버렸다. 富者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먹힌 많은 예중의 하나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이 宋을 닮아간다. 특히 敵에게 돈을 주고 평화를 사려는 점에서 그렇다. 宋은 遼, 金, 西夏가 침략하면 막대한 金品을 매년 바치기로 하고 휴전하였다. 김대중 정부가 시작한 對北퍼주기와 비슷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약 100억 달러어치의 金品은 평화를 산 것처럼 보였지만 저들에게 체제유지비와 核무기를 선물하였다.
宋은 信義 없는 외교로 망하였다. 宋은 金과 동맹, 遼를 멸한 다음엔 遼의 잔존세력과 합쳐 金을 치려는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金의 응징을 받아 망하였다(이때까지가 北宋). 오늘날 한국은 6·25 남침 전쟁 때 延인원으로 150만 명의 兵力을 파견하였던 미국을 위하여 아프가니스탄에 300명을 보낼까 말까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한국은 경제, 문화, 예술 부문에서는 宋처럼 발전하였으나 오래 계속되는 평화와 번영에 취하여 自主정신과 尙武정신이 망가지고 있다. 북한政權은 遼 및 金과 같은 성격의 야윈 늑대이다. 대한민국이 宋과 같은 '살찐 돼지'가 되면 앞날이 어둡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2만 달러, 북한은 그 100분의 1인 약 200달러이다. 宋이 인구수에서 100분의 1밖에 안되는 북방민족에게 당하였듯이 한국이 경제력에서 100분의 1도 안되는 북한에 당한다면 그것은 경제력과 문화력이 부족해서가 아닐 것이다. 애국심과 正義感과 鬪志(투지)가 부족해서일 것이다. 국민정신과 국가기강이 망가지면 잘 사는 것이 오히려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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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운명을 건 新羅의 對唐決戰
우리 민족사의 가장 위대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신라 지배층의 정신력은 어디로 갔는가?
'羅唐戰爭史 硏究'(아세아문화사)란 책을 읽었다. '弱者가 선택한 전쟁'이란 부제가 인상적이었다. 弱者는 전쟁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지 스스로 전쟁을 결심하기 어렵다. 그런데 新羅 지도부(文武王-金庾信 등)는 당시 세계최강대국이던 唐을 기습하는 전쟁을 선택하였다. 著者인 徐榮敎(충남대 인문과학 연구소 연구원)씨는 <국제정세의 판을 읽고 唐과 전쟁을 결정했던 신라지배층의 결단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唐과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그 唐이 신라마저 屬國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온갖 모욕을 참아냈던 것은 新羅지배층이었다. 著者는 <자신을 숨기면서 기상의 변화를 기다리는 능력은 신라인들의 本性이었다>고 평하였다.
新羅에 의한 三國통일 과정은 唐의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 평정 과정이었다. 唐은 신라와 손을 잡고 백제, 고구려를 멸한 후 그 新羅마저 屬國化하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新羅는 서기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직후부터 唐의 이 戰略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당은 663년에 신라영토에 계림주대도독부를 설치하고 문무왕을 도독으로 임명하였다. 신라를 당의 한 州로 본 것이다. 백제는 멸망하였으나 그 땅의 지배권을 唐이 행사하고 있었다. 664년 唐은 4년 전에 끌고 갔던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데리고 와서 舊백제땅을 관할하는 웅진도독으로 임명하였다. 그 이듬해 唐은 문무왕에게 부여융과 같은 자격으로 형제의 盟約을 하도록 강요하였다. 문무왕은 이를 받아들였다.
서기 660년 사비성이 함락되었을 때 항복한 부여융은 뒤에 문무왕이 되는 金法敏 앞에 끌려나왔다. 三國史記 태종무열왕條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法敏은 융을 말 앞에 꿇리고 그 낯에 침을 뱉으며 꾸짖기를, '지난 날 너의 아비가 내 누이를 원통하게 죽이고 옥중에 묻어 나로 하여금 20년간 마음 아프고 머리를 앓게 하였으니, 오늘의 네 목숨은 내 손에 있다'하니, 융은 땅에 엎드려 아무 말이 없었다>
당의 강요에 의하여 문무왕은 자신이 침을 뱉었던 그 부여융과 형제가 되어 사이 좋게 지내기로 약속하였던 것이다. 당은 신라와 舊백제를 같은 점령지로 간주한 셈이다. '羅唐戰爭史 硏究'에서 서영교씨는 <하지만 신라는 당에 책을 잡히지 않고 여기에 철저히 순응하였으며, 唐의 어떠한 모욕에도 인내하고 시간을 기다렸다>고 썼다.
<하지만 바람의 방향을 응시하던 신라인들은 폭풍이 西域 상공에 떠 있고, 토번이 그 폭풍의 눈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당에 순종적이었던 신라는 670년 3월 단숨에 태도를 돌변하였다. 당의 힘이 한반도에 미치지 못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비로소 사정 없이 덤벼들었던 것이다. 가장 힘 있고 노련한 세계제국 唐조차도 기만할 수 있는 신라의 인내의 탁월함은 무서울 정도이다>
670년 지금의 티벳에서 일어난 토번은 唐이 장악하고 있던 실크로드를 급습하였다. 唐은 大軍을 그쪽으로 보내야 했다. 신라는 이 틈을 타서 전쟁을 일으켰다.
저자 徐榮敎씨는 세계제국 唐과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아 독립국가를 유지하였던 신라의 능력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랜 시련을 통하여 민족의 유전자로 양성된 결과라고 분석하였다.
신라는 초기엔 고구려의 보호를 받았다. 그 후 신라는 백제와 손을 잡고 고구려의 南進 정책에 對抗하였다. 118년의 羅濟동맹 후 신라 진흥왕은 백제 聖王과 연합, 고구려를 쳐서 漢江 상류지역을 차지하였다. 그 2년 뒤 신라는 태도를 표변하여 동맹국이던 백제가 점령하였던 한강 下流지역까지 먹어버렸다. 聖王은 화가 나서 신라를 치려 하였으나 역습을 받아 戰死하였다.
<결정적 순간에는 동맹국을 배반하고 등에 칼로 변신하는 것이 신라였다. 경주분지의 조그만 城邑국가였던 신라가 이윽고 7세기 중반에 唐을 끌어들여 麗濟 兩國을 멸망시키고 한반도의 주인이 되었다. 이러한 괄목상대한 발전은 신라가 결정적인 순간에 얼마나 자기 변신을 대담하고 완전하게 해왔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對唐決戰으로 알려진 羅唐전쟁은 韓民族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이다.
1. 이 전쟁은 신라지배층이 선택한 전쟁이다. 임진왜란이나 한국전쟁처럼 강요된 전쟁이 아니었다. 전쟁을 결심하고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民族은 생존할 자격을 갖게 된다.
2. 이 전쟁은 민족의 운명을 놓고 세계최대 强國을 상대로 싸운 정면승부였다.
3.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신라는 國力을 총동원하였다. 군사력뿐 아니라 외교력, 정치력, 의지력, 그리고 하늘의 힘까지 빌리려고 하였다.
4. 이 전쟁에서 신라는 백제, 고구려 遺民들을 신라軍에 편입시켜 唐을 상대로 같이 싸웠다. 여기서 同族의식이 생기기 시작한다.
5. 신라지배층은 진행중인 토번과 唐의 전쟁에 완급을 맞추어 전쟁의 强度를 조정하여갔다. 놀라운 自主性과 국제감각, 그리고 현실주의의 종합이었다.
6. 신라가 이 전쟁에 승리한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7. 신라의 삼국통일은 韓民族을 만들어내는 씨를 뿌렸다. 신라가 보여준 決鬪정신은 한민족의 無意識에 남아 있고, 위기 때마다 나타난다.
弱者의 입장인데도 자존심과 自主性을 지키기 위하여 세계최대강국을 상대로 전쟁을 걸었던 신라의 후손들은 지금 역사상 가장 잘 막고 잘 살면서도 동맹국을 돕기 위하여 아프가니스탄에 1개 연대도 보낼 수 없는 흐리멍덩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1300년 전의 신라보다 물질적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이지만 정신력 부문에선 훨씬 퇴보하였다. 깽판세력에게 끌려다니는 李明博 정부와 唐제국과 승부한 文武王을 비교하면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는 분명히 이런 신라정신이 남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국가 지도층이 이 힘을 自覺하고 과감히 동원하느냐이다. 한국정부가 중국정부에 대하여 '당신들이 만약 한반도 통일을 방해한다면 우리는 신라의 對唐결전 자세를 취하겠다'고 하면 알아들을 것이다. 신라의 당돌함을 깊이 체험하였던 漢族은 그 뒤 한반도의 歷代 왕조와는 친선관계를 유지하였다. 신라통일 이후 漢族이 만든 중국 왕조는 한번도 한반도를 공격한 적이 없다. 신라의 對唐결전은 漢民族에게 韓民族에 대한 존경심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다가오는 통일기에 신라의 對唐결전 의지를 한국의 對中결전 의지로 전환하여 준비한다면 전쟁 없이도 자유통일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671년 문무왕은 唐將 薛仁貴가 신라의 對唐결전 태세 대하여 문책하는 글을 보내오자 이에 답장을 쓴다. 삼국사기에 실린 答薛仁貴書는 천하의 名文이다. 유학자 强首가 썼다는 설이 있다. 문무왕은 신라가 백제 멸망 뒤 이곳에 주둔한 漢兵과 고구려 원정 唐軍에 대한 군량미 수송의 2중 임무를 어떻게 수행하였는가를 절실하게 적고 있다.
<6월에 先王(태종무열왕)이 돌아가서 장례가 겨우 끝나고 상복을 벗지 못하여 부름에 응하지 못하였는데, (황제의) 勅旨에 신라로 하여금 평양에 軍糧을 공급하라고 하였소. 이때 웅진에서 사람이 와서 府城의 위급함을 알리니, 劉德敏총관은 저와 더불어 상의하여 말하기를, '만약 먼저 평양에 군량을 보낸다면 곧 웅진의 길이 끊어질 염려가 있고, 웅진의 길이 끊어지면 머물러 지키는 漢兵이 敵의 수중에 들어갈 것입니다'라고 하였소.
12월에 이르러 웅진의 군량이 다하였으나 만약 웅진으로 군량을 운송한다면 칙지를 어길까 두려웠고, 만약 평양으로 향하게 운송한다면 웅진의 양식이 떨어질까 염려되었으므로, 老弱者를 보내어 웅진으로 운송하고 강건한 精兵은 평양으로 향하게 하였으나 웅진에 군량을 보낼 때 路上에서 눈을 만나 人馬가 다 죽어 100에 하나도 돌아오지 못하였소.
劉총관은 김유신과 함께 군량을 운송하는데 당시에 달을 이어 비가 내리고 風雪로 극히 추워 사람과 말이 얼어죽으니 가지고 가던 軍糧을 능히 전달할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평양의 大軍이 또 돌아가려하므로 신라의 兵馬도 양식이 다하여 역시 회군하던 중에, 병사들은 굶주리고 추워 수족이 얼어터지고 路上에서 죽는 자도 이루 헤아릴 수 없었소. 이 군사가 집에 도착하고 한 달도 못되어 웅진 府城에서 곡식 종사를 자주 요청하므로 前後에 보낸 것이 수만 가마였소.
南으로 웅진에 보내고 北으로 평양에 바쳐 조그마한 신라가 양쪽으로 이바지함에, 人力이 극히 피곤하고 牛馬가 거의 다 죽었으며, 농사의 시기를 잃어서 곡식이 익지 못하고, 곳간에 저장된 양곡은 다 수송되었으니 신라 백성은 풀뿌리도 부족하였으나, 웅진의 漢兵은 오히려 여유가 있었소. 머물러 지키는 漢兵은 집을 떠나온 지 오래이므로 의복히 해져 온전한 것이 없었으니 신라는 백성들에게 권하여 철에 맞는 옷을 보내었소. 導護 劉仁願이 멀리 와서 지키자니 四面이 모두 적이라 항상 백제의 침위가 있었으므로 신라의 구원을 받았으며, 1만 명의 漢兵이 4년을 신라에게 衣食하였으니, 仁願 이하 병사 이상이 가죽과 뼈는 비록 漢나라 땅에서 태어났으나 피와 살은 신라의 育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唐軍의 皮骨은 당나라 것이지만 당신들의 血肉은 신라 것이오'라고 부르짖듯이 말한 文武王의 이 절규야말로 신라가 온갖 고통과 수모를 견디면서 삼국통일의 大業을 위해 희생했던 심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문장이 答薛仁貴書의 한 絶頂이다.
신라가 백제지역 주둔 唐軍과 고구려 원정 唐軍에게 동시에 군량미를 공급하기 위하여 노약자까지 동원하여야 했던 상황에 대한 묘사는 르포 기사를 읽는 것처럼 생생하다. 이런 고통을 지배층과 백성들이 장기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신라 사회의 내부 단결이 잘 유지되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唐은 신라 지배층 내부의 분열을 기다렸으나 일어나지 않았다. 신라가 對唐 결전을 통해서 삼국통일을 완수할 수 있었던 데는 내부 단합과 이에 근거한 동원체제의 유지가 결정적 요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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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庾信의 自主정신
'개는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이다'
오늘이 막히면 과거를 돌아보고 그 속에서 용기의 원천을 찾아 재충전한 뒤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 司馬遷의 史記정신이다. 7세기로 시계를 돌려놓는 이유이다.
서기 660년 金庾信이 이끄는 신라군 5만 명은 황산벌에 도착하여 백제 장군 階伯(계백)의 5000 결사대와 대치했다. 여기서 일어난 일들은 三國史記에 실감 나게 적혀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많이 소개되어 있는 장면들이다. 6·25 전쟁 후의 195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닌 우리 세대는 階伯, 官昌(관창)의 장렬한 죽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흥분을 맛보았다. 아이들끼리 병정놀이를 할 때 '너는 階伯 장군, 나는 金庾信'式으로 별명을 붙여 일종의 연극을 하기도 했다.
나는 당시 별명이 階伯이었다. 그런 별명을 갖고 나니 金庾信이 미워지고 백제軍을 동정하게 되어 주로 그런 성향의 역사소설을 많이 읽었다. 지금은 金庾信을 '삼국통일로 한민족 형성의 출발점을 만든 민족사 제1인물'로 평가하게 되었지만 어릴 때의 彼我감정이 퍽 오래 갔던 기억이 있다.
황산벌에서 일어난 장면들은 三國史記의 기록 덕분에 영화처럼 생생하게 想像(상상)할 수 있다. 소년기에 읽었던 플루타크 영웅전이나 三國志, 또는 일본 戰國시대 武士 이야기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황산벌 전투는 한국 군사문화의 絶頂(절정)을 보여 준다. 그 이후의 한국사에서 실종된 武士道와 男性美의 현장감이다.
階伯은 출정하기 전에 패배를 예감한 듯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三國史記 列傳).
'한 나라의 인력으로 唐과 新羅의 大兵을 당하게 되었으니 나라의 존망을 알 수가 없다. 내 妻子(처자)가 노비가 될까 두렵다'
그는 처자를 모두 죽이고 출정했다. 황산벌에서 階伯의 결사대는 10배나 많은 신라軍을 네 차례 격퇴했다. 金庾信은 여기서 신라軍도 決死특공의 방법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전 진덕여왕 시절 金庾信은 백제軍과 싸울 때 苦戰(고전)하자 충직한 부하 丕寧子(비령자)를 불러 술을 함께 마시면서 부탁했다. 비령자는 '저를 알아 주시고 또 이런 일을 맡겨 주시니 죽음으로써 보답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비령자는 아들 擧眞(거진)을 데리고 출전했는데 걱정이 되어 종 合節(합절)을 불러 부탁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반드시 따라 죽으려 할 것인데 너는 거진과 함께 나의 해골을 거두어 돌아가 어머니를 위로해 다오'
비령자가 적진으로 돌입하여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을 보고 아들도 뛰어들려고 했다. 종 합절이 말리니 거진은 칼로 합절의 팔을 친 다음 달려가 전사했다. 합절도 '상전이 죽었는데 내가 죽지 않고 무엇하랴'면서 뛰어들어 죽었다. 이 세 사람의 죽음을 본 신라軍이 분기탱천하여 일제히 돌격, 백제軍을 무찌르고 3000여 명의 목을 베었다는 것이다.
階伯과 대결할 때 신라군 사령관 金庾信은 부사령관 둘을 데리고 있었다. 부사령관 金欽純은 金庾信의 동생이었다. 그는 아들 盤屈(반굴)을 불렀다.
'신하는 충성이 제일이고 자식은 효도가 제일이다.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는 것은 忠孝를 다 완성하는 것이다'
반굴은 아버지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적진으로 돌입하여 장렬하게 전사했다. 다른 부사령관 品日(품일)은 아들 官昌을 데리고 출전했다. 品日도 아들을 백제軍으로 돌격시켰다. 階伯은 사로잡힌 관창의 갑옷을 벗겼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것을 보고는 살려보냈다. 관창은 신라軍으로 돌아와선 우물물을 들이켜 마시고는 다시 돌격을 감행하였다. 階伯은 생포한 관창의 목을 베어 말안장에 매달아 보냈다. 아버지 품일은 아들의 머리를 붙들고 옷소매로 피를 씻으면서 말했다.
'내 아들의 面目(면목)이 아직 살아 있는 것 같구나. 임금님의 일로 죽었으니 후회가 없을 것이다'
신라軍은 이 두 소년 장군의 죽음을 보고는 흥분하여 북을 두들기면서 진격하여 백제軍을 격파했다는 것이다.
金庾信의 조카가 되는 盤屈의 아들이 있었다. 金令胤(김영윤)이라고 했다. 문무왕 다음이 神文王인데 이때 고구려의 유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진압명령을 받은 장군 金令胤은 출전할 때 아버지 盤屈의 명성을 의식했음직한 발언을 한다.
'나는 이번에 친척들과 친구들이 악평을 듣지 않도록 하겠다'
반란군과 대치할 때 金令胤의 동료 장수들은 '잠시 병력을 물렸다가 적이 피곤해진 뒤 공격하자'고 건의한다. 金令胤은 그 건의를 거부하고 즉시 돌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從者(종자)가 말렸다.
'장군들이 저렇게 하는 것은 자신들의 목숨을 아끼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잠시 예봉을 거두고 틈을 보자는 것인데 장군님만 홀로 나아가려고 하니 안 될 일입니다'
金令胤은 이렇게 말했다(三國史記 列傳).
'싸움에 임하여서는 나아감만 있을 뿐 물러남이 있어선 안 된다. 장부가 일에 임하여 스스로 결정할 일이지 衆意(중의)를 왜 따라야 하는가'
金令胤은 적진으로 쳐들어가 격투하다가 죽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神文王은 비통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아비가 없었으면 그 아들도 없었을 것이다'
金令胤은 신라 사람들의 귀감이 된 아버지를 너무 의식하여 좀 무모한, 일종의 자살 공격을 했다는 것을 왕이 알았다는 느낌이 드는 말이다.
金庾信의 위대성을 몰랐던 조선
삼국통일의 주체세력이 된 신라의 武士들은 忠孝를 일치시킨 도덕률을 항상 가슴과 머리에 새겨 놓고서 생활했다. 화랑도는 東아시아에서 나타난 최초의 장교양성 교육기관이다. 이들의 행동윤리는 臨戰無退(임전무퇴)로만 단순화되지는 않았다. 圓光 법사가 만든 화랑 5戒에 의해 殺生有擇(살생유택)이란 인도적 배려가 따랐다. 반드시 이겨야 하되 쓸데없는 살육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배려, 국가에 대한 충성, 부모에 대한 효도가 3위1체로 통합된 것이 新羅武士 집단의 행동윤리이자 도덕률이었다. 화랑도의 대표인 風月主 출신이자 신라 무사도의 化身인 金庾信에게도 後日譚(후일담)이 있다.
그의 둘째 아들 元述(원술)은 唐軍과 싸우다가 패했다. 다른 장군들은 전사했고 그도 죽으려 했으나 보좌관이 말리는 바람에 살아서 돌아왔다. 金庾信은 자신이 죽인 수많은 신라의 젊은이들을 생각하였음인지 문무왕에게 원술의 목을 베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왕은 그러나 '원술한테만 중죄를 물을 수는 없다'면서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원술은 시골로 도망해 있다가 아버지가 죽은 뒤 나타나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면담을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인에게는 三從(삼종)의 義(의)가 있다. 지금 홀로 되었으니 마땅히 자식을 따라야 할 것이나 원술 같은 자는 이미 남편의 자식 노릇을 못 하였는데 내가 어찌 그 어미가 되겠는가'
원술은 그 뒤 對唐결전의 최대 승부처였던 매소천성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웠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세상을 마쳤다고 한다.
金庾信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고려 때까지는 매우 높았다. 三國史記를 쓴 金富軾은 삼국의 제1인물이 金庾信이고, 삼국통일의 제1元勳(원훈)도 金庾信이란 평가를 깔고서 임금도 아닌 그에게 가장 많은 紙面(지면)을 내주었다. 金庾信 列傳의 끝에서 金富軾은 이런 평을 하고 있다.
'신라에서 유신을 대함은 친근하여 틈이 없고, 위임하여 변함이 없었으며, 꾀를 행할 때 말을 들어주어 부리지 않는다고 원망치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유신이 그 뜻을 펼 수 있게 되어 삼국을 합쳐 한집안을 만들고 공명으로써 일생을 끝마쳤다. 유신에 대해서는 지금껏 잊지 않고 士大夫(사대부)뿐 아니라 배우지 못하고 천한 사람들도 잘 알고 있으니 반드시 남다른 점이 있는 것이다'
국가와 장수가 삼국통일이란 목표를 두고 서로 믿고 한 덩어리가 되어 일했다는 표현이다. 국가(이 경우 왕이겠지만)와 신하 사이에 틈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신라와 통일주도층에 대한 최대의 찬사이다. 이는 국가와 공직자, 국가와 군대 사이의 이상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金庾信은 兵權을 잡고 선덕여왕, 진덕여왕, 태종무열왕, 문무왕 네 왕을 모셨지만 반역을 꾀하지 않았고, 왕들의 의심도 사지 않았다. 역대 왕들은 金庾信의 욕심이 정권이 아니라 통일에 있음을 알고 그를 믿어 그가 하자는 대로 밀어 주었던 것이다. 그런 일은 金庾信의 인격에 대한 신뢰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런 金庾信에 대한 기억은 고려를 지나 文臣들이 정권을 잡는 朝鮮朝에 들어가면 잊혀지고 만다. 朝鮮王朝實錄 CD를 검색해 보면 金庾信에 대한 언급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군사문화나 무사도가 사라진 세상에서 金庾信의 위대성을 알아줄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金庾信에 대한 기억은 국군이 세계적 强軍으로 성장한 지금도 희미하다. 기자는 군대나 예비역 장성들 앞에서 강연할 때 金庾信에 대해서 자주 언급한다. 강연에 대한 호평도 있었지만 비판적인 이야기도 많았다. 충격적인 것은, 金庾信이 외세인 唐과 손잡고 사대주의적인 통일을 한 민족반역자쯤으로 알고 있는 군인들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육사의 별명이 화랑대인데 그곳에서 공부한 사람이 대표 화랑 金庾信의 가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육사의 역사 교육이 한참 잘못되었다는 이야기이다.
蘇定方의 新羅 평가
삼국통일을 할 때 三國의 주민들은 비슷한 종족이었지만 민족은 아니었다. 민족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존재가 아니고 같은 언어, 풍습, 종교, 제도, 국토를 오랫동안 공유한 결과의 자연스런 産物이다. 따라서 신라의 입장에서는 唐도 백제, 고구려와 똑같은 외국이었다. 민족의 출현 이전에 있었던 일을 민족주의라는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세종대왕에게 왜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느냐고 불평하는 꼴이다.
지금은 좀 덜해졌지만 한때 군사문화라고 하면 萬惡의 근원인 것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 한국인은 군대 때문에 우리가 중국인이나 북한인으로 흡수되지 않고 한국인으로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삼국통일기에 신라가 唐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것은 金庾信으로 대표되는 자주국방의 의지 덕분이었다. 唐은 신라와 손잡고 백제, 고구려를 친 뒤 신라마저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다. 이때 金庾信 등 지도부가 對唐결전을 결단했기 때문에 민족통일국가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승부는 군인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선비는 '최후의 일인까지 싸우자'는 말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원래 唐은 백제를 멸망시킨 직후 여세를 몰아 신라를 치려고 했다. 태종무열왕이 이를 알아차리고 신하들을 불러 대책을 의논했다. 多美公(다미공)이란 사람이 나와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 백성을 백제 사람으로 위장하여 도둑질을 하려는 것처럼 하면 唐의 사람들이 반드시 공격할 것입니다. 그때 더불어 싸우면 뜻을 얻을 수 있습니다'
金庾信이 '그 말도 취할 만하니 따르십시오'라고 했다. 태종무열왕은 내키지 않았다.
'唐나라 군사가 우리의 적을 멸해 주었는데 도리어 함께 싸운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겠소'
이에 金庾信이 말했다.
'개는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어찌 어려움을 당하여 자신을 구하지 않겠습니까'
金庾信이 한 말은 삼국사기에 '自救'로 표현되어 있다. 신라가 개노릇을 하여 唐을 섬길 용의는 있다. 唐이 신라를 존중해 주면 말이다(이것이 자주적 사대주의의 정신이다). 만약 唐이 크고 힘센 것만 믿고 신라의 자존심과 그 존재 자체를 말살하려 한다면 신라는 唐을 물어뜯어서라도 自救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야말로 新羅와 같은 小國이 大國을 옆에 두고도 自我를 지켜갈 수 있게 한 정신무장의 핵심 논리이다.
신라가 臨戰태세를 갖추자 蘇定方(소정방)의 唐軍은 백제 포로들만 데리고 귀환했다. 당시는 唐의 전성기 고종시대였다. 고종은 '어찌하여 신라마저 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소정방의 대답은 그대로 신라에 대한 세계 최강국의 최고 찬사이다.
'신라는 그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그 신하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모시기를 父兄 섬기듯 하니 비록 작지만 도모할 수가 없었습니다'
(新羅其君仁而愛民 其臣忠以事國 下之人事其上如父兄 雖小不可謨也)
仁愛忠事. 즉 어짐, 사랑, 충성, 섬김, 이것이 신라의 공민 윤리였다는 것이다. 이런 공덕심은 21세기 대한민국에도 加減(가감) 없이 쓸모 있는 국가와 국민의 윤리이다. 국가와 지도층은 국민들을 어짐과 사랑으로 대하고, 국민은 국가에 충성하며 지도층을 섬긴다. 이것은 국민국가의 이상적인 「국가-국민」 관계이다. 화랑도의 武士道를 중심으로 한 신라의 국가윤리는 근대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근대성의 핵심은 자존심과 실용성이다. 金庾信의 말에서 잘 묻어 나온다. 우리는 아무리 개처럼 작은 나라이지만 주인이 그 존재를 무시하면 사생결단하여 싸워서 지킬 만한 그 무엇이 있다. 그 무엇이야말로 아무리 힘센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나만의, 우리만의 自我인 것이다. 신라 지도층의 위대성은 이런 집단적 自我를 발견하고 이를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 지켜내는 과정에서 민족적 自我로 확대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여기서 종족을 민족으로 만든 동족의식이 생겨났던 것이다.
신라는 자주성을 지켜내는 방식에서 국력을 초과하는 무리를 하지 않았다. 金正日처럼 유아독존으로 모험을 하다가 必亡의 길을 걷는 바보짓을 하지 않았다. 신라는 唐의 힘을 빌리고 그 唐의 패권을 인정하고 唐에게 감사하려고 했다. 唐에게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았다. 唐과 결전할 때도 외교적으로는 항상 유화책을 썼다. 자존심을 뱃속에 숨겨 놓고 펼친 强穩 양면의 실용노선이 신라의 독립을 성취했다.
자주국방이란 말을 신라 이후 처음으로 되살려낸 朴正熙의 어록은 金庾信과 같은 맥락이다.
<자주국방이란 것은 이렇게 비유해서 얘기를 하고 싶다. 가령 자기 집에 불이 났다. 이랬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우선 그 집 식구들이 일차적으로 전부 총동원해서 불을 꺼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는 동안에 이웃 사람들이 쫓아와서 도와주고 물도 퍼다가 주고, 소방대가 쫓아와서 지원을 해 준다. 그런데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그 집 식구들이 끌 생각은 안 하고 이웃 사람들이 도와주는 것을 기다리고 앉았다면, 소방대가 와서 기분이 나빠서 불을 안 꺼줄 것이다. 왜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멍청하게 앉아 있느냐? 자기 집에 난 불은 일차적으로 그 집 식구들을 총동원해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서 꺼야 한다> (1972년 1월11일 기자회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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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사람들 이야기
싱가포르, 군대 안 갔다 오면 공무원 될 수 없다!
18세에 입대, 2년 근무 후 예비군 편입, 매년 40일간 소집근무.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도 군대 가야.
최근에 한 외교관 출신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싱가포르의 兵役(병역) 실태를 소개해주었다. 인구가 약 350만 명인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이스라엘을 닮은 국방제도를 유지한다. 국민총생산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로서 한국의 두 배이고, 이스라엘의 반이다. 현역은, 직업군인이 3만2700명, 징병된 병력이 3만9800명, 합쳐서 7만이다. 인구비례로 따지면 한국은 100만(지금은 70만) 兵力을 유지해야 싱가포르와 같아진다는 계산이다.
싱가포르는 국민皆兵制(개병제)이다. 18세가 되면 군대에 징집되는데, 연기가 되지 않는다. 重病者(중병자)가 아니면 모두 입대한다. 兵役특혜는 없다. 심지어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도 군대에 가야 한다. 훈련기간은 3개월이다. 체육선수에게 주어지는 특혜는 훈련기간의 단축이다. 뚱보들에겐 훈련기간을 길게 한다. 제대한 이후에도 예비군에 편입되어 나이 50세(장교)나 40세(사병)가 되기까지 매년 40일간 소집된다. 30만 명이 넘는 예비군이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군대 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은 공무원으로 채용하지 않는다. 싱가포르 군대는 1960년대 후반 이스라엘 장교들이 지도하여 만들었다. 이스라엘 고문단은 멕시코 사람으로 위장하여 建軍(건군) 작업을 도왔다고 한다.
싱가포르의 가상 敵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이다. 싱가포르의 국민 구성은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으로 복잡하다. 국민개병제는 다양한 출신성분을 초월하여 싱가포르 시민들을 하나의 국민집단으로 용해시키는 용광로 역할을 한다. 싱가포르는 한국보다도 더 평화스러운 안보환경에 있다. 그럼에도 自主국방정신은 한국보다 더 강하다. 싱가포르는 물론 운동선수에게 兵役면제의 특혜를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석사장교 제도가 생겨 특혜 논란을 불렀다. 석사 소지자 중 우수한 자를 시험으로 선발하여 6개월간 군사훈련과 전방 체험을 거친 후 소위로 임관함과 동시에 轉役시켜주는 제도였다. 당시 군 복무기간이 3년에 육박한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혜택이었다.
그 뒤 兵役면제 특혜가 남발되었다. 스포츠, 예술, 과학계의 人材를 2, 3년간 군대에 보내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는 주장이 일견 설득력이 있는 듯하나 이는 短見이다. 군대 복무중에도 특기를 살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 수 있다. 특혜는 한번 주어지면 확대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군 복무를 충직하게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모자라는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 미국에서도 징집제 시절 병역특혜를 일체 인정하지 않았다. 테드 윌리엄즈와 같은 대타자도 2차대전과 한국전쟁 두 차례 징집, 戰線에 배치되어 4년간 복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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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號와 운명을 같이 한 8명의 樂士
-紳士道 실천으로 남자의 20%만 살아남았다.
1912년 4월14일 밤 세계최대의 여객선인 타이타닉호가 처녀항해중 대서양에서 氷山과 충돌, 15일 이른 새벽에 침몰하였을 때 2223명이 타고 있었다. 31.8%인 706명만이 살아남고 1178명이 사망하였다. 여자승객의 74%, 어린이의 52%가 살아남았는 데 반하여 남자승객의 20%만이 구조되었다.
'여자와 어린이 우선(Women and children first)' 원칙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이 알려진 것은 1852년 영국 군함 빌켄헤드호가 침몰할 때 水兵들이 모범을 보인 이후이다. 타이타닉호 사고 때 이 원칙을 너무 엄격하게 해석한 선원들이 救命보트에 빈 자리가 있음에도 남자를 태우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타이타닉에 준비된 구명보트는 1178명을 태울 수 있었는데, 706명만이 구조된 것은, 다 태우지 않고 출발한 보트가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일부 승객들은 큰 배에 남아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다.
1등석에 있던 일곱 어린이들중 여섯 명, 2등석의 어린이들 전부가 구조되었으나 3등석의 어린이들중 34%만이 구조되었다.
영국 남자 승객들의 사망률이 미국남자들보다 훨신 높은 것은 '紳士道'를 실천한다고 救命보트에 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월래스 하트레이가 지휘하던 8명의 樂團은 전원 사망하였다. 이들은 기울어가는 갑판에서 계속 연주를 하였다. 공황상태에 빠진 승객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배가 거의 수직으로 기울어 침몰을 시작할 때까지 연주를 했다고 하여 타이타닉호를 다루는 영화에마다 등장하는 장면이 되었다.
이 樂團이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목에 대하여는 이견이 많으나 찬송가 '내 주를 가까기 하게 함은'이라는 게 定說이다. 하트레이는 평소에도 '만약 내가 탄 배가 침몰하면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을'을 연주하겠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고 한다.
타이타닉호에서 살아남은 남자들은 '비겁자'라는 욕을 먹을까 봐 눈치를 보면서 살았다고 한다. 뉴욕항을 목표로 처녀항해를 시작한 이 배에는 영국과 미국의 상류층이 많이 타고 있었다. 이들이 生死의 갈림길에서 보여준 紳士道는 두 나라의 엘리트가 가졌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의 한 예일 것이다.
타이타닉호에 救命보트가 적었던 이유는 승객수가 아니라 톤수에 따라 구명보트의 의무적 보유척수를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영하 2도의 바닷물에 노출된 후유증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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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엘리트 연구: 1000명이 3억 인도를 다스린 비결
-청렴, 공평, 滋善이 행동기준
영국이 꽃을 피운 자유민주주의는 누가 만들어서 준 것이 아니라 귀족들과 자본가들이 王權과 싸워 쟁취한 것이다. 그들은 富에 따른 명예와 의무를 생활신조로 삼았다. 영국의 신사는 힘 센 사람이 아니라 '신사답게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이 자본가였다. 체제를 만든 사람들이 그 체제를 지키기 위하여 희생할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독재자와 선동가로부터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 자유민주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인 자본가와 기업인들은 애국운동단체를 거의 돕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敵들을 돕고 있다. 그들은 독립투사들과 군인들과 혁명가들과 엘리트 관료들이 만들어준 체제의 혜택만 볼 뿐 체제를 싸워서 지켜내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린 비겁한 富者들이다. 그러니 좌파들의 밥이 되는 것이다.
19세기말 영국이 인구 3억의 인도를 다스릴 때 인도엔 약15만 명의 영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6만 명은 군인이었다. 영국 군인들은 이 광활한 대륙의 邊境에 퍼져서 주둔했으므로 보통 인도인들은 영국 군인들을 볼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하여 이런 少數로써 多數를 다스릴 수 있었는가.
인도행정청(India Civil Service: ICS)이 그 비밀이었다. 인도행정청에는 약1000명의 영국 공무원들이 근무했는데, 이들이 인도 각지에 파견되어 식민지 행정을 맡았다. 이 천명이 사실상 3억 인구를 다스린 것이다. 이 3억 인구는 주요 언어만 해도 스무 가지가 넘고 지방語는 셀 수 없을 정도인데다가 종교 인종도 각양각색이었다. 이런 인도를, 영국 공무원 한 사람이 30만명씩 안정적으로 관리했던 셈이다.
이 불가사의한 행정의 비밀에 대한 연구서적이 최근에 출판되었다.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라는 사람이 쓴 '지배계급'(The Ruling Caste: 출판은 Farrar, Straus, Giroux, 381페이지, 27 달러)가 그것이다.
인도행정청에서 근무할 영국인을 뽑고 훈련하는 과정에서 영국정부는 애국심과 자부심에 기반한 公人윤리를 반복교육으로 깊게 심었다. 학생들은 인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었다. 영국정부는 이들에게 그런 현지 관련 지식보다는 '제국의 魂'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인도에 대한 지식은 현지에 부임하여 배우도록 했다. 그 대신 大英제국의 知的이고 도덕적인 우월성에 대한 교육이 행해졌다. '유럽 도서관 선반 하나 위에 올라 있는 책이 인도와 아라비아 전체의 문학작품을 모두 모은 것보다 더 우수하다'는 식의 교육이었다.
著者 길모어는 이 책에서, '제국주의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으로 무장한 이 젊은 관료들은 '책임을 떠 안는 것의 쾌감'을 간직하고 어떤 경우에도 조국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이 인도에 가서 부임하는 곳은 교통이 불편한 奧地(오지)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무슨 사고가 일어나도 상부 지시에 따라서 행동할 수가 없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결단력이 요구된다. 영국관료들은 실용주의와 상식에 기초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을 부임 초기부터 터득해나갔다.
소요사태를 예방하려면 우선 지배층이 민중을 자극하지 않아야 했다. 영국관료들은 인도사회의 풍습이나 사회적 慣行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았다. 다만, 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불태워죽여서 殉葬(순장)하는 식의 야만적인 풍습은 금지시켰다. 인도사람들은 세금을 내고, 지역관리들을 죽이지만 않는다면 영국인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영국관리들은 그들이 다스리는 현지의 언어에 숙달해야 했다. 이 식민통치 관리들의 행동윤리는 피지배층을 대할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듯이 자선적이고, 공평하며, 청렴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영국관리들은 절대로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인도민중의 定評이 이들의 통치를 수월하게 해주었다.
인도는 독립한 뒤에도 영국행정청의 이름을 India Administrative Service로 바꾸고 그 골격을 이어갔다. 물론 영국인은 인도관리로 교체되었다. 인도는 영국관리들이 남긴 전통, 즉 자선적이고 공평하며 청렴한 公職규범을 그대로 계승하여 오늘날 세계최대의 민주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 행정관료의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慈善, 公平, 淸廉은 어느 시기, 어느 나라에서도 필요한 국가엘리트의 행동규범이다. 영국의 인도통치의 예에서 보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기도 하다. 자선, 공평, 청렴의 행동규범을 뒷받침한 것은 애국심과 자부심이었다.
국가, 전통, 그리고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무장한 국가엘리트가 이끌어가는 대한민국은 언제 만들어질 것이며, 이런 엘리트 집단을 양성할 국가적 교육기관은 또 어떻게 만들 것인가.
李承晩 대통령은 독립투사 엘리트의 대표였고, 朴正熙 全斗煥 盧泰愚는 군 장교단의 대표였다. 이들은 국가를 찾겠다고 싸우고, 국가를 지키려고 고민하고 피를 흘리는 과정에서 國益을 중심에 놓고 思考하는 습관을 길렀다. 그 뒤에 등장한 소위 민주투사 출신들은 당파, 지역, 계급의 이익을 국민과 국가의 이익보다 우선시키면서 국가 엘리트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 민주투사 출신들은 역대 정권과 싸우는 과정에서 정권과 국가를 혼동하였다. 그들은 정권에 대한 유감이 국가에 대한 유감으로 변질됨으로써 애국심의 근저를 이루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역사와 전통에 대한 존중심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니 정권을 잡고도 대한민국의 주인이란 의식보다는 손님의식, 또는 백성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역사, 철학, 문학 등 인문적 교양을 바탕으로 하여 애국심과 자부심으로 자신을 가득 채운 국가 엘리트층의 再建이 바로 가장 중요한 대한민국 再建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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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 일곱 명이 죽어도 훈련을 계속한 사단장
-그러나 强風의 위험도를 알기 위하여 혼자만 낙하산 타고 뛰어내려.
국군은 建國의 초석, 護國의 간성, 근대화의 기관차, 민주화의 울타리였다. 국군은 앞으로 자유통일과 一流국가 건설을 뒷받침해야 한다. 국군 장교단이야말로 지난 60년간 가장 많은 피, 땀, 눈물을 흘린 직업群이다. 군인은 국가가 부를 때 死地로 달려간다. 살고 죽는 것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어야 한다. 한 미국 군인의 예를 든다.
윌리엄 C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월남전 때 미군 사령관으로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 뒤 육군참모총장을 지냈고 몇 년 전 사망했다. 그는 '한 군인의 보고서'(A Soldier Reports)라는 회고록을 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정치와 언론이 월남전을 망쳤다고 분개하는 한 군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미군이 戰場에선 지지 않았는데 언론의 反戰보도와 여론의 변화, 여기에 영향을 받은 미국 국가 지도부가 전쟁의지를 상실했기 때문에 졌다고 말한다.
1968년 베트콩의 舊正공세는 그들의 大敗로 끝났지만 이것이 텔레비전을 통해서 미국의 안방 여론을 反戰으로 움직였다. 존슨 미국 대통령부터 전쟁의지를 상실하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공산당측과 협상을 제의했던 것이다. 자유월남이 망한 것은 그 7년 뒤였다. 웨스트모어랜드(별명이 웨스티) 장군은 이 책에서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가장 공정한 보도를 했다고 평했다. 이 책을 읽어보면 미국의 군사문화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생긴다. 이런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1958년 웨스티는 미국의 정예부대인 101 공정사단의 사단장으로 부임했다. 켄터키주 포트 캠벨에 본부가 있었다. 부임한 직후 낙하훈련이 있었다. 낙하지점에 나간 장교가 풍향과 풍속을 잰 다음 녹색 연기를 뿜어 올렸다. 낙하해도 좋다는 신호였다.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을 포함한 502 연대 장병들이 낙하했다. 웨스트모어랜드가 着地(착지)하니 예상하지 못했던 강풍이 낙하산을 몰고 갔다. 그는 수백 미터를 끌려가다가 다른 장병들이 낙하산을 주저앉혀 다치지 않았다. 이 强風에 걸려 일곱 병사들이 사망했다.
웨스트모어랜드 사단장은 그러나 기상조건을 이유로 하여 훈련을 중단할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전쟁은 원래가 악조건하에서 치러지는 것이므로. 다음날 그는 훈련 강행을 명령했다. 다만 낙하 훈련의 경우엔 자신이 먼저 뛰어내려 바람 상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다른 사병들은 대기하도록 한 뒤 사단장이 혼자서 뛰어내렸다. 전날처럼 강풍이 불어 웨스트모어랜드는 착지한 뒤에도 한참 바람에 끌려가다가 설 수 있었다.
그는 낙하훈련을 중단시키고 육상훈련만 하도록 했다. 이 사고를 분석한 미군은 着地한 뒤 낙하산을 빨리 분리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
일곱 명이 낙하훈련중 죽는 사고가 한국군에서 일어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사단장은 조사받기에 바빴을 것이고, 훈련은 물론 중단되었을 것이다. 웨스트모어랜드 사단장은 이 사고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고 판정된 때문일 것이다. '전쟁은 피크닉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수년 전 이라크에서 미국의 여자 장교가 戰死했다. 미 육사 출신이었다. 그녀는 보병부대를 지휘했다. 이스라엘에서 여자 장교가 戰車 교육부대에서 교관으로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軍人정신은 국가에 대한 희생과 충성을 핵심으로 한다. 군인, 특히 장교의 死生觀은 군대의 가장 중요한 戰力이다. 북한군은 몇 번의 간첩선과 잠수정 침투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잡히기 직전에 自爆, 自殺하는 정신력을 유지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군의 가미가제 특공작전을 연상시킨다. 물론 병사들이 굶주리는 북한군의 일반적 士氣는 높지 않다.
한국군 장교단은 좌파정권이 韓美동맹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韓美연합사 해체 공작을 강행해도 이에 순응했다. 연합사 해체 주장에 대해서 그렇게 반대했던 국군이, 좌파 대통령의 지시 한 마디에 그 전의 소신을 간단하게 접어버렸다. 자리를 걸고 참말을 하는 장교가 한 명도 없었다. 목숨을 걸 필요도 없고, 감옥에 갈 일도 아니었다. 국가와 국군을 위한 충정의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웠던 것인가?
한국군 장교단의 死生觀을 묻고 싶다. 일본의 武士道를 定義할 때 '죽는 것에 대한 自覺'이라는 취지의 말을 한다. 군인, 특히 장교의 직무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가? 自問自答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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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의 恩人 리지웨이 장군의 紳士道
-인간애와 교양, 그리고 애국심
6.25 熱戰이 한창이던 1950년 겨울은 추웠다. 참전 미군들의 회고담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가 'cold'이다. 미군이 싸운 전투중 가장 온도가 낮았던 것이 6.25였다.
지금 북한동포들은 우리가 6.25 때 겪었던 그 추위를 거의 알몸으로 견디고 있다. 춥고 배고픈 시절은 남한에선 추억이 되었으나 북한동포들에게는 현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포함한 남한사람들도 몇 사람의 미국인이 아니었으면 지금 북한동포처럼 추위에 떨고 있을 것이다.
'알지도 못한 나라의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참전을 결단했던' 트루먼 대통령, 군사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반대를 꺾고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戰勢를 역전시켰던 맥아더 장군, 낙동강 방어선과 부산교두보를 확보하여 반격의 힘을 축적했던 워커 미8군 사령관. 워커는 1950년 12월에 한국군 트럭에 받혀 사망하였다.
중공군 대공세 시기에 워커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유엔군의 총붕괴를 막고 서울을 재탈환했던 릿지웨이, 조종사 아들을 북한상공에서 잃은 미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에 대하여 고마워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
나는 릿지웨이 장군의 한국전 회고록을 읽었을 때 여러 번 감동했다. 文明국가의 장교들이 가진 紳士道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戰死한 워커 장군의 후임으로 미8군 사령관에 임명된 그는 부인한테 제대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도쿄를 거쳐 대구로 날아온다. 맨 처음 그가 한 일은 李承晩 대통령 예방이었다. 李 대통령은 미군이 중공군의 총공세에 굴복하여 한국을 포기하고 철군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 같았다.
<나는 이 완강한 戰士를 만나 내가 8군을 일본으로 데려가기 위해 온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싶었다. 그는 약간 수동적으로 나를 맞았다. 나는 악수를 하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을 했다. 말을 돌려서 할 시간도 없었다.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대통령 각하, 여기 오게 되어서 기쁩니다. 저는 여기 머물려고 온 것입니다'
이 말을 그는 기다렸던 것 같았다. 그는 태양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눈에 물기가 고였다. 그는 두 손으로 나의 손을 잡았다>
일단 서울을 포기한 직후 릿지웨이 장군은 한국군의 丁一權 참모총장에게 보낸 친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직 하나의 궁극적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귀하의 국민들의 자유를 지켜내는 일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는 함께 싸워야 한다>
릿지웨이 장군은 1951년 1월21일 苦戰中인 미8군을 향해서 '우리는 왜 여기에서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란 제목의 글을 내려보낸다. 이 글에서 그는 '우리는 한국의 마을과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만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만 싸우는 것만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지는 글의 요지는 이러했다.
<핵심적 문제는 서방문명이 공산주의의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가, 아니면 포로들을 사살하고, 시민들을 노예화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지배층이, 개인과 개인의 권리를 神聖視하는 정부를 무너뜨릴 것인가이다. 우리의 동맹국인 한국의 자유뿐 아니라 우리의 자유, 우리의 自主독립과 생존을 위해 우리는 싸우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공산주의와 개인의 자유 중 兩者擇一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으나 동시에 최선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군인이란 직업의 명예를 드높여, 우리를 믿고 지원해주는 사람들에게 최선의 의무를 다할 기회가 왔다>
1951년 1월1일 그는 서울 북방으로 가서 후퇴하는 한국군을 보았다. 회고록에서 그는 한국군이 무질서하게 무기도 버리고 지휘계통도 무너진 채 퇴각하는 모습을 실감 있게 묘사했다. 릿지웨이 장군이 차에서 내려 한국군의 潰走(궤주)를 정지시켜려고 해도 공포에 질린 한국군은 미군 사령관의 말도 듣지 않더란 것이다. 그는 한국인들의 참혹한 피난행렬에 대해서 이런 요지의 묘사를 했다.
<그 장면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 수염을 기른 노인들, 아들의 등에 어린아이처럼 업힌 할머니들, 그들은 말 없이 한강을 건너갈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공산주의의 폭력을 피해 잠시 맛보았던 그 자유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이 시기 미군은 후퇴하고 있었고 릿지웨이는 병사들과 함께 막사에서 생활하면서 미군의 士氣를 회복시켜 반격의 찬스를 만들기 위하여 苦鬪하고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시기에도 그는 한국인에 대한 예의와 동정심과 배려를 유지했다. 그의 회고록엔 고생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 紳士란 어려운 조건하에 처했을 때 품위를 유지하는 言行의 소유자이다.
같은 시기 毛澤東은 人命손실에 대해서는 일체의 고려 없이 작전을 짜고 수행했다. 중공군이나 북한군측의 기록에선 인간적 배려가 전혀 나와 있지 않다. 戰場에서도 인간의 생명, 그것도 他國民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 릿지웨이 장군. 그는 1951년 봄의 반격작전을 통해서 서울을 수복함으로써 한국포기를 검토하던 미국 워싱턴의 정책입안자들을 안심시키고 한국을 지켜냈다.
그때 미국 정부 일각에선 '한국 포기'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었다. 유엔군의 主力인 8군 장병들의 사기는 떨어졌다. 한국의 겨울 추위는 미군들의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릿지웨이 장군은 이들의 士氣를 회복시키지 않고서는 반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50代의 이 猛將은 텐트를 치고 장병들과 행동을 함께 했다. 가슴에 수류탄을 달고 전선을 누비면서 장병들의 軍心을 파악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발끝에서 입술까지 얼어붙은 몸을 녹인 커피 한 잔의 추억을 실감 있게 묘사했다. 아래 소개하는 글은 릿지웨이가 미8군 소속원들에게 내린 훈령 全文이다. 미군 장교들의 생각과 筆力을 잘 보여준다. 진짜 군인은 모두가 知性人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내가 한국에 온 지난 數週 동안 제8군 장병들의 마음속에 두 개의 절실한 의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이다. 8군 사령관으로서 나는 모든 장병들이 나의 응답을 들을 권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1951년 1월21일자로 8軍에 소속되거나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아래와 같은 나의 응답을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첫번째 질문, '왜 우리는 여기에 있는가?'에 대한 답은 간단하고 단호하다. 우리가 존중하는 정부의 合憲的으로 구성된 당무자들이 내린 결정에 의해서 우리는 여기에 와 있다. 유엔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말했다: '유엔 회원국들이 우리에게 부여한 임무에 따라서 우리 사령부는 한국에서 군사적 布陣을 유지할 것이다'
더 이상의 논평은 불필요하기 때문에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바치고 기대하는 충성심은 이상의 명령에 대한 아무리 사소한 의문이라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대답은 단호한 것이다.
두번째 의문은 아주 심각한 것이므로 우리 사령부 소속원들은 논리적이고 완전한 답변을 들을 권리가 있다. 나의 답변은 이렇다.
나로선 문제가 명쾌하다. 한국의 이런 저런 도시와 농촌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그런 不動産 문제는 부수적인 것이다. 문제는 동맹국 한국의 자유에만 한정되지도 않는다. 한국인들의 지조와 용기가 전쟁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꺾이지 않았음을 우리가 높게 평가하지만, 한국의 자유를 수호한다는 것은 더 큰 명분의 한 상징이며 이 大義명분 속에 포함되는 셈이다.
문제의 본질은 서구 문명의 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에서 꽃피도록 하신 그 힘이 공산주의를 저지하고 패배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인간의 존엄성을 비웃고, 포로들을 쏘고, 시민들을 노예로 삼는 독재세력이 개인과 개인의 권리를 神聖하게 보는 민주세력을 뒤집어엎을 것인가이다. 문제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심에 따라서 우리가 생존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시체처럼 사라질 것인가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 싸움은 동맹국 한국의 국가적 생존과 자유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이 논란의 여지가 없이 명백해진다. 이 전쟁은, 우리의 조국이 독립과 명예를 누리는 가운데 우리 자신의 자유와 우리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이다. 우리가 바친 희생과 도움은 他人을 위한 자선이 아니라 우리를 지키기 위한 직접적 自衛행동이었다.
결론적 분석: 여기 한국에서 제기된 문제의 핵심은 공산주의냐, 개인의 자유냐의 투쟁이며, 무리가 목격한 그 겁에 질린 사람들의 대탈주를 중단시킬 것인가, 아니면 머지 않는 장래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절망적이고 비참한 그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 것인가이다.
이것들이 우리가 싸우는 이유들이다. 일찍이 그 어떤 軍 사령부의 소속원들도 우리가 직면한 이런 도전을 감당한 적이 없다. 이는 挑戰이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과 우리 국민들 앞에서 최선의 노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리하여 군인이란 직업과 우리를 키워준 용감한 사람들에게 영광을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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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플리트 8군 사령관 아들의 戰死
-사령관은 실종된 아들에 대한 과도한 수색을 중단시켰다.
6.25 남침 전쟁 때 유엔군의 主力이던 미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그의 아들이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한 경우이다. 그의 아들 지미는 그리스에서 근무하다가 本國에 돌아와 있었다. 그는 해외 근무를 한 직후라 다시 海外근무를 할 자격이 없었지만 굳이 자원을 하여 한국 전선을 택했다. 그는 한국 전출 명령을 받자 어머니에게 이런 요지의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이 편지는 군인의 아내에게 바치는 편지입니다. 눈물이 이 편지를 적시지 않았으면 합니다만...저는 자원해서 전투비행훈련을 받았습니다. 저는 전투중에 B-26 폭격기를 조종할 것입니다. 저는 조종사이기 때문에 機首엔 폭격수, 옆에는 항법사, 후미에는 기관총 射手와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야간비행을 할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싸우고 있으며 드디어 저의 微力한 힘이나마 보탤 시기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저를 위하여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에 미국이 위급한 상황에서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소집된 나의 승무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그들 중에는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내를 둔 사람도 있고, 아직 가정을 이뤄본 적도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저의 의무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들 짐 올림>
지미는 한국으로 부임하자 동료 승무원들을 데리고 미8군 사령부를 찾아가 아버지를 만났다. 1952년3월19일 밴 플리트가 만60세 생일을 맞은 날이었다. 며칠 뒤 父子는 서울 북쪽의 갯벌로 기러기 사냥을 나갔다. 4월2일 밴 플리트 장군은 아들과 통화를 했는데 아들 짐이 그즈음 북한 지역으로 출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1952년4월4일 오전 10시30분, 밴 플리트는 미 제5공군 사령관 제임스 에베레스트 장군으로부터 아들 지미가 야간 출격을 한 뒤 귀환하지 않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지미와 두 승무원은 압록강 남쪽에 위치한 순천 지역을 정찰 폭격하기 위하여 출격했었다. 지미로서는 네번째 출격이자 최초의 단독 비행이었다. 새벽 1시5분에 이륙한 그는 새벽 3시 김포 비행단의 레이다와 접촉했다. 지미는 主표적이 구름에 가려져 있다면서 예비 표적을 요구했다. 예비표적을 향하여 날아가던 지미의 폭격기는 레이더에서 사라진 뒤 소식이 끊긴 것이었다. 그에 대한 구출작전이 진행되었다.
밴 플리트 장군은 아들에 대한 공군의 수색작업이 도를 넘지 않도록 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구출 작전을 중지하라'고 명령한 것도 그였다. 그 후로도 그는 가끔 아들이 실종된 지역의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고 한다.
그해 부활절 밴 플리트는 한국 戰線에서 실종된 군인 가족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저는 모든 부모님들이 저와 같은 심정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다하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벗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내놓은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습니다>
밴 플리트 장군의 아들은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그 벗은 미국 국민이기도 할 것이고, 남침을 당한 한국인이기도 하다. 더구나 밴 플리트의 아들은 자원해서 한국에 왔다. 동포가 아닌 他國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던진 이 젊은이에게 살아 있는 한국인들은 모두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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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CIA 부장의 외아들, 한국에 참전, 머리에 총 맞아
-프린스턴 대학교에선 이름 딴 賞 제정
알렌 덜레스와 존 포스터 덜레스 형제는 장로교 목사를 아버지로 하여 태어났다. 兄인 알렌 덜레스는 2차 세계대전 때 스위스에 머물면서 정보工作을 지휘하였다. 그는 1947년 미국 CIA가 창설될 때 많은 도움을 주었고 1953년부터 9년간 CIA 부장직을 맡았다. 그의 동생 덜레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아래서 國務장관으로 일하였다.
알렌 덜레스는 獨子를 가졌는데 이름이 알렌 메시 덜레스 2세였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역사와 정치를 공부하면서 公職者의 길을 준비하고 있던 중 6.25 남침전쟁이 터지자 해병대에 지원하여 장교로서 한국戰線에 배치되었다. 그는 최전방에서 싸웠다. 아버지는 아들을 후방에서 근무하도록 해달라는 따위의 영향력을 전혀 행사하지 않았다. 그는 1952년 머리에 총상을 맞고 영구적인 정신장애자가 되었다. 프린스턴 대학은 1997년에 '알렌 메시 덜레스 51년 賞'을 제정하여 국가를 위하여 봉사한 학생들에게 주고 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 존 셀던 도드 아이젠하워도 장교로 참전하였다. 아이젠하워가 195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을 때 아들은 한국戰線의 미군 전투 대대에 배속된 소령이었다. 대통령 당선자는 한국戰線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휘관에게 '내 아들이 포로가 되지 않도록 부탁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아들이 敵軍의 포로가 되어 이용당하는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이젠하워 소령은 사단본부 근무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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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서울의 부자동네 사람들이 많이 나온 모임에 갔다. 구청장이 자랑을 했다.
'그곳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우리 區가 무너질 것이란 위기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를 설득하여 그곳에다가 테니스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강북에 사는 나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공무원이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도 되나'하는 생각이 하나이고, 이런 말을 듣고도 모두가 잘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부자마을 사람들의 양심은 도대체 몇 원짜리인가 하는 분노였다.
임대아파트가 옆에 들어서면 주거, 교육환경이 나빠지고,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고 건축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부자들이 있기 때문에 좌파들이 득세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양극화 선동'이 먹히는 것이다. 임대아파트 입주자를 마치 백인이 흑인 보듯이 하면서 합법적인 건축을 방해하는 이런 부자들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계급적으로 분열시키는 사람들이며 도덕적으로 평가해도 친북좌파보다 못한 존재이다. 임대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용감하게 억지를 부리는 부자들일수록 평소엔 호화판 생활을 즐기면서 애국운동을 기피하고, 투표일엔 외국여행을 나가는 경우가 많다. 좌파의 도전에 대한 위기의식도 거의 없다. 자신들의 자유와 재산은 그 누군가가 대신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富者들은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의 위협에 직면해서도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체로서의 존립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에 대해서는 싸워야 할 생명체로서의 의무가 있다. 생명의 핵심은 자유이다.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싸우지 않는 순간 그런 생명체는 생명력을 잃고서 無생물이 되는 것이다. 밟았을 때 꿈뜰대는 지렁이는 생명체이지만 밟아도 반응이 없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시체이든지 돌과 같은 무생물이다. 무생물체는 자유를 상실하여 아무런 가치가 없으므로 쓰레기 취급을 받아도 할 수 없다.
친북좌파들은 자신들의 존립을 보장받기 위하여 피나는 투쟁을 계속해왔다. 여론과 언론과 권력면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하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하여 싸웠다. 그들의 지향점은 틀려먹었으나 생명체로서의 의무는 다한 셈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봐서도 싸우는 좌파는 안 싸우는 우파보다 우월하다.
가장 경멸해야 할 부류는 못사는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면서 권력을 쥔 좌파에 대해서는 싸움을 기피하고 굴복해버리는 '잘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만함으로써 좌파들을 키웠고 비겁함으로써 좌파들을 강화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大選에서 사이비 좌파를 물리치고 정상적인 사람이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남사람들부터 보다 겸손해지고 보다 용감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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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바겐”에 담긴 대한민국 대통령의 가치관
인효(認曉/탈북자)
유엔기후변화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9월 21일(미국 현지시간)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일괄 타결안”이라고도 불리는 이 아이디어의 핵심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면 북한에게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제기한 “확실한 안전보장”과 “국제지원의 본격화”란 용어가 과연 그의 본심인지, 아니면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에 끌어내기 위한 전략적용어인지가 참 의문스럽다. 만일 이 제안이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려는 전략적 의도라면 북핵문제에서 소외될지도 모를 한국의 위상을 높이려는 대통령의 눈물겨운 노력이라고 봐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만일 이 아이디어가 이 대통령의 對北전략의 핵심이라면 이는 상당히 문제가 있다. “bargain”이란 “거래” 또는 “흥정”을 뜻하는 말이다. 결국 이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 제안이란 한마디로 북한의 핵과 북한체제보장 및 경제적 지원을 맞바꾸겠다는 말이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핵을 가지고 북한주민과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을 위협하는 김정일은 인질범이고, 미국과 한국정부는 그 인질범에게서 인질들을 구출하려는 경찰관이라고 가정하자. 대개 인질범은 돈을 얻기 위해 인질극을 벌인다. 또한 인질범들은 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안전도 보장받길 원한다. 그래서 인질사건들을 보면 인질범들은 경찰이 약속된 돈을 건네줌과 동시에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한다. 만일 실재한 인질사건에서 경찰이 인질을 구하기 위해 인질범에게 돈도 주고 인질범에게 아무런 법적 처벌도 가하지 않는다면 그 경찰관은 무능한 경찰관이란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명박 “경찰관”의 제안은 인질범 김정일에게 돈도 주고 안전보장도 해주겠다는 것이다. 정말로 무능한 경찰관의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김정일의 핵카드는 체제안정, 즉 “인질범”의 안전보장을 위한 여러 수단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김정일은 외부로부터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핵카드를 사용하지만 내부로부터의 체제위협에는 강력한 폭압수단을 사용한다. 사실 김정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외부(미국 또는 한국)로부터의 침략 및 경제제재 위협이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위협이다. 즉, 김정일은 북한주민들의 불만이나 저항으로 인해 독재체제의 존립이 위협을 받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소위 “선군정치”라는 것도 굶주린 북한 주민들의 반항을 총칼로 진압하기 위해 만들어낸 통치방식이다. 북한 주민들을 폭압으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당, 군대, 보위부와 같은 “사냥개”들이 필요한데 김정일에게는 이 “사냥개”들에게 던져줄 먹잇감도 없는 형국이다. 북한의 경제사정 악화로 “사냥개” 먹이를 자체해결 할 수 없게 된 김정일이 생각해낸 것이 외부로부터의 경제지원이다. 이 수법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남한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현금 및 물자지원을 받아냄으로써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남한으로부터 아무런 경제지원도 없는데다 대북 경제제재를 위한 국제적공조가 강화되자 김정일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결국 김정일은 국내 탄압을 위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핵카드를 강도 높게 흔들면서 외부로부터의 경제지원을 꾀하게 된 것이다.
물론 김정일이 마지막 수단인 핵카드를 포기할리는 만무하지만 만일 이 대통령이 제안한대로 미국과 한국이 북한체제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해주는데다 덤으로 경제적 지원까지 준다면 김정일로서는 자신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한 것으로 된다. 결국 이 대통령의 제의가 현실로 된다면 경제지원을 통해 김정일의 독재정권을 강화해주는 꼴이 된다. 게다가 “북한체제의 안전보장”이란 말은 북한체제를 위협하는 어떠한 행위도 자제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한데 그렇다면 북한의 인권문제나 북한의 민주화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겠다는 얘기가 아닌가. 김정일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에 대해 체제위협이라고 난리는 치는가 하면 민간단체의 대북삐라 살포도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라고 밀어붙이는 자이다. 만일 김정일이 핵 포기를 구실로 “그랜드 바겐”의 확실한 이행을 주장한다면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북한 인권문제나 북한 민주화운동은 전면 금지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바로 이점이 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 제안의 심각한 문제점이다. 이 제안은 인질로 붙잡혀 있는 북한주민들을 구원하기는커녕 인질범이 가지고 있는 총과 칼 중에서 총(핵무기)만 버리면 돈도 주고 안전도 보장해주마 하고 약속하는 제안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제안이 실제화 된다면 인질범 김정일은 총(핵무기)을 버린 대가로 받은 돈으로 칼을 여러 개 사서 인질(북한주민)들을 위협할 것이다. 즉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은 김정일 독재정치 하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북한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 제안이 이 대통령의 진심이라면 도대체 그가 김대중과 무엇이 다를 바 있단 말인가. 김대중과 노무현이 김정일에게 퍼다 준 국민의 세금은 그대로 김정일 정권의 통치력을 강화시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연장시켰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경제적 지원에 체제안정까지 덤으로 주겠다니 정말 경악할 일이다.
기독교인인 이명박 대통령이 믿는 예수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다. 북한주민 2300만의 영혼은 안중에도 없이 북한 핵협상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쥐기 위한 목적으로 그런 제안을 했다면 이 대통령의 가치관은 가히 알만하다. “민주주의자”, “인권투사”라 불리던 김대중이 독재자 김정일과 타협함으로써 그의 신념의 이중성이 드러난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도 “그랜드 바겐”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냈다. 그는 인간의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며,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의지를 가진 사람도 아니다. 정의로운 사람은 불의와 흥정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 아무하고나 흥정하고 거래하는 사람은 오로지 장사꾼뿐이다. 대한민국 정치판이 장사판처럼 됐다고는 하나 대통령까지 장사꾼일 줄은 몰랐다.
대한민국 대통령부터가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신념이 투철하지 못하고 정의의 원칙을 고수하지 않으니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할 공무원들이 반정부단체이며 김정일의 앞잡이인 민노총에 가입하는 역사에 유례없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이 대통령이 말하는 “중도”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입각한 중도가 아니라 아무런 신념도 생각도 없는 “중도”이다. 목적이 있다면 오로지 이익(정치적 이익 또는 경제적 이익)뿐이다. 정치를 혐오한다던 그가 온전한 “대한민국 정치인”-일명 정치장사꾼-으로 성장한 결과는 참으로 깜짝 놀랄만하다.
세계 최대의 테러분자인 김정일과 그 무슨 흥정을 해보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은 김대중과 더불어 북한주민의 고통보다는 자신의 인기를 더 중요시한 정치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투표한 나 자신이 정말 부끄럽다.
[ 2009-09-25, 16: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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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거짓사과에 감격하는 정부의 노예근성
-거짓말과 여섯 목숨을 맞바꾸고, 對北퍼주기를 재개하겠다는 것인가?
趙甲濟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북한 金家정권의 말은 전부가 거짓말이다. 북한정권의 말과 약속대로 이뤄졌다면, 김정일은 서울을 방문하였을 것이고, 핵무기는 폐기되었을 것이며, 李明博 대통령을 역도라고 부르지도 않게 되었을 것이다.
북한정권은 도끼만행사건, 무장공비침투 등 범죄를 저지른 다음에 국제적 압박이 거세지면 일단 '유감' 표명을 한다. 이 '유감' 표명에 감격한 한국 정부는 '사과를 받았다'고 자랑하면서 경계태세를 해제한다.
1983년에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죽이려고 아웅산 테러를 일으켜 17명의 장차관급 고관들을 죽인 북한정권이 다음 해엔 한국의 수해 피해자를 돕는다고 쌀을 5만 톤 보내주었다. 그 이듬해엔 최초의 남북이산가족 면회가 있었다. 그 이듬해 북한정권은 아시안 게임을 방해하려고 김포공항에서 폭파사건을 일으켜 다섯 명을 죽였다. 그러면서 밀사를 보내 전두환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하였다. 그 다음해엔 서울올림픽을 저지하려고 KAL기 폭파사건을 일으켰다.
1996년 동해안에서 잠수정으로 무장공비를 침투시켰을 때 金泳三 정부가 강경대응을 하니 그들은 사과하였다. 1998년에 또 동해안에서 침투한 잠수정이 발견되었고, 북한공작원들은 전원 자살하였다.
이런 북한정권이 지난 9월초 황강댐을 無斷방류하여 여섯 명의 한국인을 죽였다. 정부는 사과만 요구하였고, 어제 그들은 사과하였다. 정부는 감격한 모습이다. 임진강 사건은 이것으로 끝이라고 선언하고 對北퍼주기를 재개할 태세이다.
여섯 명의 自國民 목숨을 거짓말과 맞바꾸겠다는 것이다. 본인에겐 생명이 지구만큼 소중하다. 그 여섯 명의 목숨에 대한 존중심이 정부의 행태에선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은 개인의 생명에 대한 존중이다. 개인의 생명과 人權은 국가만큼, 때로는 그 이상으로 소중하다. 李明博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의 행동윤리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노예는 주인이 매일 10대씩 때리다가 한 대만 때려도 고맙게 생각한다. 북한정권에 얻어맞는 데 이력이 난 한국 정부는 북한이 때리고 나서 사과하면 '사과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면서 눈물을 흘린다. 전형적인 노예근성이다.
李明博 정부가 국가라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사망자 1인당 1000만 달러의 징벌적 배상을 요구하고 불응하면 북한정권을 국제법정에 세운다.
실현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재발방지 대책을 세운다.
그 전에는 쌀 한 톨, 옥수수 한 자루도 북한에 주어선 안된다.
그러지 않고 상습적 거짓말을 '진정한 改過遷善(개과천선)'으로 받아들이고 對北지원을 재개한다면 이는 여섯 명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행위에 상을 내리는 셈이 될 것이다.
[ 2009-10-15, 0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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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명 귀순을 '惡材(악재)'로 보도한 동아일보
목숨을 건 동포들에 대한 연민은 없고 北의 누구인지 모를 사람의 '불편한 심기'를 걱정하고 있다.
金東鉉(조갑제닷컴)
1일 동해안을 통해 11명의 북한 동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귀순한 것을 두고 동아일보는 익명의 정부당국자를 등장시켜 '惡材(악재)가 터졌다'고 보도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추석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미묘한 시점에 이번 사건이 터지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느니 “현 정부가 주민들의 의사만을 존중해 판단(注·귀순을 받아들일 경우)할 경우 북한이 불편한 심기를 나타낼 수도 있다(김석우 前통일원 차관)'느니 하며 일가족의 귀순이 마치 남북관계에 지장을 줄 것처럼 걱정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한 동포들에 대한 연민은 없고 北의 누구인지 모를 사람의 '불편한 심기'를 걱정하고 있다. 동족의 목숨을 건 脫北에 대해 이처럼 매정하게 보도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동아일보의 보도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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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대남 유화 제스처엔 변화 없을듯
“황강댐 참사 이어 또 악재”
당국, 北, 태도에 촉각, 송환 요구땐 관계 나빠질수도
1일 북한 주민 11명의 동해 귀순은 올해 하반기 들어 회복 기조에 있는 남북관계 속에서 9월 6일 황강댐 방류 사건에 이은 또 하나의 ‘돌발변수’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 때문에 정부 당국자들은 추석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미묘한 시점에 이번 사건이 터지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 당국자들이 황강댐 무단 방류 사건으로 남한 내 반북(反北)여론이 고조될 것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악재가 터졌다”며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이에 대해 북한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가 사태의 전개 방향을 결정지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이들이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게 정부 소식통의 전언이지만 조만간 군과 국가정보원, 통일부 등의 합동심문을 통해 이들의 귀순 동기와 방법 등이 파악될 것으로 보인다. 11명 전원이 귀순 의사를 명확하게 밝힐 경우 이들은 일반적인 탈북자로 취급돼 국적 취득 등 국내 정착 절차를 밟게 된다.
한 당국자는 “과거 북한은 귀순이 분명한 사건에 대해서는 송환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해 2월 북한 주민 22명이 배를 타고 서해상을 표류해 남측 당국에 인계됐을 때에는 ‘단순 조난’이라며 남측에 송환을 요구했고, 판문점을 통해 인계된 이들이 이후 모두 처형됐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만일 북한이 이번 사건의 원인을 ‘선박 고장에 의한 사고’ 또는 ‘죄인들의 의도적인 탈출’ 등으로 규정하고 남측에 즉각적인 송환을 요구할 경우 남북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은 “지난해 2월 이명박 정부 출범을 며칠 앞두고 발생한 북한 주민 22명의 서해 월남 사건 당시 정부는 남북관계의 경색을 우려해 주민들의 자유의사를 묻지 않고 송환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현 정부가 주민들의 의사만을 존중해 판단할 경우 북한이 불편한 심기를 나타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이번 사건을 이유로 올해 6월 말 이후 계속돼 온 대남 유화 제스처를 거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8월 16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 추석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 등 남북 교류협력 5개항에 합의했다. 여기에 포함된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순조롭게 끝나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관계를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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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인권을 무기로 對北정책 수립해야'
-최근 발간 대담집 '나는 일류국가에 목마르다'에서 주장…'인권은 北의 아킬레스건'
박성국(데일리nk)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공세적인 대북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해 화제가 되고 있다. 김 지사는 최근 언론인 조갑제 씨와 함께 펴낸 대담집('나는 일류국가에 목마르다')을 통해 “북한에 굶는 사람이 있으면 지원하겠다고 나서야 한다”면서 “저쪽(북)에서 굶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헌법에 근거해) 우리 국민이니까 조사하겠다고 정부가 주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금강산 박왕자 씨 피격사건에 대해서도 “평화롭게 관광하는, 그것도 아주머니를 총으로 쏘아 숨지게 하는 사건에는 단호하게 대처했어야 했다”며 “자국민 보호라는 기능만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도적인 의미에서 그렇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그 근거로 헌법에서 북한 주민을 우리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 헌법을 넘어서 인간을 바라봐야 한다는 휴머니즘도 역설했다. 김 지사는 “우리가 이렇게 전향적으로 나설 때 북한에 대한 문제가 새롭게 풀릴 수 있다”면서 “(북과의 관계에서) 이런 휴머니즘이 힘을 갖게 될 때 비로소 민족주의로 포장된 이상한 농간도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고 언급했다.
그는 “지사로 있으면서 북한에 많은 제안을 했다. 우리는 (남으로) 오라고 한다”며 “간첩도 여기 내려오면 다 바뀐다. 누구든 오면 바뀌게 돼 있다. 이런 식으로 교류의 물꼬를 확 터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 기조를 인권과 인도주의에 확실히 두고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북한 핵과 친북세력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에 대해서도 김 지사는 “남북한 사이에 물적,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면 북한의 인민 중 최소한 70%는 남한체제에 동조할 것이다”면서 “북한을 무조건 막고 방어만 하다가는 결국 지게 된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우리의 우월성을 북한에 넣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권문제라고 말했다. 또한 북한의 아킬레스건도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인권위원회를 비판하는 것도 그것 때문 아니냐”고 반문하고 “북한 국민도 우리 국민인데, 그 인권은 왜 생각을 안하냐는 것이 인권위를 비판하는 핵심”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우리의 지원을 거부할 경우에 대해 “안받으면 그뿐이다. 가만히 있는 척하면서 우리의 정보력과 국방력과 안보의식, 비공식적인 민간의 파이프라인들을 강화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종합적으로 조율할 사령탑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남북관계가 이뤄지는 (국제적, 정부적, 지자체, 민간 등) 여러 차원에 대해 실태조사를 하면서 정확하게 분석해서 무엇을 조정하고 무엇을 강화해야 할지 정리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이런 기능을 갖추고 이것이 북한을 움직이는 지렛대가 되면 미국에게도 비용을 대라고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어떻게 보면 국제정치 무대에서 우리가 북한 정권까지도 대한민국의 자산이자 자원이라 생각하고 활용할 길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관련 발언 말미에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가지고 자신감을 갖고 그리고 인권을 무기로 삼아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그러면 정말 지엽적인 일부 좌파 인사들의 문제도 다 해결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 2009-09-22, 0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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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세력의 비전은 무엇인가?
자유롭고, 번영하고, 강력하고, 통일된 나라. 교양 있는 국민, 生動하는 사회, 品格 있는 국가. 안보, 法治, 경제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그리하여 자유, 진실, 正義가 구현되는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
趙甲濟
보수, 우파, 애국세력으로 불리는 우리는 대한민국의 헌법체제를 존중하고, 대한민국의 敵인 북한노동당 정권을 평화적으로 해체하는 자유통일을 지향하며, 一流국가를 건설하여 인류共榮에 이바지하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세력이다.
1. 대한민국의 비전: 자유롭고, 번영하고, 강력하고, 통일된 나라이다. 교양 있는 국민, 生動하는 사회, 品格 있는 국가여야 한다. 안보, 法治, 경제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그리하여 자유, 진실, 正義가 구현되는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2. 남북관계의 본질: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양식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대한민국 헌법 1, 3, 4조는 국민들에게 이렇게 명령하고 있다. “북한정권은 대한민국 영토를 不法강점한 反국가단체이므로 평화적 방법으로 자유통일하여 한반도 전체를 민주공화국으로 만들어라.”
3. 대한민국의 역사적, 법적 실체: 신라의 삼국통일은 백제, 고구려, 신라를 통합하여 최초의 민족통일국가를 만들었다. 그 이후 한민족은 통일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면서 ‘1민족1국가’의 전통이 정착되었다. 南北분단은 민족사의 大勢에 비추어 부자연스럽다. 국가의 존재의미와 국제규범을 짓밟고 민족사를 부정하고 민족문화를 말살한 북한정권은 민족사의 이단이며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合法국가이다. 따라서 북한노동당 정권을 소멸시키는 것은 왜곡된 민족사를 정상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4. 한국 현대사의 흐름: 건국-護國-산업화-민주화의 네 단계를 성공시키고 法治확립과 자유통일과 一流국가 건설을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네 개의 새로운 국민정신을 啓發했으니 해양정신, 기업가 정신, 尙武정신, 自主정신이 그것이다. 한국의 기적적인 성공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위대한 지도자, 韓美동맹, 근면한 국민성이란 네 개의 조건이 있었다. 자유통일과 一流국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이 성공조건들이 유지, 발전되어야 한다.
5.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保守와 補修: 헌법정신을 국민행동 윤리의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선동-난동세력을 응징할 수 있는 法治를 정착시키고 언론의 자유와 책임을 강화하고 정치와 행정을 생산적으로 개혁하여 국민과 國益을 위해 일하게 해야 한다. 정치는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를 主題로 삼아야 하며, 과학자와 기술자와 기업인을 우대하여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6. 교양 있는 국민과 국가 엘리트 양성: 대중민주 국가에선 국민의 평균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선출하게 된다. 국민들의 교양이 향상되어야 훌륭한 지도층을 만들 수 있다. 법을 잘 지키고, 실질적이고, 절도 있는 국민이라야 선동에 넘어가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투쟁과 경쟁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도전에 應戰하면서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날로 전문화되고 이기적으로 되는 사회에서는 찾기 어려운, '인문적 교양을 갖추고 세상을 넓고 깊게 보면서 公益을 추구하는' 국가엘리트층을 양성하기 위하여 국가적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민교양의 핵심은 온전하고 정확한 한국어를 쓰는 것이므로 한글-漢字혼용이 필수적이다.
7. 韓美동맹: 한반도 주변 4개국중 미국만이 ‘자유롭고, 번영하고, 강력하고, 통일된 한국’을 원한다. 다른 나라들은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통하여, 때론 남북간의 조정을 통하여 나름대로의 이익을 도모하려 한다. 國益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韓美동맹은 통일 이후에도 유지되어야 한다.
8. 자유통일의 조건: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통일을 쟁취하려는 국가의지와 國力, 남한과 합치겠다는 북한주민들의 선택, 주변국의 방해를 無力化시킬 미국의 적극적 지원이 결합되어야 한다.
9. 對北정책의 핵심 목표: 북한정권이 核무기를 포기하고 개혁 개방으로 나오도록 하여 평화적으로 해체되도록 유도한다. 북한정권이 인권탄압을 하지 못하도록 공개적으로 압력을 넣고 북한주민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여 북한주민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 독일통일의 예에서 보듯이 결정적 순간에 북한주민들이 중국이나 독재정권에 예속되는 길을 거부하고 한국과 합치려는 민족자결주의적 선택을 하면 그 어느 나라도 통일을 막을 수 없다. 그런 선택이 가능하도록 진정한 인도주의와 민족주의를 발휘할 때이다.
10. 對中-對日관계와 동북아의 평화: 신라통일 이후 6.25 이전까지 漢族과 韓族은 1000년이 넘게 친선관계를 유지해왔다. 중국의 漢族 王朝는 한반도에 대한 문화적 외교적 우월성은 유지하려 했으나 영토적 야심은 없었다. 이 역사적 기억을 참고하여 韓中관계를 共存共榮의 틀에 묶어두기 위하여서는 경제와 문화를 중심으로 兩國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역사문제로 중국의 자존심과 위기의식을 자극하지 않아야 하고 우리 의식속의 뿌리 깊은 對中 사대주의를 극복하고 중국이 통일을 방해하려 할 때는 一戰不辭의 각오를 해야 한다.
韓日관계는 왕성한 민간교류가 있고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함으로 갈등이 있어도 평화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일본의 주류층을 설득하고 손을 잡으면 統一期에 일본이 한국을 지원하도록 만들 수 있다. 신라가 對唐결전으로 三國통일을 완수할 때 일본은 신라를 도왔다. 한반도의 통일과 번영은 중국, 일본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신라가 국제전쟁터였던 한반도를 통일함으로써 7~10세기의 東北亞에 200년이 넘는 평화가 도래하여 古代史의 황금기를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東北亞의 공존공영을 막고 있는 북한정권이 사라지면 두 번째의 黃金期가 열릴 것이다.
[ 2009-07-24, 0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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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망치는 이탈리아와 한국의 언론, 특히 신문
1500명의 독자(장관, 의원, 노조간부들)를 위한 기사만 쓴다?
趙甲濟
일본,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스위스, 아이슬랜드,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 덴마크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정치가 안정되어 있고, 法질서와 예의가 잘 지켜지고 있다는 점 외에 하나가 더 있다. 신문구독률 세계랭킹 1~10위 나라라는 점이다. 이 나라들은 여론을 先導하는 유명한 고급신문들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같다. 그렇다면 신문이 이 나라들의 정치와 법질서에 건설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신문구독률이 낮은 나라들은 예외 없이 독재국가이다).
지난 9월7일자 미국 주간지 타임誌는 이탈리아 신문의 타락상이 저질 정치와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칼럼을 실었다. 스테판 패리스가 쓴 '믿을 수 없는 情報源'이란 제목의 기사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탈리아 정치가 왜 잘못되었는가를 토의하다가 보면 결국 이 나라의 언론이 왜 잘못되었느냐라는 주제로 연결된다. 수상이 공중파를 장악한 나라에서 열명당 한 명만 신문을 사 본다. 일본은 다섯 명당 세 명, 미국은 다섯 명당 한 명이 신문을 사 본다.>
이탈리아는 텔레비전 의존도가 높은 데다가 신문은 구독률이 낮고 질도 많이 떨어진다. 西유럽에서 이탈리아는 포르투갈, 스페인과 함께 신문을 잘 안 보는 나라에 속한다.
타임誌 칼럼은 50년 전 이탈리아의 한 정치부 기자, 엔초 포셀라가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그 상태가 지금도 계속중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신문은 1,500명의 독자들을 위한 글만 쓴다. 그들은 장관들, 국회의원들, 노조간부들, 기업인들이다.'
포셀라 기자는 신문이 기사를 쓰는 방식이 꼭 가족끼리, 주인공들끼리, 지식엘리트끼리 모여서 私談하듯이 한다고 비판하였다. 한국의 정치부 기자들을 비판하는 말처럼 들린다. 한국 신문엔 국민을 위한 정치기사가 아니라 정치인을 위한 정치기사가 넘쳐난다. 정치인의 시장방문을 왜 그토록 친절하게 보도하는가? 시장商人을 위한 보도인가, 정치인을 위한 보도인가? 정치인이 商人들을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는 데 언론이 들러리를 선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신문을 적게 보는 대신에 텔레비전을 많이 본다.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80%, 신문의 영향력이 10%대라고 한다. 한국과 비슷한 현상이다. 문제는 한국처럼 이탈리아 텔레비전 뉴스를 믿을 수 없다는 점이다.
실비오 벨루스코니 수상은 3大 텔레비전 방송국을 장악한 사람이다. 신문도 독립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신문의 소유주는 거의가 신문만 운영하지 않는 기업 그룹이다. 자연히 보도행태가 파당적이고 흥미본위이다. 수상은 최근 기업인들에게 자신과 관련된 醜聞을 보도하는 신문에 광고를 내지 말라고 권유하였다.
신문들은 텔레비전을 보고 정치뉴스를 먼저 알게 되는 독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깊은 해설보다는 자극적인 가십성 기사를 주로 쓴다고 한다. 타임지의 패리스는 이탈리아의 언론, 특히 신문 수준이 올라가지 않으면 이탈리아의 정치 수준도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올해 들어 3大 보수신문을 포함한 한국의 언론은, 두 차례의 장례식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자살적 행동을 하고 말았다. 노무현, 김대중 두 사람에 대한 일방적 美化와 찬양과 선동은 생각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게 민주국가의 언론인가, 전체주의 국가의 언론인가'하는 회의와 공포를 갖게 하였다. 특히 신문들은 한글專用이란 母國語 파괴행각을 통하여 암호문 같은 이해불능의 글까지 싣고 있다. 한글전용에 맞는 기사를 쓰려니 자연히 쉬운 글, 즉 대중적 기사만 쓰게 되었다. 기사 문장의 정확성과 品格도 떨어졌다.
한글專用과 좌경화의 영향로 한국에선 高級紙나 여론先導 신문이 사라졌다. 이탈리아의 예에서 보듯이 한국 언론, 특히 신문 記事의 저질화, 파당화, 가십화, '끼리끼리 잡담화'는 정치의 저질화를 가속시킬 것이다. 한국도 이탈리아처럼 言論이 달라지지 않으면 정치도 달라지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이다.
고급 신문은 그 나라의 知性과 정신의 수준을 유지해준다. 사회분위기를 안정시키고 사람의 생각을 깊게 만든다. 爭點에 대하여는 투명한 정보와 시각을 제공한다. 그런 신문은 공정하고 온건하면서 너그럽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 영국의 '더 타임스', 프랑스의 '르 몽드',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일본의 아사히, 요미우리 같은 신문이다. 한국에 그런 신문이 있는가? 한글專用이 유지되는 한 高級 신문은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것이고 있던 中級신문은 下級으로 전락할 것이다. 냄비 같이 끓고 식는 신문, 호들갑 떠는 신문, 증오와 갈등을 부채질 하는 신문, 非文을 쓰는 신문이 主流를 이룬 사회는 절대로 先進化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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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피신중이던 仁祖가 淸太宗에게 보낸 굴욕적인 편지와 文武王의 당당한 답장을 비교하면 新羅의 自主정신과 조선의 事大主義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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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 이종은 강화를 애걸하는 국서를 보냈다.
근자에 저희 작은 나라의 재신(宰臣)이 글을 받들고 군문(軍門)에 가서 품청(稟請)하고 돌아와 말하기를, 황제께서 장차 다음 명령이 있을 것이라고 하여, 저희 작은 나라의 군신은 목을 늘이고 발꿈치를 돋우어 날마다 폐하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마는 이제 이미 열흘이 넘도록 잘잘못의 말씀이 없으시므로 힘이 빠지고 정성이 핍박하여 다시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직 황제께서는 통찰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작은 나라가 전에 대국의 은혜를 입어 외람되게 형제의 의를 하늘과 땅에 밝혔으니, 비록 국토에는 구분이 있으나 정의(情意)에는 간격이 없어 스스로 자손만대에 끝없는 복이 되리라 했는데 어찌 맹약할 때 마신 쟁반의 피가 미처 마르기도 전에 의심과 틈이 생겨서 위급한 화에 떨어져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줄을 짐작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유례를 찾아보면 모든 것이 다 저의 천성이 유약하여 잘못을 저지르고, 모든 신하가 어리석어 잘 살피지 못하여 오늘의 일이 있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책망할 뿐 다시 무슨 말이 있겠습니까? 다만 형의 아우에게 대한 생각으로 잘못이 있음을 보면 노하여 꾸짖는 것이 물론 마땅합니다. 그러나 책망이 너무 엄하면 도리어 형제의 의리에 틈이 생길 것이니, 어찌 하늘이 괴이하게 여기실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희 작은 나라는 궁벽한 바다 한 구석에 있어, 오직 시서(詩書)를 일삼고 전쟁을 익히지 않았습니다. 약자가 강자에 복종하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이 떳떳한 이치인데, 어찌 감히 대국과 더불어 서로 겨루려 하겠습니까?
다만 저희는 대대로 명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원래 군신의 명분이 정해져 있습니다. 일찍이 임진년의 난에 저희 작은 나라의 존망이 아침저녁에 달려 있을 때, 신종황제(神宗皇帝)께서 천하의 군사를 동원하여 백성을 물불 속에서 구해 주셨으므로 저희 작은 나라의 백성은 아직까지 마음속 깊이 새겨 지니고 있어, 차라리 대국에 죄를 지을지언정 차마 명나라를 배반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그 은혜가 두터워서 사람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켰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방법은 한 가지 뿐이 아닙니다. 진실로 능히 그 백성의 목숨을 구할 수 있고 그 종묘사직의 위급을 구할 수 있는 자라면, 군사를 내어 어려움을 구원하는 것과 군사를 철퇴하여 생존을 도모하게 해주는 것과는 그 일이 비록 다르지마는 그 은혜는 결국 같습니다.
지난해 저희 작은 나라가 어리석고 착각해서 일 처리를 잘못하여 여러 번 대국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입었습니다마는, 오히려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대국의 군사가 오게 하여 군신과 부자가 오래 외로운 성에 있어 군색하기가 또한 심합니다.
진실로 이때 있어서 대국이 마음을 돌이키시어 저희가 잘못을 버리고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허락하셔서 종묘사직을 보존하고 오래 오래 대국을 받들게 하신다면, 저희 작은 나라의 군신들은 감격하여 장차 마음에 깊이 새겨 받들어 자손 영원한 세월에 이르도록 잊지 않을 것이요, 천하가 이를 들으면 또한 대국의 위엄과 신망에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이는 대국이 한꺼번에 큰 은혜를 동토(凍土)에 맺고, 넓은 명예를 만국에 베푸시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오직 한때의 생각을 시원하게 하시고자 끝내 병력으로써 형제의 은혜를 상하고,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길을 막아 여러 나라의 소망을 끊으신다면 그것은 또한 대국으로서도 장구한 계책이 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황제의 고명(高明)하심으로 어찌 이러한 점을 생각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가을이 되면 만물이 죽고 봄이 오면 소생하는 것이 천지의 도리요,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망하는 자를 구원하는 것이 패왕(覇王)의 사업입니다. 이제 황제께서는 영무(英武)한 방략으로 모든 나라를 무마 안정시키신 다음, 새로이 대호(大號)를 세우시고 관온인성(寬溫仁聖) 넉 자를 내세우셨습니다. 이는 장차 천지의 도리를 본받으시어 패왕의 사업을 회복하려 하심이니, 저희 작은 나라와 같이 전의 허물을 고치고 넓으신 비호를 받고자 하는 자는 버림받지 않을 줄 믿고, 이에 구구한 말씀을 드려 명령을 내리시기를 청합니다.
1월 16일 청군은 초항(招降 항복하라)이라고 쓴 깃발을 망월봉(望月峯 : 남한산성 동쪽에 있음) 아래에 세워 놓았다.
1월 17일 청 태종이 항복을 요구하는 국서를 보냈다. 청 태종은 명과 조선의 그릇된 화이관(華夷觀)을 통렬히 질책하고 있다.
대청국 관온인성황제는 조선 국왕에게 조서를 내려 깨우치게 한다.
보내온 글에 ‘책망이 너무 엄하면 도리어 형제의 의리에 틈이 생길 것이니 어찌 하늘이 괴이하게 여기시는 바가 되지 않겠느냐’ 했는데 짐이 정묘년의 맹약을 중히 여겨 일찍이 너희 나라가 맹약을 깨트린 일을 여러 번 타일렀으나 너희는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탄에 빠져있는 백성을 구원하지 않고 먼저 맹약을 배반했다.
너희 변방 신하에게 준 글을 짐의 사신 융알아대(英俄兒大 : 용골대)가 얻어, 비로소 너희 나라가 전쟁할 생각임을 확실히 알고, 짐은 곧 춘신사(春信使)․추신사(秋信使)와 여러 상인들에게 ‘너희 나라가 이처럼 무례하니 장차 너희 나라를 칠 것이다. 돌아가거든 너희 왕 이하 서민에게까지 말하라’고 일렀다.
이렇게 분명히 타일러 보냈으니 짐은 속임수로 군사를 일으킨 것이 아니다. 또한 글을 갖추어 너희가 맹약을 깨트리고 말썽을 일으킨 일을 하늘에 고한 뒤에 군사를 일으킨 것이다. 짐은 네가 맹약을 배반했으므로 스스로 천벌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실로 맹약을 배반했기 때문에 재앙이 내린 것인데, 너는 어찌하여 도리어 아주 깨끗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처럼 하늘 천(天)자 한 자를 억지로 끌어다 붙이느냐?
너는 또 말하기를 ‘소방이 궁벽한 바다 한 구석에 있어 오직 시서(詩書)를 일삼고 전쟁을 익히지 않았다’ 했으나 지난번 기미년(己未年)에 너는 까닭 없이 우리를 침노하여, 짐은 너희 나라가 틀림없이 병사(兵事)를 익히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제 또 말썽을 일으켰으니 너희 군사가 더욱 정예해진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병사를 익히지 않았다고 고집하는 것이냐? 그러나 너는 원래 군사를 좋아하는 자이니, 아직도 그만둘 생각이 없으면 이제부터 다시 훈련을 더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너는 또 말하기를 ‘임진년의 난에 나라가 존망이 아침저녁에 달려있을 때 신종황제(神宗皇帝)가 천하의 군사를 동원하여 백성을 물불 속에서 구해 주었다.’고 했는데 천하는 크고 또한 천하에는 나라가 많다. 너희를 구해 준 것은 명나라 하나뿐인데 어떻게 천하 모든 나라의 군사가 다 왔다는 것이냐? 명나라와 너희 나라는 허탄하고 망령됨이 한이 없어 끝내 그만두지 못하는구나. 이제 고단하게 산성을 지켜 명이 아침저녁에 걸려 있는데도 오히려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이 따위 헛소리만 하여 무슨 이익이 있다는 것이냐?
너희는 또 말하기를 ‘오직 한때의 생각을 시원하게 하고자 끝내 병력으로써 형제의 은혜를 상하고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길을 막아버려 여러 나라의 소망을 끊어 버린다면 그것은 또한 대국으로서도 장구한 계책이 되지 못할까 두렵다. 황제의 고명(高明)함으로 어찌 이러한 점을 생각하지 않으랴.’고 했는데, 그렇다! 네가 형제의 우의를 깨트리고, 전쟁을 모책하여 군사를 조련하고, 성을 수축하고 길을 닦고 수레를 만들고 군기를 마련하여 오직 짐이 명나라 치는 것을 기다려 그 틈을 타서 몰래 군사를 내어 우리나라를 해치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나라에 은혜를 베푼 것이 있다고 할 수 있느냐? 무릇 이러한 것을 너희는 스스로 모든 사람의 신망을 끊지 않는 것이라 하고, 스스로 고명하다 하고, 스스로 장구한 계책이란 말이냐?
또 말하기를, ‘황제는 영무(英武)한 방략으로 모든 나라를 무마 안정시켜 새로이 대호(大號)를 세우고 관온인성(寬溫仁聖) 넉 자를 내세웠다. 이는 장차 천지의 도리를 본받아 패왕이 사업을 회복하려 함이라.’고 했지마는, 짐의 안팎 여러 왕과 대신들이 진작부터 이 존호를 짐에게 올린 것이다.
그러나 짐은 패왕의 사업을 회복하려 하지 않는다. 까닭 없이 군사를 일으켜 너희 나라를 멸망시키려 하고, 너희 백성을 해치려 한 것이 아니다. 군사를 일으킨 까닭은 정히 잘잘못을 펴고 밝히고자 함이다.
천지의 도리는 선행을 하는 자에게는 복이 오고, 악행을 하는 자에게는 재앙이 오므로 지극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다. 짐은 천지의 도리를 몸소 행하여 마음을 기울여 따르고 순종하는 자는 후히 보양(保養)하고, 형세를 따라 항복하는 자는 편안하고 무사하게 해 주지마는, 명령을 거역하는 자는 하늘을 받들어 치고, 무리를 모아 악한 짓을 하거나 칼을 잡아 어지럽히는 자는 목을 베며, 완고한 백성으로 순종하지 않는 자는 가두고, 성질이 억세어 굴하지 않는 자는 깨닫도록 하며, 교활하고 속이는 자는 끝까지 나무란다.
이제 네가 짐과 적이 되었으므로 군사를 일으켜 여기에 왔다. 만약 너희 나라가 죄다 짐의 판도(版圖)에 들어온다면, 짐이 어찌 길러 보호하여 赤子와 같이 사랑하지 않겠느냐? 또한 너희는 하는 말과 행동이 전연 서로 같지 않다. 內外․前後에 오고간 문서로서 우리 군사가 얻은 것 중에는 왕왕 우리 군사를 노적(奴賊)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너희 군신이 평소에 우리 군사를 도둑(賊)으로 불렀기 때문에 말을 하는 동안에 무심코 그렇게 나온 말일 것이다.
몸을 숨기고 몰래 가지는 것을 도둑이라고 한다고 들었는데, 내가 과연 도둑이면 너는 어찌하여 잡지 않고 내버려 두어 불문(不問)에 붙이느냐? 너희가 비방하고 욕하는 짓은 이른바 속은 羊이고 겉만 호랑이 껍질이란 속담이 너를 두고 한 말이다.
우리나라 풍속에 ‘사람은 행동은 민첩한 것이 귀하고 말은 겸손한 것이 귀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늘 행하여 책잡히지 않고, 말하여 부끄럽지 않고자 경계한다. 그런데 너희 나라는 속이고 교활하고 간사하고 헛수작하기가 날로 깊이 스며들어, 조금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이와 같은 망령된 말을 거리낄 줄 모르고 함부로 하는구나!
이제 네가 살고자 하느냐? 마땅히 서둘러 나와서 양편 군사가 한 번 싸워 보자. 하늘이 스스로 어떤 처분을 내리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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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
趙甲濟
*綜合國力 세계 13위
한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국방 등의 분야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한 國力이 세계 13위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오늘 조선일보가 보도하였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 서울대 교수)은 광복절을 맞아 조선일보와 공동으로 실시한 '대한민국의 종합국력' 분석 결과를 14일 공개했다. 세계 주요 선진국 및 산업화된 20개 국가들(G20)을 대상으로 한 이번 평가에서 미국(69.15점)과 중국(54.73점)이 각각 1·2위에 올라, 세계 종합국력에서 미·중 兩强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綜合國力 지수 48.56점으로 세계 13위에 오른 한국은 과학기술력(7위)·국방력(8위) 등 하드파워 부문에서는 세계 10위 이내의 좋은 성적을 기록한 반면, 정치력(14위)·사회자본력(15위) 등 소프트파워 부문에선 상대적으로 저조했다고 조선일보는 전하였다.
<미국은 지난해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전체 13개 측정 부문 중 절반 이상인 7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다른 국가들과 압도적인 차이의 선두였다. 거대한 인구와 땅, 자원을 바탕으로 한 중국은 정치력·문화력·사회자본력 등의 부문에서 선두에 오르면서 종합 2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일본(53.45점), 영국(53.05점), 독일(52.92점), 프랑스(52.16점) 등이 100점 만점에 50점 이상을 기록하며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번 평가는 기초국력(국토, 인구 등)·국방력·경제력·과학기술력·교육력·정보력·환경관리력 등 7개 분야를 포함한 하드파워와 국정관리력·정치력·외교력·문화력·사회자본력·거시변화 대처력 등 6개 분야의 소프트파워에 대해 종합국력 지수를 개발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우리나라는 하드파워(9위)에 비해 소프트파워(12위)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나, 先進國 진입을 위해서는 소프트파워의 강화가 더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 自由국가, 북한은 세계 最惡의 不自由
지난 13일 미국의 人權연구소인 프리덤 하우스가 발표한 2009년도 세계 193개국 자유도 랭킹에 따르면 한국은 '자유국가'로 분류되었다. 한국은 86점으로서 일본(88), 이스라엘(84)과 같은 등급이고 프랑스, 영국, 호주 등보다는 한 등급이 낮다. 最惡의 인권억압국가는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와 북한이다. 점수는 각 2점이었다. 북한의 점수는 체첸(7), 티벳(4), 짐바브웨(12), 우즈벡(3), 리비아(8), 아프가니스탄(32), 수단(14), 미얀마(5)보다 못하다.
북한이 인권면에선 最惡중의 最惡이란 이야기이다. 수단 대통령은 학살, 反인류범죄 등의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이다. 그곳보다도 人權탄압이 더 심한 곳이 북한이라니 가히 지옥이다. 소말리아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이다. 복잡한 內戰이 밑고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자유국가로 분류된 숫자는 89개국인데, 세계 인구의 약46%인 30억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42개국은 不自由國인데, 세계 인구의 34%를 차지한다.
*해외여행 세계 10위
세계여행기구에 따라면 2007년 통계를 기준으로 할 때, 독일인들이 연간 829억 달러를 해외여행에 써 세계 1등이었다. 이어서 미국(762억 달러), 영국(723억 달러), 프랑스(367억 달러), 중국(298억 달러), 이탈리아(273억), 일본(265억 달러), 캐나다(248억), 러시아(223억), 한국(209억 달러)이었다. 인구비례로는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더 많이 여행을 하는 셈이다.
*삶의 질 세계 25위
유엔개발계획(UNDP)이 작년 12월에 발표한 179개국 삶의 질 랭킹에서 한국은 전년도보다 한 등이 오른 25위였다. 유럽권 국가를 바싹 따라붙은 거의 선진국 수준이다. '포린 폴리시'(미국의 정책 잡지)의 '실패국가, 성공국가 랭킹'에서도 한국은 성공국가群에 들어갔고 25위였다. 우리의 라이벌인 칠레는 40등, 중국은 94등, 북한은 등외이다.
삶의 질 랭킹은 壽命, 교육, 소득을 중심으로 계산하고 실패-성공국가 랭킹은 국가의 운영상태를 중심으로 조사한다. 한국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그리고 분단된 나라중에서 최고 성적이다. 지난 60년간 한국의 기성세대가 이룩한 기적과 逆轉(역전)의 드라마가 국제적으로 공인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기성세대가 인류역사상 최단 시간내에 최고의 업적을 남긴 가장 위대한 세대임을 통계가 입증한 것이다. 이런 한국의 현대사는 'The Greatest Story Ever Told'이다.
이 감동의 한국 현대사를 '正義가 실패한 역사'라고 매도하는 사람, 북한정권이 오히려 더 잘했다는 사람, 미래 세대에게 그렇게 가르치는 교사들, 이들은 세계적인 희귀동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들의 행적은 그 후손들에게 두고 두고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大明天地(대명천지)에서 살면서 조국에 반역하는 反대한민국, 親김정일 세력은 친일파보다 더 나쁘다.
1. Iceland 0.968 (▬)
2. Norway 0.968 (▬)
3. Canada 0.967 (▲ 1)
4. Australia 0.965 (▼ 1)
5. Ireland 0.960 (▬)
6. Netherlands 0.958 (▲ 3)
7. Sweden 0.958 (▼ 1)
8. Japan 0.956 (▬)
9. Luxembourg 0.956 (▲ 9)
10. Switzerland 0.955 (▼ 3)
11. France 0.955 (▼ 1)
12. Finland 0.954 (▼ 1)
13. Denmark 0.952 (▲ 1)
14. Austria 0.951 (▲ 1)
15. United States 0.950 (▼ 3)
16. Spain 0.949 (▼ 3)
17. Belgium 0.948 (▼ 1)
18. Greece 0.947 (▲ 6)
19. Italy 0.945 (▲ 1)
20. New Zealand 0.944 (▼ 1)
21. United Kingdom 0.942 (▼ 4)
22. Hong Kong 0.942 (▼ 1)
23. Germany 0.940 (▼ 1)
24. Israel 0.930 (▼ 1)
25. South Korea 0.928 (▲ 1)
26. Slovenia 0.923 (▲ 1)
27. Brunei 0.919 (▲ 3)
28. Singapore 0.918 (▼ 3)
29. Kuwait 0.912 (▲ 4)
30. Cyprus 0.912 (▼ 2)
*북한은 실패 국가
미국의 권위 있는 정책 잡지 ‘포린 폴리시’는 매년 ‘실패한 국가 랭킹’을 발표한다. 2008년에는 177개국을 조사대상으로 삼았다. 실패국가 랭킹 1위는 소말리아였다. 실패국가로 분류된 30개 나라들을 소개한다.
1. 소말리아
2. 짐바브웨
3. 수단
4. 차드
5. 콩고민주공화국
6. 이라크
7. 아프가니스탄
8. 중앙아프리카공화국
9. 기니아
10. 파키스탄
11. 아이보리 코스트
12. 아이티
13. 버마
14. 케냐
15. 나이제리아
16. 이디오피아
17. 북한
18. 예멘
19. 방글라데시
20. 동티모르
21. 우간다
22. 스리랑카
23. 니제르
24. 부룬디
25. 네팔
26. 카메룬
27. 기니아-비사우
28. 말라위
29. 레바논
30. 콩고공화국
*성공국가 랭킹 25위
성공한 나라들은 177개국 중 끝 번호쪽이다. 성공국가 30개 명단을 싣는다.
1. 노르웨이
2. 핀란드
3. 스웨덴
4. 스위스
5. 아일랜드
6. 덴마크
7. 뉴질랜드
8. 호주
9. 네덜란드
10. 오스트리아
11. 룩셈부르크
12. 캐나다
13. 아이슬란드
14. 일본
15. 포르투갈
16. 벨기에
17. 영국
18. 싱가포르
19. 미국
20. 프랑스
21. 독일
22. 슬로베니아
23. 칠레
24. 우루과이
25. 한국
26. 체코
27. 스페인
28. 이탈리아
29. 모리샤스
30. 그리스
*균형개발과 인권은 超一流
실패국가, 성공국가를 가르는 12개 기준항목은 인구증가, 난민, 집단 핍박, 탈출, 불균형 개발, 경제쇠퇴, 국가의 법질서 붕괴, 公的 서비스, 인권, 안보기관, 지배층의 분파주의, 외부 개입이다.
分斷국가 또는 분쟁국가중에선 한국이 단연 1등이다. 이스라엘은 실패국가 랭킹 58위이다. 중국은 57위. 한국은 分斷상황에서 북한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데도 다른 항목이 뛰어나 스페인과 이탈리아보다 더 성공한 나라로 평가되었다.
예컨대 불균형개발 부문에서 한국은 2.4점(점수가 낮을수록 균형개발)으로서 일본(2.5)과 아이슬란드(2.5), 그리고 스위스(2.6) 및 호주(4.4)보다도 앞섰다. 노무현 정권이 한국을 양극화의 온상으로 표현한 것이 얼마나 악질적인 저주였나를 잘 알려준다.
한국의 인권부문 점수는 2.7로서 프랑스(2.9), 일본(3.4), 미국(4), 싱가포르(4.3), 포르투갈(3.7)보다 앞서 세계1류급이다.
외부개입 항목에선 북한의 존재로 6.5점이었다. 만약 통일이 되어 이 항목의 점수가 독일 수준(2.4)으로 낮아지면 한국은 21위인 독일과 같은 랭킹에 놓여진다. 한국이 독일과 맞먹다니!
성공국가의 대표가 한국이고 실패국가의 대표가 북한이다. 그런 북한의 김정일을 ‘見識 있는 지도자’라고 극찬하는 자는 세계 60억 인구중에서 김대중뿐일 것이다. 김정일도 자신을 그렇게 부르진 않는다. 김정일은 자신을 ‘난쟁이 똥자루’라고 표현한다. 한국의 성공사례를 부정하는 세력도 세계에서 좌경세력-민노당, 전교조 등-뿐일 것이다.
포린 폴리시의 국제비교표를 읽고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인으로 태어나면 불행해질 자격이 없다고.
*남북한의 차이: 천당과 지옥
1. 북한주민의 1인당 가처분 국민소득은 발표된 바 없으나 전문가들은 약300달러 정도로 보고 있다. 남한은 2만 달러에 육박했다. 인구 50만 명인 제주도의 GDP가 북한보다 많다.
2. 북한의 중간 간부 임금은 월 3000원인데, 암시장에서 1달러 가치이다. 북한에선 12 달러로 1년을 산다.
3. 북한의 한해 무역액은 약30억 달러, 한국은 그 200배. 구미시의 작년 수출액이 400억 달러를 넘었다.
4. 1996년의 북한사람들 생활수준은 日帝시절보다 못하고 조선조 시절 가장 열악했던 150여년 전 고종 철종 시절보다도 못하다는 통계가 있다.
5. 북한사람들의 평균 수명(66세)은 남한 사람들(80세)보다 14년이 짧고, 남자 평균 키는 13cm가 짧다. 해방 당시 한국남자 평균 키는 166cm였는데 남한은 173.5cm로 컸고 북한은 160cm로 줄었다. 김정일은 북한사람들의 생명과 신체를 갉아먹는 불가사리이다.
6. 북한사람들은 185개국 중 평균 IQ가 3등이다. 세계에서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을 억압하니 그 재능은 무효가 되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7. 김정일 父子는 700만 명을 학살했다. 김일성이 6.25 남침으로 300만 명, 김정일이 굶겨서 300만 명, 강제수용소에서 100만 명을 죽였다. 700만 명의 시신을 도로 위에 한 줄로 깔면 서울에서 출발하여 시베리아, 우랄산맥을 넘고 파리를 지나 마드리드까지 간다(약1만1400km).
8. 김정일은 1990년대 후반 스위스 은행 등에 수십억 달러의 비자금을 숨겨놓고도 식량 구입에 한 푼도 쓰지 않아 300만 명이 굶어죽게 했다. 매년 3억 달러만 써서 옥수수 200만t씩 수입했더라면 한 사람도 굶어죽지 않을 수 있었다.
9. 김정일은 한 병에 2000달러 하는 프랑스 꼬냑 '타임레스'의 최대 수입자이다.
10. 김정일의 한 끼 밥상을 차리려면 300만원이 든다.
11.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간 남한에서 북한으로 넘어간 金品은 약100억 달러 상당이다. 이 중 30억 달러만 식량구입에 썼더라면 식량 문제는 해결되었을 것이다. 아직도 식량난이 계속되는 것은 100억 달러의 거의 전부가 핵개발, 신무기 도입, 對南공작, 김정일과 측근의 致富에 쓰여졌다는 방증이다.
12. 이산가족회의 계산에 따르면 약1500 가족이 상봉했는데 이를 成事시키기 위해 정부가 직간접으로 북한에 제공한 金品이 약1조4000억 원이다. 한 가족이 한번 동물원 상봉식으로 만나는 데 9억 원이 들었다는 이야기이다.
13. 노무현 정권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200만kw를 공짜로 送電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여기에 드는 돈은 10년만 쳐도 약25조원이다. 이는 한국 대학생 전체의 1년 등록금이고, 국방예산보다 많으며, 신형 탱크를 2500대 살 수 있는 돈이다.
14.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과 만나기 위하여 현대그룹을 앞세워 4억5000만 달러를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계좌 등으로 보냈다. 김정일의 39호실 비자금은 주로 핵개발, 무기 수입, 對南공작 등에 쓰인다.
15. 노무현 정권은 對北 퍼주기 등으로 지난 5년간 국가 빚을 130조원에서 300조원으로 두 배 늘렸다.
16. 노무현 정권은 5년간 공무원 수를 약10만 명 늘렸다. 99만 명의 공무원들이 연간 20조원 이상을 월급으로 받고 있다.
17. 노무현 정권의 反헌법적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공무원은 단 1人이었다. 그는 직위해제되었다.
18. 노무현 정권은 한 여승이 도롱룡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억지 단식을 하자 경부고속전철 공사를 멋대로 중단시켜 약2조5000억 원의 손해를 국민들에게 끼쳤다. 이 돈은 건축비 1억짜리의 좋은 집을 2만5000채 지을 수 있는 액수이다.
19.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국 기업체 16개중 13개가 적자이다.
20. 6.25 남침전쟁 때 남한에서 북한군과 남로당 부역자들에 의해 피살된 사람은 5만9964명(1951년 통계, 실제론 이보다 많다)인데 약70%인 4만3511명이 全南에서 죽었다.
21. 김대중 정권은 나중에 일본경찰에 의해 국제수배된 일본인 납치범 신광수까지 북송해주었으나 단 한 사람의 국군포로와 납북자도 데려오지 못했다. 月刊朝鮮 기자가 납북자 단체와 협조하여 3人의 납북 어부를 귀환시켰다.
22. 남북한이 같은 게 하나 있다. 185개국 국민 평균 IQ 랭킹에서 남북한을 합치면 세계 1위이다. 이스라엘, 독일인보다 앞선다. 이 머리 좋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장 못 사는 체제를 만든 김정일은 민족반역자이고 이 자를 증오하지 않는 사람은 나쁜 존재이다.
*대한민국이 잘될수록 화가 나는 사람들
국가 발전의 장애물인 전교조, 민노당, 민주당의 행태를 관찰하면 '대한민국이 잘되면 잘될수록 화를 내고 원한을 품는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또 김정일이가 나쁜 짓을 하면 할수록 김정일 편을 든다. 미국 정책전문 잡지 포린 폴리시誌의 실패국가, 성공국가 랭킹에 따르면 한국은 170여개국 가운데 성공한 국가 순위 25위이다. 균형개발과 人權부문에서는 西유럽을 능가하는 超一流 수준이다. 그런데 저들은 李明博 정부를 독재로 몰고 한국이 兩極化의 지옥인 것처럼 惡선전한다. 조국이 잘 되면 배가 아픈 사람들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팠던 사람들'의 후손인 모양이다.
*주인공이 없는 한국의 드라마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인류역사상 最高의 성공작이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The Greatest Story Ever Told'이다. 평화롭게 이뤄진 성공이 아니라 더욱 값지다. 분열, 갈등, 戰亂, 쿠데타, 민중봉기, 암살, 반역이 점철된 대혼란을 딛고 일구어낸, 그래서 더 위대한 작품이 대한민국이다. 그야말로 기적과 逆轉의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는 두 사람의 주인공과 두 惡黨과 여러 助演이 있다. 두 주인공은 李承晩, 朴正熙, 두 악당은 김일성과 김정일이다. 요사이는 이 드라마를 공짜로 선전해주는 오바마란 이름의 홍보대사도 등장하였다.
세계무대에만 나가면 엄청난 관객을 모으고 박수를 받는 드라마인데, 국내 공연에선 실패한다. 국내판 드라마는 주연과 조연을 바꿔치기 하기 때문이다. 主演을 李承晩, 朴正熙로 설정하지 않고 김구, 김일성, 김정일, 김대중으로 하니 손님이 들 리가 없다.
공연실패로 최근엔 감독이 바뀌었다. 새 감독은 李明博이란 사람인데, 이 분 또한 李承晩, 朴正熙를 主演으로 놓지 않는다. 이승만, 박정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 틀림 없이 흥행에 성공할 터인데, 조감독들이 엉뚱한 말을 하는 데 넘어가 시나리오를 이상하게 쓰는 바람에 세종대왕, 이순신, 신사임당까지 등장하니 일부 관객들은 조선조를 무대로 한 드라마로 誤認한다.
세계가 알아주는 한국의 드라마는 建國, 한국戰, 근대화, 민주화, 서울올림픽, 거대한 중화학공업, 力動的인 민주주의 같은 웅대한 파노라마인데, 한국의 감독들이 쓰는 드라마에는 암투, 깎아내리기, 흠집내기, 음모, 自殺, 선동, 변태적인 장면만 나온다. 이런 드라마를 본 젊은이들도 그 드라마를 닮아가니 교육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와 주연배우를 몽땅 바꿔야 한국의 드라마는 성공할 것이다. 세계 最高의 소재를 갖고 가서 最惡의 작품을 만들고 앉아 있는 이들이 일부 정치인, 일부 기자, 일부 지식인, 일부 사회단체, 그리고 多數의 좌익들이다.
*국가적 기억장치 회복이 彼我식별장치 회복의 길
이렇게 근사한 나라를 만들었는데도 청소년층에서 조국과 선배세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국가적 기억장치가 망가진 나라가 되었다는 뜻이다. 李承晩 박사를 아는 사람이 드물다. 대학 총장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6.25남침이 조선조에서 일어났고, 일본이 침략한 사건이라고 믿는 청년들도 있다. 경제적으론 잘 살지만 국가와 민족과 희생과 용기를 모르는 사람은 정치적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 치매에 걸린 사람이나 나라는 ‘살찐 돼지’가 되어 북한정권과 같은 ‘야윈 늑대’에게 잡아먹힌다.
是非를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言論과 정치가 있는 한 한국은 自己방어에 실패할 것이다. 성실한 사람이 잘 살도록 만들려면 먼저 악당들이 못살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방향으로 국민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응징력을 가진 국민들이 되어야 한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좌익세력을 정권 차원에서 퇴출시켰던 유권자들이 한 번 더 일어나야 한다. 敵과 동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是非를 가리지도 못하면서 국민교양의 파괴에는 앞장서는 언론. 대한민국 헌법, 애국시민, 미국을 敵으로 삼고 학살자 김정일 정권에 우호적인 정치세력-이들을 斷罪하기 위해서는 애국시민들이 조직되어야 한다. 인구의 高齡化로 보수적인 노장층이 선거에선 威力을 발휘하나, 조직이 되지 않으면 평소의 행동력이 약해, 언론과 정당에 일상적으로 배신만 당한다. 국민들을 행동하는 시민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기억장치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렇게 해야 彼我識別기능이 되살아날 것이다.
[ 2009-08-15, 1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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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 최후의 날에 무너진 한국인들
결정적 순간에 헬리콥터 탑승 줄을 무너뜨린 한국인들의 운명. 질서를 지키면서 죽어간 타이타닉 승객들.
趙甲濟
월남敗亡 하루 전인 1975년 4월29일 월남 사이공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선 철수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美軍 헬리콥터가 미국인, 한국인, 월남인들을 태워 항공모함으로 날랐다. 마당에서 한국인들이 탑승을 대기하고 있었다. 李大鎔 공사가 이들을 통제하였다. 헬기의 활동이 너무 늦어 이러다가는 한국인들이 타지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 李 공사는 미군 통제관에게 부탁하여 동맹국인 한국인들을 먼저 태워줄 것을 요청하였다. 통제관은 우선권을 주겠다고 하면서 '조용히 기다려야지 절대로 뛰어선 안된다'고 신신 당부하였다.
李 공사도 한국 민간인들에게 이를 단단히 부탁하였다.
<한국인 100여 명이 줄 지어 나갈 때까지는 질서가 잘 유지되고 있었다. 한국인 4열 종대의 선두는 개찰구 약8 미터 지점에 도달하였으며 계속 전진하고 있어서 헬리콥터 탑승은 눈앞에 다가 왔다. 이때 한국인 집결 대기 장소에 남아 있는 인원은 약70명이었다. 이들이 조용히 일어서서 줄을 형성하면서 뒤에 따른다면 한국인과 월남부인 및 자녀들 全員은 안전하게 헬리콥터를 타고, 美 7함대로 후송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적 시기에 사고가 발생하였다. 한국 민간인들 일부가 보따리를 들고 일어서더니 뛰어나오기 시작하였다. 이에 자극되어 앉아 있던 한국인 약60명이 일제히 일어서서 뛰어나왔다. 미국 통제관에 의하여 통제되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우선순위를 주기 위하여) 4열종대도 와르르 무너지면서 뛰어나왔다. 줄은 삽시간에 모두 없어지고 일대 수라장이 되었다. 미 해병들은 헬리콥터 탑승을 중단시켰다>(李大鎔, '사이공 억류기'에서)
이렇게 하여 李 공사 등 세 명의 외교관이 5년간 공산월남에 억류되어 옥살이를 하였고 수십 명의 한국인들도 出國하지 못하였다.
오늘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밤늦게 소음으로 이웃의 잠을 방해하고, 술을 마시고 소란 피우고, 아무데나 쓰레기 버리고, 거리에서 소변 보는 사람. 이런 기본적인 질서를 지키지 않아 작년에 경범죄로 처벌된 숫자가 일본의 44.4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정적인 순간에서 드러나는 한국인의 無禮는 치명적인 결과를 부를 수가 있다. 북한군이 기습하여 서울을 포위하였을 때, 決死抗戰이 필요한 시점에서 한국인들이 사이공에서처럼 무질서해지면 나라가 망하는 수가 있다. 무례한 사람들은 법도 지키지 않는다. 무례한 사람들이 많으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국회에서 명패를 던진 의원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이다.
영국과 미국인들은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도 질서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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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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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관료형 대통령과 여당, 그 노예근성
조갑제
조선닷컴에 따르면, 週末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용산사태 관련 집회 참가자들이 다수의 경찰을 집단폭행한 것으로 알려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추모집회를 마치고 이동하던 시위대 200여명이 동대문 운동장역과 종로5가역 사이 路上에서 정보과 형사 2명 등 경찰관 9명을 집단폭행했다는 것이다. 폭행 당한 경찰들은 현재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역 1호선 승강장에서도 경찰관으로 보이는 2명이 시위대에 둘러싸여 10여분간 폭행당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폭행당하고, 경찰은 거리에서 당한다. 좌경세력의 폭도화는 지난 촛불난동 이후 더욱 심각해져 선량한 국민들의 정상적 생활을 어렵게 한다. 국회의원과 경찰이 얻어맞는데 일반 국민들이 안전할 리 없다. 좌경세력의 폭력행사엔 부드럽고 경찰의 공권력 행사에 대하여는 가혹하게 대하는 일단의 판사 그룹도 있다. 이들을 좌파라고 부르는 법조인들도 있다. 경찰이 폭도를 진압하는 것을 탄압, 폭도가 경찰을 때리는 것을 正義라고 생각하는 판사, 국회의원, 기자, 종교인, 학자들이 너무 많다.
李明博 대통령은 용산放火사건을 정당하게 진압하였던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도의적 책임'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사퇴시켰다. 한나라당은 그렇게 해야 국회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좌경폭도들에게 그를 희생물로 바친 결과 돌아온 것은 무엇인가? 국회의원과 경찰관을 폭행한 것이다. 국회는 여전히 깽판으로 始終하였다. 헌법보다도 폭도들을 더 두려워하는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바라보면서 경찰은 폭력의 현장에서 구경꾼이나 중립자 역할을 하려 한다. 대통령과 여당의 비겁함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경찰이고 시민이다.
요사이 청와대 근방 주택가, 상가에선 순찰중인 정복 경찰관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주민들이 화를 낼 정도로 검문을 세게 한다. 누구를 위한 검문이고 순찰인가?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폭도들이 탱크를 몰고 가지 않는 한 중무장한 경호병력이 지키는 청와대로 들어갈 순 없다. 그럼에도 경찰은 청와대 근방에서 병력을 집중배치하여 단 한 사람의 안전을 도모하려 한다. 좌파정권 때도 없었던 일이다. 대통령이 경찰을 제대로 지휘하였더라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李明博 대통령은 一罰百戒(일벌백계)란 말을 모르는가? 범죄자에 대하여는 적발時 크게 혼을 내는 식으로 백배의 경고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찰관들이 虞犯者(우범자)를 일일이 따라다녀야 한다. 범죄를 저지르면 공권력에 의한 응징으로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소수의 경찰력으로도 대응이 가능하다. 공권력에 대항하는 범죄를 저지르면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사회에선 아무리 경찰관이 많아도 용기백배한 폭도들을 막을 수 없다.
국회의원과 경찰관이 얻어맞는다는 것은 국가가 얻어맞는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대통령과 여당이 구타당하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여당은 화를 낼 줄 모른다. 오히려 겁을 낸다. 당하고도 화를 낼줄 모르는 인간이나 조직을 우리는 노예근성, 식민지 근성의 소유자라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행동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자들이다.
李明博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행태에서 그런 노예근성과 식민지 근성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막강한 경찰력과 군대를 보유하고도 지휘자가 그런 식민지 근성의 소유자이면 동네북이 된다. 경찰은 좌익폭도들에게, 군대는 북한군에게 동네북이 되는 것이다. 2005년 여름 평택 미군기지 건설 현장에서 국군이 좌익폭도들에게 얻어맞고 도망다녔다. 이를 평양에서 지켜본 김정일이 과연 한국군을 어떻게 생각하였겠는가?
노예나 식민지 관료들은 자존심이 없다. 자존심이 없는 인간은 義憤心이 생기지 않는다.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 있음에도 그 수단을 쓰지 않고 자존심이 파괴되는 길을 선택하는 대통령과 여당이 있는 나라는 국가적 자살의 길을 달려가는 셈이다. 노예적 굴종을 평화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전쟁을 부른다.
요사이 이런 유행어가 생겼다.
'좌파가 우파에게 선물한 것이 노무현, 우파가 좌파에게 선물한 것이 이명박이다'
李明博 대통령이 法治확립에 실패하는 길의 종착역은 2012년 좌파 再집권일 것이다.
[ 2009-03-08, 1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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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나라에선 젊은이가 망친 나라를 노인들이 구제한다'
로마 정치인 키케로의 名言. 한국이 그런 나라가 아닐까?
趙甲濟
<큰일은 체력이나 민첩성이나 신체의 기민성이 아니라, 계획과 명망과 판단력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네. 그리고 이러한 자질들은 老年이 되면 더 늘어난다네. 가장 위대한 나라들이 젊은이들에 의하여 망쳐지고 노인들에 의하여 회복되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네. 한창 때의 젊은이들은 경솔하기 마련이고, 분별력은 늙어가면서 생기는 법이라네.>
마커스 툴리우스 키케로(로마 시대의 정치인, 철학자)가 한 말이다. 그는 젊은이들이 망친 나라를 老人들이 회복시킬 수 있으면 위대한 국가라고 했다. 한국이 그런 예가 아닐까? 386 세대와 노사모 무리들이 뒤집어놓은 한국을 老壯層의 유권자들이 회복시킨 것이 2007년 대통령 선거, 2008년 국회의원 선거였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體力에선 뒤지지만 분별력에서 앞섰기에 이런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다. 한국의 老人들은 위대하다!
[ 2009-10-22, 2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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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强의 나라, 最高의 엘리트
戰後 미국을 이끈 트루먼, 아이젠하워, 맥아더, 마셜, 에치슨, 조지 케난 등은 미국 역사상 최고의 엘리트였다.
趙甲濟
2차 세계 대전은 미국의 경제를 활성화시켰다. 미국의 경제력이 군사력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완전 고용이 이뤄졌다. 1939~1945년 사이 미국 경제는 연간 15%씩 성장했다. 前無後無한 고도 성장이었다. 이 사이 미국의 생산시설은 50% 커졌다. 1945년 현재 미국은 세계 GNP의 약47%를 생산했다. 세계 철강 생산량의 57.5%, 電力의 43.5%, 기름의 62%, 자동차의 80%를 생산했다. 인류 역사상 한 국가가 이렇게 압도적인 경제력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1947년 현재 미국 가정의 3분의 1은 수도가 없었고, 5분의 2는 水洗式 화장실이 없었다.
戰後 미국을 이끈 사람들, 트루먼, 애치슨, 맥아더, 아이젠하워, 마셜, 애브릴 해리만, 조지 케난, 조지 매클로이, 찰스 보렌 같은 인물들은 미국 역사상 최고의 엘리트(건국의 아버지들과 함께)였다.
6.25 전쟁을 계기로 한국은 이런 나라와 친구가 된 것이다. 신라가 당시의 最强선진국 唐과 동맹하여 三國통일을 성공시켰던 이후 최고의 외교적 성과였다.
북한의 김일성은 학살자의 인원수에서 1, 2등을 다투는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모택동과 손을 잡았다가 망했다. 어떤 친구와 사귀는가, 人生과 국가의 命運을 좌우한다. 전교조가 학생들의 영혼을 훔쳐가지 않도록 부모들이 잘 지켜야 할 이유이다.
대한민국의 原點에 서서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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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05, 17: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