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斷想: 徐廷柱와 金相沃의 新羅정신

두 사람은 新羅정신을 민족혼의 저수지로 보았습니다. 현실의 밭에서 물이 마르면 이 想像의 저수지에서 민족혼이란 물을 퍼내어 한국인들의 찌든 영혼을 적심으로써 고난을 극복하고 높게 올라 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분들입니다.

한국인의 魂과 感性을 예술적으로 가장 깊게 파고든 두 분은 詩人 徐廷柱와 시조시인 金相沃일 것입니다. 두 사람은 新羅정신을 민족혼의 저수지로 보았습니다. 현실의 밭에서 물이 마르면 이 想像의 저수지에서 민족혼이란 물을 퍼내어 한국인들의 찌든 영혼을 적심으로써 고난을 극복하고 높게 올라 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분들입니다.


<내가 어느 절간에 가 불공을 하면
그대는 그 어디 돌탑에 기대어
한 낮잠 잘 주무시고
그대 좋은 낮잠의 賞으로
나는 내 금팔찌나 한 짝
그대 자는 가슴 위에 벗어서 얹어 놓고
그리곤 그대 깨어나거던
시원한 바다나 하나
우리들 사이에 두어야지>
=徐廷柱:'우리 데이트는-善德여왕의 말씀 2'

未堂 徐廷柱 선생은 6.25의 참화속에서 신라정신을 캐내 자신의 詩 세계로 만들고 그것을 평생 붙들고 간 분입니다. 그가 추구한 '신라정신'을 그의 詩를 통해서 느껴본다면 청자의 그 푸르름 같은 것, 높은 하늘의 멀고먼 영원성 같은 것, 그리고 草原의 바람과 햇살 같은 것입니다.

未堂은 이렇게 말했습니다(1995년1월호 月刊朝鮮).

'1951년부터 53년까지가 내게 있어 신라정신의 잉태기였지. 6.25 전쟁중 극심한 절망감 속에서 나는 '國難이 닥쳤을 때 우리 옛 어른들 가운데 그래도 제 정신 차려 살던 이들은 난국을 무슨 슬기와 용기와 실천력으로 헤쳐왔던가?'하는 것을 절실히 알아보고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더듬거려 보던 끝에 신라정신과 구체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야.'

未堂이 말하는 신라정신의 요체는 멀리 보고 한정 없이 언제까지나 끝없이 가려는 영원성입니다.

'인생 행로를 제한받고 또 스스로도 제한하며 얼마만큼만 가고말려는 한정된 단거리주의가 아니라 한정없이 언제까지나 끝없이 가고 또 가려는 저 無遠不至주의. 신라인들에게서 우린 그걸 배워야 해. 그러면 불안과 불신과 반감과 충돌 따위를 훨씬 줄일 수 있겠지.'

'신라 鄕歌에는 삶에 대한, 사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자각이 들어 있어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나지. 자연과 인생에 대한 소박한 감정부터 깊은 체념과 달관, 그리고 安民理世의 높은 이념까지를 노래한 향가도 그 바탕은 國仙정신이야'

國仙 정신은 무엇인가?
'이 天地에 대한 주인의식이 신라인들에게 작용해 통일로 이끌어간 거지. 하늘과 땅을 맡아 생활하는 주인으로서의 강한 책임 의식. 이 점이 조선시대 유교가 우리 민족에게 弱者의 팔자와 분수에 다소곳할 걸 가르쳐서 亡國의 길로 유도한 것과 전혀 다른 점이지. 각 개인의 값이나 민족의 가치는 에누리당하자면 한정이 없고, 에누리만 해나가다가는 민족의 장래가 정말 암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나와 내 민족의 존엄성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지. 하늘과 땅과 역사의 주인된 자로서 말이네'

'민중을 억압하고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민중에게 아첨하고 추파를 던진대도 곤란해. 진심으로 민중과 일치하고 화합하려는 정신, 그게 중요하지. 신라에는 여러 훌륭한 어른들이 많지만 본받을 만한 인물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로선 金庾信 장군을 들겠어. 金庾信 장군을 배워라! 고난을 앞장서서 짊어진 모습을...'

그의 '金庾信 將軍 1'이란 詩는 이렇습니다.

<말과 사람이 함께 얼어 쿵쿵 나자빠지는
혹독한 추위 속의 어느 겨울날
고구려 평양으로 가는 험한 산길에서
新羅 최고의 군사령관 金庾信은
한 사람의 輜重兵 步卒이 되어
맨 앞에서 군량미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팔뚝을 걷어 어깨까지 드러내고
땀 흘리며 끌고 가고 있었다.
그래서 팔심이 더 세기로야
호랑이 꼬리를 잡아 땅에 메쳐서 죽인
金閼川을 신라 최고로 쳤지만
그런 김알천의 그런 힘까지도
金庾信 장군의 힘에다가 비기면
젖비린내 나는 거라고
신라 사람들은 간주했었다>

徐廷柱 선생은 신라의 화랑들이 가졌던 未來佛 미륵신앙을 자신의 詩 '신라 사람들의 未來通'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신라 사람들은 백년이나 천년 만년 억만년 뒤의 미래에 살 것들 중에 그중 좋은 것들을 그 미래에서 앞당겨 끄집어내 가지고 눈앞에 보고 즐기고 지내는 묘한 습관을 가졌었습니다. 미륵불이라면 그건 과거나 현재의 부처님이 아니라, 먼 미래에 나타나기로 예언만 되어 있는 부처님이신건데, 신라 사람들은 이분까지도 그 머나먼 미래에서 앞당겨 끌어내서, 눈앞에 두고 살았습지요>

그는 신라정신을 이렇게 定義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國仙道 정신이지. 이는 風流道, 風月道, 神仙道라고도 하는데 신라의 문장가이며 큰 학자이신 孤雲 崔致遠 선생이 쓴 글에 보면 풍류도 즉 국선도는 불교와 도교와 유교, 이 세 가지 정신을 모두 포함한다고 나와 있어. '

화랑세기라는 책을 보면 화랑도의 대표를 風月主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風流에서 어뜸 가는 청년이란 의미일 것입니다. 崔南善 선생은 風流란 말은 하늘의 밝음을 뜻하는 우리의 옛말 '부루'에 갖다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三國史記에 따르면 朴赫居世는 '하늘의 뜻을 본받아 세상을 다스렸고 땅이 주는 온갖 이익을 다 차지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하늘의 뜻에 맞추어 땅을 맡아 책임지고 이익을 얻는 주인의식이 國仙, 풍류 정신이란 것입니다.

신라정신을 설명하는 데는 하늘과 밝음이란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그 정신을 담은 것이 靑磁의 깊고 밝은 푸르름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언제나 한정 없이 끝없이 가고 싶은 영원성의 푸른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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妙한 일, 妙한 일
金相沃

※'-詩와 陶磁' 金相沃 散文集에서

소리는 청각(聽覺)이 아니라, 때로는 시각(視覺)으로도 능히 들을 수 있다. 일찌기 동양의 선인(先人)들은 오관(五官)이 맞트이면 빛을 듣고, 소리도 능히 볼 수 있다 했다. 그뿐인가 악성(樂聖) 베에토오벤은 말년에 귀가 절벽같이 먹었어도, 지휘봉(指揮棒)을 높이 들고 산발한 그 더벅머리를 마구 흔들며 마지막 은퇴(隱退) 연주를 지휘했다 한다. 그리하여, 만좌(滿座)의 청중으로 하여금 스스로 황홀(恍惚)한 경지에 몰리게 하였다니 참 묘한 일이다.

서양 사람의 종(鍾)은, 시간을 알리고 집회를 통고하는 하나의 연모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의 그것은 북과 함께 풍류를 주(奏)하는 중요한 악기다. 더구나, 신라(新羅)의 에밀레종을 보면, 그 명(銘)에 일렀으되 「圓空神體」라 했다. 즉 「둥글고 빈 것은 神의 몸」이라 풀이할지니, 차라리 종을 악기라 하기 보다 신(神)으로 보았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신을 찾고 신을 대하는 마음으로 종을 주조(鑄造)했던지라, 그 보상화문(寶相華文) 속에서 울려 나오는 전설(傳說) 같은 신비한 음색(音色). 에밀레, 에밀레― 어찌 아기의 원혼(怨魂)이 울어 그 어미를 부른다 하리. 오직 예술에 순교(殉敎)하는 신라 정신(新羅精神)을 다시 윤색(潤色)하여 불멸의 말씀으로 새겼음이니, 이 아니 묘(妙)한가.

대개, 천하(天下)를 무찌르는 자 사나이요, 그 사나이를 사로잡는 자 여자라고 하니, 묘(妙)하다. 일찌기, 남자는 총검(銃劍)과 같은 무서운 무기(武器)를 가졌지만, 아예 무기를 손에 쥐어 본 적이 없는 여자들. 그들은 다만 매력(魅力)이라는 무기로 능히 으악스럽기 그지없는 사나이들을 무참히도 꺽어 버린다니, 묘(妙)하다.

매력(魅力)이란 무엇인가. 그 매력이란 「魅」자의 문자 구성(文字構成)을 살펴보면 「귀신 귀(鬼)」곁에 「못할 미(未)」를 했다. 사람은 사람이되, 채 귀신(鬼神)이 못 되었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면, 과연 매력 있는 여자란 귀신은 아니지만, 귀신처럼 사람을 능히 홀릴 수 있는 힘이 있으니 묘하다.

사나이의 사나이다운 사나이는 천하를 정복하려는 장엄하고 웅장한 꿈을 가진다. 이 꿈을 정복하는 자― 여자는 되려 쬐끄만 보석(寶石)알 하나를 얻기에 오금을 못 편다니, 그 물질과 정신의 질량적(質量的) 조응(照應)이 참으로 묘(妙)한 일이다.

보석(寶石)이란 보석도 가지가지. 비취(翡翠)·호박(琥珀)·마노(瑪瑙)·수정(水晶)과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또 그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광채의 촛점이 옮겨져 범이나 고양이의 눈알처럼 반짝이는 호안석(虎眼石), 묘안석(猫眼石)이라 일컫는 보석이 있으니, 묘(妙)하다. 사람의 눈을 현혹(眩惑)케 하는 그 광채와 색채, 이것을 정밀한 현미경으로 분석하면 그 해당(該當) 물질 속에 함유되어 있는 불순물(不純物)의 작용이라고 하니 묘하다. 포돗빛 자수정(紫水晶), 석류알 같은 루비, 싱그러운 풀잎빛 비취, 현란한 다이아의 광채, 이것이 다 그 광석에 섞인 불순물의 조화일지니, 진실로 이 천연의 조화도 묘(妙)하고 묘하다.

어찌 불순(不純)으로 하여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비단 보석(寶石)뿐이리, 보석에 흘리는 여자의 마음 또한 보석처럼 불순할 수밖에 없으니, 묘(妙)하다. 그 묘한 불순(不純)의 미(美)로써 그가 스스로 보석에 흘리듯, 사나이의 마음의 눈도 보석(寶石)의 그것처럼 흐리게 하여, 그 생애(生涯)를 망치도록 흘릴 수 있으니, 또한 생각하면 생각사록 묘(妙)하다.

孔子 같은 성인(聖人)도 여자에게 얼마나 데었던지, 「계집과 소인(小人)은 가까이 하면 건방지고, 멀리 하면 원망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孔子를 배출한 한민족(漢民族)이 그 의사 소통(意思疏通)의 문자를 창제(創製)할 때, 계집「女」자를 곁들인 글자들을 보아, 그들의 여성관(女性觀)을 알 수 있으니 묘(妙)하다. 그 중에서 질투할 투(妬), 요망할 요(妖), 음란할 음, 간사할 간(奸) 자가 계집「女」를 끼고 있다. 그러고도 여자가 그들에게 얼마만큼 지독하게 간사(奸邪)했던가, 다시 여자 셋을 포갠 간(姦)자 하나를 더 지어 놓고, 스스로도 어처구니 없었으리니 묘하다. 그뿐인가 이 묘하다는 묘할 묘(妙)자 역시 계집「女」를 잊어버리지 않고 굳이 짝지어 주었으니, 어찌 그 더욱 묘하다 아니 하리.

孔子가 아무리 여자를 매도(罵倒)하였지만, 감히 그의 어머니를 욕하지는 못했다. 어머니가 비록 여자이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여자의 애정과는 사뭇 달라 부처님의 자비(慈悲)처럼 다시 거룩하게 떠올랐으니, 묘(妙)하다. 그러므로, 그 어미 「母」자는 계집 「女」자에 가로지른 일자획(一字劃)의 위아래로 점(點) 둘을 더한 글자다. 그러기에 어느 짓궂은 사나이는, 이 두 점을 일러 매력의 촛점인 여자의 유방(乳房)을 상징했다 하지만, 기실 영혼(靈魂)과 육신(肉身)위에 지울 수 없는 두 개의 표적(標的)이라 보아지니, 그 자형(字形)의 은유(隱喩)하는 바 묘미가 더욱 묘하다.

老子는 우주의 근원, 생명의 본존(本尊), 이름의 비롯됨을 오직 여자인 어머니에게 찾았다. 그것은 골짜기요, 그늘이요, 없는 것이요, 더구나 그것은 이름할 수 없는 것이요, 굳이 그것을 이름하여 부른다면 「어미」라고 하였으니, 묘(妙)하다. 곧, 없는 것이 없지 않고 숨은 것이요, 그 숨은 모양은 그늘이요, 그 그늘진 곳은 골짜기요, 그 골짜기를 이름해 부른다면 어미라는 것이니라 말했으니, 묘하다. 이 어미인 골짜기는, 본시 싱그러워 다시는 죽지 않는다 하여 일찌기 그의 「道經」에 「谷神不死」라 적어 놓았으니, 더더욱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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