遍照(편조)의 還生(환생)인 金正日

황장엽이 곁에서 본 김정일의 진면목. 편조는 고려 말 공민왕 때 국정을 농단했던 요승(妖僧) 신돈(辛旽)의 속명이다.
金日成의 ‘오리발’, 그리고 遍照의 還生인 金正日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金正日)이 드디어 중국 방문 길에 나선 모양이다. 그의 이번 방중(訪中)은 ‘천안함(天安艦)’ 침몰 사건 뒤에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가 방중 기간 중 ‘천안함’ 사건에 관하여 과연 어떠한 ‘오리발’을 내밀 것인지 궁금한 마음이 없지 않다. 1972년 평양에서 이후락(李厚洛)(당시 중앙정보부장/남북조절위원회 남측 공동위원장)을 만난 김정일의 아버지 김일성(金日成)은 느닷없이 스스로 그로부터 4년 전에 있었던 1968년의 ‘1.21 사태’를 거론했었다. 이 때 그는 “청와대습격사건이라고 하던가, 그 사건은 나도, 당도 모르게 당내 좌경맹동분자(左傾盲動分子)들이 저지른 것”이라면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에게 미안한 일”이라고 ‘사과’(?)하는 ‘오리발’을 내밀었었다.

김일성의 이 발언은 글자 그대로 ‘오리발’이었다. 그 같은 ‘사과’는 김일성이 비공개리에 단독으로 이후락을 만난 남이 안 듣는 자리에서 한 것일 뿐, 북한의 공식적 입장은 그 뒤에도 문제의 ‘1.21 사태’는 북한과 무관한 ‘남측의 자작극(自作劇)’ 라는 것이었다. 북한은 다음 해인 1973년 유엔총회에 제출한 ‘비망록(備忘錄)’에서도 ‘1.21 사태’는 “남측의 무장 애국세력이 일으킨 무력 항쟁이었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변함없이 주장했었다. 김정일이 이번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행여 그의 아버지가 1972년 이후락에게 내밀었던 ‘좌경맹동분자’ 운운 정도의 ‘오리발’을 내밀기를 기대해 본다는 것은 아마도 부질없는 공상(空想)일 듯 싶다. 십중팔구(十中八九)는 아마도 상투적인 ‘남측에 의한 자작극’ 타령을 재탕(再湯)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예의 ‘자작극’이라는 ‘오리발’로 김정일이 쉽사리 면피(面皮)를 할 수 있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왜냐 하면, ‘천안함’ 사건은 그 동안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 4개국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민-군 합동조사단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는 침몰 원인 조사 결과가 머지않아 공개될 예정이고 이를 통해 북한의 소행(所行)임이 ‘과학적▪객관적’으로 밝혀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북한이 이번 후진타오와의 회담에서 어떠한 ‘오리발’을 내놓아도 그 약발은 그때까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에 김정일의 방중이 서둘러 이루어진 것은 ‘천안함’ 침몰 원인 조사를 통해 북한의 관련 사실이 밝혀진 뒤에는 중국이 김정일의 중국 방문을 맞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일 것이라는 일부 추리(推理)가 무리가 아닐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이번 김정일의 방중이 자극하는 호기심(好奇心)의 하나는 지금 김정일에 이어 추진되고 있는 3대 째의 권력세습의 주인공인 그의 셋째 아들 정은의 동행 여부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언론에서 벌어지고 있는 설왕설래(說往說來)를 보면서 필자는 새삼 회상(回想)되는 일이 있다.

‘남북조절위원회 남측 대변인’ 일을 수행하고 있던 필자는 1977년 북한의 ‘조선노동당’ 이론기관지(월간)에 나타나고 있는 ‘당중앙(黨中央)’이라는 난해(難解)한 단어의 출현 빈도(頻度) 조사와 주로 일본으로부터 입수되는 북한정보 자료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1973년부터 “김일성의 큰 아들 김정일에 의한 권력세습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북한에서 추진되는 권력세습(Hereditary Succession in the Making in North Korea)”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작성하여 호주 멜본의 라트로브(La Trobe) 대학에서 열린 ‘아시아학회’ 연례회의에서 발표했었다. 그때만 해도 ‘세습’을 “타도해야 할 부르주아 사회의 유습(遺習)”으로 단정하여 이념적으로 배척하고 있던 ‘공산주의 국가’ 중의 하나인 북한에서 “권력세습이 추진되고 있다”는 주장은 학계(學界)에서는 호응을 받지 못했었다. 필자의 주장은 학계에서는 하나의 이단(異端)이었다.

이 논문의 자료 수집 과정에 필자는 일본으로부터 흥미를 자아내는 분석 자료를 입수했다. 그것은 김정일이 ‘남산학교’(고등학교)를 다닐 때 수업태도가 워낙 불량(不良)하여 학교에 등교(登校)하지 않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아버지 김일성이 학교 교과 과목 별로 ‘가정교사’를 지정하여 별도로 가르쳤는데 이때 이들 ‘가정교사’들을 총괄하는 ‘가정교사 단장(團長)’ 직책을 황장엽(黃長燁) 당 비서가 맡아서 수행했다는 것이었다. 이 자료가 상당히 신뢰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출처(出處)에서 입수된 것이고 또 내용이 그럴 듯 하게 생각되어 필자는 ‘출처’를 각주(脚註)로 달아서 이 내용을 논문 내용에 포함시켰었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1997년 황장엽 씨가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귀순(歸順)했다. 이때 필자는 자유민주연합의 비례대표로 15대 국회에서 외교통상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가 월남(越南)한 다음 해인 1998년 필자는 단독으로 황장엽 씨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필자의 논문을 소개하면서 황장엽 씨에게 그가 고등학교 학생 김정일의 ‘가정교사 단장’이었는지를 물어보았다. 황 씨의 대답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가 들려주는 김정일에 관한 에피소드가 매우 재미 있는 것이었다.

황장엽 씨는, 그도 김일성의 큰 아들이 김정일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김정일을 면대(面對)한 것은 김정일이 이미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59년1월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김일성의 연설문 작성을 전담하는 ‘서기’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김일성대학 철학강좌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황장엽 씨는 1959년1월 어느 날 당으로부터 “20일간 여행하는 데 필요한 준비를 해 가지고 내일 몇 시에 평양역으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튿날 지시한 대로 준비를 해 가지고 평양역에 가 보니 그가 ‘소련공산당 20차 당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기차로 모스크바로 떠나는 김일성의 수행원의 하나더라는 것이었다. 거기서 황장엽 씨는 아버지를 수행하여 모스크바 길에 동행하는 김정일을 처음으로 만났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황장엽 씨가 전하는 김정일과의 첫 대면(對面) 이야기가 매우 흥미진진(興味津津)한 것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걑은 내용이었다.

“나를 처음 만난 김정일은 나를 자기 아버지가 신임하는 서기라는 사실을 의식해서인지 예절 바르게 나를 대했다. 그런데 여행 도중 관찰한 김정일의 일동일정(一動一靜)이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잠시도 제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붙어서 움직였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등이 가려워서 손이 돌아가는 듯 하기만 하면 어느 틈엔가 아버지의 가려워하는 등의 부위를 벅벅 긁어주고 있었다. 아버지가 밖에 나서기 위하여 신발에 발을 대기만 하면 어느 틈에 그 뒤에는 신발주걱을 든 김정일이가 서 있었다.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때 김일성의 수행원들 가운데는 김일성과 동년배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잠시 보이지 않으면 고등학교 3학년생인 김정일이 아버지 수행원들을 모아서 회의를 주재하면서 참석자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또 과제에 대한 조치 결과를 보고 받아서 그것을 김일성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김정일을 보는 김일성은 '귀엽기 짝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런 장면들을 며칠 보는 사이에 나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이것, 이 나라에 편조(遍照)가 환생(還生)하는 것은 아닌가. 이 아이가 큰 화근(禍根)이 될 것 같구나.....”

편조는 고려(高麗) 말엽 공민왕(恭愍王) 때 국정을 농단(壟斷)했던 요승(妖僧) 신돈(辛旽)의 속명(俗名)이다. 실제로, 아버지 김일성에 이어 북한의 세습 독재자가 된 김정일이 국정 농단 행각은 신돈을 무색(無色)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었다는 것은 남북한의 7천만 동포들이 체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번 김정일을 태우고 중국으로 향한 기차에 과연 그의 아들 정은이 동승하고 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쩌면 김정일이 그의 아버지의 모스크바 나들이에 수행했을 때의 나이보다 일곱 살은 더 먹었을 나이인 그의 아들 정은이 이번 김정일의 기차에도 동승하여 그의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했던 식으로 아버지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고 구두주걱을 대주며 아버지의 수행원들을 모아서 “중국 쪽에서 천안함 문제를 거론할 경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는 꼭지가 포함된 과제를 나누어주고 그 대답을 취합하여 아버지 김정일에게 보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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