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2월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북한 공비들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해 참혹하게 살해된 反共소년 故 李承福(이승복) 군의 42주기 추도식이 내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이승복 기념관에서 거행된다. 이승복군을 포함한 세 어린이와 어머니를 무참히 살해한 공비의 만행을 비호하려는 세력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은 조선일보의 誤報(오보)라고 억지를 부리다가 법적으로 斷罪(단죄)당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李承福군의 진실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월간조선 李東昱 기자였다. 1998년 10월호에 그가 쓴 기사중 일부를 소개한다.
生日
1968년 12월9일 오후, 承福(속사국민학교 계방분교 2학년. 9세)이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학교를 다녀왔다. 양력으로 그가 태어난 생일이었고 식구들이 이 사실을 다 알고는 있었지만 별다른 준비도 없었다고 형 李學官씨는 말한다.
그날 오후 學官은 옥수수대를 걷어 마당에 쌓아 놓고 있었다. 어머니 周大河씨는 부엌에서 메주 콩을 삶았다. 承福이는 뛰어 놀다 해질 무렵 방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李錫雨는 지게를 메고 그의 어머니 姜씨와 함께 현재 「윗삼거리」라 불리는 아랫동네로 내려갔다. 공비 출몰로 疏開명령을 받은 姜煥起씨(80·농업)가 「윗삼거리」로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짐을 다 옮긴 姜煥起씨는 동네 주민 劉景相씨(65·현재 京畿道 驪州 거주), 崔재복씨(작고), 강세혁씨 등과 함께 술을 받아 마시고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승복이의 집은 해가 일찍 떨어졌다. 황토 흙바닥에 볏짚으로 만든 돗자리를 깔아 둔 방에서 그날 저녁상을 물린 이 집 식구들은 제각기 할 일을 찾았다. 어머니 周大河씨는 윗방에서 메주를 쑤고 있다. 아랫방에서는 승복의 어린 두 동생이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다.
승복이는 아랫방 방문 가까이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손수 만든 앉은뱅이 책상이었다고 한다. 學官은 아랫방 방문 맞은 편 벽에 기대 앉아 옥수수알을 가고 있었다. 그가 앉은 자리는 윗방으로 통하는 쪽문이 열려 있어 어머니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바로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李學官씨는 밖이 캄캄했고 저녁식사를 마친 직후였기 때문에 오후 6시경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아버지라면 항상 헛기침을 하는데 이번 인기척은 좀 이상했다는 것이다. 그는 『방문을 열었더니 밖은 어둠뿐이었고 안개가 자욱했어요. 두 번이나 「누구세요」 하고 소리쳤지요. 몇 명이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누구신지 들어 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무서움 같은 건 없었습니다. 도둑이 들어오더라도 가져갈 게 뭐 있어야지요. 그런 데 안개 속에서 군복 같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총을 들고 나타났어요.
무장공비가 뭔지도 몰랐던 저는 「군인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에 우리 동네로 총들고 다니던 사람들이 군인이라 하니까, 그날 밤에 우리 집에 나타난 사람들도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던 겁니다』
『북한이 좋니? 남한이 좋니』
그들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방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메주콩을 밟던 윗방으로 두 명이, 아랫방으로 세 명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 겪는 일이라 멍하니 내 자리로 돌아와 윗방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도 군인인 줄 안 모양입니다. 윗방에 들어온 공비 두 명은 문턱에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앉으시오」라고 했어요. 그들 중 하나가 「이거 신발을 벗지 않아도 되겠소?」라고 말했어요.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메주콩을 계속 밟으면서 「촌에서 다 그렇지요. 뭐」라고 말했던 게 생각납니다.
나는 안심하고 벽에 기대 앉았습니다. 아랫방으로 들어온 세 공비는 방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소총을 든 한 명이 제 옆으로 다가와 무릎을 구부리고 앉더군요. 제 옆으로는 옥수수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다른 한 명은 문 가까이 서 있었고. 맨 뒤에 들어온 공비는 승복이가 숙제하던 책상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승복이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서 얼마 안 지났지요. 승복이 곁에 앉은 놈이 승복이가 보고 있던 책장을 넘겨보더니 말을 걸었습니다. 뭐라고 몇 마디 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승복이가 쥐고 있던 연필을 잡으며 「너, 이 연필이 어디서 났나?」 하는 거예요. 승복이는 말을 똑부러지게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날도 그랬지요. 「샀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놈이 이번에는 「공책은?」 하고 물어요. 「이것도 샀어요」라고 대답하는데 승복이는 불만스러운 것 같았습니다. 몇 마디 말이 더 오갔지요. 그러다가 그 공비가 「야, 너는 북한이 좋니? 남한이 좋니?」하고 물어요. 승복이는 학교에서 배운대로 이야기한 것이겠지요. 서슴없이 「우리는 북한은 싫어요. 공산당은 싫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바로 그 공비가 「야!」 하고 고함을 지르면서 승복이의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순간 저는 자리에서 일어서려 엉거주춤했는데 제 옆에 앉아 있던 공비가 개머리판으로 어깨를 찍어 내렸습니다. 털썩 주저앉으며 보았더니 멱살에 잡혀 버둥거리는 승복이에게 문 가까이 서 있던 놈이 칼을 들고 승복이에게 다가서면서 입 속으로 칼을 쑤셔 밖았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죽은 승복이 입이 오른쪽 귀까지 찢어졌다고 합니다』
학살
승복이의 외마디 비명소리. 난자한 피. 이때 李學官씨는 자기 옆에 있던 공비와, 동생에게 칼부림을 한 공비를 밀쳤다고 한다. 기습을 받아 쓸어진 공비들은 재빨리 일어나면서 李學官씨에게 칼부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때 李學官시는 손으로 머리를 막느라고 손등에 칼날이 여러 번 관통당했다.
『피가 온 방에 뿌려지고 저와 제 동생이 죽는다고 고함지르고 바로 옆방에서는 어머니가 「악! 사람살려」 외치고…거의 동시에 터졌습니다. 그러자 잠자던 어린 두 동생들도 깨어나 울부짖기 시작했어요. 나는 엎드린 채 등에 여러 차례 칼이 박혔지요. 그 틈에도 저는 공비 중 한 놈이 동생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놈은 「이건 또 뭐이야」 하더니 막내의 두 다리를 한 손으로 번쩍 잡아 거꾸로 들어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벽에다 머리를… 패대기를 쳤어요. 영양실조에 걸려 배가 나왔던 셋째 동생도 같은 방법으로 패대기쳤어요. 그리고는 순식간에 조용해지더군요』
수없이 칼에 찔렸으면서 李學官씨는 의식은 비교적 또렸했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의 공비들에 의해 밖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알게 됐고, 잠시 후에 마당 한 쪽에 있던 퇴비장으로 자신이 던져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똑바로 누워 있는 모양이었어요. 이런 상태로 다시 칼을 맞으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방으로 들락거리는 사이에 슬그머니 엎드렸습니다』
한편, 李學官씨의 아버지 李錫雨씨는 「윗삼거리」의 姜煥起씨 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갑자기 일어났다. 함께 술을 마셨던 劉景相씨의 증언을 들어보자.
『그날 李錫雨는 술을 마시다 말고 「기분이 이상하다」며 가겠다는 겁니다. 우리들은 말렸지만 굳이 가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할머니더러 「주무시고 내일 올라오세요」라면서 지게를 울러 메고 부리나케 길을 나섰어요. 한 7시쯤 되었을 겁니다』
다시 李學官씨의 증언.
『거름더미에 엎어져 있었지요. 온 몸이 칼에 찔려 살아 있다는 생각도 안들었습니다. 그런데 幻影이겠지만요, 하얀 할머니가 나를 확 감싸면서 「아직은 엎어져 있거라. 죽은 척하고 엎어져 있거라」 하는 말이 들리는 거예요. 그 환영이 나를 지켜주었다고 지금도 믿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는데 발자국 소리가 들려요. 헛기침 소리도 똑똑히 들었습니다. 아버지였어요. 일어나려 해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그 할아버지가 아직도 내 위에 있는 것도 같았습니다. 나는 귀만 쫑긋하게 세우고 있었지요』
격투
현재 정신병원에서 요양 중인 李錫雨씨가 당시 사건 직후 아들 李學官씨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그가 집에 다다르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불이 모두 꺼져 있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헛기침을 크게 몇 번씩이나 하며 다가갔다고 한다. 집을 감싼 돌담을 돌아 마당으로 들어서자 웬 사내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이때 퇴비장에서 엎드려 있던 李學官은 아버지가 『누구야?』 하고 소리치는 걸 들었다고 한다. 공비 중 한 놈이 『아, 이제 오시오? 방에 들어갑시다』라고 응수하자 아버지도 『들어갑시다』라며 방으로 가더란 것이다.
李錫雨씨가 아들에게 남긴 증언에 따르면, 그는 아랫방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러자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진동해 방으로 들어가려던 걸 멈추고 문 양쪽 기둥을 꽉 잡았다고 한다. 뒤에서 공비 한 놈이 李錫雨씨를 밀다 안되니 李錫雨씨가 메고 있던 지게를 잡아 당기더란 것이다. 李錫雨씨는 지게가 당기는 대로 상체를 뒤로 뻗어 공비와 얼굴이 마주쳤다. 이때 비로소 李錫雨씨는 이들이 「공비」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공비들이 지게를 계속 잡아당기자 아버지는 지게를 벗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공비들이 아버지를 방안으로 밀어 넣으려 해 이들을 뿌리치고 부엌으로 뛰어들어갔는데 그 안에서 몇 명의 공비들과 다시 맞닥뜨렸답니다.
한 놈이 아버지를 쓰러뜨리고 깔고 앉았고 아버지는 있는 힘을 다해 배 위에 깔고 앉은 놈을 나자빠뜨리고 다가오는 두 놈도 힘껏 밀어붙여 넘어뜨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엌에서 뛰쳐나와 돌담을 넘었던 것이지요. 담을 뛰어 넘을 때 칼에 오른쪽 대퇴부가 찔려 절뚝거리며 도망을 쳤답니다』
퇴비장에 엎드려 있던 李學官도 아버지가 담을 넘어 도망가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사람살려!」 하는 소리를 딱 세 번 외쳤습니다』
담을 넘은 李錫雨씨는 공비들이 쫓아올까봐 길을 따라 가지 않고 높이 7m 가량 되는 벼랑 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거름더미에 쓰러져 있던 李學官은 이 모든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듣고 있었다.
『아버지의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되더군요. 몇 명이 뒤따라가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처음에 방에 들어온 공비들이 다섯 명이었는데 거름더미로 끌려 나오면서 얼른 보니 두 명 정도가 더 있었습니다. 이들은 밖에서 경계를 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李學官씨는 아버지를 뒤쫓아간 공비들이 그냥 돌아오자 마당에 서 있던 한 공비가 이렇게 소리쳤다고 기억한다.
『이 천치 같은 노무 새끼들. 세 명이 하나도 못 해치우고 말이야…. 빨리 해가지고 가자!』
그 직후부터 부엌에서 솥뚜껑 여닫는 소리, 방안을 뒤지는 소리, 닭장에서 닭 잡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李學官씨가 가장 오랫동안 들은 소리는 닭소리였다. 공비들에게 붙잡힌 닭들은 계속해서 퍼득거리며 울어댔던 것이다. 이 소리가 적막 속으로 사라진 것은 대략 5분쯤 지나서였을 것이라고 李學官씨는 말한다. 공비들은 계방산 쪽으로 도망갔다.
『조용하길래 비로소 몸을 움직일 수 있겠다 싶었지요. 퇴비장 거름을 헤치고 일어나는데 오른 손에 뭔가 물컹한 게 잡혀요. 어머니였습니다. 흔들어 보았는데도 꿈쩍도 않더군요』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어머니 상태가 어떤지도 잘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는 그때 입으로 피가 컥컥거리며 나왔고 숨도 가빴습니다. 제 몸이 어떤지도 몰랐지요』
半月形局집으로 탈출
가장 가까운 집은 30여 m 아래 쪽에 있었다. 사랑채와 안채가 있었는데 당시 안채는 비어 있었고 사랑채에만 공비 때문에 잠시 그보다 높은 고지대 산 위에서 내려와 머물던 노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기어서 갔는지 걸어서 갔는지 기억에 없습니다. 아랫집에 가니 깜깜해요. 다 자는 겁니다. 방문 열고 들어가서 자는 사람들을 깨웠지요. 사람 살리라고 하면서요. 노인 부부는 놀라 일어나더니 외양간에 가서 소를 꺼내오고 방안에서는 물건을 챙기고 하더니 아랫마을로 피난을 가는 겁니다』
李學官은 끙끙 앓아가며 이들의 뒤를 따라 다음 집으로 내려갔다. 이렇게 세 집을 들러 사람들을 깨웠으나 여기서도 마찬가지. 이들은 하나같이 짐을 챙긴 뒤 아랫마을로 앞서 내려갔다. 李學官은 간신히 이들 뒤를 따라갔다.
李學官은 숨을 겨우 내쉬면서 집에서 1㎞ 가까이 떨어진 「半月形局집」으로 향했다. 친척집이어서 확실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날 밤 하늘엔 별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가슴팍에서 품어나오던 피가 덜 흐른다고 느꼈다. 추워서 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름드리 밤나무 아래의 半月形局 집으로 들어서자 방마다 불이 켜져 있고 먼저 내려온 사람들이 안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됐다. 李學官은 부엌과 붙어 있는 아랫방 문을 열고 『아주머니 살려주세요』라며 엉금엉금 기어서 들어갔다고 한다.
당시 李學官씨를 맞아 돌본 사람은 李錫年씨의 부인 崔順玉씨(66·생존)였다. 기자는 지난 9월5일 밤 10시경 강릉시내에 살던 崔順玉씨 집을 찾아 가 증언을 청취했다.
『아이가 방으로 기어 들어오는데 全身에 피투성이였어요. 끌어당겨 보니까 세상에, 숨이 입으로 안나오고 등으로 컥컥 나오는 거에요. 숨을 내쉴 때마다 등에서 핏덩어리가 불쑥 불쑥 움직였어요. 머리는 피칠을 해가지고 꼭 닭벼슬처럼 돼 있고, 하여간 형편이 없었지요. 손도 칼로 아주 난도질을 해 놨어요』
그녀는 우선 피를 막아야겠다고 생각되어 급한 김에 이불을 뜯어냈다. 피에 젖어 꽁꽁 얼어 붙은 옷을 대충 벗긴 다음 이불 솜으로 되는 대로 갖다 막았다. 옷가지를 찢어 붕대로 사용했다. 그리고 입지 않던 남자 옷가지를 죄다 끌어 모아 추위에 떨고 있는 學官이에게 입혔다고 한다.
『아이를 따뜻하게 해 주면서 「왜서 이렇노?」 하고 물었더니, 「군인들이 왔어요」 하는 거예요. 「어떻게 됐노, 아이들은?」 하고 걱정이 돼서 물었지요. 그랬더니 학관이가 「다 죽었지요. 묻지 마요…하얀 할아버지가 날 안고 퇴비장에 눕히고…물, 물, 물 좀 주세요」 하는 겁니다.
그러자 퍼뜩 승복이가 떠올랐어요. 갸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똑똑하고 총기가 있었기 때문에 살아 있지 않을까 해서지요. 「승복이는 어떻게 됐노?」하고 학관이에게 물었더니 「죽었어요. 나는 안 그랬는데, 갸는 공산당이 싫다고 해서 칼로 찔려서 죽었을 거예요」라고 했어요. 입에 칼을 쑤셔 넣었다는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 말은 분명히 했다. 나는 「죽은 애는 죽어도 너는 살아야지…」라며 학관이를 부둥켜 안고 울었지요』
이렇게 承福군이 말한 『공산당이 싫어요』란 말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말이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李承福과 함께 죽임을 당한 두 동생과 어머니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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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0-20, 2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