擴戰을 두려워하다가 더 큰 전쟁을 부른 영국과 프랑스

히틀러의 라인란트 진주 당시 英-佛이 단호하게 대처했으면 2차대전은 없었을 것이다.

 

 

 1.

 

1936년 3월7일 새벽, 나치 독일軍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非무장지대로 규정되었던 라인란트로 步武(보무)도 당당히 進駐(진주)해 들어갔다.
 사실 라인란트 진주는 독일 軍部로서는 살떨리는 모험이었다. 1년 전 3월16일 독일은 再군비를 선언하긴 했지만, 아직 프랑스 등 주변 국가들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할 만한 변변한 戰力을 갖추지는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무렵 프랑스軍은 10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독일軍이 베르사이유 조약을 무시하고 라인란트로 진주할 경우 이를 응징할 수 있는 국제법적 권리를 갖고 있었다.
 
 -『나치 독일은 평화를 갈망한다』-
 
 이 때문에 독일 국방장관 블롬베르크 元帥는 독일군에게 라인란트 진주를 명령하면서도 프랑스軍이 반격을 가할 경우에 대비한 腹案(복안)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36계 줄행랑이었다. 사실 라인란트에 투입한 실병력이래야 고작 3개 大隊에 불과한 현실에서 독일군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알고 있었다. 프랑스와 그 동맹국인 영국이 독일의 라인란트 진주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1935년 3월10일 독일이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보유가 금지되어 있는 공군을 보유하고 있음을 공표했을 때에도, 같은 해 3월16일 再군비를 선언했을 때에도 그들은 국제연맹 이사회를 통한 유감표시 이외에는 어떠한 실질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1936년 5월21일 히틀러가 내놓은 평화제안에 기대를 걸고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날 히틀러는 『나치 독일은 평화를 갈망한다』면서 알자스-로렌 및 폴란드에 대한 독일의 영유권 주장 포기, 로카르노 조약의 준수, 라인란트의 非무장화 준수, 중포·重전차·각종 군함 등 침략병기의 폐기를 위한 협상 등을 제안하였다. 특히 영국에 대해서는 독일 해군력을 영국 해군력의 35%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의 英·獨 해군협정을 제안했다.
 히틀러의 평화제안은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한 부당한 제약들을 해제하고 독일을 국제 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복귀시켜 주기만 하면 독일은 유럽의 평화와 질서를 어지럽히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가득했다.
 유럽은 히틀러의 이러한 제안에 매료되었다. 영국 런던 타임즈紙는 『히틀러의 연설은 타당하였고 솔직하였으며 앞뒤가 잘 맞는 것』이라면서 『이 연설이 어느 곳에서나 진지하고 정확하게 깊이 생각한 끝에 하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고 극찬했다.
 영국은 바다에서의 영국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英·獨 해군 협정에 진지한 관심을 표시하면서 독일과의 협상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영국의 동맹국인 프랑스는 철저히 소외되었다.
 
 1936년 3월 7일 독일軍의 라인란트 진주는 히틀러 자신이 내놓았던 위의 평화제안에도 반하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독일의 추가적인 도발에 대비하는 의미에서 13개 사단을 독일과의 국경지대로 증파하는 한편, 외무장관 에티앤느 플란당을 영국으로 보내 독일軍을 라인란트에서 몰아내기 위한 공동 작전을 요청했다.
 하지만 영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요컨대 라인란트가 프랑스 땅은 아니지 않습니까? 독일은 그동안 비워놓았던 자기네 집의 빈 방 하나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한 것 뿐입니다』
 영국 外相 안소니 이든은 하원에서 『독일군의 라인란트 점령은 (베르사이유) 조약에 중대한 타격을 가한 것이지만, 우리는 독일의 행동이 전쟁을 야기할 위험을 내포한다고 추정할 아무런 이유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軍 작전참모부장을 역임한 알프레드 요들 大將은 후일 뉘른베르크 戰犯(전범) 재판에서 『당시 우리들의 실정으로 보아 국경에 증파되었던 프랑스군 부대는 능히 우리들을 분쇄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히틀러 역시 『라인란트에 진주한 후 48시간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신경이 곤두섰던 시간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 긴장된 시간을 히틀러는 「강한 의지력과 놀라울 정도로 태연자약했던 태도」로 견뎌냈다.
 
 - 독재자를 타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다 -
 
 『라인란트 점령은 군사작전으로는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유럽에 커다란 새로운 전망을 열어 놓았으며, 라인江의 다리를 건너 3개 大隊가 진주한 것으로 유럽의 전략 정세가 뒤흔들렸을 뿐 아니라, 다시는 회복시킬 수 없을 만큼 변경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오직 한 사람 히틀러(그리고 영국에서는 처칠)뿐이었던 것 같다.…1936년 3월 서구의 두 민주주의 국가는 중대한 전쟁의 위험없이 군국주의화한 침략적인 전체주의 독일의 대두를 막고 나치스 독재자와 그 제도를 붕괴시킬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가졌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사라지는 것을 내버려두었다』<윌리엄 L. 샤이러, 「제3제국의 흥망」>

 

2.

 

1938년 3월 오스트리아를 합병할 당시, 나치 독일이 영국·프랑스 못지 않게 신경을 썼던 나라가 있다. 바로 체코슬로바키아(이하 체코)였다. 체코는 당시 세계 7대 공업국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잘 무장된 35개 사단 이상의 병력을 보유한 중부 유럽의 强小國이었다. 체코는 프랑스·소련·영국 등과 직·간접적인 동맹을 맺고 있었다.
 
 - 「우리 시대의 평화」 뮌헨협정 -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던 3월11일 밤 駐獨체코공사 마스토니 박사와 만난 나치 독일의 제2인자 헤르만 괴링은 「체코는 독일을 두려워할 필요가 결코 없다」고 확약했다. 마스토니 공사도 본국 외무부 장관과 통화하고 난 후 체코는 오스트리아 문제에 개입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입술이 망하면 입이 시린 법. 오스트리아가 독일의 수중에 떨어질 경우 다음 차례는 체코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했다.
 체코의 주데텐 지방에 사는 325만 명의 독일계 주민들은 이미 1933년부터 히틀러의 사주를 받고 주데텐 독일당을 만들어 자치권을 요구하면서 갈등을 조성해 왔다.
 오스트리아 합병 2주일 후, 히틀러는 주데텐 독일당 당수 콘라트 헨라인을 베를린으로 불러들여「체코 정부가 결코 수락할 수 없는 요구들을 계속 제시」하여 체코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도록 지시했다.
 
 주데텐 사태를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자 6월초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수상은 「민족자결권」에 입각하여 주데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시사하기 시작했다. 영국·프랑스의 압력에 못이긴 베네슈 체코 대통령은 9월5일 주데텐 독일당의 지도자들을 초치하여 주데텐 지역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독일과 주데텐 독일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체코 내에서의 「자치」가 아니라 「독일로의 귀속」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실 이건 지나친 억지였다. 비록 주데텐 지방에 독일계 주민들이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주데텐 지방이 독일의 영토였던 적은 단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9월15일 베르히테스가르텐 山莊에서 히틀러와 회견하고 난 후 체임벌린은 『히틀러에게서 한번 약속을 하면 믿을 수 있는 사나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믿을 수 있는 사나이」는 이미 독일의 再군비-라인란트 進駐-오스트리아 합병-주데텐 사태에 이르는 과정에서 수없이 평화를 약속하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약속을 깨뜨렸던 前歷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영국이 유럽전쟁에 말려드는 일만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히틀러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내 줄 각오」가 되어 있었던 체임벌린은 이 사실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체코 정부와 군대, 국민들은 당초 독일의 부당한 침략위협에 맞설 각오가 없지 않았지만, 영국· 프랑스 등 우방·동맹국들이 히틀러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오자 눈에 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9월29일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주데텐의 할양을 내용으로 하는 뮌헨협정을 체결했다.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체코 정부의 대표는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그 결과만을 통보받았을 뿐이다.
 
 체임벌린은 귀국 후 열광하는 시민들 앞에서 협정문을 흔들며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큰소리를 쳤다. 윈스턴 처칠만이 『우리는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패배를 맛보았다』고 경고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9월 30일 체코 정부는 『우리는 버림받았다』고 개탄하면서 뮌헨협정을 수락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뮌헨 협정으로 주데텐을 제외한 체코의 독립은 보장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히틀러는 체코의 주권 존중에 대한 명시적인 보장을 미루다가, 이듬해 3월 15일 하카 체코 대통령을 협박하여 무력으로 체코를 倂呑(병탄)하고 말았다.
 
 -전쟁은 「武力」의 대결이 아니라 「의지」의 대결-
 
 체코가 히틀러의 침략 야욕과 영국·프랑스 등 우방·동맹국들의 배신에 희생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체코 자신의 책임은 과연 없는 것일까?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회부된 독일군 장성들은 한결같이 독일은 1938년 주데텐 사태 당시 체코를 침공할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이런 증언들은 만일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할 때 체코가 이를 방관하지 않았거나, 주데텐 사태 당시 영국·프랑스가 등을 돌리건 말건 결사항전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체코는 우방·동맹국들에게 외교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지나치게 의지하다가 그들이 등을 돌리자 항전의지를 잃고 주데텐을 내주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프라하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히틀러의 협박에 맥없이 國權을 포기하고 말았다.
 
 뮌헨협정은 전체주의 독재자에게 평화를 호소하며 일방적인 양보만 거듭하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일인가 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아울러 뮌헨협정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없이 우방·동맹국들에게만 자국의 안보를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는 점과 함께 국가간의 협상, 혹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武力」이 아니라 그 나라 정부와 국민들의 「의지」라는 점도 일깨워 준다.
 
 문득 「오늘날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하는 질문을 던져 본다.
 국가의 존엄과 생존, 국민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진 나라인가? 아니면 「불바다」운운 하는 협박에 맥없이 굴복하는 나라인가?
 우리 국민이 체임벌린 같은 얼치기 「평화의 사도」가 흔드는 空수표에 현혹되는 어리석은 국민이 아니기를, 나의 조국이 체코보다도 한술 더 떠서 상대방이 협박을 하기도 전에 알아서 기는 못난 나라가 아니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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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조갑제닷컴에 올라왔던 글이다. 지금의 연평도 포격사태와 관련해 보면 시사점이 적지 않다.

 

 한편으로는 도발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평화의 올리브 가지'를 흔드는 히틀러의 모습은 천안함 폭침을 저지르고도 6자회담과 남북회담을 제안했던 김정일의 모습과 유사하다. 일을 저지르고도 배짱을 튕긴다는 면에서도 히틀러와 김정일은 유사하다.

 반면에 전쟁의지를 보이지 못하고 동맹국에게 의지하면서 눈치만 본다는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당시 프랑스 지도부의 모습이 흡사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 프랑스의 동맹국이었던 영국, 체코슬로바키아가 의지했던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지금 대한민국의 동맹국인 미국은 훨씬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고 있고 동맹국으로서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정도라고 할까.

 대신 당시 히틀러에게는 의지할만한 동맹국이 없었던 반면에 북한에게는 중국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히틀러의 평화제안에 부화뇌동하는 영국 언론의 모습은 이 판국에도 햇볕정책만을 고집하는 민주당이나 노무현 정권 시절 서해5도 수역을 김정일에게 내주기 위해 고안되었던 서해평화협력지대안을 다시 만지작거리는 좌파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물론 당시 영국언론에게는 히틀러에게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반역의 고의'는 없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히틀러의 라인란트 진주를 방치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를 제거할 기회를 놓치고 후일 2차대전이라는 훨씬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전쟁의지를 갖지 못했던 체코슬로바키아는 망국의 비극을 맛보아야 했고, 그 후과로 전후에는 공산권에 편입되어 민주주의와 발전이 후퇴했다.

2010년 대한민국은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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