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할 이유, 전혀 없다

현행 헌법은 세계적으로 선진적인 헌법, MB가 개헌 이유로 내세운 것은 법률- 정책 통해 가능,

이명박 대통령이 1일 방송좌담회에서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동안 여권 일각의 개헌 논의에 대해 “이재오 특임장관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개헌을 빌미로 줄세우기를 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대통령의 뜻인 모양이다.

 

현재의 정치구도상 개헌이 쉽지 않다는, 아니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굳이 개헌을 주장하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여권 일각의 속내를 점치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다.

다만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운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몇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 시대의 변화에 맞게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그때(1987년)는 민주화를 하다가 개헌을 했는데 디지털 시대, 스마트 시대가 왔다. 거기에 맞게 남녀동등권의 문제, 기후변화, 남북관련에 대한 것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헌법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헌법이 시대의 모든 흐름을 다 반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은 크게 보아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만 헌법에 반영하면 된다.

 

예를 들어 미국이 남북전쟁 후에 노예제 폐지를, 20세기에 들어와 보통선거권과 여성참정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한 것은 민주주의의 확대, 남녀평등이라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 스마트 시대라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불과하다. 그로 인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파급효과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것이 헌법에 반영되어야 할 만큼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또 이를 헌법에 반영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헌법에 ‘모든 국민은 스마트폰 이용의 자유를 가진다’라든가, ‘모든 국민은 자유롭게 앱을 개발할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기라도 하자는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남녀동등권의 문제, 기후변화, 남북관련에 대한 것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솔직히 이명박 대통령이 현행 헌법을 단 한번이라도 읽어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지 의문이다.

 

남녀동등권은 이미 헌법에 규정

 

첫째, 남녀동등권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 헌법 제11조1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제32조 4항은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34조3항은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제36조 1항에서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하고 있고, 같은 조 2항에서는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거면 남녀동등권에 대한 규정은 차고도 넘친다. 여기에 또 뭔 소리를 덧붙이자는 건가? “남자들은 직장생활 등 사회생활에서 성희롱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라도 두자는 것인가? 개헌을 통해 남녀동등권을 강조하는 표현을 더한다고 한들 췌언(贅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기후변화 관련은 환경권 관련 규정으로 충분

 

둘째, 기후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헌법 제35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환경보전이나 환경권을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몇 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한국헌법은 세계적으로도 ‘선진적’인 헌법이라고 자랑할 수 있다.

 

사실 기후변화와 관련되는 규정을 꼭 헌법에 두어야 하는지부터 의문이다. 만일 기후변화 관련 규정을 두기 위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면, 훗날 물 부족 현상이 심화되면 ‘시대의 변화에 맞게’ 물 부족 문제 관련 규정을 두기 위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문제들은 환경 관련 하위법들이나 정책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헌법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는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황폐한 산림을 녹화(綠化)하기 위해 유신헌법에 산림녹화 관련 규정을 두었던가? 산림녹화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산림청을 만들어 내무부 밑에 두고, 산불을 낸 지방관들을 문책하고, 무엇보다도 산림녹화에 대해 대통령이 꾸준한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산림녹화에 성공했던 것이다. 기후변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설사 기후변화에 대한 헌법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해도 환경권과 국가와 국민의 환경보전 노력을 강조하고 있는 제35조 1항만으로도 충분하다.

 

남북관계 규정 손 볼 필요 없다

 

셋째, 남북관계에 관한 헌법규정을 손 봐야 한다는 주장은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현행 헌법은 제3조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는 한편, 제4조에서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3조의 실효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법학자들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제3조와 제4조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통일의 의지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온 자들은 대체로 친북좌파들 아니면, 괜히 ‘진보’인 척 해보려는 얼빠진 정치인들 뿐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헌법 제3조를 손대서 대한민국의 영토를 휴전선 이남으로 국한하자는 것인가? 아니면 종북좌파들이 거추장스럽게 여겨온 ‘자유민주적 통일’을 규정한 제4조를 개정하자는 것인가?

그 어느 쪽이든 간에 이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에 대한 훼손으로 단죄되어야 할 것이다.

 

2. 개헌을 통해 지역감정을 해소하자는 주장에 대해

 

이 대통령은 개헌의 또 다른 이유로 “대통령이 되고나서 보니까 국회에서 여야(與野)가 싸우면 영호남 싸움이 된다. 영남에서도 야당 의원이 나오고 호남에서도 여당 의원이 나와야 지역의 균형이 된다. 선거법을 바꾸자는 생각이 든다. (행정구역도) 100년 전에 농경시대 때 만든 것이어서 행정구역끼리 싸운다. 행정구역도 정보화 시대에 맞게 하자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이나 행정구역 개편을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기본적으로 개헌과는 무관한 문제들이다.

 

개헌한다고 지역감정 해소 되나?

 

‘국회에서 여야가 싸우면 영호남 싸움이 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정상배들 때문이지, 헌법의 문제가 아니다.

 

1~3공화국 시절에는 정치적 의미에서의 지역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호남 출신인 민주당 조재천 의원이 대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박정희 대통령은 1963년 대선에서 영호남에서 골고루 표를 얻었다.

 

지역감정이 문제가 된 것은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이 등장하면서였다. 1980년 광주사태를 거치면서 지역감정은 더욱 악화됐고, 김대중은 이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정치적 생명을 이어갔다. 물론 공화당이나 한나라당도 영남의 지역정서에 기대 재미를 본 것도 사실이다.

 

헌법을 골백번 바꾸어도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정치인들이 있는 한, 지역감정은 없어지지 않는다.

 

말이 났으니 말인데, 이명박 대통령이 진정 지역감정 해소를 원한다면 개헌을 외치기에 앞서 ‘영포회’인지 뭔지 하는 무리들부터 다스리고 지역편중인사부터 시정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설사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영남에서도 야당 의원이 나오고, 호남에서도 여당 의원이 나오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해도,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처럼 선거법을 개정하면 될 문제다. 선거법을 바꾸기 위해 꼭 헌법에 손을 대야 하는 것은 아니다.

 

행정구역 개편은 입법의 문제

 

행정구역 개편 역시 헌법 개정 없이 법개정만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제주도 신설/제주특별자치도로의 전환, 부산-인천-대구-광주-대전-울산 직할시(광역시) 승격, 창원-마산-진해 통합 등이 그 예이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는 미테랑 정권이 들어선 직후인 1982년, 지방에 권력을 이양하는 대대적인 지방행정개편을 단행했다. 이는 나폴레옹 이래 200년 가까이 계속되어 온 중앙집권체제를 혁파하는 일대 ‘사변’이었다. 하지만 이는 개헌이 아니라 일련의 지방분권 관련 법들을 제정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22개의 레종(광역단체)를 15개 정도로 줄이고 파리대도시권을 비롯해 11개 대도시권을 형성하는 지방분권개혁이 추진 중인데, 이 역시 개헌이 아니라 관련 입법을 통해 진행될 예정이다.

 

3. 결론 - 24년간 간직해 온 헌법, 소중히 여겨야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이 개헌의 필요성이라고 주장한 것은 모두 이치에 닿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나는 “헌법이 낡았으니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1987년에 제정된 현행 헌법은 우리 헌정사상 보기 드물게 여야 합의와 국민적 동의 아래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문제점이라는 것도 헌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헌정을 운영하는 이 나라 정치인들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 우리 헌법은 그 내용을 봐도 세계적으로 선진적인 내용들을 대부분 담고 있다. 9번이나 개헌을 하면서 그 때마다 좋은 얘기는 다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자유권적 기본권은 물론, 사회적 기본권에 대해 우리 헌법처럼 알뜰하게 규정하고 있는 헌법도 그리 많지 않다.

 

헌법전을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라. ‘이런 것까지 헌법에 규정하고 있나’ 싶은 규정이 하나 둘이 아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보장, 무죄판결을 받은 형사피의자-피고인에 대한 보상, 형사피해자 구조(救助), 여자와 연소자의 근로에 대한 특별한 보호, 국민의 쾌적한 주거생활,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 농-어업의 보호육성, 지역 간 균형발전, 중소기업의 보호-육성,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 소비자보호운동의 보장 등등......

24년 전인 1987년에 벌써 저출산 고령화사회를 예견했는지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제34조4항)는 규정까지 있다.

그야말로 ‘있어야 할 건 다 있는’ 게 현행 헌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헌법으로 별 탈 없이 24년을 지내왔다면, 이는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다. 학생봉기, 쿠데타, 날치기 개헌, 친위쿠데타, 유혈 소요와 군부의 재집권 등으로 한 헌법의 수명이 짧으면 몇 달, 길어야 7,8년에 불과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러니 제발 “헌법이 낡았으니, 이제 바꾸자”는 소리는 그만 하자. 지금 대한민국헌법은 우리가 충분히 사랑하고 존중할 가치가 있는 훌륭한 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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