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회-문화 權力 연구

사회권력과 국가권력


社會의 본질을 조직과 인간의 관계로 규정 짓는다면 사회는 국가보다도 더 역사가 오래이고 국가는 없어져도 사회는 지속된다. 국가는 권력이지만 사회는 생활, 즉 ‘모듬살이’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限時的이지만 사회는 영원하다. 국가 탄생 이전에도 가족, 부족이라는 사회가 있었고 무정부 상태가 되더라도 사회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는 정부보다 규모가 크다. 한국의 경우 정부 권력이 미치는 領域보다는 비정부 부문의 사회권력이 미치는 領域이 더 넓고 크다. 국가 권력과 사회 권력을 나누면 대강 이렇다.

*국가權力: 행정, 사법, 국회, 公교육, 군대 등. 군사력과 法的 강제력과 국가예산 집행력(자원 배분력)이 權力의 핵심요소이다.
*사회권력: 기업, 언론, 學界, 노조, 私교육, 非정부 단체, 문화, 예술 등. 사회권력의 핵심은 생활과 문화를 만드는 힘과 그 흐름과 분위기를 주도하는 동원력이다.

정부 부문과 민간 부문으로 구분하면 민간 부문이 사회권력의 領域이다. 정부권력과 사회권력이 충돌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최근의 튀니지와 이집트 사태는 시민사회와 국가권력의 대결이었다. 튀니지에선 사회권력이 승리하여 정권을 바꾸었다. 이집트에서도 사회권력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불출마 선언과 민주화 개혁의 약속을 받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람시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


사회權力의 핵심인 문화적 헤게모니의 위력을 간파한 이는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였다. 그는 1891년 이탈리아의 사르디니아 섬에서 태어났다. 그리스系와 알바니아系 부모 사이의 혼혈이었다. 네 살 때 下女가 안고 있던 그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곱추가 되고 말았다. 후천성 불구였기 때문에 그는 박해를 받으면서 자랐고 이 체험이 그의 독창적인 사회주의 계급혁명론을 만들어내는 한 심리적 동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1921년 그람시는 이탈리아 공산당이 창당되자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고, 다음해 코민테른(국제공산당조직)이 모스크바에서 창설되자 거기에 파견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파시스트인 무솔리니가 로마로 진격하여 정권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1924년 그람시는 이탈리아로 돌아와 지하로 잠적, 反파시스트 운동을 벌였다. 1926년 11월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들이 투옥될 때 그람시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그람시는 2년 뒤 징역 20년 4개월 5일을 선고받았다. 그가 감옥에서 8년 동안 생활하면서 쓴 ‘옥중서한’이란 책은 유럽 여러 나라의 공산주의 운동에 전략지침서가 되었다. 1934년에 가석방된 그람시는 1937년에 뇌출혈로 죽었다.
그람시는 사회주의 혁명의 수단으로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란 말을 만들었다. 교육, 언론매체, 法, 대중문화 따위가 중요한 역할을 떠맡는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기구에 의한 물리적 강제력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시민사회 내에 정착한 ‘대중의 同意’를 통해서 계급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진다고 그는 분석했다.
신념, 가치, 문화적 전통, 神話 등과 같은 상부구조적 현상이 일반대중 속에 깊게 파고들어가서 기존의 권력체계를 영속시키는 한, 이에 대한 계급해방투쟁은 그런 기존 가치관에 도전하는 對抗 헤게모니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창출해내어야만 그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람시는 사회주의 계급혁명은 하나의 사건, 혹은 일련의 사건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변해가는 하나의 有機的인 과정으로서 파악되어야 하고 사람들의 의식변혁은 사회의 구조개혁과는 결코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하부구조로서의 경제를 중요시했는데 그람시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의식, 관습, 가치관, 그리고 이런 것들을 유지하고 표현하는 언론, 교육, 대중문화 같은 상부구조를 중시했다.
쉽게 말하면 자본주의 체제는 법률이나 군대와 같은 물리적 힘에 의해서 유지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가 정당하다는 가치관과 의식이 국민들 사이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계급혁명을 성공시키려면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이런 이념적 헤게모니를 국가로부터 빼앗아 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언론, 학계, 예술, 문화 등 광범한 분야에 陣地를 구축하여 對抗 헤게모니를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이념적 헤게모니를 장악, 사회권력을 잡으면 정치권력도 차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機動戰과 陣地戰


이런 그람시의 혁명전략을 우리나라에 적용하여 체제를 변혁시키려면 대한민국이 딛고 있는 헌법적 질서와 애국적 가치관을 부정하고 파괴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가는 자기 정당성의 확신을 근거로 존립할 수 있는데 그 기초를 무너뜨려야 한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되는 나라였다는 논리를 국민들에게 심어주면 아무리 잘 살아도 自滅과 자살의 길을 걷게 된다. 그람시는 혁명적 변혁은 단순히 경제적 생산양식이 변해야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존재의 모든 자원들을 포괄하여 총체적으로 변혁이 진행되어야만 진정한 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정치, 문화, 사회적 관계, 이데올로기 등을 연결 짓는 ‘관계의 앙상블’이란 개념을 창안했다.
그람시는 하나를 변혁하려는 투쟁은 모든 것을 변혁하려는 투쟁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폭력적으로 權力기관을 장악하기 위한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전위조직으로서의 엘리트 黨보다는 광범위한 지배계층 및 시민들의 일상적 사회현실과 연결되어 있는 대중정당을 더 重視 했다. 그람시는 또 혁명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족적인 성향을 띠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마르크스 이론의 맹목적 추종보다는 이탈리아의 현실에 맞고 이탈리아 시민들의 열망과 관습, 그리고 욕구를 드러내는 言語전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 공산주의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스탈린이 소련에 앉아서 이탈리아의 혁명전략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지시를 내리는 따위의 혁명 모델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람시의 전략은 계급투쟁을, 단순히 계급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민중적 이익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위장함으로써 광범위한 지지계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운동을 지도하는 대중 정당은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문화현상에 대한 對抗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의 전파를 핵심적인 활동으로 삼게 된다. 그람시가 말하는 대중 정당은 ‘현대의 君主’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람시의 전략론에서 핵심적인 의미를 가진 용어는 機動戰과 陣地戰이다. 그람시의 용어사전에 따르면 機動戰이란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같은 정면 대결을 말한다. 쉽게 彼我를 구분할 수 있는 두 세력이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격돌하다가 한쪽이 명백하게 승리하는 식의 혁명이다. 그람시는 이런 기동전이 먹힐 수 있는 사회는 후진된 사회라고 보았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발달이 미숙하고 정치권력이 취약하며 노동조합과 압력단체나 정당조직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단계에서는 이런 폭력적 대결로 승부를 명쾌하게 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대중적 지지 기반 위에 서 있고 민간부문에 여러 조직들이 발달해 있으며 정부가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의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기동전은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즉 폭력적 계급혁명 전략은 먹혀들 수 없다는 뜻이다. 성숙한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동전이나 극적인 대결보다는 점진적이고 전면적인 陣地戰이 적합하고 기동전은 그런 陣地戰의 일부여야 한다는 것이다.
진지전은 광범위한 戰線에서 전개되는 혁명투쟁을 말한다. 일종의 정치적 참호전이다. 행정부, 입법부에 침투하여 진지를 만들고 그 진지를 중심으로 하여 사회주의 혁명이념 같은 對抗 헤게모니를 확산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노조, 학계, 언론계, 예술계, 종교계 등 그 사회의 모든 분야에 침투, 참호를 판 다음에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이념을 퍼뜨려 이데올로기적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람시는 이런 진지전이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유일한 交戰 방식이라고까지 단정했다.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언론,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분위기, 가치관, 학설, 예술공연, 논리, 그리고 용어를 확산시킴으로써 陣地 하나 하나를 확보해가는 식으로 장기적인 투쟁을 하다가 大勢가 유리하게 기울었다고 판단되면 陣地에서 뛰쳐나와 기동전으로 移轉하여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사회주의 계급 혁명을 성공시킨다는 것이 그람시 전략의 핵심이다.
그람시는 혁명을 어느 날 갑자기 극적으로 찾아오는 사건으로 이해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과정으로서의 혁명' (Revolution as Process)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혁명이란 것은 어떤 급격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舊사회 내부에서 시작되어 극적인 변화의 시기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사회 변화의 全과정이 혁명이란 뜻이다. 舊사회의 질서는 혁명에 의하여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新질서가 건설된 다음에 비로소 파괴된다는 것이다.‘과정으로서의 혁명’은 소수 엘리트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그 주체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保守혁명


민주화 시대와 겹치는 한국 사회의 左傾化 과정은 그람시가 그린 ‘과정으로서의 혁명’ 과 상당히 비슷하다. 좌익들은, 反자본주의적, 反대한민국적인 이데올로기를 전파하여 사회적, 문화적 헤게모니를 잡았고 2期에 걸친 좌경 정권까지 출범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사회주의 계급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민주적 시민사회가 선거를 통하여 좌익 정권을 몰아내는 ‘보수혁명’이 일어났다.
좌경정권을 군부 쿠데타가 아니라 선거를 통하여 몰아냈다는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 단계 昇格하였다. 자유민주적 성향의 시민사회의 힘으로 보수정권을 되찾았다는 점은 한국의 사회權力을 새로운 각도에서 분석하도록 만든다. 한국의 사회, 문화 권력이 좌익에 의하여 지배당하고 있다는 주장은 상당히 과장된 것이다. 선거를 통하여 좌익정권을 보수정권으로 교체할 수 있었던 시민사회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1.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가치로 하는 헌법체제가 작동하였다. 60여년 간 뿌리를 내린 자유의 나무는 바람이 불 때 저력을 보였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의 전통이 不變의 원칙으로 다져지고 있다.
2. 反共자유민주주의의 물리적 바탕을 제공하는 군대와 기업이 좌경화되지 않았다.
3.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행동하는 애국세력'이 조직되었다. 이들이 거리와 인터넷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4.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 보수언론이 反좌익적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확산시켰다.
5. 정권을 잡은 좌경세력이 북한정권에 굴종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국민들의 반발을 샀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對北굴종, 노무현 대통령의 저질 행각이 건전한 국민들의 상식과 맞지 않았다.
6. 북한정권의 실패는 좌경세력으로부터 좌익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설명할 근거를 빼앗았다.
7. 좌익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약화시키는 것 이상으로 자유민주 체제의 울타리는 좌익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힘을 갖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촛불난동


그러나, 李明博 정부 출범이 한국사회의 좌경화를 중단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배신당하였다. 李 대통령은 헌법을 무기로 삼아 反헌법적 從北세력을 약화시킴으로써 한국 사회의 가치관을 진실, 正義, 자유 위에 세우는 일을 시작하였어야 했다. 그는 취임사를 통하여 이념은 낡은 것이라고 규정하고 대결회피적인 ‘중도실용 노선’을 들고 나왔다. '이념은 공동체의 利害관계에 대한 自覺'이라고 한다. 누가 공동체의 敵이고 누가 동지인지를 구분하게 해주는 이념적 自覺이 부족한 이가 대통령이 되니 左右동거의 형태가 빚어졌다. 국가기관 안에 들어와 있던 反헌법적 從北세력의 정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敵과 동지의 구분은 간단하다. 헌법을 존중하면 동지이고, 헌법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세력은 敵이다. 역사관과 이념무장이 허약한 李 대통령은 자신과 닮은 참모들로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을 구성하였다. 정권 출범 직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狂牛病에 걸린다는 MBC의 선동으로 ‘촛불 난동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사회권력을 놓치 않은 좌경세력과 이념무장이 되지 않은 정권의 대결이었다. 좌경화된 사회권력의 위력은 대중동원력을 통하여 나타났다. 거의 석달간 이 군중은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無法천지로 만들었다. 공영방송 MBC, 국영방송 KBS가 거짓선동 방송을 일삼으면서 從北세력과 한패가 되어 反정부 시위를 사실상 主導하였다.
李明博 대통령은 對국민 사과만 거듭할 뿐 단 한번도 MBC 등의 선동방송을 비판하지 않았다. 진실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진실의 보루가 무너지니 正義, 즉 법을 제대로 집행할 수 없게 되었다. 법이 무너지니 시민의 자유도 침해당하였다. 보통 사람들도, 李 대통령이 쇠고기 협상을 잘못하였다고 사과하니 미국산 쇠고기는 위험하다고 오해하였다. 한때 국민들의 60% 이상이 광우병 위험성을 인정하였다. 방송의 선동과 좌익세력의 군중동원이 결합되면 단시간내에 국민들의 반 이상을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정보화 사회에 사는 인간은 대중매체(신문, 방송, 인터넷, 휴대전화 등)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다. 이 대중매체를 장악하면 여론을 만들고, 여론을 만들면 國政운영과 선거에 큰 영향을 끼친다. 정보화 사회는 정치에서 선전 선동의 비중을 압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장점은 자체수정 능력이다. 狂牛病 선동에 애국세력, 보수언론이 반격을 가하고 시위가 과격해지자 여론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진실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시위 진압능력이 뛰어난 한국의 경찰력이 잘 버티어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 수습할 수 있었다.


前근대적 생리와 결탁한 좌경이념


광우병 亂動 사태는 한국사회가 가진 치명적 약점을 노출시켰다. 국민들의 분별력이 약하고 보수정치세력은 기회주의적인데, 좌경세력이 선동에 동원할 수 있는 휴대전화, 인터넷, 트위터, 페이스북 등 정보기술의 인프라가 잘 깔려 있다. 북한정권의 천안함 爆沈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30%에 달한 것은 좌경세력이 동원할 수 있는 사회권력의 위력을 보여준다. 좌경세력이 사회권력을 동원, 국가권력을 상대로 한 宣傳戰에서 이 정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국사회는 겉으로는 대중민주주의 사회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보여주지만 선동이 먹히는 구조라는 점에서 근원적인 불안요소를 안고 있다. 이런 선동이 선거판에 적용되면 有權者들의 판단력을 마비시켜 反헌법적 정치세력에 국가권력을 넘겨주게 된다는 것을 체험하고도 국민적 반성이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좌경적 생리는 역사와 전통의 産物이다. 조선조 500년을 관통한 통치이데올로기는 朱子學이었다. 조선조는 주자학을 일본처럼 교양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정치와 일상생활을 규율하는 규범으로 삼고 이를 교조화하였다.
주자학적 가치관은 조선조의 생존전략을 對中사대주의로 고정시켰다. 事大主義와 주자학은 조선조와 백성들과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였다. 그런 前근대적 성격이 근대화의 도전 속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좌경세력은 그 殘滓(잔재)를 존립의 근거로 삼고 있다.
朱子學이 가진 거대한 세계관, 性善說에 기초한 교육과 성실과 도덕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관념론과 명분론과 도덕론은 僞善的 의식구조를 만들어낸다. 조선조는 주자학적 통치 이에올로기를 수호하는 학자들이 권력을 장악한 나라였다. 士農工商의 신분서열은 권력서열이기도 하였다. 국가와 사회의 기풍을 건전하게 하는 국가주의, 실용주의, 尙武정신은 억압되었다.
조선조 주자학자들은 淸貧을 덕목으로 삼았다. 같은 시기 유럽의 프로테스탄트들은 淸富정신을 자본주의 윤리로 발전시켰다. 조선조의 주자학 통치이데올로기는 실용과 과학정신을 말살하고, 貧國弱兵을 만들어 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시킴으로써 용도폐기되었지만 한국인의 심층심리와 행태 속에서 지금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前근대적인 주자학적 가치관에 도전한 대표 선수는 李承晩과 朴正熙이다. 李承晩의 자유정신과 朴正熙의 실용정신이 建國과 근대화 과정을 주도하였다. 李承晩은 자유를 富國强兵의 조건으로 이해하였다. 朴正熙는 군사문화의 실용주의와 과학정신이란 장점을 동원, 自助정신-自立경제-自主국방을 핵심으로 하는 근대화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하였다.
李承晩은 국군의 창설자이고 박정희는 군사 엘리트가 만들어낸 지도자였다. 고려 무신정권 이후 800년만에 처음으로 군인들이 집권세력이 되어 근대화를 추진하였다. 박정희는 士農工商의 직업적 가치관을 商工農士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주자학적인 위선적 명분론에 빠져 있는 지식인을 국가발전의 장애물로 보았다.
민주화운동은 이런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런 민주화운동 속에 공산주의가 민주주의로 위장하여 침투하였다. 주자학의 병폐인 위선적 명분론은 공산주의자들에게 借用되어 국가 건설자들을 공격하는 무기로 쓰였다. 한국에선 주자학적 가치관을 뒤집는 자유민주 혁명이 李承晩의 주도로 이뤄졌지만, 북한에선 주자학적 가치관이 家父長的 주체사상으로 연장되었다. 진정한 계급혁명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곳이 북한이다. 북한은 주자학적 명분론과 공산주의가 결합된 체제이다.


한글專用과 좌경화의 동시 진행


1987년 6.29 선언 이후 한국이 본격적인 민주주의 실천 단계로 들어가면서 이승만-박정희의 국가건설 노선에 눌려 있던 주자학적 명분론이 다시 득세하였고 여기에 편승한 좌익들이 부활하였다. 민주화 운동은 이들 守舊세력에게 우산이 되어주었다. 좌익세력은 前근대적인 생태계 속에서만 서식한다. 한국사회에서 좌익이 강한 것은 오랜 역사적, 문화적, 前근대적 생리와 결탁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자학적 명분론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현실 및 사실과 유리되고 自我부정으로 귀착된다. 과대망상적 역사관과 自虐的 역사관은 여기서 기인한다. 이런 역사관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파괴하는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행사한다. 몇 가지 사례가 있다.

1. 신라의 성공적인 민족통일 국가 건설을 민족배신 행위라고 매도한다. 허황된 민족주의로 민족의 탄생을 부정하는 모순을 범한다.
2. 李承晩이 이끈 대한민국 건설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부정하고 소련이 조종한 북한정권의 수립을 높게 평가한다.
3. 李承晩의 성공적인 農地개혁을 폄하하고 실패한 북한정권의 토지개혁을 높게 평가한다.
4. 朴正熙의 세계적 성공사례인 근대화 혁명을 부정하고 김일성의 세계적 실패사례인 주체사상과 세습체제를 옹호한다.
5. 국가건설의 공로자까지 親日派로 몰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려 한다.
6.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건물인 옛중앙청이 과거에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적이 있었다면서, 이를 트집 잡아 해방 50주년을 맞아 부수어버렸다. 민족정기 회복을 기한다면서 현대사의 중심 건물을 파괴한 것이다. 역사를 바로 세운다면서 역사를 파괴한 것이다.
7. 漢字는 한글과 함께 한국어의 두 표기 수단중 하나인데 漢字를 외국어라고 몰아붙여 한글專用을 확산시킴으로써 國語를 반신불수 또는 암호상태로 만들었다.

특히 한글전용으로 한국인의 國語실력이 떨어진 것은 사물에 대한 이해력과 善惡 및 眞僞의 분별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의 좌경화를 촉진시키는 土壤이다. 사회는 문화를 만들어낸다. 문화의 바탕은 인문학적 교양이다. 그 수단은 고급 언어와 古典읽기이다. 한글전용으로 韓國語는 70%의 語彙가 암호로 변하여 교양어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정확한 정보전달에도 장애가 생기고 있다. 이런 저급 언어를 쓰는 사회는 예의가 없고 부정확하며 부정직한 분위기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문화, Culture는 라틴어의 cultura에서 나왔고 의미는 cultivate, 즉 涵養(함양)하다는 뜻이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한글專用과 좌경화의 동시 진행으로 교양을 파괴하고 문화를 파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글전용은 文法을, 좌경화는 憲法을 파괴한다. 문법과 憲法이 무너지면 경제와 안보와 法治도 안전하지 못하다.


"사회? 그런 건 없습니다."


1999년에 미국의 주간지 타임誌는 마가렛 대처를 20세기의 20大 정치인 가운데 한 명으로 뽑았다. 法治주의, 작은 정부, 시장경제, 민간의 자율과 책임을 강조한 대처의 신보수주의적 개혁은 한국에서도 有力한 모델로 연구되고 있다.
대처는 아마도 가장 많은 名言을 남긴 정치인중 한 사람으로 꼽힐 것이다. 그는 말을 명쾌하고 도전적으로 하는 이였다. 대처는 1987년 9월23일 '우먼즈 오운(Woman's Own)'이란 잡지의 더글라스 키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요지는 이러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나 많은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잘못 가르쳤다고 생각합니다. '내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주어야 한다' '내게 문제가 있지만 정부를 찾아가면 경제적 지원을 해줄 것이다' '나는 집이 없다. 정부가 집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식이지요.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사회에 떠넘기고 있어요. 그런데 사회가 누구예요? 사회? 그런 건 없습니다! 개인으로서의 남자와 여자가 있고, 가족들이 있는 것뿐입니다. 정부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들을 통해서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먼저 스스로를 도와야 합니다. 스스로를 돕고 이웃을 돕는 것은 여러분들의 의무입니다. 삶이란 것은 주고 받는 거예요. 주는 것 없이 받을 생각만 하면 안 됩니다."

"사회? 그런 건 없습니다!"라는 말이 유명해졌다. 한국의 자칭 진보적 인사들은 인간의 모든 문제, 그 책임과 해결책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돌린다. 20명을 연쇄살인한 犯人의 책임도 사회의 냉대에 있다고 한다. 북한의 배고픔과 살육도 김정일이 아니라 국제사회에 있다고 한다. '사회'라는 개념을 만들어 모든 책임을 거기에 떠넘기곤 "우리는 결백하다"고 홀가분해하는 꼴이다. 이런 위선적 태도에 대처는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한 것이다.
社會라는 단어는 동양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일본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Society를 그렇게 번역하였다. society는 라틴어의 societas, socius에 語源을 두고 있다. 원래는 친구, 戰友, 우리 편이란 뜻이다. 학문적으론 인간관계로 맺어진 非정부적 조직을 뜻한다. '모듬살이'라는 한글 번역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란 단어는 의미가 모호하고, 광범위하고, 그래서 惡用도 많이 된다.
"사회? 그런 건 없습니다."
대처는 사회라는 말을 멋대로 사용하여 개인의 책임을 덮으려는 이들에게 직격탄을 쏜 것이다. 사회라는 막연한 개념보다는 개인, 가족, 국가처럼 구체적인 개념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보수주의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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