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26 사건 직후 주한미국 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은 弔問특사로 한국을 방문할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에게 보고한 電文에서 朴正熙를 냉철하게 평가했다.
<한국 역사에서 朴 대통령이 차지할 위치는 확고하다. 최근에 와서 정권의 정통성이 약화되긴 했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를 한국 근대화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으며, 분단과 戰亂과 빈곤으로 신음하던 사람들에게 눈부신 경제 발전과 자부심을 가져다 준 지도자로 보고 있다. 농촌 출신인 그는 농민들을 위한 애정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물론 그는 사교성 있는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국민들에게 무엇이 最善인지는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식의 자신만만함은 그의 모델이었던 일본 명치유신 시절의 영향이었다. 지금은 그의 위대한 성취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면서 다른 해결책을 요구하는 미래에 대비할 때이다.>
미국의 강대한 힘을 배경으로 삼아 그렇게도 朴正熙를 몰아세우면서 민주화세력을 비호해 왔던 글라이스틴 대사가 죽은 朴正熙에게 바친 최고의 찬사는, 그가 이른바 민주투사들을 아주 낮추어보는 보고를 워싱턴으로 보낸 것과 대조된다. 박정희를 압박하면서도 그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존 J. 무초 초대 한국주재 미국대사는 6.25 때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트루먼, 맥아더와 함께 우리 민족이 두고 두고 고마워해야 할 恩人이다. 그는 미국에서 은퇴생활을 하던 1971년 2월10일 역사자료로 남기기 위한 인터뷰를 했는데 6.25 前後 상황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 증언에서 그는 李承晩에 대하여 이런 평을 하였다.
"李 대통령은 아주 머리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45년간 한국의 독립이란 한 목표를 위해 달려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었고 이것이 그의 정치적 강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의지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독립투사로 단련된 성격을 국가원수가 되고나서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성적일 때는 훌륭한 역사적 이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아주 고차원의 시각에서 복잡한 세계 정세를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감정적으로 되면 그는 독립투사 시절의 본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한국인의 생존과 자신의 생존에 집착했습니다. 그는 의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매우 복잡한 인물이었으나 그는 위기 때 일처리를 잘 했으며 자신의 뜻을 고급 영어로 잘 표현했습니다. 그의 영어는 글과 말 무엇이든지 유창했습니다. 그는 제퍼슨식 민주주의자임을 자랑했습니다. 이 분야에 대한 그의 레토릭은 미국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외국인 부인(注: 프란체스카 여사)이 그에게 큰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 미국대사의 인물평은 李承晩, 朴正熙와 미운 정 고운 정을 다 나눈 1급 인물의 두 巨人에 대한 평으로서 경청할 가치가 있다.
,,,,,,,,,,,,,,,,,,,,,,,,,,,,,,,,,,,,,,,,,,,,,,,
한국 지도층 1000명의 한심한 인물觀
민족사의 2대 쾌거인 대한민국 건국과 신라三國통일의 원훈들을 외면한 조사결과.
趙甲濟
주간지 시사저널이 매년 발표하는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조사 결과가 최근에 공개되었다. 이 조사엔 ‘한국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인물’이란 항목이 있다. 역사적 인물까지 포함한 조사이다.
이 조사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고 각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했다. 즉, 행정관료, 언론인, 법조인, 정치인, 기업인, 금융인, 사회단체 활동가, 문화 예술인, 종교인에서 각100명씩 1000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이다. 따라서 한국의 지도층이 어떤 인물관과 역사관을 가졌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가장 자랑스런 인물 1위는 세종대왕으로서 28.2%의 지지를 받았다. 2위가 이순신 24.6%, 3위가 김구 24.3%, 박정희가 11.4%로서 4위였다. 이어서 반기문, 김대중, 광개토대왕, 박지성, 안창호, 정약용 順이다. 10위권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몇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민족사의 2대 쾌거인 대한민국 건국과 신라의 삼국통일 主役들이다. 李承晩 대통령은 박찬호, 최경주보다 한참 뒤인 27등이다. 신라 삼국통일의 3대 主役인 金庾信, 태종무열왕(김춘추), 文武王은 아예 이름이 없다. 조선조를 개국한 이성계는 43위이고 을지문덕, 강감찬은 58위이다. 박지원, 유시민은 들어었는데 민족통일국가의 원훈들은 다 빠졌다.
한국의 지도층은 자신들의 實存을 가능하게 만든 대한민국 建國과 신라의 통일을 무시하거나 어느 면에선 敵對的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7위인데 신라통일대왕인 문무왕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요사이 한국인들의 정신을 좀 먹고 있는 고구려 미화와 신라 죽이기의 흐름이 사회 지도층에도 스며 들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역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 역사를 敗者의 입장에서 보는 이들, 역사의 건설자를 낮게 보는 二流인물들이 한국을 대표한다고 한다. 민족혼은 이들 사이에 있지 않고 소수의 知性人과 건강한 생활인들 속에서 살아 숨쉴 것이다. 이승만과 김유신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절대로 대한민국 조종실에 들어가선 안된다. 역사관, 국가관, 인생관, 인물관은 밀접하게 연관된다. 인물관을 보면 그 사람의 국가관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을 기리는가를 보면 그 국가의 품격을 알 수 있다.
내가 한국의 10대 인물을 순위를 매긴다면 이렇다.
1위: 金庾信 태종무열왕 文武王(공동)
2위: 李承晩 朴正熙 세종대왕(공동)
3위: 李舜臣
4위: 金方慶
5위: 李秉喆
6위: 元曉
7위: 王建
8위: 李成桂
9위: 柳成龍
10위: 광개토대왕 근초고왕(공동)
[ 2007-10-27, 12:02 ]
,,,,,,,,,,,,,,,,,,,,,,,,,,,,,,,,,,,,,,,,,,,,,,,,,,,,,,,,,,,,,,,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인물 100명
1등은 모하메드, 영국사람이 가장 많고 독일系-프랑스-미국順. 과학자와 발명가가 最多, 이어서 정치-군사 지도자.
趙甲濟
'The 100. A RANKING OF THE MOST INFLUENTIAL PERSONS IN HISTORY'(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100명의 랭킹)이란 책은 미국의 저술가 미카엘 H. 하트가 썼다. 그는 善惡을 기준으로 등수를 매기지 않았다. 人類에 영향을 준 점에 충실하였다.
1등은 모하메드(이슬람의 창시자), 2등은 뉴턴, 3등은 예수, 4등은 석가, 5등은 공자, 6등은 사도 바울, 7등은 종이를 발명한 차이 룬, 8등은 구텐베르그, 9등은 콜럼버스, 10등은 아인슈타인이다.
11. 파스퇴르
12. 갈릴레오
13. 아리스토텔레스
14. 유클리드
15. 모세
16. 다윈
17. 秦始皇
18. 시저
19. 코페르니쿠스
20. 라보지에(프랑스 화학자)
21. 콘스탄틴 大帝(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22. 제임스 와트(증기 기관)
23. 패러데이(전기)
24. 맥스웰(물리학자)
25. 루터
26. 워싱턴
27. 마르크스
28. 라이트 형제
29. 징기스칸
30. 아담 스미스
100명을 國籍으로 나누면 영국사람이 18명, 독일계(독일과 오스트리아)가 15명, 프랑스가 9명, 이탈리아 8명, 그리스 5명, 러시아 4명, 스페인 3명이다.
미국은 8명, 중국은 7명, 인도 3명이다.
職種으로 분류하면 과학자와 발명가가 36명으로 가장 많다. 정치 및 군사 지도자는 31명, 사상가가 14명, 종교 지도자가 11명, 문학 예술가가 5명, 탐험가는 2명, 기업인이 1명이다.
세익스피어는 31등으로 33등의 알렉산더 大帝와 34등의 나폴레옹보다 앞이다. 베토벤은 45등. 현존인물로는 유일하게 고르바초프가 95등이다. 惡의 帝國을 피를 흘리지 않고 스스로 해체한 功이 인정된 것이다.
[ 2010-10-19, 09:00 ]
,,,,,,,,,,,,,,,,,,,,,,,,,,,,,,,,,,,,,,,,,,,,,,,,,,,,,,,,,,,,,
大자연이 大인물을 만든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나 요세미테에 가서 대자연을 바라보면 숨이 막힌다. 神을 느끼게 된다. 인간존재의 왜소함도 알게 된다. 인간이 겸손해지는 것이다.
趙甲濟
학생들에겐 운동과 樂器를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운동을 통해선 이기고 지는 법을, 樂器를 통해선 인내하는 태도를 터득한다. 운동과 樂器 배우기의 공통점은 똑 같은 행동의 반복, 훈련, 참을 성이다. 스포츠 게임에선 이기는 수보다는 지는 수가 더 많다. 이 세상에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다는 것,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아름다운 패배, 승리를 위한 패배가 있다는 것, 영원한 패배도 없지만 영원한 승리도 없다는 것, 삶에 대한 겸허한 자세 등등을 배우게 된다.
한국의 자연은 정겹다. 산과 들과 계곡이 무섭지 않고 편안하다. 반면 미국, 중국, 일본, 중동에서 만나는 자연은 重量感이 다르다. 장엄하고 경이롭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나 요세미테에 가서 대자연을 바라보면 숨이 막힌다. 神을 느끼게 된다. 인간존재의 왜소함도 알게 된다. 인간이 겸손해지는 것이다.
사막에서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 인간이 우주의 한 부분임을 실감한다. 인간의 生死가 우주의 섭리에 따라 이뤄진다는 것, 인간 생명과 우주의 존재가 一體라는 것, 사소한 데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의 어리석음을 가르쳐준다.
한국의 자연에서는 이런 절대성을 느끼기 어렵다. 한 외국인은 "일부 한국인이 세상 무서움을 모르고 멋대로인 것은 자연환경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大자연이 大인물을 만든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 한국 현대사의 두 大인물인 李承晩과 朴正熙는 한반도를 탈출했던 이였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박정희는 만주에서 큰 인물이 되기 위한 경험을 했던 것이 아닐까?
한국인은 해외 여행을 많이 한다. 이 여행을 통하여 大자연을 느낄 수 있으니 이 또한 大인물 배출에 좋다.
[ 2008-10-23, 16:40 ]
,,,,,,,,,,,,,,,,,,,,,,,,,,,,,,,,,,,,,,,,,,,,,,,,,,,,,,,,,,,,
일부 CEO들의 성숙되지 못한 인물관
어느 나라, 조직, 인물을 가장 쉽게 아는 방법이 있다. 그들이 어떤 인물을 기리느냐를 보는 것이다.
趙甲濟
아래 joins.com 기사를 읽어보면 한국의 CEO들이 존경하는 10대 인물중엔 두 사람이 빠져 있다. 삼국을 통일하여 민족의 토대를 만든 신라의 세 영웅-김유신, 김춘추, 문무왕 중 한 사람,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 建國을 지도하여 CEO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를 만든 李承晩. 삼국통일에 실패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을 1위로 뽑는다면 성공사례의 주인공인 김유신 등을 제외할 순 없다.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했던 김구를 존경하면서 건국 대통령을 거명도 하지 않는다면 고마움을 모르는 CEO들이다. 최초의 민족통일국가와 최초의 국민국가를 만든 사람들을 존경대상에서 빼다니! 이 두 쾌거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중국인이 되었던지 독재국가에서 살고 있을 터인데 말이다. 이 조사대상 CEO들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 줄도 모르는 한국인인 것 같다. 어느 나라, 조직, 인물을 가장 쉽게 아는 방법이 있다. 그들이 어떤 인물을 기리느냐를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일부 CEO들이 보여준 인물관은 아직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
[특별기획] “대기업 창업주에 후한 평가… 5,000년 아우르는 리더십 존경” [조인스]
5000년 歷史 움직인 100人의 大한국인
대한민국의 기업 경영자들은 어떤 역사인물에 더 의미를 두는 것일까? CEO 30명에게 <월간중앙>이 선정한 100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정주영·이건희 회장이 공동 3위에 올랐다. 역시 기업인은 기업인을 좋아하는 것일까?
CEO들의 선택은 남달랐다. 다른 설문에서는 이름이 보이지 않던 인물 여러 명이 Top 10에 등장했다. 개척정신의 상징인 광개토대왕은 글로벌 경쟁에 나선 CEO들에게도 역시 가장 존경스런 인물 1위였다.
모든 CEO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10명 중 한 사람으로 광개토대왕을 선택했다. “세종이 군사적 능력까지 갖춘 격”이라는 고구려연구재단 김현숙 연구원의 평처럼 광개토대왕은 거의 무결점의 리더였다. 기록상으로도 그는 “체격이 뛰어나게 크고 활달한 뜻을 가졌다”고 표현돼 있을 만큼 개인적 능력도 뛰어난 데다 철저하게 준비된 지도자였다.
광개토대왕은 리더십 외에도 CEO들이 본받을 만한 경영전략의 대가이기도 했다. 그는 총 7회의 정복활동 중 5차례를 직접 군대의 선두에 서서 전쟁을 지휘함으로써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위를 쌓아 나갔다.
광개토대왕은 특히 장거리 원정에서 승리를 거둔 뒤에는 정복지 주변을 순시하며 대규모 ‘개선 퍼레이드’를 벌임으로써 해당 지역의 귀족이나 토호세력의 저항 의지를 꺾어놓기도 했다.
요즘으로 친다면 고도의 홍보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중국과 대등한 천하의 중심이라며 ‘태왕’ ‘호태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처음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김 연구원은 “무리하게 중원 진출을 시도하지 않았듯, 합리적이고 실속도 챙길 줄 알았던 인물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평가가 달라질 여지가 없는, 거의 완벽한 군주”라고 광개토대왕을 평가했다.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지략과 불굴의 도전정신도 CEO들에게는 숭배의 대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CEO들은 광개토대왕에 이어 이순신을 존경하는 인물 2위에 올려놓았다. 흔들림 없는 충성심과 탁월한 용병술 등을 지닌 그는 경제·경영학자들도 <이순신 리더십> 등의 제목으로 여러 차례 서적을 출판할 만큼 경제전쟁을 치르는 CEO들에게도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서강대 경영학과 지용희 교수는 ‘이순신 장군으로 본 CEO’라는 논문에서 이순신 장군이 ‘한국을 대표하는 리더의 표상’이라며 그가 지닌 리더십의 원천으로 신뢰성과 공정성, 도전정신과 위기관리 능력, 창의성 및 혁신 추진 의지, 핵심역량 등을 꼽기도 했다.
특히 명량해전에 앞서 이순신이 선조에게 올렸다는 상소문 중 일부인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았나이다. 죽을 힘을 다해 막아 싸운다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今臣戰船尙有十二 出死力拒戰 則猶可爲也)”라는 문구는 많은 CEO들이 인생의 좌표처럼 여기는 말이기도 하다.
정주영·이건희 회장 동률 3위 랭크
다른 조사에서는 없었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이건희 삼성 회장이 3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CEO들에게 이들 두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3명의 CEO가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이건희 회장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았다.
재계 인사들은 정 전 명예회장의 사업 스타일을 “바둑으로 치면 처음부터 싸움바둑이다. 이기면 불계승, 지면 쪽박”이라고 해석한다. 정 전 명예회장은 한 번 믿은 부하는 끝까지 믿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표적이다.
1966년 이 전 시장은 태국 공사현장에서 경리를 담당하는 말단 사원에 불과했다. 당시 태국 인부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현장 직원들이 모두 달아났지만 이 시장은 끝까지 현장에 남아 금고를 지켰다. 당시 목숨을 걸고 금고를 사수한 이 전 시장은 1974년 35세의 나이에 현대건설 사장이 됐다.
이 같은 정 전 명예회장의 용병술은 그가 평소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을 자주 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나이가 어리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것과 사람의 능력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믿었다.
정주영 회장은 말년에 사업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요약했다.
“옆도 뒤도 안 보고 그저 죽자고 일을 했더니 쌀가게 주인이 되었다. 또 정신없이 일만 했더니 건설회사도 만들게 되더라. 그렇게 평생을 살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생존한 인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 10인에 올랐다. 설문에 참가한 CEO들은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인 ‘자율경영’과 ‘창조경영’에 동감을 표했다.
이 회장은 평소 삼성의 미래가 걸린 거시적 문제는 직접 챙기지만 실무는 이학수·윤종용 부회장 등 경영진에 위임한다. 또 매년 수천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과학기술잡지를 숙독하며 첨단 기기를 분해하는 등 스스로 상상력을 키우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이 회장은 평소 열 마디를 듣고서야 한 마디를 언급할 정도로 ‘경청’을 생활 신조로 삼고 있다. 부인 홍라희 여사가 비서팀에 전화를 걸어 “내일 회장님 출장은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가 공동 10위에 오른 것도 눈에 띈다. 박용성·박경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할아버지인 박 창업주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작은 면직물 상점에서 재계 10위권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두산그룹의 출발점이었던 인물이다.
1906년에 그는 지금의 전경련 성격을 지닌 한성상업회의소 설립에 참여했는데, 이 회의소는 훗날 대한상공회의소의 효시가 됐다.
정일환_월간중앙 기자(whan1@joongang.co.kr)
[ 2007-04-07, 18:14 ]
,,,,,,,,,,,,,,,,,,,,,,,,,,,,,,,,,,,,,,,,,,,,,,,,,,,,,,,,,,,
위대한 인물들의 위대한 觀点
위대한 지성인이 아니면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없다.
趙甲濟
역사의 흐름을 바꾸거나 역사를 만든 위대한 인물들은 예외 없이 위대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다. 위대한 지성인이 아니면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없다.
삼국통일의 세 主役중 한 사람인 金春秋(태종무열왕)는 동아시아의 覇者인 唐과 동맹하는 길만이 백제, 고구려를 이길 수 있는 방도라고 생각했다. 고구려는 唐과 싸우고, 백제는 倭와 손 잡고 있었지만 金春秋는 唐의 힘을 빌어 백제, 고구려, 왜와 맞서는 외교노선을 추구했던 것이다.
신라는 羅唐연합을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희생과 수모를 견디어냈다. 그러다가 두 나라가 백제에 이어 고구려를 멸망시킨 서기 668년에 가면 대결관계로 돌변한다. 唐이 백제, 고구려를 식민지로 통치하고 신라를 속국으로 설정하는 한반도 점령정책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하여 신라가 676년까지 對唐결전을 벌여 唐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하고 독립을 지켜낸다. 對唐결전은 문무왕과 김유신의 몫이었다. 세계최대의 강국과 동맹하되 자주적인 관점을 취한 점에 신라와 金春秋-金庾信-文武王의 위대성이 있다. 그 덕을 그 후 1300여년간 우리 한민족이 보았던 것이다.
세종대왕은 漢字가 훌륭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일반 백성을 위한 쉬운 글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한글창제는 愛民사상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세종대왕 같은 엘리트가 爲民사상을 갖기란 매우 어렵다. 과연 유교와 사대주의에 혼이 팔린 신하들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가 明나라의 권위에 도전하는 오랑캐짓이라고 반대했다. 이들 신하는 민중에 대한 사랑보다는 중국문화에 대한 숭배의식이 앞섰다. 위대한 관점은 위대한 정의감과 사랑에 기초하는 경우가 많다. 위대한 휴머니스트가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경우가 있다.
李承晩 대통령은 공산주의자와 합작하거나 동거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깨달았다. 그는 '공산주의는 호열자와 같아서 인간과 같이 살 수 없다"는 말을 했다. 그는 건국과정에서 이 관점을 관철시켰다. 그가 견지한 非타협적인 反共자유노선은 미국으로부터도 극우노선이라고 비판받았지만 세계사는 李 대통령의 노선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공산주의의 악마성을 맨 처음 알아본 한국인이 李 박사였다. 그가 지도자가 된 것이 대한민국의 축복이고 김일성 김정일의 불행이었다.
[ 2006-12-31, 10:25 ]
,,,,,,,,,,,,,,,,,,,,,,,,,,,,,,,,,,,,,,,,,,,,,,,,,,,,,,,,,,,,,,,,,,,,,
지난 천년의 1000大 인물
조갑제
1998년에 「고산샤 인터네셔널」이란 출판사가 만든 책 - 「1,000 years, 1,000 people - Ranking the Men and Women Who Shapend the Millenium」-은 지난 1천년간 세계를 만들어간 위대한 인물 1000명을 뽑아 순위를 매긴 것이다. 선발의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1. 영향력의 지속성: 1만점
2. 지혜와 美에 대한 영향력: 5000
3. 현대인에 대한 영향력: 4000
4. 기여의 신선함: 3000
5. 카리스마: 2000
위의 기준으로 뽑힌 1000대 인물중에서 50등 안에 든 사람들을 소개한다.
1. 요하네스 구텐베르그(인쇄술 발명가)
2.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미주 대륙 발견자)
3. 마틴 루터(종교개혁가)
4. 갈릴레오 갈리리(천문학자)
5. 윌리엄 섹스피어(극작가)
6. 아이자크 뉴톤(물리학자)
7. 찰스 다윈(생물학자)
8. 토마스 아퀴나스(신학자)
9. 레오나르도 다 빈치(화가)
10. 루드비히 반 베토벤(작곡가)
11. 존 로크(정치학자)
12. 모한다스 K. 간디(비폭력 독립운동가)
13. 미켈란제로 부나로티(화가)
14. 칼 마르크스(정치학자, 사상가)
15. 시그먼트 프로이트(심리학자)
16.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황제)
17. 알버트 슈바이처(의료봉사가)
18. 니콜러스 코페르니쿠스(천문학자)
19. 장 자크 룻소(사상가)
20. 아돌프 히틀러(독재자)
21. 아담 스미스(경제학자)
22. 조지 워싱턴(미국 독립전쟁 지도자)
23. 윌버 라이트(비행기 발명가)
24. 오르빌 라이트(비행기 발명가)
25. 르네 데카르트(사상가)
26. 루이 파스퇴르(의학자)
27. 피터 大帝(황제)
28. 토마스 알바 에디슨(발명가)
29. 영국의 윌리엄 1세(정복왕)
30. 단테 알리지에리(소설가)
31.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왕)
32. 에이브라함 링컨(미국 대통령)
33. 요하네스 케플러(천문학자)
34. 레오 톨스토이(소설가)
35. 존 세바스찬 바하(작곡가)
36. 볼테르(문필가)
37. 플랑클린 델라노 루스벨트(미국 대통령)
38. 윈스턴 처칠(영국 수상)
39. 아시시의 프란시스(종교인)
40. 니콜로 마키아벨리(정치학자)
41. 블라디밀 일리치 레닌(혁명가)
42. 페르디난드 마젤란(탐험가)
43. 징기스칸(정복자)
44.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소설가)
45. 매리 울스톤크라프트(여성운동가)
46. 렘브란트(화가)
47. 윌리엄 하베이(혈액순환을 밝힌 의사)
48. 시몬 볼리바르(남미의 독립혁명가)
49. 임마뉴엘 칸트(철학자)
50. 毛澤東(중국 혁명가)
이 1000명 랭킹에 들어 있는 사람을 국적으로 분류하면 미국이 267명으로 가장 많다. 영국이 173명, 프랑스 114명, 독일 75명, 러시아 33명, 네덜란드 31명, 스페인 27명, 중국 18명, 일본 17명, 인도 12명 등이다. 압도적으로 英美 사람 위주로 뽑힌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직업별로는 예술가와 문학인들이 31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정치인과 장군들 256명, 과학 기술자 219명, 종교 및 철학자 107명, 기업인 57명, 탐험 모험가 31명, 역사학자 및 법률가 18명이었다.
두 미국대사의 李承晩, 朴正熙 인물평
- 趙甲濟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11-04-05, 22: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