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空想도 못하였던 나라가 되었다”

한국은 1965~89년 사이 경제성장률 세계 1위를 기록하였다.
세계은행이 1965~1989년 사이 세계 40개 주요국 年평균 경제 성장률과 소득분배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 성장률에서 세계 1위, 소득분배의 평등성에서도 아주 양호한 국가로 나타났다. 성장 속에서도 균형적인 富의 배분을 이룩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것이다.

25년간(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정권) 한국이 세계에서 경제성장률 1위를 기록하였다는 것은 지도층의 능력이 최우등이었다는 뜻이다. 경제는 國政(국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0점 만점에 60점은 될 것이다. 경제에서 1등을 하고 있을 때 한국은 안보도 튼튼히 하여 北傀(북괴)의 再남침을 저지하였다. 민주주의와 복지의 기반도 갖추었다. 이 기간에 한국은 88 서울올림픽을 성공시키고, 무역흑자국 및 채권국으로 전환하였다. 굶는 사람을 없애고, 돈이 없어 병원에도 가 보지 못하고 죽는 이들도 사라졌다(1977년부터 의료보험 실시).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 민주화의 한도 풀었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뛰고 있을 때 나라를 운영한 세 군인 출신 대통령에게 특히 경의를 표할 만하다. 오늘 만난 한 60대 인사는 “나는 시골에서 자라면서 굶어죽는 이를 본 적이 있다. 지금의 이렇게 풍요한 생활은 내가 어릴 때 공상속에서도 그리지 못하였던 수준이다”고 했다.

5·16 쿠데타 직후인 1963년 한국의 1인당 GDP는 100달러로서 말레이시아(271달러), 필리핀(169달러), 태국(115달러)보다 못했다. 군인출신 대통령이 國政을 운영하던 30년간 한국은 GNP 규모에서 세계 37위(1960년)로부터 15위, 1인당 GNP에선 83위→30위, 무역부문에선 세계 51→11위로 도약하였다. 한국은 人權(인권)문제가 국제적으로 거론되지 않는 아시아의 두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이 풍요를 김정일 세력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네 대통령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잘 살면서도 더 잘 사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여 늘 “나는 못 산다”, “나는 억울하다”고 불평하는 국민이 많으면 선동꾼들에게 정권을 넘기고 정말 못 살게 된다. 박정희는 “최고를 더 최고로 만들어야 최저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부지런한 사람을 도와서 오늘의 풍요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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