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법한 對共수사 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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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伯林 간첩단 사건, ‘정치적 의도’ 아닌 한 記者의 행방불명과 대학교수의 자수가 발단 김일성의 칭찬까지 받은 從北인사 윤이상을 ‘평화통일 운동가’로 소개 ‘東伯林 사건’은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委도 ‘조작 아니다’라고 인정 國保法 위반한 문익환ㆍ임수경을 ‘(우리 정부가) 탄압했다’고 서술 親北ㆍ反체제 활동이 정당한 것으로 誤認(오인)할 우려 |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 親北ㆍ反체제 인사들을 美化ㆍ두둔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는 親北인사 윤이상ㆍ이응노를 ‘평화통일 운동가’로, 不法방북해 처벌받은 문익환ㆍ임수경 대해 ‘탄압했다’고 기술하는 등 적법한 對共(대공) 수사를 비방하고 이들이 벌인 親北행위에 대해 우호적인 性向(성향)을 보였다.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는 9단원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제 정세의 변화’의 ‘그 때 그 사건’(364페이지)에서 ‘東伯林(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967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은 3선 개헌을 위한 의석확보를 위해 대대적인 부정 선거를 저질렀다. 부정선거에 대한 비판여론이 고조되자, 중앙정보부는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였다. 유럽에서 평화통일 운동을 하던 작곡가 윤이상, 화가 이응로 등을 간첩으로 체포하여 국내로 압송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인 천상병이 장애인이 되는 고문수사로도 이들의 간첩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다.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정치적 의도로 사건이 확대·과장되었음을 밝히고, 불법 연행과 가혹 행위에 대해 정부가 사과할 것을 권고하였다.”
 
실체가 분명했던 ‘東伯林 간첩단 사건’
 
동백림 사건은 1967년 7월8일, 중앙정보부(現 국가정보원) 발표로 알려졌다. 1957년부터 북한은 동베를린에 거점을 두고 막대한 공작금을 동원해 서독과 유럽에 거주 중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포섭 공작을 펼쳤다. 이에 남한 유학생과 장기체류자들이 포섭됐으며, 그 중 11명은 평양에 다녀온 후 평화통일방안 선전과 각계 요인에 대한 포섭, 선거에서 ‘革新(혁신)인사를 지지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1967년 12월3일 재판부는 국가보안법·반공법·형법(간첩죄)·외국환관리법 등을 적용해 조영수·정규명에게는 사형, 정하룡·강빈구·윤이상·어준에게는 무기징역 등 피고인 36명 전원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朴 대통령, 6ㆍ8 국회의원 선거와 상관없이 中情에 수사 지시
 
노무현 정부 시절 활동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007년 10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동백림 사건에 대하여 정리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67년 4월14일, 西獨주재 조선일보 이기양 특파원이 ‘제5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 대회’ 취재차 체코 입국 이후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中情(중앙정보부)은 1967년 4월24일, 한국여자농구선수단 이재학 감독을 통하여 최초로 李 기자 실종사실을 확인했다. 이 사건을 접한 임석진(당시 국내 대학교수)은 북한이 李 기자를 납치한 것으로 확신하고 자신의 對北접촉 前歷(전력) 노출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돼 자수를 결심했다. 그는 이 사실을 평소 알고 지내던 홍세표(朴正熙 대통령의 처조카)에게 설명했다. 홍세표는 朴 대통령과 임석진의 만남을 몰래 추진했으며 1967년 5월17일, 2시간가량 면담이 진행됐다. 朴 대통령은 임 교수로부터 유럽 유학생들의 對北 접촉상황을 듣고 ‘신변에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수사 지시를 받은 중앙정보부는 임석진에 대한 조사를 통해 對共혐의자 40여명에 대한 명단 및 對北 접촉 내용을 파악,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朴正熙 대통령은 6ㆍ8 국회의원 선거 이전(1967년 5월17일)에 임석진의 진술을 통해 유럽 주재 유학생들의 간첩 의심활동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교과서가 밝힌 “부정선거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중앙정보부는 동백림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였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朴 대통령이 부정선거 여부와 관계없이 중앙정보부에 對共 용의자들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동백림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부정선거 여론 차단이 아닌, 한 기자의 행방불명과 그것을 북한 소행이라고 직감한 한 대학교수의 자수로 비롯됐다. 이런 배경 설명이 없는 교과서의 내용만으로는, 중앙정보부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간첩사건을 조작한 것처럼 판단할 수 있다. 
 
김일성의 칭찬받은 從北인사 윤이상을 ‘평화통일 운동가’로 소개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됐던 윤이상과 이응노를 ‘평화 통일 운동가’로 왜곡하고 있다.
 
 윤이상(1917~1995)은 대표적인 親北反韓(친북반한) 성향의 인물이다. 그는 김일성의 75회 생일 때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라는 노래를 선물하기도 했으며 김일성이 사망하자 “길이길이 명복을 비옵니다. 끝없이 우리 민족의 광영을 지켜주소서. 우리 력사상 최대의 령도자이신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앞길에 매진할 것을 확신합니다”라고 美化(미화)·찬양했다. 김일성 역시 윤이상을 칭찬하며 “조국통일 위업에 커다란 공적을 올렸다.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애국지사(2000년《김일성 敎示集》)”라고 추켜세웠다.
 
 윤이상은 1963년 처음 訪北(방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 이수자 씨는 그의 첫 방북 이유를 “강서고분의 사신도를 보고 싶어했기 때문”이라고 2006년 <한겨레신문>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방북 당시 윤이상은 북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았으며 동백림 사건 때 이 혐의가 인정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당시 중앙정보부 수사에서 윤이상은 금품수수 등 실정법 위반은 인정했으나 간첩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1979년 이후부터 북한을 드나들며 김일성과 잦은 만남을 갖고 親北 행보를 가속화한다. 이 무렵 김일성은 윤이상에게 “민족의 재간둥이 윤이상 선생”이라는 말을 했다. 
 
윤이상의 실체는 1992년 국가안전기획부가 발표한 ‘入北(입북)자수간첩 오길남 사건’을 통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났다. 1985년 윤이상의 권유로 가족과 입북한 오길남 박사는 북한의 선전요원으로 활동하다 1986년 탈출에 성공했다. 그의 아내와 두 딸은 탈출하지 못한 채 오 박사만 탈출한 후 독일 등지를 전전했다. 그 무렵 윤이상은 오길남 박사에게 협박에 가까운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다시 경솔한 짓을 하면 당신 가족을 가만두지 않겠다. … 왜 北을 욕하는 거요. 가족을 잃어야 정신을 차리겠소? 통일운동에 나서라고 하지 않았소? 왜 좋은 글을 써서 신문이나 학술잡지에 내지 않소? 그렇게 하지도 않으면서 통일운동을 자꾸 훼방 놓고 다니면 당신 가족은 죽는 줄 알라.” (오길남 著 《김일성 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주오》 中에서)
 
현재 오길남 박사의 아내와 두 딸은 북한의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응로ㆍ박인경 부부, 北傀의 지령 적힌 亂數表 소지해
 
‘韓國畵의 巨匠(거장)’이라 불리는 이응노(1904~1989)도 부인 朴仁京(박인경)과 함께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10년 11월, 출간된 尹應烈(윤응렬) 장군은 회고록 《상처투성이의 영광》에서 동백림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백림 사건 연루자들의) 위반 정도가 약했다는 것은 매우 恣意(자의)적인 해석이다. 지금 잣대로는 그것이 큰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당시의 급박한 대치 상황에서는 중대한 反국가행위로 인식될 수 있다. 6ㆍ8 총선 이전에 위법 행위 당사자의 제보로 수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애당초 정치적 목적으로 기획되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동백림 사건의 수사를 일부 담당했던 尹應烈 장군의 회고록 내용과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의 동백림 사건 관련 記述(기술)을 비교하면 사실관계 부분에 큰 차이가 있다.
 尹 장군은 당시 駐佛(주불)공사로 재직하면서 이응노ㆍ박인경 부부를 서울로 압송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중앙정보부 본부로부터 ‘李ㆍ朴 부부가 간첩 활동에 사용한 송수신기와 亂數表(난수표)를 수거하라’는 지시를 받고 베테랑 수사요원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 물증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북한 간첩들의 난수표를 보았다. 난수표는 특수 처리된 아주 얇은 용지의 넓이 3.5㎠, 길이 3.0cm 정도 크기였다. 그것은 직경이 담배보다 약간 가늘게 둘둘 말려 프랑스 고루아(golois)담뱃갑 안에 담배와 같이 숨겨져 있었다.” (《상처투성이의 영광》 中에서)
 
 난수표에는 확대경으로 읽어야 할 정도의 작은 활자가 가득 인쇄되어 있었다고 한다. 尹 장군은 당시 中情 요원들이 난수표 뿐 아니라 세포조직 명단 및 검거에 대비해 마련한 자살용 청산가리까지 확보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히고 있다.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는 이러한 사실관계는 생략한 채 윤이상과 이응노가 무고하게 연루된 것처럼 적고 있다. 교과서에 언급된 내용만으로는 윤이상과 이응노가 정확하게 어떤 활동을 해서 간첩 사건에 연루됐는지 알 수 없으며 ‘이들의 간첩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다’는 섣부른 결론까지 내리고 있다. 2003년 7월호《月刊朝鮮》는 ‘이응노ㆍ박인경 부부는 白建宇(백건우, 피아니스트)·尹靜姬(윤정희, 영화배우) 부부를 북한으로 납치하려 했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委도 ‘조작 아니다’ 인정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는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정치적 의도로 사건이 확대·과장되었음을 밝히고, 불법 연행과 가혹 행위에 대해 정부가 사과할 것을 권고하였다”고 덧붙이고 있다. 당시 과거사위는 동백림 사건에 대해 “관련자들이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하면서 동베를린(50명) 및 북한 방문(12명), 北側(북측) 인사로부터의 금품수수(17명) 등을 통해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맞다. 과장은 됐지만 조작은 아니다”라며 실체가 있는 사건임을 분명히 했다. 이런 내용을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는 아예 다루지 않았으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조작한 것처럼 기술했다.
 
뿐만 아니라 이 교과서는 1989년 발생한 문익환ㆍ임수경 不法 방북 사건에 대해서도 편파적으로 기술했다. 문익환ㆍ임수경 불법 방북은 남북한의 左翼(좌익)세력이 배후에서 합작, 對南(대남)공작 차원에서 일으킨 것이다. 여대생 임수경은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평양축전) 전대협 대표로 선발되어 동베를린을 거쳐 북한에 들어가 대한민국을 비방하는 행동을 했다.  임수경은 이 사건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中 1992년 특별 가석방된 뒤, 1999년에 복권되었다.
 
國保法 위반한 문익환ㆍ임수경을 ‘(우리 정부가) 탄압했다’고 서술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의 상임고문이던 문익환은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초청을 받아 정부의 허가 없이 1989년 3월25일부터 4월3일까지 북한에 들어가 조평통 위원장 허담과 회담, 연방제(赤化)통일, 팀스피리트 훈련 반대에 합의했다. 이 사건으로 문익환은 국가보안법상의 지령수수, 잠입, 탈출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93년 3월6일 사면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1989년은 직선제로 당선된 盧泰愚 대통령 시절이다.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 392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돼 있다.
“6월 민주항쟁으로 통일운동이 활발해져, 문익환 목사와 대학생 임수경 등이 북한을 방문하였지만 노태우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탄압하였다.”
 
이 교과서는 문익환과 임수경의 북한 방문이 不法이었음은 밝히지 않았다. 합법적 북한 방문인데도 정부가 탄압한 것처럼 유도하기 위한 생략이 아닌가 의심케 한다. 교과서는, 민주정부와 법원의 정당한 法治행위를 '탄압'이라고 표현했다. 학생들이 국가보안법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하려는 선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탄압’이란 용어는 임수경과 문익환에 대하여는 好感(호감)을, 대한민국의 法治(법치)주의에대해선 不信感(불신감)을 심어주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이, 공동체의 敵과 내통한 자를 法에 따라 처벌하는 행위를 ‘탄압’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대한민국은 유지될 수 없다.
 
이런 편향적인 기술로 인해 학생들은 동백림 사건과 이응노ㆍ박인경 부부, 문익환ㆍ임수경을 마치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가로 인식할 수 있으며, 親北ㆍ反체제 활동이 정당한 것처럼 誤認(오인)할 우려도 있다.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 서술돼야 함에도 이 교과서는 그런 원칙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記述(기술)했다. 이 교과서의 목표가 마치 북한 정권과 從北세력 편에 서서 대한민국의 안전망인 反共(반공)자유민주주의와 국가보안법을 해체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기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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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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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투성이의 영광》(윤응렬 著, 황금알 刊) ▲《과거사의 진상을 말한다 下》(조갑제 著, 월간조선 刊) ▲《김일성 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주오》(오길남 著, 자유문화사 刊)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