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惡行 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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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 인권문제는 신랄하게, 北 인권탄압에는 침묵 ‘천안함 의혹’ 믿는 학자의 글, 高校 교과서에 등장 거의 모든 교과서, 수많은 對北도발 사례 거의 다루지 않아 北核 문제 설명하면서 핵실험 사실 생략 |
 
 
1. 南 인권문제는 신랄하게, 北 인권문제에는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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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 관점’으로 北의 反인류적 범죄 비호 남한의 인권 문제는 사진까지 곁들여 자세히 언급 |
 
6種 高校 한국사 교과서들은 남한 인권 문제에는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에는 침묵했다. 1990년대 발생한 300만 대량餓死(아사) 사태를 비롯, 공개처형, 정치범수용소, 식량난 등 현존하는 북한 문제의 핵심인 인권 유린 문제가 수업시간에 다뤄지지 않게 된 것이다. 천재교육刊 교과서는 아예 ‘內在的(내재적) 관점’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접근하도록 학생들을 유도했다.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만이 ‘북한의 변화와 평화 통일을 위한 노력’이라는 단원의 ‘역사추적’에서 北의 식량난, 인권실태를 다뤘다. 이 교과서는 그러나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생존을 위한 북한 이탈 주민 문제’를 더 부각시켰다.
<국제 사회에서 바라본 북한의 중대한 인권 침해 사례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제약을 비롯하여 공개 처형, 정치범 수용소 운영, 종교의 자유에 대한 탄압, 거주․여행의 자유에 대한 제한, 성분 분류에 의한 인민들의 차별 대우 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인권 문제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생존을 위한 북한 이탈주민 문제이다. 韓中 국경을 통한 북한 이탈 주민이 늘어나자, 중국 정부는 이들을 체포하여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고 있다. (미래엔컬처그룹刊, 390페이지)>
 
‘코리아 인권’, ‘우리식 인권’ 소개한 천재교육刊 교과서
 
가장 歪曲(왜곡)이 심한 것은 천재교육刊 교과서였다. 교과서는 ‘북한이 개방에 나서다’(400페이지)라는 제목 하에 북한 관련 내용을 다룰 뿐, 북한 주민의 飢餓(기아)와 학살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인 김정일 정권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교과서는 단지 “1990년대 중반 북한은 극심한 자연재해, 계속되는 경제난으로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였다. 홍수와 가뭄 등으로 식량 생산이 크게 줄어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는 상황까지 발생하였다”면서 북한의 기아문제를 자연 재해 등 외부 요인 탓으로 돌렸다. 반면, 北核(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은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강성 대국을 목표로 내걸고 핵무기 개발에 나섰으며,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군사력 강화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핵개발과 군사력 증강을 옹호하는 듯한 서술을 했다.
 
北의 주장 옹호한 학자의 글 소개
 
천재교육刊 교과서는 ‘북한의 변화와 평화통일의 과제’ 단원의 ‘단원탐구(402페이지)’에서 남북한의 인권차이를 설명하며 다음 자료를 제시했다.
<3. 다음 글을 읽고 활동해 보자.
(가) 남북한 사이에는 인권관에 차이가 있다. 첫째, 인권을 대하는 관점에서 남한은 보편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고, 북한은 상대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둘째, 남한은 개인주의적 인권관을 갖는 데 비해 북한은 집단주의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셋째, 남한이 시민 정치적 권리를 중시하는 데 비해 북한은 사회 경제적 권리를 중시하고 있다. (서보혁, ‘남북한 인권에서 코리아 인권으로’)
 
자료 (가)의 출처인 ‘남북한 인권에서 코리아 인권으로’의 著者(저자) 서보혁(現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梨大 연구교수) 코리아연구원 기획위원은 ‘북한인권법안’에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며,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및 국보법 폐지를 주장해온 인물이다.
 
 서 씨는 2009년 4월 ‘한나라당 북한인권법안: 문제점과 대안 모색’이란 제목의 논평을 통해 “북한인권법안이 북한인권 개선에 기여한다는 취지를 바탕으로 정부와 민간의 북한인권 개선 노력을 구체화하고 있지만, 구체적 사항을 보면 정부의 기존 관련 정책을 재구성하거나 신규 사업의 경우 정책의 경직성과 북한의 반발을 살 것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인권법안은 결국 민간단체의 북한인권개선운동 지원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동 법안 제14조 민간단체의 非정치성,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최근 對北 삐라살포에서 보듯이 자칫하면 법안의 취지와 달리 남북갈등, 국내여론 분열만 초래하고 북한인권 개선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2010년 10월20일字, 참여연대 칼럼(제목: 천안함 사태 이후 한반도 정세)을 통해 “한국 정부가 발표한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의혹이 가시지 않는 가운데서 이명박 정부는 경제적, 군사적, 심리적, 외교적 방법을 總동원하여 對北 제재에 나섰다”며 북한에 의한 천안함 爆沈(폭침)을 부정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면서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선 이후 남북관계는 남한정부의 南北 합의 이행 무시와 북한의 先핵포기 요구로 후퇴하기 시작하였고, 천안함 사태로 최악의 상태를 지내고 있다. 이제 출구 전략을 찾을 때이나, 명분과 분위기가 아직 조성되지 않고 있는 형국”이라며 始終一貫(시종일관) 북한을 옹호하며 이명박 정부를 비난했다.
 
서보혁 위원, 과거 國保法 폐지에도 앞장섰던 인물
 
그는 또 2007년 10월17일, 코리아연구원 주최로 열린 ‘차기정부의 통일외교안보 및 사회통합정책 방향’ 포럼에 참석해 남북경제공동체 수립, 남북한 軍備(군비)통제, 남북연합단계 준비를 골자로 하는 통일 정책과 非核化(비핵화) 평화체제 수립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서 씨는 “안보에서는 국제질서와 남북관계의 변화 등을 고려해 韓美군사동맹 위주에서 多者(다자)안보협력으로 확대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이를 위해 “韓美상호방위조약 개폐, 합동 군사연습 중단, 주한미군의 동북아 기동軍으로의 변경 움직임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평화외교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정책 효과를 제고하고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공고화와 연결 짓기 위해 국보법 개폐, 징병제 운영의 투명성 강화 및 복무기간 단축 등의 병역제도 개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발맞춰 募兵制(모병제)로의 전환을 준비할 것”등을 주장했다.
국보법 폐지론자인 서 씨는 2008년 12월1일, ‘국가보안법 제정 60년 각계 선언’(총 6728명 서명)에서 학계인사(민교협/교수노조)자격으로 국보법 폐지에 서명하기도 했다.
 
천재교육刊 교과서는 ‘단원탐구’(402페이지)의 ‘역사문제연구소’ 기획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를 인용한 자료를 소개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나) 북한이 내세우는 우리식 인권의 주요 특성은 개인의 자유보다는 물질적 보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인권을 설명할 때, 언론․출판․집회․시위와 결사의 자유, 신앙의 자유, 거주 여행의 자유 등 시민적․정치적 권리보다 완전 고용, 무상 치료, 무상 교육, 무상 주택, 의식주 보장, 문화 시설 보장, 남녀평등 등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강조한다. 인민의 물질적 기초를 보장하지 못하면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인정하는 것은 가진 자들의 자유와 권리만을 인정하는 것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북한 현대사)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의 著者인 김성보(충북대 사학과 교수), 기광서(조선대 정외과 교수), 이신철(성균관대 東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은 모두 역사문제연구소 副소장, 연구위원, 연구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중 이신철은 천재교육刊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으로, 주요 저서로는 《뉴라이트 위험한 교과서 바로 읽기》, 《한국현대사와 사회주의》, 《우리 역사를 의심한다》 등이 있다.
 
 역사문제연구소는 강만길, 임헌영, 박원순, 이종석 등의 親北인사들이 각각 고문, 운영위원, 감사, 연구위원 등으로 참여하고 있는 단체다. 이들 가운데 임헌영은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 등 수차례 공안사건에 연루됐던 인물이다.
 남민전은 남한 內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할 경우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 ‘戰線旗(전선기)’를 제작하고, 공작금을 마련키 위해 ‘彗星隊(혜성대)’라는 조직을 만들어 대기업가 자택을 대상으로 절도 행위 등을 하기도 했다. 임 씨는 1983년까지 복역한 후 대통령 특사로 출소,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박원순은 2008년 2월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고문 실태에 대해 “정보가 제한돼 있어서, 워낙 폐쇄적인 국가라 알 수 없다”고 했던 인물이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국가보안법 1·2·3》 등의 저서를 통해 국보법 폐지와 좌파적 역사관 확산에 앞장서왔으며, 2000년 이후 줄곧 ‘아름다운재단(이사장 박상증 참여연대 공동대표)’의 총괄상임이사로 활동하며 親北ㆍ左派단체를 후원해왔다.
 
 천재교육刊 교과서는 이처럼 左편향적 사고를 가진 학자와 左派단체의 글을 인용하고, 북한 인권문제를 외부요인으로 떠넘기는 듯한 기술로 사실을 왜곡했다. 북한이 내세우고 있다는 ‘우리식 인권’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북한의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다루면서 김일성ㆍ김정일의 만행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북한 정권을 두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이외에 미래엔컬처그룹, 지학사, 천재교육刊 교과서에는 탈북자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나 탈북 이유를 식량난, 경제난으로만 설명하고 있을 뿐, 탈북자들의 인권 문제를 언급하는 교과서는 없었다.
 
 남한의 인권 유린 실태는 사진까지 곁들여 자세히 언급
 
이에 비해 남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6種의 모든 교과서들이 신랄하게 지적・비판하고 있다. 수많은 탈북자들이 증언하고 있고, 中北 국경에서 목격되고 있고, 全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아무 말 없거나 점잖고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는 교과서가, 과거 남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신랄하고 날카로웠다.
 
 각 교과서마다 민주화 과정을 다루고 있는 단원이 있는데, 각각 6페이지에서 많게는 16페이지까지의 분량이다. 교과서들은 여기에 이 단원에서 사진 및 구체적 사례까지 첨부해가며 남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진보당 사건(조봉암)-4ㆍ19 시위-유신체제 당시-5ㆍ18-삼청교육대-박종철-이한열-철거민 문제-전태일 焚身(분신) 사건이 6種 교과서에서 공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시위 진압 경찰에 의해 사망한 고등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 바다에서 발견되자(1960. 4. 11) 격렬한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미래엔컬처그룹刊, 359페이지)
“미국 대통령 카터를 비롯한 국제 사회도 박정희의 독재와 인권 탄압을 비난하였다.” (미래엔컬처그룹刊, 366페이지)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 1987년 1월 경찰은 한 청년의 죽음을 이렇게 발표하였다. 그 청년의 이름은 박종철이었다. 국민들은 청년의 목숨을 앗아간 야만적 고문과 이를 은폐하려는 경찰의 태도에 분노하였다. 또한, 민주화 요구를 폭력과 살인으로 억압하는 전두환 정권에 분노하였다. 그리고 이 분노들은 평화적 민주화 운동의 열기로 승화되었다. 과연 고문 없는 세상에 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전개되었을까?” (미래엔컬처그룹刊, 368페이지)
“삼청교육대: ‘사회악 일소’를 명분으로 젊은이들을 강제적으로 집단 수용하여 군대식 교육을 실시한 기관이었다. 정부에 의한 조직적인 폭력 행사로서 인권을 유린한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미래엔컬처그룹刊, 368페이지)
“전태일은 평화 시장의 노동 실태를 노동청에 진정했으나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언론도, 정치인도 이들을 외면하였다. 반공의 분위기 속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는 자칫하면 공산주의와 관련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이처럼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근로 기준법은 지켜지지 않았고, 노동자는 약자였다. 이에 전태일은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미래엔컬처그룹刊, 382페이지)
“유신체제 하의 독재와 억압 정치에 맞서 야당과 종교인, 대학생 등은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전부는 유신 체제 반대 운동에 대해 긴급조치권 등을 이용하여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지학사刊, 306페이지)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과 무기 징역이 확정되자 가족들이 절규하고 있다. 사형 선고 후 20여 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어 국제적으로 사법 살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 사건은 2007년 재심 결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천재교육刊, 363페이지)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 그 대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너무나 무자비한 만행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 없어서 너도나도 총을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 (광주 시민군 궐기문(1980. 5.25)” (천재교육刊, 367페이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던 음모가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였다.” (천재교육刊, 369페이지)
“(사진설명) 시위대에게 발포하는 경찰: 경무대 앞에서 경찰의 발포로 수많은 시민들이 죽었다.” (비상교육刊, 349페이지)
“김형은 체불 임금 요구하며 농성 중에/ 사장 놈 흔들다 고발되어 잡혀오고/ 열다섯 난 송군은 노가다 일 나간/ 어머니 마중 길에 불량배로 몰려 끌려 오고
딸라 빚 밀려 잡혀온 놈/ 시장 좌판 터에서 말다툼하다 잡혀온 놈/ 술 한잔하고 고함치다 잡혀온 놈/ 춤추던 파트너가 고관 부인이라 잡혀온 놈…“ -삼청교육대 설명 중 박노해 ‘삼청교육대’ 중 일부- (비상교육刊, 358페이지)
“선거 당일인 3월15일 오후 마산에서 학생과 시민들은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시위를 하였다. 경찰은 이를 무차별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실종된 학생이 약 한 달 뒤 마산 앞바다에 참혹한 시신으로 떠올랐다.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은 다시 격렬하게 시위를 일으켰다.” (삼화출판사刊, 347페이지)
“국제여론도 점차 나빠졌다. 미국은 박정희 정권의 인권 탄압에 유감을 나타내면서 주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였다.” (삼화출판사刊, 354페이지)
 
집필진들, 의도적으로 南韓 폄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
 
교과서에 사용된 사진 자료로도 남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교과서의 차별을 느낄 수 있다. 북한 주민의 상황이 담겨 있는 사진은 6種 교과서를 통틀어 단 두 종류뿐인 것에 비해 남한 인권 문제를 고발하는 사진은 무수히 많았다. [왼쪽의 두 사진은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390페이지)에, 오른쪽은 지학사刊(323페이지)에 실린 사진이다].
교과서 집필진들은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보단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남한의 인권을 더 가혹하게 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전체주의적 독재집단인 북한의 인권엔 침묵함으로써 형평성을 잃었다는 비판과 함께 대한민국의 헌법수호의 사명을 저 버렸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2. 무수한 對北도발에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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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엔컬처그룹, 법문사, 삼화출판사刊 교과서, 北의 對南도발 사례 全無 南北교류 美化‧강조하고 北의 對南도발은 묵살 對南도발 사례 배워야 反共의 중요성 깨달아 |
 
 6種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비교한 결과, 건국 이후 북한의 군사적 도발 및 테러 사례는 거의 다루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보다는 ‘우리식 사회주의’, ‘주체사상’, ‘독자노선’ 등을 강조한 경우가 많았다.
 ‘1ㆍ21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1968)’, ‘푸에블로호 납치사건(1968)’, ‘美 EC-121機 被擊(피격)사건(1969)’, ‘8ㆍ15 대통령 암살미수사건[陸英修(육영수) 여사 저격사건](1974)’, ‘아웅산 폭탄 테러사건(1983)’, ‘KAL기 폭탄 테러사건(1987)’, ‘천안함 爆沈(폭침)(2010)’ 등 북한 정권에 의해 자행된 7가지 주요 도발사건 수록 여부를 확인했다.
 
 미래엔컬처그룹, 법문사, 삼화출판사刊 교과서는 이 중 단 하나의 사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의 경우, 북한 도발 사례를 “무장공비 남파 등 군사적 도발을 통해 위기상황을 고조시켰다”고 포괄적으로만 서술했다. 천재교육刊 교과서는 1ㆍ21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대해 짧은 설명과 함께 생포된 무장간첩 김신조의 사진을 좌측 상단에 게재했다. ‘푸에블로호 납치사건’도 본문에 짧게 기술돼 있었다. 나머지 사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지학사刊 교과서는 1ㆍ21사태,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을 본문에 다뤘으며, 교과서 중 유일하게 아웅산 테러사건을 사진과 함께 본문에 실었다.
 비상교육刊 교과서도 1·21 청와대 습격사건과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에 대해 언급을 했다.
 
남북교류만 강조… 對南도발은 묵살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는 남북교류만 자세히 기술하고 이 같은 북한의 對南도발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한 페이지를 들여 ‘사진과 표로 보는 남북 교류’(395페이지)라는 제목 하에 자세히 남북교류를 현황소개하고 있다.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가 제시한 자료를 보면, 해가 갈수록 남북한의 교류는 활발히 진행되어 왔으며,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래프상의 증가하는 수치 만을 소개하며 성공한 듯 묘사되고 있을 뿐, 개성공단 근무자가 북한에 억류된 사례나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적자 상황 등 문제점은 찾아볼 수 없다.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 이후 2010년까지 북한은 要人(요인) 암살, 항공기 테러, 육상과 해상 도발, 대량살상무기 발사 등 무려 42만 5000여 차례나 정전협정을 위반했다. 이중 武力도발은 470여 건으로, 휴전 이후 북한의 큰 도발이 없었던 해는 1954년, 1956년, 1972년, 1988년, 1989년으로 단 5년에 불과하다. 年 평균 8.2회 꼴이며 이로 인해 軍警(군경), 민간인 합쳐 4119명이 납치되거나 사망했다. 연대별 주요 도발 건수를 보면 50년대 10건, 60년대 78건, 70년대 35건, 80년대 18건, 90년대 45건, 2000년대 35건이다. 최근에 들어서는 사이버 테러 등의 신종 대남도발도 발생하고 있다.
 
 앞에선 웃고, 뒤에선 도발을 꾀하는 북한의 和戰兩面(화전양면) 전술도 계속되어 왔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1960년대에는 연방제 제의 후 1·21 무장공비 및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일어났다. 1970년대에는 7·4 남북 공동성명 후 땅굴을 굴착하는 한편 8·18 도끼만행 사건이 일어났다. 1980년대에는 3者회담 제의 후 미얀마에서 아웅산 폭탄테러가 일어났고, ‘민족단합 5개항’ 발표 후 얼마 안 있어 KAL 858機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1990년대에는 정주영 씨의 소떼 방북과 차관급 회담 제의 직후 동해안 잠수정 침투사건이 일어났다. 2002년의 서해교전이 있었던 날은 2002년 韓日월드컵의 4강전이 있었던 날이었으며,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중 일어났다.
 
학생들도 對南도발 사례 배워야 反共의 중요성 깨달아
 
高校 한국사 교과서가 남한 군사정부의 부정적인 면은 자세히 기술했으면서 북한의 도발행태는 수록하지 않은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교과서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남북관계’하면, 과거 60여 년 동안 무수히 발생했던 북한의 대남도발이 아닌, 그럴싸하게 포장된 채 소개되는 ‘남북교류’만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는 과거 정부에서 실행됐던 反共(반공)정책의 원인이 북한에 있었음을 모른 채 ‘반공=惡(악)’으로 인식하게 되는 밑거름으로 작용하게 된다. 남북 교류를 소개하려면, 반드시 북한의 대남도발에 대한 내용도 함께 다뤄야 학생들이 북한의 전술을 올바로 깨닫고 反共의 중요성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주요 對南도발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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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
5월, 대성호 납북(10명 피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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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
2월16일, KNA機 납치(그해 3월6일에 탑승자 32명 중 24명 송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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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
1월, 해상분계선 인근에서 순찰중인 해군 ‘당포함’ 격침. 39명 사망, 40명 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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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5일, 포천 경원선 철도 폭파. 열차 5량 중 3량 탈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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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
1월21일, 청와대 습격기도 124군부대 무장간첩 31명 남파. 경관 2명-민간인 5명 살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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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3일, 美 푸에블로호 납북. (12월에 승무원 82명 전원 송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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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0일, 울진·삼척지역 무장공비 침투. 11월18일, 120명이 출몰하여 사회혼란 기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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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
4월15일, 美 정찰기 EC-121기 격추. 승무원 31명 전원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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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1일, KAL ‘YS-11’기 납북(70.2.14 탑승자·승무원 51명 중 39명 송환, 12명 미송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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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
6월5일, 해군함정 'I-2 정' 연평도 근해 공해상에서 납북. 승무원 20명 억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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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2일, 국립묘지 현충문 폭파. 간첩 1명 폭사, 1명 도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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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
2월15일, 어선 ‘수원 32·33호’ 격침. 피납 어부 3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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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5일, 북한에서 훈련받은 문세광, 朴 대통령 저격 미수. 육영수 여사 사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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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5일, 고랑포 제1땅굴 발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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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
3월19일, 철원 제2땅굴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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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
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도끼 만행. 미군 2명 피살-UN군 경비병 8명 중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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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
7월, 백건우·윤정희 부부 납치 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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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978년 8월, 서해 고교생 납치. 5명 납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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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1월, 신상옥·최은희 부부 납치. 5년간 억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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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노르웨이에서 수도여고 교사 고상문 씨 납치. 1명 납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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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7일, 판문점 제3땅굴 발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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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
3월, 한강 하구 무장공비 침투. 3명 전원 사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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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충남서산 무장 간첩선 침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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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
8월26일, 美 정찰기 'SR-71'기 미사일 공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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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
5월, 동해안 2인조 무장공비 침투. 1명 사살-1명 생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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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
10월9일,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 수행원 17명 순직-15명 중경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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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부산 다대포 간첩 침투. 2명 생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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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
11월23일, 판문점 총격사건. 北경비병 3명, UN 경비병 1명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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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
9월14일, 김포공항 폭탄 테러. 5명 사망-32명 중경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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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
1월15일, 백령도 근해 조업 중 '제27 동진호' 납북(김만철 일가 귀순에 선원 12명 억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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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7일, 북 경비정에 어선 ‘제31진영호’ 피침. 11명 실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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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9일, ‘KAL 858기’ 폭파. 115명 승객들과 승무원 전원 사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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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
3월7일, 양구 제4땅굴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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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
2월5일, 韓中 합작어선 '남해호' 납북. 1991.2.28 한국인 5명, 중국인 13명 전원 귀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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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
5월22일, 무장군인 3명 비무장지대(DMZ) 침투. 3명 전원 사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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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
11월, 강화 교동도 무장공비 침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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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
5월30일, 서해에서 북한 경비정 ‘1986 우성호’ 납북. 12.26 선원 5명 송환-3명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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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9일, 중국 연길에서 안승운 목사 납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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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7일, 임진강 무장간첩 침투. 1명 사살-1명 도주 복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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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4일, 충남 부여 무장간첩 2명 침투. 1명 사살-1명 생포(김동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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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
9월18일, 강릉 소형잠수함(350t) 무장공비 침투(13명 사살 11명 집단 피살-1명, 도주-1명 생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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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일,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최덕근 영사 피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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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
7월, 국군 경고를 무시하고 14명의 북한군이 넘어와 23분간의 격렬한 총격전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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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7일, 대성동 '자유의 마을' 주민 2명 납북. (1997.10.21 송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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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7일, 경남 울산 남파간첩 최정남·강연정 검거. 강연정 음독 자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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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
6월22일, 노동당중앙위작전부 산하 잠수정 속초근해 침투. 승조원·공작원 9명 선내 자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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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2일, 동해시 무장간첩 침투. 잠수복 착용 무장간첩 사체 1구 발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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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0일, 강화도 해안에 노동당 작전부 반잠수정 침투. 우리 軍에 발각되자 도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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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8일, 전남 女안내원 사체 1구 인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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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
3월15일, DMZ 내 북한군 11명, 유엔사측 관리 군사분계선 표지물 상판 북측으로 가져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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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7일~15일, 1차 연평해전. 20-30명 북한군 사망-해군 수명 부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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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
6월, 2차 연평해전. 해군 6명 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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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 1명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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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
11월, 3차 연평해전. 북한군 1명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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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
3월26일, 천안함 침몰. 승조원 46명 순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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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3일, 연평도 포격. 해병 2명, 민간인 2명 사망 |
 
 
(보충설명-박스)
북한의 海上도발, 6種 교과서 中 한 곳에서만 취급
 
6種의 高校 한국사 교과서 중 천재교육刊 교과서에만 ‘서해교전’이라는 용어가 1회 등장했다.
 서해교전은 통상 제1연평해전과 제2연평해전, 대청해전을 말한다. 제1연평해전은 1999년 6월15일, 북한 경비정 2척이 꽃게잡이 어선 20여척과 함께 남한 NLL을 침범한 사건이다. 국군 초계함과 고속정 10척은 북한 경비정을 밀어내기式 충돌로 대응했다. 이어 北 경비정이 선제사격을 개시, 양측 간에 交戰(교전)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북한 어뢰정 한 척이 침몰, 2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국군 7명이 부상당했다.
 제2연평해전은 2002년 6월29일, 북한 경비정 2척이 남한 NLL을 침범해 일어난 사건이다. 북한 경비정은 남측 경고방송을 무시한 채 계속 南下, 우리 측 참수리號(호)에 선제공격을 가했다. 북한의 공격으로 우리 해군 6명이 戰死(전사)했다. 대청해전은 2009년 11월10일, 북한 경비정 등산곶 383호가 NLL을 침범, 우리 해군 참수리 325호에 조준사격을 가한 사건이다. 모두 북한의 의도적인 NLL 침범으로 발생했다.
 
 천재교육刊 교과서는 서해교전이라고 포괄적으로 언급했을 뿐, 북한의 원인 제공, 우리 해군 6명의 희생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다.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적극적인 대북 포용정책을 펴면서 남북관계는 새로운 국면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이듬해 금창리 핵 시설 의혹 문제, 서해 교전 사건 등이 일어나 긴장이 고조되었다.”(천재교육刊, 9단원 4장 ‘북한의 변화와 평화통일의 과제’, 397페이지)
 
 미래엔컬처그룹刊 교과서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 실험 강행 등 잦은 군사 도발로 남북관계는 다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392페이지)”라고만 했을 뿐, 북한의 해상도발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비상교육 교과서도 “2007년에는 평양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등으로 남북관계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384페이지)”는 식으로만 썼을 뿐 서해교전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법문사, 지학사刊 교과서의 경우, 남북정상회담과 6ㆍ15 공동선언 관련 내용은 있으나 北의 海上도발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삼화출판사刊 교과서 역시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위해 핵개발을 추진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하자…”라고만 언급했다.
 
 6種 교과서 모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내용은 자세히 실려 있으나 북한 정권이 남한을 상대로 자행한 해상 도발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2010년 3월26일, 北 잠수정이 발사한 어뢰에 해군 장병 46명이 희생된 천안함 爆沈(폭침)사건도 6개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다. 6종 교과서의 검정 날짜가 2010년 7월30일이므로 저자의 의지가 있었다면 기술이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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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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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과 연평도》(김성만 著, 상지피앤아이 刊) ▲《국민안보의식 진단과 처방》(김구섭 著, 한국국방연구원 刊) ▲《진실은 하나》(한철용 著, 팔복원 刊)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