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은 公共의 敵, 共和의 敵

민중민주주의는 대한민국 헌법이 명시한 國民主權을 부인하는 반역 이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특정 계급의 特權을 인정하지 않는다.
厲王(여왕)은 중국 周나라의 제10대왕이었다. 賢臣(현신)인 周公、召公 등의 諫言(간언)을 무시하고 暴政을 하다가 백성들의 분노를 샀다. 朝廷의 부패에 화가 난 백성들이 서기 전 842년에 왕궁을 습격, 왕을 죽이려 하였다. 일종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왕은 鎬京(호경)을 탈출, 黄河를 넘어 지금의 산서성으로 피했다. 召公은 백성들이 몰려와서 태자 靜을 죽이려 할 때 그를 보호하고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하였다. 그 뒤 周公과 召公이 교대로 國政을 관리하게게 되었다. 이를 司馬遷은 史記에서 共和라고 불렀다. 서기 전 828년(共和14年)에 厲王이 죽자 周公 및 召公은 厲王의 아들 静을 즉위시켜 宣王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竹書紀年’이란 책은 편년체의 中国 역사서인데 전설시대부터 魏나라까지의 이야기가 씌어져 있다. 작자는 不明이고, 漢代에 이미 그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 西晋 279년에 河南省에 있던 魏의 襄王(양왕)의 墓를 도굴하였을 때 대량의 문자가 적힌 竹簡이 출토되어 정리한 책 중 하나가 『竹書紀年』이다. 史記에 나오지 않는 일화들이 많이 실려 있다. 『史記』의 年表를 수정하는 데도 쓰인다. 이 책은 共和制라는 명칭의 유래를 史記와는 달리 설명한다. 厲王(여왕)이 쫓겨난 뒤 제후로 추대된 共伯和라는 인물이 왕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린 데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영어의 Republic을 ‘共和國’이라고 번역한 것은 明治維新 이후 일본인들이었다. 중국의 古事를 참고한 것이다. 공화국은 세습 군주가 아닌 귀족이나 국민들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국민들이 선거로 뽑은 사람들이 다스리는 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부른다.
共和國은 또한 共和하는 나라이다. ‘국민들이 함께 화목하게 사는 공동체’이다. 그렇게 되려면 다양한 국민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아우르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그게 共和主義이다. 共和를 위하여서는 안보, 법치, 평등, 자유, 복지의 개념이 필요하다. 노동자와 大企業主는 역할과 권력이 다르지만 인간존엄성을 가진 점에서, 그리고 법 앞에선 평등하다.

孔子가 論語에서 君子和而不同(군자화이부동)이라고 했는데, 이게 바로 공화주의이다. ‘君子는 같지 않아도 화목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다양성, 사상의 다양성, 역할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이가 바로 君子이다. 이런 君子의 마음을 가져야 공화국의 국민이 될 자격이 있다.

孔子는 또 小人同而不和(소인동이불화)라는 말을 했다. 小人輩들은 같으면서도 不和한다는 뜻이다. 같은 말을 쓰는 同族이면서도 계급주의를 내세워 민족을 분열시키는 공산주의자들이야말로 이런 小人輩이다. 한국의 좌익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싫어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공화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좌익들은 민중민주주의란 말을 쓴다. 민중만이 나라의 主權을 독점하여 독재를 해야 하고 이게 민주주의라고 억지를 부린다. 좌익들이 말하는 민중은 노동자, 농민, 貧民인데, 그 가운데서도 노동자가 헤게모니를 잡는다. 민중민주주의는 대한민국 헌법이 명시한 國民主權을 부인하는 반역 이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특정 계급의 特權을 인정하지 않는다. 민중민주주의는 민중이란 계급의 독재권을 인정하고 이를 다수에 의한 소수의 지배, 즉 민주주의라고 호도한다. 우리 대법원은 민중민주주의는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하는 이념으로서 처벌대상임을 여러 차례의 판례를 통하여 명확히 해왔다. 좌파정권 시절에도.

민노당 등 從北세력은 계급투쟁의 논리로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서로 적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公共의 敵이고, 共和의 敵인 셈이다.

동양 최초의 共和政을 부른 여왕의 虐政에 대하여 召公이 간언한 내용이 史記에 적혀 있다.
"백성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은 흐르는 강물을 막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흐르는 강물을 막았다가 한 번 둑이 무너지면 반드시 많은 사람들이 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물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水路를 내어 강물을 원활히 소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일깨우고 敎化하여 그들로 하여금 말을 할 수 있게끔 해주어야 합니다. 백성들이 입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치 大地가 山과 河川을 갖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모든 재물과 富는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높고 낮고 건조하고 습하고 비옥하고 척박한 땅 등 여러 가지 유형의 땅에서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의식주가 생산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마음 놓고 말하는 가운데 政事의 善惡과 得失 등이 반영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召公은 요사이 기준으로 共和주의자 내지 시장경제주의자란 생각이 든다. 언론자유를 모든 자유의 근본으로 본 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 자유가 있어야 物的 생산력이 왕성해진다고 본 점 등이 그렇다.

나중에 위대한 공화주의자가 된 李承晩은 스물아홉 살 때 獄中에서 '독립정신이란 책을
썼다. 거기 실린 아래 글이 2800년 전 중국의 賢臣이 한 말과 같다. 진리는 古今이 크게 다르지 않는 모양이다.

"개화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어서 폐단이 있더라도 윗사람들이 어느 정도 손해를 보는 것이 옳다. 부디 깊이 생각하고, 고집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힘껏 일하고 공부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자유의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스스로 活力이 생기고, 관습이 빠르게 변하여 나라 전체에도 活力이 생겨서 몇 십 년 후에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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