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11울14일 陸英修 여사는 외국어대학교에서 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학생측에서 이러한 질문이 나왔다.
-陸여사께서는 朴대통령의 어떤 점이 불만이시고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결혼했습니까.
'아이, 그런 질문에는 대답안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질문 하려고 저를 오라고 그랬죠? 남편 자랑한다고 소문 나면 안된단 말이예요. 불만은...아이, 참, 불만은 나만을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는데 政事에 치중하시다가 보니 그렇게 하시지 못하셔요. 그러나 언제 이런 직을 면하게 된다면 그때는 다시 나만을 생각해주시리라고 기대하고 있는 중이고요. 그분과의 혼인동기는요, 그분이 아무것도 없을 때였어요. 재력, 재물, 권력이 없을 때 혼인했어요. 그분은 또 미남이 아니시고요(웃음), 그런데 의지가 좋으셔요. 학생들은 잘 느끼지 못할 것 같은데요, 그분이 무뚝뚝하고 무섭기만 한 것으로 알려져 있잖아요. 우리 가족끼리 이야기할 때, 농담을 잘 하셔요. 그러실 때 웃으시는 걸 보면 참 어린아이 같아요. 그런 점을 제가 발견했어요'
-끝내 불만스런 점은 말씀 안하시네요.
'글쎄, 그분이 나만을 생각해주시면 좋겠는데...'
-대통령께서는 어린 시절에 책보를 끼고 논에서 축구를 했다고 하시던데 역시 재력이 충분하시지 못하셨던 모양이지요.
'그분은 아무것도 안가지고 계셨던 분이에요. 명예도 없었고, 권력도 없었던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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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이 엄마랑 같이 시찰한 거야”
1975년 8월 1일.
대통령은 며칠 전부터 저도에서 여름 휴가를 보냈다. 그러나 말이 휴가이지 일종의 지방 시찰과 다름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대통령은 몇 명의 경호원과 수행원만 데리고 연락도 없이 섬을 떠나 거의 하루종일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궁금해 했으나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저녁 나절에야 숙소에 돌아왔다.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구경 좀 하고 왔지.”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주위에서 계속 물어보니까 그때서야 설명을 했다.
“여천 공업단지, 호남정유 메탄올 공장, 칠비(七肥), 삼일만 부두공사 현장, 중화학공업단지, 여천 단지 공사 현장 등을 보고 왔소. 많이 구경했지? 허허. 지금 진행 중인 공사들이 완공되어야 선진국으로 가는 문이 조금씩 가까워질 거야.
오늘 그 많은 공장과 공사 현장을 보니까 마음이 후련해지더군. 해수욕하는 것보다도 한결 시원한 것 같아.”
이 말을 하는 대통령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영부인이 서거했을 때 그토록 통곡하고 우울해 하던 대통령의 표정이 이날은 유달리 밝아 보여서 비서들은 같이 기뻐했어야 했는데도 차라리 숙연해졌다.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보고 수행했던 기자들이 나중에 “영부인의 1주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저렇게 종일 일을 하실 수 있을까” 하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수군거렸다.
그날 밤 대통령을 찾은 한 비서가 이런 말을 했다.
“영부인의 기일이 다가왔는데 각하께서는 일만 하신다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대통령의 표정은 갑자기 굳어지며 침통하게 눈을 감았다.
“지만이 엄마 기일이 다가오니까 해수욕 생각도 없고, 그래서 단지들을 돌아보고 온 거야. 만석꾼 집에서 고이 자란 지만이 엄마 소원이 뭔지 알아? 나보다 더한 개혁주의자였고, 국민들을 잘살게 해달라고 늘 나에게 말했어. 오늘 다녀온 곳이 모두 우리가 잘살게 되는 기본 시설 아닌가.”
영부인의 얘기를 하는 대통령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오늘 내가 혼자 시찰하고 온 줄 알아? 지만이 엄마랑 같이 갔다 온 거야.”
낮은 목소리로 쓸쓸하게 말하는 대통령의 그 말에 순간 비서는 온몸이 저리는 것 같았다.
육영수의 남편 평: "그분은 명예도, 권력도 없었던 사람"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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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0-25, 2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