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왕의 마지막 연설: “지금은 다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때”


2008년 11월3일 朴泰俊 포스코 명예회장 ‘기업가정신 국제컨퍼런스’ 기조 연설문 全文.
朴泰俊 명예회장

오늘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라는 말이 있지만, 올해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는 참으로 불행했습니다. 유가와 원자재가격의 고공행진이 주춤거리는 듯하자 곧바로 미국發 금융위기가 해일처럼 덮쳤던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위기는 기회’라는 신념으로 헤쳐 나가는 ‘李明博(이명박) 정부’의 앞날에 좋은 결실이 있을 것으로 믿으며 ‘선진一流(일류)국가’를 필생의 소원으로 간직한 늙은이로서 우리 경제의 모든 주체들께 심심한 격려와 위로를 보내드립니다.

경제에서 불황과 호황은 반복되는 현상이지만 사람들은 불황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래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에 비할 수 없는 시련을 극복한 경험이 있습니다. 폐허와 빈곤의 땅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고, 엄청난 석유파동과 혹독한 IMF 관리체제를 이겨냈으며 산업화와 민주화의 반목과 대립 속에서 역설적으로 경제와 민주주의를 성공시켰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극복했던 경제위기는 귀중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험난한 고비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은 통합의 리더십, 勞使(노사)화합, 與野(여야)협조, 정부와 국민의 신뢰, 국민의 자신감, 고통분담의 공감, 그리고 기업인들의 정신적 재무장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회의는, 우리 기업인들이 기업가정신의 재무장을 확인하고 다짐하는 차원에서 마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빛내주시는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님을 비롯한 경제 5단체 대표님, 여러 기업인들과 내외 귀빈 여러분.

저는 우리나라 창업세대 기업인들 중에 거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여기에 초대되어 말씀드릴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遺命(유명)을 달리하신 분이든 살아계시는 분이든, 창업세대는 자부심과 긍지를 품었을 것입니다. 자동차, 반도체, 철강, 조선 등 현재 우리경제의 根幹(근간)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경제개발에 착수한 1962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미만의 最貧國(최빈국)이었던 우리가 경제규모로 세계 10위권을 넘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크게 성공한 개인을 立志傳的(입지전적) 인물이라고 합니다. 경제로 말하자면, 한국경제가 바로 그런 본보기입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서는 입지전적 기업인들의 인생을 불태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 위기의 우리는 새롭게 기억해야만 합니다. 한국경제의 경이로운 성장에는 시대적 리더십, 국민의 근면과 인내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기업가정신에 충만한 선구적 기업인들의 높은 공로를 결코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국경제발전사의 중추 속으로 면면히 흐르는 창업세대의 기업가정신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고 창조하겠다는 사명의식과 도전정신과 뜨거운 열정입니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개인적 욕망에 갇혀있지 않았습니다. 기업인들 사이에 편차는 있어도, 선구적 기업인들은 기업의 성공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作故(작고)하신 삼성 이병철 회장님과 현대 정주영 회장님을 비롯해 일일이 거명할 수 없는 창업세대 기업인들이 시대적 소명에 따르는 기업가정신으로 前人未踏(전인미답)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오늘의 한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 기업가정신이 건강하고 활기찬 시기에는 번영을 누렸습니다. 현재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는 미국이 21세기에 들어서도 경제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해온 배경에는 실리콘벨리에서 활짝 피어난 기업가정신이 있었으며 일본이 10년에 걸친 장기불황을 극복한 원동력은 모노츠쿠리(もの造り) 정신, 즉 기업인들의 匠人(장인)정신이었습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의 현실을 고뇌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이 뜻깊은 시간에 우리는 기업가정신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합니다. ‘다시 문제는 기업가정신’이라는 정신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도전정신과 창의정신으로 재무장해야만 합니다. 밝은 미래로 뻗어나갈 목표를 설정하고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사명감과 신념을 다시 우리 것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저의 경험이 기업인 여러분에게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다면, 포스코 창업과 성장과정을 잠시 回顧(회고)해 보겠습니다.

1967년 가을, 朴正熙(박정희) 대통령께서 공식적으로 저에게 일관제철소 건설 임무를 맡겼을 당시, 저는 빈손과 마찬가지였습니다. 포스코가 출범하던 1968년 당시, 포스코는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자원도 全無(전무)한 상태였습니다. 용광로를 직접 본 사람이 저를 포함해서 단 둘뿐이었고, 1기 103만 톤을 건설할 약 1억 달러를 구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1억 달러는 우리가 제철소를 꿈꾸던 1964년 한국의 수출총액이 1억 달러였고, 포항제철소를 착공한 1970년에 한국의 총수출액이 1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이렇게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5000년 빈곤의 대물림을 기필코 우리 세대에서 끊어야 한다’는 朴대통령의 의지에 공감하고, 제철소 성공을 통해 그 大業(대업)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포스코 창업요원들도 저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 있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돈줄이 완전히 막힌 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對日(대일)청구권자금 전용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절박한 사명감의 선물이었을 그것은 ‘무너진 하늘에서 솟아날 구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이 어떤 돈입니까? 저는 조상이 흘린 피의 대가라고 定義(정의)했습니다. 실패하면 스스로 죽겠다고 맹세했지만, 죽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우향우 정신’과 ‘제철보국 정신’이 탄생되고, 도전정신과 창의존중의 전통이 확립되었습니다. 도전과 창의는 맞물린 것이기도 합니다. 도전의 과정에서 창의가 자극되고, 창의가 발현되어야 도전에서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도전정신과 창의존중은 포스코의 기업문화입니다. 지금도 포스코 정문에는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으며, 이것은 언제나 면면히 흐르는 포스코의 기업정신이 될 것입니다.
또한 저는 인재육성과 기술개발을 가장 중요한 미래투자라고 확신해왔으며, 적절한 시기가 되었을 때 과감히 실천했습니다. 포항공과대학교, 산업과학연구원(RIST), 포항방사광가속기 등은 産(산)·學(학)·硏(연)의 대표적 결실입니다.

저의 포스코 경험은, 기업가정신이 시련을 넘어 성공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되는 동시에, 기업가정신이 기업문화로 승화되고 기업의 DNA로 계승된 사례라고 생각하며, 이 긴장된 시기에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의 기업인 여러분.
미국의 유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Next Society』라는 책에서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정신이 높은 국가’로 한국을 꼽은 바 있습니다. 외환위기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기업인들은 세계적으로 감탄과 연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에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것은 최근 대한상의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나타났습니다. 현직 CEO 5명 중 4명이 “우리 경제의 기업가정신이 위축되었다”고 답한 것입니다.

엎친 데 덮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금융위기의 후폭풍으로 실물경제는 침체에 빠지고, 소비심리는 위축되고, 국민은 불안해합니다. 설상가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경제주체들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만, 이때야말로 정부는 일관성 있게 단호한 대응을 보여줘야 하고, 우리 기업인들은 세계가 부러워한 전통의 기업가정신을 다시 한번 발휘해야 하겠습니다.

IMF관리체제가 우리 기업들에게 남긴 뼈아픈 교훈은 안정성입니다. 건전한 재무구조가 지속가능 경영의 바탕이라는 점을 각성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에 안주하라는 가르침은 아니었습니다. 주가관리와 수익우선에 집착하라는 주문도 아니었습니다. 현재의 安住(안주)는 미래의 退步(퇴보)로 이어진다는 것이 不變(불변)의 경제 법칙입니다. 안정과 방어만으로는 비옥한 미래를 담보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위기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미래의 행복을 저축하는 일입니다. 올바른 대응책에는 과감한 투자, 기술개발, 인재육성이 골격을 이루게 됩니다. 문제는 실천입니다. 기업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성장 동력을 다시 점화하겠다는 차원에서 기업가정신을 발휘합시다. 현재에 비할 수 없도록 모든 환경이 열악했던 과거에도 우리는 심각한 고비를 맞을 때마다 새로 창업하겠다는 기업가정신으로 분발했었다는 사실을 명심합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그것을 한국 기업인의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확립합시다.

정부와 국민도 기업가정신이 만발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할 것입니다. 다행히 정책기조가 달라져서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反기업정서를 親기업정서로 바꿀 수 있는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 정책’이 서서히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이 사회적 분위기로 무르익기까지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 기술력의 원천인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은 모험과 창의보다 안정과 안주를 추구하는 경향이 여전히 한국사회의 主流(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업가정신은 협력을 존중하되 寄生(기생)을 거부하며 스스로 길을 개척합니다. 아무리 험난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지금 경영일선에서 뛰고 있는 기업인들은 창업세대보다 더 높고 더 많은 식견과 경험과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경제의 저력이기도 합니다.

다만, 노파심에서 당부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회에 親기업정서가 형성되는 과정에는 정치적 영향력도 크게 작용하지만, 기업인들이 진정으로 기업가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국민의 기업에 대한 신뢰는 질 좋은 상품생산과 지속적인 경영성과에서 비롯되고, 국민의 기업에 대한 존경은 기업이윤의 미래를 위한 투자와 社會還元(사회환원)에서 비롯됩니다. 국민의 기업에 대한 신뢰와 존경, 이것이야말로 親기업정서의 최상입니다. 그러므로 기업가정신이 주체적으로 親기업정서를 가꿔나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업가정신에는 ‘天下(천하)는 公(공)’이라는 가치관도 필요합니다. 경영을 충실하게 하는 데는 ‘나의 것’이라는 의식이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 나온 성과는 ‘公(공)의 것’이라고 생각해야 더 적극적으로 미래투자와 공익사업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미국發 금융위기사태가 보여주는 것처럼, 아직도 인류 자본주의체제에 확정된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약점을 보완할 경험적 방법론이 부단히 제시되어 왔습니다. 근래 빌 게이츠(Bill Gates)가 주장한 ‘창조적 자본주의’나 현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제기하는 ‘新브레턴우즈’도 그 하나라고 평가합니다. 여기에는 세계적, 국가적 차원에서 정교하게 연구할 분야가 많지만, 결국 인류는 ‘천하는 公(공)’이라는 철학적 토대 위에서 해법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기업가 여러분,
꿈을 키워나가는 예비 기업가 여러분.

우리의 이 만남과 대화는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기 위해 기업인들이 앞장서자는 決意(결의)대회이기도 합니다. 폐허 위에서 오늘의 번영을 창조한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현재 우리의 역량과 지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앞당기는 지름길은 정부, 기업, 국민의 상호신뢰에서 열리게 되며, 그 과정에는 고통분담의 미덕이 요구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대한 고비일수록 우리 경제에는 진정한 기업가정신이 충만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당부하면서, 우리 기업들의 善戰(선전)과 함께 國運(국운) 융성을 希願(희원)합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년 11월3일

포스코 명예회장 朴泰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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