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情 넘치는 國民葬 '굿판'

양심이 있는 노무현과 가족과 지인들이라면 노무현 고향, 봉하마을에서 가족장(家族葬)으로 했어야 마땅했다. 죄업이 있는 자를 국민장으로 하여 칭송, 찬양을 해대는 것은, 죽은 자를 국제적으로 조롱하는 것과 진배없다고 생각한다.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자살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장례식의 예우는 한국인의 인정 넘치는 굿판이었다. 그것은 한바탕 연극이요, '쇼'와 같았다.



신문, TV, 방송 언론이 다투워 국제사회를 향해 한국인이 인정이 많다는 것을 이번 굿판에서 확실히 보여주었다. 죽은 자에게 관대하고 예우를 갖추는 것이 너무 지나쳐 무슨 의인이나 열사에게 예우를 갖추는 것이 되어 보이기도 했다. 노무현은 의사(義士), 열사(烈士)가 아니다. 국민의 모범을 보여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부정뇌물을 착복하여 사법부의 심판대상이었다가 극도의 수치감이나, 국민에게 속죄하는 각오에서 부엉바위에서 인생을 마감한 것을 온국민은 물론, 전세계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國民葬은 과례불급(過禮不及)의 ‘쇼’였다.




한국인들이 죽은 자에게 관대하고 예우하며, 칭송, 찬양 일변도로 나가는 것을 아는 외국정상들은 한국인의 정서에 보비위하여 칭송, 찬양의 덕담에 나섰다. 칭송의 백미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다. 그는 노무현을 “한미동맹을 굳건히 한 대통령이었다”고 칭송했다. 노무현이 전작권을 미군측에서 한국군으로 전환하여 한미동맹에 금이 가게 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오바마는 칭송했다. 포복절도(抱腹絶倒)하며 웃을 일이다. 오바마도 國民葬을 하는 한국인 못지 않은 過禮不及의 정치 ‘쇼’을 한 것이다.




한국인의 인정 넘치는 굿판은 끝났다. 네설움, 내설움 이판에 함께 풀어보자는 심산인지 칭송과 찬양에 나서고 훌쩍이며 통곡하는 굿판은 끝난 것이다. 형편없는 한국영화를 관람하고 극장을 나서면, 주제(主題)는 생각나지 않고 “싫컨 울었다”는 것만 남는 것같은 굿판이엇다. 이제 각자 집과 직장으로 돌아가 생업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굿판을 진짜로 알고, 노무현에 대한 칭송과 찬양에 도취하여 복수적 집단 폭난에 동참하는 우치한 자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번 굿판은 냉정히 말해서 온동네가 환히 아는 창(娼)적인 여자에게, 대외적인 홍보를 위해 수절(守節)의 여자에게 세워지는 홍살문을 세워주는 것과 같다. 또 대도(大盜)에게 의사, 열사를 위해 기념하는 탑(塔)과 정문(旌門)을 세워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냄새 진동하는 구린 똥을 금박지(金箔紙) 은박지(銀箔紙)로 포장한들 냄새가 완전히 사라질까? 스스로 지은 죄업에 의해 인과를 받아야 할 자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서 동정하여 울고불고 굿판을 벌여 칭송, 찬양을 해댄다는 것은 국민들은 공공연한 비밀로 환히 알고 있다.




서민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받은 노무현은 왜 부정부패에 깨끗한 정치를 못한 것일까? 온국민과 국제사회는 노무현의 부정뇌물 착복의 추악한 내막을 알고 있다. 양심이 있는 노무현과 가족과 지인들이라면 노무현 고향, 봉하마을에서 가족장(家族葬)으로 했어야 마땅했다. 죄업이 있는 자를 국민장으로 하여 칭송, 찬양을 해대는 것은, 죽은 자를 국제적으로 조롱하는 것과 진배없다고 생각한다. 칭송과 찬양소리가 높아질 수록 동시에 부정뇌물 착복의 문죄(問罪) 소리도 높아지는 것이다. 노무현은 자신의 주검에 조롱의 화살이 떼로 닥칠 것을 예견하고 조용히 고향 뒷산에 작은 비석을 바랐지만, 가족은 깨닫지 못했다.




역사는 노무현을 어떻게 평가할까? 그는 고등학교 밖에 안나왔지만,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의 학문에 대한 투혼과 열정에는 기립박수를 보낸다. 대통령까지 역임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이 준 행운이었다. 누구던 대통령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主權在民(주권재민)의 국민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해야 했고, 국민이 진정 원하는 정치를 해서 은혜에 보답해야 했다. 국민은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튼튼한 안보속의 대한민국의 번영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첫째, 김정일 세습독재체제유지를 위해서 대한민국 국민혈세를 착취하여 대북 퍼주기로 반역했고, 둘째, 김정일이 바라는 미군철수를 위한 첫단추로 한미전작권을 미군측에서 빼앗는 정치공작을 했다. 그는 대한민국 반역의 정치를 하고 부정뇌물로 大猝富(대졸부)가 되어 고향에 돌아가 성(城)같은 저택(邸宅)에서 고향사람들에게 외쳤다. “나 잘하고 왔지요?” 그의 애칭 ‘바보 노무현’이어서 그랬을까? 보수우익의 국민들을 ‘봉’과 ‘졸’로 본 것이 아닌가? 굶주려 모래밭에 혀를 박고 죽어도 도적질하지 않는 대다수 한국인들을 조롱하는 것인가?




노무현은 대한민국 보다는 북한 김정일에 충성하는 것같은, 그는 죽는 순간까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작태를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든 죄과가 있으면 사법부의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노무현은 죄과가 있으면서 사법부의 심판을 부정하고 투신자살했다. 어찌보면 부당하고 억울하게 피박 당하여 죽는 것처럼 연출했다. 그의 주검은 결과적으로, 첫째, 대한민국 사법부를 부정하고, 둘째, 자신의 주검으로 사법부로부터 가족을 보호했다. 그러나 자신의 주검을 起爆劑(기폭제)로 하여 추종자들에게 대한민국에 대해 저항할 것을 촉구했을지도 모른다.




고해의 민초들은 인정 때문에 노무현의 주검에 대해 슬퍼하고 애통해 한다. 그러나 너무 슬퍼할 것은 없다. 깊이 슬퍼해야 할 것은 생활고에 찌든 민초들 자신들이다. 양심을 지키는 민초들은 대부분 가난한 인생을 산다. 하지만 양심 충만한 공덕에 극락과 천당에 갈 수 있다. 노무현은 부정뇌물의 황금을 받아 처자에게 남겨주어 후손에 까지 호화생활을 할 수 있게 한 용의주도한 자일 뿐이다. 만약 그를 따라 죽는 남녀가 있다면, 자기정신이 아닌 남의 정신으로 인생을 사는 자이고, 고귀한 인도환생을 스스로 짓밟는 악업을 짓는 것이다.




북한 세습독재자 김정일은 노무현의 장례식을 앞두고 핵폭발을 일으키고, 미사일을 마구 발사했다. 예포(禮砲)를 발사하는 것인가, 김일성왕조의 충신을 왜 죽였느냐, 항의 하는 것인가? 이런 뜻은 아니었을까? “동무가 준 돈으로 핵실험이 성공했고, 그 핵과 미사일로 대남적화를 곧 할 터이니 안심하고 기뻐하며, 고이 잠들라”는 김정일의 배려였을까? 아니면, 노무현을 죽게 해서 분기탱천하여 공갈협박을 해대는 것인가.




고래로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狂者(광자)에게 돈 주는 법이 아니다. 의미 없게 돈을 버리기 때문이다. 인민을 밥먹여 살려야 할 책임이 있는 김정일이 인민을 수백만 기아로 떼주검을 시키면서 국제사회가 만류하는 핵실험만 하는 것은 맛이 간 광자狂者의 작태이다. 狂犬(광견)이 닥치는 대로 사람을 물어 대듯이, 김정일은 닥치는 대로 한국, 일본, 미국을 향해 닥치는대로 핵폭탄을 쏘아버린다고 공갈협박하고 있다.



DJ, 노무현은 김정일에게 돈을 갖다 주어서는 절대 안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김정일의 보급관 노릇을 안했으면, 북한체제는 스스로 붕괴되어 조국통일을 앞당길 수 있었다. DJ, 노무현의 대북 퍼주기는 조국분단을 더욱 고착화시켰을 뿐이다.




노무현의 국민장도, 원각경에서 부처님이 이 세상은 허깨비 즉 幻(환)이라고 갈파 했듯이, 이제 幻이요, 猶如昨夢(유여작몽: 어젯밤 꿈)이 되어 버렸다. 이승의 인간들은 부지런히 일해야 먹고살기 때문에 노무현을 위해 마냥 통곡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문제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내세워 김정일에게 충성하도록 배후조종한 DJ이다. 그를 주목해야 한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정작 자기 자식은 시위현장에 위험하니 나가지 못하게 하고, 남의 자녀들을 죽음의 폭난 시위대로 내보냈고, 대한민국 정치를 해방직후 좌우대결 시대로 역사의 시계 초침을 돌려 농은 자이다. 피를 부르는 좌우대결의 정치를 DJ는 또 오게 한 것이다. 그가 노무현의 주검과 민주주의를 빙자하여 또 폭난을 배후 조종할 수 있다.




DJ는 폭난에 대해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비교와 추종을 불허할 전문가이다. 그러나 고혼이 된 노무현이 부엉이 산의 지박령(地縛靈)이 되어 초혼가(招魂歌)를 부르듯,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이용한 DJ에게 보은의 뜻에서 혼백을 부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내에 둥지를 튼 좌파 수장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 김정일은 돈줄이 막혀 낙동강 오리알 신세요, 내부폭동대상의 신세로 전락되어 그도 역시 하루아침에 고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노무현에 대한 '인정 넘치는 國民葬 굿판'을 마치면서, 대오각성해야 할 것은, 첫째, 남북한이 終戰(종전)이 아닌 휴전, 停戰(정전)의 대치 상황에 언제 인민군의 북핵과 각종 미사일과 총포탄이 불시에 기습, 우리를 향해 쏟아지듯 날아 올 수 있다는 것을 한 시도 있어서는 안되고, 절대 차후는 두 번다시 대한민국 서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북한 세습독재자에 선군무장을 돕고, 자신은 부정뇌물로 大猝富되어 청와대를 떠나는 반역자 대통령을 선출해서는 안된다.




노무현은 부엉바위에서 인생을 마감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집을 나서기 전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듯 辭世(사세)글로 "운명이다"고 적어 놓았다. 운명은 누가 만드는 것인가? 전지전능한 神이나 부처가 만드는 것이 아닌 자기자신이 만드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했을까? 아니면 뻔히 알면서도 탐욕이 눈을 가렸기 때문일까? 그는 大猝富가 되었지만, 돈을 써보지도 못했고, 城(성)같은 高大廣室(고대광실), 대저택을 지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해로하면서 살아보지도 못했다.




도대체 노무현은 누구를 위한 슬픈 운명으로 마감하는 인생을 산 것인가? 분명한 것은 노무현의 인생은 온 국민의 귀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를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왕생극락을 빈다. 극락이 있다면 말이다.◇ (2009년 5월 30일)





李法徹(bubch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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