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국민행동 아카데미 월례강좌(국민행동본부 주최)가 2006년 3월2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 5가에 위치한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날 李長春 대사는 '홍색反逆의 물결'이란 제목의 강연을 하였다. 준비된 연설문을 읽어내려간 그의 강연은 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의 반역성을 정확하게 짚고,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당면한 과제를 깊게 분석한 이 연설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名文이다. 6년이 지나 다시 읽어도 6년 전 제시되었던 문제의식은 2012년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 나라의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깊게 박힌 암세포처럼 대한민국이란 공동체를 잠식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이므로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볼 것을 권한다.
序頭
‘韓나라'--韓族국가--의 역사에서 대한민국만큼 성공한 적이 없다. 奇蹟같이 기아와 절대빈곤을 추방했다. 한국은 20세기 후반의 세계에서 傳統국가로는 가장 높이 뜬 나라가 됐다. 그러니까 한반도의 정치역정 중에서 韓國의 建國보다 더 위대한 사건은 없었다
1. 이 자리에 招請(초청)해 주시고 紹介(소개)해 주신 데 감사합니다.
2. 오늘 한국 基督敎(기독교)의 최고 殿堂(전당)에서 이 많은 저의 同時代人(동시대인)들과 자리를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깁니다. 감개가 무량합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태극기를 달고 다니면서 한국을 대표한 저의 職業外交官(직업외교관) 배경은 사실 이런 모임과는 거리가 멉니다. 늘 韓國을 擁護(옹호)해야만 했고 절대로 한국을 批判(비판)할 수는 없었습니다.
3. 그러나 國家(state)에서의 봉직을 끝내고 社會(society)로 복귀한 마당에 평생 애써 봉사한 奇蹟(기적)의 대한민국이 가당찮은 反逆의 물결에 휩싸여 표류하고 있는 것을 좌시할 수가 없습니다. 직업군인과 직업외교관은 국가에 奉仕(봉사)한 후에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예사입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 참석하신 분들을 포함한 수많은 往年(왕년)의 愛國戰士(애국전사)들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 度(도)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反逆(반역)의 물결에 언젠가는 우리 大韓民國이 삼켜질 수 있음을 傍觀(방관)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합법적으로 국가의 권력을 장악한 政治勢力(정치세력)이 奇異(기이)하게도 그 국가를 상대로 황당한 권력의 反逆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피땀으로 일궈낸 기적의 대한민국을 잘못된 나라로 치부하여 그 正體性(정체성)을 冒瀆(모독)하며 變造(변조)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 反逆의 일부로서 진행되고 있는 ‘역사裁判(재판)’에 우리가 바친 一生(일생)이 汚辱(오욕)을 당하는 것은 물론 우리가 渾身(혼신)을 다해 성공시킨 나라의 將來(장래)가 抵當(저당)잡히는 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4. 사실상의 國庫强奪(국고강탈)로 2000년의 소위 남북정상회담을 買收(매수)한 金大中의 ‘햇볕政權’이 감행하기 시작한 권력의 反逆은 盧武鉉의 ‘촛불政權’에 의해 세 갈래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 그 典型(전형)은 ‘퍼주기‘로 북한의 공산왕조를 살리고 聯邦制(연방제)로 한국의 國家正體性(국가정체성)을 변조하는 利敵(이적)반역입니다.
- 그 다음은 利敵반역의 연장으로서 국가안보와 통일을 볼모로 잡는 反美반역입니다.
- 그 중에서 가장 집요하고 소모적인 것은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농락하는 反民(반민)반역입니다.
5. 빨리 그런 邪惡(사악)한 권력의 反逆을 꺾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끝장날 수 있습니다. 다행히 각계각층의 愛國市民(애국시민)들로 구성된 국민행동본부가 한국이 처한 國難(국난)의 危機(위기)를 물리치는 데 선봉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국민행동본부의 大義(대의)에 뜨거운 支持(지지)와 성원을 보내며 그 指導部(지도부)의 勞苦(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진짜세계(the real world)로부터 逃避(도피)하는 低質(저질) 리더십
6. 盧武鉉을 필두로 하는 집권세력 중에는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나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全敎組(전교조)의 일원이 ‘아! X할 대한민국!’이라는 욕지거리를 내뱉은 것은 정치권력이 발급한 反逆의 特許狀(특허장)을 손에 쥐지 않고는 연출할 수 없는 亂舞(난무)의 典型(전형)입니다. 그 욕지거리는-북한의 공산왕조와 내통하고 있는 자들이 대한민국을 咀呪(저주)하기 위한 합창의 歌詞(가사)로서-'우리 민족끼리'라는 新派(신파)조 구호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소위 “民族的 大團結(민족적 대단결)”로 南北이 여하 간에 속히 합쳐져야 한다는 허튼 소리는 이미 오래 전에 김이 빠진 것을 괘념치 않습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解體(해체)를 주장할 수 없으니깐 얼토당토않은 소위 '聯邦制(연방제)'의 탈을 쓰고 赤化統一(적화통일)을 위한 酬酌(수작)을 부립니다. 그런 수작은 '紅色反逆(홍색반역)'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7. 홍색反逆을 주도하는 자들은 북한의 공산왕조가 崩壞(붕괴)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南韓이 북한을 흡수통일하는 데 반대합니다. 그러니깐 그들은 反民主主義 分斷論者(반민주주의 분단론자)들입니다. 그들은 진짜세계(the real world)와 동떨어져 살아 왔기 때문에 暴政(폭정)의 從僕(종복)으로서 민족의 우상과 集團神話(집단신화)를 신봉합니다.
기적의 대한민국이 지구상의 가장 실패한 북한의 공산왕조를 흡수하는 방식 이외에 한반도의 통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잘 나가는 '삼성전자'가 不渡(부도)난 어떤 전자회사를 引受(인수)했으면 했지 그런 회사에 합병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진짜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스포츠와 연예는 '진짜 세계'가 아니다
8. 대한민국은 20세기 후반의 세계역사상 가장 성공한 나라입니다. 진짜세계의 경쟁에 참여하여 饑餓(기아)와 絶對貧困(절대빈곤)을 한 世代(세대)만에 추방했기 때문에 기적의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한국이 추구해야 할 국가목표는 진짜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남아 참(眞)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의 통일을 달성하면서 先進世界(advanced democracies)로 진입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이 처한 狀況(상황)은 그런 국가목표를 무난히 성취할 수 없을 만큼 참으로 얄궂고 怪奇(괴기)합니다.
9. 진짜세계에서는 한마디로 처절한 經濟大戰(경제대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세계를 향해 소위 開發獨裁(개발독재)시대에 추진한 輸出立國(수출입국)의 기치 하에 세계 12大 무역국가로 부상했습니다. 꿈같은 사실입니다. 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아직도 세계 40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나라의 표면상 인프라는 일견 대견스러워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는 매우 貧弱(빈약)한 편입니다. 우리 경제가 명실 공히 선진세계의 벽을 허물고 그 속으로 파고들어가 단단해지자면 갈 길이 아직도 아주 멉니다. 앞으로 100년 동안 진짜세계에서 낙오되지 말아야 선진세계의 멤버십을 확실하게 딸 수 있습니다.
10. 예를 들어 스포츠(sports)나 演藝(연예)·娛樂(오락)은 진짜세계가 아닙니다. 其實(기실)은 그것들이 진짜세계로부터 逃避(도피)하거나 진짜세계를 隱蔽(은폐)하는 데 단단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월드컵(World Cup)이 금년에 獨逸(독일)에서 개최되어 참 다행입니다. 만약 2007년에 개최된다면 2002년처럼 ‘붉은 악마의 政治(정치)’ 같은 것이 재연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조류독감(avian influenza)으로 금년도의 월드컵(World Cup)이 연기될지 모른다는 소리가 없지 않습니다만, 天機(천기)에 속하는 것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11. 선진세계에서는 스포츠가 정치화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스포츠는 스포츠 이상으로 취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한 것 자체부터 ‘2002 월드컵’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스포츠가 본격적으로 정치화되어 오고 있는 것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정치권력은 스포츠에 깊숙이 관여해왔습니다. 그렇게 된 근본원인은 물론 한국의 民度와 풍토에 있다는 것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12. 과거 蘇聯(소련)은 東西冷戰(동서냉전)이 한창이던 1956년 멜번올림픽(Melbourne Olympics) 이래 거의 1위를 유지하면서 東獨(동독)과 함께 1972년 뮌헨(Muenchen)ㆍ1976년 몬트리올(Montreal)ㆍ1980년 모스크바(Moscow)ㆍ1988년 서울(Seoul)에서 각각 1위와 2위가 될 만큼 金메달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국가 자체가 消滅(소멸)되고 말았습니다. 15년 전에 무너진 共産圈(공산권)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演藝(연예) 娛樂(오락)을 全體主義(전체주의) 체제유지의 도구로 악용했습니다. 기묘하게도 東西冷戰(동서냉전)의 主戰場(주전장)이던 한국에서 냉전의 주역이던 蘇聯(소련)과 그 속국인 東獨(동독)이 마지막으로 올림픽에 참여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한편, 브라질(Brazil)은 다섯 번이나 월드컵에서 우승했습니다. 그러나 선진세계의 문턱에 올라서기는 아직 요원합니다. 월드컵 우승은 선진세계의 德目(덕목)과는 무관합니다. 진짜세계에서 優勝(우승)해야만 선진세계에의 入門資格(입문자격)이 생깁니다.
현재와 미래에 자신이 없으니 과거를 戰場으로 선택
13. 過去(과거)는 진짜세계가 아닙니다. 소위 ‘過去史(과거사)’라는 말은 歷史(역사)라는 말을 억지로 代用(대용)한 엉터리 造語(조어)입니다. 역사는 정치권력의 恣意(자의)대로 ‘바로 잡아 다시 고쳐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역사의 捏造(날조)입니다. 역사의 사실을 규명하는 것은 權力作用(권력작용)으로부터 유리된 역사학자들의 몫으로 두어야 합니다. 진짜세계는 대한민국이라는 國家共同體(국가공동체) 전체가 참(眞)현실에서 우승하고 또한 未來(미래)의 우승을 보장받기 위해 刻苦(각고)의 努力(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세계입니다. 과거에 매달려 국가의 轉向的 進路(전향적 진로)를 무시하면서 진짜세계를 외면하는 逆走行(역주행)을 일삼는다면 그것 또한 반역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盧武鉉의 사람들은 진짜세계를 등지고 소위 ‘過去史 청산’을 무기로 권력 플레이에 광분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과거는 감당하기 쉽고 현재와 미래는 벅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占領(점령)에 급급한 나머지 현재와 미래를 팽개치며 과거를 恨(한)풀이 정치의 好材(호재)로 삼고 있습니다.
평등이란 아편: 平鈍化, 平貧化, 平亡化 초래
14. 진짜세계에서는 平等(평등)의 阿片(아편)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權力의 生計(권력의 생계)’를 姑息的(고식적)으로 꾸려갈 수 있다손 치더라도 국가공동체를 持續的(지속적)으로 구제할 수는 없습니다.
공산주의가 사망함에 따라 ‘歷史의 종언(the end of history)'이 선고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로 낙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貧富(빈부)격차의 解消(해소)에는 特效藥(특효약)이 없다는 것이 再確認(재확인)되었습니다. 오직 競爭의 原理(경쟁의 원리)에 따라 漸次的(점차적)으로 貧富(빈부)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을 뿐입니다. 빈부에는 萬能藥(만능약)이 없습니다.
盧武鉉의 권력 배후에는 죽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거나 平等의 阿片(평등의 아편)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平準化(평준화)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平準化(평준화)로는 無限競爭(무한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진짜세계에서 勝者(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平準化의 副作用(평준화의 부작용)을 경계해야 합니다. 평준화의 後果(후과)는 지독할 수 있습니다.
모두를 鈍才(둔재)로 만드는 ‘平鈍化(평둔화)’와 모두를 가난하게 만드는 ‘平貧化(평빈화)’를 초래하여 결국 모두를 망치는 ‘平亡化(평망화)’로 落伍(낙오)사태를 빚어낼 수 있습니다.
인간의 不平等(불평등)은 개인의 타고난 육체적, 知能的(지능적), 정서적 差異(차이)는 물론 그가 속한 국가의 條件(조건) 및 時代與件(시대여건)의 差異(차이)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을 솔직하게 是認(시인)해야만 진짜세계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 李承晩, 기적의 어머니 朴正熙
15. 물론 한 국가가 진짜세계에서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國家指導者(국가지도자)의 리더십 資質(자질)입니다. 企業의 勝敗(기업의 승패)가 최고경영자(CEO)의 力量(역량)에 달려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한국의 성공은 한 마디로 建國(건국)의 아버지 李承晩(이승만)과 奇蹟(기적)의 어머니 朴正熙(박정희)가 발휘한 위대한 리더십의 산물입니다.
16. 李承晩은 순수 國産(국산)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朝鮮王朝(조선왕조) 시대에 태어났지만 8.15解放(해방) 직후 70老軀(노구)로 還國(환국)할 때까지 그가 살았던 곳은 미국입니다. 근 40년을 미국에서 보냈습니다. 李承晩은 미국에서 博士(박사)학위를 받은 學者(학자)풍의 言論人(언론인) 출신으로 그가 남긴 文筆의 足跡(문필의 족적)은 결코 범상하지 않습니다.
그는 대한제국 때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上海(상해)임시정부의 초대 大統領(대통령)을 역임했습니다. 李承晩은 한반도에서 '소비에트 朝鮮공화국(a Soviet republic of Korea)'의 출현 가능성을 일찍이 1933년에 경고할 만큼 철저한 反共의 先覺者(반공의 선각자)이었습니다.
건국 대통령 李承晩은--한국의 救援(구원)을 위해 神(신)이 내린 구세주(deus ex machina)처럼--카리스마(charisma)와 智慧(지혜)를 발휘하여 대한민국을 건국했고 공산주의자들의 南侵挑發(남침도발)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냈습니다.
그의 탁월한 文士(문사)배경과 그의 투철한 反共思想(반공사상)과 그의 두터운 미국緣故(연고)야말로 한국의 出生(출생)과 生長(생장)을 위한 씨앗이었습니다. 한국의 始祖(시조)는 李承晩입니다.
17. 한편, 北韓에서는 '극동紅軍(홍군) 독립특별 제88여단 제1대대장' 출신인 33세의 청년 金日成(김일성)이 점령국 소련으로부터 권력을 순탄하게 讓與(양여)받았습니다. 1945년 10월 14일 평양에서 개최된 소련군 환영 군중대회에서 金日成은 '民族의 영웅'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조선 공산주의자에게 낯설었던 金日成은 스탈린主義者답게 그의 과거를 베일에 감추어 조작했으므로 아직도 그의 身上(신상)의 많은 것이 불투명합니다. 中學(중학) 중퇴의 학력을 가졌던 그는 본명 ‘金成柱(김성주)’를 버리고 傳說的(전설적) 독립투사 ‘金日成’의 이름을 따 改名(개명)할 만큼 정치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모스크바에서 특별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金日成의 武士(무사)배경과 그의 풋내기 年輪(연륜)과 그의 소련緣故(연고)는 한반도에 流血(유혈)이 낭자하고 북조선에 厄運(액운)이 닥칠 징조였습니다.
18. 한국의 기적을 탄생시킨 朴正熙도 李承晩처럼 순수 國産(국산)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식 敎育(교육)을 받고 日本軍 將校(일본군 장교)로 임관된 배경을 가진 朴正熙는 그 時代(시대)의 보통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最高經營者(최고경영자)의 資質(자질)을 가진 엘리트였습니다.
朴正熙는 5.16革命(혁명)을 주도하여 國家發展(국가발전)의 모델로 日本(일본)을 벤치마킹했습니다. 그에게 익숙한 나라는 日本이었습니다.
그는 輸出立國(수출입국)을 향해 유교적 紀律(기율)로 日本式(일본식) 경제모델과 美國式(미국식) 기능주의를 접목시켜 개방형 開發獨裁(개발독재·developmental dictatorship)를 强行(강행)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을 개발도상권의 優等生(우등생)으로 만들었습니다.
초근목피로 허덕이던 판에 '잘 살아 보세'를 위해 소위 '低姿勢(저자세)' 외교로 韓日國交(한일국교)를 正常化(정상화)시켜 浦項(포항)제철과 京釜(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資金(자금)을 확보했습니다. 越南戰(월남전)에 투입한 韓國軍(한국군)이 소위 '傭兵(용병)'이라는 지탄을 받는 가운데 戰場(전장)의 군인들이 송금해 온 月給(월급)과 軍需(군수)업체가 벌어들인 外貨(외화)로 工業韓國(공업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밑천을 마련했습니다.
소위 ‘저자세’와 위험을 감수한 朴正熙의 勇氣(용기)와 리더십으로 기적의 한국이 탄생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고 아무 때나 될 수 없는 것을 해냈습니다.
민주국가에선 제도가 영웅이다
19. 超强大國(초강대국) 미국을 잘 아는 李承晩이 美國에 줄을 댔고 경제대국 일본緣故(연고)를 가진 朴正熙가 日本 흉내를 낼 수 있었던 결과 오늘의 한국이 平和(평화)와 繁榮(번영)을 누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不世出(불세출)의 두 英雄(영웅)이 國民國家(국민국가·nation-state)로서 한국의 國家建設(국가건설·nation-building)을 해냈습니다. 절대로 그것을 예사로 여기면 안 됩니다.
20. 그러나 소위 ‘民主化(민주화)’를 실현한 것처럼 자부하는 한국의 政治勢力(정치세력)은 저들이 잘나고 잘해서 한국이 이 만큼 된 줄로 착각하고 傲慢(오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건국의 아버지와 기적의 어머니를 怨望(원망)하고 憎惡(증오)합니다. 悖倫兒(패륜아)처럼 행세합니다.
수천 년 동안의 굶주림과 가난으로부터 해방된 결과가 바로 그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美國의 恩惠(은혜)를 反美로 갚고 日本과의 紐帶를 하찮게 여기는 반면 中國에는 부질없는 秋波(추파)를 던지고 北韓의 暴政(폭정)을 부양하며 감쌉니다. 그러니깐 한국은 밥술께나 먹고사는 나라치고는 세계에서 가장 어지럽고 고립된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소위 南南(남남)갈등이라는 파괴적 國論分裂(국론분열)을 惹起(야기)하는가 하면 ‘우리 민족끼리’라는 허망한 同族主義(동족주의) 정치로 외교적 외톨이 신세를 자초하고 있습니다.
21. 우리가 왜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그 가장 큰 이유는 朴正熙의 暗殺(암살)과 그의 죽음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國家經營(국가경영) 리더십이 限界(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에서는 영웅이 탄생할 수 없는 대신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민주적 제도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근대 민주주의의 본산인 英國에서는 350년이 더 걸렸습니다. 민주적 제도가 확립될 때까지는 민주주의에서도 영웅 비슷한 指導者(지도자)가 필요합니다.
22. 朴正熙 이후에 배출된 다섯 명의 지도자들은 모두가 순수 國産(국산)입니다. 純粹 國産(순수 국산)에서는 지도자로서 미더운 인물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권력형 腐敗(부패)로 본인이나 그 자식들이 이미 監獄(감옥)에 갔거나 언젠가는 大逆罪(대역죄)로 법의 심판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 못합니다.
그 중에서 처음 두 명은 직업군인 출신으로 ‘스스로의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는 爲人(위인)’들은 아니었습니다. 소위 ‘민주화시대’의 문을 열어주는 守門將(수문장)에 불과했습니다.
그 중의 세 번째는 과도기의 職業政治人(직업정치인)으로서 “民族(민족)은 同盟(동맹)보다 낫다”고 바람기를 보이는 寸劇(촌극)을 연출했습니다.
바보상자를 전파독재의 創劍으로 쓰는 盧
23. 한국이 처한 國難(국난)의 元兇(원흉)은 朴正熙 이후 네 번째로 권력을 장악했던 金大中입니다. 소위 '햇볕 政策(정책)'의 元祖(원조)로서 북한의 世襲(세습) 독재자 金正日에게 막대한 現札(현찰)과 뇌물을 제공하고 이른바 南北頂上(남북정상) 회담을 買收(매수)했습니다. 그것으로 反逆(반역)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金大中은 한국의 民度(민도)와 政治風土(정치풍토)를 자신의 立身(입신)을 위해 최대로 악용한 政治鬼才(정치귀재)로 한국이 앓고 있는 國家的 怪疾(국가적 괴질)의 主犯(주범)입니다.
소위 ‘민주화시대’ 이후 다섯번째로 등극한 盧武鉉의 출신배경과 志向(지향)은 참으로 예사롭지 않습니다. 高卒(고졸)인 金大中의 정치養子(양자)로서 같은 고졸인 그가 연출하는 정치는 거의 노략질에 가깝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에 대한 醜行(추행)을 감행하는데 廉恥(염치)가 없습니다. 性醜行(성추행)만이 추행이 아니고 ‘政治醜行(정치추행)’도 추행의 범주에 넣어야 합니다.
24. 인간 盧武鉉의 대담한 성향과 유치한 資質은 反逆(반역)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출하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利敵(이적)·반미·反民(반민)으로 홍색 反逆의 총대를 노골적으로 메는 것은 물론 平等의 阿片(평등의 아편)으로 투표지를 買集(매집)하는 權力(권력)게임에 대단히 능합니다.
개발독재시대에도 감히 貪(탐)할 수 없었던 獨斷(독단)·독선·獨走(독주)·독점·獨食(독식)을 주저하지 않으며 ‘바보箱子(상자)’ 텔레비전을 현대판 槍劍(창검)으로 씁니다. ‘電波獨裁(전파독재)’라고 할 만합니다.
盧武鉉 후보는 2002년 大選(대선)으로 가던 5월 28일 仁川(인천) 부평역 앞에서 “南北對話(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 나머지는 대강해도 괜찮다”고 기염을 토했습니다. 經驗(경험)과 常識(상식)과 理性(이성)을 존중하고 法道(법도)를 중시하는 사람의 입에서는 도저히 그런 쌍스러운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가 말한 “깽판”은 미리 권력의 反逆을 예보한 것이었습니다.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奇想天外(기상천외)의 해괴한 反逆 말입니다. 反逆은 보통 외교관과 같은 ‘公認間諜(공인간첩·licensed spies)’이나 職業軍人(직업군인)·전문 情報要員(정보요원) 또는 反政府集團(반정부집단)이 저지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政權(정권)차원에서 국가를 상대로 하는 反逆이 감행되고 있습니다.
국가지도자가 迷信을 설파
25.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최고지도자 盧武鉉은 탄핵'被告(피고)'에서 풀린 지 열 사흘째 되던 2004년 5월 27일 “競選(경선) 후보 되기 전에 占(점)치고 될 것이란 확신을 가졌다'고 으스댔습니다. '四柱(사주)가 제법 괜찮다고 한다'고 자랑도 했습니다. 延世大學校(연세대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그의 人生觀(인생관)과 意識(의식)의 基底(기저)를 숨김없이 털어놓을 만큼 발가벗는 데 부끄럼이 없었습니다.
국가의 首腦(수뇌)가 현대 科學文明(과학문명)을 등지고, 국가의 將來(장래)를 짊어질 잠재적 人材(인재)들에게 迷信(미신)의 ‘위력’을 說破(설파)했습니다. 學力(학력)경쟁의 목표와 意慾(의욕)을 꺾은 셈입니다. 六甲(육갑)으로 짚어내는 占卦(점괘) 속에 富貴榮華(부귀영화)가 보장되어 있는지를 먼저 알아보고 땀을 흘리든지 말든지 하라는 충고나 다름없었습니다.
修學(수학)의 功(공)과 가치를 폄하하고 無學(무학)의 惡(악)과 수치를 모르니깐 進步(진보)를 향한 逆境(역경)의 돌파와 格調(각주)의 上向(상향)에 모범을 보이기는 글렀다는 것이 盧武鉉의 ‘六甲(육갑)발언’으로 明白(명백)해졌습니다. 그러니깐 事理(사리)의 優先順位(우선순위)를 제대로 판단할 리 없습니다. 이는 '歷史의 방향성(the directionality of history)'에 대한 認識(인식)의 결여로 試行錯誤(시행착오)와 浪費(낭비)를 일삼고 感性(감성)에 자극되어 나라에 災殃(재앙)의 危險(위험)을 초래할 赤信號(적신호)이었습니다.
26. 세계에서 大學이 가장 많은 나라에서 연거푸 高卒(고졸)이 권력의 꼭대기를 차지한 시대에 살다보니 국가의 최고지도자로부터 “깽판”치고 “占(점)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단순히 學歷(학력)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최근에 3.1절 골프로 물러난 總理(총리)는 “인생에서 골프는 양보 못해… 그거라도 안 하면 숨 못 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한 사람의 私人(사인)이었다면 문제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朝鮮時代(조선시대)의 領議政(영의정)을 흉내 낸 無爲而化(무위이화)의 고무도장 벼슬이지만 그런 자리에 앉은 그가 公人(공인)의 倫理(윤리)에 그렇게 無心(무심)할 수 없었습니다.
朴正熙의 죽음을 따라 '孔子(공자)'가 한국에서 同伴自殺(동반자살)했습니다. 지금 만연되고 있는 각종 쌍소리 및 常識(상식)과 法道(법도)를 일탈한 卑俗(비속)과 淺薄(천박)은 정치지도자의 低質(저질)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盧는 어린 民主主義를 협박
27. 권력의 승부사 盧武鉉은 걸핏하면 “大統領職(대통령직)을 못 해먹겠다”고 투덜대어 왔습니다. 취임 후 2년 半(반) 동안 열두 번이나 그런 식으로 허튼소리(poppycock)를 했습니다. 진정 그만 둘 생각이 있었다면 일찍이 下野(하야)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최고 權座(권좌)에 앉은 사람이 감히 끄집어낼 수 없는 말이 그뿐이었습니까?
2003년 10월 國民投票(국민투표)로 “국민에게 再(재)신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더니 흐지부지 끝냈습니다.
2003년 12월에는 “大選(대선) 不法(불법)선거자금의 규모가 한나라黨 불법자금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할 용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지켰다면 이미 물러났습니다.
2004년 6월에는 '新행정수도에 정권의 命運(명운)과 진퇴를 걸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헌법재판소의 遷都 違憲(천도 위헌) 판정이 나자 그것을 비켜가기 위한 便法(편법)으로 소위 ‘행정도시’라는 遁甲(둔갑)을 부리면서 엄청난 浪費(낭비)를 일삼고 있습니다.
작년 7월에는 터무니없게 소위 大聯政(대연정)을 위해 '권력을 한나라黨에 이양하겠다'고 선언하여 불법盜聽(도청) 보도로 시작된 'X-파일' 政局(정국)에 끼어들더니 꼬리를 내려버렸습니다.
그러고는 결국 남긴 말이 “支持率(지지율) 29퍼센트로는 國政運營(국정운영)이 곤란하니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고 하면 檢討(검토)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2005년 8월 25일 KBS TV에 출연하여 그런 식으로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脅迫(협박)했습니다.
盧정권은 3大 불법으로 탄생
28. 경험과 상식과 이성 중에서 한 가지라도 제대로 있다면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특히 '행정도시'의 편법으로 司法府(사법부)에 挑戰(도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지율 20퍼센트代(대)의 정권이 가소롭게도 굉장한 역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권력의 正當性(정당성)을 의심받는 不法政權(불법정권)이 홍색反逆을 감행하면서 電波獨裁(전파독재)로 권력을 再創出(재창출)하려 합니다.
29. 지금 市中(시중)에는 野談(야담)의 하나로 ‘웃기는 사람 시리즈’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盧武鉉이 대통령이라고 우기는 자는 웃기는 사람’이라고 조롱하는 우스개 말입니다.
권력을 마음대로 빈정댈 수 있는 民主國家(민주국가)에서는 가능한 弄(농)이지만 2002년 大選(대선) 결과를 否認(부인)하는 民心(민심)의 동향과 무관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先進民主國家(선진민주국가)의 정치道義(도의)와 法(법)의 관행으로는 오래 전에 盧武鉉이 대통령 자리를 내놓고 청와대를 下直(하직)했었어야 합니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명백한 불법으로 當選(당선)되었기 때문입니다.
- 하나는 資金(자금)의 불법입니다. 盧武鉉캠프는 113억 8천700만 원의 불법자금을 수령했습니다. 국고보조로 받은 123억 원과 문제의 '삼성그룹' 채권 500억 원은 별도입니다. 한나라黨이 '車떼기'로 불법을 감행한 것과 盧武鉉캠프에 의한 불법의 免除(면제) 문제는 별개입니다.
- 다른 하나는 中傷謀略(중상모략)으로 감행한 犯法(범법)입니다. 李會昌(이회창) 후보 아들의 兵役(병역)에 관련된 소위 '兵風(병풍)'과-李 후보 夫人(부인)이 '기양건설'로부터 10억 원을 수령했다고 조작한 로비疑惑(의혹)- 및 李 후보가 소위 '최규전게이트'의 주인공으로부터 20만 달러를 받았다고 조작한 陰害(음해) 등 세 건의 중상모략 사건이 모두 大法院(대법원)에 의해 有罪(유죄)로 판결났습니다.
大法院은 2005년 5월 소위 ‘兵風(병풍)’을 단죄하면서 그 영향이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黨에 불리하게 작용했음이 명백하다”고 인정했습니다.
- 세 번째는 대선 公約(공약)의 違憲(위헌)입니다. 憲法裁判所(헌법재판소)는 2004년 10월 소위 ‘新행정수도법’을 違憲(위헌)으로 判決(판결)했습니다. 따라서 盧武鉉 후보에 의한 수도移轉(이전) 공약의 違憲(위헌)이 확인되었습니다.
30. 盧武鉉의 大選不法(대선불법)은 내년 2007년의 대선 結果(결과)와 결정적으로 관계가 있습니다. 그의 캠프가 받은 만큼의 不法資金(불법자금)과 그의 캠프가 저지른 만큼의 中傷謀略(중상모략) 및 그의 캠프가 건 만큼의 違憲公約(위헌공약)은 2007년 대선 결과의 수용과 無關(무관)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그 만큼의 不法大選(불법대선)이 내년의 大選(대선)에서 재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그런 불법은 소위 ‘민주화시대’가 그 恥部(치부)와 僞善(위선)과 虛像(허상)을 드러낸 적나라한 증거로서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絞殺(교살)하는 중대한 反逆罪(반역죄)입니다. 그런 不法大選(불법대선)결과는 拒否(거부)해야 합니다. 다시는 그런 불법을 容認(용인)하지 않기 위한 國民行動(국민행동)이 필요합니다. 전국적으로 벌리는 國民的(국민적) 캠페인이 火急(화급)합니다.
광화문에 촛불부대를 진주시켜 'TV 쿠데타' 감행
31. 盧武鉉은 취임 후 겨우 1년 남짓 만에 헌정사상 최초의 彈劾訴追(탄핵소추)를 받았습니다. 그의 救命(구명)을 위해 광화문에 촛불部隊(부대)를 進駐(진주)시켜 ‘TV쿠데타’를 감행한 것은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에 대한 악랄한 醜行(추행)이었습니다.
盧武鉉 권력의 醜行(추행)은 여러 갈래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국을 땅 投機場(투기장)으로 만들며 江南(강남)의 아파트 값을 부채질합니다. 相對的(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등 위에 올라타고 大權(대권)을 잡은 權力集團(권력집단)이 그런 가난한 사람들을 絶對的(절대적)으로 가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그런 식으로 권력의 反민주주의 反逆에 의해 무엄하게 농락당하고 있습니다.
32. 기적의 한국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써만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美國의 出血(출혈)과 後見(후견)과 안보雨傘(우산) 밑에서 오늘의 한국이 태어났고 자랐다는 것을 꿈에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한국의 탄생은 6,000만 명 이상의 살육을 가져 온 인류 최대의 비극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였습니다. 美軍의 死亡者(사망자)만도 40만 명 이상에 달했습니다. 美國이 투하한 두 발의 원자폭탄에 帝國(제국) 일본이 항복했습니다. 결코 우리가 獨立運動(독립운동)을 잘 해서 解放(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33. 韓國은 美國의 후견 하에 건국되어 민주주의를 지향했습니다. 蘇聯이 급조한 北韓은 기본적으로 日帝 治下(일제 치하)보다 나을 것이 없는 전체주의 獨裁國家(독재국가)로 태어났습니다.
한반도의 分斷(분단)은 제2차세계대전의 戰後(전후)처리 과정에서 빚어진 국제정치의 산물입니다. 분단을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고 남한 單獨政府(단독정부)의 출범을 욕하는 것은 홍색反逆의 상투적 手法(수법)입니다. 망한 蘇聯에 붙지 않았던 것을 욕하고 굶어 죽어가고 있는 北韓처럼 되지 않은 것을 恨歎(한탄)합니다.
解放(해방) 당시 文盲率(문맹률)이 근 80퍼센트이던 우리가 自決能力(자결능력)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하면 커다란 錯覺(착각)입니다. 문맹을 거의 퇴치한 지금의 우리가 완전한 自決能力(자결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自問(자문)해볼 만합니다. 이 땅에서 紅色反逆(홍색반역)이 연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그런 能力(능력)을 의심케 하는 증거입니다.
한국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美國의 後見(후견) 덕분에 그나마 反逆의 결정적 흉한 단계로 접어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솔직하게 是認(시인)할 줄 알아야만 最惡(최악)의 境遇(경우)를 면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흘린 피로 탄생하고 구제된 나라
34. 한국은 美國이 한반도에서 흘린 피로 救濟(구제)된 나라입니다. 스탈린의 指令(지령)과 毛澤東(모택동)의 諒承(양승) 하에 金日成이 감행한 6.25南侵(남침)전쟁으로 16만 여명의 美軍 死傷者(전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물론 우리 한국 사람들의 救援(구원)만을 위해 美國이 出血(출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美國이 치른 犧牲(희생)의 代價(댓가)로 우리가 살아남았습니다. 홍색 反逆은 우리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애통하게 여깁니다. 우리를 구해준 맥아더 장군을 욕합니다. 그를 戰犯(전범)으로 취급하여 그의 銅像(동상)을 헐려고 합니다.
35. 기적의 한국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써만 일궈진 것이 아닙니다. 美國의 安保雨傘(안보우산) 밑에서 미국의 食糧援助(식량원조)로 虛飢(허기)를 면하면서 살아남아 經題(경제)를 建設(건설)했기 때문에 오늘의 한국이 존재합니다.
해방 후 근 15년 동안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軍事援助(군사원조)와 經濟援助(경제원조)는 약 50억 달러에 달합니다. 그 당시의 미국 돈 가치로 볼 때 막대한 금액입니다. 특히 그런 원조 덕분에 國軍(국군)이 創設(창설)된 것은 해방 후 지난 60년 동안의 한국 역사에서 가장 偉大(위대)한 業績(업적)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홍색 反逆은 그런 美國을 怨讐(원수)로 여기는 北韓의 전체주의 독재를 편드는 일방 國軍(국군)의 正體(정체)를 흐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韓美同盟(한미동맹)이 결딴날 판입니다.
36. 反美반역에 담긴 敎旨(교지)의 뿌리말은 “反美(반미)면 어때?”입니다. 盧武鉉이 내뱉은 말입니다. 그는 2002년 대선으로 가면서 그렇게 일갈하더니 대권을 쥔 뒤에는 “對等(대등)한 韓美관계의 主導權(주도권)”을 공언했습니다. 權座(권좌)에 올라 1년 반 동안 治世(치세)실습을 거친 후에는 “이대로 한 5년에서 10년이 가면 韓國은 미국과 적어도 국제사회에서 대등한 自主國家(자주국가)로서의 역량을 갖출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갈수록 可觀(가관)이었습니다. 無知(무지)·無識(무식)·無恥(무치)가 '勇氣(용기)의 어머니라는 말을 想起(상기)시키는 대목입니다.
37. 과거는 과거니깐 모두 無視(무시)하고 미국과 訣別(결별)한 후 한국이 지향하는 國家目標(국가목표)를 홀로 추구할 수 있다면 反美(반미)도 해보고 소위 自主外交(자주외교)도 해볼만합니다.
그러나 美國이 어떤 나라인지와 미국과 한국이 기본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알고서는 그렇게 못합니다. 蹴球(축구)경기나 野球(야구)경기에서 韓國이 美國에 이기는 것을 보고 美國과 對等(대등)해질 수 있겠구나 하고 錯覺(착각)하는 것처럼 되지 않는 한 그렇게 못합니다. 그렇게 하다간 한국의 現在(현재)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將來(장래)를 포기하는 꼴이 됩니다.
美國은 한국을 抛棄(포기)해도 危險(위험)해질 가능성은 없지만 韓國이 美國으로부터 버림을 받으면 危殆(위태)로워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니깐 韓國에 '미국사람보다도 더 친미적인 사람이 많은 것'이 한국을 위해 나쁘지 않습니다.
허지만 反美(반미)의 使徒(사도) 盧武鉉은 2005년 4월 터키를 방문했을 때 “한국 국민들 중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 사람들이 있는 게 내게는 걱정스럽고 제일 힘들다”고 투덜댔습니다.
걱정할 일도 아니고 힘들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한국외교의 최고사령탑인 盧武鉉은 한국의 反美(반미) 정치市場(시장)을 겨냥하는 정신을 팔았습니다.
北核은 국군을 종이호랑이로 만들지도
38. 소위 大聯政(대연정)을 포함하여 內治(내치)에 관련된 실없는 소리가 한둘이 아닌 만큼 外交(외교)에 관련된 허튼 소리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2005년 3월 동북아의 勢力版圖(세력판도)를 바꾼답시고 띄운 소위 ‘동북아 均衡者(균형자)’ 역할론은 100일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外交學(외교학) 세미나의 主題(주제)로도 삼지 못할 것을 국가의 정책차원으로 띄우다가 亡身(망신)당한 셈입니다.
그러나 盧武鉉의 臣下(신하)들은 亡身(망신)당하는 데 그치지 않고 危險(위험)을 甘受(감수)해야 하거나 財物(재물)을 虛費(허비)하기 十常(십상)인 것들에 怯(겁)이 없다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駐韓美軍(주한미군)의 性格(성격)과 價値(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추진하고 있는 作戰指揮權(작전지휘권) 환수의 後果(후과)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상 최강의 ‘戰爭國家(전쟁국가)’ 미국을 함부로 상대하다가 狼狽(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 美軍基地 移轉(미군기지 이전)을 포함하여 소위 '自主國防(자주국방)'을 위해 國防費(국방비)를 늘리는 것은-아이들의 兵丁(병정)놀이가 아니므로-어리석은 짓 같이 보입니다. 진짜세계에 숙달된 권력이라면 국가재원을 浪費(낭비)하는 그렇게 無感(무감)할 수 없습니다.
39. 한국에 대한 美國의 존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韓國의 國家安保(국가안보)입니다. 특히 北韓의 核武裝(핵무장)은 한국군을 종이호랑이로 만드는 惡材(악재) 중의 惡材(악재)입니다. 그러니깐 한국이 국가적 自殺(자살)을 企圖(기도)하지 않는 한 미국의 安保雨傘(안보우산)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한편, 한국에 대한 美國의 존재를 무시하고 추진하는 한국의 自主國防(자주국방)은 동북아의 力學構圖(역학구도)를 감안할 때 國家的 消耗(국가적 소모)를 자초하는 妄發(망발)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中國이나 日本을 假想敵國(가상적국)으로 삼아 추진하는 한국의 自主國防(자주국방)은 한국의 허리를 휘청거리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소위 自主國防(자주국방)은 虛風(노풍)의 빈말에 불과합니다.
역적중의 역적 金大中이 통일을 방해
40. 한국에 대한 美國의 존재는 한국의 국가안보뿐만 아니라 韓半島(한반도)의 統一(통일)을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민족끼리’로는 우리가 원하는 통일을 이뤄낼 수 없습니다.
한반도의 統一을 위한 最善(최선)의 시나리오는 북한의 內部崩壞(내부붕괴)로 유발되는 變亂(변란)에 즈음하여 美國과 中國이 한국에 의한 북한의 吸收(흡수)를 인정하는 경우입니다. 그럴 가능성은 現在(현재)로서는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지만, 韓國의 統一外交(통일외교)는 당연히 그것을 目標(목표)로 追求(추구)해야 니다.
中國의 諒承(양승)을 얻는 것도 至難(지난)한 과제이지만, 美國의 同意(동의)를 따 놓은 堂上(당상)으로 여기는 것은 착각 중의 착각입니다. 中國과 美國이 한국을 信賴(신뢰)할 수 있는 든든한 파트너로 認定(인정)하도록 韓國이 그 외교적 成熟(성숙)을 발휘하지 않고는 우리의 所願소원)인 統一(통일)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특히 美國의 不信(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는 한국의 反美(반미)는 한국의 안보와 한반도의 통일을 볼모로 잡는 꼴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41.反逆 중의 反逆은 희대의 逆賊(역적) 金大中이 시작한 利敵反逆(이적반역)입니다. 이른바 ‘퍼주기’로 망하는 共産王朝(공산왕조)를 살리고 특히 그 核(핵)폭탄 개발을 도운 嫌疑(혐의)를 면치 못합니다. 한반도의 통일을 妨害(방해)한 비난도 면치 못합니다.
공산주의의 사망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가장 덜 脆弱(취약)할 때에 평화와 소위 民族共助(민족공조)를 빙자하여 세습독재자 金正日에게 현찰 근 5억 달러를 몰래 건넨 것이 탄로 났습니다.
소위 ‘金剛山(금강산) 관광’의 명목 하에 집어준 돈도 4억 달러가 훨씬 넘습니다. 쌀과 肥料(비료)는 으레 줘야 는 것으로 거의 제도화되었습니다.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에 供與(공여)한 쌀값만도 2조 8292억 원의 巨金(거금)이었습니다. ‘現代(현대)그룹’의 황태자 故 鄭夢憲(정몽헌)씨의 自殺(자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소위 남북정상회담 매수를 위한 對北(대북) 비밀 송금액이 15억 달러에 달한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42. 검은 돈과 유치한 同族主義(동족주의)를 교배시킨 反逆의 드라마를 製作하는 데 들어간 정확한 金額(금액)과 幕後(막후)의 眞相(진상)은 아직 베일에 감춰져 있습니다. '주기’만 하고 그에 대한 최소한의 報答(보답)을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특히 북한의 처참한 人權(인권) 실태에 냉담합니다.
-북한은 間諜(간첩)만을 돌려받고 북한에 억류된 우리의 國軍포로와 拉北者(납북자)의 歸還(귀환)조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퍼주기’만하고 200만 명 이상의 餓死者(아사자)를 내고 20만 명 이상의 政治犯(정치범)을 수용한 상태에서 공개 處刑(극형)을 예사로 일삼는 것에 속수무책입니다. 북한의 人權(인권)에 대해 유엔人權委員會(인권위원회)에서 棄權(기권)·不參(불참)하는 나라가 유엔事務總長(사무총장) 배출의 욕심을 낼 만큼 鐵面皮(철면피)합니다.
-幾萬(기만) 명에 달하는 脫北者(탈북자)의 인권을 돌볼 생각이 없습니다.
43. 촛불정권이 감행하는 利敵反逆(이적반역)의 各論的 實像(각론적 실상)은 기절초풍할 만합니다.
-間諜(간첩)을 아무런 代償(대가)의 條件(조건) 없이 북한에 돌려보내더니 빨치산 출신을 백주에 ‘民主化(민주화)’인사로 껴안습니다.
-2002년 6월 西海교전에서 희생된 我軍(아군)에게 ‘찬밥’을 먹이고 敵(적)에 대한 敵愾心(적개심)을 버리라고 軍人(군인)들에게 가르치더니 결국 國防白書(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지칭하던 '主敵(주적)'이라는 말을 삭제했습니다.
- 소위 '境界人(경계인)'으로 자처한 朝鮮勞動黨(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 KBS방송을 포함한 한국의 언론에 공공연히 뜨고 共産黨(공산당)에 충성을 서약한 間諜(간첩)이 國會議員(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세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 北韓의 核(핵)개발 지원과 그 軍隊(군대)의 부양을 맡아온 것도 모자라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200만Kw의 電氣(전기)를 북한에 공급한다는 위험한 酬酌(수작)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 電氣가 북한의 전투력 증강에 직결된다는 것은 몰라라 합니다.
-소위 ‘南北협력기금’이란 어벌쩡한 뭉치의 稅金(세금)을 兆(조) 단위로 늘려 더욱 알뜰한 對北 救護(대북 구호)에 나서고 있습니다. 2006년도의 정부 예산에 계상된 것만도 1조 2000억 원을 상회하며 2007년도에는 2조 4,000억 원으로 증액하려 합니다.
北核은 외교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44. 盧武鉉은 대통령에 당선되자 마자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仲裁(중재)’ 용의를 밝혔습니다. 그는 “북한의 核보유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北核(북핵)의 自主的(자주적)·外交的(외교적) 해결을 강조해왔습니다. 그의 그런 말은 언뜻 진지하게 들리지만 그 속에 담긴 反逆(반역)의 含意(함의)를 輕視(경시)할 수 없습니다.
北核(북핵)은 외교적으로 해소될 事案(사안)이 아닙니다. 국제무대에서 공개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지 근 17년이나 됩니다. 북핵은 그 당시에 비해 기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북한의 독재자 金正日은 ‘核의 밧줄을 놓치면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그 동안 北核을 다루어 온 美國은 1994년에 북한을 상대로 소위 ‘제네바 合意(합의)’란 것을 도출해냈지만 결국 북한에 속고 말았습니다. 소위 ‘輕水爐(경수로)’의 對北(대북) 공급이 休紙化(휴지화)함에 따라 우리가 날린 돈만도 2조 원을 상회합니다.
反테러전쟁을 치르고 있는 美國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소위 ‘6者회담’이라는 ‘마당굿 외교’를 전개해 오고 있습니다. 하기야 中國의 對北(대북)압박을 기대하며 中國과 責任(책임)을 分擔(분담)하려는 핑계의 價値(가치)는 없지 않습니다.
45. 盧武鉉은 北核을 가지고 미국과 북한을 의식한 兩手(양수) 겸장의 混亂戰法(혼란전법)을 통해 反美(반미)플레이를 연출합니다.
그는 2004년 11월 12일 미국 로스 엔젤레스에서 “북한이 核武器(핵무기)를 抛棄(포기)하지 않을 때는 外部(외부)로부터의 扶養(부양)이 단절되어 生存(생존)조차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놓고 3週(주) 남짓 후인 12월 4일 폴란드에서는 '북한이 崩壞(붕괴)되지 않도록 中國이 여러 도움을 주고 있고 韓國도 붕괴를 願(원)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은 붕괴될 可能性(가능성)이 없다는 식으로 말을 바꿨습니다.
가만히 듣자하니 그의 말은 결국 北韓이 ‘核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리를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북핵은 ‘自衛用(자위용)’이라는 취지로 북한을 代辯(대변)한 그의 LA 공언과 다르지 않습니다.
연방제의 들러리를 선 연합제
46. 홍색反逆의 敎理(교리) 중에서 최고의 敎旨(교지)는 ‘북한의 崩壞(붕괴)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분단을 노리는 국제陰謀(음모) 즉 소위 ‘軟着陸(연착륙·soft landing)’ 프로퍼갠더와 상통합니다. 反통일주의 利敵反逆(이적반역)을 위한 指導綱領(지도강령)으로 채택된 슬로건입니다.
2000년 6월의 소위 ‘南北共同宣言(남북공동선언)’에 언급되어 있는 북측의 소위 '聯邦提案(연방제안)'은 북측의 崩壞(붕괴)를 막기 위한 實踐 道具(실천 도구)가 될 모양입니다. 北韓은 냉전시대부터 對南 宣傳(대남선전) 프로퍼갠더로 '聯邦制(연방제)'를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소위 남측의 '聯合提案(연합제안)'이란 것은 문제의 南北共同宣言(남북공동선언) 속에 들어 갈 수 있을 만큼 남한의 國論(국론)으로 채택된 바 없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國憲節次(국헌절차)를 無視(무시)하고 국가의 기본에 관한 것을 권력자의 恣意(자의)로 變造(변조)하는 것은 현대판 逆謀(역모)에 해당합니다.
홍색反逆의 始祖(시조) 金大中은 그런 역모를 감행했습니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소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고 말했지만 문제의 共同宣言(공동선언) 속에는 정작 평화에 대한 言及(언급)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 대신 북측의 ‘聯邦制(연방제)’를 위한 들러리로 남측의 '聯合提案(연합제안)'이란 것을 끼워 넣었습니다.
“낮은 段階(단계)”이고 높은 단계이고 간에 亡(망)해가는 국가와 멀쩡한 국가 간의 聯邦制(연방제)란 도대체 言語道斷(언어도단)입니다. 거기에다 두 개의 構成(구성)국가 즉 두 개의 支邦(지방)이 聯邦(연방)을 구성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두 개라면 완전히 합치거나 각기 따로 존재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47. 촛불 정권의 시계 바늘이 午後(오후)를 가르치면서 ‘聯邦制(연방제)’를 띄워 올리는 숨 가쁜 소리가 심상찮게 들립니다. 그들은 막상 모든 “깽판”의 免罪符(면죄부)로 기대했던 ‘南北對話(남북대화)의 성공’이 可視化(가시화)되지 않는 것을 焦燥(초조)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깐 홍색反逆의 물결 속에서 ‘聯邦制(연방제)’는 颱風(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金正日의 答訪(답방)이 실현되지 않는 상태에서 金剛山(금강산)에서라도 ‘햇볕’드라마의 續編(속편)을 공연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盧武鉉-金正日 간의 소위 ‘남북정상회담’ 드라마 말입니다. 그 하이라이트로 ‘聯邦制(연방제)’를 反逆의 깃발에 꽂으려는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 脚本(각본)에 성공하면 홍색反逆이 클라이맥스로 올라갈 수 있는 중대한 轉機(전기)를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48. 反逆의 颱風(태풍)은 ‘聯邦制(연방제)’로 가는 길에 놓인 한국의 國家保安法(국가보안법)이라는 장애물을 때릴 것입니다.
홍색反逆의 물결에 退色(퇴색)된 나머지 그 實效性(실효성)에는 흠이 없지 않지만 한국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그 象徵的 價値(상징적 가치)가 여전한 것은 國家保安法(국가보안법)입니다.
2004년 10월 4일 서울시청 앞 광장을 중심으로 집결한 30만 명의 人波(인파)는 대한민국의 愛國市民(애국시민)들이 지난 8년 동안 反逆의 시대에 항거한 決定版(결정판)이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反對(반대)하는 사람들의 절규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여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의 喊聲(함성)으로 紅色反逆의 氣(기)를 꺾는 데 일단은 성공했습니다.
49. 그러나 다시 국가보안법의 폐지 政局(정국)이 再燃(재연)되고 '聯邦制(연방제)' 政局(정국)이 야기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합니다.
愛國세력과 反逆세력간의 大會戰(대회전)에서 촛불 부대를 앞세운 ‘TV쿠데타’의 위력이 再燃(재연)될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그럴 경우에 愛國(애국)세력의 勝利(승리)를 결코 壯談(장담)할 수 없습니다. 홍색反逆이 斷末魔的 氣勝(단말마적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 結語
50. 한국은 그 민주주의가 충분히 자라기 전에 신종 獨裁勢力(독재세력)에 의해 醜行(추행)을 당하고 있습니다.
執權勢力(집권세력)은 어린 민주주의를 깔보고 홍색反逆의 물결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한국의 '權主(권주)'인 帝王的(제왕적) 대통령은 헌법상의 受任(위임)을 無視(무시)하고 권력의 無所不爲(무소불위)를 신봉합니다.
한국은 絶對者(절대자)로부터 爭取(쟁취)한 국가권력을 민주적으로 分讓(분양)한 실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民主化(민주화)는 겉치레의 選擧(선거)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데 불과합니다.
참(眞)민주주의에 불가결한 制度(제도)민주주의의 조건 즉 自由言論(자유언론)·司法(사법)의 독립·官僚(관료)의 中立(중립)을 아직 확립하지 못했습니다. 그 세 가지가 대단히 虛弱(허약)하고 不完全(불완전) 합니다.
한국에서의 國論分裂(국론분열)은 민주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있을 수 있는 理念(이념) 또는 空理(공리) 논쟁 즉, 右派(우파) 對 左派(좌파) 또는 保守(보수) 對 進步(진보 혹은 自由) 간의 對立(대립) 또는 差異(차이)에서 비롯되는 것과 다릅니다. 分斷國家(분단국가)로서의 敵對關係(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주의와 全體主義(전체주의)가 서로 극한적으로 싸우는 樣相(양상)입니다.
한국의 소위 保守(보수)는 개발독재로 일궈낸 기적의 결과를 지키면서 先進世界(선진세계)를 지향하는 實用主義(실용주의)집단입니다. 반면 한국의 소위 進步(진보)는 북한의 共産王朝(공산왕조) 편에서 민족의 偶像(우상)을 신봉하는 浪漫的 集團(낭만적 집단)입니다. 선진세계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그런 집단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런 싸움의 결과는 결국 이 쪽인가 또는 저 쪽인가로 귀착되고 있습니다.
기적의 한국이 선진세계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멉니다. 짧은 30년의 한 世代(세대)만에 工場(공장)을 건설하여 經濟(경제)는 現代化(현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意識(의식)과 행태가 野蠻(야만)과 未開(미개)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한국이 선진세계의 멤버십을 따는 데 가장 중요한 條件(조건)을 갖추자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約束(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의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法治(법치)와 制度(제도)로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은 이미 선진사회로 가는 길에 올라섰습니다. 거기로 가는 長征(장정)의 基本條件(기본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대한 장애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신종 독재세력)에 의한 홍색反逆의 紅疫(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紅色反逆(홍색반역)은 개발독재보다 더 나쁩니다. 한국을 괴롭히는 萬病(만병)의 根源(근원)은 북한의 共産王朝(공산왕조)입니다. 궁극의 處方(처방)은 그 消滅(소멸)입니다.
● 李長春 대사 약력
1940년 경남馬山 출생
4.19革命유공자(건국포장 수령)
고등고시 행정과(外交) 합격
서울대 政治學科 졸업
서울대 대학원外交學科 수료
[독일 Bonn대학교 修學/ 미국 Harvard대학교 CFIA 펠로우/일본 慶應義塾大學 방문교수]
空軍중위 예편
독일/월남/英國/제네바/뉴욕(유엔) 주재공관 근무
大統領정무(外交안보)비서관
외무부國際機構조약국장/外交政策기획실장
駐싱가포르/오스트리아/IAEA/필리핀/팔라우大使
2000년 외교부 辭職
경희대학교/명지대학교 초빙교수(國際法/외교)
(現)외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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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骨지식인으로 변한 한 엘리트 외교관의 '心血을 기울여 쓴 글'
독서취향이 같은 사이
李長春 대사와 필자는 살아온 길이 많이 다르지만 같은 점도 많다. 지난 여름 李 대사가 장서를 정리하였다면서 여섯 뭉치의 책을 묶어 놓았으니 가져 갈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택시를 대절하여 책을 실어와 필자의 오피스텔에 옮겨놓고 묶음을 풀어 보았다. 필자가 이미 구입하여 읽은 책이 열 권 쯤 되었다. 퓰리처 상을 받은 트루먼 전기, 콘돌리사 라이스의 독일통일에 대한 名著, CIA 관련 책 등등. 傳記, 戰史, 외교사, 정치사상 관련 책들이 主流였다. 필자와 독서취향이 이렇게 같은 이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였다.
그때가 10월 초 連休 직전이었는데 李 대사는 여행지를 추천해주었다. "스위스 산악 기차 여행을 방불케 하는 코스"라고 했다. 오스트리아 대사 출신의 추천을 믿고 간 곳은 강원도 정선군의 '하이 원 호텔'이었다. 해발 1100m로서 한국 最高 위치 호텔이다. 청량리-원주-제천-영월-고한의 철도여행은, 무르익는 陽明한 가을 들판을 거쳐 아기자기한 계곡을 지나 험준한 강원도 산맥을 타고 高原지대에 이르는 환상적 한국紀行이었다. 李 대사가 추천해준 두 군데의 음식점은 맛이 소박하고 값도 적당하였다.
독서취향과 미적(美的-味的) 감각이 서로 통하는데다가 역사관, 이념관, 時局觀은 대강에서 일치하여 和而不同(화이부동)할 수 있는 사이라 지난 10여년간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특히 漢字말살과 한글專用이 가져온 國語와 교양의 파괴가 萬惡의 根源이란 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사이이다. 보수적 지식인들 가운데서도 한글專用의 폐해를 이념적으로 들여다 보는 이들이 희귀한 가운데 李 대사는 필자보다도 더 개탄하는 분이니 이 점에선 同志的 관계라 할 만하다.
용수철
李 대사와의 인연도 글을 통해서였다. 필자가 편집장을 맡고 있던 2000년 3월호 月刊朝鮮이 그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金玄浩 기자는 <한 고참 현직 大使(대사)가 우리 외교부의 人事(인사) 문란과 조직의 난맥상, 이에 따른 총체적 외교 역량의 허약성을 강도높게 공개적으로 비판한 뒤 사표를 던졌다>고 썼다. '조직에 칼을 꽂는 거냐'는 격한 반응도 일부에서 나왔으나 동기야 어쨌든 그의 지적은 외교부를 아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면서 李 대사를 이렇게 소개하였다.
<李長春 대사의 외교부內 별명은 'Long(長) Spring(春)'. 그러나 여기서 'Spring'은 봄이 아니라 용수철이다. 평소 '돌출 행동'이 많아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외교부의 공식 입장과 다른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1998년 초 정부 조직 개편 때는 외무부의 통상업무 장악 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외교부內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행동이 조직인으로서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그가 '소신파'라는 데 대해서는 異見(이견)을 달기 어려워 보인다.
李대사는 40세이던 1980년부터 청와대 외교안보 담당 정무비서관을 3년간 지냈고, 3개국(오스트리아-싱가포르-필리핀) 대사와 외교정책기획실장을 역임하는 등 요직을 많이 거쳤다. 일에 대한 의욕도 왕성하다는 評(평)을 들었다. 그만큼 우리 외교 현실에 대한 풍부한 현장 경험과 識見(식견)을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다.>
2000년 6월의 김대중-김정일 회담과 6.15 선언 이후 李 대사와 대화를 나누는 회수가 늘었다. 그는 6.15 선언을 '국가 正體性의 變造(변조)기도' '逆謀(역모)'라고 규정하는 글을 월간조선(2002년 7월호)에 기고하였다. 그의 분노가 용수철처럼 튀어오른 것이다.
노무현 후보가 김대업의 사기적 폭로, 신행정수도 건설로 위장한 수도이전 공약, 정몽준과의 단일화 쇼에 힙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2002년 12월의 우울한 연말 어느 날 李 대사와 필자, 그리고 徐貞甲 대령연합회 회장(현 국민행동본부장)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를 고민하였다. 그 뒤 애국단체의 대중집회장에서 자주 그를 만나게 되었다.
"과거는 감당하기 쉽고, 현재와 미래는 벅차다"
국민행동본부 주최 월례 강좌가 2006년 3월21일 서울 종로 5가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렸고 이날 강사로 초빙된 李長春 대사는 '홍색反逆의 물결'이란 제목의 강연을 하였다. 준비된 연설문을 읽어내려간 그의 강연은 관중들을 사로잡았다. 필자는, 김대중-노무현 좌파정권의 반역성을 정확하게 짚고,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당면한 과제를 깊게 분석한 이 연설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名文이라고 평가한다.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본질을 가차 없이 지적하고 代案까지 제시한 글이었다. 李 대사의 글을 모은 이 책에서 이 연설문은 가장 중요한 문서이고 6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살아 있는 글'이다. 이 글은 정치적, 역사적 관점에다가 문학적 표현을 더하여 손에 땀이 날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무엇보다도 예언적이다.
그는 서두에서 <사실상의 國庫强奪(국고강탈)로 2000년의 소위 남북정상회담을 買收(매수)한 金大中의 ‘햇볕政權’이 감행하기 시작한 권력의 反逆은 盧武鉉의 ‘촛불政權’에 의해 세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고 규정하였다.
‘퍼주기‘로 북한의 공산왕조를 살리고 聯邦制(연방제)로 한국의 國家正體性(국가정체성)을 변조하는 利敵(이적)반역, 그 연장으로서 국가안보와 통일을 볼모로 잡는 反美반역, 그 중에서 가장 집요하고 소모적인 것은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농락하는 反民(반민)반역이 진행중이란 분석이었다. 李 대사는 노무현 정권이 역사를 정치적 兇器(흉기)로 악용하는 작태를 이렇게 斷罪하듯 비판하였다.
<過去(과거)는 진짜세계가 아닙니다. 소위 ‘過去史(과거사)’라는 말은 歷史(역사)라는 말을 억지로 代用(대용)한 엉터리 造語(조어)입니다. 盧武鉉의 사람들은 진짜세계를 등지고 소위 ‘過去史 청산’을 무기로 권력 플레이에 광분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과거는 감당하기 쉽고 현재와 미래는 벅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占領(점령)에 급급한 나머지 현재와 미래를 팽개치며 과거를 恨(한)풀이 정치의 好材(호재)로 삼고 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 기적의 어머니
필자는 연설을 들으면서 저렇게 정성을 들인 글을 쓴다고 李 대사가 피를 말렸겠구나 하는 생각에 젖었다. 李 대사는 나중에 외교관의 버릇 때문에 원고 없는 연설은 해 본 적이 없다면서 준비하는 데 한 달 이상 걸렸다고 실토하였다. '反共자유민주세력'이 이용할 만한 '말의 武器'가 名言名句의 형태로 정리된 대목이 여럿 있었다.
<공산주의가 사망함에 따라 ‘歷史의 종언(the end of history)'이 선고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로 낙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貧富(빈부)격차의 解消(해소)에는 特效藥(특효약)이 없다는 것이 再確認(재확인)되었습니다. 오직 競爭의 原理(경쟁의 원리)에 따라 漸次的(점차적)으로 貧富(빈부)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을 뿐입니다. 빈부에는 萬能藥(만능약)이 없습니다.>
<平準化의 副作用(평준화의 부작용)을 경계해야 합니다. 평준화의 後果(후과)는 지독할 수 있습니다. 모두를 鈍才(둔재)로 만드는 ‘平鈍化(평둔화)’와 모두를 가난하게 만드는 ‘平貧化(평빈화)’를 초래하여 결국 모두를 망치는 ‘平亡化(평망화)’로 落伍(낙오)사태를 빚어낼 수 있습니다. 인간의 不平等(불평등)은 개인의 타고난 육체적, 知能的(지능적), 정서적 差異(차이)는 물론 그가 속한 국가의 條件(조건) 및 時代與件(시대여건)의 差異(차이)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을 솔직하게 是認(시인)해야만 진짜세계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李 대사와 필자는 인물관이 비슷하다. 존경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트루먼, 레이건, 대처, 조지 오웰, 李承晩, 朴正熙, 李光耀를 좋아한다. 이날 연설에서 李 대사는 절묘한 표현을 하였다. 李承晩을 '建國(건국)의 아버지', 朴正熙를 '奇蹟(기적)의 어머니'라고 정리한 것이다.
<그(이승만)의 탁월한 文士(문사)배경과 그의 투철한 反共思想(반공사상)과 그의 두터운 미국緣故(연고)야말로 한국의 出生(출생)과 生長(생장)을 위한 씨앗이었습니다. 한국의 始祖(시조)는 李承晩입니다. 그(박정희)는 輸出立國(수출입국)을 향해 유교적 紀律(기율)로 日本式(일본식) 경제모델과 美國式(미국식) 기능주의를 접목시켜 개방형 開發獨裁(개발독재·developmental dictatorship)를 强行(강행)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을 개발도상권의 優等生(우등생)으로 만들었습니다. 不世出(불세출)의 두 英雄(영웅)이 國民國家(국민국가·nation-state)로서 한국의 國家建設(국가건설·nation-building)을 해냈습니다. 절대로 그것을 예사로 여기면 안 됩니다.>
노략질에 가까운 정치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존경심은 김대중, 노무현에 대한 분노와 경멸로 돌변한다. 이 극명한 대치가 '이장춘 연설'을 하나의 드라마로 만들었다.
<한국이 처한 國難(국난)의 元兇(원흉)은 朴正熙 이후 네 번째로 권력을 장악했던 金大中입니다. 소위 '햇볕 政策(정책)'의 元祖(원조)로서 북한의 世襲(세습) 독재자 金正日에게 막대한 現札(현찰)과 뇌물을 제공하고 이른바 南北頂上(남북정상) 회담을 買收(매수)했습니다. 그것으로 反逆(반역)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金大中은 한국의 民度(민도)와 政治風土(정치풍토)를 자신의 立身(입신)을 위해 최대로 악용한 政治鬼才(정치귀재)로 한국이 앓고 있는 國家的 怪疾(국가적 괴질)의 主犯(주범)입니다.>
이 연설에서 李 대사는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라는 新造語를 소개하였고 필자는 자주 써 먹는다.
<소위 ‘민주화시대’ 이후 다섯번째로 등극한 노무현이 연출하는 정치는 거의 노략질에 가깝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에 대한 醜行(추행)을 감행하는데 廉恥(염치)가 없습니다. 性醜行(성추행)만이 추행이 아니고 ‘政治醜行(정치추행)’도 추행의 범주에 넣어야 합니다. 개발독재시대에도 감히 貪(탐)할 수 없었던 獨斷(독단)·독선·獨走(독주)·독점·獨食(독식)을 주저하지 않으며 ‘바보箱子(상자)’ 텔레비전을 현대판 槍劍(창검)으로 씁니다. ‘電波獨裁(전파독재)’라고 할 만합니다.>
李 대사는 자신이 '從北'이란 용어를 처음 썼다고 주장한다. 이 용어가 민노당 탈당파에 의하여 널리 알려지면서 일반화된 것은 2008년 초부터이다. 기독교 백주년 기념관 연설에서 李 대사는 從北세력을 사실상 '붉은 逆徒'로 규정하였다.
<분단을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고 남한 單獨政府(단독정부)의 출범을 욕하는 것은 홍색反逆의 상투적 手法(수법)입니다. 망한 蘇聯(소련)에 붙지 않았던 것을 욕하고 굶어 죽어가고 있는 北韓처럼 되지 않은 것을 恨歎(한탄)합니다.>
<소위 남측의 '聯合制案(연합제안)'이란 것은 문제의 南北共同宣言(남북공동선언) 속에 들어 갈 수 있을 만큼 남한의 國論(국론)으로 채택된 바 없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國憲節次(국헌절차)를 無視(무시)하고 국가의 기본에 관한 것을 권력자의 恣意(자의)로 變造(변조)하는 것은 현대판 逆謀(역모)에 해당합니다.
홍색反逆의 始祖(시조) 金大中은 그런 역모를 감행했습니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소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고 말했지만 문제의 共同宣言(공동선언) 속에는 정작 평화에 대한 言及(언급)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 대신 북측의 ‘聯邦制(연방제)’를 위한 들러리로 남측의 '聯合制案(연합제안)'이란 것을 끼워 넣었습니다.“낮은 段階(단계)”이고 높은 단계이고 간에 亡(망)해가는 국가와 멀쩡한 국가 간의 聯邦制(연방제)란 도대체 言語道斷(언어도단)입니다.>
이 연설의 결론은 정치학 교과서에 올릴 만하다.
<한국은 이미 선진사회로 가는 길에 올라섰습니다. 거기로 가는 長征(장정)의 基本條件(기본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대한 장애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신종 독재세력)에 의한 홍색反逆의 紅疫(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紅色反逆(홍색반역)은 개발독재보다 더 나쁩니다. 한국을 괴롭히는 萬病(만병)의 根源(근원)은 북한의 共産王朝(공산왕조)입니다. 궁극의 處方(처방)은 그 消滅(소멸)입니다.>
친구 李明博의 BBK 명함 공개
2007년 11월 대선 투표일을 한 달 여 앞두고 李長春 대사는 친구인 李明博 대통령 후보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이른바 'BBK 명함'을, 조갑제닷컴을 통하여 공개하였다. 그날 밤 李 후보는 李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너가 이럴 수 있나"라고 불만을 토로, 약30분간 舌戰(설전)이 오고갔다고 한다. 李 대사는 12월엔 민주당의 정동영 후보 지지 방송 연설을 하였다. 반공적인 李 대사가 친북적인 鄭 후보 지지 연설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보수층에서 쏟아졌다. 그런 비판에 침묵해오던 李 대사가 명함 공개 4주년을 맞아 쓴 글이 이 책에 실려 있다. 李 대사는 자신의 행동을 '나에 대한 반역'이라고 규정하였다. '배신자'란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BBK 사건의 진실을 알릴 수 있는 연설 기회를 가지려 하였던 그는 진실을 알리는 일을 인간적 義理나 이념보다 우선시킨 셈이다.
정동영 지지 연설에도 불구하고 李 대사의 從北 비판 기세는 수그러 들지 않았다. 李明博 정부 출범 이후 李 대사는 한나라당 정권에 대한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그보다 從北세력을 더 신랄하게 질타하였다. 노무현의 자살과 국민장, 김대중에 대한 國葬(국장)에 즈음하여 李 대사가 조갑제닷컴에 쓴 글은 많은 호응을 받았다.
李 대사는 민주주의의 産室인 영국에서 오래 근무하였고 그곳에서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을 연구하였다. 그 경험에서 李 대사는 늘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강조하고,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치주의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1215년 대장전(마그나 카르타)까지 거슬러 오르면 영국의 민주주의 발전사는 800년의 年輪을 쌓았는데, 한국은 고작 60여 년이다. 後發 민주국가가 공통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미숙함'을 어떻게 하면 '성숙함'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李 대사의 주된 관심사이고,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한 자 한 자 心血을 기울인 글
李 대사는 나라가 되어 가는 모습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고 그의 글과 얼굴에도 나타난다. 폭 넓은 경험과 깊은 지식과 뛰어난 文筆力이 그를 '엘리트 의식의 소유자'로 보이게 하는 것 같은데,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는 '엘리트 정신의 소유자'라고 할 만하다. 엘리트는 대체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경향인데, 퇴임후 외교평론가란 직함으로 활동중인 李 대사는 반골적 비판정신이 강하고 권위와 권력에 도전하기를 즐기며 대한민국 체제의 개혁을 강조한다.
2011년 가을 李明博 정부가 무역 1조 달러 달성을 홍보하였을 때 李 대사는 '亢龍有悔'(항룡유회)란 故事成語(고사성어)로 경계를 삼았다. '용이 하늘 끝까지 올라가면 내려 갈 길밖에 없게 된 것을 후회한다'는 뜻인데, 한국이 성공 神話에 도취, 너무 일찍 피크 타임에 도달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을 네 글자로 표현한 것이다. 한국어 파괴에 의한 국민교양의 붕괴, 국가엘리트층의 약화, 공직자 부패의 심화, 從北세력의 법치파괴 및 낭비적 복지 선동, 중국의 거대화 등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런 장애물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한국의 進路는 막다른 골목을 만날 것이다. 李 대사가 발전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정책代案으로 만든 게 이 책에 실린 '대한민국 재건축案'이다. 그 핵심은 '거짓말이 안 통하는 나라 만들기'일 것이다.
이 책은 李 대사가 한 자 한 자 心血(심혈)을 기울여 쓴 글이므로 읽는 이들을 긴장시킨다. 한글專用 세대가 쉽게 접할 수 없는 기성세대 식 문장이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의 한국 현대사를 가장 깊게 관찰한 역사적 자료이기도 할 것이다. 글에서 傲氣(오기)마저 느껴지는 것은 李 대사의 고독함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세상이 나를 몰라주더라도 나의 글이 다음 세상을 바꿀 것이란 자신감이 없으면 쓰기 어려웠을 글이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경멸하면서 내일을 위한 證言으로 쓴 글 같기도 하다. 아직도 이런 글을 쓰는 이가 있고, 읽어주는 이가 있으며,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면 한국은 아직 희망이 있는 나라이다. 그는 한글專用의 亡國的 폐해를 다룬 책을 준비중이다.
<한국은 그 민주주의가 충분히 자라기 전에 신종 獨裁勢力(독재세력)에 의해 醜行(추행)을 당하고 있습니다.
執權勢力(집권세력)은 어린 민주주의를 깔보고 홍색反逆의 물결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한국의 '權主(권주)'인 帝王的(제왕적) 대통령은 헌법상의 受任(위임)을 無視(무시)하고 권력의 無所不爲(무소불위)를 신봉합니다.
한국은 絶對者(절대자)로부터 爭取(쟁취)한 국가권력을 민주적으로 分讓(분양)한 실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民主化(민주화)는 겉치레의 選擧(선거)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데 불과합니다.
참(眞)민주주의에 불가결한 制度(제도)민주주의의 조건 즉 自由言論(자유언론)·司法(사법)의 독립·官僚(관료)의 中立(중립)을 아직 확립하지 못했습니다. 그 세 가지가 대단히 虛弱(허약)하고 不完全(불완전) 합니다.
한국에서의 國論分裂(국론분열)은 민주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있을 수 있는 理念(이념) 또는 空理(공리) 논쟁 즉, 右派(우파) 對 左派(좌파) 또는 保守(보수) 對 進步(진보 혹은 自由) 간의 對立(대립) 또는 差異(차이)에서 비롯되는 것과 다릅니다. 分斷國家(분단국가)로서의 敵對關係(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주의와 全體主義(전체주의)가 서로 극한적으로 싸우는 樣相(양상)입니다.
한국의 소위 保守(보수)는 개발독재로 일궈낸 기적의 결과를 지키면서 先進世界(선진세계)를 지향하는 實用主義(실용주의)집단입니다. 반면 한국의 소위 進步(진보)는 북한의 共産王朝(공산왕조) 편에서 민족의 偶像(우상)을 신봉하는 浪漫的 集團(낭만적 집단)입니다. 선진세계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그런 집단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런 싸움의 결과는 결국 이 쪽인가 또는 저 쪽인가로 귀착되고 있습니다.
기적의 한국이 선진세계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멉니다. 짧은 30년의 한 世代(세대)만에 工場(공장)을 건설하여 經濟(경제)는 現代化(현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意識(의식)과 행태가 野蠻(야만)과 未開(미개)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한국이 선진세계의 멤버십을 따는 데 가장 중요한 條件(조건)을 갖추자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約束(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의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法治(법치)와 制度(제도)로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은 이미 선진사회로 가는 길에 올라섰습니다. 거기로 가는 長征(장정)의 基本條件(기본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대한 장애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신종 독재세력)에 의한 홍색反逆의 紅疫(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紅色反逆(홍색반역)은 개발독재보다 더 나쁩니다. 한국을 괴롭히는 萬病(만병)의 根源(근원)은 북한의 共産王朝(공산왕조)입니다. 궁극의 處方(처방)은 그 消滅(소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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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骨지식인으로 ‘改宗’한 엘리트 외교관의 ‘忠言을 담은 책’
趙甲濟(조갑제닷컴 대표)
독서취향이 같은 사이
李長春 대사와 필자는 살아온 길이 많이 다르지만 같은 점도 많다. 지난여름 李 대사가 장서를 정리하였다면서 여섯 뭉치의 책을 묶어 놓았으니 가져 갈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택시를 대절하여 책을 실어와 필자의 오피스텔에 옮겨놓고 묶음을 풀어 보았다. 필자가 이미 구입하여 읽은 책이 열권 쯤 되었다. 퓰리처상을 받은 트루먼 전기, 콘돌리자 라이스의 독일통일에 대한 名著, CIA 관련 책 등등. 傳記, 戰史, 외교사, 정치사상 관련 책들이 主流였다. 필자와 독서취향이 이렇게 같은 이도 있구나하고 감탄했다.
그 때가 10월 초 連休 직전이었는데 李 대사는 여행지를 추천해주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산악 기차 여행을 방불케 하는 코스”라고 했다. 오스트리아 대사 출신의 추천을 믿고 간 곳은 강원도 정선군의 ‘하이원 호텔’이었다. 해발 1100m로서 한국 最高 위치 호텔이다. 청량리-원주-제천-영월-고한의 철도여행은, 무르익는 陽明한 가을 들판을 거쳐 아기자기한 계곡을 지나 험준한 강원도 산맥을 타고 高原지대에 이르는 환상적 한국紀行이었다. 李 대사가 추천해준 두 군데의 음식점은 맛이 소박하고 값도 적당했다.
독서취향과 미적(美的-味的) 감각이 서로 통하는데다가 역사관․ 이념관․ 時局觀은 대강에서 일치하여 和而不同(화이부동)할 수 있는 사이라 지난 10여 년간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특히 漢字말살과 한글專用이 가져온 韓國語와 교양의 파괴가 萬惡의 根源이란 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사이이다. 보수적 지식인들 가운데서도 한글專用의 폐해를 이념적으로 들여다보는 이들이 희귀한 가운데 李 대사는 필자보다도 더 개탄하는 분이니 이 점에선 同志的 관계라 할 만하다.
용수철
李 대사와의 인연도 글을 통해서였다. 필자가 편집장을 맡고 있던 <月刊朝鮮>(2000년 3월호)이 그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金玄浩 기자는 <한 고참 현직 大使(대사)가 우리 외교부의 人事(인사) 문란과 조직의 난맥상, 이에 따른 총체적 외교 역량의 허약성을 강도 높게 공개적으로 비판한 뒤 사표를 던졌다>고 썼다. ‘조직에 칼을 꽂는 거냐’는 격한 반응도 일부에서 나왔으나 동기야 어쨌든 그의 지적은 외교부를 아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면서 李 대사를 이렇게 소개했다.
<李長春 대사의 외교부內 별명은 ‘Long(長) Spring(春)’. 그러나 여기서 ‘Spring’은 봄이 아니라 용수철이다. 평소 ‘돌출 행동’이 많아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외교부의 공식 입장과 다른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1998년 초 정부 조직 개편 때는 외무부의 통상업무 장악 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외교부內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행동이 조직인으로서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그가 ‘소신파’라는 데 대해서는 異見(이견)을 달기 어려워 보인다.
李 대사는 40세이던 1980년부터 청와대 외교안보 담당 정무비서관을 약 3년간 지냈고, 3개국(오스트리아-싱가포르-필리핀) 대사와 국제기구조약국장 및 외교정책기획실장을 역임하는 등 요직을 많이 거쳤다. 일에 대한 의욕도 왕성하다는 評(평)을 들었다. 그만큼 우리 외교 현실에 대한 풍부한 현장 경험과 識見(식견)을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다>
2000년 6월의 김대중-김정일 회담과 6·15 선언 이후 李 대사와 대화를 나누는 횟수가 늘었다. 그는 6·15 선언을 ‘국가 正體性의 變造(변조)기도’, ‘逆謀(역모)’라고 규정하는 글을 <월간조선>(2002년 7월호)에 기고하였다. 그의 분노가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것이다.
盧武鉉 후보가 金대업의 사기적 폭로․ 新행정수도 건설로 위장한 首都(수도)이전 공약․ 鄭몽준과의 단일화 쇼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2002년 12월의 우울한 연말 어느 날 李 대사와 필자, 그리고 徐貞甲 대령연합회 회장(現 국민행동본부장)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를 고민했다. 그 뒤 애국단체의 大衆집회장에서 자주 그를 만나게 되었다.
“과거는 감당하기 쉽고, 현재와 미래는 벅차다”
국민행동본부 주최 월례 강좌가 2006년 3월21일 서울 종로5가 소재 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열렸고 이날 강사로 초빙된 李長春 대사는 ‘홍색反逆의 물결’이란 제목의 강연을 하였다. 준비된 연설문을 읽어내려 간 그의 강연은 관중들을 사로잡았다. 필자는 - 金大中 ·노무현 좌파정권의 반역성을 정확하게 짚고 한국의 ‘어린民主主義’가 당면한 과제를 깊게 분석한 기록으로 -그의 연설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名文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본질을 가차 없이 지적하고 代案까지 제시한 글이었다. 李 대사의 글을 모은 이 책에서 이 연설문은 가장 중요한 문서이고 6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살아 있는 글’이다. 이 글은 정치적․ 역사적 관점에다가 문학적 표현을 더하여 손에 땀이 날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무엇보다도 예언적이다.
그는 연설의 서두에서 <사실상의 國庫强奪(국고강탈)로 2000년의 소위 남북정상회담을 買收(매수)한 金大中의 ‘햇볕政權’이 감행하기 시작한 권력의 反逆은 盧武鉉의 ‘촛불政權’에 의해 세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고 규정했다. ‘퍼주기’로 북한의 공산왕조를 살리고 聯邦制(연방제)로 한국의 國家正體性(국가정체성)을 변조하는 利敵(이적)반역, 그 연장으로서 국가안보와 통일을 볼모로 잡는 反美반역, 그 중에서 가장 집요하고 소모적인 것은 한국의 어린民主主義를 농락하는 反民(반민)반역이 진행 중이란 분석이었다.
李 대사는 노무현 정권이 역사를 정치적 兇器(흉기)로 악용하는 작태를 이렇게 斷罪하듯 비판했다.
<過去(과거)는 진짜세계가 아닙니다. 소위 ‘過去史(과거사)’라는 말은 歷史(역사)라는 말을 억지로 代用(대용)한 엉터리 造語(조어)입니다. 盧武鉉의 사람들은 진짜세계를 등지고 소위 ‘過去史 청산’을 무기로 권력 플레이에 광분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과거는 감당하기 쉽고 현재와 미래는 벅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의 占領(점령)에 급급한 나머지 현재와 미래를 팽개치며 과거를 恨(한)풀이 정치의 好材(호재)로 삼고 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와 기적의 어머니
필자는 연설을 들으면서 저렇게 정성을 들인 글을 쓴다고 李 대사가 피를 말렸겠구나 하는 생각에 젖었다. 李 대사는 나중에 외교관의 버릇 때문에 원고 없는 연설은 해 본 적이 없다면서 준비하는 데 한 달 이상 걸렸다고 실토하였다. ‘反共자유민주세력’이 이용할 만한 ‘말의 武器’가 名言名句의 형태로 정리된 대목이 여럿 있었다.
<공산주의가 사망함에 따라 ‘歷史의 종언(the end of history)’이 선고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로 낙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貧富(빈부)격차의 解消(해소)에는 特效藥(특효약)이 없다는 것이 再確認(재확인)되었습니다. 오직 競爭의 原理(경쟁의 원리)에 따라 漸次的(점차적)으로 貧富(빈부)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을 뿐입니다. 빈부에는 萬能藥(만능약)이 없습니다>
<平準化의 副作用(평준화의 부작용)을 경계해야 합니다. 평준화의 後果(후과)는 지독할 수 있습니다. 모두를 鈍才(둔재)로 만드는 ‘平鈍化(평둔화)’와 모두를 가난하게 만드는 ‘平貧化(평빈화)’를 초래하여 결국 모두를 망치는 ‘平亡化(평망화)’로 落伍(낙오)사태를 빚어낼 수 있습니다. 인간의 不平等(불평등)은 개인의 타고난 육체적․ 知能的(지능적)․ 정서적 差異(차이)는 물론 그가 속한 국가의 條件(조건) 및 時代與件(시대여건)의 差異(차이)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을 솔직하게 是認(시인)해야만 진짜세계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李 대사와 필자는 인물관이 비슷하다. 존경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트루먼․ 레이건․ 대처․ 조지 오웰․ 李承晩․ 朴正熙․ 李光耀를 좋아한다. 이날 연설에서 李 대사는 절묘한 표현을 하였다. 李承晩을 '建國(건국)의 아버지'로 그리고 朴正熙를 ‘奇蹟(기적)의 어머니’로 거침없이 칭송한 것이다.
<그(李承晩)의 탁월한 文士(문사)배경과 그의 투철한 反共思想(반공사상)과 그의 두터운 미국緣故(연고)야말로 한국의 出生(출생)과 生長(생장)을 위한 씨앗이었습니다. 대민한국의 始祖(시조)는 李承晩입니다. 그(朴正熙)는 輸出立國(수출입국)을 향해 유교적 紀律(기율)로 日本式(일본식) 경제모델과 美國式(미국식) 기능주의를 접목시켜 개방형 開發獨裁(개발독재·developmental dictatorship)를 强行(강행)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을 개발도상권의 優等生(우등생)으로 만들었습니다. 不世出(불세출)의 두 英雄(영웅)이 國民國家(국민국가·nation-state)로서 한국의 國家建設(국가건설·nation-building)을 해냈습니다. 절대로 그것을 예사로 여기면 안 됩니다>
노략질에 가까운 정치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존경심은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한 분노와 경멸로 돌변한다. 이 극명한 대치가 李長春의 연설을 하나의 드라마로 만들었다.
<한국이 처한 國難(국난)의 元兇(원흉)은 朴正熙 이후 네 번째로 권력을 장악했던 金大中입니다. 소위 '햇볕 政策(정책)'의 元祖(원조)로서 북한의 世襲(세습) 독재자 金正日에게 막대한 現札(현찰)과 뇌물을 제공하고 이른바 南北頂上(남북정상) 회담을 買收(매수)했습니다. 그것으로 反逆(반역)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金大中은 한국의 民度(민도)와 政治風土(정치풍토)를 자신의 立身(입신)을 위해 최대로 악용한 政治鬼才(정치귀재)로 한국이 앓고 있는 國家的 怪疾(국가적 괴질)의 主犯(주범)입니다.>
이 연설에서 李 대사는 ‘한국의 어린民主主義’라는 그의 新造語를 사용했고 필자는 그것을 자주 써 먹는다.
<소위 ‘민주화시대’ 이후 다섯 번째로 등극한 盧武鉉이 연출하는 정치는 거의 노략질에 가깝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의 어린民主主義에 대한 醜行(추행)을 감행하는데 廉恥(염치)가 없습니다. 性醜行(성추행)만이 추행이 아니고 ‘政治醜行(정치추행)’도 추행의 범주에 넣어야 합니다. 개발독재시대에도 감히 貪(탐)할 수 없었던 獨斷(독단)·독선·獨走(독주)·독점·獨食(독식)을 주저하지 않으며 ‘바보箱子(상자)’ 텔레비전을 현대판 槍劍(창검)으로 씁니다. ‘電波獨裁(전파독재)’라고 할 만합니다>
李 대사는 자신이 ‘從北’이란 용어를 처음 썼다고 주장한다. 이 용어가 민노당 탈당파에 의하여 널리 알려지면서 일반화된 것은 2008년 초부터이다. 기독교 백주년 기념관 연설에서 李 대사는 從北세력을 사실상 ‘붉은 逆徒’로 규정하였다.
<분단을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고 남한 單獨政府(단독정부)의 출범을 욕하는 것은 홍색反逆의 상투적 手法(수법)입니다. 망한 蘇聯(소련)에 붙지 않았던 것을 욕하고 굶어 죽어가고 있는 北韓처럼 되지 않은 것을 恨歎(한탄)합니다>
<소위 남측의 '聯合制案(연합제안)'이란 것은 문제의 南北共同宣言(남북공동선언) 속에 들어 갈 수 있을 만큼 남한의 國論(국론)으로 채택된 바 없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國憲節次(국헌절차)를 無視(무시)하고 국가의 기본에 관한 것을 권력자의 恣意(자의)로 變造(변조)하는 것은 현대판 逆謀(역모)에 해당합니다.
홍색反逆의 始祖(시조) 金大中은 그런 역모를 감행했습니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소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고 말했지만 문제의 共同宣言(공동선언) 속에는 정작 平和에 대한 言及(언급)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 대신 북측의 ‘聯邦制(연방제)’를 위한 들러리로 남측의 '聯合制案(연합제안)'이란 것을 끼워 넣었습니다. “낮은 段階(단계)”이고 높은 단계이고 간에 亡(망)해가는 국가와 멀쩡한 국가 간의 聯邦制(연방제)란 도대체 言語道斷(언어도단)입니다>
이 연설의 결론은 정치학 교과서에 올릴 만하다.
<한국은 이미 선진사회로 가는 길에 올라섰습니다. 거기로 가는 長征(장정)의 基本條件(기본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대한 장애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신종 독재세력에 의한 홍색反逆의 紅疫(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紅色反逆(홍색반역)은 개발독재보다 더 나쁩니다. 한국을 괴롭히는 萬病(만병)의 根源(근원)은 북한의 共産王朝(공산왕조)입니다. 궁극의 處方(처방)은 그 消滅(소멸)입니다>
친구 李明博의 BBK 명함 공개
2007년 11월 22일 대선 투표일을 한 달 여 앞두고 李長春 대사는 친구인 李明博 대통령 후보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이른바 ‘BBK 명함’을, 조갑제닷컴을 통해 공개했다. 그날 밤 李 후보는 李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너가 이럴 수 있나”라고 불만을 토로한 약 35분간 舌戰(설전)이 오고갔다고 한다. 李 대사는 12월엔 민주당의 鄭동영 후보 지지 방송 연설을 하였다. 반공적인 李 대사가 친북적인 鄭 후보 지지 연설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보수층에서 쏟아졌다. 그런 비판에 침묵해오던 李 대사가 명함 공개 4주년을 맞아 쓴 글이 이 책에 실려 있다. 李 대사는 자신의 행동을 ‘나에 대한 反逆’이라고 규정하였다. ‘배신자’란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BBK 사건의 진실을 알릴 수 있는 연설 기회를 가지려 하였던 그는 진실을 알리는 일을 인간적 義理나 이념보다 우선시킨 셈이다.
鄭동영 지지 연설에도 불구하고 李 대사의 從北 비판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李明博 정부 출범 이후 李 대사는 한나라당 정권에 대한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그보다 從北세력을 더 신랄하게 질타하였다. 盧武鉉의 자살과 국민장․ 김대중에 대한 國葬(국장)에 즈음하여 李 대사가 조갑제닷컴에 쓴 글은 많은 호응을 받았다.
李 대사는 민주주의의 産室인 영국에서 오래 근무하였고 그곳에서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을 심도 있게 공부했다. 그 경험에서 李 대사는 늘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강조하고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치주의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1215년 대장전(마그나 카르타)까지 거슬러 오르면 영국의 민주주의 발전사는 800년의 年輪을 쌓았는데, 한국은 고작 60여 년이다. 後發 ‘민주국가‘가 공통으로 지닌 '未熟'을 어떻게 하면 '成熟'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李 대사의 주된 관심사이며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한 자 한 자 心血을 기울인 글
李 대사는 나라가 되어 가는 모습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고 그의 글과 얼굴에도 나타난다. 폭 넓은 경험과 깊은 지식과 뛰어난 文筆力이 그를 ‘엘리트 의식의 소유자’로 보이게 하는데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는 ‘엘리트 정신의 소유자’라고 할 만하다. 엘리트는 대체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경향인데, 퇴임 후 외교평론가란 직함으로 활동해 온 李 대사는 반골적 비판정신이 강하고 권위와 권력에 대한 도전을 불사하며 대한민국 체제의 개혁을 강조한다.
2011년 가을 李明博 정부가 무역 1조 달러 달성을 홍보하였을 때 李 대사는 '亢龍有悔'(항룡유회)란 故事成語(고사성어)로 경계를 삼았다. ‘용이 하늘 끝까지 올라가면 내려갈 길밖에 없게 된 것을 후회 한다’는 뜻인데, 한국이 그 성공 神話에 도취해 너무 일찍 피크 타임에 도달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을 네 글자로 표현한 것이다. 韓國語 파괴에 의한 국민교양의 붕괴․ 국가엘리트층의 약화․ 公職부패의 극심․ 從北세력의 법치 파괴와 낭비적 福祉 선동․ 전체주의 中國勢의 비대화 등 한국의 어린民主主義를 위협하는 이런 장애물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한국의 進路는 막다른 골목을 만날 것이다. 李 대사는 한국이 당면한 위기와 발전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만든 정책代案 즉 '대한민국 재건축案'을 이 책에 담고 있다. 그 핵심은 ‘거짓말과 제왕적 대통령의 추방을 통한 참(眞)민주주의 나라 만들기’이다.
이 책은 李 대사가 한 자 한 자 心血(심혈)을 기울여 쓴 글을 담고 있으므로 읽는 이들을 긴장시킨다. 한글專用 세대가 쉽게 접할 수 없는 旣成世代식 문장에 영어식 표현을 곁들인 퓨전(fusion)문장이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의 한국 현대사를 가장 깊게 관찰한 역사적 자료일 만도 하다. 글에서 傲氣(오기)마저 느껴지는 것은 李 대사의 타고난 ‘孤獨(고독)과 孤寂(고적)의 사치’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세상이 나를 몰라주더라도 나의 글이 다음 세상을 바꿀 것이란 자신감이 없으면 쓰기 어려웠을 글이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경멸하면서 내일을 위한 證言으로 쓴 글 같기도 하다.
아직도 이런 글을 쓰는 이가 있고 읽어주는 이가 있으며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면 한국은 아직 희망이 있는 나라이다.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에 대한 추행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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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1-14, 22: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