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차게, 행동은 뜨겁게 해야.
<라오디게아 교회의 使者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證人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 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富饒(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困苦(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金을 사서 富饒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羞恥(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眼藥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요한계시록 3장 14~19절)
서울시 서대문구 靈泉교회 이용호 목사는 2년 전 설교에서 이 성경귀절을 갖고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비판하였다.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한 태도'는 每事에 소극적인 자세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高神派 총회장 출신인 李 목사는 "자신에게 소극적인 태도는 그렇다 치고, 공동체에 소극적인 자세는 惡이다"고 했다. '함께 하는 일에서 소극적인 자세', 즉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자세는 공동체를 망치고 공동체의 정신을 변질시킨다는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세를 우리는 흔히 '어중간하다'고 표현한다. 정치적 용어로는 中道가 여기에 해당한다.
"음식에 비유하면 차든지 뜨겁든지 해야 맛이 납니다. 과일은 차야 맛이 납니다. 국은 더워야 맛이 납니다. 국이 식으면 맛을 잃듯이 사람은 미지근하면 자신의 역할을 상실합니다. 인간은 차야 할 때가 있고 뜨거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차고 냉철해져야 분별력과 집중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열정이 있어야 추진력이 생깁니다. 엔진은 加熱되어야 차를 앞으로 가게 합니다. 생각할 때는 차게, 일할 때는 뜨겁게 해야 합니다."
李 목사는 냉철해야 할 때 미지근한 사람, 즉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물가에서 노는 아이처럼 위태위태하여 일을 함께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머리는 차게, 가슴은 뜨겁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대한민국이 미지근한 나라가 아닌가 생각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북한정권에 대하여는 분노하고, 맞아죽고 굶어죽고 얼어죽는 북한동포에 대하여는 눈물을 흘려야 하고, 대한민국에 대하여는 고마워해야 하는데 차지도 덥지도 않는 자세, 즉 뜨뜻미지근한 것이 한국인들의 자세가 아닌가?
요한계시록은 그런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그런 이들을 입에서 토해버리고싶다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富者이고 紳士라고 自慢한다. 하나님 눈에는 그런 자들이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이 멀었으며, 벌거벗은 자들'로 보인다. 성격이 뜨뜻미지근하면 善과 惡을 분별할 줄 몰라 자신의 수치를 모른다.
북한공산당이 惡黨이고, 북한동포가 동정받아야 할 사람이며, 대한민국이 고마운 존재임을 모르는 한국인들은 아무리 잘 살아도 마음이 메마른 진정한 가난뱅이이고 인격적으론 벌거벗은 자인데 그럼에도 부끄럼을 모른다. 이런 상태는 차야 할 때와 뜨거워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여 늘 미지근한 자세를 취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李明博 정부는, 法治와 교육과 安保문제에까지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中道노선을 적용하였다가 정치적으로 소멸단계에 들어갔다. 한국인들이 이기심의 포로가 되어 통일문제에 대하여도 미지근한 자세를 취하게 되면 이 결정적 순간에 사소한 데 목숨을 거는 싸움에 몰두함으로 大局과 大勢를 놓치고 역사의 罪人이 될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使者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證人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 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富饒(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困苦(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金을 사서 富饒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羞恥(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眼藥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요한계시록 3장 14~19절)
서울시 서대문구 靈泉교회 이용호 목사는 2년 전 설교에서 이 성경귀절을 갖고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비판하였다.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한 태도'는 每事에 소극적인 자세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高神派 총회장 출신인 李 목사는 "자신에게 소극적인 태도는 그렇다 치고, 공동체에 소극적인 자세는 惡이다"고 했다. '함께 하는 일에서 소극적인 자세', 즉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자세는 공동체를 망치고 공동체의 정신을 변질시킨다는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세를 우리는 흔히 '어중간하다'고 표현한다. 정치적 용어로는 中道가 여기에 해당한다.
"음식에 비유하면 차든지 뜨겁든지 해야 맛이 납니다. 과일은 차야 맛이 납니다. 국은 더워야 맛이 납니다. 국이 식으면 맛을 잃듯이 사람은 미지근하면 자신의 역할을 상실합니다. 인간은 차야 할 때가 있고 뜨거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차고 냉철해져야 분별력과 집중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열정이 있어야 추진력이 생깁니다. 엔진은 加熱되어야 차를 앞으로 가게 합니다. 생각할 때는 차게, 일할 때는 뜨겁게 해야 합니다."
李 목사는 냉철해야 할 때 미지근한 사람, 즉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물가에서 노는 아이처럼 위태위태하여 일을 함께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머리는 차게, 가슴은 뜨겁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대한민국이 미지근한 나라가 아닌가 생각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북한정권에 대하여는 분노하고, 맞아죽고 굶어죽고 얼어죽는 북한동포에 대하여는 눈물을 흘려야 하고, 대한민국에 대하여는 고마워해야 하는데 차지도 덥지도 않는 자세, 즉 뜨뜻미지근한 것이 한국인들의 자세가 아닌가?
요한계시록은 그런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그런 이들을 입에서 토해버리고싶다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富者이고 紳士라고 自慢한다. 하나님 눈에는 그런 자들이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이 멀었으며, 벌거벗은 자들'로 보인다. 성격이 뜨뜻미지근하면 善과 惡을 분별할 줄 몰라 자신의 수치를 모른다.
북한공산당이 惡黨이고, 북한동포가 동정받아야 할 사람이며, 대한민국이 고마운 존재임을 모르는 한국인들은 아무리 잘 살아도 마음이 메마른 진정한 가난뱅이이고 인격적으론 벌거벗은 자인데 그럼에도 부끄럼을 모른다. 이런 상태는 차야 할 때와 뜨거워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여 늘 미지근한 자세를 취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李明博 정부는, 法治와 교육과 安保문제에까지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中道노선을 적용하였다가 정치적으로 소멸단계에 들어갔다. 한국인들이 이기심의 포로가 되어 통일문제에 대하여도 미지근한 자세를 취하게 되면 이 결정적 순간에 사소한 데 목숨을 거는 싸움에 몰두함으로 大局과 大勢를 놓치고 역사의 罪人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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