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변칙을 강요하니 온 나라가 변칙 사회가 되어버렸다.
편법주의가 원칙이 된 나라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 遵法 정신이 透徹한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더 無法, 無禮 천지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다른 나라는 일반적으로 잘 살게 될수록 秩序도 더 잘 지키게 되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인 것이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無秩序를 고치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결코 先進國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그 無秩序, 無法, 無禮의 原因을 정확히 알아야 그 病을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趙甲濟 대표님은 그 原因으로 '敎養不足(교양부족)'을 드셨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敎養 不足'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것을 또 좀더 깊이 파고 들어가보면 그 뿌리에서 '한글專用'을 만나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先進國은 '原則대로 살아야 한다'는 '原則主義(원칙주의)'가 지켜지는 나라고, 後進國은 '내멋대로 산다'는 '便法主義'가 亂舞하는 나라입니다. 그 중 韓國은 後者입니다. 곧 便法主義가 기승을 부리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韓國人에게 '便法主義'가 확고히 자리잡게 된 것은 '한글專用' 때부터입니다. 국가가 '한글專用法'을 만들어서 국민에게 原則대로 글을 쓰지 말고 便法으로 글을 쓰라고 强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국민은 '便法主義'에 물들어가서,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便法主義'가 확고한 原則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便法이 原則이 되고 原則이 變則으로 내몰린 異常하고도 稀罕(희한)한 사회가 바로 韓國 사회입니다.
정부가 편법을 강제
漢字語는 漢字로 적는다는 原則은 '訓民正音'을 만든 世宗大王조차도 감히 어기지 못할 정도로 原則 중의 原則이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漢字語는 漢字를 짜맞춰서 만든 낱말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漢字語는 漢字로 적어야 합니다. 漢字語를 한글로만 쓰면 어려운 漢字 배우지 않아도 되고 글 쓰기도 편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漢字語를 한글로 적어서는 그 正確한 意味와 發音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漢字語는 漢字로 적는 것이 原則인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1970년 이전까지 지난 2000년간 漢字語를 漢字로 적는다는 것은 韓國人의 表記에서 永遠不變(영원불변)의 原則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글專用'은 그 原則을 하루 아침에 깨버렸습니다. 漢字語를 漢字가 배우기 어렵다거나 쓰기에 時間이 걸린다는 등의 핑계를 들어서 한글로 적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곧 漢字가 배우기 귀찮고 쓰기 귀찮다고 그냥 便하게 한글로 쓰도록 정부가 국민에게 强制로 가르친 것입니다. 정부가 국민에게 '便法'을 가르치고 强要한 것입니다.
이렇게 '한글專用'이 시행된 이후에 韓國人은 '原則'은 필요 없고 그저 자기 便한 대로 살기만 하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政府가 국민을 '便法'으로 살도록 敎育한 것입니다. 오늘날 韓國 사회의 無秩序, 無法, 無禮는 그러니까 다름 아닌 政府가 기른 것입니다. 大韓民國 정부가 1948년에 만들고 1970년부터 강력히 추진한 '한글專用法'이 바로 한국 사회의 無秩序, 無法, 無禮의 근본 原因이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韓國은 無法天地(무법천지)의 나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原則사회를 만들려면 한글專用이란 變則부터 없애야
한번 政府가 原則을 버리고 便法을 선택한 결과, 오늘날 大韓民國 사회는 뿌리 뽑기 어려울 정도로 便法이 亂舞하는 어지러운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 政府의 自業自得입니다. 政府가 한순간 나라를 편하게 운영하자고 잘못 생각한 것이 오늘날 걷잡을 수 없이 큰 混亂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한글專用'과 같은 '便法'은 '빨리빨리', '얼러뚱땅', '대충대충', '적당히', '모르면서 아는 체하기' '似而非(사이비) 정신'을 국민에게 길러줍니다. 漢字語를 原則대로 적기가 귀찮다고 한글로 적는 그 게으르고 나쁜 생각이 다른 데로 번져서 온갖 便法과 不正을 저지르는 原因이 됩니다. 信號燈(신호등)을 기다리기 귀찮다고 信號燈 無視하고 무조건 건너갑니다. 秩序 지키기 힘들다고 새치기를 합니다. 이런 모든 無秩序, 無法, 無禮의 사고방식이 다 '한글專用'에서부터 비롯된 일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확실한 것은 無秩序, 無法, 無禮를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大韓民國은 결코 先進國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제 어렵지만 韓國人의 정신을 다시 '原則主義'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韓國人의 정신을 '原則主義'로 돌려놓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한글專用'부터 뿌리 뽑아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韓國人에게 '便法은 안 된다. 아무리 귀찮고 힘들어도 原則대로 살아야 한다'는 정신을 확고하게 심어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漢字가 배우기 어렵고 또 쓰기가 귀찮더라도 또 時間이 좀 더 걸리더라도 漢字語는 原則대로 漢字로 적는다는 態度를 확실히 길러주어야 합니다.
中道는 원칙 포기
大韓民國이 한글專用을 하는 한에는 韓國人은 '便法主義'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大韓民國은 결코 中進國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永遠히 先進國 문턱에서 挫折하고 말 것입니다. 자, 이것이 大韓民國이 '한글專用'을 반드시 버려야 하는 理由입니다. 大韓民國 정부는 先進國으로 이 나라를 發展시키려면, 국민에게 便法을 强要했던 '國語基本法(한글專用法)'을 結者解之(결저해지) 차원에서 당장 廢止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국민에게 漢字語는 漢字로 적는다는 '原則'을 正直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韓國人의 정신이 無秩序, 無法, 無禮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때서야 大韓民國은 비로소 先進國으로 올라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李明博 정부가 내세우는 '中道 實用主義'로는 결코 한국 사회의 無秩序, 無法, 無禮를 고칠 수 없습니다. '한글專用'도 일종의 '便法 實用主義'입니다. '實用主義'는 原則이 缺如된 생각입니다. 게다가 '中道 實用主義'는 더더욱이나 原則이 缺如된 생각입니다. 이런 國政 基調로는 大韓民國이 先進國이 되는 것은 百年河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 정신이 바로 서지 못한 나라는 발전 가능성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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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수록 무례해진다?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된 공무원이 자신의 신분을 은폐하려다가 들통이 난 건수가 2007년에 3043건, 작년엔 1505건이었다.
만취상태에서 파출소를 깨고, 아무런 이유 없이 行人에게 시비를 걸고, 밤중에 큰 소리를 지르면서 이웃을 괴롭히는 따위 경범죄 처벌법 위반자는 2004년에 11만7236명, 작년엔 30만7912명이었다. 이는 한국사회의 無禮지수인데 5년 사이에 162.6%가 증가하였다. 일본의 44배나 된다. 물질적 수준과 예절이 反비례 관계에 처하였다.
한국의 1km 당 교통사고는 선진국 클럽인 OECD 회원국중 最多이다.
최근 2년간 G-20 국가중 국회폭력 사건이 발생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法治의 수준을 보여주는 공무집행방해죄는 2004년에 8106건, 작년엔 약 배로 증가한 1만5646건이었다. 法질서가 경제수준 향상 및 민주화의 연륜과 反비례 관계이다. 잘 살게 되고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無法, 無禮천지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게 통계적으로 확실하다. 특히 노무현 정권 시절 무례, 무법지수가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즉, 법을 우습게 여기는 좌파정권이 무법, 무례를 조장하였다는 움직일 수 없는 통계이다. 그 구체적인 物證이 대통령 노무현과 국무총리 한명숙의 이전, 이후 행태이다.
한국의 에너지 소비량은 1998~2007년 10년 사이 33%가 늘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증가이다. 같은 기간 종이 소비량은 57.4%가 늘었다.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은 연간 약500만t이다. 북한주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양이다. 한국인들은 매년 15조원어치의 음식물을 버린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매년 약6700억원을 쓰는 나라이다.
인터넷 사기사건이 연간 3만6000건. 정보화 사회가 인간 心性을 악화시키는 꼴이다.
'경제가 발전하면 민주화가 이뤄진다'는 원리는 한국에서 맞았다. 이제 새로운 원리가 만들어진다.
'국민교양이 정착되지 못한 나라에서 민주화를 서두르면 無禮, 無法천지가 된다. 잘 사는 만큼, 민주화되는 정도만큼 국민정신과 국가기강이 망가진다. 사기꾼과 반역자와 부패분자들이 민주주의를 악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는 교양부족이란 장애물을 만났다. 이 장애물을 돌파하려면 우선 좌익을 척결하고 한글專用의 확산을 중단시켜야 한다.
헌법소원심판청구서
(국어기본법 등에 대한 헌법소원)
청 구 인 감지연 외 332
대리인 법무법인 신촌
담당변호사 김문희
헌법재판소 귀중
목 차
청 구 이 유
Ⅰ. 심판청구에 이르게 된 경위 2
Ⅱ. 위헌 여부를 다투는 공권력작용 (심판의 대상) 6
1.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언어생활을 강요하는 법령규정들 7
2.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에서 한자혼용을 금지한 법령규정들 16
3. 초‧중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한 교육부 고시 19
Ⅲ. 우리말 국어에 있어서 한자의 의미와 기능 25
1. 서언 25
2. 한민족(韓民族)의 전통문화의 요체요 국자(國字)로서의 한자 26
3. 국어의 양 날개로서의 한글과 한자 29
4. 한자를 떠난 한자어는 언어(言語)가 아니다 34
5. 창조적 사고력의 원천이요 학문발전의 초석으로서의 한자 38
6. 동아시아의 문화적 코드로서의 한자 43
7.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교육정책으로 인한 폐해 44
가. 우리말 국어의 황폐화와 국민의 언어능력 저하 44
나. 초‧중등교육에서 학습능력의 저하와 인성교육의 부실 49
다. 대학교육에서 학문의 지체(遲滯)와 퇴보 50
라. 문화적 정체성의 약화 53
Ⅳ. 심판대상의 위헌성 55
1.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위헌적 침해 56
가. 이 사건 교과용도서 한자혼용금지규정 및 한자교육배제고시의 기본권침해성 56
(1) 국가의 교육권한과 그 헌법적 한계 57
(2)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학습권)의 침해 58
(3) 부모의 자녀교육권의 침해 63
(4) 교과용도서 저작자와 출판사의 언론 ‧ 출판의 자유 침해 67
나.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의 기본권침해성 70
2. 문화의 자율성과 국가의 중립성을 요구하는 문화국가원리의 위반 75
3.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의무를 국가에 지우고 있는 헌법 제9조 위반 80
4. 한글‧한자 혼용체의 기미독립선언서와 헌법전의 국어개념 부정 83
5.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불문헌법의 위반 87
Ⅴ. 헌법소원심판의 청구요건(적법요건)의 충족 90
1. 심판대상규정의 공권력성 90
2. 기본권침해의 법적 관련성 92
가. 자기관련성과 침해의 직접성 92
나. 침해의 현재성 94
3. 청구기간의 준수 95
Ⅵ. 결론 100
첨부서류 103
헌법소원심판청구서
청 구 인 감지연 외 332
(별지 목록 기재와 같음)
위 청구인들의 대리인 법무법인 신촌
담당변호사 김문희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57-12 태영B/D 3층
전화 : 02) 333-2477 팩스 : 02) 334-8587
청 구 취 지
“국어기본법(2005. 1. 27. 법률 제7368호로 제정되고 2011. 4. 14. 법률 제10584호로 개정된 것) 제3조, 제14조 제1항, 제15조, 제16조, 제18조, 국어기본법시행령(2005. 7. 27. 대통령령 제18973호로 제정된 것) 제11조,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2009. 8. 18. 대통령령 제21687호로 개정된 것) 제26조 제3항 및 초․중등학교 교육과정(1997. 12. 30. 교육부 고시 제1997-15호로 제정되고 2012. 7. 9. 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2012-14호로 개정된 것) 중 초‧중‧고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
라는 결정을 구합니다.
침해된 권리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되는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을 누릴 권리 내지는 한자문화향유권, 헌법 제21조의 한자혼용의 표현방식에 의한 의사표현의 자유,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 및 학부모의 자녀교육권, 자신의 저술내용을 한자혼용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언론‧출판의 자유
침해의 원인
국어기본법(2005. 1. 27. 법률 제7368호로 제정되고 2011. 4. 14. 법률 제10584호로 개정된 것) 제3조, 제14조 제1항, 제15조, 제16조, 제18조, 국어기본법시행령(2005. 7. 27. 대통령령 제18973호로 제정된 것) 제11조,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2009. 8. 18. 대통령령 제21687호로 개정된 것) 제26조 제3항 및 초․중등학교 교육과정(1997. 12. 30. 교육부 고시 제1997-15호로 제정되고 2012. 7. 9. 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2012-14호로 개정된 것) 중 초‧중‧고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한 부분
청 구 이 유
Ⅰ. 심판청구에 이르게 된 경위
청구인들은 초등학교 입학예정인 아동과 그 부모, 초‧중등학교 재학생과 그 부모, 초‧중등학교의 교사 또는 교장, 대학생, 대학원생, 대학교수, 한자‧한문 강사, 공무원, 출판사대표, 기자, 변호사, 목사, 기업체 대표, 회사원, 자영업자, 가정주부, 기타 일반시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청구인들은 한국어(韓國語)를 생활언어로 사용하면서 한자(漢字)가 한국어의 언어생활에서 갖는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국민입니다. 청구인들은 국가에 의한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語文政策)과 교육정책(敎育政策)으로 인해 우리말의 언어생활에서 크고 작은 직‧간접의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우리말 한국어는 고유어와 한자어(漢字語)로 구성되어 있고, 고유어는 25.5%에 그치는 반면 한자어는 약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의 한자어는 원칙적으로 한자(漢字)라는 글자로 적고 그 한자로 적힌 한자어를 한국어의 발음(發音)으로 읽어야 그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됩니다. 언어의 목적은 의미(意味)의 전달에 있으며, 말을 표기하는 글자와 그것을 소리로 나타내는 발음은 그 수단입니다. 인간 사고의 가능성은 사고의 도구인 언어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사고도 멈춥니다. 인간이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도구로서 언어를 필요로 하며, 도구의 다양성과 정교함에 의하여 사고의 폭과 깊이가 결정됩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에 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개인은 도구의 불명확함으로 인하여 명확하게 사고할 수 없으며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한국어의 주된 구성요소를 이루고 있는 한자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아가 한국어로 제대로 사고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한글전용의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은 우리말 한국어에서 그 의미전달의 기본수단인 한자(漢字)를 배척 혹은 말살함으로써, 우리 국민이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국가의 한글전용정책으로 인하여 한편으로는 국민 누구나 한글로 표기된 한국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다른 한편, 자신이 읽은 것의 의미를 더 이상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자를 배척하고 한글을 전용하는 국가의 교육정책이 이미 오랜 기간 지속됨에 따라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한자 교육의 수혜자로서 한자를 이미 배웠기 때문에 한글로 표기된 한자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한글전용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자를 배우지 않은 국민은 한자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어로 사고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 문맹(文盲)은 해소되었으나 고학력자일수록 실질 문맹률(文盲率)이 높다는 2009년의 연구결과는 매우 충격적입니다.
한국어를 전적으로 한글로 표기한다 하더라도, 한국어의 주된 구성부분인 한자어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언어생활에서 표기수단으로서의 한자를 배제할 수는 있으나 한국어를 구성하는 한자어 자체를 축출할 수는 없습니다. 한자를 배척하는 국가정책은 한자어의 대부분을 우리의 고유어로 대체할 수 있는 상황에서나 비로소 가능하고 고려될 수 있는 정책입니다. 우리가 한자어를 포기할 수 없는 한, 우리말의 정확한 이해와 사용을 위하여 한자 교육은 필수적입니다. 고유어는 한글로 표기하고 한자어는 한자로 표기하는 경우에 비로소 우리말인 한국어는 국어로서의 완전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한자어가 한글로 표기되는 경우에는 적어도 한글로 표기된 한자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보된 상태에서만 한국어는 온전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특정 어문생활영역에서 부분적이나마 한글전용을 하기 위해서도 한자어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한자 교육은 필수적입니다. 한글전용은, 한자의 사용 없이도 한국어의 주된 구성부분인 한자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한글전용의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으로 인하여 국민의 다수가 자신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모국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국가에서 국어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없으며, 학문이 발전하고 문화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겠습니다. 2천여 년 동안 우리말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어 온 한자(漢字)가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점차 사라지게 됨으로써, 우리말의 의미(意味)를 정확하게 주고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어를 통한 창조적 사고력을 증진시킬 수도 없으며 수천 년 이어져 온 민족문화의 정체성이 상실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한자를 배척 혹은 말살하는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으로 인해 지금의 젊은이들은 지식인의 요람(搖籃)인 대학을 다녀도 한자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읽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학의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글‧한자 혼용(混用)으로 쓰인 수백만 건의 지식의 보고(寶庫)들이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글을 후손들이 직접 읽고 이해할 수 없다는 자괴감(自愧感)은 차치하고서라도, 이제는 한글‧한자 혼용으로 쓰인 10년 전의 선배들의 지식과 지혜조차도 습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자를 모르니 한자로 압축된 전문용어는 물론이고 한자로 구성된 일상생활용어조차 그 정확한 의미가 가물가물하게 되었습니다. 2천여 년 동안 이 땅의 선조들이 한자를 사용하여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여 왔고 또 한자를 이용하여 삶의 지식과 지혜를 후손들에게 전수하여 왔는데, 그 대동맥이 이제 한자를 아는 일부 소수의 식자(識者)들에 의해서만 간신히 이어지는 꼴이 되고 있습니다.
언어는 감정과 정신을 담는 그릇입니다. 정신문화의 바탕인 우리의 말과 글에 있어서 한글과 한자는 ‘새의 양 날개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것인데, 그 한 쪽 날개에 생명을 전달하는 혈류가 막혀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조만간에 그 혈류가 완전히 막혀 한 쪽 날개(한자)를 잃은 채 우리의 정신문화는 결국 높이 비상(飛上)하지 못하고 추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형편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1970년 신학기에 초‧중등학교 모든 교과서에서 한자를 삭제한 후, 1972년 8월 16일 ‘한문교육용기초한자 1,800자’를 공포(公布)하고, 1973년부터 중등교육과정에서 한자교육(漢字敎育)을 국어과(國語科)에서 분리하여 별도의 한문(漢文) 과목으로 가르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인 공교육체계 속에서 한자교육을 지속적으로 배척(초등학교) 혹은 경시(중‧고등학교)하여 오다가, 2005년에 제정된 「국어기본법」에서는 급기야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역사와 전통과 가치관을 담고 이어가고 있는 매체(媒體)인 한자를 규범적으로 전면 포기해 버렸습니다. 2천여 년 간 이어져 온 우리의 국자(國字)를 부정해 버린 것입니다. 이는 한민족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적 정체성을 부정한 것입니다. 지각 있는 많은 논자(論者)들은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을 「국어기본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전통문화와 민족의 역사를 단절시키게 될 것이라고 심각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청구인들은 이 같은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으로 인해 수천 년간 내려 온 우리말 한국어가 그 온전(穩全)한 모습을 잃어감에 따라 자신들의 국어생활과 정신문화가 황폐화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비장(悲壯)한 각오로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Ⅱ. 위헌 여부를 다투는 공권력작용 (심판의 대상)
청구인들이 이 사건 심판청구에서 위헌을 다투는 공권력작용은 크게 다음의 세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➀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국어생활을 강요하는 법령규정(法令規定)(이하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 ➁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에서 한자혼용(漢字混用)을 금지한 법령규정(이하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 ➂ 초‧중등학교의 국어(國語)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시킨 교육부(현재 교육과학기술부) 고시(告示)(이하 “이 사건 한자교육배제고시”).
1.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국어생활을 강요하는 법령규정들
(1) 국어기본법(2005. 1. 27. 법률 제7368호로 제정되고 2011. 4. 14. 법률 제10584호로 개정된 것. 이하 “법”이라 함) 제3조, 제14조 제1항, 제15조, 제16조, 그리고 국어기본법시행령(2005. 7. 27. 대통령령 제18973호로 제정된 것) 제11조는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과 국어생활을 강요하는 기본적인 법령규정들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어기본법
제3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국어"란 대한민국의 공용어로서 한국어를 말한다.
2. "한글"이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를 말한다.
3. "어문규범"이란 제13조에 따른 국어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제정한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표준 발음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등 국어 사용에 필요한 규범을 말한다.
4. "국어능력"이란 국어를 통하여 생각이나 느낌 등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듣기·말하기·읽기·쓰기 등의 능력을 말한다.
제14조(공문서의 작성) ① 공공기관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
제15조(국어문화의 확산) ①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바람직한 국어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신문·방송·잡지·인터넷 또는 전광판 등을 활용한 홍보와 교육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야 한다.
② 신문·방송·잡지·인터넷 등의 대중매체는 국민의 올바른 국어 사용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제16조(국어 정보화의 촉진) ①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국어를 통하여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활용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도록 국어 정보화를 위한 각종 사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야 한다.
② 국가는 인터넷 및 원격정보통신서비스망 등 정보통신망을 활용하는 국민이 국어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시행하여야 한다.
③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3호에 따른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국민이 국어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국어기본법시행령
제11조(공문서의 작성과 한글 사용) 법 제14조제1항 단서의 규정에 의하여 공공기관의 공문서를 작성하는 때에 괄호 안에 한자나 외국 문자를 쓸 수 있는 경우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2. 어렵거나 낯선 전문어 또는 신조어(新造語)를 사용하는 경우
위 규정들은 얼핏 보아서는 한자배척 혹은 한자말살의 입법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으며, 또 국민들에게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언어생활을 강요하는 공권력성을 교묘하게 숨기고 있습니다. 이하에서는 다소 길지만 그 입법의도와 공권력성 그리고 기본권제한의 측면을 밝히고자 합니다.
(2) 우선, 법 제3조(정의)는 제1호에서 “국어란 대한민국의 공용어로서 한국어를 말한다.”고 정의하면서, 동시에 제2호에서 “한글이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아서는 이 개념규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국어(國語)란 우리말 한국어(韓國語)를 가리키고, 또 한글이 우리의 고유문자임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2호는 우리말 국어를 표기하는 문자를 ‘한글’로만 한정지우고 ‘한자(漢字)’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습니다. 수천 년 간 우리말을 형성해 왔고 또 표기하는 문자로 사용되어 온 우리식의 음과 뜻을 지닌 한국화(韓國化)된 한자를 우리말 국어를 표기하는 문자에서 의도적으로 빼 버린 것입니다. 나중에 다시 살피겠습니다만, 한글과 한자(이하 ‘한국화된 한자’를 가리킴)는 엄연한 우리의 국자(國字)로서 우리말 한국어를 표기하는 양 날개요 두 바퀴입니다. 우리말에서 이 두 문자는 결코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분리되어서는 우리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법 제3조 제2호는 우리말 한국어를 표기하는 문자에서 국자(國字)의 하나인 한자를 인위적으로 배제시킨 것입니다.
(3) 이러한 인위적인 한자배척의 입법의도는 국어기본법의 여러 규정들에서 확인됩니다. 먼저 제3조 제3호는 어문규범(語文規範)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국어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제정한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표준 발음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등 국어 사용에 필요한 규범”이라고 하여 한글 맞춤법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 한자에 관한 어문규범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법에서 말하는 어문규범은 한자를 배제한 상태에서의 문자생활에 관한 규범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한 같은 조 제4호는 “국어능력이란 국어를 통하여 생각이나 느낌 등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듣기‧말하기‧읽기‧쓰기 등의 능력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읽기‧쓰기의 능력’이란 한글로만 표기된 한국어를 읽고 쓰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법 제23조(국어능력의 검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실시하는 국어능력검정시험에서 한자를 읽고 쓰는 능력을 평가하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인위적인 한자배척의 입법의도는 법 제14조(공문서의 작성)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제14조 제1항은 “공공기관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법시행령 제11조(공문서의 작성과 한글 사용)는 공문서 작성 시 “괄호 안에 한자나 외국 문자를 쓸 수 있는 경우는 다음 각 호와 같다.”고 하면서, “1.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2. 어렵거나 낯선 전문어 또는 신조어(新造語)를 사용하는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들은 수천 년 간 사용해 온 우리의 국자(國字)인 한자를 외국 글자와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적 언어생활에서 표현수단으로 자유롭게 한자를 혼용하여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공문서(公文書)란 “행정기관에서 공무상 작성하거나 시행하는 문서(도면·사진·디스크·테이프·필름·슬라이드·전자문서 등의 특수매체기록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와 행정기관이 접수한 모든 문서”를 말합니다(행정업무의 효율적 운영에 관한 규정 제3조 제1항). 그러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서도 공문서에 해당하고, 따라서 청구인들은 이 사건 심판청구서를 작성하면서 법 제14조의 규율 때문에 자유롭게 한자를 혼용하여 의사표현을 하고자 하여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4) 요컨대, 국어기본법은 제3조(정의)와 제14조(공문서의 작성)를 통해 우리말 국어의 개념요소에서 국자(國字)인 한자를 인위적으로 배제하는 입법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 다음에서 살피는 바와 같이, 법 제18조(교과용 도서의 어문규범 준수)는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인 초․중등학교에서 학습의 기본교재로 사용하는 교과용 도서에까지 한자를 강제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어생활의 기본적인 정책방향과 규범을 설정하는 ‘기본법’(基本法)이 ‘한자가 배제된 국어의 개념’을 상정(想定)한 채, 국가기관에게는 한글전용‧한자배척의 국어정책의 수립과 시행을 요구하고 있고, 또한 국민에게는 한글전용‧한자배척의 국어생활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하에서 이 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피겠습니다.
(5) 한글전용‧한자배척의 국어정책은 법 제6조가 규정하는 국어발전기본계획의 수립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제6조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하여 5년마다 국어 발전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의무지우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와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수립한 ‘국어 발전 기본계획’ 을 보면, 한자의 보급과 발전에 관한 계획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으며 모든 계획은 한글 중심의 국어의 보급과 발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제2차 기본계획에서도 세종학당 확대 운영, 한글문화 확산을 위한 기반 구축 등을 추진과제로 제시하고 있으며, 그 밖의 추진과제에서 언급하고 있는 ‘국어 문화 확산’, ‘공공언어의 개선’, ‘한국어 보급’, ‘우리말 위상 강화’등의 추진과제에 한자는 전혀 상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국어발전기본계획의 실행기구라고 할 수 있는 국립국어원이 일반인의 국어능력 향상을 위해서 개설한 국어문화학교의 온라인강좌 개발현황(2007~2011년)을 보아도 한자교육은 국어능력의 개념요소로 아예 취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6) 나아가 국어기본법은 ‘한자배척의 국어문화’가 국민의 언어생활 속에서 확산될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구체적인 의무를 부과하고, 동시에 언론기관과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는 추상적인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법 제15조(국어문화의 확산) 제1항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바람직한 국어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신문‧방송‧잡지‧인터넷 또는 전광판 등을 활용한 홍보와 교육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나아가 제2항에서는 “신문‧방송‧잡지‧인터넷 등의 대중매체는 국민의 올바른 국어 사용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법 제16조(국어 정보화의 촉진) 제1항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국어 정보화를 위한 각종 사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야 한다.”고 의무지우고 있으며, 나아가 제3항에서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에 따른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국민이 국어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들 규정에서 언급된 “바람직한 국어문화”, “올바른 국어 사용”, “국어정보화”, “편리한 국어 사용”은 그 표현 자체로서는 문제될 것이 없겠습니다만, 여기의 ‘국어’ 개념이 ‘한자가 배제된 국어’ 개념이라고 할 때는 문제가 매우 심각해집니다. 우리말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를 한글로만 표기하는 방식의 언어생활이 촉진되도록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언론기관 그리고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강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청구인들을 비롯한 국민으로 하여금 일상의 언어생활 속에서 우리의 국자(國字)인 한자를 더 이상 가까이에서 접할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일반 국민이 항상 접하는 대중매체와 인터넷에서 한자를 사라지게 함으로써 전 국민을 한자문맹(漢字文盲)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폐해는 나중에 자세히 살피겠습니다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상태입니다.
(7) 이상과 같은 한자배척의 언어생활 강요는 국어기본법에서 끝나고 있지 않습니다. 이 기본법을 필두로 해서 여러 법령과 관련 시책은 우리의 국자(國字)인 한자(漢字)를 국민의 언어생활 속에서 강제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이 정도에 이르면, 국가가 한자(漢字)를 ‘배척(排斥)’하는 수준이 아니라 ‘말살(抹殺)’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사건 심판청구의 직접적인 심판대상은 아닙니다만, 몇 가지를 적시(摘示)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❶ 우선,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제3조 제3항은 시장 등에게 허가를 받거나 신고하여야 하는 옥외광고물의 표시방법 등에 관해서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는데, 같은 법 시행령 제12조(일반적 표시방법) 제2항은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및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추어 한글로 표시하여야 하며, 외국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倂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접하는 옥외광고물에서도 한자(漢字)를 강제로 몰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시행령은 한자(漢字)를 아예 외국문자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❷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은 “사업자는 고객이 약관의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조항 위반으로 인한 계약무효의 효과나 제재는 없습니다만, 법률은 명백히 약관을 작성하고자 하는 모든 사업자에게 한글 사용을 강제하고 한자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❸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제5조(원산지 표시) 제1항은 농수산물과 농수산물 가공품의 원료에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제4항에서는 그 표시방법에 관하여 농림수산식품부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는데, 법 시행규칙(농림수산식품부령) 제3조 제1호 [별표 1]은 표시방법을 “한글로 하되, 필요한 경우에는 한글 옆에 한문 또는 영문 등으로 추가하여 표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❹ 「담배사업법」 제25조 제1항에 따라 담배의 갑포장지와 광고에 표시하여야 하는 흡연경고문구와 관련해서, 법 시행령 제8조(흡연경고문구의 표시기준)는 “흡연경고문구를 한글로 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❺ 「상업등기규칙」(대법원규칙) 제2조(등기기록 등에 사용할 문자 등)는 제1항에서 “등기를 하거나 신청서, 그 밖의 등기에 관한 서면(「전자서명법」 제2조의 전자문서를 포함한다)을 작성할 때는 한글과 아라비아숫자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2항에서는 상호와 외국인 성명에 한해 “한글 또는 한글과 아라비아숫자로 기록한 다음 괄호 안에 로마자, 한자, 아라비아숫자 그리고 부호를 병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❻ 이상과 같은 법령에 의한 강제적인 한자배척 외에도, 정부에서는 적극적인 시책(施策)을 통해 우리의 언어생활 속에서 한자를 몰아내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법제처가 추진하고 있는‘법령의 한글화 시책’입니다. 정부입법을 총괄‧조정하고 각 부처에서 입안한 각종의 법령안들을 심사하는 정부기관인 법제처는 2006년에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5개년 계획」(2006. 5. 30. 국무회의 보고)을 세우고 ‘법령의 한글화 시책’을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모든 법령문을 한글로 표기한다.’는 기본원칙 아래 “한자로 표기된 법령은 원칙적으로 한글로 바꾸되, 한글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거나 다른 단어와 그 뜻이 혼동될 우려가 있는 단어가 있으면, 예외적으로 괄호 안에 한자를 함께 쓰도록 한다.”는 기준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새로 제‧개정되는 법령은 물론이고 기존에 한자로 표기되어 있던 법령까지도 모두 한글로 바꾸는 개정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법령의 한글화 시책’은 함축(含蓄)된 뜻을 지닌 한자어로 된 법률용어까지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한글로 표기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실로 무모하고 위험한 실험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한자어로 된 법률용어의 뜻이 수범자(受範者)인 국민에게 정확하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원칙적으로 한자로 표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적어도 한자 다음에 그것을 읽을 수 있도록 괄호 안에 한글을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법령문’을 만들겠다는 취지는 바람직한 것이지만, 그것이 한자어 중심의 법령문(法令文)을 한글로 표기하면 달성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오히려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는 한자어의 어원(語原)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법률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하는 다수의 국민들에게 커다란 불편을 초래할 것입니다.
(8) 이상을 요약해서 정리하면, 국어기본법은 그 전체가 우리말 국어의 개념요소에서 우리의 국자(國字)인 한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그러한 기본전제 아래 한글전용‧한자배척의 국어정책의 수립과 시행을 국가기관에게 요구하고 있으며, 청구인들을 비롯한 국민들에게는 한자배척의 국어생활을 직․간접으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다만, 청구인들은 국어기본법의 관련 조항 중에서도 제3조, 제14조 제1항, 제15조, 제16조, 그리고 법시행령 제11조를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과 언어생활을 강요하는 대표적인 조항으로 잡아 그 위헌성을 다투는 것입니다.
이들 심판대상조항(“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으로 인해 청구인들은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하는 한자혼용(漢字混用)의 어문생활을 누릴 권리 내지 국가의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아니하고 자신의 어문생활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권리, 즉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및 헌법 제21조에 의하여 보장되는 한자를 사용한 의사표현의 자유, 즉 자신이 선택한 매체인 한자의 사용을 통하여 자신의 사고와 견해를 표현할 자유를 제약받고 있습니다.
2.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에서 한자혼용을 금지한 법령규정들
(1) 국어기본법(2005. 1. 27. 법률 제7368호로 제정되고 2011. 4. 14. 법률 제10584호로 개정된 것) 제18조 및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2009. 8. 18. 대통령령 제21687호로 개정된 것) 제26조 제3항은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에서 한자혼용을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어기본법
제18조(교과용 도서의 어문규범 준수)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초·중등교육법」 제29조에 따른 교과용 도서를 편찬하거나 검정 또는 인정하는 경우에는 어문규범을 준수하여야 하며, 이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협의할 수 있다.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수정)
③ 교과용도서를 편찬하거나 발행하는 자는 「국어기본법」 제18조에 따른 어문규범을 준수하여야 한다.
(2) 위 규정들(“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은 국민을 한자문맹(漢字文盲)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국어기본법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법문언에서는 이를 교묘히 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 규정들은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인 초․중등학교에서 학습의 기본교재로 사용되는 국정․검정․인정의 교과용도서에까지 한자를 강제로 몰아내고 있는 규정임이 분명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어기본법에서 말하는 “어문규범”이란 한자를 배제한 상태에서의 문자생활에 관한 규범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교과용도서를 편찬․검정․인정할 때 “어문규범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은 교과용도서에서 한자혼용(漢字混用)을 금지하도록 교육과학기술부장관에게 의무지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자배제의 입법의도는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수정)에서 더욱 구체화되어 있습니다. 같은 조 제3항은 “교과용도서를 편찬하거나 발행하는 자는 「국어기본법」 제18조에 따른 어문규범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교과용도서를 저술하거나 발행하려는 일반 국민에게 한자혼용의 교과용도서를 저술 및 발행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에서 한자혼용을 금지시키는 교과서정책은 ‘교과용도서의 편찬기준’에서도 확인됩니다. 우선, 교육과학기술부가 2009. 12.에 발간한 『국정도서 업무편람』은 「Ⅰ. 국정도서 편찬상의 유의점(공통사항)」의 “8. 표기와 인용의 정확성”에서 “교과용도서의 표기‧표현은 최신 어문규정 및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 따른다. … 의미의 정확한 전달을 위하여 부득이한 경우 괄호 안에 한자나 외국문자를 병기할 수 있다.”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의 사무위탁에 따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11. 9.에 발간한 『초‧중등학교 교과용도서 편찬상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도 「Ⅱ. 공통 편찬상의 유의점」의 “6. 표기와 인용의 정확성”에서 “교과용도서의 표기‧표현은 최신 어문규정 및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의미의 정확한 전달을 위하여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 괄호 안에 한자나 외국문자를 병기할 수 있다.”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이들 편찬기준에서의 한자혼용의 금지는 새로이 추가된 기준이 아니라 바로 「국어기본법」 제18조와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 제3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한자혼용의 금지규범을 그대로 확인한 것입니다.
요컨대,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은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인 초․중등학교에서 학생이 학습의 기본교재로 사용하는 교과서와 교사가 참조하는 지도서에까지 한자를 강제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학생들은 가장 기본적인 교육과정에서부터 한자를 쉽게 접하고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환경을 국가로부터 박탈당한 채 학습권의 침해를 받고 있으며, 동시에 교사는 각 담당과목의 기초개념들을 한자를 통해 학생들에게 보다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박탈당한 채 수업권의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들 규정은 자신의 저술내용을 한자혼용(漢字混用)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저작자와 출판사에 대해 그 표현수단을 금지시키는 것으로서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3. 초‧중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한 교육부 고시(告示)
국민을 한자문맹(漢字文盲)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국가의 의도는 초‧중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금지 혹은 경시하고 있는 교육정책에서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 정책은 1970년대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만, 현재는 「초․중등학교 교육과정」(1997. 12. 30. 교육부 고시 제1997-15호로 제정되고 2012. 7. 9. 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2012-14호로 개정된 것. 이하 “이 사건 교육과정고시”)에 담겨 있습니다. 이 고시는 초‧중등학교의 국어(國語) 교과에서 한자교육(漢字敎育)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초‧중등교육법」은 제23조(교육과정)에서 학교가 운영하여야 하는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정하도록 하고(제1항 및 제2항), 학교의 교과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제3항). 이에 따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3조(교과)는 초‧중‧고등학교에서 교과로 가르쳐야 할 기본과목을 제시하고 그 밖에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교과를 추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공포한 이 사건 교육과정고시는 「Ⅱ. 학교 급별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에서 초‧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은 교과(군)와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편성한다.”로 규정하고, 교과(군)은 아래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분류하고, 그리고“창의적 체험활동은 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진로 활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2012호(2012. 7. 9)
초등학교
교과(군)
교과(군)는 국어, 사회/도덕, 수학, 과학/실과, 체육, 예술(음악/미술), 영어로 한다. 다만, 초등학교 1, 2학년의 교과는 국어, 수학,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로 한다.
중학교 교과(군)
교과(군)는 국어, 사회(역사포함)/도덕, 수학, 과학/기술․가정, 체육, 예술(음악/미술), 영어, 선택으로 한다. 선택은 한문, 정보, 환경과 녹색성장, 생활 외국어(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아랍어, 베트남어), 보건, 진로와 직업 등 선택 과목으로 한다.
고등학교 교과(군)
교과는 보통 교과와 전문 교과로 한다.
① 보통 교과는 기본 과목과 일반 과목, 심화 과목으로 구분한다. 보통 교과 영역은 기초, 탐구, 체육․예술, 생활․교양으로 구성하며, 교과(군)는 국어, 수학, 영어, 사회(역사/도덕포함), 과학, 체육, 예술(음악/미술), 기술․가정/제2외국어/한문/교양으로 한다.
② 전문 교과는 농생명 산업, 공업, 상업 정보, 수산․해운, 가사․실업에 관한 교과로 한다.
초‧중등학교의 국어(國語) 교과를 비롯한 모든 교과에서 한자를 삭제하고 한자교육을 폐지한 것은 1968년 10월 25일 「대통령 지시 한글전용 촉진 7개 사항」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이러한 대통령 지시에 따라 1968년 12월 「한글전용에 관한 총리훈령 제68호」가 내려졌고, 1969년 9월에는 「국민학교 교육과정 개정령 제251호, 국민학교 한자교육 폐지하라」는 문교부 훈령이 시달(示達)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출판사들은 조판(組版)까지 끝난 다음 학기 교과서[1970년 신학기]를 부랴부랴 한글전용 교과서로 다시 조판해야 했습니다. 당시 문교부 관리들은 ‘이미 교과서 조판이 끝났는데 어떻게 다시 조판(組版)하라는 말이냐.’고 항의하는 출판사에 대해 ‘한자를 뺀 자리에 영어나 다른 것을 넣는 것은 괜찮지만 한자만은 안 된다.’며 막무가내였다고 합니다.
정부가 국어에서 한자를 배제한 정책은 국어교과에서 한자를 배제하고 따로 ‘한문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를 선정하여 1973년 신학기부터 한문교과에서 한자조차 배우지 못한 중등학생에게 한문을 가르치게 한 과정에 명징(明徵)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어로서의 한자’는 배척되고 외국어로서의 한문교육만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랜 한글전용 교육으로 인해 지금 우리는 한자(漢字)와 한문(漢文)을 같은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한글전용론자들과 정책당국은 국민으로 하여금 한자와 한문을 혼동하게 함으로써 ‘한국어로서의 한자교육’마저 ‘외국어로서의 한문교육’으로 착시(錯視)하게 하여 마침내 「국어기본법」에서 교묘하게도 한자를 ‘외국문자’로 규정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글사랑 나라사랑’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한글 자체가 곧 한국어’라고 인식하게 함으로써 국민들이 한국어와 그 표기 문자인 한글의 차이조차 구분하지 못하게 하여 한국어를 적는 한자를 외국문자로 인식하게 하는 근인(根因)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1970년 신학기 이전, 그러니까 1948년 건국 이후 1970년 2월까지 한자교육은 국어 교과의 교육내용으로 행하여져 왔습니다.
예컨대, 1963년의 국민학교 교육과정(1963. 2. 15. 문교부령 제119호)을 보면, 국어 과목 4학년의 교육목표로 “일상생활에서 쓰는 한글과 한자, 숫자, 로마자와의 구별을 알도록 한다.”고 규정하였고, 국어 과목 6학년의 교육목표에서는 “행서의 초보를 쓸 줄 알게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1963년의 중학교 교육과정(1963. 2. 15. 문교부령 제120호)을 보면, 국어 과목의 학습내용으로 ‘Ⅴ. 한자 및 한문 지도’ 항목에서 그 의의와 목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자는 근 2천 년 동안, 우리의 글에 섞여 쓰이어 왔음으로, 아직도 동양 문화의 연원을 고찰하거나, 우리 문화의 정수를 연구함에 있어서는 한자에 대한 이해가 그 기본이 되고 있다. 한편 현재 우리와 가장 가까이 인접하고 있는 자유중국, 일본 등에서는 여전히 한자로서 그들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과 문화를 교류하고 국교를 조정하는 데 있어서도 한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한자 한문의 학습은 결코 과거의 진부한 봉건적인 시대 사상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며, 우리 조상들이 한 것 같이, 모든 의사 표시를 한자에 의존하려는 것도 물론 아니다. 다만 우리 생활에 가장 밀접한 범위 내의 한자와 한문을 효과적인 방법으로 짧은 기간에 습득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70년 신학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초‧중‧고등학교의 모든 교과에서 한자가 사라지고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도 배제되었습니다. 지금 중학교에서는 학교장 재량으로 한문교과(漢文敎科)를 선택할 수 있고, 고등학교는 교육청이 권장할 경우 학교장의 결정으로 2학년부터 한문을 교육할 수 있습니다만, 일부 고등학교 한문과 교사들은 전과연수(轉科硏修)를 받고 다른 과목을 담당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일부 대학의 한문교육과는 중등학교 한문 교사의 수요(需要)가 줄어들자 격년제(隔年制)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결국, 현재 한문 교과는 여러 선택과목 중의 하나로 지정되어 실제로는 거의 학습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1970년 이후로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교육의 부활을 주장하는 수없이 많은 주장과 청원이 있어왔지만, 현재 초‧중‧고등학교의 공교육과정에서 한자교육은 사실상 사라져버렸으며, 한자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점증하는 요구는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에 학부모들의 한자교육 요구를 차마 무시하지 못한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의 개정 교육과정(2009. 12. 23. 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2009-41호)에서부터 ‘초등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중점’사항으로 “(6) 정보통신활용교육, 보건교육, 한자교육 등은 관련 교과(군)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체계적인 지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지침은 한자교육을 초등학교 국어 교과의 내용으로 편입시킨 것이 아니라, 한자교육을 학교장의 재량에 맡겨 놓고 있는 수준입니다. 그나마 이로 인해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는 학교장에 따라서는 한자교육을 부분적으로 실시하는 초등학교도 있습니다만, 학교마다 천차만별이어서 국민교육으로서의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의 90% 이상이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한자가 정규 과목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응답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점은 교육부가 중‧고등학교의 한문 교과를 위해 1972년에 제정‧공포하고 2000년에 조정‧공포한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중학교 900자, 고등학교 900자)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육용 기초한자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중‧고등학교의 경우도 전 국민이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 상용한자(常用漢字)가 아니라 한문(漢文) 교육용 기초한자인 것입니다.
요컨대, 이 사건 교육과정고시는 초‧중‧고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글과 한자는 똑 같이 우리말 국어를 구성하는 기본요소이고, 양자가 분리되어서는 우리말 국어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인데도, 한자교육이 국어 교과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진국 중 모국어(母國語)를 초등교육에서 가르치지 않거나 중등교육에서 선택과목으로 정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이로 인해 미래의 주역인 우리 학생들은 자유로운 인격발현의 가능성을 국가로부터 차단된 채 학습권을 침해받고 있으며, 동시에 학부모의 자녀교육권 또한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Ⅲ. 우리말 국어에 있어서 한자의 의미와 기능
1. 서언
오늘날의 한글전용‧한자배척의 편향된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은 우리의 불행한 근대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근대사에서 일제(日帝)가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탄압‧말살하려는 정책을 펼쳤고, 당시 이에 저항하여 우리말을 지키려는 민족적 운동이 일어나면서, 한글 전용(專用)만이 애국애족(愛國愛族)하는 길이요 한자교육은 사대주의(事大主義)의 잔재라는 국수주의적(國粹主義的)인 한글전용론이 득세하게 되었습니다. 광복 이후 이러한 한글전용론자들이 국가의 어문정책(語文政策)을 주도하였고, 또 광복 직후 학생들이 우리말을 제대로 말하거나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형편에서 학생들을 비롯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한글이라도 깨우치게 하는 일이 시급한 상황에서[당시의 문맹률(文盲率) 70% 이상], 한글전용론은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일제 강점기 조선어[국어] 수난(受難)의 시기에 많은 애국지사와 학자들이 고통과 희생 속에서 조선어[국어]를 지켜내고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만들고 「우리말큰사전」의 편찬 등을 준비하며 조선어[국어]를 빛낸 것은 높이 기려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민족혼이 살아 숨 쉬고 서민 대중의 문맹(文盲)을 깨우쳐 준 한글도 살아 난 것입니다. 당시 한자를 고수하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글을 지지하지 않은 애국지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글전용의 애국애족의 마음이 지나쳐 한자를 우리말 국어에서 몰아내는 것으로까지 발전하여, 마침내 2005년의 「국어기본법」에서는 법률적 구속력까지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자말살의 입법의도는 그것을 정당화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고, 오히려 국어기본법 제1조의 목적(“국민의 창조적 사고력의 증진을 도모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하고 민족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함”)과 제2조의 기본이념(“국가와 국민은 국어가 민족 제일의 문화유산이며 문화 창조의 원동력임을 깊이 인식하여 국어 발전에 적극적으로 힘씀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어를 잘 보전하여 후손에게 계승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어가 문화창조의 원동력이 되고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한글과 한자에 대한 정확한 구사능력(驅使能力)이 필수조건입니다. 또한 창조적 사고력의 증진, 문화적 삶의 질 향상, 민족문화의 발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국어의 기본요소인 한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국어기본법이 한자를 의도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헌성을 논증하기에 앞서, 우리말 국어에서 한자가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을 간략히 살피고,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전개되어 온 한글전용의 심각한 폐해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2. 한민족(韓民族)의 전통문화의 요체요 국자(國字)로서의 한자
우리 민족의 문자역사를 보면, 1443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한글)을 창제‧반포하기 이전에는 고유의 표기수단인 문자를 가지지 못했었습니다. 2,100여년 전 중국의 한(漢) 무제(武帝)가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한 시기(B.C. 108년)에 중국에서 사용되던 한자가 우리말의 표기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2천여 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한자와 한문은 우리의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교육, 군사, 과학 등 모든 분야 발전의 원동력이요 문화적 토대로서의 역할을 하여 왔습니다.
세종대왕에 의해 한글이 창제‧반포된 후에 한자음(漢字音)을 분석 정리한 동국정운(東國正韻)이 편찬됨으로써 한자는 우리의 국자(國字)로 확립되었습니다. 따라서 한자는 한글과 더불어 엄연히 우리의 국자(國字)이며, 세종대왕은 한자를 쓰는 것을 전제로 「正音」(글자의 바른 음)을 창제한 것이었습니다.
한글과 한자는 처음부터 음운체계(音韻體系)가 같은 상보(相補)의 문자입니다. 한국어는 두 개 또는 세 개의 음절(音節)이 결합되어 하나의 어휘를 이룹니다. 각각의 음절은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이 모여 하나의 음절을 이루게 되는데 이 음운체계는 한자의 음운(音韻) 형식을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시에 응용한 것입니다. 참고로 한자의 음운법(音韻法)은 반절(反切), 즉 한자로 한자음을 표기하는 방식인데, 헌법(憲法)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例 : 憲法 / 憲=許建切, 法=方乏切
‘憲’의 음절은 ‘許建’으로 표기했는데, 첫 글자 ‘許’에서 초성 ‘ㅎ’을 취하고 두 번째 글자인 ‘建’에서 중성 ‘ㅓ’와 종성 ‘ㄴ’을 취해 ‘’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이 음절들을 조합하여 ‘ㅎ+=헌’으로 읽습니다. 마찬가지로 ‘法’의 음은 ‘方乏’의 첫 글자 ‘方’에서 초성 ‘ㅂ’을 취하고, 두 번째 글자 ‘乏’에서 중성 ‘ㅣ’와 종성 ‘ㅂ’을 취해 ‘’이 되고 이를 합쳐 ‘ㅂ+=빕’이 됩니다. ‘法’의 음인 ‘빕’은 15세기 말에 간행된 육조법보단경언해(六祖法寶壇經諺解)에 ‘법’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한글의 원명(原名)이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입니다. ‘훈민(訓民)’은 ‘백성을 가르치는’ 뜻의 접두사(接頭辭)이고 일반적 명칭은 ‘정음(正音)’입니다. ‘정음(正音)’을 풀어쓰면 ‘바른 소리’이고, ‘바른 소리’는 한자(漢字)의 음(音)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조선조(朝鮮朝)에서는 훈민정음을 가리켜 ‘정음(正音)’, ‘언문(諺文)’, ‘반절(反切)’등으로도 부른 것입니다.
종래 한자음(漢字音)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이 각각 달랐습니다. 반절(反切)은 한자로 한자음을 표기하는 방식이므로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은 한문(漢文)을 대해도 읽을 수 없었고 음도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세종께서 이를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만드신 것입니다. 세종께서는 훈민정음 창제 직후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석보상절(釋譜詳節), 월인석보(月印釋譜)와 같은 책들을 펴내어 한글과 한자의 다양한 쓰임을 보이고, 동국정운(東國正韻)을 간행하여 훈민정음 창제의 중요한 목적인 한자음을 중국 발음에 가깝게 바로잡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오랜 기간 언중(言衆)의 입에 올라 굳어진 한자어음(漢字語音)을 중국 발음에 가깝게 바로잡기는 어려웠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한문은 여전히 공용문자로 쓰여 왔지만 규방(閨房)에서는 정음(正音)을 사용했고 최세진(崔世珍), 류희(柳僖) 등 몇몇 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이루어져 자음(子音)과 모음(母音)의 명칭‧배열순서 등이 정해졌던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말 한자어를 표기하는 한자는 수천 년 우리의 역사와 함께 사용되어 오면서 이미 우리 문자화된 글자입니다. 그 속에 동화(同化)된 우리의 음(音)이 있고 우리의 생각과 정신이 스며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국화(韓國化)된 한자는 엄연한 우리의 국자(國字)인 것입니다. 수천 년간 한자로 사람의 이름을 짓고 한자로 땅 이름을 짓고 한자로 사상과 정서를 주고받고 한자로 지혜를 전수하고 한자로 정신문화를 이루어 왔다면, 그 한자가 우리의 국자(國字)요 전통문화의 요체(要諦)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3. 국어의 양 날개로서의 한글과 한자
우리말 한국어에 있어서 한글과 한자는 새의 양 날개요, 수레의 두 바퀴와도 같은 것입니다. 문자언어(文字言語)로서 한국어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은 우리의 선조들이 2천 년 이상 사용해 온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와 5백여 년 전에 창제된 표음문자(表音文字)인 한글을 혼용(混用)하여 두 문자의 장점(長點)을 절묘하게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세계에서도 흔치 않은 놀라운 언어체계입니다. 또한 한자와 한글의 이러한 혼용은 당연히 한국어의 음성언어(音聲言語)에도 깊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한자는 한글과 더불어 우리의 언어생활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 민족의 문화적 코드입니다.
주지의 사실로서, 우리 한국어는 한글로 표기되는 아름다운 고유어와 수천 년간 한자로 표기하여 온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둘이 상호 결합하여 한국인의 정서와 사상을 표현하는 한국어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한글은 1443년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만든 표음문자(表音文字)로 우리 고유의 말을 표기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자이고, 한자는 표의문자(表意文字)로서 이천 년 이상 사용해 오고 있는 문자입니다. 이를 보면 한국어는 표음문자(表音文字)와 표의문자(表意文字)를 섞어 사용하고 있는 독특한 언어체계를 지닌 언어로서, 이 두 문자의 장점이 그대로 활용된 우수한 언어이며 이는 세계에 널리 자랑할 만한 언어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떤 문자도 표음문자만으로는 또는 표의문자만으로는 이상적인 문자가 될 수 없습니다. 문자의 학습(學習)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표음문자에 비해 표의문자가 학습하기 어려운 점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한자의 ‘天’자는 그 자형(字形)과 더불어 ‘천’이라는 자음(字音)과 ‘하늘’이라는 자의(字義)를 모두 익혀야 합니다.
그러나 문자의 활용(活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표의문자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적게 받는 데 비하여, 표음문자는 그 제약을 많이 받습니다. 예를 들면, 한자의 경우 약 3,400년 전 은대(殷代)의 갑골문(甲骨文)도 오늘날 해독할 수 있는데 반해, 표음문자인 로마자는 불과 400년 전의 셰익스피어의 원작품을 영국인들도 해독하기 어려운 정도입니다. 우리 한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세종대왕 당시의 한글 문헌을 일반인들로서는 잘 해독할 수 없음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당시의 음운(音韻)이 몇 백 년 사이에 크게 변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표음문자로 기록된 문헌이 몇 천 년 경과된다고 하면, 거의 해독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공간성(空間性)에 있어서도, 중국의 경우를 보면, 방언(方言)의 차이가 심해서 음성언어로는 북경어(北京語)와 광동어(廣東語) 사이에는 심지어 ‘밥 먹다’라는 말도 통하지 않지만, 표의문자인 한자로는 어디에서도 능히 뜻을 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제주도의 방언을 들리는 대로 ‘세벤주롱다’와 ‘멘도롱다’로 적어 놓을 때, 외지 사람이 이를 읽을 수는 있어도 그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때 표음문자는 문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합니다.
이처럼 표음문자와 표의문자는 모두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고 장점만을 갖춘 이상적인 문자는 없지만, 활용의 관점에서 표음문자와 표의문자를 모두 취하고 있는 우리 한국어는 가장 이상적인 언어입니다. 필요에 따라 표음문자인 한글로 써야 할 때는 한글로 쓰고, 한글과 한자를 혼용(混用)해야 할 때는 한자를 적절히 선용(善用)하여 쓴다면, 이 두 문자의 장점만을 취하게 되는 가장 이상적인 문자활용사례가 되는 것입니다.
한글과 한자의 아우름은 표현과 의미전달의 기능면에서도 우수하여 우리의 민족 얼을 살리고 우리가 표현해야 할 문화어(文化語)를 나타냄에 있어 부족함이 없습니다.
한글로 표기되는 고유어에는 매우 아름다운 말이 많습니다. 개울, 시내, 얼음, 열매, 꽃, 가슴, 허리, 스승, 지아비, 추녀, 서까래, 파랗다, 보드랍다, 곱다, 가늘다, 후미지다 등 일상생활 주변의 감각적 사물에 대한 어휘들이 우리의 정서(情緖)를 드러내고 민족혼을 살리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근대 서정시인들, 이를테면 소월, 미당, 지훈, 목월 등의 시인들의 시구(詩句)에서 사용된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고유어의 특성은 옛 문화를 지키고 우리 아득한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어휘의 한계가 있음도 또한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학술적 고급용어나 새로운 외래문화 용어의 표기는 한글로는 불가능하거나 표현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는 한글이 지니는 문자적 한계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말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한자어는 일반 생활언어로도 크게 기여하고 있지만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언어를 표현하거나 수준 높은 민족 정서를 표출하는 데 매우 커다란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윤리(倫理), 도덕(道德), 철학(哲學), 과학기술(科學技術), 예술(藝術) 등처럼 섬세하거나 아름다움보다는 추상적 사상(事象)이나 학술적 언어에서 주로 한자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자어가 갖는 의미(意味)의 함축성(含蓄性)과 표의문자의 특성에 기인한 것입니다.
한국어는 이렇게 우리의 고유어와 한자어가 상호 보완하며, 수천 년의 역사를 기록해 오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말의 커다란 장점이며 축복입니다. 한국어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표음문자(表音文字)인 한글은 말하기 쉽고 배우기 쉬운 반면에 함축된 의미를 포괄하기 어려운가 하면,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는 글자마다 의미를 독립적으로 지니고 있어서 처음에는 익히기가 어렵고 글자의 모양이 복잡하여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듯이 보입니다만, 한 번 익혀두면 잘 잊히지 않는 특징이 있고 하나의 글자만 알아도 많은 낱말을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청구인들은 한국어를 학습하고 사용함에 있어서, 표음문자인 한글만으로 우리의 사상과 정서를 기술하고 전달하는 데 지장이 없다면 당연히 한글전용에 찬성할 것입니다. 그런데 표음문자인 한글만으로는 우리말을 정확하게 익히기에 미흡하고 우리의 사상과 정서(情緖)를 기술(記述)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첫째, 표음문자인 한글은 음절(音節) 하나하나가 모여 단어가 되고 그 단어를 읽어야 의미가 떠오르게 됩니다. 가령 “사 + 람”한 뒤에 “사람”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人”을 보고 바로 사람이라는 뜻을 떠 올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어휘가 다 그렇습니다.
둘째, 좀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한글만으로는 고급 문화어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초등학교를 지나 중‧고등학교, 대학으로 갈수록 이 현상은 더 심해지게 됩니다. 함축적 의미를 지닌 동양사상은 물론이고 고도로 발달된 과학용어를 한글로 된 고유어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원자(原子), 핵(核), 삼투압(滲透壓) 따위만 해도 우리 고유어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풀어 써 보아도 더욱 어색한 말이 되고 불편하기 그지 없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이들 한자어를 한글로 쓰고 이를 우리말이라고 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한자어를 한글로 썼다고 우리말이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한글로 써 놓으면 의미 전달이 매우 어렵습니다. “微分 積分”을 “미분 적분”이라 썼다고 우리말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한글로 쓴 미분 적분을 보고 그 개념을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원칙적으로 한자어는 한자로 써야 그 정확한 개념이 파악되고 또 의미가 제대로 전달됩니다.
현재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에는 외국인 출신의 원어민 교사가 상당수 근무하면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의 교육용 기초 한자를 모두 익힌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우리 한국어 속에 한자어가 있음을 알고 한자를 통해 우리말을 깨친다고 합니다.
예컨대, “茶器”라고 하면 얼른 ‘차 다’ ‘그릇 기’하면서 차 그릇이라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學問”이라고 하면 ‘배울 학’ ‘물을 문’해서 묻고 배운다는 뜻을 깨친다고 합니다. 영어나 독일어와 같은 외국어 단어를 무조건 외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자를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다기”, “학문”과 같은 한자어의 경우도 그 의미를 무조건 외어야 합니다.
요컨대, 한글과 한자는 우리말 국어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상보적(相補的)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4. 한자를 떠난 한자어는 언어(言語)가 아니다
우리말 국어의 어휘 중 약 70%가 한자어(漢字語)이며, 전문용어나 추상적인 개념어(槪念語)는 95% 이상이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글주의자들은 애초에 이들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꿔놓으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한자어를 그 발음만을 한글로 옮겨 적는 것으로 그 주장을 변경하였습니다. 그 명분은 ‘한자어는 이미 우리말이 되어 있으니 그 음(音)만을 한글로 적으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장이 1948년에 제정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에서 원칙론으로 반영되었고, 1970년 이후 초‧중등학교의 교육에서 전면적으로 관철되었으며, 급기야 2005년의 「국어기본법」에서 법률적 구속력까지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자어는 한자(漢字)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언어(言語)라는 사실입니다. 한자어를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그 음(音)만을 표기하면 그것은 언어가 아닌 ‘비언어(非言語)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한자어를 음기(音記)하면 왜 비언어로 변하는지 그 까닭을 밝히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류가 발명한 모든 문자는 상형(象形)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상형문자(象形文字)는 가시적(可視的) 사물을 사생(寫生)한 하나의 도형(圖形)입니다. 그 때문에 그 도형은 도형 자체가 사물(事物)의 의미(意味)를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리하여 도형과 도형이 갖는 사물의 의미는 불가분의 표리(表裏)의 관계에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도형 자체가 곧 의미인 것입니다. 때문에 상형문자는 실제의 사물을 보는 것처럼, 사고(思考)의 과정을 밟지 않고, 즉 청각(聽覺)을 통하지 않고, 그 도형을 봄과 동시에 그 의미를 직각(直覺)합니다. 이처럼 상형문자는 그 의미의 직접성(直接性)에서 오는 표의(表意)의 정확성과 그 의미 인식의 시간적 신속성(迅速性)에 있어 문자(文字)로서 인류가 바랄 수 있는 최고 이상(理想)을 구현한 문자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상형문자의 치명적 결함은 그 표현대상이 가시적(可視的) 사물에 한정되고 비가시적(非可視的) 사물을 표현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 결함 때문에, 한자(漢字)를 제외하고, 인류 역사상 발명되었던 상형문자(象形文字)들은 끝까지 살아남지 못하였는데, 상형문자를 발명한 종족들은 결국 그것을 버리고 자신들의 언어(言語)를 기호화한 표음문자(表音文字)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상형문자 본래의 성격, 즉 표의성(表意性)을 그대로 계승‧발전시킨 문자가 바로 ‘한자(漢字)’입니다. 그 형태에 있어 상형문자를 구상적(具象的) 표의문자라고 한다면, 한자는 추상적(抽象的) 표의문자라 할 것입니다. 한자는 언어를 통하지 않고 문자 자체로써 비가시적(非可視的) 사물을 완전히 표현할 수 있는, 인류의 예지(叡智)가 최상으로 발현된 고도의 문명문자(文明文字)입니다.
표음문자(表音文字)는 사물의 의미와 인식과의 사이에 놓인 하나의 교량인데 비하여, 한자는 상형문자와 마찬가지로 문자 자체가 곧 의미(意味)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한자를 보는 것은 바로 사물 자체를 보는 것과 같은 인식효과를 가져옵니다. 그 결과 한자를 통한 사물의 의미 인식은 가장 정확하고 불변(不變)하며 또 가장 신속합니다. 이에 비해, 표음문자는 언어의 발음을 기호화(記號化)한 것입니다. 때문에 그 문자 자체나 그것이 나타내는 음(音)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고, 몇 개의 음절(音節)이 모여 한 개의 단어를 형성함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표현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한글의 경우 그것을 통하여 사물의 의미를 인식함에 있어 세 개의 단계를 거칩니다. 이에 비해 한자는 보는 순간에 사물의 의미를 직각(直覺)합니다. 때문에 순 한글 문장과 한자혼용 문장과의 독해(讀解) 속도의 차이는 마치 음파(音波)와 광파(光波)의 속도차에 비유하여도 틀림이 없습니다.
이처럼 한자는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짐으로써 그것은 벌써 단순한 기호(記號)가 아닌, 지적(知的) 요소와 정적(靜的) 요소를 동시에 갖춘 하나의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문자 하나하나에 따로따로 철학(哲學)이 들어 있고, 시(詩)가 들어 있고, 체온을 느낄 수 있고, 체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자(漢字)는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난다’는 까닭은 그 속에는 우주의 사리(事理)와 인간의 정념(情念)이 동시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자의 음운론적(音韻論的) 특질은 그것이 단음절어(單音節語)라는 데에 있습니다. 즉, 한자는 1자(字)가 1의(義)가 되고 또 1음(音)이 됩니다. 이처럼 한자는 의미와 음을 한 자(字)에 압축하여 놓은 것이기 때문에 동음이의자(同音異義字)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한자는 중국의 그것에 비해 동음이의자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 까닭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의 한자음(漢字音)은 원래 중국의 원음(原音=吳音‧漢音)에 그 음운적(音韻的) 근거를 둔 것입니다만, 한자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 후에 그 발음이 우리 고유어의 음운(音韻)에 완전히 동화(同化)하였습니다. 즉, f, v와 같은 순치음(脣齒音), g, z와 같은 탁음(濁音), l과 같은 설권음(舌捲音), ai, ei, ao, ou와 같은 복모음(複母音), erh와 같은 특수모음(特殊母音) 등이 없어지고, 또 사성(四聲)도 거의 소실됨으로써 중국의 한자음보다도 훨씬 더 단순화되고 평면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동음이의자(同音異義字)가 중국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많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자자전(漢字字典)에는 한자음이 4백 80여 개가 있습니다. 자전(字典)에 수록된 한자가 1만 3천여 자(字)이면 1음(音) 평균 30자(字) 가까이, 그리고 상용한자를 2천 자로 한다면 1음 평균 4자(字)의 동음이의자(同音異義字)가 있는 셈이 됩니다. 심지어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국어음(國語音), 예컨대 가, 구, 수, 조 등은 40~50자로부터 170여 자(字)의 동음자(同音字)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자는 한자로 쓸 때에만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그 음(音)만을 표음문자로 기록하면 한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은 한자의 뜻을 추정(推定)해서 대강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한자어는 한자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치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자는 곧 ‘언어(言語)’인데, 그 음(音)만을 표기하면 ‘비언어(非言語)’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가’ 발음의 한자인 ‘可’, ‘歌’, ‘加’는 ‘옮음’, ‘노래’, ‘더함’이라는 언어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음(音)만 ‘가’로 적으면 그 ‘가’는 ‘가’라는 소리일 뿐이요 언어(言語)는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는 고급 개념을 가진 2음절의 한자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낱개의 한자의 경우와 같이 2음절의 한자어 또한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에는 8만 8천여 개의 한자어(漢字語)가 있는데, 그 가운데 6만 8천여 자(字)가 동음이의(同音異義)라고 합니다.
일례를 들어, 국어사전에는 ‘사전’이 辭典, 寺田, 沙田, 私田, 史前, 死戰, 事前, 私錢 등 14~15개가 있습니다. 이 ‘사전’의 앞뒤를 바꾸면 ‘전사’가 되는데, ‘전사’에는 戰士, 戰死, 田舍, 前史, 戰史 등 10여 개의 ‘전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자(字) 하나는 社, 事, 思, 査, 史, 使, 四 등 1백여 개의 ‘사’자(字)가 있고, 이 ‘사’음(音)이 들어가서 되는 단어는 사가(私家), 사가(史家), 사각(四角), 사감(私感), 사감(舍監), 사경(死境), 사경(私耕), 사계(四季), 사계(斯界), 사고(事故), 사고(思考), 사고(史庫), 사고(社告), 사교(社交), 사교(邪敎), 사교(司敎) 등 2천여 단어가 있습니다. 또한 ‘전’음(音)의 글자는 全, 戰, 電, 展, 田, 前, 傳 등 150여 개의 ‘전’자(字)가 있고, 이 ‘전’자(字)가 들어가서 되는 단어는 전기(電氣), 전기(前期), 전기(傳記), 전기(轉機), 전가(轉嫁), 전가(田家), 전가(傳家), 전각(前脚), 전각(殿閣), 전각(篆刻), 전거(典據), 전거(轉居) 등 2,500여 단어가 있습니다.
이들 동음(同音) 또는 유사한 음(音)의 1음절어와 2음절어를 한글로 표기하여 놓고, 한자를 모르는 아동과 청소년이 암기를 통해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니, 어떤 천재(天才)도 불가능합니다. 결국 아동과 청소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들 한자어의 한글표기는 그저 ‘소리’일 뿐이요 ‘언어’가 아닌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한자를 없애자는 말은 한자어를 없애자는 말과 같습니다. 한자를 없애면 한자어는 저절로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한자어를 한글로 음기(音記)하면 그 뜻을 모르기 때문에 그 어휘는 사용하지 않게 되어 자연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한자를 없애자는 말은 우리말 한자어를 없애자는 말과 같습니다.
5. 창조적 사고력의 원천이요 학문발전의 초석으로서의 한자
영국의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은 일찍이 ‘언어(言語)의 한계가 곧 자기 세계(世界)의 한계’라고 갈파한 적이 있으며, 독일의 저명한 언어학자 훔볼트(Humboldt)도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정신구조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언어학을 연구하는 여러 학자의 이론은 인간의 삶에서 언어가 곧 대상세계 전체와 맞먹을 정도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한글은 배우기 쉽고 쓰기에 편리함, 12,000여 가지 소리를 담아내는 표현력, 자모음(字母音) 배열의 과학성(科學性), 컴퓨터 활용의 용이성(容易性)과 입력시간의 경제성(經濟性) 등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글전용만으로는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 구별의 곤란, 조어력(造語力)의 한계, 전통문화‧민족문화 계승의 한계 등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한자는 철학‧문학‧과학‧법학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추상적인 개념어의 도구로 사용되는 등 조어력(造語力)과 축약력(縮約力) 그리고 함축성(含蓄性)의 우수함, 한자 학습 시 좌우뇌(左右腦)의 자극으로 두뇌 발달의 촉진 등 어휘력과 사고력의 증진, 인성교육(人性敎育)과 문화전통 계승의 수단성(手段性), 상형문자(象形文字)인 한자의 시각적(視覺的) 효과로 한글이나 영어보다 기억의 용이성(容易性) 등 한글이 지니지 못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자는 한글주의자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결코 어려운 문자가 아닙니다. 한자는 세계의 문자 중 가장 습득하기 쉬운 문자입니다. 일본인의 실험에 의하면, 한자의 기억은 3~4세 때가 가장 빨라서 유치원의 아동에게 한자 천 자 정도를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합니다. 오랜 실험에 의하면, 일본의 세 살된 아동에게 한자를 읽게 하는 일은 여섯 살 아동에게 일본의 고유문자인 가나(假名)를 읽게 하는 것보다 쉽다는 것입니다. 한자는 인간의 추리력과 상상력을 정신능력의 밑바탕에서 길러주게 됩니다. 한자의 기억은 기계적인 암기(暗記)가 아니라, 사리(事理)의 이해로 성립되는 정신작용이기 때문입니다. 한자는 기억이 용이하고, 개념 파악이 정확하고, 또 그 기억이 오래 지속되는 것 또한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자를 사용하고 한자어가 국어가 된 나라에서 한자를 기억하는 것은 영어단어를 암기하는 것의 10분의 1, 혹은 100분의 1의 노력도 요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흔히 한자는 ‘글자모양(字形)이 복잡해서 배우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한자를 로마자와 같은 ‘문자(文字)’라고 생각하는 데서 생겨난 한자에 대한 오해입니다. 한자는 문자임과 동시에 말(언어)입니다. 한자의 ‘山, 川, 花, 月’은 영어의 ‘mountain, river, flower, moon’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한자는 문자(알파벳)가 아니라 그 자체가 말(言語 word)입니다. 한자에는 모든 글자마다 말을 표시하는 발음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문자의 역할을 하는 말의 뜻(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세계의 문자 가운데 이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은 한자 이외에는 없습니다. 말을 표시하는 표의문자인 한자를 표음문자인 알파벳과 비교하는 데서 큰 잘못이 생겨난 것입니다. 영어의 ‘mountain’은 말(단어)이고, m, o, u, n, t, a, i, n은 8자는 글자(문자)입니다. 그러나 ‘山’이라고 하는 한 글자로 되어 있는 한자는 문자임과 동시에 말(단어)입니다. 이렇게 보면 한자는 한 글자로 말을 나타내는데, 영어는 8개의 문자가 합쳐져서 mountain이라는 말이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한자는 세계에서 글자 수가 제일 적다는 것은 결코 과장된 주장이 아니라 과학적인 사실입니다. 한자는 말(word)이고 따라서 이러한 말이 2,000어(語), 3,000단어(單語)가 되어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의 국어에서도 2,000어, 3,000어의 단어는 초등학교에서 가르칩니다.
물론 한자자전(漢字字典)에는 수 만 자에 달하는 한자가 실려 있습니다만, 이는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문화유물로 생각해야 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문자를 신성하게 생각하여 한 번 만든 문자는 버리는 일이 없이 쌓아왔고, 그것이 수만 자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한자는 기껏 수천 자에 불과하고 그것도 부수(部首) 192개 정도를 알면 2,000자 정도를 배우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이 2,000자의 한자를 가지고 동양의 어떤 고전(古典)도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600자~1,000자 정도를 가르치고, 중‧고등학교에서 1,000자 정도를 더 가르쳐 2,000자 정도를 알면 한글‧한자 혼용으로 된 한국어 문장을 자연스럽게 읽고 쓸 수 있으며, 대학에서 국어국문학(國語國文學)이나 한문학(漢文學), 한국사(韓國史), 동양사(東洋史), 철학(哲學) 등의 학문을 전공하는 기초를 충분히 갖출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자는 습득한 자수(字數)가 증가하면 할수록 문장을 이해하는 범위와 깊이가 자동적(自動的)으로, 또 가속적(加速的)으로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한편, 한자교육이 어린이의 뇌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많습니다. 일본은 고유문자인 ‘가나[假名]’와 한자를 철저하게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일찍이 일본의 石井 勳(이시이 이사오) 박사는 1953년부터 한자교육에 대한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진행하여, 한자폐지와 알파벳을 쓰자는 논의에서 한자교육을 지켜냈으며, 오늘날 일본은 한자교육의 혜택으로 국가발전과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은 한자의 조기교육이 천재를 만든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년 전 전통문화연구회와 퇴계학연구원이 공동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포항 영일중학교의 국어시간을 이용해서 교과서의 한자어를 교육한 결과, 어휘력의 신장으로 교과 이해가 증진되어 실험 대상학급의 성적이 비교학급보다 크게 신장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뇌 활동과 한자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뇌과학 연구실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천의과대학의 뇌과학자 이장희 교수는 연구를 진행하는 중에 있으며, 초등교사인 남수극 박사는 한글과 한자에 대한 뇌 활성화 연구를 통해 한글전용보다 한자의 혼용이나 병기(倂記)를 할 경우 뇌의 반응이 활발하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처음에는 공산주의 이념에 따라 기성의 사고와 관념을 개조하기 위하여 한글전용의 문자정책을 단행하였으나,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1968년부터 중학교 과정(남한의 초등학교 5학년과정)에서부터 대학 전까지 2,000자, 대학에서 1,000자, 도합 상용한자 3,000자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최근에 소학교(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까지 상용한자(常用漢字)를 1,945자에서 2,136자로 확대하여 교육하고 있으며, 오늘날 일본은 한자를 혼용하여 쓰면서도 문자해독률이 100%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은 초등중학교까지 조기에 기본한자 3,500자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의 조기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한자의 조기교육이 필요하다는 국민여론은 많은 조사결과에서 분명히 확인되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2010년 국민의 언어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은 바람직한 한자교육 시작 시기로 ‘초등 1~3학년’(45.3%)을 가장 많이 선택했으며, 이어 ‘초등 4~6학년’(23.2%), ‘중학교’(14.1%), ‘5~6세 유치원’(13.5%), ‘고등학교’(1.1%), ‘필요 없다’(2.8%) 순이었습니다. 국민들의 68.5%가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교육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8대 국회의원의 90%가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실시에 찬성한다는 2009년의 설문조사결과도 있습니다. 그 밖에도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수많은 논자들의 논문이 있습니다. 2008년 9월에는 역대 국무총리 20인이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건의서에 서명해 정부에 제출한 바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학부모와 교사들도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2009. 11.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학부모와 교사 5,2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83%(학부모의 89.1%, 교사의 77.3%)가 초등학교 한자교육에 찬성하였다고 밝혔습니다.
6. 동아시아의 문화적 코드로서의 한자
한자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공통적인 의사소통 수단입니다. 한자는 거대 경제시장인 중국을 비롯하여 일본, 대만, 홍콩 등과 세계에 퍼져 있는 한자문화권과의 교류 및 교역에 있어서 갈수록 그 효용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최근 베트남에서도 프랑스 식민지 시절 폐지되었던 한자의 부활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17억 인구가 사용하는 한자는 한자문화권의 경제블록에서 구심점이자 역내 교류협력의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움에 있어서도 한자지식이 있다면 훨씬 용이합니다. 한자는 동아시아 문명의 정수(精髓)로서 지난 수천 년 동안 한‧중‧일 3국의 공용어로 기능하였습니다. 실제로는 몽골과 거란에서 여진과 돌궐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의 상당 부분을 아우르는 국제어가 한자였습니다. 그리하여 인종과 국가,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필담(筆談)을 통해 서로의 의사소통이 가능했습니다. 조선시대 통신사들이 일본을 방문하는 동안 일본어 한마디 못해도 일본 유학자들과 글을 주고받으며 아무런 지장 없이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장구한 동아시아의 역사를 놓고 볼 때, 그리고 미래의 한‧중‧일 3국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은 역사를 팽개치고 미래를 외면하는 매우 편협한 시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자는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 간의 문화적‧정서적 간격(間隔)을 좁힐 최고의 외교적(外交的) 도구(道具)라는 점에 유념하여야 할 것입니다.
7.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 ‧ 교육정책으로 인한 폐해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은 우리말 국어를 황폐화하여 국민의 언어능력과 지성을 저하시키고, 아동과 청소년의 학습능력과 사고능력을 감퇴시키며, 학문의 발전을 저해하고, 문화의 전통을 말살하는 엄청난 폐해를 낳고 있습니다. 이하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가. 우리말 국어의 황폐화와 국민의 언어능력 저하
(1)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한자가 사라져가면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이해하는 국어능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약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의 “2010년 국민의 언어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한국인의 국어능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 응답자 10명 중 4명 정도(42.5%)는 ‘그렇다’(매우: 6.2%, 대체로: 36.3%)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보통이다’는 27.2%, ‘그렇지 않다’는 30.4%(별로: 27.8%, 전혀: 2.6%)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어능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의견(42.5%)이 그렇지 않다는 의견(30.4%)보다 높습니다.
한자어로 된 우리말 국어를 한자로 익히지 않고 한글로만 인식하다 보니 한자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어휘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신문의 선거 관련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부동층’의 뜻을 물으면, ‘움직이지 않는 층’이라는 답변이 많이 나옵니다. 지지하는 후보자를 결정하지 못해 ‘떠다니는 것’(浮動)을 ‘움직이지 않는 것’(不動)으로 이해한 답변입니다. 어느 지방의 한 태권도 도장 문에 붙은 광고전단에는 ‘석기회원 모집’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는 ‘조기청소’나 ‘조기축구’의 조기(早起)의 뜻을 정확히 모르다보니 늦은 밤 운동하는 회원을 ‘석기회원’으로 엉뚱하게 표기한 것입니다. 어느 음식점의 메뉴표기에 ‘삼계탕’(蔘鷄湯)을 ‘參鷄湯’이라고 적어 놓아, 손님들로 하여금 이 집에서는 닭을 세 마리 넣어주는 것으로 오인하게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말 한국어를 한자로 익히지 않은 결과 우리말의 한글맞춤법도 틀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초등학생이 ‘재산’(財産)을 ‘제산’으로 쓰거나, 대학생들이 ‘현재’(現在)를 ‘현제’로, ‘게재’(揭載)를 ‘게제’로 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학의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지식인도 ‘풍비박산(風飛雹散)’을 ‘풍지박산’으로, ‘희한(稀罕)’을 ‘히안’으로, ‘재실(齋室)’을 ‘제실(祭室)’로, ‘(국기)게양’을 ‘(국기)계양’으로 잘못 쓰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문이나 정부의 보도자료에서도 이런 현상이 적잖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컨대, ‘국민들의 자괴감을 상세[상쇄(相殺)의 오류]시켜 주기 바란다’, ‘서울시 재설[제설(除雪)의 오류] 대책 비상’, ‘벌떼 출연[출현(出現)의 오류] 창문을 열지 마세요’, ‘대북 재제[제재(制裁)의 오류] 조치에 따른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피해’, ‘현금 결재[결제(決濟)의 오류] 비율도 비교적 높다’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2) 우리말 한자어에는 약 25%가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라고 합니다. 한글전용론자들은 동음이의어를 앞뒤 문맥으로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이미 한자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동음이의어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설령 한자를 아는 사람이라도 동음이의어를 한글로만 표기하면 언어생활에 꽤 혼란을 초래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다문화 가정’, ‘다문화 센터’라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유명 인사는 ‘다문화 센터’를 ‘우리의 전통 차(茶)를 마시는 곳’, 즉 ‘茶文化’로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노조 전임자의 ‘전임자’라는 말이 ‘전에 노조에 근무한 적이 있는 전임자(前任者)’인지, ‘지금 노조 업무만 전담하는 전임자(專任者)’인지 몹시 혼동됩니다. 또한 ‘대표팀 5연패’라는 말에서는 ‘연달아 이긴 5연패(連覇)’인지, ‘연달아 진 5연패(連敗)’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회사에 대한 감사’는 ‘고맙다는 감사(感謝)’인지, ‘조사한다는 감사(監査)’인지 혼란스럽습니다.
(3) 한자를 몰라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구분하지 못한 결과, 우리의 문화가 담긴 어휘를 영어나 외국어로 번역할 때 웃지도 못할 오역(誤譯)이 벌어지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어느 지방의 ‘김치축제’를 알리는 유인물에서는 ‘忠壯祠(Shrine)’라고 해야 할 사당(祠堂)의 영문표기를 ‘충장사(忠壯寺)’라는 절로 알고 ‘Temple’로 표기했으며, ‘향교(鄕校)’는 교량(橋梁)의 뜻인 ‘Bridge’로 표기했다고 합니다. 또 어느 대학에서는 ‘○○○ 絞首 정년퇴임’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린 적도 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대학의 영자신문(英字新聞)에서는 ‘주간교수(主幹敎授)’를 ‘Weekly Professor(週刊敎授)’로 표기한 적도 있습니다. 또 어느 대학의 신학선언문에서는 ‘세계선교사(世界宣敎史)에 유례(類例)가 없는’이라는 뜻의 영문을 ‘유래(由來)가 없는’으로 이해하여 ‘unprecedented unexampled’라고 표기해야 할 것을 ‘without origin’으로 표기했다고 합니다.
(4) 세계의 모든 언어에는 그 언어만이 갖는 독특한 성운(聲韻)이 있습니다. 영어나 독일어에는 악센트가 있고, 중국어에는 고저장단이 있으며, 일본어에는 탁음(濁音)과 반탁음(半濁音)이 있듯이 한국어에도 장단(長短)의 발음 구분이 있습니다. 지역명인 서산(瑞山)은 첫소리가 긴소리여서‘서:산’으로 읽어야 하고, 일반명사인 서산(西山)의 첫소리는 짧은 소리여서 ‘서산’으로 읽어야 합니다. 전라도 광주(光州)와 경기도 광주(廣州), 강원도 영동(嶺東)과 충청도 영동(永東)도 마찬가지로 한자로 써야 경기도 ‘광:주’와 충청도 ‘영:동’이 긴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발음으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한글만으로는 우리말의 장단을 표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도덕(道德), 도봉구(道峰區), 부자(富者), 부평(富平), 부천(富川), 화재(火災) 등은 첫소리가 모두 긴소리인데, 한글전용교육으로 발음교육을 무시하다보니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우리말의 중요한 요소인 장단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구 십’ 중 ‘이 사 오’는 긴소리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중 ‘둘 셋 넷 열’은 긴소리입니다. 국민의 표준언어생활을 선도해야 할 아나운서들조차 한글전용교육으로 인해 영어의 악센트나 발음은 중시하면서 정작 우리말의 장단은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5) 한글전용‧한자배척으로 인한 언어생활의 혼란과 국어능력의 저하는 여러 자료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03년에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文解能力)에 관한 국제비교를 행한 한 연구에 의하면, 한국 성인의 문해능력은 높은 고학력의 성인 비율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준이며, 특히 문서문해 영역에서는 최저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약 4분의 3(75.8%)은 문해력이 1~2단계로서 일상생활에서 지장을 받을 수 있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문해력이 4~5단계라야 여러 갈래의 정보를 종합해서 복잡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 즉 지도층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단계에 속한 한국 성인은 2.4%로서 23개 조사대상(나라 및 언어권) 중 22등입니다. 칠레가 1.5%로서 꼴찌입니다. 한국 성인의 고급문서 해독력(4~5단계)은 선두그룹인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스웨덴 35.5%, 노르웨이 29.4%, 덴마크 25.4%, 핀란드 25.1%). 위 연구에서는 국가별 학력별 문해력을 조사하였는데, 이 부문에서도 한국은 23개국 중 최저 수준입니다. 중졸자(中卒者)의 문해력은 23개국 중 18등, 고졸자(高卒者)는 23개국 중 22등, 대졸자(大卒者)는 23개국 중 23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서울대 국어교육과 민현식(閔賢植) 교수는 2009년에 발표한 한 논문에서 ‘한글 덕분에 단순 문맹률은 낮으나, 실질 문맹률의 지표인 문식성(文識性, literacy)이 낮고, 고학력자일수록 낮게 나타났다'는 요지의 발표를 하였습니다. 고학력자일수록 실질 문맹률(文盲率)이 높다는 놀라운 현상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1990년부터 중학교에서 한자가 선택 교과로 격하(格下)되어 한국인의 한자 및 한자어 이해력이 급감하고 있다”며 “한글전용으로 인해 한자어의 어원의식(語源意識) 상실로 한글세대에게는 한자어의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다의어(多義語)로 인식되는 다의어화(多義語化) 현상이 생기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그는 ‘진통’(陣痛: 산모가 해산 할 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통증)과 ‘진통’(鎭痛: 통증을 가라앉혀 진정시킴)을 들었습니다. 의대의 산부인과 학생들이 ‘산모가 진통을 시작하자 진통 주사를 놓았다’라고 한글체로만 익히다 보니 어원(語源)의식이 없어 동음이의어로 별개인 이 두 단어를 한 단어의 다의어인 것으로 착각하는 의식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미묘한 차이의 전문 개념의 한자어들에 대해 정확한 개념 변별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어휘력도 줄게 된다고 합니다. 가령 인재(人才)와 인재(人材), 배치(配置)와 배치(排置)의 경우에도 ‘人才’는 재주가 뛰어나게 놀라운 사람이란 뜻이고, ‘人材’는 학식이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配置’는 사람이나 물자 따위를 일정한 자리에 알맞게 나누어 둠이란 뜻이고, ‘排置’는 일정한 차례나 간격에 따라 벌여 놓음이란 뜻인데, 이런 변별력이 사라져 버리니 그만큼 어휘력과 문해력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즉, 문해력의 약화는 어휘력의 약화가 불러온 결과이고 어휘력의 약화는 한자말살로 한자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게 된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나. 초 ‧ 중등교육에서 학습능력의 저하와 인성교육의 부실
국가의 장래는 교육에 의한 인재(人材) 양성에 달려 있고, 그 교육의 핵심은 언어교육입니다. 교양어(敎養語)를 구사하고 분별력을 갖춘 민주시민은 올바른 국어교육을 통하여 양성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지 않고 중등학교에서도 중시되지 않는 선택과목(한문)에 편성되어 한자교육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학생들의 학습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가고 있습니다.
초‧중등교육에서 어휘(語彙)에 대한 이해는 가장 기본입니다. 그런데 우리말 어휘는 약 70% 이상이 한자어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한글로만 표기하여 가르치면 학생들은 그 정확한 의미에 접근하지 못한 채 그 뜻을 외우거나 대충 짐작으로만 이해하게 됩니다. 어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그 어휘가 들어간 문장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읽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입니다. 동기 유발이 되지 않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더 큰 고통이며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고, 학습능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어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그 어휘를 적절하게 구사하여 말과 글에서 활용하는 것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국민의 기본교육을 12년 동안 배우고서도 자기 모국어에 대한 정확한 구사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은 결코 학생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또한 한자는 5,000년 동양문화의 지혜가 녹아 있는 보고(寶庫)입니다. 한자로 된 고전(古典)을 통해 선조들의 교양과 예절, 윤리와 도덕,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없는 오늘의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논리부재, 철학부재, 사상부재, 도덕부재의 나락으로 빠져 들고 있다는 탄식(歎息)의 소리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다. 대학교육에서 학문의 지체(遲滯)와 퇴보
(1) 한자능력은 인문학(人文學)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필수적인 도구(道具)입니다. 서울대학교 수학과(數學科)에서는 전공강좌 두 개와 일반강좌 한 개를 영어로 들어야 졸업을 할 수 있는데, 고급강좌는 영어로 진행하고 영어로 시험을 출제하며, 다른 강좌는 한국어로 강의는 하지만 전공용어(專攻用語)는 영어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고급 전공용어는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한 것이 있지만 상당수(相當數)의 전공용어를 번역해 쓰는데, 우리는 영어로 된 전공용어를 한국어로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이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수많은 수학용어를 한글로 써서는 교수와 학생 사이에 의미 전달이 불가능하고, 교수와 학생이 영어로는 뜻을 알아듣고 의사를 주고받으며 소통이 되지만 그것을 한국어의 어떤 한자어로 축약해서 표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므로 영어를 쓰는 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수학과의 사례는 한자를 버린 미래의 한국어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예고편(豫告篇)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2) 서울대학교 송철의(宋喆儀) 교수는 2004년도 서울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사전(事前)에 시험 유형과 시험일을 예고한 후 한자능력을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응시생 중 60%가 1백점 만점에 50점 미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80점 이상은 15%였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人爲的 ․ 遺産 ․ 主導的 ․ 學科’ 등을 읽지 못했고, ‘科目 ․ 文化 ․ 統一 ․ 靑春’ 등의 한자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1998년도에도 서울대학교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자능력을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韓國 ․ 哲學 ․ 美術 ․ 憲法 ․ 北韓 ․ 商品’과 같은 기초한자조차 읽지 못하는 ‘반국어문맹(半國語文盲)’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지식인의 요람인 대학을 다녀도 한자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읽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학의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글‧한자 병용으로 쓰인 수십, 수백만 권의 지식의 보고(寶庫)들이 그야말로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십 수 년 전에 한자 혼용으로 쓰인 선배들의 지식과 지혜조차도 습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실로 참담한 대학의 현실입니다.
(3) 또한, 인문과학 못지않게 자연과학 분야의 전문용어에 대한 이해가 한자교육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우리말 국어 속의 자연과학 용어는 거의 대부분이 한자어입니다. 1998년 물리학 용어와 한자교육의 상관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논문을 쓴 어느 자연과학도(自然科學徒)의 분석은 한글전용교육이 얼마나 뿌리 깊게 우리나라 과학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논문집필자는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을 표본 집단으로 하여 ‘상온’ ‘오수’ ‘호소’ 등 지구과학 용어에 대한 인지도(認知度)를 조사했는데, 다음의 통계는 1, 2년 후면 대학생이 될 고등학생들의 경우 자기들이 배운 과목의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가 얼마나 낮은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답사례(괄호 안은 誤答率) • 정답(正答率)
◦상온: 높은 온도(30.31)
• 常溫 - 年間 평균 온도, 또는 평상의 온도(34.84)
◦하우기후: 아래지방에서 내리는 비(6.96)
• 夏雨氣候 - 여름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기후(16.03)
◦성도: 별 지도, 별 그림(4.52)
• 星道 - 별이 지나가는 길(16.03)
◦하천: 아래 강(18.11), 하수도(14.98)
• 河川 - 강과 시내(정답자 없음)
◦호소: 물이 고여 있는 곳 [16.72%는 ‘호수’라고 문제를 고침]
• 湖沼 - 호수와 늪(정답자 전혀 없음)
논문집필자는 표본집단을 순우리말(A) 한글표기(B) 한자표기(C)로 나누어 조사했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A-8.2%, B-36.2, C-75.8%의 정답률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로써 한글전용으로 표기된 자연과학 용어보다 한자로 표기된 용어의 이해도가 두 배 이상 높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글로만 전문용어를 배운 학생들이 대학의 자연계열에 진학하여 전공분야의 전문용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입니다. 이러한 학문의 어려움은 자연계열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라. 문화적 정체성의 약화
(1) 최근 우리말 국어생활에서 한자가 급속도로 사라져가면서, 자기 자녀나 부모의 한자이름, 심지어 자기 자신의 한자이름도 쓰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30대 이상 성인 가운데 절반이 자녀의 한자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이명학 교수는 자녀를 둔 30~80대 서울시민 427명을 대상으로 자녀의 한자 이름을 쓰도록 한 결과, 47.8%인 204명이 틀리거나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또 한국어문회가 2010. 5. 전국 23개 대학교 학생 2,1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쓸 줄 안다는 학생은 60.2%, 자신과 부모의 이름을 모두 한자로 쓸 수 있다는 학생은 24.7%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대학생 10명 중 4명이 자신의 이름조차 한자로 쓸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2007년의 한 조사에서는 대학신입생 10명 중 2명이 자신의 한자이름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3년 사이에 두 배로 늘어난 것입니다. 이름의 한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온 우리의 전통문화가 요즘의 젊은 세대에 와서 그 맥이 끊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것입니다.
(2) 우리 민족문화의 일부인 성명(姓名)은 한자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성(姓) 중에는 한글발음으로는 같지만 한자가 다른 성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를 한글로만 표기한다면, ‘兪, 柳, 劉, 庾’, ‘鄭, 丁, 程’, ‘曺, 趙’, ‘申, 愼, 辛’, ‘呂, 余’, ‘盧, 魯’, ‘張, 莊, 將’, ‘姜, 康, 江’, ‘全, 田’, ‘林, 任’씨는 모두 같은 성씨가 됩니다. 또한 예컨대 ‘柳東烈’이라는 이름의 경우, 이를 한글맞춤법에 따라 한글로 쓰면 ‘유동렬’이 되는데, 그의 동생의 이름이 ‘柳信烈’이라고 할 때 이를 한글로 표기하면 ‘유신열’이 됩니다. 두 사람은 친형제 간으로 항렬자(行列字)에 따라 이름이 지어진 것이지만 한글 표기에서는 항렬자가 서로 다른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3) 한글로만 기록된 각종 문화재의 안내문은 마치 암호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글을 읽고 안다고 착각하고서는 그 정확한 뜻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문화재의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서는 일본어 안내문이나 중국어 안내문을 읽어보거나 아니면 영문 안내문을 읽어야 합니다. 한자를 버린 한국어는 우리 문화재 설명에서조차 부끄러운 자화상(自畵像)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음의 안내문은 수원시에서 발행한 성곽의 꽃 화성(華城)과 축제라는 안내 책자에 담긴 한글 설명문입니다.
“각루는 정찰, 군량운반통로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원거리 전망이 좋은 성곽 모퉁이 요소에 자리하고 있다. 화성의 각루는 4개소가 있으며 동북각루는 성의 동북요새지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방화수류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동북각루는 건축미가 화려하면서도 우아하여 화성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는 곳이다. 방화수류정에서 바라보는 용연위에 비친 달빛과 어우러진 버들가지는 용지대월이라 하여 수원팔경 가운데 으뜸이다.”
화성, 각루, 요소, 동북각루, 동북요새지, 방화수류정, 용연, 용지대월, 수원팔경 등 한글로 표기된 어휘는 한자를 모르는 한국인에게는 외국어나 암호와 같이 그 뜻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심지어 한자를 잘 아는 한국인이라도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일본어 안내문의 한자를 보고서야 어휘의 뜻을 그나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재를 우리는 잘 알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인이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Ⅳ. 심판대상의 위헌성
세 유형의 이 사건 심판대상은 2천여 년 동안 이어져 온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국자(國字)인 한자(漢字)를 부정하는 기본전제에 입각해서, 우리말 국어의 개념요소에서 한자를 근원적으로 배제시킨 채, 그 바탕 위에서 공적 언어생활에서는 물론이고 국민의 기본적인 공교육과정에서부터 일상의 언어생활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로 한자를 말살시킴으로써 전 국민을 한자문맹(漢字文盲)으로 몰아넣어 우민화(愚民化)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한민족(韓民族)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적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가고 있습니다.
청구인들은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이 다음과 같은 논거로 헌법에 위반됨을 주장합니다.
첫째,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과 이 사건 한자교육배제고시는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人格發現權) 및 학부모의 자녀교육권(子女敎育權)을 침해하며, 나아가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은 자신의 저술내용을 한자혼용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저작자와 출판사의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은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하는 청구인들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自己決定權),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을 누릴 권리 내지는 한자문화향유권(漢字文化享有權) 및 헌법 제21조의 한자를 사용한 의사표현의 자유를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둘째,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은 문화의 자율성과 국가의 중립성을 요구하는 문화국가(文化國家)의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셋째,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9조를 명백히 위반하고 있습니다.
넷째,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은 ‘한글‧한자 혼용체의 언어형식으로 표현된 기미독립선언서와 헌법전은 우리말 국어로 표기된 것이 아니다.’고 규범적으로 선언하는 것이어서, 이는 하위법인 법률이 상위법인 헌법의 언어형식과 국어개념을 규범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위헌입니다.
다섯째,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불문헌법(不文憲法)에 위반됩니다.
이하에서 이들 위헌 논거를 자세히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1.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위헌적 침해
가. 이 사건 교과용도서 한자혼용금지규정 및 한자교육배제고시의 기본권침해성
위에서 자세히 살핀 바와 같이, 「국어기본법」 제18조와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 제3항은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인 초․중등학교에서 학생이 학습의 기본교재로 사용하는 교과서와 교사가 참조하는 지도서(指導書)에까지 한자(漢字)의 사용을 금지시킴으로써, 공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이 한자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익힐 수 있는 가능성을 인위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 한자교육배제고시는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인 초‧중등학교의 국어(國語) 교과에서 한자교육(漢字敎育)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판대상규정들은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人格發現權) 및 학부모의 자녀교육권(子女敎育權)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입니다.
(1) 국가의 교육권한과 그 헌법적 한계
헌법 제31조는 제1항에서 국민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표현된 ‘교육을 받을 권리’의 실질적 내용은 객관적으로 표현한다면, 국민에게 실효성 있는 교육을 제공해야 할 국가의 의무나 과제를 뜻합니다. ‘교육을 받을 권리’란 국민이 위 헌법규정을 근거로 하여 직접 특정한 교육제도나 학교시설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기보다는 모든 국민이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제도를 제공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것입니다. 즉, ‘교육을 받을 권리’란, 모든 국민에게 저마다의 능력에 따른 교육이 가능하도록 그에 필요한 설비와 제도를 마련해야 할 국가의 과제와 아울러 이를 넘어 사회적‧경제적 약자도 능력에 따른 실질적 평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을 실현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뜻합니다.
나아가, 헌법은 제31조 제6항에서 입법자로 하여금 학교교육에 관한 교육제도를 법률로 정하도록 위임함으로써 학교교육에 관한 포괄적 책임과 규율권한을 국가에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헌법은 제31조에서 교육에 대한 국가의 포괄적인 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의 교육권한은 교육과정, 교육목표, 교육내용, 교육방법 등에 관련된 모든 사안에 대하여 규율하고, 지도하고, 통제하는 기능, 즉 학교제도의 조직, 계획, 지도 및 감독에 관한 모든 권한을 포괄합니다. 국가의 교육권한에 일차적으로 속하는 것은 모든 청소년에게 그의 능력에 따른 교육 가능성을 제공하기 위하여 학교제도를 계획하고 조직할 권한입니다. 학교를 조직상으로 분류하는 것뿐 아니라 또한 교육내용에 관한 결정권, 즉 교육과정․교육목표 및 수업목표를 확정하고 수업교재를 결정(교과서의 선정)하는 것도 국가의 형성영역에 속합니다. 국가는 원칙적으로 학부모로부터 독립하여 학교의 교육목표를 확정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헌법상 부여된 학교교육의 과제를 이행함에 있어서 광범위한 형성의 자유를 가지고 있으나, 국가의 형성권은 무제한적인 것은 아닙니다. 국가교육권한의 한계는 무엇보다도 부모의 자녀교육권과 자녀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에 있습니다.
(2)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학습권)의 침해
(가) 교육이 개인의 인격발현과 행복추구에 있어서 가지는 의미와 국가의 미래와 번영에 대하여 가지는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현대의 사회복지국가에서 교육은 문화적 생존배려의 가장 핵심적 영역에 속합니다. 교육은 헌법상 보장된 개인의 자유를 행사하기 위한 필수적 요건에 속합니다. 개인은 직업의 자유를 행사하기 위하여 그 전제조건으로서 직업교육을 비롯한 교육을 받아야 하며, 나아가 직업행사와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인격을 자유롭게 발현하고 자기결정권(自己決定權)을 의미 있게 행사하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지식과 교양을 갖추어야 합니다. 따라서 개인이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과 ‘직업의 자유’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해야 할 과제가 교육제도에 부과됩니다. 국가에 의한 공교육의 제공은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과 직업교육의 자유를 행사하기 위한 실질적 조건의 실현에 관한 것입니다.
‘개인이 국가의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않고 교육을 통하여 자유롭게 자신의 인격을 발현할 자유’인 학습의 자유(학습권)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기본권과 평등권의 성격을 가진 헌법 제31조의 ‘교육을 받을 권리’에 의하여 보호되는 측면이 아니라 행복추구권과 같은 자유권에 의하여 보호되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도 ‘과외금지결정(課外禁止決定)’에서 사교육(私敎育=課外)을 금지하는 국가의 조치로 인하여 제한되는 기본권을 헌법 제31조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아니라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에서 도출되는 ‘자녀의 인격발현권’이라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자유(自由)’와 ‘자기결정권’은 교육영역에서도 구현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에 속합니다. 자신의 개인적 생활을 자율적으로 형성하고자 하는 자는 독자적 인생관을 형성하고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기본적인 교양과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개인은 교육을 통해서만 자신의 삶을 자기책임 하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고, 이로써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자유란 ‘구속과 의존성의 부재(不在)’를 의미하고, 이는 곧 ‘자기결정영역의 확대’로 이어집니다. 개인은 교육을 통해서만 지식과 정보의 우위에서 비롯되는 타인의 결정권한과 외부에 대한 의존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교육목표의 확정에 있어서 그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적 근본규범은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입니다. 이로부터 학생이 자율적이고 자주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목표를 설정하고 교육제도를 형성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나옵니다.
자녀는 학습과 교육에 있어서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가능하면 국가의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발현할 권리(학습의 자유 또는 학습권)를 가집니다. 교육의 영역에서 자녀의 인격발현권은 교육을 통한 인격발현권 또는 교육에 관한 자기결정권, 즉 자신의 교육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의미하고, 이는 언제, 무엇을 누구로부터 어떻게 배울 것인지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말합니다. 학습과 교육에 있어서 자유로운 인격발현권은 헌법 제15조의 ‘직업의 자유’ 또는 보충적으로 일반적 자유권인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호됩니다. 직업선택의 자유는 ‘직업교육장선택의 자유’를 직업을 선택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포함하는데, 직업교육장선택의 자유는 단지 직업과 연관된 교육을 보호하므로, 교육장소가 직업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초․중등교육의 경우에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일반적․보충적 자유권인 자유로운 인격발현권(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호된다고 할 것입니다.
(나) 이 사건으로 돌아와 보건대, 특히 이 사건 한자교육배제고시는 우리의 국어생활에서 필수적인 지식인 한자를 국어 교과에서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한글과 한자는 똑 같이 우리말 국어를 구성하는 기본요소이고, 양자가 분리되어서는 우리말 국어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한자교육은 국어 교과의 기본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우리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학생들에게 길러주는 것이 초‧중등학교 국어 교과의 목표일진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통한 한자어의 습득이 필수적입니다. 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치지 않은 채 우리말 한자어를 익히게 하는 것은 맹목적으로 한자어를 외우게 만드는 것이고, 언어에 관한 인지능력(認知能力)과 학습능력(學習能力)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초등학교의 현장에서는 한자교육과 학생의 학습능력 사이에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많은 조사연구들이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기본적인 공교육을 받은 학생은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형성하고 자기책임 하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공교육과정을 통하여 그에 필요한 기본적인 교양과 지식을 제공받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공교육과정을 거친 학생은 어문생활영역에서 자신의 인격을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편향적인 문화정책을 통하여 공교육과정에서 전반적으로 한자를 배척하고 한글전용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공교육과정을 거친 학생도 한국어의 주된 구성부분인 한자어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기본 한자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공교육을 받은 후에도 자신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이 양산(量産)되고 있으며, 이들은 한자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로 아무런 준비 없이 사회와 대학에 진출함으로써 국가의 한글전용정책에도 불구하고 결코 우리 언어생활에서 제거할 수 없는 한자 및 한자어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습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한자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하여 대학의 강의에서 대부분 전문적 한자어로 전달되는 학문적 인식을 수용하기 어려우며, 나아가 한글과 한자가 혼용된 전문서적에 접근할 수 없는 등 학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 진출해서도 일반기업의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담당하는 업무에서 한자에 대한 기본 소양은 일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필수적인 능력에 속합니다. 한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는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할 수 없고 서면을 정확하게 작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자기 나라의 헌법전(憲法典)을 읽을 수도 없는 국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요컨대, 국민이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적인 공교육을 받았음에도 한국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고 대학과 사회에 진출하여 한국어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이는 공교육의 주체로서의 국가가 헌법상 부과된 교육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이와 같은 결과가 발생한 것은 무엇보다도 공교육과정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하는 잘못된 국어교육정책에 기인합니다. 국가는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하고 교과용도서에서 한자를 축출함으로써 학생들이 공교육과정에서 한국어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한자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봉쇄하였고, 그 결과 이러한 편향적인 국어교육정책에 의하여 교육을 통한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가능성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습니다.
(다) 이 사건 심판대상으로 인하여 학생의 ‘교육을 통한 자유로운 인격발현권(학습권)’이 침해되고 있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심각한 폐해가 초래되고 있음에도, 이를 정당화하는 합리적인 입법목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국가는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는 있으나, 이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헌법적으로 허용되는 정당한 목적을 추구해야 하고, 나아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 이상으로 개인의 자유영역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입법목적을 규명(糾明)함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국가가 왜 지난 2천여 년 동안 우리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한자를 배척하고 한글을 전용하고자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자를 배척하고 한글전용을 실현하고자 하는 국가의 교육정책을 정당화하는 어떠한 입법목적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가령,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을 국가의 결단에 기초한 ‘한글전용문화의 실현’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입법목적은 헌법상의 문화국가원리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에 헌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입법목적입니다. 뒤에서 자세히 살피는 바와 같이, 문화국가(文化國家)는 문화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고 다양한 문화의 방향에 대하여 중립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국가는 특정 문화를 배척하거나 특정 문화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국가는 문화의 생성을 주도할 수도 없고 문화의 방향을 결정할 수도 없으며, 다만 문화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문화에 대한 중립성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문화정책을 통하여 문화를 지원하고 조성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을 ‘한글전용정책을 통하여 국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상태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이를 ‘어문생활에서 국민의 편이(便易)’라고 한다면, 단순히 국민의 편이를 위하여 자신의 모국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을 양산하여 국민의 정신적․문화적 수준을 전반적으로 저하시키고 국민을 우민화(愚民化)하는 것은 명백히 법익균형성(法益均衡性)의 원칙에 반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입법목적의 비중은 하찮은 반면 한글전용정책으로 인하여 개인과 국가에게 초래되는 손해는 너무 막대하기 때문에, 입법목적의 비중과 기본권제한의 효과가 적정한 비례관계(比例關係)를 현저하게 일탈(逸脫)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을 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에서 한자혼용을 금지한 법령규정 및 초‧중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시킨 교육부(현재 교육과학기술부) 고시(告示)는 교육의 영역에서의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을 위헌적으로 침해하는 규정입니다.
(3) 부모의 자녀교육권의 침해
(가) 뿐만 아니라, 위 심판대상조항들은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천부인권(天賦人權)으로 인정해 왔습니다. 부모의 자녀교육권은 비록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는 모든 인간이 국적(國籍)과 관계없이 누리는 양도할 수 없는 불가침(不可侵)의 인권(人權)으로서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헌법 제36조 제1항,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10조 및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는 헌법 제37조 제1항에서 나오는 중요한 기본권입니다. 부모의 교육권이란, 자녀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인생관․사회관․세계관에 따라 자녀의 교육을 자유롭게 형성할 부모의 권리를 말합니다.
헌법은 제31조에서 국가에게 학교교육에 관한 독자적 과제를 위임함으로써, 학교는 부모교육의 단순한 보조기관이 아니며 국가는 부모의 교육권으로부터 독립된 독자적인 교육권한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국가는 학교의 제도, 조직, 학교유형, 교육목표, 수업의 내용 및 방법에 관하여 결정할 수 있는 광범위한 형성권을 가집니다. 따라서 학교교육은 원칙적으로 국가교육권한에 귀속되는 영역인 반면, 가정교육과 사교육(私敎育)의 영역은 원칙적으로 부모의 자녀교육권에 속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부모의 교육권이 헌법 제31조에 의하여 학교교육의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며, 부모의 권리는 학교영역에서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부모와 학교의 교육은 동일한 자녀의 인격발현을 위한 것이고, 교육의 주체로서 부모와 학교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학교의 ‘공동의 교육과제’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학교교육은 원칙적으로 국가교육권한의 영역으로, 국가는 학교교육에 관한 포괄적인 규율권한을 가집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의 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계획을 세울 자연적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학교교육이 자녀의 전체 교육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부모가 학교교육에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학교교육에서도 부모의 자녀교육권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나) 첫째, 국가는 학교교육을 실시함에 있어서 다양한 세계관과 문화관에 기초한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존중해야 할 의무를 진다는 점에서, 부모의 자녀교육권은 학교교육의 영역에서 존중될 것을 요청합니다. 학교교육은 원칙적으로 국가교육권한의 영역으로, 국가는 학교교육에 관한 포괄적인 규율권한을 가집니다. 특히 국가와 부모가 자녀의 학교교육과 관련하여 서로 다른 것을 원하는 경우, 국가의 교육권한과 부모의 자녀교육권은 충돌할 수 있습니다.
자녀의 세계관과 문화관의 형성에 관한 교육은 자신의 세계관과 문화관에 따라 자녀의 교육을 형성하고자 하는 부모 교육의 전반적 기초에 해당하고 국가는 세계관적․문화적 중립의무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영역은 일차적으로 부모교육권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관과 문화관의 영역에서도 국가의 교육권한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닙니다. 가령, 인간의 성(性)과 윤리는 일차적으로 부모의 교육 영역이지만, 또한 사회적 행위의 일부로 다양한 사회적 연관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자녀 전체교육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간주될 수 있고, 이에 따라 학교에서 수업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과목의 성격이 개인의 세계관․문화관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국가는 교육의 목표와 내용을 정함에 있어서 부모의 다양한 가치관을 고려하고 존중함으로써 가능하면 세계관적․문화적으로 중립적인 학교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자녀의 교육에서 한자문화를 배제한 채 한글전용의 교육을 시킬 것인지 아니면 한자가 한국인의 개인적‧집단적 정체성(正體性)의 기반을 이루는 핵심적인 문화요소라는 것을 인식하여 기초교육과정인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를 필수적인 교육내용으로 가르칠 것인지의 문제는 단순히 교육내용이나 교육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학부모 자신과 자녀의 정체성에 관한 결정이며 자녀의 전체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결단에 해당합니다. 즉, 학교교육에서 한자교육의 여부는 한국어에 대한 가치관과 문화관의 문제이며, 국가 내에서 언어문화의 성격을 결정하는 가치관적 결단입니다. 국가가 잘못된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한글전용 교육정책을 추진한다면, 국가는 적어도 부모의 자녀교육권 및 자녀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을 존중하여 학교에서 한글전용 교육이 강제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규율해야 할 의무를 집니다. 학부모는 자녀교육권을 근거로 그의 자녀가 한글전용 수업을 받을 것인지에 관하여 결정할 수 있어야 하므로, 국가는 한글전용 교육을 거부하는 학부모와 학생에 대하여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는 대체수업을 제공하도록 규율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공교육의 범주 내에서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이 특별히 존중되어야 하는 문화적 영역에서 학부모에게 한글전용의 문화정책을 강요하면서 학부모의 상이한 문화관(文化觀)을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을 전혀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문화적으로 중립적인 학교교육의 요청을 무시하고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다) 둘째, 국가는 한글전용 교육정책과 문화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학부모에게 학교선택권을 부여해야 할 의무를 진다는 점에서, 부모의 자녀교육권은 학교교육의 영역에서 존중될 것을 요청합니다.
부모의 자녀교육권이 자신의 가치관․세계관에 따라 자녀의 교육을 자유롭게 형성할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자유는 자신의 가치관과 교육관에 부합하는 교육가능성이 국가에 의하여 제공되지 않는 경우, 사립학교의 설립과 선택을 통하여 자녀교육에서 자신의 가치관과 교육관을 실현할 자유를 포함합니다. 따라서 사립학교의 자유는 부모의 자녀교육권에 그 헌법적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부모에게는 사립학교의 설립이나 선택을 통하여 자신의 특별한 교육관이나 가치관을 실현하는 가능성이 주어집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학부모가 국가의 한글전용 교육정책의 폐해를 크게 우려하여 이러한 교육방법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한자교육을 실시하는 사립학교를 설립하거나 또는 이러한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해야 합니다. 사립학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이유가 궁극적으로 학부모와 자녀의 기본권보장에 있다면, 사립학교 ‘선택의 자유’가 전제되지 않는 사립학교 ‘설립의 자유’는 무의미합니다. 따라서 사립학교설립의 자유로부터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는 부모의 권리’가 나옵니다.
그러나 현행 학군별 강제배정방식은 부모의 사립학교선택의 자유와 사립학교의 학생선택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사립학교의 자유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습니다. 사립학교설립의 자유는 허용하면서, 국공립 또는 사립의 여부를 막론하고 강제로 학교를 배정함으로써 학부모로 하여금 자신의 교육관․가치관에 부합하는 사립학교를 선택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공립학교에 대한 대안으로서 사립학교제도는 현실적으로 무의미합니다.
국가가 부족한 공교육시설을 단지 보완하는 기능만을 사립학교제도에 부여함으로써 학부모에게 사립학교를 통하여 자신의 교육관(敎育觀)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실상 제거하였다면, 국가는 이에 상응하여 공교육제도 내에서 교육과정을 제공함에 있어서 학교선택권의 실질적인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현행 학군별 강제배정방식으로 인하여 한글전용 교육정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학부모에게 자신이 선택한 사립학교에 자녀를 취학시킬 권리가 대안으로서 보장될 수 없다면, 국가는 적어도 공교육의 범주 내에서 한자교육을 국어 과목으로 제공하거나 또는 한글과 한자 혼용의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해야 합니다. 이러한 경우에만, 자녀의 능력과 적성에 부합하는 교육가능성을 선택할 학부모의 권리와 학교교육을 통하여 자신의 능력과 적성을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는 자녀의 인격발현권은 비로소 보장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가 한글전용의 교육정책과 같이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문화정책을 추진하는 한, 국가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 학부모에게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어문교육과 관련하여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상이한 교육과정 중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야 합니다. 국가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확정된 수업목표를 가진 유일한 교육가능성만이 학부모에게 제공된다면, 이로써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이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된 경우에는 헌법적으로 허용된 국가형성권의 한계를 명백하게 일탈한 것입니다.
(4) 교과용도서 저작자와 출판사의 언론‧출판의 자유 침해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은 자신의 저술내용을 한자혼용의 표현수단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저작자와 출판사에 대해 그 표현수단을 금지시킴으로써 언론‧출판의 자유가 보장하는 표현수단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위헌적으로 침해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일찍부터 여러 결정을 통해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언론‧출판의 자유에는 ‘표현수단의 자유로운 선택권’이 포함되어 있음을 인정해 오고 있습니다. 1993년의 음반등록시설 자기소유요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언론․출판의 자유의 내용 중 의사표현․전파의 자유에 있어서 의사표현 또는 전파의 매개체는 어떠한 형태이건 가능하며 그 제한이 없다. 즉 담화․연설․토론․연극․방송․음악․영화․가요 등과 문서․소설․시가․도화․사진․조각․서화 등 모든 형상의 의사표현 또는 의사전파의 매개체를 포함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 법리는 이후 많은 결정들에서 일관되게 적용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저작자와 출판사가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를 저술하고 출판함에 있어서 한자라는 문자언어를 표현수단(=매개체)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헌법 제21조에 의해 보장된다고 할 것입니다.
이 사건의 규율내용과 맥락에 있어서 약간 다르긴 합니다만, 1988년에 캐나다의 연방대법원은, 공공의 표지판과 옥외광고물을 프랑스어로만 표기하도록 강제한 퀘벡(Quebec) 주의 법률을 위헌선언하면서, “언어(language)란 표현의 형식 및 내용(the form and content of expression)과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만일 자신이 선택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된다면 진정한 표현의 자유(true freedom of expression)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언어는 단순히 표현을 전달하는 수단(a means or medium of expression)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언어(language)란 그 표현의 내용과 의미에 색깔을 입히는 기능을 한다(it colours the content and meaning of expression). 언어는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cultural identity)을 표현해내는 수단이며, 또한 개인적인 정체성(personal identity)과 고유한 개성(sense of individuality)을 드러내는 수단이다.”고 하면서 표현의 자유 침해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돌아와 살피건대,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이 어떤 정당한 입법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만일 입법취지가 ‘한글전용문화의 실현’에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입법목적은 문화국가의 원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서 헌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입법목적입니다. 한편, 만일 입법목적이 ‘학생의 학습능력의 향상’에 있다고 한다면, 한자혼용을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입법목적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위의 [Ⅲ. 4.와 6.]에서 자세히 살핀 바와 같이, 한자의 이해와 학습능력의 향상 사이에는 정(正)의 비례관계가 존재합니다. 초‧중등교육에서 한자를 배제시키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는 공교육제도의 형성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있고 교과서의 내용과 형식에 관하여 규율할 수 있는 권한을 원칙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초‧중등 학생의 학습능력에 따라 그에 맞는 한자 혼용을 일정한 선에서 규율할 수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어를 구성하는 기초한자까지도 이를 혼용하여 쓰거나 ‘한자(한글)’의 표기방식을 사용하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도한 제한이 아닐 수 없습니다. 1,800자의 교육용한자를 국가가 설정해 놓고서도 이를 교과서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초‧중‧고등학교의 학생 수준에 맞는 한자의 수준을 단계적으로 정하고 그 이상의 한자 혼용을 금지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것입니다. 교과서에서 한자 사용이 ‘전면적으로’ 금지됨으로써 한자를 통해 익혀야 하는 기본어휘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짐에 따라 학생들의 국어 어휘에 대한 이해력과 전반적인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폐해는 매우 심각한 실정입니다. 동시에 저작자와 출판사가 한자라는 우리의 문자언어를 사용하여 저술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 표현의 자유가 전면 금지되는 것이어서 침해되는 기본권적 이익은 매우 중대합니다.
요컨대,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은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의 관점에 비추어 저작자와 출판사가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를 저술하고 출판함에 있어서 한자라는 문자언어를 표현수단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할 것입니다.
나.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의 기본권침해성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국어기본법은 그 전체가 우리말 국어의 개념요소에서 국자(國字)인 한자를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그러한 기본전제 아래 한글전용‧한자배척의 국어정책의 수립과 시행을 국가기관에게 요구하고 있으며, 청구인들을 비롯한 국민들에게는 한자배척의 국어생활을 직․간접으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국어의 표기문자에서 한자를 배제하고 있는 정의조항(제3조), 한자가 배제된 국어문화의 확산과 촉진을 강요하는 조항(제15조 및 제16조), 그리고 한글전용을 강제하는 공문서조항(제14조)과 법시행령 제11조는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하는 청구인들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을 누릴 권리 내지는 한자문화향유권 및 헌법 제21조의 한자혼용의 표현방식에 의한 의사표현의 자유를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1) 우선, 법 제3조(정의), 제15조(국어문화의 확산), 제16조(국어정보화의 촉진)는 우리말 국어의 개념요소에서 국자(國字)인 한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그러한 기본전제 아래 한글전용‧한자배척의 국어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할 의무를 국가기관에게 부과하고, 청구인들을 비롯한 국민들에게는 한자배척의 언어생활을 직․간접으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법 제15조에서 말하는 ‘국어문화의 확산’이란 곧 한자배척․한글전용 문화의 확산을 의미합니다. 위 심판대상규정들은 이러한 국어문화를 확산해야 할 의무를 국가기관이나 사인(대중매체 및 정보통신서비스사업자)에게 부과함으로써 국가가 개인의 어문생활에 개입하여 ‘어문생활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청구인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위 심판대상규정들은 직접 국가기관으로 하여금 대국민(對國民) 교육과 홍보를 통하여 또는 간접적으로 대중매체 등 사인을 동원하여 한글전용문화를 확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일반국민이 일상생활에서 한자를 접할 수 있는 기회 또는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여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는 현저하게 축소되었고, 그 결과 국가의 의도적인 개입에 의하여 ‘자신의 어문생활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현저하게 침해받고 있습니다.
위 심판대상규정들의 직접적인 수범자는 일반 국민이 아니라 국가기관이나 대중매체 등 사인이지만, 심판대상규정으로 인하여 일반국민에게 발생하는 불이익은 단순한 부수적․간접적 효과가 아니라 중대한 기본권제한에 해당합니다. 심판대상규정들로 인하여 개인에게 자유행사에 있어서 불리한 효과가 발생하며, 국가행위가 초래하는 이러한 불리한 효과는 국가에 의하여 의도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 국가에 귀속되어야 하므로, 위 심판대상규정은 자유권의 관점에서 정당화되어야 하는 ‘사실적 기본권제한’에 해당합니다.
위 심판대상규정들은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에서 파생하는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은 다른 개별자유권에 의하여 보호되지 않는 자유영역을 그 보호범위로 하는 일반적․보충적 자유권입니다. 헌법상 보장된 개별자유권은 모두 일정 생활영역에서의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가능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유권이 궁극적으로 보장하고자 하는 바는 자기결정에 따라 각자의 생활을 자기 책임 하에서 독자적으로 형성할 자유, 즉 자기결정권 및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가능성입니다. 모든 개별자유권들은 각 생활영역에서 자기결정과 자유로운 인격발현을 위하여 불가결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결정권 또는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가능성은 자유권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반적 자유권인 행복추구권도 다른 개별자유권에 의하여 보호되지 않는 자유영역에서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가능성을 일반적으로 그리고 보충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어문생활에 관하여 결정할 권리, 일상생활에서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여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권리, 한자 및 한자문화에 자유롭게 접할 권리 등은 모두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장됩니다. 위 심판대상규정들은 이와 같이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하는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한자혼용(漢字混用)의 어문생활을 누릴 권리 내지 자유로운 한자문화향유권(漢字文化享有權)을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위 심판대상조항은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생활 속에서 한자와 한자문화를 배척함으로써 청구인들을 비롯한 일반 국민에 대하여 한자와 한자문화에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봉쇄하고 한글전용의 어문생활을 실질적으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자문화 말살(抹殺)의 시도는, 법 제14조(공문서의 작성), 제18조(교과용 도서의 어문규범 준수) 및 초‧중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시킨 교육부 고시와 더불어, 공적 언어생활과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에까지 확산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언어생활 속에서 한자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며, 그 결과 청구인들은 한민족(韓民族)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적 정체성이 배여 있는 한자문화에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한글전용의 편향적인 문화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됨에 따라, 지금의 젊은 세대는 공교육과정에서 한자교육의 기회를 국가로부터 제공받지도 못하였고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한자문화에 접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국가에 의하여 봉쇄당함으로써 스스로 한자를 접하고 익힐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젊은 세대는 국가의 잘못된 국어정책의 가장 큰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한자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우리말 국어(國語)의 의미(意味)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학을 다녀도 한자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읽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학의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글‧한자 혼용으로 쓰인 수십‧수백만 권의 지식의 보고(寶庫)들이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청구인들 중에는 대학생들이 상당수 있는데, 이들이 호소하는 것은 한자 혼용으로 쓰인 문헌이나 자료를 만나면 읽을 수조차 없어 학습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청구인들 중에는 대학교수들이 있습니다. 이들 또한 한자어로 된 학술적 언어들을 통해 학문적 지식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심판대상으로 인하여 개인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이 침해되고 있고 일반 국민에게 심각한 폐해가 초래되고 있음에도, 이미 위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이를 정당화하는 합리적인 입법목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은 한자문화를 말살시켜야 할 합리적 이유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한글전용의 일방적인 어문생활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어문생활에 관한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청구인들을 비롯한 일반 국민이 한자문화에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하고자 함으로써 자유로운 한자문화향유권을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2) 다음으로, 법 제14조(공문서의 작성)와 법시행령 제11조(공문서의 작성과 한글 사용)는 한자를 외국 글자와 동일하게 취급하면서, 공무원과 일반국민이 공문서(公文書)를 작성할 때에는 원칙적으로 한글로만 작성하도록 의무지우고 한자를 자유롭게 혼용하여 사용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적 언어생활에서 의사전달을 원칙적으로 한글로만 가능하게 함으로써 의사표현에 있어서 표현수단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제한이 과잉금지(過剩禁止)의 원칙에 위반되어서는 안 됩니다. 법 제14조는 표현내용을 제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표현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한자 혼용을 금지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의 전달효과를 억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또 표현수단의 선택권을 거의 전면적으로 박탈하고 있으므로 이 경우에도 과잉금지의 원칙이 준수되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상정할 수 있는 법 제14조의 정당한 목적은 국가기관(공무원)과 국민이 의사를 주고받음에 있어 그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한자를 잘 알지 못하는 국민을 배려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은 일응 정당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 목적을 위해서 한자의 혼용을 금지하는 것은 목적달성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어 수단의 적합성은 충족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한자독해력(漢字讀解力)을 가진 국민의 표현수단 선택권을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것은 의사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민들 사이에는 한자독해력에 있어서 다양한 수준의 차이가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 차이를 부정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한자독해력이 낮은 사람들을 위해서 독해력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표현수단마저도 전면 금지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물론 법시행령이 예외적으로 괄호 안에 한자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는 있습니다만, 그것은 예외적이고 또 괄호 안에 한자를 넣는 것이어서, ‘한자 혼용’ 혹은 ‘한자(한글)’의 표현수단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한자 혼용으로 의사를 전달하기 어렵거나 싫은 사람은 한글로 공문서를 작성하여 국가기관에게 제출하게 하고, 한자 혼용 혹은 한자(한글)의 표현수단으로 의사를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선택권을 열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공무원이 작성하는 공문서의 경우에도 한자를 잘 모르는 국민을 위하여 한자를 쓰고 괄호 안에 한글로 그 음을 표기한다면, 전달하고자 하는 의사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정확하게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한편으로, 국가는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상용한자(常用漢字)의 교육과 보편적 사용을 촉진시킴으로써 공문서에서 사용하는 기본 한자를 국민 누구나 쉽게 독해할 수 있도록 전체적인 문화의 질을 높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기본권을 적게 제한하는 다른 수단들이 있음에도 한자독해력을 가진 사람들의 표현수단 선택권을 박탈해버리는 것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법 제14조는 법익균형성 원칙에도 위반됩니다. 공적 언어생활에서 한자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의 기본권침해의 효과는 그로 인해 얻는 공익보다 현저히 크다고 할 것입니다. 공적 언어는 주로 국가기관의 법적 권한의 행사를 둘러싸고 국민과 소통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달리, 추상적인 개념어(槪念語)가 많이 사용됩니다. 이들 추상적인 개념어는 거의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자어를 한글로만 쓰면 의미의 전달력에 있어서 그 효과가 반감됩니다. 물론 한글만으로도 그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함축된 뜻을 담고 있는 한자어(漢字語)를 한글로 표기해서는 그 정확한 의미와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될 수 없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어는 더욱 그러합니다. 반면에, 한글‧한자 혼용을 하게 되면 시각적 효과도 뚜렷하여 커뮤니케이션의 효과가 더 커집니다. 법 제14조는 이러한 효과를 활용하기 위해 한자를 혼용하고자 하는 사람의 표현수단 선택권을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것인 반면, 그 박탈을 통해 얻는 공익이란 달리 없습니다.
결국 법 제14조는 공적 언어생활의 의사표현에 있어서 표현수단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할 것입니다.
2. 문화의 자율성과 국가의 중립성을 요구하는 문화국가원리의 위반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여러 결정에서 우리나라는 건국헌법 이래 문화국가(文化國家)의 원리를 헌법의 기본원리로 채택하여 왔다고 판시하여 왔습니다. 즉, 우리 헌법은 전문(前文)에서 “文化의 모든 領域에 있어서 各人의 機會를 균등히” 할 것을 선언하고 있고, 제9조에서는 국가에게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위하여 노력할 의무를 지우고 있으며, 또한 문화국가를 실현하기 위하여 보장되어야 할 정신적 기본권으로 양심과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등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화란 개별성‧고유성‧다양성을 그 속성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의 자율성을 전제로 하는데, 이들 기본권은 그러한 견해와 사상의 다양성을 본질로 하는 문화국가원리의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헌법학자들은, 설명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이러한 문화국가의 원리의 내용으로 ➀ 문화적 자율성의 보장 ➁ 문화의 보호․육성․진흥․전수(傳授) ➂ 문화적 평등권의 보장을 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화적 자율성의 보장이란 국가의 문화정책이 국민의 다양한 문화에 대하여 중립성과 관용(寬容)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가는 문화를 보존․유지하고 조장하거나 유도할 수는 있으나, 문화형성의 과정에 직접 개입하여 문화형성을 주도하거나 문화형성의 주체로서 기능해서는 안 됩니다. 문화생성의 주체는 개인과 사회입니다. 국가는 문화를 생성할 수도 없고, 소위 ‘좋은 문화’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문화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권한이나 정당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국가는 조직과 규율을 통한 정치적 통일체로서, 단지 인간의 외부적 행위만을 조직하고 규율할 수 있을 뿐, 국민의 정신적 생활은 국가에 의하여 계획되고 규율될 수 없습니다. 문화란 그 본질상 국가의 계획과 의도에 의하여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자율성의 바탕 위에서 다양한 문화 간의 경합을 통하여 형성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신적 생활의 산물입니다. 다만, 국가는 헌법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사회의 정신적 흐름’에 대하여 대응해야 하고, 사회의 비합리적 요청이나 위헌적인 관습과 만난다면 이를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고자 시도할 수 있습니다. 가령, 문화가 헌법의 가치질서에 명백히 반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경우에는 국가는 이러한 잘못된 방향에 제동을 걸고 다시 헌법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자 시도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이러한 시도는 헌법재판소의 동성동본금혼결정(同姓同本禁婚決定)이나 호주제결정(戶主制決定)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화국가의 주된 과제는 문화가 생성될 수 있는 조건의 형성(문화풍토의 조성)에 있습니다. 문화국가란, 문화가 생성될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고 형성해야 하는 의무와 과제를 진 국가입니다. 문화국가는 한편으로는 문화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는 국가를 말합니다. 헌법은 문화와 관련된 자유권의 보장을 통하여 가능하면 국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영역으로서 문화영역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문화적 영역에서도 정신적․문화적 생활의 자율적 형성을 위한 자유공간을 소극적으로 보장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나아가, 국가는 정신적 생활을 지원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통하여 문화를 육성해야 할 과제와 책임을 집니다. 문화에 대한 지원자로서 국가의 과제는 국가의 문화정책을 통하여 실현되고 구체화됩니다. 그러나 국가는 문화정책을 시행함에 있어서 문화정책적 중립성과 관용의 원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국가의 문화적 지원과 육성(문화정책)은 자유권에 의하여 보장되는 문화적 생활영역의 자율성을 고려하고 존중해야 하며, 문화관련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국가의 문화정책의 헌법적 한계는 문화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일련의 기본권규정에 의하여 설정됩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가의 한글전용정책은 교육의 영역에서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 및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정책으로 이미 이러한 이유로 문화의 자율성에 대한 존중과 국가의 문화적 중립성을 요청하는 문화국가원리에 반합니다.
마찬가지로, 헌법재판소도 문화국가의 원리를 실현하는 방법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습니다: “문화국가원리는 국가의 문화국가실현에 관한 과제 또는 책임을 통하여 실현되는바, 국가의 문화정책과 밀접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과거 국가절대주의사상의 국가관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국가의 적극적인 문화간섭정책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국가가 어떤 문화현상에 대하여도 이를 선호하거나, 우대하는 경향을 보이지 않는 불편부당의 원칙이 가장 바람직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날 문화국가에서의 문화정책은 그 초점이 문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생겨날 수 있는 문화풍토를 조성하는 데 두어야 한다.”
요컨대, 국가는 어문정책을 비롯한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함에 있어서 문화국가의 원리에 따른 헌법적 한계를 지켜야 합니다. 그 한계는 다름 아닌 문화적 자율성(自律性)의 보장과 국가의 중립성(中立性) 원칙입니다. 이 중립성 원칙을 헌법재판소는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원칙’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은 우리 문화의 기본코드인 한자(漢字)를 공적 언어생활에서는 물론이고 국민의 기본적인 공교육과정에서부터 일상의 언어생활에 이르기까지 전방위(全方位)로 배척(排斥)하는 수준을 넘어서 말살(抹殺)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2천여 년 전통을 이어 온 한자문화를 보호․육성․진흥․전수(傳授)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를 말살하려 하는 것은 문화국가의 원리에 따른 헌법적 한계를 심각하게 일탈하는 것입니다.
언어는 국민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외국어가 유입되어 우리의 언어 속에서 외래어로 새롭게 태어나기도 하고, 새로이 나타나는 생활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기존에 없던 단어가 생겨나기도 하며, 10년 전에 유행하던 말이 어느덧 사라지기도 합니다. 국가는 이 언어의 변화무쌍한 생명력을 원칙적으로 존중하여야 합니다. 물론 국가는 비속(卑俗)한 말을 곱고 품격 있는 말로 순화(醇化)하는 정책을 펼칠 수는 있겠습니다만, 편향적인 관점(觀點)에 입각해서 특정한 성격의 언어나 문화를 선호하거나 우대해서는 안 될 것이고, 더구나 특정 관점에 입각해서 다른 관점의 언어나 문화를 인위적(人爲的)으로 없애려고 해서는 더욱 안 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근현대사는 한글 전용론과 한글‧한자 혼용론이 팽팽히 맞서 왔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일제(日帝)에 의한 우리말 탄압이라는 불행한 역사가 놓여 있습니다만, 어느 쪽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국가는 이 문화경쟁의 싸움에 직접 개입해서 어느 한쪽을 편애(偏愛)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문화국가의 원리에 담긴 문화적 자율성의 보장과 국가의 중립성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은 단지 한쪽(한글전용론)을 편애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다른 한쪽(한글 ‧ 한자 혼용론)을 말살시키려 하고 있어, 어문정책의 헌법적 한계를 현저히 일탈하였습니다. 2천여 년 전통을 이어 온 한자문화가 제거되어야 할 사회적 폐습이 아닌 이상, 이 한자문화를 인위적으로 말살하려는 입법의도(立法意圖)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오히려 국가는 문화국가의 원리에 따라 한글과 한자가 상생(相生) ‧ 보완(補完)하면서 문화의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입법권과 집행권을 행사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3.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의무를 국가에 지우고 있는 헌법 제9조의 위반
우리 헌법 제9조는 “國家는 傳統文化의 계승‧발전과 民族文化의 暢達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여 문화국가적 과제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국가적 과제에는 개인적‧집단적 정체성(正體性)의 기반을 이루는 문화의 보존, 창조적인 문화적 과정의 촉진과 육성, 그리고 문화의 보급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문화국가적 과제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헌법 제9조의 법적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헌법학자들이 ‘국가목표규정(國家目標規定)’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국가목표규정이라 함은 국가가 지향하여야 하는 지침이나 방향을 제시해주거나 국가기관에게 명령과 지시를 통하여 실질적 과제나 임무를 부여하는 헌법규정을 의미합니다. 국가목표규정은 기본권규정과는 달리 국민 개개인에게 특정한 기본권을 부여해주지는 않지만,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포함하는 모든 국가기관에게 일정한 과제수행의 의무와 해석의 기준을 제공하는 구속력 있는 헌법규정입니다. 그리하여 국가기관이 국가목표규정에서 지시된 과제를 이행하지 않거나 제시된 지침이나 방향에 위배되는 경우 헌법재판기관에 의한 헌법적(憲法的) 평가(評價)의 대상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그 과제의 실현이 전적으로 입법부에게 맡겨져 있는, 그리하여 헌법적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그런 성격의 규범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헌법 제9조에서 말하는 전통문화(傳統文化)라고 할 때 거기에는 모든 전통적인 가치나 제도가 다 포함되는 것은 아닙니다. 헌법 제9조에서 보호되는 전통문화란 헌법의 정신과 객관적인 가치결정에 부합하는 것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한편, 헌법의 가치결정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전통문화와 민족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켜야 할 국가적 과제는 ‘국가의 단순한 은혜적 시혜(施惠)가 아니라 헌법상의 의무(義務)’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03년의 ‘전통사찰 소유권변동 사건’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이러한 헌법 제9조의 전통문화 계승‧발전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 「전통사찰보존법」상의 양도허가조항(讓渡許可條項)을 7 : 2로 위헌적 법률이라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전통사찰보존법」상의 양도허가조항은 국가기관에 의하여 민족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사찰이 소유권변동에 의하여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사적 소유인 전통사찰의 경내지와 부속 건물을 주지(主持)가 타인에게 양도할 때에는 당시 문화체육부장관의 허가를 받게 하고, 허가를 받지 않은 양도는 무효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용수용으로 인한 소유권변동에 대해서는 달리 규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민족문화유산인 전통사찰의 보존 과제를 불충분하게 입법화한 양도허가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은 헌법 제9조가 단순한 선언적 규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입법자에게 ‘민족문화유산의 온전한 보존’이라는 헌법적 의무를 부과하고 나아가 그 의무를 위반하거나 불충분하게 의무를 이행하는 법률에 대하여 위헌선언을 통해 그 효력을 배제시킬 수 있는 실질적 규범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위 결정의 위헌논거는 전통문화유산인 우리말 국어의 계승‧발전 의무를 현저히 위반하는 이 사건 심판대상의 위헌성을 그대로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전통사찰의 경내지 등에 대한 모든 유형의 소유권변동이 전통사찰을 훼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법률조항(=양도허가조항)은 다른 소유권변동원인과 달리 공용수용으로 인한 소유권변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 즉 ‘민족문화유산의 존속’이라는 헌법적 보호법익에 대한 침해를 실효성 있게 예방하거나 방지할 수 있는 법적 안전장치가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공용수용으로 인한 소유권변동에 있어서는 관할 국가기관 등이 전통사찰을 실효성 있게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실질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바, 이는 공용수용에 의하지 않은 소유권변동의 경우와 공용수용에 의한 소유권변동의 경우를 차별하는 것으로서 도저히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고, 헌법 제23조를 이유로 하여 헌법 제9조의 규정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족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이 국가의 단순한 은혜적 시혜가 아니라 헌법상 의무이므로, 일단 관할 국가기관에 의하여 민족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사찰의 경우, 사정이 허락하는 한 이를 최대한 빠짐없이 지속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헌법 제9조 등의 규정취지에 부합한다.”
요컨대, 헌법재판소는 전통문화와 민족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켜야 할 국가적 과제는 국가의 단순한 은혜적 시혜가 아니라 헌법상(憲法上)의 의무(義務)이며, 이러한 헌법 제9조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법률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2천여 년 동안 이 땅의 선조들이 한자(漢字)를 사용하여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여 왔고 또 한자를 이용하여 모든 삶의 지식과 지혜를 후손들에게 전수하여 왔습니다.
한자는 한국인의 개인적‧집단적 정체성의 기반을 이루는 기본적인 문화코드입니다.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이 이러한 한자를 배척하고 말살하려고 하는 것은 헌법 제9조가 국가에게 부여하고 있는 의무(=개인적‧집단적 정체성의 기반을 이루는 문화의 보존, 창조적인 문화적 과정의 촉진과 육성, 그리고 문화의 보급)를 명시적으로 위반하는 것입니다.
4. 한글 ‧ 한자 혼용체의 기미독립선언서와 헌법전의 국어개념 부정
위에서 자세히 언급한 바와 같이, 국어기본법은 국어 생활의 기본적인 정책방향과 규범을 설정하는 ‘기본법’(基本法)임에도 불구하고, 제3조의 개념규정에서부터 우리말 국어를 표기하는 문자를 한글로만 한정지어 한자를 규범적으로 배제하고, 그 밖에 제6조(국어 발전 기본계획의 수립) ‧ 제14조(공문서의 작성) ‧ 제15조(국어문화의 확산) ‧ 제16조(국어 정보화의 촉진) ‧ 제18조(교과용 도서의 어문규범 준수) 등을 통하여 ‘한자가 배제된 국어의 개념’을 상정(想定)한 상태에서, 국가기관에게는 한글전용‧한자배척의 국어정책의 수립과 시행을 요구하고 있고, 또한 국민에게는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언어생활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어기본법의 입법취지는 곧 우리말 국어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한 것만이 우리말 국어에 해당하고, 한자로 표기하게 되면 우리말 국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글‧한자 혼용체의 언어형식을 통해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포한 기미독립선언서(己未獨立宣言書)와 대한민국의 건국 및 헌법적 가치를 선언하고 있는 헌법전(憲法典)이 우리말 국어로 선포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大韓民國憲法 前文은 대한민국이 “3·1運動으로 建立된 大韓民國臨時政府의 法統”을 이어받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담고 있는 1919년 3월 1일의 기미독립선언서는 아래와 같이 한자‧한글 혼용의 문체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문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만, 민족의 자주‧독립의 정신을 국‧내외의 한민족(韓民族)과 세계만방에 알리는 언어매체(言語媒體)로 한자와 한글을 함께 사용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宣言書
吾等은玆에我朝鮮의獨立國임과朝鮮人의自主民임을宣言하노라此로써世界萬邦에告하야人類平等의大義를克明하며此로써子孫萬代에誥하야民族自存의正權을永有케하노라半萬年歷史의權威를仗하야此를宣言함이며二千萬民衆의誠忠을合하야此를佈明함이며民族의恒久如一한自由發展을爲하야此를主張함이며人類的良心의發露에基因한世界改造의大機運에順應幷進하기爲하야此를提起함이니是ㅣ天의明命이며時代의大勢ㅣ며全人類共存同生權의正當한發動이라天下何物이던지此를沮止抑制치못할지니라
… (중략)
吾等이玆에奪起하도다良心이我와同存하며眞理가我와幷進하는도다男女老少업시陰鬱한古巢로서活潑히起來하야萬彙羣象으로더부러欣快한復活을成遂하게되도다千百世祖靈이吾等을陰佑하며全世界氣運이吾等을外護하나니着手가곳成功이라다만前頭의光明으로驀進할름인뎌
公約三章
一, 今日吾人의此擧는正義,人道,生存,尊榮을爲하는民族的要求ㅣ니오즉自由的精神을發揮할것이오決코排他的感情으로逸走하지말라
一, 最後의一人지最後의一刻지民族의正當한意思를快히發表하라
一, 一切의行動은가장秩序를尊重하야吾人의主張과態度로하야금어대지던지光明正大하게하라
朝鮮建國四千二百五十二年三月 日 朝鮮民族代表
孫秉熙 吉善宙 李弼柱 白龍城 金完圭
金秉祚 金昌俊 權東鎭 權秉悳 羅龍煥
羅仁協 梁旬伯 梁漢默 劉如大 李甲成
李明龍 李昇薰 李鍾勳 李鍾一 林禮煥
朴準承 朴熙道 朴東完 申洪植 申錫九
吳世昌 吳華英 鄭春洙 崔聖模 崔 麟
韓龍雲 洪秉箕 洪其兆
뿐만 아니라, 1948년에 제정된 건국헌법(建國憲法)과 이후 여덟 차례 개정된 헌법은 물론이고, 1987년에 개정된 현행의 대한민국헌법(大韓民國憲法)은 그 전문(前文)과 본문(本文) 130개 조(條), 그리고 부칙(附則) 6개 조(條)가 모두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여 국가의 최고규범(最高規範)을 표현하고 있으며, 심지어 추상적인 생각을 나타내는 개념어와 명사는 거의 모두 한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예시로 전문(前文)만 적시(摘示)하겠습니다.
大韓民國憲法
前文
悠久한 歷史와 傳統에 빛나는 우리 大韓國民은 3·1運動으로 建立된 大韓民國臨時政府의 法統과 不義에 抗拒한 4·19民主理念을 계승하고, 祖國의 民主改革과 平和的 統一의 使命에 입각하여 正義·人道와 同胞愛로써 民族의 團結을 공고히 하고, 모든 社會的 弊習과 不義를 타파하며, 自律과 調和를 바탕으로 自由民主的 基本秩序를 더욱 확고히 하여 政治·經濟·社會·文化의 모든 領域에 있어서 各人의 機會를 균등히 하고, 能力을 最高度로 발휘하게 하며, 自由와 權利에 따르는 責任과 義務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國民生活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世界平和와 人類共榮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子孫의 安全과 自由와 幸福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年 7月 12日에 制定되고 8次에 걸쳐 改正된 憲法을 이제 國會의 議決을 거쳐 國民投票에 의하여 改正한다.
이처럼 한민족(韓民族)의 자주․독립의 정신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기미독립선언서와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전 국민에게 전달하는 大韓民國憲法이 그 메시지(message)를 전달하는 표현수단(매체 medium)으로 한글과 한자를 함께 섞어 사용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1960년대 세계적으로 저명한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매체(媒體)는 곧 메시지이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하면서, 매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인지태도(認知態度 perceptual habits)를 변화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맥루한의 이 명제는 커뮤니케이션 매체와 문화·사회의 상관관계를 거시적 맥락에서 제시한 것입니다만, 표현전달매체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에서는 이 사건의 맥락과 연결됩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말 한국어에서는 추상적인 생각과 사상을 나타내는 개념어를 비롯하여 많은 용어들이 함축된 뜻을 담은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한자어, 특히 추상적인 개념어를 한글로 표기하여 전달하는 것과 한자로 표기하여 전달하는 것은 그 언어에 담긴 의미(意味)를 이해하는 측면이나 음성언어의 표현의 정확성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그 언어를 통해 사물을 인지(認知)하는 정신적 과정의 측면에서도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함축된 뜻을 담고 있는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해서는 그 정확한 의미와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될 수 없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어는 더욱 그러합니다. 기미독립선언서에서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할 때, ‘自主民’을 ‘자주민’이라고 적어 놓으면 그 의미가 애매해질 뿐만 아니라 독립선언의 그 뜻이 이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정확하게 인지되지 못하게 됩니다. 大韓民國憲法 前文의 “法統, 不義, 正義, 人道”도 ‘법통, 불의, 정의, 인도’로 써서는 그 의미가 불명확하고 그 뜻을 인지하는 효과가 크게 반감됩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담고 있는 기미독립선언서는 물론이고, 이 나라의 최고법인 헌법에서 한글‧한자 혼용체를 건국 이후 현재까지 60여 년 동안 사용해 오고 있는데도, 이러한 살아 있는 헌법의 언어가 우리말 국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국어기본법은 그야말로 이 나라의 역사와 규범적 뿌리를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헌법은 그 규범내용뿐만 아니라 그 표현형식 또한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전문(前文)의 “法統, 不義, 正義, 人道”를 ‘법통, 불의, 정의, 인도’로 쓰려면 헌법을 개정(改正)해야 합니다. 현행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한자로 표현된 헌법의 언어를 한글로 표기한다고 해서 헌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국어기본법의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들은 이 같은 현행 헌법의 언어형식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한글로 표기된 형식의 헌법만이 헌법이다’라는 규범을 새로이 창설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들은 헌법개정의 방식에 의하지 않고 하위법으로 상위법인 헌법의 언어형식을 개정하려고 하거나 적어도 헌법의 국어개념을 규범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어서 그 자체로 위헌적인 법률조항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5.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불문헌법의 위반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담고 있는 기미독립선언서는 물론이고, 이 나라의 최고법인 헌법은 건국 이후 현재까지 60여 년 동안 9차례의 개정이 있었음에도 한글과 한자의 혼용체로써 헌법의 규범을 표현해 왔습니다. 헌법이 그 규범내용을 전 국민에게 전달하는 언어수단으로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는 바,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이다.”라는 명제를 이처럼 더 명쾌하게 나타낼 수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명제는 단순한 사실명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불문(不文)의 헌법규범으로서, 기미독립선언서와 현행의 헌법전에 너무나 상징적(象徵的)인 모습으로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국어를 표기하는 전통적인 공용문자, 즉 국자(國字)에 관한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正體性)을 표현하는 실질적 헌법사항의 하나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의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 위헌확인 사건에서 7인의 법정의견(法廷意見)으로“국가의 정체성이란 국가의 정서적 통일의 원천으로서 그 국민의 역사와 경험, 문화와 정치 및 경제, 그 권력구조나 정신적 상징 등이 종합적으로 표출됨으로써 형성되는 국가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수도를 설정하는 것”이 이러한 국가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실질적 헌법사항이라는 점을 판례로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말 한국어를 수백, 수천 년 동안 표기해 온 한글과 한자에 관한 문제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실질적 헌법사항이라는 점은 더 이상 다언(多言)을 요하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요컨대,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불문의 헌법규범이 기미독립선언서와 현행의 헌법전(憲法典)에 너무나 상징적인 모습으로 담겨 있습니다. 이 헌법규범이 헌법전에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그 존재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은 2004년의 헌법재판소 결정의 법정의견(法廷意見)에서도 판례로서 확인됩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에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대해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로 한다.”라는 불문(不文)의 관습헌법(慣習憲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위헌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가 성문헌법을 가진 국가로서 기본적으로 우리의 헌법전이 헌법의 법원(法源)이 되지만, “그러나 성문헌법이라고 하여도 그 속에 모든 헌법사항을 빠짐없이 완전히 규율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한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으로서 간결성과 함축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형식적 헌법전에는 기재되지 아니한 사항이라도 이를 불문헌법(不文憲法) 내지 관습헌법으로 인정할 소지가 있으며, 특히 헌법제정 당시 자명(自明)하거나 전제(前提)된 사항 및 보편적 헌법원리와 같은 것은 반드시 명문의 규정을 두지 아니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시(說示)하면서, “이러한 불문헌법 내지 관습헌법도 성문헌법과 마찬가지로 주권자인 국민의 헌법적 결단의 의사의 표현이며 성문헌법과 동등한 효력을 가진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결국, 우리의 기미독립선언서와 헌법전은 그 선언내용과 규범내용을 한글과 한자의 혼용체로 표현함으로써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불문헌법(不文憲法)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헌법질서 안에서 이 불문헌법이 존재한다는 점은 헌법재판소가 밝힌 관습헌법의 법리로도 확인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위 2004년의 결정에서 관습헌법이 성립되기 위한 요건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였습니다. 첫째, 기본적 헌법사항에 관하여 어떠한 관행 내지 관례가 존재하고(헌법적 관행의 존재), 둘째, 그 관행은 국민이 그 존재를 인식하고 사라지지 않을 관행이라고 인정할 만큼 충분한 기간 동안 반복 내지 계속되어야 하며(반복‧계속성), 셋째, 관행은 지속성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서 그 중간에 반대되는 관행이 이루어져서는 아니 되고(항상성), 넷째, 관행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정도로 모호한 것이 아닌 명확한 내용을 가진 것이어야 하며(명료성), 다섯째, 이러한 관행이 헌법관습으로서 국민들의 승인 내지 확신 또는 폭넓은 컨센서스를 얻어 국민이 강제력을 가진다고 믿고 있어야 한다(국민적 합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습헌법의 성립요건에 비추어 볼 때,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헌법규범이 관습헌법으로서도 성립됨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2천여 년 동안 한자는 우리말을 표기하는 문자로서 한민족(韓民族)이 공통으로 사용하여 왔고, 1443년 한글이 창제된 후에도 현재까지 한글과 한자는 함께 사용되어 오고 있으며(헌법적 관행의 존재), 이러한 관행은 오랜 역사와 전통에 의해 지속되어 왔고(계속성), 오랜 기간 실효적으로 지속되어 중간에 깨어진 적이 없으며(항상성), 거의 모든 국민이 부인할 수 없는 명확한 사실이고(명료성), 대다수 국민의 승인을 얻고 있다(국민적 합의)고 할 것입니다. 이들 요건은 달리 입증을 요할 필요도 없이 현행의 헌법전(憲法典)이 한글과 한자의 혼용체로 헌법규범을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고 할 것입니다.
요컨대,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는 헌법규범은 불문헌법(不文憲法) 내지 관습헌법(慣習憲法)의 하나로서 우리의 헌법질서에 내재되어 있는 살아 있는 헌법규범이며, 따라서 법률로써 이를 부정하거나 파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어기본법의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들이 국자(國字)로서의 한자를 부정하고 우리말 국어의 개념요소에서 한자를 규범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위 불문헌법 내지 관습헌법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Ⅴ. 헌법소원심판 청구요건(=적법요건)의 충족
1. 심판대상규정의 공권력성
위 ‘Ⅱ. 위헌 여부를 다투는 공권력작용’ 부분에서 자세히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은 모두 대외적 구속력과 규범적 효력을 가지는 법률, 시행령, 그리고 고시입니다.
물론 이들 규정이 청구인들의 법적 지위에 미치는 영향의 측면에서 보면 그 성질이 모두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이들 규정 중에는 ➀ 공무원이나 일반국민을 직접적인 수범자로 하여 한자혼용을 금지시키는 규정도 있고(법 제14조 및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 제3항), ➁ 교육과학기술부장관으로 하여금 교과용도서의 편찬‧검정‧인정에 있어서 한자혼용을 배제시키도록 강제하는 규정이 있으며(법 제18조), ➂ 초‧중등학교의 교육기관으로 하여금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규정도 있고(이 사건 한자교육배제고시), ➃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하여금 일반국민의 언어생활 속에서 한자가 배제된 국어문화를 확산 및 촉진시키도록 구체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이 있으며(법 제15조 제1항, 제16조 제1항), ➄ 언론기관과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로 하여금 국민이 한자가 배제된 국어를 사용하는 데 기여해야 할 추상적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도 있고(법 제15조 제2항, 제16조 제3항), 그리고 ➅ 위 모든 규정의 기본전제가 되는, 한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국어의 개념을 상정하고 있는 정의조항(법 제3조)이 있습니다.
위 ➀의 규정을 제외하고, ➁➂➃➄➅ 규정의 직접적인 수범자(受範者)는 일반 국민이 아니라 국가기관이나 대중매체 등 사인(私人)이지만, 이들 규정으로 인하여 청구인들을 비롯한 일반국민에게 발생하는 불이익은 단순한 부수적․간접적 효과가 아니라 중대한 기본권제한(基本權制限)에 해당합니다. 이들 규정은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에서부터 전 국민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에 이르기까지 한자를 배척 혹은 말살시키려는 입법의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입법의도를 구현하기 위하여 국가기관에게 또는 언론기관에게 구체적 및 추상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등 다양한 행위형식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직접적인 결과로 인해 청구인들은, 위 ‘Ⅳ. 심판대상의 위헌성 1. 기본권의 위헌적 침해’ 부분에서 자세히 논증한 바와 같이,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되는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을 누릴 권리 내지는 자유로운 한자문화향유권, 헌법 제21조의 한자혼용의 표현방식에 의한 의사표현의 자유,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 및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의 행사에 있어서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들 규정으로 인하여 청구인들에게 자유행사에 있어서 불리한 효과가 발생하며, 국가행위가 초래하는 이러한 불리한 효과는 국가에 의하여 직접 의도된 것이고 또한 입법 당시에 그러한 불리한 효과를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책임이 국가에 귀속되어야 하므로, 이들 규정은 자유권의 관점에서 정당화되어야 하는 ‘사실적 기본권제한’에 해당합니다.
요컨대,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은 직접적 또는 사실적으로 청구인들의 자유행사에 심대한 불리한 효과를 초래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됨이 명백하다고 할 것입니다.
2. 기본권침해의 법적 관련성
헌법재판소는 확립된 판례를 통해, 헌법소원 청구인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기본권이, 현재 그리고 직접 침해당한 경우라야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하 이들 요건의 충족 여부에 대하여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가. 자기관련성과 침해의 직접성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과 한자교육배제고시는 청구인들 중 초‧중‧고등학교 재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학습권)과 그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은 청구인들 중 교과용도서를 저작하거나 출판하고자 하는 초‧중‧고등학교의 교사, 대학의 교수, 일반시민 그리고 출판사대표가 교과용도서를 저작하고 출판함에 있어서 한자혼용의 표현방식으로 저작하고 출판할 수 있는 자유를 직접적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으로 인해 초등학교 입학예정인 아동과 그 부모, 초‧중‧고등학교 재학생과 그 부모, 초‧중‧고등학교의 교사 또는 교장, 대학생, 대학원생, 대학교수, 한자‧한문 강사, 공무원, 출판사대표, 기자, 변호사, 목사, 기업체 대표, 회사원, 자영업자, 가정주부, 기타 일반시민으로 구성된 청구인들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등의 자유가 직접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 중 공문서규정(법 제14조)은 청구인들이 이 사건 심판청구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한글로 작성하도록 직접 강제하는 규정이며, 그 밖의 규정들(법 제3조, 제15조, 제16조)은 국어의 개념에서 한자를 규범적으로 배제시킴과 동시에 국가기관과 언론기관 등의 사인에게 한자가 배제된 국어생활을 확산 및 촉진하도록 구체적 혹은 추상적 의무를 규범적으로 부과하는 규정입니다. 비록 이들 규정의 위반에 대한 제재규정은 별도로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국가기관으로서는 법률의 정의규정(定義規定)과 의무규정(義務規定)을 위반할 수 없는 법적 구속력을 받게 되며, 사인 또한 제재 없는 추상적 의무라도 규범적으로 구속을 받는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이로 인해 청구인들은 한자가 배제된 국어생활을 규범적으로 직접 강요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자가 배제된 국어생활의 규범적(規範的) 강요(强要)는 별도의 집행행위를 기다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위 규정들에 의해서 직접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즉, 법규범이 예정하고 있는 한자배제의 법률효과는 다른 집행행위를 기다려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위 규정들로부터 직접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청구인들은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으로 인해 국어생활에 있어서 한자 사용에 관한 자기결정권 등의 자유를 직접 제약받고 있습니다.
결국, 이 사건 심판청구에 있어서 청구인들의 자기관련성 및 침해의 직접성 요건은 충족된다고 할 것입니다.
나. 침해의 현재성
헌법재판소는 확립된 판례로서, 기본권침해가 가까운 장래에 발생하더라도 그 침해가 틀림없을 것으로 현재 확실히 예측된다면 기본권구제의 실효성을 위하여 침해의 현재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청구인들 중에는 초등학교 미취학아동(未就學兒童)과 그 부모가 있습니다. 이들 청구인은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과 한자교육배제고시로 인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기본권침해를 받고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그러나 초등학교가 의무교육이어서 미취학아동은 장차 초등학교에 입학할 것이 확실합니다. 따라서 장래 기본권침해를 받을 것이 틀림없을 것으로 현재 확실히 예측되기 때문에, 청구인들 중 미취학아동과 그 부모는 위 심판대상규정을 헌법소원으로 다툼에 있어서 침해의 현재성 요건을 충족한다고 할 것입니다. 또한 청구인들 중 초등학생(初等學生)은 장래 중학교 입학이 의무교육으로 요구되고 있고, 중학생(中學生) 또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들 학생과 그 부모 또한 침해의 현재성 요건을 충족한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國語生活强要規定)과 관련해서, 청구인들 중 초등학교 미취학아동은 이 규정으로 인해 아직은 국어생활에 있어서 한자 사용에 관한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받고 있는 상태는 아니라 할 것입니다. 간혹 미취학아동이 그 부모의 선택에 따라서 한자를 배우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미취학아동은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을 누릴 수 있는 지적(知的) 단계(段階)는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미취학아동은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으로 인해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현재 침해받고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미취학아동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을 독자적으로 누릴 수 있는 지적(知的) 단계에 이르게 될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이 점은 현재 확실히 예측되기 때문에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과 관련한 침해의 현재성 요건도 충족된다고 할 것입니다.
3. 청구기간의 준수
(1) 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1항은 기본권침해의 사유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그 사유가 있은 날로부터 1년 이내에 헌법소원을 청구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법령소원에서 청구기간의 기산점(起算點)이 되는 ‘법령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한 날’이라 함은 “법령의 규율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적용받게 된 최초의 날”이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설령 청구기간이 지났다 하더라도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 청구기간 요건의 예외로서 헌법소원청구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의 “정당한 사유”라 함은 청구기간 경과의 원인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지연된 심판청구를 허용하는 것이 사회통념상으로 보아 상당한 경우를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 주의(注意)를 다하여도 그 기간을 준수할 수 없는 사유를 포함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2)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漢字混用禁止規定)과 한자교육배제고시(漢字敎育排除告示)는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학습권)과 그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제한하는 규정인데, 청구인들 중 초등학교 미취학아동과 그 부모는 이 사건 심판청구 시점에서는 아직 위 기본권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침해받고 있는 상태가 아니므로, 청구기간 경과(經過)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청구인들 중 초등학교‧중학교 학생과 그 학부모는 장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위 기본권의 침해를 받는 것이어서 청구기간 경과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습니다.
(3)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은 청구인들 중 교과용도서(敎科用圖書)를 저작하거나 출판하고자 하는 초‧중‧고등학교의 교사, 대학의 교수, 그리고 출판사대표가 교과용도서를 저작하고 출판함에 있어서 한자혼용의 표현방식으로 저작하고 출판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입니다.
이들 청구인은 현재 교과용도서를 저작하거나 출판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어서 기본권침해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 또한 청구기간 경과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습니다.
(4)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은 모든 청구인들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등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입니다. 이하 청구기간의 준수 여부를 나누어서 살피겠습니다.
(가) 먼저, 한자혼용을 금지하고 있는 이 사건 공문서규정으로 인해 청구인들의 기본권침해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이루어진 시점(=청구기간 기산점), 즉 공문서규정의 규율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적용받게 된 최초의 날은 청구인들이 이 사건 소송대리인과 소송위임계약(訴訟委任契約)을 체결한 날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소송위임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소송대리인이 곧 바로 심판청구서 작성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이 시점부터는 공문서규정의 규율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받게 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소송위임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90일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제기한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는 청구기간을 준수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나) 다음으로,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 중 공문서규정 이외의 규정들(법 제3조, 제15조, 제16조)은 청구인들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등을 제한하는데, 청구인들 중 초등학교 미취학아동은 이러한 기본권을 아직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침해받고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청구기간 경과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습니다.
(다) 마지막으로, 공문서규정 이외의 규정들로 인해 미취학아동 이외의 청구인들이 기본권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침해받은 시점(청구기간 기산점)이 언제인지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이들 규정은 국어의 개념에서 한자를 규범적으로 배제시킴과 동시에 국가기관과 언론기관 등의 사인에게 한자가 배제된 국어생활을 확산 및 촉진하도록 구체적 혹은 추상적 의무를 규범적으로 부과하는 규정입니다. 이로 인해 청구인들은 한자가 배제된 국어생활을 규범적으로 직접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청구인들은 원칙적으로 이들 규정의 시행(2005. 7. 28)과 동시에 기본권의 침해를 받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들 규정과 관련한 청구기간의 충족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이들 규정이 가진 특수성(特殊性)이 반영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서도 살핀 바와 같이, 이들 규정은 청구인들을 직접적인 수범자로 하여 금지명령을 내리는 규정이 아니라, 우리말 국어의 개념에서 국자(國字)인 한자를 배제한다는 규범적 선언을 한 다음, 일반국민의 언어생활에서 한자가 점차적으로 소멸되도록 국가기관과 언론기관 등의 사인에게 의무를 지우는 규정입니다. 이로 인해 일반시민인 청구인들은 규범적으로는 한자배척의 국어생활을 강요받게 되었습니다만, 이들 규정이 예정하고 있는 규율의 효과는 규정의 시행과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규정의 수범자인 국가기관 등에 의한 의무이행을 통해 점차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청구인들이 이들 규정으로 인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을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이들 규정은 한자배제(漢字排除)의 입법의도(立法意圖)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어서 일반시민이 그 입법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물론 청구인들 중에는 이들 규정의 제정 당시부터 그 입법의도를 정확히 파악해낸 극소수의 청구인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대다수의 청구인들은 초‧중등학교의 학생과 그 부모, 초‧중등학교의 교사, 대학생, 대학원생, 대학교수, 목사, 기업체 대표, 회사원, 자영업자, 가정주부 등 일반시민이어서 이들 규정으로 인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을 규범적으로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들 청구인이 위 규정의 규범적 의도를 파악하여 그 문제점과 위헌성을 인식하게 된 것은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語文政策正常化推進會)가 2012. 7. 31.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그 설립취지를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헌법소원청구를 위한 청구인을 모집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이 사건 심판청구가 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1항이 정하고 있는 청구기간을 경과하였다고 하더라도 청구인들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여 청구기간 요건의 예외를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도 헌재 2001. 12. 20. 2001헌마39 결정(7인의 법정의견)에서 “정당한 사유라 함은 … 일반적 주의(注意)를 다하여도 그 기간을 준수할 수 없는 사유를 포함한다.”고 넓게 해석하면서, “청구인이 특별한 과실 없이 공권력작용[여기서는 ‘불기소처분’]이 있은 사실을 알지 못하여 헌법소원의 청구기간을 준수할 수 없었을 때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1항이 청구기간을 설정하고 있는 것은 권리관계를 신속히 확정하여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헌법소원제도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여 헌법질서(憲法秩序)를 수호(守護)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1항의 청구기간 요건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한편으로는 ‘권리관계를 신속히 확정할 필요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기본권보호의 필요성’을 교량(較量)해서, 헌법소원제도의 도입취지가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법적 안정성을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위 심판대상규정은 우리말 국어의 개념요소에서 한자를 배제하는 규범적 선언이고 이 선언을 실현할 의무를 국가기관 등에 부과하는 것이어서, 이로 인한 기본권침해의 실제적 효과는 그 시행 시점에서는 바로 나타나지 않고 점진적으로 강화되어 나타나게 되는 바, 이런 경우에는 권리관계를 신속히 확정할 필요성은 약한 반면 오히려 기본권보호의 필요성은 법집행이 진행되면서 더욱 강화된다고 할 것입니다. 더구나 위 심판대상규정과 같은 규율의 경우에는 청구인들이 행정소송이나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으로 다투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헌법소원심판청구 외에는 달리 기본권구제(基本權救濟)의 길이 없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요컨대, 위 심판대상규정의 특수성과 기본권보호의 특수한 필요성을 고려하여, 이 사건 심판청구가 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1항이 정하고 있는 청구기간을 경과하였다고 하더라도 청구인들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여 청구기간 요건의 예외를 인정해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Ⅵ. 결론
1. 위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헌입니다.
첫째, 정상적으로 기본적인 공교육(公敎育)을 받은 학생(學生)은 자신의 삶을 자기책임 하에서 독자적으로 형성할 수 있도록 그에 필요한 기본적인 교양과 지식을 제공받아야 하며, 특히 어문생활영역에서 자신의 인격을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하고 교과용도서에서 한자의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국민이 기본적인 공교육을 받았음에도 한국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고 대학과 사회에 진출하여 한국어로 인한 어려움을 겪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므로, 교육의 영역에서의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人格發現權)을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둘째, 학교교육에서 한자교육의 여부는 한국어에 대한 가치관과 문화관의 문제로서 학부모 자신과 자녀의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결정이며 자녀의 전체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결정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공교육의 범주 내에서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이 특별히 존중되어야 하는 문화적 영역에서 학부모에게 한글전용의 문화정책을 강요하면서 학부모의 상이한 문화관을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문화적으로 중립적인 학교교육의 요청을 무시하고 학부모의 자녀교육권(子女敎育權을)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셋째,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한자배척․한글전용 문화의 확산을 통하여 한글전용의 국어생활을 실질적으로 강요함으로써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하는 청구인들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自己決定權)’을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넷째,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한글전용의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문화정책의 추진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문화의 자율성과 국가의 문화적 중립성을 요청하는 문화국가(文化國家)의 원리(原理)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9조를 명백히 위반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관습헌법의 성립요건에 비추어 볼 때,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규범은 관습헌법에 해당하므로, 한자가 우리의 글자임을 부정하는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불문헌법(不文憲法)에 위반됩니다.
2. 청구인들이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것은, 특정한 이해관계에서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청구인들이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한자문화에 대한 사대주의적 사고나 고리타분한 전통문화를 고수하고자 하는 보수적 사고를 관철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청구인들은 지난 수십 년간 추진된 국가의 한글전용정책으로 인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한국어의 의미가 점차 흐려지고 불명확해지는 것을 크게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한글은 우리의 고유한 글자이고 한자는 중국의 글자이며, 한글전용은 우리의 것을 존중하는 애국적 사고의 표현이고 한자혼용은 사대주의의 발로(發露)라는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思考)는 중대한 오류입니다. 문화(文化)란, 그 기원과 발생지와 관계없이, 하나의 문화공동체에 의하여 수용되어 다른 문화와의 경합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함으로써 그 문화공동체의 고유한 문화로 새롭게 형성되는 것입니다. 우리말 한국어가 한자어와 고유어로 구성되어 있다면, 한자어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고유한 문화인 것이며, 한자어를 표기하는 수단인 한자도 역시 우리의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한자어가 한국어의 주된 구성부분임에도 불구하고, 한자어의 표기수단인 한자를 ‘남의 것’으로 배척하는 것은 자기모순(自己矛盾)이고 자기부정(自己否定)인 것입니다.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면 한자어는 소리만 남고 그 의미는 사라져 버립니다. 한자를 떠난 한자어는 언어(言語)가 아닙니다.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해도 의미가 살아있다는 주장은 과거에 이미 한자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한자를 배우지 않은 국민에게 한자어는 그 의미가 모호한 소리에 불과합니다. 국가의 한글전용정책은, 한자교육 없이도 한자어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거대한 착각 속에서 ‘한자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추진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편향적인 문화정책의 가장 큰 희생자는 한자교육을 받지 못한 젊은 세대, 결국 대한민국을 이어받아 그 운명을 결정할 다음 세대들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청구인들은 다음 세대에 대한 한자교육의 필요성과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의 중요성을 절감(切感)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구인들은 어문생활에서 모든 한자어를 한자로 표기할 것을 요청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 생활영역에서 한글전용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적어도 기본적인 한자교육을 바탕으로 한자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한글전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추진되어온 한글전용정책은 ‘단순문맹(單純文盲)’을 퇴치하는 데에는 기여하였으나, 대부분의 국민이 자신이 사용하는 한국어의 의미를 더 이상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실질문맹(實質文盲)’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실질문맹’을 국민으로 가진 국가가 장기적으로 다른 문화적(文化的) 선진국(先進國)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그 후진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겠습니다. 한자를 배척하고 한글전용의 문화를 고집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미래로 향하는 문마저도 닫아 버리는 것입니다.
첨부서류
1. 소송위임장
별첨자료(목록)
1. 漢字敎育 立國
2. 漢字를 아는 것이 國力이다
3. 漢字는 國語의 기본이다.
4. 漢字文盲 이대로 좋은가
5. 한글과 漢字는 國語의 두 날개
6의 1. 漢字漢文敎育論叢 上
6의 2. 漢字漢文敎育論叢 下
7. 漢字敎育과 漢字政策에 對한 國際學術會議
8. 初等敎育 漢字 敎育의 必要性에 관한 심포지엄
9. 漢字語 指導 效果 檢證을 위한 硏究
10. 請願書·建議書·聲明書 현황
2012. 10. 22.
위 청구인들 대리인
법무법인 신촌
담당변호사 김 문 희
헌법재판소 귀중
편법주의가 원칙이 된 나라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 遵法 정신이 透徹한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더 無法, 無禮 천지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다른 나라는 일반적으로 잘 살게 될수록 秩序도 더 잘 지키게 되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인 것이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無秩序를 고치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결코 先進國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그 無秩序, 無法, 無禮의 原因을 정확히 알아야 그 病을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趙甲濟 대표님은 그 原因으로 '敎養不足(교양부족)'을 드셨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敎養 不足'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것을 또 좀더 깊이 파고 들어가보면 그 뿌리에서 '한글專用'을 만나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先進國은 '原則대로 살아야 한다'는 '原則主義(원칙주의)'가 지켜지는 나라고, 後進國은 '내멋대로 산다'는 '便法主義'가 亂舞하는 나라입니다. 그 중 韓國은 後者입니다. 곧 便法主義가 기승을 부리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韓國人에게 '便法主義'가 확고히 자리잡게 된 것은 '한글專用' 때부터입니다. 국가가 '한글專用法'을 만들어서 국민에게 原則대로 글을 쓰지 말고 便法으로 글을 쓰라고 强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국민은 '便法主義'에 물들어가서,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便法主義'가 확고한 原則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便法이 原則이 되고 原則이 變則으로 내몰린 異常하고도 稀罕(희한)한 사회가 바로 韓國 사회입니다.
정부가 편법을 강제
漢字語는 漢字로 적는다는 原則은 '訓民正音'을 만든 世宗大王조차도 감히 어기지 못할 정도로 原則 중의 原則이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漢字語는 漢字를 짜맞춰서 만든 낱말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漢字語는 漢字로 적어야 합니다. 漢字語를 한글로만 쓰면 어려운 漢字 배우지 않아도 되고 글 쓰기도 편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漢字語를 한글로 적어서는 그 正確한 意味와 發音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漢字語는 漢字로 적는 것이 原則인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1970년 이전까지 지난 2000년간 漢字語를 漢字로 적는다는 것은 韓國人의 表記에서 永遠不變(영원불변)의 原則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글專用'은 그 原則을 하루 아침에 깨버렸습니다. 漢字語를 漢字가 배우기 어렵다거나 쓰기에 時間이 걸린다는 등의 핑계를 들어서 한글로 적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곧 漢字가 배우기 귀찮고 쓰기 귀찮다고 그냥 便하게 한글로 쓰도록 정부가 국민에게 强制로 가르친 것입니다. 정부가 국민에게 '便法'을 가르치고 强要한 것입니다.
이렇게 '한글專用'이 시행된 이후에 韓國人은 '原則'은 필요 없고 그저 자기 便한 대로 살기만 하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政府가 국민을 '便法'으로 살도록 敎育한 것입니다. 오늘날 韓國 사회의 無秩序, 無法, 無禮는 그러니까 다름 아닌 政府가 기른 것입니다. 大韓民國 정부가 1948년에 만들고 1970년부터 강력히 추진한 '한글專用法'이 바로 한국 사회의 無秩序, 無法, 無禮의 근본 原因이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韓國은 無法天地(무법천지)의 나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原則사회를 만들려면 한글專用이란 變則부터 없애야
한번 政府가 原則을 버리고 便法을 선택한 결과, 오늘날 大韓民國 사회는 뿌리 뽑기 어려울 정도로 便法이 亂舞하는 어지러운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 政府의 自業自得입니다. 政府가 한순간 나라를 편하게 운영하자고 잘못 생각한 것이 오늘날 걷잡을 수 없이 큰 混亂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한글專用'과 같은 '便法'은 '빨리빨리', '얼러뚱땅', '대충대충', '적당히', '모르면서 아는 체하기' '似而非(사이비) 정신'을 국민에게 길러줍니다. 漢字語를 原則대로 적기가 귀찮다고 한글로 적는 그 게으르고 나쁜 생각이 다른 데로 번져서 온갖 便法과 不正을 저지르는 原因이 됩니다. 信號燈(신호등)을 기다리기 귀찮다고 信號燈 無視하고 무조건 건너갑니다. 秩序 지키기 힘들다고 새치기를 합니다. 이런 모든 無秩序, 無法, 無禮의 사고방식이 다 '한글專用'에서부터 비롯된 일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확실한 것은 無秩序, 無法, 無禮를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大韓民國은 결코 先進國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제 어렵지만 韓國人의 정신을 다시 '原則主義'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韓國人의 정신을 '原則主義'로 돌려놓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한글專用'부터 뿌리 뽑아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韓國人에게 '便法은 안 된다. 아무리 귀찮고 힘들어도 原則대로 살아야 한다'는 정신을 확고하게 심어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漢字가 배우기 어렵고 또 쓰기가 귀찮더라도 또 時間이 좀 더 걸리더라도 漢字語는 原則대로 漢字로 적는다는 態度를 확실히 길러주어야 합니다.
中道는 원칙 포기
大韓民國이 한글專用을 하는 한에는 韓國人은 '便法主義'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大韓民國은 결코 中進國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永遠히 先進國 문턱에서 挫折하고 말 것입니다. 자, 이것이 大韓民國이 '한글專用'을 반드시 버려야 하는 理由입니다. 大韓民國 정부는 先進國으로 이 나라를 發展시키려면, 국민에게 便法을 强要했던 '國語基本法(한글專用法)'을 結者解之(결저해지) 차원에서 당장 廢止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국민에게 漢字語는 漢字로 적는다는 '原則'을 正直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韓國人의 정신이 無秩序, 無法, 無禮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때서야 大韓民國은 비로소 先進國으로 올라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李明博 정부가 내세우는 '中道 實用主義'로는 결코 한국 사회의 無秩序, 無法, 無禮를 고칠 수 없습니다. '한글專用'도 일종의 '便法 實用主義'입니다. '實用主義'는 原則이 缺如된 생각입니다. 게다가 '中道 實用主義'는 더더욱이나 原則이 缺如된 생각입니다. 이런 國政 基調로는 大韓民國이 先進國이 되는 것은 百年河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 정신이 바로 서지 못한 나라는 발전 가능성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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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수록 무례해진다?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된 공무원이 자신의 신분을 은폐하려다가 들통이 난 건수가 2007년에 3043건, 작년엔 1505건이었다.
만취상태에서 파출소를 깨고, 아무런 이유 없이 行人에게 시비를 걸고, 밤중에 큰 소리를 지르면서 이웃을 괴롭히는 따위 경범죄 처벌법 위반자는 2004년에 11만7236명, 작년엔 30만7912명이었다. 이는 한국사회의 無禮지수인데 5년 사이에 162.6%가 증가하였다. 일본의 44배나 된다. 물질적 수준과 예절이 反비례 관계에 처하였다.
한국의 1km 당 교통사고는 선진국 클럽인 OECD 회원국중 最多이다.
최근 2년간 G-20 국가중 국회폭력 사건이 발생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法治의 수준을 보여주는 공무집행방해죄는 2004년에 8106건, 작년엔 약 배로 증가한 1만5646건이었다. 法질서가 경제수준 향상 및 민주화의 연륜과 反비례 관계이다. 잘 살게 되고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無法, 無禮천지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게 통계적으로 확실하다. 특히 노무현 정권 시절 무례, 무법지수가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즉, 법을 우습게 여기는 좌파정권이 무법, 무례를 조장하였다는 움직일 수 없는 통계이다. 그 구체적인 物證이 대통령 노무현과 국무총리 한명숙의 이전, 이후 행태이다.
한국의 에너지 소비량은 1998~2007년 10년 사이 33%가 늘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증가이다. 같은 기간 종이 소비량은 57.4%가 늘었다.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은 연간 약500만t이다. 북한주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양이다. 한국인들은 매년 15조원어치의 음식물을 버린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매년 약6700억원을 쓰는 나라이다.
인터넷 사기사건이 연간 3만6000건. 정보화 사회가 인간 心性을 악화시키는 꼴이다.
'경제가 발전하면 민주화가 이뤄진다'는 원리는 한국에서 맞았다. 이제 새로운 원리가 만들어진다.
'국민교양이 정착되지 못한 나라에서 민주화를 서두르면 無禮, 無法천지가 된다. 잘 사는 만큼, 민주화되는 정도만큼 국민정신과 국가기강이 망가진다. 사기꾼과 반역자와 부패분자들이 민주주의를 악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는 교양부족이란 장애물을 만났다. 이 장애물을 돌파하려면 우선 좌익을 척결하고 한글專用의 확산을 중단시켜야 한다.
헌법소원심판청구서
(국어기본법 등에 대한 헌법소원)
청 구 인 감지연 외 332
대리인 법무법인 신촌
담당변호사 김문희
헌법재판소 귀중
목 차
청 구 이 유
Ⅰ. 심판청구에 이르게 된 경위 2
Ⅱ. 위헌 여부를 다투는 공권력작용 (심판의 대상) 6
1.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언어생활을 강요하는 법령규정들 7
2.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에서 한자혼용을 금지한 법령규정들 16
3. 초‧중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한 교육부 고시 19
Ⅲ. 우리말 국어에 있어서 한자의 의미와 기능 25
1. 서언 25
2. 한민족(韓民族)의 전통문화의 요체요 국자(國字)로서의 한자 26
3. 국어의 양 날개로서의 한글과 한자 29
4. 한자를 떠난 한자어는 언어(言語)가 아니다 34
5. 창조적 사고력의 원천이요 학문발전의 초석으로서의 한자 38
6. 동아시아의 문화적 코드로서의 한자 43
7.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교육정책으로 인한 폐해 44
가. 우리말 국어의 황폐화와 국민의 언어능력 저하 44
나. 초‧중등교육에서 학습능력의 저하와 인성교육의 부실 49
다. 대학교육에서 학문의 지체(遲滯)와 퇴보 50
라. 문화적 정체성의 약화 53
Ⅳ. 심판대상의 위헌성 55
1.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위헌적 침해 56
가. 이 사건 교과용도서 한자혼용금지규정 및 한자교육배제고시의 기본권침해성 56
(1) 국가의 교육권한과 그 헌법적 한계 57
(2)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학습권)의 침해 58
(3) 부모의 자녀교육권의 침해 63
(4) 교과용도서 저작자와 출판사의 언론 ‧ 출판의 자유 침해 67
나.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의 기본권침해성 70
2. 문화의 자율성과 국가의 중립성을 요구하는 문화국가원리의 위반 75
3.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의무를 국가에 지우고 있는 헌법 제9조 위반 80
4. 한글‧한자 혼용체의 기미독립선언서와 헌법전의 국어개념 부정 83
5.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불문헌법의 위반 87
Ⅴ. 헌법소원심판의 청구요건(적법요건)의 충족 90
1. 심판대상규정의 공권력성 90
2. 기본권침해의 법적 관련성 92
가. 자기관련성과 침해의 직접성 92
나. 침해의 현재성 94
3. 청구기간의 준수 95
Ⅵ. 결론 100
첨부서류 103
헌법소원심판청구서
청 구 인 감지연 외 332
(별지 목록 기재와 같음)
위 청구인들의 대리인 법무법인 신촌
담당변호사 김문희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57-12 태영B/D 3층
전화 : 02) 333-2477 팩스 : 02) 334-8587
청 구 취 지
“국어기본법(2005. 1. 27. 법률 제7368호로 제정되고 2011. 4. 14. 법률 제10584호로 개정된 것) 제3조, 제14조 제1항, 제15조, 제16조, 제18조, 국어기본법시행령(2005. 7. 27. 대통령령 제18973호로 제정된 것) 제11조,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2009. 8. 18. 대통령령 제21687호로 개정된 것) 제26조 제3항 및 초․중등학교 교육과정(1997. 12. 30. 교육부 고시 제1997-15호로 제정되고 2012. 7. 9. 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2012-14호로 개정된 것) 중 초‧중‧고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
라는 결정을 구합니다.
침해된 권리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되는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을 누릴 권리 내지는 한자문화향유권, 헌법 제21조의 한자혼용의 표현방식에 의한 의사표현의 자유,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 및 학부모의 자녀교육권, 자신의 저술내용을 한자혼용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언론‧출판의 자유
침해의 원인
국어기본법(2005. 1. 27. 법률 제7368호로 제정되고 2011. 4. 14. 법률 제10584호로 개정된 것) 제3조, 제14조 제1항, 제15조, 제16조, 제18조, 국어기본법시행령(2005. 7. 27. 대통령령 제18973호로 제정된 것) 제11조,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2009. 8. 18. 대통령령 제21687호로 개정된 것) 제26조 제3항 및 초․중등학교 교육과정(1997. 12. 30. 교육부 고시 제1997-15호로 제정되고 2012. 7. 9. 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2012-14호로 개정된 것) 중 초‧중‧고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한 부분
청 구 이 유
Ⅰ. 심판청구에 이르게 된 경위
청구인들은 초등학교 입학예정인 아동과 그 부모, 초‧중등학교 재학생과 그 부모, 초‧중등학교의 교사 또는 교장, 대학생, 대학원생, 대학교수, 한자‧한문 강사, 공무원, 출판사대표, 기자, 변호사, 목사, 기업체 대표, 회사원, 자영업자, 가정주부, 기타 일반시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청구인들은 한국어(韓國語)를 생활언어로 사용하면서 한자(漢字)가 한국어의 언어생활에서 갖는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국민입니다. 청구인들은 국가에 의한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語文政策)과 교육정책(敎育政策)으로 인해 우리말의 언어생활에서 크고 작은 직‧간접의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우리말 한국어는 고유어와 한자어(漢字語)로 구성되어 있고, 고유어는 25.5%에 그치는 반면 한자어는 약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의 한자어는 원칙적으로 한자(漢字)라는 글자로 적고 그 한자로 적힌 한자어를 한국어의 발음(發音)으로 읽어야 그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됩니다. 언어의 목적은 의미(意味)의 전달에 있으며, 말을 표기하는 글자와 그것을 소리로 나타내는 발음은 그 수단입니다. 인간 사고의 가능성은 사고의 도구인 언어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사고도 멈춥니다. 인간이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도구로서 언어를 필요로 하며, 도구의 다양성과 정교함에 의하여 사고의 폭과 깊이가 결정됩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에 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개인은 도구의 불명확함으로 인하여 명확하게 사고할 수 없으며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한국어의 주된 구성요소를 이루고 있는 한자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아가 한국어로 제대로 사고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한글전용의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은 우리말 한국어에서 그 의미전달의 기본수단인 한자(漢字)를 배척 혹은 말살함으로써, 우리 국민이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국가의 한글전용정책으로 인하여 한편으로는 국민 누구나 한글로 표기된 한국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다른 한편, 자신이 읽은 것의 의미를 더 이상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자를 배척하고 한글을 전용하는 국가의 교육정책이 이미 오랜 기간 지속됨에 따라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한자 교육의 수혜자로서 한자를 이미 배웠기 때문에 한글로 표기된 한자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한글전용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자를 배우지 않은 국민은 한자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어로 사고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 문맹(文盲)은 해소되었으나 고학력자일수록 실질 문맹률(文盲率)이 높다는 2009년의 연구결과는 매우 충격적입니다.
한국어를 전적으로 한글로 표기한다 하더라도, 한국어의 주된 구성부분인 한자어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언어생활에서 표기수단으로서의 한자를 배제할 수는 있으나 한국어를 구성하는 한자어 자체를 축출할 수는 없습니다. 한자를 배척하는 국가정책은 한자어의 대부분을 우리의 고유어로 대체할 수 있는 상황에서나 비로소 가능하고 고려될 수 있는 정책입니다. 우리가 한자어를 포기할 수 없는 한, 우리말의 정확한 이해와 사용을 위하여 한자 교육은 필수적입니다. 고유어는 한글로 표기하고 한자어는 한자로 표기하는 경우에 비로소 우리말인 한국어는 국어로서의 완전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한자어가 한글로 표기되는 경우에는 적어도 한글로 표기된 한자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보된 상태에서만 한국어는 온전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특정 어문생활영역에서 부분적이나마 한글전용을 하기 위해서도 한자어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한자 교육은 필수적입니다. 한글전용은, 한자의 사용 없이도 한국어의 주된 구성부분인 한자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한글전용의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으로 인하여 국민의 다수가 자신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모국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국가에서 국어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없으며, 학문이 발전하고 문화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겠습니다. 2천여 년 동안 우리말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어 온 한자(漢字)가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점차 사라지게 됨으로써, 우리말의 의미(意味)를 정확하게 주고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어를 통한 창조적 사고력을 증진시킬 수도 없으며 수천 년 이어져 온 민족문화의 정체성이 상실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한자를 배척 혹은 말살하는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으로 인해 지금의 젊은이들은 지식인의 요람(搖籃)인 대학을 다녀도 한자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읽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학의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글‧한자 혼용(混用)으로 쓰인 수백만 건의 지식의 보고(寶庫)들이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글을 후손들이 직접 읽고 이해할 수 없다는 자괴감(自愧感)은 차치하고서라도, 이제는 한글‧한자 혼용으로 쓰인 10년 전의 선배들의 지식과 지혜조차도 습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자를 모르니 한자로 압축된 전문용어는 물론이고 한자로 구성된 일상생활용어조차 그 정확한 의미가 가물가물하게 되었습니다. 2천여 년 동안 이 땅의 선조들이 한자를 사용하여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여 왔고 또 한자를 이용하여 삶의 지식과 지혜를 후손들에게 전수하여 왔는데, 그 대동맥이 이제 한자를 아는 일부 소수의 식자(識者)들에 의해서만 간신히 이어지는 꼴이 되고 있습니다.
언어는 감정과 정신을 담는 그릇입니다. 정신문화의 바탕인 우리의 말과 글에 있어서 한글과 한자는 ‘새의 양 날개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것인데, 그 한 쪽 날개에 생명을 전달하는 혈류가 막혀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조만간에 그 혈류가 완전히 막혀 한 쪽 날개(한자)를 잃은 채 우리의 정신문화는 결국 높이 비상(飛上)하지 못하고 추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형편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1970년 신학기에 초‧중등학교 모든 교과서에서 한자를 삭제한 후, 1972년 8월 16일 ‘한문교육용기초한자 1,800자’를 공포(公布)하고, 1973년부터 중등교육과정에서 한자교육(漢字敎育)을 국어과(國語科)에서 분리하여 별도의 한문(漢文) 과목으로 가르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인 공교육체계 속에서 한자교육을 지속적으로 배척(초등학교) 혹은 경시(중‧고등학교)하여 오다가, 2005년에 제정된 「국어기본법」에서는 급기야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역사와 전통과 가치관을 담고 이어가고 있는 매체(媒體)인 한자를 규범적으로 전면 포기해 버렸습니다. 2천여 년 간 이어져 온 우리의 국자(國字)를 부정해 버린 것입니다. 이는 한민족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적 정체성을 부정한 것입니다. 지각 있는 많은 논자(論者)들은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을 「국어기본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전통문화와 민족의 역사를 단절시키게 될 것이라고 심각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청구인들은 이 같은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으로 인해 수천 년간 내려 온 우리말 한국어가 그 온전(穩全)한 모습을 잃어감에 따라 자신들의 국어생활과 정신문화가 황폐화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비장(悲壯)한 각오로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Ⅱ. 위헌 여부를 다투는 공권력작용 (심판의 대상)
청구인들이 이 사건 심판청구에서 위헌을 다투는 공권력작용은 크게 다음의 세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➀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국어생활을 강요하는 법령규정(法令規定)(이하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 ➁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에서 한자혼용(漢字混用)을 금지한 법령규정(이하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 ➂ 초‧중등학교의 국어(國語)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시킨 교육부(현재 교육과학기술부) 고시(告示)(이하 “이 사건 한자교육배제고시”).
1.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국어생활을 강요하는 법령규정들
(1) 국어기본법(2005. 1. 27. 법률 제7368호로 제정되고 2011. 4. 14. 법률 제10584호로 개정된 것. 이하 “법”이라 함) 제3조, 제14조 제1항, 제15조, 제16조, 그리고 국어기본법시행령(2005. 7. 27. 대통령령 제18973호로 제정된 것) 제11조는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과 국어생활을 강요하는 기본적인 법령규정들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어기본법
제3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국어"란 대한민국의 공용어로서 한국어를 말한다.
2. "한글"이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를 말한다.
3. "어문규범"이란 제13조에 따른 국어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제정한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표준 발음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등 국어 사용에 필요한 규범을 말한다.
4. "국어능력"이란 국어를 통하여 생각이나 느낌 등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듣기·말하기·읽기·쓰기 등의 능력을 말한다.
제14조(공문서의 작성) ① 공공기관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
제15조(국어문화의 확산) ①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바람직한 국어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신문·방송·잡지·인터넷 또는 전광판 등을 활용한 홍보와 교육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야 한다.
② 신문·방송·잡지·인터넷 등의 대중매체는 국민의 올바른 국어 사용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제16조(국어 정보화의 촉진) ①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국어를 통하여 지식과 정보를 생산하고 활용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도록 국어 정보화를 위한 각종 사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야 한다.
② 국가는 인터넷 및 원격정보통신서비스망 등 정보통신망을 활용하는 국민이 국어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시행하여야 한다.
③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3호에 따른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국민이 국어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국어기본법시행령
제11조(공문서의 작성과 한글 사용) 법 제14조제1항 단서의 규정에 의하여 공공기관의 공문서를 작성하는 때에 괄호 안에 한자나 외국 문자를 쓸 수 있는 경우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2. 어렵거나 낯선 전문어 또는 신조어(新造語)를 사용하는 경우
위 규정들은 얼핏 보아서는 한자배척 혹은 한자말살의 입법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으며, 또 국민들에게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언어생활을 강요하는 공권력성을 교묘하게 숨기고 있습니다. 이하에서는 다소 길지만 그 입법의도와 공권력성 그리고 기본권제한의 측면을 밝히고자 합니다.
(2) 우선, 법 제3조(정의)는 제1호에서 “국어란 대한민국의 공용어로서 한국어를 말한다.”고 정의하면서, 동시에 제2호에서 “한글이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아서는 이 개념규정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국어(國語)란 우리말 한국어(韓國語)를 가리키고, 또 한글이 우리의 고유문자임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2호는 우리말 국어를 표기하는 문자를 ‘한글’로만 한정지우고 ‘한자(漢字)’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습니다. 수천 년 간 우리말을 형성해 왔고 또 표기하는 문자로 사용되어 온 우리식의 음과 뜻을 지닌 한국화(韓國化)된 한자를 우리말 국어를 표기하는 문자에서 의도적으로 빼 버린 것입니다. 나중에 다시 살피겠습니다만, 한글과 한자(이하 ‘한국화된 한자’를 가리킴)는 엄연한 우리의 국자(國字)로서 우리말 한국어를 표기하는 양 날개요 두 바퀴입니다. 우리말에서 이 두 문자는 결코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분리되어서는 우리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법 제3조 제2호는 우리말 한국어를 표기하는 문자에서 국자(國字)의 하나인 한자를 인위적으로 배제시킨 것입니다.
(3) 이러한 인위적인 한자배척의 입법의도는 국어기본법의 여러 규정들에서 확인됩니다. 먼저 제3조 제3호는 어문규범(語文規範)의 개념을 정의하면서 “국어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제정한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표준 발음법, 외래어 표기법,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등 국어 사용에 필요한 규범”이라고 하여 한글 맞춤법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 한자에 관한 어문규범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법에서 말하는 어문규범은 한자를 배제한 상태에서의 문자생활에 관한 규범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한 같은 조 제4호는 “국어능력이란 국어를 통하여 생각이나 느낌 등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듣기‧말하기‧읽기‧쓰기 등의 능력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읽기‧쓰기의 능력’이란 한글로만 표기된 한국어를 읽고 쓰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법 제23조(국어능력의 검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실시하는 국어능력검정시험에서 한자를 읽고 쓰는 능력을 평가하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인위적인 한자배척의 입법의도는 법 제14조(공문서의 작성)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제14조 제1항은 “공공기관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법시행령 제11조(공문서의 작성과 한글 사용)는 공문서 작성 시 “괄호 안에 한자나 외국 문자를 쓸 수 있는 경우는 다음 각 호와 같다.”고 하면서, “1.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2. 어렵거나 낯선 전문어 또는 신조어(新造語)를 사용하는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들은 수천 년 간 사용해 온 우리의 국자(國字)인 한자를 외국 글자와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적 언어생활에서 표현수단으로 자유롭게 한자를 혼용하여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공문서(公文書)란 “행정기관에서 공무상 작성하거나 시행하는 문서(도면·사진·디스크·테이프·필름·슬라이드·전자문서 등의 특수매체기록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와 행정기관이 접수한 모든 문서”를 말합니다(행정업무의 효율적 운영에 관한 규정 제3조 제1항). 그러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서도 공문서에 해당하고, 따라서 청구인들은 이 사건 심판청구서를 작성하면서 법 제14조의 규율 때문에 자유롭게 한자를 혼용하여 의사표현을 하고자 하여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4) 요컨대, 국어기본법은 제3조(정의)와 제14조(공문서의 작성)를 통해 우리말 국어의 개념요소에서 국자(國字)인 한자를 인위적으로 배제하는 입법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 다음에서 살피는 바와 같이, 법 제18조(교과용 도서의 어문규범 준수)는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인 초․중등학교에서 학습의 기본교재로 사용하는 교과용 도서에까지 한자를 강제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어생활의 기본적인 정책방향과 규범을 설정하는 ‘기본법’(基本法)이 ‘한자가 배제된 국어의 개념’을 상정(想定)한 채, 국가기관에게는 한글전용‧한자배척의 국어정책의 수립과 시행을 요구하고 있고, 또한 국민에게는 한글전용‧한자배척의 국어생활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하에서 이 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피겠습니다.
(5) 한글전용‧한자배척의 국어정책은 법 제6조가 규정하는 국어발전기본계획의 수립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제6조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하여 5년마다 국어 발전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의무지우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와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수립한 ‘국어 발전 기본계획’ 을 보면, 한자의 보급과 발전에 관한 계획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으며 모든 계획은 한글 중심의 국어의 보급과 발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제2차 기본계획에서도 세종학당 확대 운영, 한글문화 확산을 위한 기반 구축 등을 추진과제로 제시하고 있으며, 그 밖의 추진과제에서 언급하고 있는 ‘국어 문화 확산’, ‘공공언어의 개선’, ‘한국어 보급’, ‘우리말 위상 강화’등의 추진과제에 한자는 전혀 상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국어발전기본계획의 실행기구라고 할 수 있는 국립국어원이 일반인의 국어능력 향상을 위해서 개설한 국어문화학교의 온라인강좌 개발현황(2007~2011년)을 보아도 한자교육은 국어능력의 개념요소로 아예 취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6) 나아가 국어기본법은 ‘한자배척의 국어문화’가 국민의 언어생활 속에서 확산될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구체적인 의무를 부과하고, 동시에 언론기관과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는 추상적인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법 제15조(국어문화의 확산) 제1항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바람직한 국어문화가 확산될 수 있도록 신문‧방송‧잡지‧인터넷 또는 전광판 등을 활용한 홍보와 교육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나아가 제2항에서는 “신문‧방송‧잡지‧인터넷 등의 대중매체는 국민의 올바른 국어 사용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법 제16조(국어 정보화의 촉진) 제1항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국어 정보화를 위한 각종 사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야 한다.”고 의무지우고 있으며, 나아가 제3항에서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에 따른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국민이 국어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들 규정에서 언급된 “바람직한 국어문화”, “올바른 국어 사용”, “국어정보화”, “편리한 국어 사용”은 그 표현 자체로서는 문제될 것이 없겠습니다만, 여기의 ‘국어’ 개념이 ‘한자가 배제된 국어’ 개념이라고 할 때는 문제가 매우 심각해집니다. 우리말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를 한글로만 표기하는 방식의 언어생활이 촉진되도록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언론기관 그리고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강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청구인들을 비롯한 국민으로 하여금 일상의 언어생활 속에서 우리의 국자(國字)인 한자를 더 이상 가까이에서 접할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일반 국민이 항상 접하는 대중매체와 인터넷에서 한자를 사라지게 함으로써 전 국민을 한자문맹(漢字文盲)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폐해는 나중에 자세히 살피겠습니다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상태입니다.
(7) 이상과 같은 한자배척의 언어생활 강요는 국어기본법에서 끝나고 있지 않습니다. 이 기본법을 필두로 해서 여러 법령과 관련 시책은 우리의 국자(國字)인 한자(漢字)를 국민의 언어생활 속에서 강제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이 정도에 이르면, 국가가 한자(漢字)를 ‘배척(排斥)’하는 수준이 아니라 ‘말살(抹殺)’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사건 심판청구의 직접적인 심판대상은 아닙니다만, 몇 가지를 적시(摘示)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❶ 우선,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제3조 제3항은 시장 등에게 허가를 받거나 신고하여야 하는 옥외광고물의 표시방법 등에 관해서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는데, 같은 법 시행령 제12조(일반적 표시방법) 제2항은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및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추어 한글로 표시하여야 하며, 외국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倂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접하는 옥외광고물에서도 한자(漢字)를 강제로 몰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시행령은 한자(漢字)를 아예 외국문자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❷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은 “사업자는 고객이 약관의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조항 위반으로 인한 계약무효의 효과나 제재는 없습니다만, 법률은 명백히 약관을 작성하고자 하는 모든 사업자에게 한글 사용을 강제하고 한자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❸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제5조(원산지 표시) 제1항은 농수산물과 농수산물 가공품의 원료에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제4항에서는 그 표시방법에 관하여 농림수산식품부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는데, 법 시행규칙(농림수산식품부령) 제3조 제1호 [별표 1]은 표시방법을 “한글로 하되, 필요한 경우에는 한글 옆에 한문 또는 영문 등으로 추가하여 표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❹ 「담배사업법」 제25조 제1항에 따라 담배의 갑포장지와 광고에 표시하여야 하는 흡연경고문구와 관련해서, 법 시행령 제8조(흡연경고문구의 표시기준)는 “흡연경고문구를 한글로 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❺ 「상업등기규칙」(대법원규칙) 제2조(등기기록 등에 사용할 문자 등)는 제1항에서 “등기를 하거나 신청서, 그 밖의 등기에 관한 서면(「전자서명법」 제2조의 전자문서를 포함한다)을 작성할 때는 한글과 아라비아숫자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2항에서는 상호와 외국인 성명에 한해 “한글 또는 한글과 아라비아숫자로 기록한 다음 괄호 안에 로마자, 한자, 아라비아숫자 그리고 부호를 병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❻ 이상과 같은 법령에 의한 강제적인 한자배척 외에도, 정부에서는 적극적인 시책(施策)을 통해 우리의 언어생활 속에서 한자를 몰아내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법제처가 추진하고 있는‘법령의 한글화 시책’입니다. 정부입법을 총괄‧조정하고 각 부처에서 입안한 각종의 법령안들을 심사하는 정부기관인 법제처는 2006년에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5개년 계획」(2006. 5. 30. 국무회의 보고)을 세우고 ‘법령의 한글화 시책’을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모든 법령문을 한글로 표기한다.’는 기본원칙 아래 “한자로 표기된 법령은 원칙적으로 한글로 바꾸되, 한글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거나 다른 단어와 그 뜻이 혼동될 우려가 있는 단어가 있으면, 예외적으로 괄호 안에 한자를 함께 쓰도록 한다.”는 기준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새로 제‧개정되는 법령은 물론이고 기존에 한자로 표기되어 있던 법령까지도 모두 한글로 바꾸는 개정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법령의 한글화 시책’은 함축(含蓄)된 뜻을 지닌 한자어로 된 법률용어까지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한글로 표기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실로 무모하고 위험한 실험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한자어로 된 법률용어의 뜻이 수범자(受範者)인 국민에게 정확하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원칙적으로 한자로 표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적어도 한자 다음에 그것을 읽을 수 있도록 괄호 안에 한글을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법령문’을 만들겠다는 취지는 바람직한 것이지만, 그것이 한자어 중심의 법령문(法令文)을 한글로 표기하면 달성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오히려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는 한자어의 어원(語原)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법률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하는 다수의 국민들에게 커다란 불편을 초래할 것입니다.
(8) 이상을 요약해서 정리하면, 국어기본법은 그 전체가 우리말 국어의 개념요소에서 우리의 국자(國字)인 한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그러한 기본전제 아래 한글전용‧한자배척의 국어정책의 수립과 시행을 국가기관에게 요구하고 있으며, 청구인들을 비롯한 국민들에게는 한자배척의 국어생활을 직․간접으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다만, 청구인들은 국어기본법의 관련 조항 중에서도 제3조, 제14조 제1항, 제15조, 제16조, 그리고 법시행령 제11조를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과 언어생활을 강요하는 대표적인 조항으로 잡아 그 위헌성을 다투는 것입니다.
이들 심판대상조항(“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으로 인해 청구인들은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하는 한자혼용(漢字混用)의 어문생활을 누릴 권리 내지 국가의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아니하고 자신의 어문생활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권리, 즉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및 헌법 제21조에 의하여 보장되는 한자를 사용한 의사표현의 자유, 즉 자신이 선택한 매체인 한자의 사용을 통하여 자신의 사고와 견해를 표현할 자유를 제약받고 있습니다.
2.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에서 한자혼용을 금지한 법령규정들
(1) 국어기본법(2005. 1. 27. 법률 제7368호로 제정되고 2011. 4. 14. 법률 제10584호로 개정된 것) 제18조 및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2009. 8. 18. 대통령령 제21687호로 개정된 것) 제26조 제3항은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에서 한자혼용을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어기본법
제18조(교과용 도서의 어문규범 준수)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초·중등교육법」 제29조에 따른 교과용 도서를 편찬하거나 검정 또는 인정하는 경우에는 어문규범을 준수하여야 하며, 이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협의할 수 있다.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수정)
③ 교과용도서를 편찬하거나 발행하는 자는 「국어기본법」 제18조에 따른 어문규범을 준수하여야 한다.
(2) 위 규정들(“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은 국민을 한자문맹(漢字文盲)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국어기본법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법문언에서는 이를 교묘히 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 규정들은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인 초․중등학교에서 학습의 기본교재로 사용되는 국정․검정․인정의 교과용도서에까지 한자를 강제로 몰아내고 있는 규정임이 분명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어기본법에서 말하는 “어문규범”이란 한자를 배제한 상태에서의 문자생활에 관한 규범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교과용도서를 편찬․검정․인정할 때 “어문규범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은 교과용도서에서 한자혼용(漢字混用)을 금지하도록 교육과학기술부장관에게 의무지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자배제의 입법의도는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수정)에서 더욱 구체화되어 있습니다. 같은 조 제3항은 “교과용도서를 편찬하거나 발행하는 자는 「국어기본법」 제18조에 따른 어문규범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교과용도서를 저술하거나 발행하려는 일반 국민에게 한자혼용의 교과용도서를 저술 및 발행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에서 한자혼용을 금지시키는 교과서정책은 ‘교과용도서의 편찬기준’에서도 확인됩니다. 우선, 교육과학기술부가 2009. 12.에 발간한 『국정도서 업무편람』은 「Ⅰ. 국정도서 편찬상의 유의점(공통사항)」의 “8. 표기와 인용의 정확성”에서 “교과용도서의 표기‧표현은 최신 어문규정 및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 따른다. … 의미의 정확한 전달을 위하여 부득이한 경우 괄호 안에 한자나 외국문자를 병기할 수 있다.”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의 사무위탁에 따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11. 9.에 발간한 『초‧중등학교 교과용도서 편찬상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도 「Ⅱ. 공통 편찬상의 유의점」의 “6. 표기와 인용의 정확성”에서 “교과용도서의 표기‧표현은 최신 어문규정 및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의미의 정확한 전달을 위하여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 괄호 안에 한자나 외국문자를 병기할 수 있다.”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이들 편찬기준에서의 한자혼용의 금지는 새로이 추가된 기준이 아니라 바로 「국어기본법」 제18조와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 제3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한자혼용의 금지규범을 그대로 확인한 것입니다.
요컨대,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은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인 초․중등학교에서 학생이 학습의 기본교재로 사용하는 교과서와 교사가 참조하는 지도서에까지 한자를 강제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학생들은 가장 기본적인 교육과정에서부터 한자를 쉽게 접하고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환경을 국가로부터 박탈당한 채 학습권의 침해를 받고 있으며, 동시에 교사는 각 담당과목의 기초개념들을 한자를 통해 학생들에게 보다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박탈당한 채 수업권의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들 규정은 자신의 저술내용을 한자혼용(漢字混用)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저작자와 출판사에 대해 그 표현수단을 금지시키는 것으로서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3. 초‧중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한 교육부 고시(告示)
국민을 한자문맹(漢字文盲)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국가의 의도는 초‧중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금지 혹은 경시하고 있는 교육정책에서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 정책은 1970년대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만, 현재는 「초․중등학교 교육과정」(1997. 12. 30. 교육부 고시 제1997-15호로 제정되고 2012. 7. 9. 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2012-14호로 개정된 것. 이하 “이 사건 교육과정고시”)에 담겨 있습니다. 이 고시는 초‧중등학교의 국어(國語) 교과에서 한자교육(漢字敎育)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초‧중등교육법」은 제23조(교육과정)에서 학교가 운영하여야 하는 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정하도록 하고(제1항 및 제2항), 학교의 교과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제3항). 이에 따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3조(교과)는 초‧중‧고등학교에서 교과로 가르쳐야 할 기본과목을 제시하고 그 밖에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교과를 추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공포한 이 사건 교육과정고시는 「Ⅱ. 학교 급별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에서 초‧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은 교과(군)와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편성한다.”로 규정하고, 교과(군)은 아래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분류하고, 그리고“창의적 체험활동은 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진로 활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2012호(2012. 7. 9)
초등학교
교과(군)
교과(군)는 국어, 사회/도덕, 수학, 과학/실과, 체육, 예술(음악/미술), 영어로 한다. 다만, 초등학교 1, 2학년의 교과는 국어, 수학,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로 한다.
중학교 교과(군)
교과(군)는 국어, 사회(역사포함)/도덕, 수학, 과학/기술․가정, 체육, 예술(음악/미술), 영어, 선택으로 한다. 선택은 한문, 정보, 환경과 녹색성장, 생활 외국어(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아랍어, 베트남어), 보건, 진로와 직업 등 선택 과목으로 한다.
고등학교 교과(군)
교과는 보통 교과와 전문 교과로 한다.
① 보통 교과는 기본 과목과 일반 과목, 심화 과목으로 구분한다. 보통 교과 영역은 기초, 탐구, 체육․예술, 생활․교양으로 구성하며, 교과(군)는 국어, 수학, 영어, 사회(역사/도덕포함), 과학, 체육, 예술(음악/미술), 기술․가정/제2외국어/한문/교양으로 한다.
② 전문 교과는 농생명 산업, 공업, 상업 정보, 수산․해운, 가사․실업에 관한 교과로 한다.
초‧중등학교의 국어(國語) 교과를 비롯한 모든 교과에서 한자를 삭제하고 한자교육을 폐지한 것은 1968년 10월 25일 「대통령 지시 한글전용 촉진 7개 사항」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이러한 대통령 지시에 따라 1968년 12월 「한글전용에 관한 총리훈령 제68호」가 내려졌고, 1969년 9월에는 「국민학교 교육과정 개정령 제251호, 국민학교 한자교육 폐지하라」는 문교부 훈령이 시달(示達)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출판사들은 조판(組版)까지 끝난 다음 학기 교과서[1970년 신학기]를 부랴부랴 한글전용 교과서로 다시 조판해야 했습니다. 당시 문교부 관리들은 ‘이미 교과서 조판이 끝났는데 어떻게 다시 조판(組版)하라는 말이냐.’고 항의하는 출판사에 대해 ‘한자를 뺀 자리에 영어나 다른 것을 넣는 것은 괜찮지만 한자만은 안 된다.’며 막무가내였다고 합니다.
정부가 국어에서 한자를 배제한 정책은 국어교과에서 한자를 배제하고 따로 ‘한문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를 선정하여 1973년 신학기부터 한문교과에서 한자조차 배우지 못한 중등학생에게 한문을 가르치게 한 과정에 명징(明徵)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어로서의 한자’는 배척되고 외국어로서의 한문교육만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랜 한글전용 교육으로 인해 지금 우리는 한자(漢字)와 한문(漢文)을 같은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한글전용론자들과 정책당국은 국민으로 하여금 한자와 한문을 혼동하게 함으로써 ‘한국어로서의 한자교육’마저 ‘외국어로서의 한문교육’으로 착시(錯視)하게 하여 마침내 「국어기본법」에서 교묘하게도 한자를 ‘외국문자’로 규정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글사랑 나라사랑’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한글 자체가 곧 한국어’라고 인식하게 함으로써 국민들이 한국어와 그 표기 문자인 한글의 차이조차 구분하지 못하게 하여 한국어를 적는 한자를 외국문자로 인식하게 하는 근인(根因)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1970년 신학기 이전, 그러니까 1948년 건국 이후 1970년 2월까지 한자교육은 국어 교과의 교육내용으로 행하여져 왔습니다.
예컨대, 1963년의 국민학교 교육과정(1963. 2. 15. 문교부령 제119호)을 보면, 국어 과목 4학년의 교육목표로 “일상생활에서 쓰는 한글과 한자, 숫자, 로마자와의 구별을 알도록 한다.”고 규정하였고, 국어 과목 6학년의 교육목표에서는 “행서의 초보를 쓸 줄 알게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1963년의 중학교 교육과정(1963. 2. 15. 문교부령 제120호)을 보면, 국어 과목의 학습내용으로 ‘Ⅴ. 한자 및 한문 지도’ 항목에서 그 의의와 목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자는 근 2천 년 동안, 우리의 글에 섞여 쓰이어 왔음으로, 아직도 동양 문화의 연원을 고찰하거나, 우리 문화의 정수를 연구함에 있어서는 한자에 대한 이해가 그 기본이 되고 있다. 한편 현재 우리와 가장 가까이 인접하고 있는 자유중국, 일본 등에서는 여전히 한자로서 그들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과 문화를 교류하고 국교를 조정하는 데 있어서도 한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한자 한문의 학습은 결코 과거의 진부한 봉건적인 시대 사상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며, 우리 조상들이 한 것 같이, 모든 의사 표시를 한자에 의존하려는 것도 물론 아니다. 다만 우리 생활에 가장 밀접한 범위 내의 한자와 한문을 효과적인 방법으로 짧은 기간에 습득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70년 신학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초‧중‧고등학교의 모든 교과에서 한자가 사라지고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도 배제되었습니다. 지금 중학교에서는 학교장 재량으로 한문교과(漢文敎科)를 선택할 수 있고, 고등학교는 교육청이 권장할 경우 학교장의 결정으로 2학년부터 한문을 교육할 수 있습니다만, 일부 고등학교 한문과 교사들은 전과연수(轉科硏修)를 받고 다른 과목을 담당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일부 대학의 한문교육과는 중등학교 한문 교사의 수요(需要)가 줄어들자 격년제(隔年制)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결국, 현재 한문 교과는 여러 선택과목 중의 하나로 지정되어 실제로는 거의 학습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1970년 이후로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교육의 부활을 주장하는 수없이 많은 주장과 청원이 있어왔지만, 현재 초‧중‧고등학교의 공교육과정에서 한자교육은 사실상 사라져버렸으며, 한자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점증하는 요구는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에 학부모들의 한자교육 요구를 차마 무시하지 못한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의 개정 교육과정(2009. 12. 23. 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2009-41호)에서부터 ‘초등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중점’사항으로 “(6) 정보통신활용교육, 보건교육, 한자교육 등은 관련 교과(군)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체계적인 지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지침은 한자교육을 초등학교 국어 교과의 내용으로 편입시킨 것이 아니라, 한자교육을 학교장의 재량에 맡겨 놓고 있는 수준입니다. 그나마 이로 인해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는 학교장에 따라서는 한자교육을 부분적으로 실시하는 초등학교도 있습니다만, 학교마다 천차만별이어서 국민교육으로서의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의 90% 이상이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한자가 정규 과목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응답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점은 교육부가 중‧고등학교의 한문 교과를 위해 1972년에 제정‧공포하고 2000년에 조정‧공포한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중학교 900자, 고등학교 900자)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육용 기초한자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중‧고등학교의 경우도 전 국민이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 상용한자(常用漢字)가 아니라 한문(漢文) 교육용 기초한자인 것입니다.
요컨대, 이 사건 교육과정고시는 초‧중‧고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글과 한자는 똑 같이 우리말 국어를 구성하는 기본요소이고, 양자가 분리되어서는 우리말 국어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인데도, 한자교육이 국어 교과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진국 중 모국어(母國語)를 초등교육에서 가르치지 않거나 중등교육에서 선택과목으로 정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이로 인해 미래의 주역인 우리 학생들은 자유로운 인격발현의 가능성을 국가로부터 차단된 채 학습권을 침해받고 있으며, 동시에 학부모의 자녀교육권 또한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Ⅲ. 우리말 국어에 있어서 한자의 의미와 기능
1. 서언
오늘날의 한글전용‧한자배척의 편향된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은 우리의 불행한 근대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근대사에서 일제(日帝)가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탄압‧말살하려는 정책을 펼쳤고, 당시 이에 저항하여 우리말을 지키려는 민족적 운동이 일어나면서, 한글 전용(專用)만이 애국애족(愛國愛族)하는 길이요 한자교육은 사대주의(事大主義)의 잔재라는 국수주의적(國粹主義的)인 한글전용론이 득세하게 되었습니다. 광복 이후 이러한 한글전용론자들이 국가의 어문정책(語文政策)을 주도하였고, 또 광복 직후 학생들이 우리말을 제대로 말하거나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형편에서 학생들을 비롯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한글이라도 깨우치게 하는 일이 시급한 상황에서[당시의 문맹률(文盲率) 70% 이상], 한글전용론은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일제 강점기 조선어[국어] 수난(受難)의 시기에 많은 애국지사와 학자들이 고통과 희생 속에서 조선어[국어]를 지켜내고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만들고 「우리말큰사전」의 편찬 등을 준비하며 조선어[국어]를 빛낸 것은 높이 기려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민족혼이 살아 숨 쉬고 서민 대중의 문맹(文盲)을 깨우쳐 준 한글도 살아 난 것입니다. 당시 한자를 고수하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글을 지지하지 않은 애국지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글전용의 애국애족의 마음이 지나쳐 한자를 우리말 국어에서 몰아내는 것으로까지 발전하여, 마침내 2005년의 「국어기본법」에서는 법률적 구속력까지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자말살의 입법의도는 그것을 정당화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고, 오히려 국어기본법 제1조의 목적(“국민의 창조적 사고력의 증진을 도모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하고 민족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함”)과 제2조의 기본이념(“국가와 국민은 국어가 민족 제일의 문화유산이며 문화 창조의 원동력임을 깊이 인식하여 국어 발전에 적극적으로 힘씀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어를 잘 보전하여 후손에게 계승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어가 문화창조의 원동력이 되고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한글과 한자에 대한 정확한 구사능력(驅使能力)이 필수조건입니다. 또한 창조적 사고력의 증진, 문화적 삶의 질 향상, 민족문화의 발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국어의 기본요소인 한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국어기본법이 한자를 의도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헌성을 논증하기에 앞서, 우리말 국어에서 한자가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을 간략히 살피고,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전개되어 온 한글전용의 심각한 폐해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2. 한민족(韓民族)의 전통문화의 요체요 국자(國字)로서의 한자
우리 민족의 문자역사를 보면, 1443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한글)을 창제‧반포하기 이전에는 고유의 표기수단인 문자를 가지지 못했었습니다. 2,100여년 전 중국의 한(漢) 무제(武帝)가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한 시기(B.C. 108년)에 중국에서 사용되던 한자가 우리말의 표기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2천여 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한자와 한문은 우리의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교육, 군사, 과학 등 모든 분야 발전의 원동력이요 문화적 토대로서의 역할을 하여 왔습니다.
세종대왕에 의해 한글이 창제‧반포된 후에 한자음(漢字音)을 분석 정리한 동국정운(東國正韻)이 편찬됨으로써 한자는 우리의 국자(國字)로 확립되었습니다. 따라서 한자는 한글과 더불어 엄연히 우리의 국자(國字)이며, 세종대왕은 한자를 쓰는 것을 전제로 「正音」(글자의 바른 음)을 창제한 것이었습니다.
한글과 한자는 처음부터 음운체계(音韻體系)가 같은 상보(相補)의 문자입니다. 한국어는 두 개 또는 세 개의 음절(音節)이 결합되어 하나의 어휘를 이룹니다. 각각의 음절은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이 모여 하나의 음절을 이루게 되는데 이 음운체계는 한자의 음운(音韻) 형식을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시에 응용한 것입니다. 참고로 한자의 음운법(音韻法)은 반절(反切), 즉 한자로 한자음을 표기하는 방식인데, 헌법(憲法)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例 : 憲法 / 憲=許建切, 法=方乏切
‘憲’의 음절은 ‘許建’으로 표기했는데, 첫 글자 ‘許’에서 초성 ‘ㅎ’을 취하고 두 번째 글자인 ‘建’에서 중성 ‘ㅓ’와 종성 ‘ㄴ’을 취해 ‘’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이 음절들을 조합하여 ‘ㅎ+=헌’으로 읽습니다. 마찬가지로 ‘法’의 음은 ‘方乏’의 첫 글자 ‘方’에서 초성 ‘ㅂ’을 취하고, 두 번째 글자 ‘乏’에서 중성 ‘ㅣ’와 종성 ‘ㅂ’을 취해 ‘’이 되고 이를 합쳐 ‘ㅂ+=빕’이 됩니다. ‘法’의 음인 ‘빕’은 15세기 말에 간행된 육조법보단경언해(六祖法寶壇經諺解)에 ‘법’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한글의 원명(原名)이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입니다. ‘훈민(訓民)’은 ‘백성을 가르치는’ 뜻의 접두사(接頭辭)이고 일반적 명칭은 ‘정음(正音)’입니다. ‘정음(正音)’을 풀어쓰면 ‘바른 소리’이고, ‘바른 소리’는 한자(漢字)의 음(音)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조선조(朝鮮朝)에서는 훈민정음을 가리켜 ‘정음(正音)’, ‘언문(諺文)’, ‘반절(反切)’등으로도 부른 것입니다.
종래 한자음(漢字音)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이 각각 달랐습니다. 반절(反切)은 한자로 한자음을 표기하는 방식이므로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은 한문(漢文)을 대해도 읽을 수 없었고 음도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세종께서 이를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만드신 것입니다. 세종께서는 훈민정음 창제 직후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석보상절(釋譜詳節), 월인석보(月印釋譜)와 같은 책들을 펴내어 한글과 한자의 다양한 쓰임을 보이고, 동국정운(東國正韻)을 간행하여 훈민정음 창제의 중요한 목적인 한자음을 중국 발음에 가깝게 바로잡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오랜 기간 언중(言衆)의 입에 올라 굳어진 한자어음(漢字語音)을 중국 발음에 가깝게 바로잡기는 어려웠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한문은 여전히 공용문자로 쓰여 왔지만 규방(閨房)에서는 정음(正音)을 사용했고 최세진(崔世珍), 류희(柳僖) 등 몇몇 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이루어져 자음(子音)과 모음(母音)의 명칭‧배열순서 등이 정해졌던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말 한자어를 표기하는 한자는 수천 년 우리의 역사와 함께 사용되어 오면서 이미 우리 문자화된 글자입니다. 그 속에 동화(同化)된 우리의 음(音)이 있고 우리의 생각과 정신이 스며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국화(韓國化)된 한자는 엄연한 우리의 국자(國字)인 것입니다. 수천 년간 한자로 사람의 이름을 짓고 한자로 땅 이름을 짓고 한자로 사상과 정서를 주고받고 한자로 지혜를 전수하고 한자로 정신문화를 이루어 왔다면, 그 한자가 우리의 국자(國字)요 전통문화의 요체(要諦)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3. 국어의 양 날개로서의 한글과 한자
우리말 한국어에 있어서 한글과 한자는 새의 양 날개요, 수레의 두 바퀴와도 같은 것입니다. 문자언어(文字言語)로서 한국어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은 우리의 선조들이 2천 년 이상 사용해 온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와 5백여 년 전에 창제된 표음문자(表音文字)인 한글을 혼용(混用)하여 두 문자의 장점(長點)을 절묘하게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세계에서도 흔치 않은 놀라운 언어체계입니다. 또한 한자와 한글의 이러한 혼용은 당연히 한국어의 음성언어(音聲言語)에도 깊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한자는 한글과 더불어 우리의 언어생활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 민족의 문화적 코드입니다.
주지의 사실로서, 우리 한국어는 한글로 표기되는 아름다운 고유어와 수천 년간 한자로 표기하여 온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둘이 상호 결합하여 한국인의 정서와 사상을 표현하는 한국어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한글은 1443년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만든 표음문자(表音文字)로 우리 고유의 말을 표기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자이고, 한자는 표의문자(表意文字)로서 이천 년 이상 사용해 오고 있는 문자입니다. 이를 보면 한국어는 표음문자(表音文字)와 표의문자(表意文字)를 섞어 사용하고 있는 독특한 언어체계를 지닌 언어로서, 이 두 문자의 장점이 그대로 활용된 우수한 언어이며 이는 세계에 널리 자랑할 만한 언어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떤 문자도 표음문자만으로는 또는 표의문자만으로는 이상적인 문자가 될 수 없습니다. 문자의 학습(學習)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표음문자에 비해 표의문자가 학습하기 어려운 점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한자의 ‘天’자는 그 자형(字形)과 더불어 ‘천’이라는 자음(字音)과 ‘하늘’이라는 자의(字義)를 모두 익혀야 합니다.
그러나 문자의 활용(活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표의문자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적게 받는 데 비하여, 표음문자는 그 제약을 많이 받습니다. 예를 들면, 한자의 경우 약 3,400년 전 은대(殷代)의 갑골문(甲骨文)도 오늘날 해독할 수 있는데 반해, 표음문자인 로마자는 불과 400년 전의 셰익스피어의 원작품을 영국인들도 해독하기 어려운 정도입니다. 우리 한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세종대왕 당시의 한글 문헌을 일반인들로서는 잘 해독할 수 없음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당시의 음운(音韻)이 몇 백 년 사이에 크게 변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표음문자로 기록된 문헌이 몇 천 년 경과된다고 하면, 거의 해독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공간성(空間性)에 있어서도, 중국의 경우를 보면, 방언(方言)의 차이가 심해서 음성언어로는 북경어(北京語)와 광동어(廣東語) 사이에는 심지어 ‘밥 먹다’라는 말도 통하지 않지만, 표의문자인 한자로는 어디에서도 능히 뜻을 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제주도의 방언을 들리는 대로 ‘세벤주롱다’와 ‘멘도롱다’로 적어 놓을 때, 외지 사람이 이를 읽을 수는 있어도 그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때 표음문자는 문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합니다.
이처럼 표음문자와 표의문자는 모두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고 장점만을 갖춘 이상적인 문자는 없지만, 활용의 관점에서 표음문자와 표의문자를 모두 취하고 있는 우리 한국어는 가장 이상적인 언어입니다. 필요에 따라 표음문자인 한글로 써야 할 때는 한글로 쓰고, 한글과 한자를 혼용(混用)해야 할 때는 한자를 적절히 선용(善用)하여 쓴다면, 이 두 문자의 장점만을 취하게 되는 가장 이상적인 문자활용사례가 되는 것입니다.
한글과 한자의 아우름은 표현과 의미전달의 기능면에서도 우수하여 우리의 민족 얼을 살리고 우리가 표현해야 할 문화어(文化語)를 나타냄에 있어 부족함이 없습니다.
한글로 표기되는 고유어에는 매우 아름다운 말이 많습니다. 개울, 시내, 얼음, 열매, 꽃, 가슴, 허리, 스승, 지아비, 추녀, 서까래, 파랗다, 보드랍다, 곱다, 가늘다, 후미지다 등 일상생활 주변의 감각적 사물에 대한 어휘들이 우리의 정서(情緖)를 드러내고 민족혼을 살리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근대 서정시인들, 이를테면 소월, 미당, 지훈, 목월 등의 시인들의 시구(詩句)에서 사용된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고유어의 특성은 옛 문화를 지키고 우리 아득한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어휘의 한계가 있음도 또한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학술적 고급용어나 새로운 외래문화 용어의 표기는 한글로는 불가능하거나 표현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는 한글이 지니는 문자적 한계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말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한자어는 일반 생활언어로도 크게 기여하고 있지만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언어를 표현하거나 수준 높은 민족 정서를 표출하는 데 매우 커다란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윤리(倫理), 도덕(道德), 철학(哲學), 과학기술(科學技術), 예술(藝術) 등처럼 섬세하거나 아름다움보다는 추상적 사상(事象)이나 학술적 언어에서 주로 한자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자어가 갖는 의미(意味)의 함축성(含蓄性)과 표의문자의 특성에 기인한 것입니다.
한국어는 이렇게 우리의 고유어와 한자어가 상호 보완하며, 수천 년의 역사를 기록해 오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말의 커다란 장점이며 축복입니다. 한국어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표음문자(表音文字)인 한글은 말하기 쉽고 배우기 쉬운 반면에 함축된 의미를 포괄하기 어려운가 하면,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는 글자마다 의미를 독립적으로 지니고 있어서 처음에는 익히기가 어렵고 글자의 모양이 복잡하여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듯이 보입니다만, 한 번 익혀두면 잘 잊히지 않는 특징이 있고 하나의 글자만 알아도 많은 낱말을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청구인들은 한국어를 학습하고 사용함에 있어서, 표음문자인 한글만으로 우리의 사상과 정서를 기술하고 전달하는 데 지장이 없다면 당연히 한글전용에 찬성할 것입니다. 그런데 표음문자인 한글만으로는 우리말을 정확하게 익히기에 미흡하고 우리의 사상과 정서(情緖)를 기술(記述)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첫째, 표음문자인 한글은 음절(音節) 하나하나가 모여 단어가 되고 그 단어를 읽어야 의미가 떠오르게 됩니다. 가령 “사 + 람”한 뒤에 “사람”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人”을 보고 바로 사람이라는 뜻을 떠 올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어휘가 다 그렇습니다.
둘째, 좀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한글만으로는 고급 문화어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초등학교를 지나 중‧고등학교, 대학으로 갈수록 이 현상은 더 심해지게 됩니다. 함축적 의미를 지닌 동양사상은 물론이고 고도로 발달된 과학용어를 한글로 된 고유어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원자(原子), 핵(核), 삼투압(滲透壓) 따위만 해도 우리 고유어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풀어 써 보아도 더욱 어색한 말이 되고 불편하기 그지 없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이들 한자어를 한글로 쓰고 이를 우리말이라고 하자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한자어를 한글로 썼다고 우리말이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한글로 써 놓으면 의미 전달이 매우 어렵습니다. “微分 積分”을 “미분 적분”이라 썼다고 우리말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한글로 쓴 미분 적분을 보고 그 개념을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원칙적으로 한자어는 한자로 써야 그 정확한 개념이 파악되고 또 의미가 제대로 전달됩니다.
현재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에는 외국인 출신의 원어민 교사가 상당수 근무하면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우리의 교육용 기초 한자를 모두 익힌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우리 한국어 속에 한자어가 있음을 알고 한자를 통해 우리말을 깨친다고 합니다.
예컨대, “茶器”라고 하면 얼른 ‘차 다’ ‘그릇 기’하면서 차 그릇이라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學問”이라고 하면 ‘배울 학’ ‘물을 문’해서 묻고 배운다는 뜻을 깨친다고 합니다. 영어나 독일어와 같은 외국어 단어를 무조건 외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자를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다기”, “학문”과 같은 한자어의 경우도 그 의미를 무조건 외어야 합니다.
요컨대, 한글과 한자는 우리말 국어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상보적(相補的)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4. 한자를 떠난 한자어는 언어(言語)가 아니다
우리말 국어의 어휘 중 약 70%가 한자어(漢字語)이며, 전문용어나 추상적인 개념어(槪念語)는 95% 이상이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글주의자들은 애초에 이들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꿔놓으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한자어를 그 발음만을 한글로 옮겨 적는 것으로 그 주장을 변경하였습니다. 그 명분은 ‘한자어는 이미 우리말이 되어 있으니 그 음(音)만을 한글로 적으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장이 1948년에 제정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에서 원칙론으로 반영되었고, 1970년 이후 초‧중등학교의 교육에서 전면적으로 관철되었으며, 급기야 2005년의 「국어기본법」에서 법률적 구속력까지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자어는 한자(漢字)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언어(言語)라는 사실입니다. 한자어를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그 음(音)만을 표기하면 그것은 언어가 아닌 ‘비언어(非言語)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한자어를 음기(音記)하면 왜 비언어로 변하는지 그 까닭을 밝히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류가 발명한 모든 문자는 상형(象形)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상형문자(象形文字)는 가시적(可視的) 사물을 사생(寫生)한 하나의 도형(圖形)입니다. 그 때문에 그 도형은 도형 자체가 사물(事物)의 의미(意味)를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리하여 도형과 도형이 갖는 사물의 의미는 불가분의 표리(表裏)의 관계에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도형 자체가 곧 의미인 것입니다. 때문에 상형문자는 실제의 사물을 보는 것처럼, 사고(思考)의 과정을 밟지 않고, 즉 청각(聽覺)을 통하지 않고, 그 도형을 봄과 동시에 그 의미를 직각(直覺)합니다. 이처럼 상형문자는 그 의미의 직접성(直接性)에서 오는 표의(表意)의 정확성과 그 의미 인식의 시간적 신속성(迅速性)에 있어 문자(文字)로서 인류가 바랄 수 있는 최고 이상(理想)을 구현한 문자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상형문자의 치명적 결함은 그 표현대상이 가시적(可視的) 사물에 한정되고 비가시적(非可視的) 사물을 표현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 결함 때문에, 한자(漢字)를 제외하고, 인류 역사상 발명되었던 상형문자(象形文字)들은 끝까지 살아남지 못하였는데, 상형문자를 발명한 종족들은 결국 그것을 버리고 자신들의 언어(言語)를 기호화한 표음문자(表音文字)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상형문자 본래의 성격, 즉 표의성(表意性)을 그대로 계승‧발전시킨 문자가 바로 ‘한자(漢字)’입니다. 그 형태에 있어 상형문자를 구상적(具象的) 표의문자라고 한다면, 한자는 추상적(抽象的) 표의문자라 할 것입니다. 한자는 언어를 통하지 않고 문자 자체로써 비가시적(非可視的) 사물을 완전히 표현할 수 있는, 인류의 예지(叡智)가 최상으로 발현된 고도의 문명문자(文明文字)입니다.
표음문자(表音文字)는 사물의 의미와 인식과의 사이에 놓인 하나의 교량인데 비하여, 한자는 상형문자와 마찬가지로 문자 자체가 곧 의미(意味)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한자를 보는 것은 바로 사물 자체를 보는 것과 같은 인식효과를 가져옵니다. 그 결과 한자를 통한 사물의 의미 인식은 가장 정확하고 불변(不變)하며 또 가장 신속합니다. 이에 비해, 표음문자는 언어의 발음을 기호화(記號化)한 것입니다. 때문에 그 문자 자체나 그것이 나타내는 음(音)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고, 몇 개의 음절(音節)이 모여 한 개의 단어를 형성함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표현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한글의 경우 그것을 통하여 사물의 의미를 인식함에 있어 세 개의 단계를 거칩니다. 이에 비해 한자는 보는 순간에 사물의 의미를 직각(直覺)합니다. 때문에 순 한글 문장과 한자혼용 문장과의 독해(讀解) 속도의 차이는 마치 음파(音波)와 광파(光波)의 속도차에 비유하여도 틀림이 없습니다.
이처럼 한자는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짐으로써 그것은 벌써 단순한 기호(記號)가 아닌, 지적(知的) 요소와 정적(靜的) 요소를 동시에 갖춘 하나의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문자 하나하나에 따로따로 철학(哲學)이 들어 있고, 시(詩)가 들어 있고, 체온을 느낄 수 있고, 체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자(漢字)는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난다’는 까닭은 그 속에는 우주의 사리(事理)와 인간의 정념(情念)이 동시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자의 음운론적(音韻論的) 특질은 그것이 단음절어(單音節語)라는 데에 있습니다. 즉, 한자는 1자(字)가 1의(義)가 되고 또 1음(音)이 됩니다. 이처럼 한자는 의미와 음을 한 자(字)에 압축하여 놓은 것이기 때문에 동음이의자(同音異義字)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한자는 중국의 그것에 비해 동음이의자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 까닭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의 한자음(漢字音)은 원래 중국의 원음(原音=吳音‧漢音)에 그 음운적(音韻的) 근거를 둔 것입니다만, 한자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 후에 그 발음이 우리 고유어의 음운(音韻)에 완전히 동화(同化)하였습니다. 즉, f, v와 같은 순치음(脣齒音), g, z와 같은 탁음(濁音), l과 같은 설권음(舌捲音), ai, ei, ao, ou와 같은 복모음(複母音), erh와 같은 특수모음(特殊母音) 등이 없어지고, 또 사성(四聲)도 거의 소실됨으로써 중국의 한자음보다도 훨씬 더 단순화되고 평면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동음이의자(同音異義字)가 중국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많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자자전(漢字字典)에는 한자음이 4백 80여 개가 있습니다. 자전(字典)에 수록된 한자가 1만 3천여 자(字)이면 1음(音) 평균 30자(字) 가까이, 그리고 상용한자를 2천 자로 한다면 1음 평균 4자(字)의 동음이의자(同音異義字)가 있는 셈이 됩니다. 심지어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국어음(國語音), 예컨대 가, 구, 수, 조 등은 40~50자로부터 170여 자(字)의 동음자(同音字)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자는 한자로 쓸 때에만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그 음(音)만을 표음문자로 기록하면 한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은 한자의 뜻을 추정(推定)해서 대강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한자어는 한자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이치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자는 곧 ‘언어(言語)’인데, 그 음(音)만을 표기하면 ‘비언어(非言語)’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가’ 발음의 한자인 ‘可’, ‘歌’, ‘加’는 ‘옮음’, ‘노래’, ‘더함’이라는 언어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음(音)만 ‘가’로 적으면 그 ‘가’는 ‘가’라는 소리일 뿐이요 언어(言語)는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는 고급 개념을 가진 2음절의 한자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낱개의 한자의 경우와 같이 2음절의 한자어 또한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에는 8만 8천여 개의 한자어(漢字語)가 있는데, 그 가운데 6만 8천여 자(字)가 동음이의(同音異義)라고 합니다.
일례를 들어, 국어사전에는 ‘사전’이 辭典, 寺田, 沙田, 私田, 史前, 死戰, 事前, 私錢 등 14~15개가 있습니다. 이 ‘사전’의 앞뒤를 바꾸면 ‘전사’가 되는데, ‘전사’에는 戰士, 戰死, 田舍, 前史, 戰史 등 10여 개의 ‘전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자(字) 하나는 社, 事, 思, 査, 史, 使, 四 등 1백여 개의 ‘사’자(字)가 있고, 이 ‘사’음(音)이 들어가서 되는 단어는 사가(私家), 사가(史家), 사각(四角), 사감(私感), 사감(舍監), 사경(死境), 사경(私耕), 사계(四季), 사계(斯界), 사고(事故), 사고(思考), 사고(史庫), 사고(社告), 사교(社交), 사교(邪敎), 사교(司敎) 등 2천여 단어가 있습니다. 또한 ‘전’음(音)의 글자는 全, 戰, 電, 展, 田, 前, 傳 등 150여 개의 ‘전’자(字)가 있고, 이 ‘전’자(字)가 들어가서 되는 단어는 전기(電氣), 전기(前期), 전기(傳記), 전기(轉機), 전가(轉嫁), 전가(田家), 전가(傳家), 전각(前脚), 전각(殿閣), 전각(篆刻), 전거(典據), 전거(轉居) 등 2,500여 단어가 있습니다.
이들 동음(同音) 또는 유사한 음(音)의 1음절어와 2음절어를 한글로 표기하여 놓고, 한자를 모르는 아동과 청소년이 암기를 통해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니, 어떤 천재(天才)도 불가능합니다. 결국 아동과 청소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들 한자어의 한글표기는 그저 ‘소리’일 뿐이요 ‘언어’가 아닌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한자를 없애자는 말은 한자어를 없애자는 말과 같습니다. 한자를 없애면 한자어는 저절로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한자어를 한글로 음기(音記)하면 그 뜻을 모르기 때문에 그 어휘는 사용하지 않게 되어 자연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한자를 없애자는 말은 우리말 한자어를 없애자는 말과 같습니다.
5. 창조적 사고력의 원천이요 학문발전의 초석으로서의 한자
영국의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은 일찍이 ‘언어(言語)의 한계가 곧 자기 세계(世界)의 한계’라고 갈파한 적이 있으며, 독일의 저명한 언어학자 훔볼트(Humboldt)도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정신구조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언어학을 연구하는 여러 학자의 이론은 인간의 삶에서 언어가 곧 대상세계 전체와 맞먹을 정도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한글은 배우기 쉽고 쓰기에 편리함, 12,000여 가지 소리를 담아내는 표현력, 자모음(字母音) 배열의 과학성(科學性), 컴퓨터 활용의 용이성(容易性)과 입력시간의 경제성(經濟性) 등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글전용만으로는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 구별의 곤란, 조어력(造語力)의 한계, 전통문화‧민족문화 계승의 한계 등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한자는 철학‧문학‧과학‧법학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추상적인 개념어의 도구로 사용되는 등 조어력(造語力)과 축약력(縮約力) 그리고 함축성(含蓄性)의 우수함, 한자 학습 시 좌우뇌(左右腦)의 자극으로 두뇌 발달의 촉진 등 어휘력과 사고력의 증진, 인성교육(人性敎育)과 문화전통 계승의 수단성(手段性), 상형문자(象形文字)인 한자의 시각적(視覺的) 효과로 한글이나 영어보다 기억의 용이성(容易性) 등 한글이 지니지 못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자는 한글주의자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결코 어려운 문자가 아닙니다. 한자는 세계의 문자 중 가장 습득하기 쉬운 문자입니다. 일본인의 실험에 의하면, 한자의 기억은 3~4세 때가 가장 빨라서 유치원의 아동에게 한자 천 자 정도를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합니다. 오랜 실험에 의하면, 일본의 세 살된 아동에게 한자를 읽게 하는 일은 여섯 살 아동에게 일본의 고유문자인 가나(假名)를 읽게 하는 것보다 쉽다는 것입니다. 한자는 인간의 추리력과 상상력을 정신능력의 밑바탕에서 길러주게 됩니다. 한자의 기억은 기계적인 암기(暗記)가 아니라, 사리(事理)의 이해로 성립되는 정신작용이기 때문입니다. 한자는 기억이 용이하고, 개념 파악이 정확하고, 또 그 기억이 오래 지속되는 것 또한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자를 사용하고 한자어가 국어가 된 나라에서 한자를 기억하는 것은 영어단어를 암기하는 것의 10분의 1, 혹은 100분의 1의 노력도 요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흔히 한자는 ‘글자모양(字形)이 복잡해서 배우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한자를 로마자와 같은 ‘문자(文字)’라고 생각하는 데서 생겨난 한자에 대한 오해입니다. 한자는 문자임과 동시에 말(언어)입니다. 한자의 ‘山, 川, 花, 月’은 영어의 ‘mountain, river, flower, moon’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한자는 문자(알파벳)가 아니라 그 자체가 말(言語 word)입니다. 한자에는 모든 글자마다 말을 표시하는 발음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문자의 역할을 하는 말의 뜻(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세계의 문자 가운데 이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은 한자 이외에는 없습니다. 말을 표시하는 표의문자인 한자를 표음문자인 알파벳과 비교하는 데서 큰 잘못이 생겨난 것입니다. 영어의 ‘mountain’은 말(단어)이고, m, o, u, n, t, a, i, n은 8자는 글자(문자)입니다. 그러나 ‘山’이라고 하는 한 글자로 되어 있는 한자는 문자임과 동시에 말(단어)입니다. 이렇게 보면 한자는 한 글자로 말을 나타내는데, 영어는 8개의 문자가 합쳐져서 mountain이라는 말이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한자는 세계에서 글자 수가 제일 적다는 것은 결코 과장된 주장이 아니라 과학적인 사실입니다. 한자는 말(word)이고 따라서 이러한 말이 2,000어(語), 3,000단어(單語)가 되어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의 국어에서도 2,000어, 3,000어의 단어는 초등학교에서 가르칩니다.
물론 한자자전(漢字字典)에는 수 만 자에 달하는 한자가 실려 있습니다만, 이는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문화유물로 생각해야 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문자를 신성하게 생각하여 한 번 만든 문자는 버리는 일이 없이 쌓아왔고, 그것이 수만 자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한자는 기껏 수천 자에 불과하고 그것도 부수(部首) 192개 정도를 알면 2,000자 정도를 배우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이 2,000자의 한자를 가지고 동양의 어떤 고전(古典)도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600자~1,000자 정도를 가르치고, 중‧고등학교에서 1,000자 정도를 더 가르쳐 2,000자 정도를 알면 한글‧한자 혼용으로 된 한국어 문장을 자연스럽게 읽고 쓸 수 있으며, 대학에서 국어국문학(國語國文學)이나 한문학(漢文學), 한국사(韓國史), 동양사(東洋史), 철학(哲學) 등의 학문을 전공하는 기초를 충분히 갖출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자는 습득한 자수(字數)가 증가하면 할수록 문장을 이해하는 범위와 깊이가 자동적(自動的)으로, 또 가속적(加速的)으로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한편, 한자교육이 어린이의 뇌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많습니다. 일본은 고유문자인 ‘가나[假名]’와 한자를 철저하게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일찍이 일본의 石井 勳(이시이 이사오) 박사는 1953년부터 한자교육에 대한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진행하여, 한자폐지와 알파벳을 쓰자는 논의에서 한자교육을 지켜냈으며, 오늘날 일본은 한자교육의 혜택으로 국가발전과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은 한자의 조기교육이 천재를 만든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년 전 전통문화연구회와 퇴계학연구원이 공동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포항 영일중학교의 국어시간을 이용해서 교과서의 한자어를 교육한 결과, 어휘력의 신장으로 교과 이해가 증진되어 실험 대상학급의 성적이 비교학급보다 크게 신장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뇌 활동과 한자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뇌과학 연구실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천의과대학의 뇌과학자 이장희 교수는 연구를 진행하는 중에 있으며, 초등교사인 남수극 박사는 한글과 한자에 대한 뇌 활성화 연구를 통해 한글전용보다 한자의 혼용이나 병기(倂記)를 할 경우 뇌의 반응이 활발하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처음에는 공산주의 이념에 따라 기성의 사고와 관념을 개조하기 위하여 한글전용의 문자정책을 단행하였으나,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1968년부터 중학교 과정(남한의 초등학교 5학년과정)에서부터 대학 전까지 2,000자, 대학에서 1,000자, 도합 상용한자 3,000자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최근에 소학교(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까지 상용한자(常用漢字)를 1,945자에서 2,136자로 확대하여 교육하고 있으며, 오늘날 일본은 한자를 혼용하여 쓰면서도 문자해독률이 100%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은 초등중학교까지 조기에 기본한자 3,500자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의 조기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한자의 조기교육이 필요하다는 국민여론은 많은 조사결과에서 분명히 확인되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2010년 국민의 언어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은 바람직한 한자교육 시작 시기로 ‘초등 1~3학년’(45.3%)을 가장 많이 선택했으며, 이어 ‘초등 4~6학년’(23.2%), ‘중학교’(14.1%), ‘5~6세 유치원’(13.5%), ‘고등학교’(1.1%), ‘필요 없다’(2.8%) 순이었습니다. 국민들의 68.5%가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교육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8대 국회의원의 90%가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실시에 찬성한다는 2009년의 설문조사결과도 있습니다. 그 밖에도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수많은 논자들의 논문이 있습니다. 2008년 9월에는 역대 국무총리 20인이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건의서에 서명해 정부에 제출한 바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학부모와 교사들도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2009. 11.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학부모와 교사 5,2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83%(학부모의 89.1%, 교사의 77.3%)가 초등학교 한자교육에 찬성하였다고 밝혔습니다.
6. 동아시아의 문화적 코드로서의 한자
한자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공통적인 의사소통 수단입니다. 한자는 거대 경제시장인 중국을 비롯하여 일본, 대만, 홍콩 등과 세계에 퍼져 있는 한자문화권과의 교류 및 교역에 있어서 갈수록 그 효용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최근 베트남에서도 프랑스 식민지 시절 폐지되었던 한자의 부활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17억 인구가 사용하는 한자는 한자문화권의 경제블록에서 구심점이자 역내 교류협력의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움에 있어서도 한자지식이 있다면 훨씬 용이합니다. 한자는 동아시아 문명의 정수(精髓)로서 지난 수천 년 동안 한‧중‧일 3국의 공용어로 기능하였습니다. 실제로는 몽골과 거란에서 여진과 돌궐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의 상당 부분을 아우르는 국제어가 한자였습니다. 그리하여 인종과 국가,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필담(筆談)을 통해 서로의 의사소통이 가능했습니다. 조선시대 통신사들이 일본을 방문하는 동안 일본어 한마디 못해도 일본 유학자들과 글을 주고받으며 아무런 지장 없이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장구한 동아시아의 역사를 놓고 볼 때, 그리고 미래의 한‧중‧일 3국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은 역사를 팽개치고 미래를 외면하는 매우 편협한 시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자는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 간의 문화적‧정서적 간격(間隔)을 좁힐 최고의 외교적(外交的) 도구(道具)라는 점에 유념하여야 할 것입니다.
7.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 ‧ 교육정책으로 인한 폐해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어문정책과 교육정책은 우리말 국어를 황폐화하여 국민의 언어능력과 지성을 저하시키고, 아동과 청소년의 학습능력과 사고능력을 감퇴시키며, 학문의 발전을 저해하고, 문화의 전통을 말살하는 엄청난 폐해를 낳고 있습니다. 이하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가. 우리말 국어의 황폐화와 국민의 언어능력 저하
(1)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한자가 사라져가면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이해하는 국어능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약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의 “2010년 국민의 언어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한국인의 국어능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 응답자 10명 중 4명 정도(42.5%)는 ‘그렇다’(매우: 6.2%, 대체로: 36.3%)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보통이다’는 27.2%, ‘그렇지 않다’는 30.4%(별로: 27.8%, 전혀: 2.6%)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어능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의견(42.5%)이 그렇지 않다는 의견(30.4%)보다 높습니다.
한자어로 된 우리말 국어를 한자로 익히지 않고 한글로만 인식하다 보니 한자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어휘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신문의 선거 관련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부동층’의 뜻을 물으면, ‘움직이지 않는 층’이라는 답변이 많이 나옵니다. 지지하는 후보자를 결정하지 못해 ‘떠다니는 것’(浮動)을 ‘움직이지 않는 것’(不動)으로 이해한 답변입니다. 어느 지방의 한 태권도 도장 문에 붙은 광고전단에는 ‘석기회원 모집’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는 ‘조기청소’나 ‘조기축구’의 조기(早起)의 뜻을 정확히 모르다보니 늦은 밤 운동하는 회원을 ‘석기회원’으로 엉뚱하게 표기한 것입니다. 어느 음식점의 메뉴표기에 ‘삼계탕’(蔘鷄湯)을 ‘參鷄湯’이라고 적어 놓아, 손님들로 하여금 이 집에서는 닭을 세 마리 넣어주는 것으로 오인하게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말 한국어를 한자로 익히지 않은 결과 우리말의 한글맞춤법도 틀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초등학생이 ‘재산’(財産)을 ‘제산’으로 쓰거나, 대학생들이 ‘현재’(現在)를 ‘현제’로, ‘게재’(揭載)를 ‘게제’로 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학의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지식인도 ‘풍비박산(風飛雹散)’을 ‘풍지박산’으로, ‘희한(稀罕)’을 ‘히안’으로, ‘재실(齋室)’을 ‘제실(祭室)’로, ‘(국기)게양’을 ‘(국기)계양’으로 잘못 쓰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문이나 정부의 보도자료에서도 이런 현상이 적잖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컨대, ‘국민들의 자괴감을 상세[상쇄(相殺)의 오류]시켜 주기 바란다’, ‘서울시 재설[제설(除雪)의 오류] 대책 비상’, ‘벌떼 출연[출현(出現)의 오류] 창문을 열지 마세요’, ‘대북 재제[제재(制裁)의 오류] 조치에 따른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피해’, ‘현금 결재[결제(決濟)의 오류] 비율도 비교적 높다’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2) 우리말 한자어에는 약 25%가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라고 합니다. 한글전용론자들은 동음이의어를 앞뒤 문맥으로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이미 한자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동음이의어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설령 한자를 아는 사람이라도 동음이의어를 한글로만 표기하면 언어생활에 꽤 혼란을 초래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다문화 가정’, ‘다문화 센터’라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유명 인사는 ‘다문화 센터’를 ‘우리의 전통 차(茶)를 마시는 곳’, 즉 ‘茶文化’로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노조 전임자의 ‘전임자’라는 말이 ‘전에 노조에 근무한 적이 있는 전임자(前任者)’인지, ‘지금 노조 업무만 전담하는 전임자(專任者)’인지 몹시 혼동됩니다. 또한 ‘대표팀 5연패’라는 말에서는 ‘연달아 이긴 5연패(連覇)’인지, ‘연달아 진 5연패(連敗)’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회사에 대한 감사’는 ‘고맙다는 감사(感謝)’인지, ‘조사한다는 감사(監査)’인지 혼란스럽습니다.
(3) 한자를 몰라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구분하지 못한 결과, 우리의 문화가 담긴 어휘를 영어나 외국어로 번역할 때 웃지도 못할 오역(誤譯)이 벌어지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어느 지방의 ‘김치축제’를 알리는 유인물에서는 ‘忠壯祠(Shrine)’라고 해야 할 사당(祠堂)의 영문표기를 ‘충장사(忠壯寺)’라는 절로 알고 ‘Temple’로 표기했으며, ‘향교(鄕校)’는 교량(橋梁)의 뜻인 ‘Bridge’로 표기했다고 합니다. 또 어느 대학에서는 ‘○○○ 絞首 정년퇴임’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린 적도 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대학의 영자신문(英字新聞)에서는 ‘주간교수(主幹敎授)’를 ‘Weekly Professor(週刊敎授)’로 표기한 적도 있습니다. 또 어느 대학의 신학선언문에서는 ‘세계선교사(世界宣敎史)에 유례(類例)가 없는’이라는 뜻의 영문을 ‘유래(由來)가 없는’으로 이해하여 ‘unprecedented unexampled’라고 표기해야 할 것을 ‘without origin’으로 표기했다고 합니다.
(4) 세계의 모든 언어에는 그 언어만이 갖는 독특한 성운(聲韻)이 있습니다. 영어나 독일어에는 악센트가 있고, 중국어에는 고저장단이 있으며, 일본어에는 탁음(濁音)과 반탁음(半濁音)이 있듯이 한국어에도 장단(長短)의 발음 구분이 있습니다. 지역명인 서산(瑞山)은 첫소리가 긴소리여서‘서:산’으로 읽어야 하고, 일반명사인 서산(西山)의 첫소리는 짧은 소리여서 ‘서산’으로 읽어야 합니다. 전라도 광주(光州)와 경기도 광주(廣州), 강원도 영동(嶺東)과 충청도 영동(永東)도 마찬가지로 한자로 써야 경기도 ‘광:주’와 충청도 ‘영:동’이 긴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발음으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한글만으로는 우리말의 장단을 표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도덕(道德), 도봉구(道峰區), 부자(富者), 부평(富平), 부천(富川), 화재(火災) 등은 첫소리가 모두 긴소리인데, 한글전용교육으로 발음교육을 무시하다보니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우리말의 중요한 요소인 장단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구 십’ 중 ‘이 사 오’는 긴소리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중 ‘둘 셋 넷 열’은 긴소리입니다. 국민의 표준언어생활을 선도해야 할 아나운서들조차 한글전용교육으로 인해 영어의 악센트나 발음은 중시하면서 정작 우리말의 장단은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5) 한글전용‧한자배척으로 인한 언어생활의 혼란과 국어능력의 저하는 여러 자료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03년에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文解能力)에 관한 국제비교를 행한 한 연구에 의하면, 한국 성인의 문해능력은 높은 고학력의 성인 비율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준이며, 특히 문서문해 영역에서는 최저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약 4분의 3(75.8%)은 문해력이 1~2단계로서 일상생활에서 지장을 받을 수 있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문해력이 4~5단계라야 여러 갈래의 정보를 종합해서 복잡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 즉 지도층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단계에 속한 한국 성인은 2.4%로서 23개 조사대상(나라 및 언어권) 중 22등입니다. 칠레가 1.5%로서 꼴찌입니다. 한국 성인의 고급문서 해독력(4~5단계)은 선두그룹인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스웨덴 35.5%, 노르웨이 29.4%, 덴마크 25.4%, 핀란드 25.1%). 위 연구에서는 국가별 학력별 문해력을 조사하였는데, 이 부문에서도 한국은 23개국 중 최저 수준입니다. 중졸자(中卒者)의 문해력은 23개국 중 18등, 고졸자(高卒者)는 23개국 중 22등, 대졸자(大卒者)는 23개국 중 23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서울대 국어교육과 민현식(閔賢植) 교수는 2009년에 발표한 한 논문에서 ‘한글 덕분에 단순 문맹률은 낮으나, 실질 문맹률의 지표인 문식성(文識性, literacy)이 낮고, 고학력자일수록 낮게 나타났다'는 요지의 발표를 하였습니다. 고학력자일수록 실질 문맹률(文盲率)이 높다는 놀라운 현상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1990년부터 중학교에서 한자가 선택 교과로 격하(格下)되어 한국인의 한자 및 한자어 이해력이 급감하고 있다”며 “한글전용으로 인해 한자어의 어원의식(語源意識) 상실로 한글세대에게는 한자어의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다의어(多義語)로 인식되는 다의어화(多義語化) 현상이 생기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그는 ‘진통’(陣痛: 산모가 해산 할 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통증)과 ‘진통’(鎭痛: 통증을 가라앉혀 진정시킴)을 들었습니다. 의대의 산부인과 학생들이 ‘산모가 진통을 시작하자 진통 주사를 놓았다’라고 한글체로만 익히다 보니 어원(語源)의식이 없어 동음이의어로 별개인 이 두 단어를 한 단어의 다의어인 것으로 착각하는 의식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미묘한 차이의 전문 개념의 한자어들에 대해 정확한 개념 변별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어휘력도 줄게 된다고 합니다. 가령 인재(人才)와 인재(人材), 배치(配置)와 배치(排置)의 경우에도 ‘人才’는 재주가 뛰어나게 놀라운 사람이란 뜻이고, ‘人材’는 학식이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配置’는 사람이나 물자 따위를 일정한 자리에 알맞게 나누어 둠이란 뜻이고, ‘排置’는 일정한 차례나 간격에 따라 벌여 놓음이란 뜻인데, 이런 변별력이 사라져 버리니 그만큼 어휘력과 문해력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즉, 문해력의 약화는 어휘력의 약화가 불러온 결과이고 어휘력의 약화는 한자말살로 한자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게 된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나. 초 ‧ 중등교육에서 학습능력의 저하와 인성교육의 부실
국가의 장래는 교육에 의한 인재(人材) 양성에 달려 있고, 그 교육의 핵심은 언어교육입니다. 교양어(敎養語)를 구사하고 분별력을 갖춘 민주시민은 올바른 국어교육을 통하여 양성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지 않고 중등학교에서도 중시되지 않는 선택과목(한문)에 편성되어 한자교육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학생들의 학습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가고 있습니다.
초‧중등교육에서 어휘(語彙)에 대한 이해는 가장 기본입니다. 그런데 우리말 어휘는 약 70% 이상이 한자어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한글로만 표기하여 가르치면 학생들은 그 정확한 의미에 접근하지 못한 채 그 뜻을 외우거나 대충 짐작으로만 이해하게 됩니다. 어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그 어휘가 들어간 문장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읽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입니다. 동기 유발이 되지 않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더 큰 고통이며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고, 학습능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어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그 어휘를 적절하게 구사하여 말과 글에서 활용하는 것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국민의 기본교육을 12년 동안 배우고서도 자기 모국어에 대한 정확한 구사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은 결코 학생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또한 한자는 5,000년 동양문화의 지혜가 녹아 있는 보고(寶庫)입니다. 한자로 된 고전(古典)을 통해 선조들의 교양과 예절, 윤리와 도덕,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없는 오늘의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논리부재, 철학부재, 사상부재, 도덕부재의 나락으로 빠져 들고 있다는 탄식(歎息)의 소리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다. 대학교육에서 학문의 지체(遲滯)와 퇴보
(1) 한자능력은 인문학(人文學)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필수적인 도구(道具)입니다. 서울대학교 수학과(數學科)에서는 전공강좌 두 개와 일반강좌 한 개를 영어로 들어야 졸업을 할 수 있는데, 고급강좌는 영어로 진행하고 영어로 시험을 출제하며, 다른 강좌는 한국어로 강의는 하지만 전공용어(專攻用語)는 영어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고급 전공용어는 일본어로 번역하지 못한 것이 있지만 상당수(相當數)의 전공용어를 번역해 쓰는데, 우리는 영어로 된 전공용어를 한국어로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이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수많은 수학용어를 한글로 써서는 교수와 학생 사이에 의미 전달이 불가능하고, 교수와 학생이 영어로는 뜻을 알아듣고 의사를 주고받으며 소통이 되지만 그것을 한국어의 어떤 한자어로 축약해서 표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므로 영어를 쓰는 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수학과의 사례는 한자를 버린 미래의 한국어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예고편(豫告篇)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2) 서울대학교 송철의(宋喆儀) 교수는 2004년도 서울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사전(事前)에 시험 유형과 시험일을 예고한 후 한자능력을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응시생 중 60%가 1백점 만점에 50점 미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80점 이상은 15%였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人爲的 ․ 遺産 ․ 主導的 ․ 學科’ 등을 읽지 못했고, ‘科目 ․ 文化 ․ 統一 ․ 靑春’ 등의 한자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1998년도에도 서울대학교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자능력을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韓國 ․ 哲學 ․ 美術 ․ 憲法 ․ 北韓 ․ 商品’과 같은 기초한자조차 읽지 못하는 ‘반국어문맹(半國語文盲)’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지식인의 요람인 대학을 다녀도 한자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읽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학의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글‧한자 병용으로 쓰인 수십, 수백만 권의 지식의 보고(寶庫)들이 그야말로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십 수 년 전에 한자 혼용으로 쓰인 선배들의 지식과 지혜조차도 습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실로 참담한 대학의 현실입니다.
(3) 또한, 인문과학 못지않게 자연과학 분야의 전문용어에 대한 이해가 한자교육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우리말 국어 속의 자연과학 용어는 거의 대부분이 한자어입니다. 1998년 물리학 용어와 한자교육의 상관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논문을 쓴 어느 자연과학도(自然科學徒)의 분석은 한글전용교육이 얼마나 뿌리 깊게 우리나라 과학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논문집필자는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을 표본 집단으로 하여 ‘상온’ ‘오수’ ‘호소’ 등 지구과학 용어에 대한 인지도(認知度)를 조사했는데, 다음의 통계는 1, 2년 후면 대학생이 될 고등학생들의 경우 자기들이 배운 과목의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가 얼마나 낮은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답사례(괄호 안은 誤答率) • 정답(正答率)
◦상온: 높은 온도(30.31)
• 常溫 - 年間 평균 온도, 또는 평상의 온도(34.84)
◦하우기후: 아래지방에서 내리는 비(6.96)
• 夏雨氣候 - 여름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기후(16.03)
◦성도: 별 지도, 별 그림(4.52)
• 星道 - 별이 지나가는 길(16.03)
◦하천: 아래 강(18.11), 하수도(14.98)
• 河川 - 강과 시내(정답자 없음)
◦호소: 물이 고여 있는 곳 [16.72%는 ‘호수’라고 문제를 고침]
• 湖沼 - 호수와 늪(정답자 전혀 없음)
논문집필자는 표본집단을 순우리말(A) 한글표기(B) 한자표기(C)로 나누어 조사했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A-8.2%, B-36.2, C-75.8%의 정답률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로써 한글전용으로 표기된 자연과학 용어보다 한자로 표기된 용어의 이해도가 두 배 이상 높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글로만 전문용어를 배운 학생들이 대학의 자연계열에 진학하여 전공분야의 전문용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입니다. 이러한 학문의 어려움은 자연계열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라. 문화적 정체성의 약화
(1) 최근 우리말 국어생활에서 한자가 급속도로 사라져가면서, 자기 자녀나 부모의 한자이름, 심지어 자기 자신의 한자이름도 쓰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30대 이상 성인 가운데 절반이 자녀의 한자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이명학 교수는 자녀를 둔 30~80대 서울시민 427명을 대상으로 자녀의 한자 이름을 쓰도록 한 결과, 47.8%인 204명이 틀리거나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또 한국어문회가 2010. 5. 전국 23개 대학교 학생 2,1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쓸 줄 안다는 학생은 60.2%, 자신과 부모의 이름을 모두 한자로 쓸 수 있다는 학생은 24.7%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대학생 10명 중 4명이 자신의 이름조차 한자로 쓸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2007년의 한 조사에서는 대학신입생 10명 중 2명이 자신의 한자이름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3년 사이에 두 배로 늘어난 것입니다. 이름의 한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온 우리의 전통문화가 요즘의 젊은 세대에 와서 그 맥이 끊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것입니다.
(2) 우리 민족문화의 일부인 성명(姓名)은 한자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성(姓) 중에는 한글발음으로는 같지만 한자가 다른 성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를 한글로만 표기한다면, ‘兪, 柳, 劉, 庾’, ‘鄭, 丁, 程’, ‘曺, 趙’, ‘申, 愼, 辛’, ‘呂, 余’, ‘盧, 魯’, ‘張, 莊, 將’, ‘姜, 康, 江’, ‘全, 田’, ‘林, 任’씨는 모두 같은 성씨가 됩니다. 또한 예컨대 ‘柳東烈’이라는 이름의 경우, 이를 한글맞춤법에 따라 한글로 쓰면 ‘유동렬’이 되는데, 그의 동생의 이름이 ‘柳信烈’이라고 할 때 이를 한글로 표기하면 ‘유신열’이 됩니다. 두 사람은 친형제 간으로 항렬자(行列字)에 따라 이름이 지어진 것이지만 한글 표기에서는 항렬자가 서로 다른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3) 한글로만 기록된 각종 문화재의 안내문은 마치 암호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글을 읽고 안다고 착각하고서는 그 정확한 뜻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문화재의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서는 일본어 안내문이나 중국어 안내문을 읽어보거나 아니면 영문 안내문을 읽어야 합니다. 한자를 버린 한국어는 우리 문화재 설명에서조차 부끄러운 자화상(自畵像)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음의 안내문은 수원시에서 발행한 성곽의 꽃 화성(華城)과 축제라는 안내 책자에 담긴 한글 설명문입니다.
“각루는 정찰, 군량운반통로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원거리 전망이 좋은 성곽 모퉁이 요소에 자리하고 있다. 화성의 각루는 4개소가 있으며 동북각루는 성의 동북요새지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방화수류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동북각루는 건축미가 화려하면서도 우아하여 화성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는 곳이다. 방화수류정에서 바라보는 용연위에 비친 달빛과 어우러진 버들가지는 용지대월이라 하여 수원팔경 가운데 으뜸이다.”
화성, 각루, 요소, 동북각루, 동북요새지, 방화수류정, 용연, 용지대월, 수원팔경 등 한글로 표기된 어휘는 한자를 모르는 한국인에게는 외국어나 암호와 같이 그 뜻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심지어 한자를 잘 아는 한국인이라도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일본어 안내문의 한자를 보고서야 어휘의 뜻을 그나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재를 우리는 잘 알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인이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Ⅳ. 심판대상의 위헌성
세 유형의 이 사건 심판대상은 2천여 년 동안 이어져 온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국자(國字)인 한자(漢字)를 부정하는 기본전제에 입각해서, 우리말 국어의 개념요소에서 한자를 근원적으로 배제시킨 채, 그 바탕 위에서 공적 언어생활에서는 물론이고 국민의 기본적인 공교육과정에서부터 일상의 언어생활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로 한자를 말살시킴으로써 전 국민을 한자문맹(漢字文盲)으로 몰아넣어 우민화(愚民化)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한민족(韓民族)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적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가고 있습니다.
청구인들은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이 다음과 같은 논거로 헌법에 위반됨을 주장합니다.
첫째,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과 이 사건 한자교육배제고시는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人格發現權) 및 학부모의 자녀교육권(子女敎育權)을 침해하며, 나아가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은 자신의 저술내용을 한자혼용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저작자와 출판사의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은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하는 청구인들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自己決定權),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을 누릴 권리 내지는 한자문화향유권(漢字文化享有權) 및 헌법 제21조의 한자를 사용한 의사표현의 자유를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둘째,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은 문화의 자율성과 국가의 중립성을 요구하는 문화국가(文化國家)의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셋째,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9조를 명백히 위반하고 있습니다.
넷째,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은 ‘한글‧한자 혼용체의 언어형식으로 표현된 기미독립선언서와 헌법전은 우리말 국어로 표기된 것이 아니다.’고 규범적으로 선언하는 것이어서, 이는 하위법인 법률이 상위법인 헌법의 언어형식과 국어개념을 규범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위헌입니다.
다섯째,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불문헌법(不文憲法)에 위반됩니다.
이하에서 이들 위헌 논거를 자세히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1.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위헌적 침해
가. 이 사건 교과용도서 한자혼용금지규정 및 한자교육배제고시의 기본권침해성
위에서 자세히 살핀 바와 같이, 「국어기본법」 제18조와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 제3항은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인 초․중등학교에서 학생이 학습의 기본교재로 사용하는 교과서와 교사가 참조하는 지도서(指導書)에까지 한자(漢字)의 사용을 금지시킴으로써, 공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이 한자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익힐 수 있는 가능성을 인위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 한자교육배제고시는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인 초‧중등학교의 국어(國語) 교과에서 한자교육(漢字敎育)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판대상규정들은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人格發現權) 및 학부모의 자녀교육권(子女敎育權)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입니다.
(1) 국가의 교육권한과 그 헌법적 한계
헌법 제31조는 제1항에서 국민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표현된 ‘교육을 받을 권리’의 실질적 내용은 객관적으로 표현한다면, 국민에게 실효성 있는 교육을 제공해야 할 국가의 의무나 과제를 뜻합니다. ‘교육을 받을 권리’란 국민이 위 헌법규정을 근거로 하여 직접 특정한 교육제도나 학교시설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기보다는 모든 국민이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제도를 제공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것입니다. 즉, ‘교육을 받을 권리’란, 모든 국민에게 저마다의 능력에 따른 교육이 가능하도록 그에 필요한 설비와 제도를 마련해야 할 국가의 과제와 아울러 이를 넘어 사회적‧경제적 약자도 능력에 따른 실질적 평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을 실현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뜻합니다.
나아가, 헌법은 제31조 제6항에서 입법자로 하여금 학교교육에 관한 교육제도를 법률로 정하도록 위임함으로써 학교교육에 관한 포괄적 책임과 규율권한을 국가에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헌법은 제31조에서 교육에 대한 국가의 포괄적인 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의 교육권한은 교육과정, 교육목표, 교육내용, 교육방법 등에 관련된 모든 사안에 대하여 규율하고, 지도하고, 통제하는 기능, 즉 학교제도의 조직, 계획, 지도 및 감독에 관한 모든 권한을 포괄합니다. 국가의 교육권한에 일차적으로 속하는 것은 모든 청소년에게 그의 능력에 따른 교육 가능성을 제공하기 위하여 학교제도를 계획하고 조직할 권한입니다. 학교를 조직상으로 분류하는 것뿐 아니라 또한 교육내용에 관한 결정권, 즉 교육과정․교육목표 및 수업목표를 확정하고 수업교재를 결정(교과서의 선정)하는 것도 국가의 형성영역에 속합니다. 국가는 원칙적으로 학부모로부터 독립하여 학교의 교육목표를 확정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헌법상 부여된 학교교육의 과제를 이행함에 있어서 광범위한 형성의 자유를 가지고 있으나, 국가의 형성권은 무제한적인 것은 아닙니다. 국가교육권한의 한계는 무엇보다도 부모의 자녀교육권과 자녀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에 있습니다.
(2)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학습권)의 침해
(가) 교육이 개인의 인격발현과 행복추구에 있어서 가지는 의미와 국가의 미래와 번영에 대하여 가지는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현대의 사회복지국가에서 교육은 문화적 생존배려의 가장 핵심적 영역에 속합니다. 교육은 헌법상 보장된 개인의 자유를 행사하기 위한 필수적 요건에 속합니다. 개인은 직업의 자유를 행사하기 위하여 그 전제조건으로서 직업교육을 비롯한 교육을 받아야 하며, 나아가 직업행사와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인격을 자유롭게 발현하고 자기결정권(自己決定權)을 의미 있게 행사하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지식과 교양을 갖추어야 합니다. 따라서 개인이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과 ‘직업의 자유’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해야 할 과제가 교육제도에 부과됩니다. 국가에 의한 공교육의 제공은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과 직업교육의 자유를 행사하기 위한 실질적 조건의 실현에 관한 것입니다.
‘개인이 국가의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않고 교육을 통하여 자유롭게 자신의 인격을 발현할 자유’인 학습의 자유(학습권)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기본권과 평등권의 성격을 가진 헌법 제31조의 ‘교육을 받을 권리’에 의하여 보호되는 측면이 아니라 행복추구권과 같은 자유권에 의하여 보호되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도 ‘과외금지결정(課外禁止決定)’에서 사교육(私敎育=課外)을 금지하는 국가의 조치로 인하여 제한되는 기본권을 헌법 제31조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아니라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에서 도출되는 ‘자녀의 인격발현권’이라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자유(自由)’와 ‘자기결정권’은 교육영역에서도 구현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에 속합니다. 자신의 개인적 생활을 자율적으로 형성하고자 하는 자는 독자적 인생관을 형성하고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기본적인 교양과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개인은 교육을 통해서만 자신의 삶을 자기책임 하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고, 이로써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자유란 ‘구속과 의존성의 부재(不在)’를 의미하고, 이는 곧 ‘자기결정영역의 확대’로 이어집니다. 개인은 교육을 통해서만 지식과 정보의 우위에서 비롯되는 타인의 결정권한과 외부에 대한 의존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교육목표의 확정에 있어서 그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적 근본규범은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입니다. 이로부터 학생이 자율적이고 자주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목표를 설정하고 교육제도를 형성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나옵니다.
자녀는 학습과 교육에 있어서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가능하면 국가의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발현할 권리(학습의 자유 또는 학습권)를 가집니다. 교육의 영역에서 자녀의 인격발현권은 교육을 통한 인격발현권 또는 교육에 관한 자기결정권, 즉 자신의 교육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의미하고, 이는 언제, 무엇을 누구로부터 어떻게 배울 것인지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말합니다. 학습과 교육에 있어서 자유로운 인격발현권은 헌법 제15조의 ‘직업의 자유’ 또는 보충적으로 일반적 자유권인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호됩니다. 직업선택의 자유는 ‘직업교육장선택의 자유’를 직업을 선택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포함하는데, 직업교육장선택의 자유는 단지 직업과 연관된 교육을 보호하므로, 교육장소가 직업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초․중등교육의 경우에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일반적․보충적 자유권인 자유로운 인격발현권(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호된다고 할 것입니다.
(나) 이 사건으로 돌아와 보건대, 특히 이 사건 한자교육배제고시는 우리의 국어생활에서 필수적인 지식인 한자를 국어 교과에서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한글과 한자는 똑 같이 우리말 국어를 구성하는 기본요소이고, 양자가 분리되어서는 우리말 국어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한자교육은 국어 교과의 기본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우리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학생들에게 길러주는 것이 초‧중등학교 국어 교과의 목표일진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통한 한자어의 습득이 필수적입니다. 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치지 않은 채 우리말 한자어를 익히게 하는 것은 맹목적으로 한자어를 외우게 만드는 것이고, 언어에 관한 인지능력(認知能力)과 학습능력(學習能力)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초등학교의 현장에서는 한자교육과 학생의 학습능력 사이에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많은 조사연구들이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기본적인 공교육을 받은 학생은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형성하고 자기책임 하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공교육과정을 통하여 그에 필요한 기본적인 교양과 지식을 제공받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공교육과정을 거친 학생은 어문생활영역에서 자신의 인격을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가 편향적인 문화정책을 통하여 공교육과정에서 전반적으로 한자를 배척하고 한글전용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공교육과정을 거친 학생도 한국어의 주된 구성부분인 한자어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기본 한자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공교육을 받은 후에도 자신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이 양산(量産)되고 있으며, 이들은 한자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로 아무런 준비 없이 사회와 대학에 진출함으로써 국가의 한글전용정책에도 불구하고 결코 우리 언어생활에서 제거할 수 없는 한자 및 한자어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습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한자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하여 대학의 강의에서 대부분 전문적 한자어로 전달되는 학문적 인식을 수용하기 어려우며, 나아가 한글과 한자가 혼용된 전문서적에 접근할 수 없는 등 학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 진출해서도 일반기업의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담당하는 업무에서 한자에 대한 기본 소양은 일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필수적인 능력에 속합니다. 한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는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할 수 없고 서면을 정확하게 작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자기 나라의 헌법전(憲法典)을 읽을 수도 없는 국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요컨대, 국민이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적인 공교육을 받았음에도 한국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고 대학과 사회에 진출하여 한국어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이는 공교육의 주체로서의 국가가 헌법상 부과된 교육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이와 같은 결과가 발생한 것은 무엇보다도 공교육과정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하는 잘못된 국어교육정책에 기인합니다. 국가는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하고 교과용도서에서 한자를 축출함으로써 학생들이 공교육과정에서 한국어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한자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봉쇄하였고, 그 결과 이러한 편향적인 국어교육정책에 의하여 교육을 통한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가능성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습니다.
(다) 이 사건 심판대상으로 인하여 학생의 ‘교육을 통한 자유로운 인격발현권(학습권)’이 침해되고 있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심각한 폐해가 초래되고 있음에도, 이를 정당화하는 합리적인 입법목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국가는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는 있으나, 이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헌법적으로 허용되는 정당한 목적을 추구해야 하고, 나아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 이상으로 개인의 자유영역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입법목적을 규명(糾明)함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국가가 왜 지난 2천여 년 동안 우리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한자를 배척하고 한글을 전용하고자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자를 배척하고 한글전용을 실현하고자 하는 국가의 교육정책을 정당화하는 어떠한 입법목적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가령,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을 국가의 결단에 기초한 ‘한글전용문화의 실현’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입법목적은 헌법상의 문화국가원리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에 헌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입법목적입니다. 뒤에서 자세히 살피는 바와 같이, 문화국가(文化國家)는 문화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고 다양한 문화의 방향에 대하여 중립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국가는 특정 문화를 배척하거나 특정 문화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국가는 문화의 생성을 주도할 수도 없고 문화의 방향을 결정할 수도 없으며, 다만 문화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문화에 대한 중립성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문화정책을 통하여 문화를 지원하고 조성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을 ‘한글전용정책을 통하여 국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상태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이를 ‘어문생활에서 국민의 편이(便易)’라고 한다면, 단순히 국민의 편이를 위하여 자신의 모국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을 양산하여 국민의 정신적․문화적 수준을 전반적으로 저하시키고 국민을 우민화(愚民化)하는 것은 명백히 법익균형성(法益均衡性)의 원칙에 반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입법목적의 비중은 하찮은 반면 한글전용정책으로 인하여 개인과 국가에게 초래되는 손해는 너무 막대하기 때문에, 입법목적의 비중과 기본권제한의 효과가 적정한 비례관계(比例關係)를 현저하게 일탈(逸脫)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을 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에서 한자혼용을 금지한 법령규정 및 초‧중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시킨 교육부(현재 교육과학기술부) 고시(告示)는 교육의 영역에서의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을 위헌적으로 침해하는 규정입니다.
(3) 부모의 자녀교육권의 침해
(가) 뿐만 아니라, 위 심판대상조항들은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천부인권(天賦人權)으로 인정해 왔습니다. 부모의 자녀교육권은 비록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는 모든 인간이 국적(國籍)과 관계없이 누리는 양도할 수 없는 불가침(不可侵)의 인권(人權)으로서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헌법 제36조 제1항,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10조 및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는 헌법 제37조 제1항에서 나오는 중요한 기본권입니다. 부모의 교육권이란, 자녀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인생관․사회관․세계관에 따라 자녀의 교육을 자유롭게 형성할 부모의 권리를 말합니다.
헌법은 제31조에서 국가에게 학교교육에 관한 독자적 과제를 위임함으로써, 학교는 부모교육의 단순한 보조기관이 아니며 국가는 부모의 교육권으로부터 독립된 독자적인 교육권한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국가는 학교의 제도, 조직, 학교유형, 교육목표, 수업의 내용 및 방법에 관하여 결정할 수 있는 광범위한 형성권을 가집니다. 따라서 학교교육은 원칙적으로 국가교육권한에 귀속되는 영역인 반면, 가정교육과 사교육(私敎育)의 영역은 원칙적으로 부모의 자녀교육권에 속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부모의 교육권이 헌법 제31조에 의하여 학교교육의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며, 부모의 권리는 학교영역에서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부모와 학교의 교육은 동일한 자녀의 인격발현을 위한 것이고, 교육의 주체로서 부모와 학교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학교의 ‘공동의 교육과제’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학교교육은 원칙적으로 국가교육권한의 영역으로, 국가는 학교교육에 관한 포괄적인 규율권한을 가집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의 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계획을 세울 자연적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학교교육이 자녀의 전체 교육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부모가 학교교육에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학교교육에서도 부모의 자녀교육권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나) 첫째, 국가는 학교교육을 실시함에 있어서 다양한 세계관과 문화관에 기초한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존중해야 할 의무를 진다는 점에서, 부모의 자녀교육권은 학교교육의 영역에서 존중될 것을 요청합니다. 학교교육은 원칙적으로 국가교육권한의 영역으로, 국가는 학교교육에 관한 포괄적인 규율권한을 가집니다. 특히 국가와 부모가 자녀의 학교교육과 관련하여 서로 다른 것을 원하는 경우, 국가의 교육권한과 부모의 자녀교육권은 충돌할 수 있습니다.
자녀의 세계관과 문화관의 형성에 관한 교육은 자신의 세계관과 문화관에 따라 자녀의 교육을 형성하고자 하는 부모 교육의 전반적 기초에 해당하고 국가는 세계관적․문화적 중립의무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영역은 일차적으로 부모교육권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관과 문화관의 영역에서도 국가의 교육권한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닙니다. 가령, 인간의 성(性)과 윤리는 일차적으로 부모의 교육 영역이지만, 또한 사회적 행위의 일부로 다양한 사회적 연관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자녀 전체교육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간주될 수 있고, 이에 따라 학교에서 수업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과목의 성격이 개인의 세계관․문화관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국가는 교육의 목표와 내용을 정함에 있어서 부모의 다양한 가치관을 고려하고 존중함으로써 가능하면 세계관적․문화적으로 중립적인 학교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자녀의 교육에서 한자문화를 배제한 채 한글전용의 교육을 시킬 것인지 아니면 한자가 한국인의 개인적‧집단적 정체성(正體性)의 기반을 이루는 핵심적인 문화요소라는 것을 인식하여 기초교육과정인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를 필수적인 교육내용으로 가르칠 것인지의 문제는 단순히 교육내용이나 교육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학부모 자신과 자녀의 정체성에 관한 결정이며 자녀의 전체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결단에 해당합니다. 즉, 학교교육에서 한자교육의 여부는 한국어에 대한 가치관과 문화관의 문제이며, 국가 내에서 언어문화의 성격을 결정하는 가치관적 결단입니다. 국가가 잘못된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한글전용 교육정책을 추진한다면, 국가는 적어도 부모의 자녀교육권 및 자녀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을 존중하여 학교에서 한글전용 교육이 강제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규율해야 할 의무를 집니다. 학부모는 자녀교육권을 근거로 그의 자녀가 한글전용 수업을 받을 것인지에 관하여 결정할 수 있어야 하므로, 국가는 한글전용 교육을 거부하는 학부모와 학생에 대하여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는 대체수업을 제공하도록 규율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공교육의 범주 내에서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이 특별히 존중되어야 하는 문화적 영역에서 학부모에게 한글전용의 문화정책을 강요하면서 학부모의 상이한 문화관(文化觀)을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을 전혀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문화적으로 중립적인 학교교육의 요청을 무시하고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다) 둘째, 국가는 한글전용 교육정책과 문화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학부모에게 학교선택권을 부여해야 할 의무를 진다는 점에서, 부모의 자녀교육권은 학교교육의 영역에서 존중될 것을 요청합니다.
부모의 자녀교육권이 자신의 가치관․세계관에 따라 자녀의 교육을 자유롭게 형성할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자유는 자신의 가치관과 교육관에 부합하는 교육가능성이 국가에 의하여 제공되지 않는 경우, 사립학교의 설립과 선택을 통하여 자녀교육에서 자신의 가치관과 교육관을 실현할 자유를 포함합니다. 따라서 사립학교의 자유는 부모의 자녀교육권에 그 헌법적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부모에게는 사립학교의 설립이나 선택을 통하여 자신의 특별한 교육관이나 가치관을 실현하는 가능성이 주어집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학부모가 국가의 한글전용 교육정책의 폐해를 크게 우려하여 이러한 교육방법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한자교육을 실시하는 사립학교를 설립하거나 또는 이러한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해야 합니다. 사립학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이유가 궁극적으로 학부모와 자녀의 기본권보장에 있다면, 사립학교 ‘선택의 자유’가 전제되지 않는 사립학교 ‘설립의 자유’는 무의미합니다. 따라서 사립학교설립의 자유로부터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는 부모의 권리’가 나옵니다.
그러나 현행 학군별 강제배정방식은 부모의 사립학교선택의 자유와 사립학교의 학생선택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사립학교의 자유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습니다. 사립학교설립의 자유는 허용하면서, 국공립 또는 사립의 여부를 막론하고 강제로 학교를 배정함으로써 학부모로 하여금 자신의 교육관․가치관에 부합하는 사립학교를 선택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공립학교에 대한 대안으로서 사립학교제도는 현실적으로 무의미합니다.
국가가 부족한 공교육시설을 단지 보완하는 기능만을 사립학교제도에 부여함으로써 학부모에게 사립학교를 통하여 자신의 교육관(敎育觀)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실상 제거하였다면, 국가는 이에 상응하여 공교육제도 내에서 교육과정을 제공함에 있어서 학교선택권의 실질적인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현행 학군별 강제배정방식으로 인하여 한글전용 교육정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학부모에게 자신이 선택한 사립학교에 자녀를 취학시킬 권리가 대안으로서 보장될 수 없다면, 국가는 적어도 공교육의 범주 내에서 한자교육을 국어 과목으로 제공하거나 또는 한글과 한자 혼용의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해야 합니다. 이러한 경우에만, 자녀의 능력과 적성에 부합하는 교육가능성을 선택할 학부모의 권리와 학교교육을 통하여 자신의 능력과 적성을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는 자녀의 인격발현권은 비로소 보장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가 한글전용의 교육정책과 같이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문화정책을 추진하는 한, 국가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 학부모에게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어문교육과 관련하여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상이한 교육과정 중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야 합니다. 국가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확정된 수업목표를 가진 유일한 교육가능성만이 학부모에게 제공된다면, 이로써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이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된 경우에는 헌법적으로 허용된 국가형성권의 한계를 명백하게 일탈한 것입니다.
(4) 교과용도서 저작자와 출판사의 언론‧출판의 자유 침해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은 자신의 저술내용을 한자혼용의 표현수단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저작자와 출판사에 대해 그 표현수단을 금지시킴으로써 언론‧출판의 자유가 보장하는 표현수단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위헌적으로 침해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일찍부터 여러 결정을 통해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언론‧출판의 자유에는 ‘표현수단의 자유로운 선택권’이 포함되어 있음을 인정해 오고 있습니다. 1993년의 음반등록시설 자기소유요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언론․출판의 자유의 내용 중 의사표현․전파의 자유에 있어서 의사표현 또는 전파의 매개체는 어떠한 형태이건 가능하며 그 제한이 없다. 즉 담화․연설․토론․연극․방송․음악․영화․가요 등과 문서․소설․시가․도화․사진․조각․서화 등 모든 형상의 의사표현 또는 의사전파의 매개체를 포함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 법리는 이후 많은 결정들에서 일관되게 적용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저작자와 출판사가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를 저술하고 출판함에 있어서 한자라는 문자언어를 표현수단(=매개체)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헌법 제21조에 의해 보장된다고 할 것입니다.
이 사건의 규율내용과 맥락에 있어서 약간 다르긴 합니다만, 1988년에 캐나다의 연방대법원은, 공공의 표지판과 옥외광고물을 프랑스어로만 표기하도록 강제한 퀘벡(Quebec) 주의 법률을 위헌선언하면서, “언어(language)란 표현의 형식 및 내용(the form and content of expression)과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만일 자신이 선택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된다면 진정한 표현의 자유(true freedom of expression)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언어는 단순히 표현을 전달하는 수단(a means or medium of expression)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언어(language)란 그 표현의 내용과 의미에 색깔을 입히는 기능을 한다(it colours the content and meaning of expression). 언어는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cultural identity)을 표현해내는 수단이며, 또한 개인적인 정체성(personal identity)과 고유한 개성(sense of individuality)을 드러내는 수단이다.”고 하면서 표현의 자유 침해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돌아와 살피건대,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이 어떤 정당한 입법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만일 입법취지가 ‘한글전용문화의 실현’에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입법목적은 문화국가의 원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서 헌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입법목적입니다. 한편, 만일 입법목적이 ‘학생의 학습능력의 향상’에 있다고 한다면, 한자혼용을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입법목적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위의 [Ⅲ. 4.와 6.]에서 자세히 살핀 바와 같이, 한자의 이해와 학습능력의 향상 사이에는 정(正)의 비례관계가 존재합니다. 초‧중등교육에서 한자를 배제시키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는 공교육제도의 형성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있고 교과서의 내용과 형식에 관하여 규율할 수 있는 권한을 원칙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초‧중등 학생의 학습능력에 따라 그에 맞는 한자 혼용을 일정한 선에서 규율할 수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어를 구성하는 기초한자까지도 이를 혼용하여 쓰거나 ‘한자(한글)’의 표기방식을 사용하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도한 제한이 아닐 수 없습니다. 1,800자의 교육용한자를 국가가 설정해 놓고서도 이를 교과서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초‧중‧고등학교의 학생 수준에 맞는 한자의 수준을 단계적으로 정하고 그 이상의 한자 혼용을 금지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것입니다. 교과서에서 한자 사용이 ‘전면적으로’ 금지됨으로써 한자를 통해 익혀야 하는 기본어휘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짐에 따라 학생들의 국어 어휘에 대한 이해력과 전반적인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폐해는 매우 심각한 실정입니다. 동시에 저작자와 출판사가 한자라는 우리의 문자언어를 사용하여 저술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 표현의 자유가 전면 금지되는 것이어서 침해되는 기본권적 이익은 매우 중대합니다.
요컨대,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은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의 관점에 비추어 저작자와 출판사가 초‧중등학교의 교과용도서를 저술하고 출판함에 있어서 한자라는 문자언어를 표현수단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할 것입니다.
나.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의 기본권침해성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국어기본법은 그 전체가 우리말 국어의 개념요소에서 국자(國字)인 한자를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그러한 기본전제 아래 한글전용‧한자배척의 국어정책의 수립과 시행을 국가기관에게 요구하고 있으며, 청구인들을 비롯한 국민들에게는 한자배척의 국어생활을 직․간접으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국어의 표기문자에서 한자를 배제하고 있는 정의조항(제3조), 한자가 배제된 국어문화의 확산과 촉진을 강요하는 조항(제15조 및 제16조), 그리고 한글전용을 강제하는 공문서조항(제14조)과 법시행령 제11조는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하는 청구인들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을 누릴 권리 내지는 한자문화향유권 및 헌법 제21조의 한자혼용의 표현방식에 의한 의사표현의 자유를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1) 우선, 법 제3조(정의), 제15조(국어문화의 확산), 제16조(국어정보화의 촉진)는 우리말 국어의 개념요소에서 국자(國字)인 한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그러한 기본전제 아래 한글전용‧한자배척의 국어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할 의무를 국가기관에게 부과하고, 청구인들을 비롯한 국민들에게는 한자배척의 언어생활을 직․간접으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법 제15조에서 말하는 ‘국어문화의 확산’이란 곧 한자배척․한글전용 문화의 확산을 의미합니다. 위 심판대상규정들은 이러한 국어문화를 확산해야 할 의무를 국가기관이나 사인(대중매체 및 정보통신서비스사업자)에게 부과함으로써 국가가 개인의 어문생활에 개입하여 ‘어문생활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청구인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위 심판대상규정들은 직접 국가기관으로 하여금 대국민(對國民) 교육과 홍보를 통하여 또는 간접적으로 대중매체 등 사인을 동원하여 한글전용문화를 확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일반국민이 일상생활에서 한자를 접할 수 있는 기회 또는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여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는 현저하게 축소되었고, 그 결과 국가의 의도적인 개입에 의하여 ‘자신의 어문생활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현저하게 침해받고 있습니다.
위 심판대상규정들의 직접적인 수범자는 일반 국민이 아니라 국가기관이나 대중매체 등 사인이지만, 심판대상규정으로 인하여 일반국민에게 발생하는 불이익은 단순한 부수적․간접적 효과가 아니라 중대한 기본권제한에 해당합니다. 심판대상규정들로 인하여 개인에게 자유행사에 있어서 불리한 효과가 발생하며, 국가행위가 초래하는 이러한 불리한 효과는 국가에 의하여 의도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 국가에 귀속되어야 하므로, 위 심판대상규정은 자유권의 관점에서 정당화되어야 하는 ‘사실적 기본권제한’에 해당합니다.
위 심판대상규정들은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에서 파생하는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은 다른 개별자유권에 의하여 보호되지 않는 자유영역을 그 보호범위로 하는 일반적․보충적 자유권입니다. 헌법상 보장된 개별자유권은 모두 일정 생활영역에서의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가능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유권이 궁극적으로 보장하고자 하는 바는 자기결정에 따라 각자의 생활을 자기 책임 하에서 독자적으로 형성할 자유, 즉 자기결정권 및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가능성입니다. 모든 개별자유권들은 각 생활영역에서 자기결정과 자유로운 인격발현을 위하여 불가결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결정권 또는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가능성은 자유권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반적 자유권인 행복추구권도 다른 개별자유권에 의하여 보호되지 않는 자유영역에서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가능성을 일반적으로 그리고 보충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어문생활에 관하여 결정할 권리, 일상생활에서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여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권리, 한자 및 한자문화에 자유롭게 접할 권리 등은 모두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장됩니다. 위 심판대상규정들은 이와 같이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하는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한자혼용(漢字混用)의 어문생활을 누릴 권리 내지 자유로운 한자문화향유권(漢字文化享有權)을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위 심판대상조항은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생활 속에서 한자와 한자문화를 배척함으로써 청구인들을 비롯한 일반 국민에 대하여 한자와 한자문화에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봉쇄하고 한글전용의 어문생활을 실질적으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자문화 말살(抹殺)의 시도는, 법 제14조(공문서의 작성), 제18조(교과용 도서의 어문규범 준수) 및 초‧중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시킨 교육부 고시와 더불어, 공적 언어생활과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에까지 확산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언어생활 속에서 한자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며, 그 결과 청구인들은 한민족(韓民族)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적 정체성이 배여 있는 한자문화에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한글전용의 편향적인 문화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됨에 따라, 지금의 젊은 세대는 공교육과정에서 한자교육의 기회를 국가로부터 제공받지도 못하였고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한자문화에 접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국가에 의하여 봉쇄당함으로써 스스로 한자를 접하고 익힐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젊은 세대는 국가의 잘못된 국어정책의 가장 큰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한자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우리말 국어(國語)의 의미(意味)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학을 다녀도 한자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읽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학의 도서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글‧한자 혼용으로 쓰인 수십‧수백만 권의 지식의 보고(寶庫)들이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청구인들 중에는 대학생들이 상당수 있는데, 이들이 호소하는 것은 한자 혼용으로 쓰인 문헌이나 자료를 만나면 읽을 수조차 없어 학습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청구인들 중에는 대학교수들이 있습니다. 이들 또한 한자어로 된 학술적 언어들을 통해 학문적 지식을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심판대상으로 인하여 개인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이 침해되고 있고 일반 국민에게 심각한 폐해가 초래되고 있음에도, 이미 위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이를 정당화하는 합리적인 입법목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은 한자문화를 말살시켜야 할 합리적 이유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한글전용의 일방적인 어문생활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어문생활에 관한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청구인들을 비롯한 일반 국민이 한자문화에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하고자 함으로써 자유로운 한자문화향유권을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2) 다음으로, 법 제14조(공문서의 작성)와 법시행령 제11조(공문서의 작성과 한글 사용)는 한자를 외국 글자와 동일하게 취급하면서, 공무원과 일반국민이 공문서(公文書)를 작성할 때에는 원칙적으로 한글로만 작성하도록 의무지우고 한자를 자유롭게 혼용하여 사용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적 언어생활에서 의사전달을 원칙적으로 한글로만 가능하게 함으로써 의사표현에 있어서 표현수단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제한이 과잉금지(過剩禁止)의 원칙에 위반되어서는 안 됩니다. 법 제14조는 표현내용을 제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표현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한자 혼용을 금지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의 전달효과를 억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또 표현수단의 선택권을 거의 전면적으로 박탈하고 있으므로 이 경우에도 과잉금지의 원칙이 준수되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상정할 수 있는 법 제14조의 정당한 목적은 국가기관(공무원)과 국민이 의사를 주고받음에 있어 그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한자를 잘 알지 못하는 국민을 배려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은 일응 정당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 목적을 위해서 한자의 혼용을 금지하는 것은 목적달성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어 수단의 적합성은 충족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한자독해력(漢字讀解力)을 가진 국민의 표현수단 선택권을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것은 의사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민들 사이에는 한자독해력에 있어서 다양한 수준의 차이가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 차이를 부정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한자독해력이 낮은 사람들을 위해서 독해력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표현수단마저도 전면 금지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물론 법시행령이 예외적으로 괄호 안에 한자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는 있습니다만, 그것은 예외적이고 또 괄호 안에 한자를 넣는 것이어서, ‘한자 혼용’ 혹은 ‘한자(한글)’의 표현수단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한자 혼용으로 의사를 전달하기 어렵거나 싫은 사람은 한글로 공문서를 작성하여 국가기관에게 제출하게 하고, 한자 혼용 혹은 한자(한글)의 표현수단으로 의사를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선택권을 열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공무원이 작성하는 공문서의 경우에도 한자를 잘 모르는 국민을 위하여 한자를 쓰고 괄호 안에 한글로 그 음을 표기한다면, 전달하고자 하는 의사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정확하게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한편으로, 국가는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상용한자(常用漢字)의 교육과 보편적 사용을 촉진시킴으로써 공문서에서 사용하는 기본 한자를 국민 누구나 쉽게 독해할 수 있도록 전체적인 문화의 질을 높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기본권을 적게 제한하는 다른 수단들이 있음에도 한자독해력을 가진 사람들의 표현수단 선택권을 박탈해버리는 것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법 제14조는 법익균형성 원칙에도 위반됩니다. 공적 언어생활에서 한자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의 기본권침해의 효과는 그로 인해 얻는 공익보다 현저히 크다고 할 것입니다. 공적 언어는 주로 국가기관의 법적 권한의 행사를 둘러싸고 국민과 소통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달리, 추상적인 개념어(槪念語)가 많이 사용됩니다. 이들 추상적인 개념어는 거의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자어를 한글로만 쓰면 의미의 전달력에 있어서 그 효과가 반감됩니다. 물론 한글만으로도 그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함축된 뜻을 담고 있는 한자어(漢字語)를 한글로 표기해서는 그 정확한 의미와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될 수 없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어는 더욱 그러합니다. 반면에, 한글‧한자 혼용을 하게 되면 시각적 효과도 뚜렷하여 커뮤니케이션의 효과가 더 커집니다. 법 제14조는 이러한 효과를 활용하기 위해 한자를 혼용하고자 하는 사람의 표현수단 선택권을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것인 반면, 그 박탈을 통해 얻는 공익이란 달리 없습니다.
결국 법 제14조는 공적 언어생활의 의사표현에 있어서 표현수단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할 것입니다.
2. 문화의 자율성과 국가의 중립성을 요구하는 문화국가원리의 위반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여러 결정에서 우리나라는 건국헌법 이래 문화국가(文化國家)의 원리를 헌법의 기본원리로 채택하여 왔다고 판시하여 왔습니다. 즉, 우리 헌법은 전문(前文)에서 “文化의 모든 領域에 있어서 各人의 機會를 균등히” 할 것을 선언하고 있고, 제9조에서는 국가에게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위하여 노력할 의무를 지우고 있으며, 또한 문화국가를 실현하기 위하여 보장되어야 할 정신적 기본권으로 양심과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등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화란 개별성‧고유성‧다양성을 그 속성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의 자율성을 전제로 하는데, 이들 기본권은 그러한 견해와 사상의 다양성을 본질로 하는 문화국가원리의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헌법학자들은, 설명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이러한 문화국가의 원리의 내용으로 ➀ 문화적 자율성의 보장 ➁ 문화의 보호․육성․진흥․전수(傳授) ➂ 문화적 평등권의 보장을 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화적 자율성의 보장이란 국가의 문화정책이 국민의 다양한 문화에 대하여 중립성과 관용(寬容)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가는 문화를 보존․유지하고 조장하거나 유도할 수는 있으나, 문화형성의 과정에 직접 개입하여 문화형성을 주도하거나 문화형성의 주체로서 기능해서는 안 됩니다. 문화생성의 주체는 개인과 사회입니다. 국가는 문화를 생성할 수도 없고, 소위 ‘좋은 문화’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문화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권한이나 정당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국가는 조직과 규율을 통한 정치적 통일체로서, 단지 인간의 외부적 행위만을 조직하고 규율할 수 있을 뿐, 국민의 정신적 생활은 국가에 의하여 계획되고 규율될 수 없습니다. 문화란 그 본질상 국가의 계획과 의도에 의하여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자율성의 바탕 위에서 다양한 문화 간의 경합을 통하여 형성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신적 생활의 산물입니다. 다만, 국가는 헌법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사회의 정신적 흐름’에 대하여 대응해야 하고, 사회의 비합리적 요청이나 위헌적인 관습과 만난다면 이를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고자 시도할 수 있습니다. 가령, 문화가 헌법의 가치질서에 명백히 반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경우에는 국가는 이러한 잘못된 방향에 제동을 걸고 다시 헌법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자 시도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이러한 시도는 헌법재판소의 동성동본금혼결정(同姓同本禁婚決定)이나 호주제결정(戶主制決定)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화국가의 주된 과제는 문화가 생성될 수 있는 조건의 형성(문화풍토의 조성)에 있습니다. 문화국가란, 문화가 생성될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고 형성해야 하는 의무와 과제를 진 국가입니다. 문화국가는 한편으로는 문화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는 국가를 말합니다. 헌법은 문화와 관련된 자유권의 보장을 통하여 가능하면 국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영역으로서 문화영역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문화적 영역에서도 정신적․문화적 생활의 자율적 형성을 위한 자유공간을 소극적으로 보장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나아가, 국가는 정신적 생활을 지원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통하여 문화를 육성해야 할 과제와 책임을 집니다. 문화에 대한 지원자로서 국가의 과제는 국가의 문화정책을 통하여 실현되고 구체화됩니다. 그러나 국가는 문화정책을 시행함에 있어서 문화정책적 중립성과 관용의 원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국가의 문화적 지원과 육성(문화정책)은 자유권에 의하여 보장되는 문화적 생활영역의 자율성을 고려하고 존중해야 하며, 문화관련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국가의 문화정책의 헌법적 한계는 문화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일련의 기본권규정에 의하여 설정됩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가의 한글전용정책은 교육의 영역에서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 및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정책으로 이미 이러한 이유로 문화의 자율성에 대한 존중과 국가의 문화적 중립성을 요청하는 문화국가원리에 반합니다.
마찬가지로, 헌법재판소도 문화국가의 원리를 실현하는 방법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습니다: “문화국가원리는 국가의 문화국가실현에 관한 과제 또는 책임을 통하여 실현되는바, 국가의 문화정책과 밀접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과거 국가절대주의사상의 국가관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국가의 적극적인 문화간섭정책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국가가 어떤 문화현상에 대하여도 이를 선호하거나, 우대하는 경향을 보이지 않는 불편부당의 원칙이 가장 바람직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날 문화국가에서의 문화정책은 그 초점이 문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생겨날 수 있는 문화풍토를 조성하는 데 두어야 한다.”
요컨대, 국가는 어문정책을 비롯한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함에 있어서 문화국가의 원리에 따른 헌법적 한계를 지켜야 합니다. 그 한계는 다름 아닌 문화적 자율성(自律性)의 보장과 국가의 중립성(中立性) 원칙입니다. 이 중립성 원칙을 헌법재판소는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원칙’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은 우리 문화의 기본코드인 한자(漢字)를 공적 언어생활에서는 물론이고 국민의 기본적인 공교육과정에서부터 일상의 언어생활에 이르기까지 전방위(全方位)로 배척(排斥)하는 수준을 넘어서 말살(抹殺)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2천여 년 전통을 이어 온 한자문화를 보호․육성․진흥․전수(傳授)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를 말살하려 하는 것은 문화국가의 원리에 따른 헌법적 한계를 심각하게 일탈하는 것입니다.
언어는 국민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외국어가 유입되어 우리의 언어 속에서 외래어로 새롭게 태어나기도 하고, 새로이 나타나는 생활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기존에 없던 단어가 생겨나기도 하며, 10년 전에 유행하던 말이 어느덧 사라지기도 합니다. 국가는 이 언어의 변화무쌍한 생명력을 원칙적으로 존중하여야 합니다. 물론 국가는 비속(卑俗)한 말을 곱고 품격 있는 말로 순화(醇化)하는 정책을 펼칠 수는 있겠습니다만, 편향적인 관점(觀點)에 입각해서 특정한 성격의 언어나 문화를 선호하거나 우대해서는 안 될 것이고, 더구나 특정 관점에 입각해서 다른 관점의 언어나 문화를 인위적(人爲的)으로 없애려고 해서는 더욱 안 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근현대사는 한글 전용론과 한글‧한자 혼용론이 팽팽히 맞서 왔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일제(日帝)에 의한 우리말 탄압이라는 불행한 역사가 놓여 있습니다만, 어느 쪽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국가는 이 문화경쟁의 싸움에 직접 개입해서 어느 한쪽을 편애(偏愛)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문화국가의 원리에 담긴 문화적 자율성의 보장과 국가의 중립성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은 단지 한쪽(한글전용론)을 편애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다른 한쪽(한글 ‧ 한자 혼용론)을 말살시키려 하고 있어, 어문정책의 헌법적 한계를 현저히 일탈하였습니다. 2천여 년 전통을 이어 온 한자문화가 제거되어야 할 사회적 폐습이 아닌 이상, 이 한자문화를 인위적으로 말살하려는 입법의도(立法意圖)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오히려 국가는 문화국가의 원리에 따라 한글과 한자가 상생(相生) ‧ 보완(補完)하면서 문화의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방향으로 입법권과 집행권을 행사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3.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의무를 국가에 지우고 있는 헌법 제9조의 위반
우리 헌법 제9조는 “國家는 傳統文化의 계승‧발전과 民族文化의 暢達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여 문화국가적 과제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국가적 과제에는 개인적‧집단적 정체성(正體性)의 기반을 이루는 문화의 보존, 창조적인 문화적 과정의 촉진과 육성, 그리고 문화의 보급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문화국가적 과제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헌법 제9조의 법적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헌법학자들이 ‘국가목표규정(國家目標規定)’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국가목표규정이라 함은 국가가 지향하여야 하는 지침이나 방향을 제시해주거나 국가기관에게 명령과 지시를 통하여 실질적 과제나 임무를 부여하는 헌법규정을 의미합니다. 국가목표규정은 기본권규정과는 달리 국민 개개인에게 특정한 기본권을 부여해주지는 않지만,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포함하는 모든 국가기관에게 일정한 과제수행의 의무와 해석의 기준을 제공하는 구속력 있는 헌법규정입니다. 그리하여 국가기관이 국가목표규정에서 지시된 과제를 이행하지 않거나 제시된 지침이나 방향에 위배되는 경우 헌법재판기관에 의한 헌법적(憲法的) 평가(評價)의 대상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그 과제의 실현이 전적으로 입법부에게 맡겨져 있는, 그리하여 헌법적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그런 성격의 규범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헌법 제9조에서 말하는 전통문화(傳統文化)라고 할 때 거기에는 모든 전통적인 가치나 제도가 다 포함되는 것은 아닙니다. 헌법 제9조에서 보호되는 전통문화란 헌법의 정신과 객관적인 가치결정에 부합하는 것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한편, 헌법의 가치결정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전통문화와 민족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켜야 할 국가적 과제는 ‘국가의 단순한 은혜적 시혜(施惠)가 아니라 헌법상의 의무(義務)’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03년의 ‘전통사찰 소유권변동 사건’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이러한 헌법 제9조의 전통문화 계승‧발전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 「전통사찰보존법」상의 양도허가조항(讓渡許可條項)을 7 : 2로 위헌적 법률이라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전통사찰보존법」상의 양도허가조항은 국가기관에 의하여 민족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사찰이 소유권변동에 의하여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사적 소유인 전통사찰의 경내지와 부속 건물을 주지(主持)가 타인에게 양도할 때에는 당시 문화체육부장관의 허가를 받게 하고, 허가를 받지 않은 양도는 무효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용수용으로 인한 소유권변동에 대해서는 달리 규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민족문화유산인 전통사찰의 보존 과제를 불충분하게 입법화한 양도허가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은 헌법 제9조가 단순한 선언적 규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입법자에게 ‘민족문화유산의 온전한 보존’이라는 헌법적 의무를 부과하고 나아가 그 의무를 위반하거나 불충분하게 의무를 이행하는 법률에 대하여 위헌선언을 통해 그 효력을 배제시킬 수 있는 실질적 규범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위 결정의 위헌논거는 전통문화유산인 우리말 국어의 계승‧발전 의무를 현저히 위반하는 이 사건 심판대상의 위헌성을 그대로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전통사찰의 경내지 등에 대한 모든 유형의 소유권변동이 전통사찰을 훼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법률조항(=양도허가조항)은 다른 소유권변동원인과 달리 공용수용으로 인한 소유권변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 즉 ‘민족문화유산의 존속’이라는 헌법적 보호법익에 대한 침해를 실효성 있게 예방하거나 방지할 수 있는 법적 안전장치가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공용수용으로 인한 소유권변동에 있어서는 관할 국가기관 등이 전통사찰을 실효성 있게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실질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바, 이는 공용수용에 의하지 않은 소유권변동의 경우와 공용수용에 의한 소유권변동의 경우를 차별하는 것으로서 도저히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고, 헌법 제23조를 이유로 하여 헌법 제9조의 규정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족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이 국가의 단순한 은혜적 시혜가 아니라 헌법상 의무이므로, 일단 관할 국가기관에 의하여 민족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통사찰의 경우, 사정이 허락하는 한 이를 최대한 빠짐없이 지속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헌법 제9조 등의 규정취지에 부합한다.”
요컨대, 헌법재판소는 전통문화와 민족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켜야 할 국가적 과제는 국가의 단순한 은혜적 시혜가 아니라 헌법상(憲法上)의 의무(義務)이며, 이러한 헌법 제9조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법률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2천여 년 동안 이 땅의 선조들이 한자(漢字)를 사용하여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여 왔고 또 한자를 이용하여 모든 삶의 지식과 지혜를 후손들에게 전수하여 왔습니다.
한자는 한국인의 개인적‧집단적 정체성의 기반을 이루는 기본적인 문화코드입니다.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이 이러한 한자를 배척하고 말살하려고 하는 것은 헌법 제9조가 국가에게 부여하고 있는 의무(=개인적‧집단적 정체성의 기반을 이루는 문화의 보존, 창조적인 문화적 과정의 촉진과 육성, 그리고 문화의 보급)를 명시적으로 위반하는 것입니다.
4. 한글 ‧ 한자 혼용체의 기미독립선언서와 헌법전의 국어개념 부정
위에서 자세히 언급한 바와 같이, 국어기본법은 국어 생활의 기본적인 정책방향과 규범을 설정하는 ‘기본법’(基本法)임에도 불구하고, 제3조의 개념규정에서부터 우리말 국어를 표기하는 문자를 한글로만 한정지어 한자를 규범적으로 배제하고, 그 밖에 제6조(국어 발전 기본계획의 수립) ‧ 제14조(공문서의 작성) ‧ 제15조(국어문화의 확산) ‧ 제16조(국어 정보화의 촉진) ‧ 제18조(교과용 도서의 어문규범 준수) 등을 통하여 ‘한자가 배제된 국어의 개념’을 상정(想定)한 상태에서, 국가기관에게는 한글전용‧한자배척의 국어정책의 수립과 시행을 요구하고 있고, 또한 국민에게는 한글전용‧한자배척의 언어생활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어기본법의 입법취지는 곧 우리말 국어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한 것만이 우리말 국어에 해당하고, 한자로 표기하게 되면 우리말 국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글‧한자 혼용체의 언어형식을 통해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포한 기미독립선언서(己未獨立宣言書)와 대한민국의 건국 및 헌법적 가치를 선언하고 있는 헌법전(憲法典)이 우리말 국어로 선포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大韓民國憲法 前文은 대한민국이 “3·1運動으로 建立된 大韓民國臨時政府의 法統”을 이어받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담고 있는 1919년 3월 1일의 기미독립선언서는 아래와 같이 한자‧한글 혼용의 문체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문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만, 민족의 자주‧독립의 정신을 국‧내외의 한민족(韓民族)과 세계만방에 알리는 언어매체(言語媒體)로 한자와 한글을 함께 사용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宣言書
吾等은玆에我朝鮮의獨立國임과朝鮮人의自主民임을宣言하노라此로써世界萬邦에告하야人類平等의大義를克明하며此로써子孫萬代에誥하야民族自存의正權을永有케하노라半萬年歷史의權威를仗하야此를宣言함이며二千萬民衆의誠忠을合하야此를佈明함이며民族의恒久如一한自由發展을爲하야此를主張함이며人類的良心의發露에基因한世界改造의大機運에順應幷進하기爲하야此를提起함이니是ㅣ天의明命이며時代의大勢ㅣ며全人類共存同生權의正當한發動이라天下何物이던지此를沮止抑制치못할지니라
… (중략)
吾等이玆에奪起하도다良心이我와同存하며眞理가我와幷進하는도다男女老少업시陰鬱한古巢로서活潑히起來하야萬彙羣象으로더부러欣快한復活을成遂하게되도다千百世祖靈이吾等을陰佑하며全世界氣運이吾等을外護하나니着手가곳成功이라다만前頭의光明으로驀進할름인뎌
公約三章
一, 今日吾人의此擧는正義,人道,生存,尊榮을爲하는民族的要求ㅣ니오즉自由的精神을發揮할것이오決코排他的感情으로逸走하지말라
一, 最後의一人지最後의一刻지民族의正當한意思를快히發表하라
一, 一切의行動은가장秩序를尊重하야吾人의主張과態度로하야금어대지던지光明正大하게하라
朝鮮建國四千二百五十二年三月 日 朝鮮民族代表
孫秉熙 吉善宙 李弼柱 白龍城 金完圭
金秉祚 金昌俊 權東鎭 權秉悳 羅龍煥
羅仁協 梁旬伯 梁漢默 劉如大 李甲成
李明龍 李昇薰 李鍾勳 李鍾一 林禮煥
朴準承 朴熙道 朴東完 申洪植 申錫九
吳世昌 吳華英 鄭春洙 崔聖模 崔 麟
韓龍雲 洪秉箕 洪其兆
뿐만 아니라, 1948년에 제정된 건국헌법(建國憲法)과 이후 여덟 차례 개정된 헌법은 물론이고, 1987년에 개정된 현행의 대한민국헌법(大韓民國憲法)은 그 전문(前文)과 본문(本文) 130개 조(條), 그리고 부칙(附則) 6개 조(條)가 모두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여 국가의 최고규범(最高規範)을 표현하고 있으며, 심지어 추상적인 생각을 나타내는 개념어와 명사는 거의 모두 한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예시로 전문(前文)만 적시(摘示)하겠습니다.
大韓民國憲法
前文
悠久한 歷史와 傳統에 빛나는 우리 大韓國民은 3·1運動으로 建立된 大韓民國臨時政府의 法統과 不義에 抗拒한 4·19民主理念을 계승하고, 祖國의 民主改革과 平和的 統一의 使命에 입각하여 正義·人道와 同胞愛로써 民族의 團結을 공고히 하고, 모든 社會的 弊習과 不義를 타파하며, 自律과 調和를 바탕으로 自由民主的 基本秩序를 더욱 확고히 하여 政治·經濟·社會·文化의 모든 領域에 있어서 各人의 機會를 균등히 하고, 能力을 最高度로 발휘하게 하며, 自由와 權利에 따르는 責任과 義務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國民生活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世界平和와 人類共榮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子孫의 安全과 自由와 幸福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年 7月 12日에 制定되고 8次에 걸쳐 改正된 憲法을 이제 國會의 議決을 거쳐 國民投票에 의하여 改正한다.
이처럼 한민족(韓民族)의 자주․독립의 정신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기미독립선언서와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전 국민에게 전달하는 大韓民國憲法이 그 메시지(message)를 전달하는 표현수단(매체 medium)으로 한글과 한자를 함께 섞어 사용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1960년대 세계적으로 저명한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매체(媒體)는 곧 메시지이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하면서, 매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인지태도(認知態度 perceptual habits)를 변화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맥루한의 이 명제는 커뮤니케이션 매체와 문화·사회의 상관관계를 거시적 맥락에서 제시한 것입니다만, 표현전달매체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에서는 이 사건의 맥락과 연결됩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말 한국어에서는 추상적인 생각과 사상을 나타내는 개념어를 비롯하여 많은 용어들이 함축된 뜻을 담은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한자어, 특히 추상적인 개념어를 한글로 표기하여 전달하는 것과 한자로 표기하여 전달하는 것은 그 언어에 담긴 의미(意味)를 이해하는 측면이나 음성언어의 표현의 정확성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그 언어를 통해 사물을 인지(認知)하는 정신적 과정의 측면에서도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함축된 뜻을 담고 있는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해서는 그 정확한 의미와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될 수 없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어는 더욱 그러합니다. 기미독립선언서에서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할 때, ‘自主民’을 ‘자주민’이라고 적어 놓으면 그 의미가 애매해질 뿐만 아니라 독립선언의 그 뜻이 이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정확하게 인지되지 못하게 됩니다. 大韓民國憲法 前文의 “法統, 不義, 正義, 人道”도 ‘법통, 불의, 정의, 인도’로 써서는 그 의미가 불명확하고 그 뜻을 인지하는 효과가 크게 반감됩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담고 있는 기미독립선언서는 물론이고, 이 나라의 최고법인 헌법에서 한글‧한자 혼용체를 건국 이후 현재까지 60여 년 동안 사용해 오고 있는데도, 이러한 살아 있는 헌법의 언어가 우리말 국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국어기본법은 그야말로 이 나라의 역사와 규범적 뿌리를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헌법은 그 규범내용뿐만 아니라 그 표현형식 또한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전문(前文)의 “法統, 不義, 正義, 人道”를 ‘법통, 불의, 정의, 인도’로 쓰려면 헌법을 개정(改正)해야 합니다. 현행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한자로 표현된 헌법의 언어를 한글로 표기한다고 해서 헌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국어기본법의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들은 이 같은 현행 헌법의 언어형식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한글로 표기된 형식의 헌법만이 헌법이다’라는 규범을 새로이 창설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들은 헌법개정의 방식에 의하지 않고 하위법으로 상위법인 헌법의 언어형식을 개정하려고 하거나 적어도 헌법의 국어개념을 규범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어서 그 자체로 위헌적인 법률조항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5.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불문헌법의 위반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담고 있는 기미독립선언서는 물론이고, 이 나라의 최고법인 헌법은 건국 이후 현재까지 60여 년 동안 9차례의 개정이 있었음에도 한글과 한자의 혼용체로써 헌법의 규범을 표현해 왔습니다. 헌법이 그 규범내용을 전 국민에게 전달하는 언어수단으로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는 바,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이다.”라는 명제를 이처럼 더 명쾌하게 나타낼 수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명제는 단순한 사실명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불문(不文)의 헌법규범으로서, 기미독립선언서와 현행의 헌법전에 너무나 상징적(象徵的)인 모습으로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국어를 표기하는 전통적인 공용문자, 즉 국자(國字)에 관한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正體性)을 표현하는 실질적 헌법사항의 하나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의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 위헌확인 사건에서 7인의 법정의견(法廷意見)으로“국가의 정체성이란 국가의 정서적 통일의 원천으로서 그 국민의 역사와 경험, 문화와 정치 및 경제, 그 권력구조나 정신적 상징 등이 종합적으로 표출됨으로써 형성되는 국가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수도를 설정하는 것”이 이러한 국가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실질적 헌법사항이라는 점을 판례로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말 한국어를 수백, 수천 년 동안 표기해 온 한글과 한자에 관한 문제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실질적 헌법사항이라는 점은 더 이상 다언(多言)을 요하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요컨대,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불문의 헌법규범이 기미독립선언서와 현행의 헌법전(憲法典)에 너무나 상징적인 모습으로 담겨 있습니다. 이 헌법규범이 헌법전에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그 존재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은 2004년의 헌법재판소 결정의 법정의견(法廷意見)에서도 판례로서 확인됩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에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대해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로 한다.”라는 불문(不文)의 관습헌법(慣習憲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위헌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가 성문헌법을 가진 국가로서 기본적으로 우리의 헌법전이 헌법의 법원(法源)이 되지만, “그러나 성문헌법이라고 하여도 그 속에 모든 헌법사항을 빠짐없이 완전히 규율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한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으로서 간결성과 함축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형식적 헌법전에는 기재되지 아니한 사항이라도 이를 불문헌법(不文憲法) 내지 관습헌법으로 인정할 소지가 있으며, 특히 헌법제정 당시 자명(自明)하거나 전제(前提)된 사항 및 보편적 헌법원리와 같은 것은 반드시 명문의 규정을 두지 아니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시(說示)하면서, “이러한 불문헌법 내지 관습헌법도 성문헌법과 마찬가지로 주권자인 국민의 헌법적 결단의 의사의 표현이며 성문헌법과 동등한 효력을 가진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결국, 우리의 기미독립선언서와 헌법전은 그 선언내용과 규범내용을 한글과 한자의 혼용체로 표현함으로써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불문헌법(不文憲法)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헌법질서 안에서 이 불문헌법이 존재한다는 점은 헌법재판소가 밝힌 관습헌법의 법리로도 확인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위 2004년의 결정에서 관습헌법이 성립되기 위한 요건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였습니다. 첫째, 기본적 헌법사항에 관하여 어떠한 관행 내지 관례가 존재하고(헌법적 관행의 존재), 둘째, 그 관행은 국민이 그 존재를 인식하고 사라지지 않을 관행이라고 인정할 만큼 충분한 기간 동안 반복 내지 계속되어야 하며(반복‧계속성), 셋째, 관행은 지속성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서 그 중간에 반대되는 관행이 이루어져서는 아니 되고(항상성), 넷째, 관행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정도로 모호한 것이 아닌 명확한 내용을 가진 것이어야 하며(명료성), 다섯째, 이러한 관행이 헌법관습으로서 국민들의 승인 내지 확신 또는 폭넓은 컨센서스를 얻어 국민이 강제력을 가진다고 믿고 있어야 한다(국민적 합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습헌법의 성립요건에 비추어 볼 때,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헌법규범이 관습헌법으로서도 성립됨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2천여 년 동안 한자는 우리말을 표기하는 문자로서 한민족(韓民族)이 공통으로 사용하여 왔고, 1443년 한글이 창제된 후에도 현재까지 한글과 한자는 함께 사용되어 오고 있으며(헌법적 관행의 존재), 이러한 관행은 오랜 역사와 전통에 의해 지속되어 왔고(계속성), 오랜 기간 실효적으로 지속되어 중간에 깨어진 적이 없으며(항상성), 거의 모든 국민이 부인할 수 없는 명확한 사실이고(명료성), 대다수 국민의 승인을 얻고 있다(국민적 합의)고 할 것입니다. 이들 요건은 달리 입증을 요할 필요도 없이 현행의 헌법전(憲法典)이 한글과 한자의 혼용체로 헌법규범을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고 할 것입니다.
요컨대,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는 헌법규범은 불문헌법(不文憲法) 내지 관습헌법(慣習憲法)의 하나로서 우리의 헌법질서에 내재되어 있는 살아 있는 헌법규범이며, 따라서 법률로써 이를 부정하거나 파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어기본법의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들이 국자(國字)로서의 한자를 부정하고 우리말 국어의 개념요소에서 한자를 규범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위 불문헌법 내지 관습헌법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Ⅴ. 헌법소원심판 청구요건(=적법요건)의 충족
1. 심판대상규정의 공권력성
위 ‘Ⅱ. 위헌 여부를 다투는 공권력작용’ 부분에서 자세히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은 모두 대외적 구속력과 규범적 효력을 가지는 법률, 시행령, 그리고 고시입니다.
물론 이들 규정이 청구인들의 법적 지위에 미치는 영향의 측면에서 보면 그 성질이 모두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이들 규정 중에는 ➀ 공무원이나 일반국민을 직접적인 수범자로 하여 한자혼용을 금지시키는 규정도 있고(법 제14조 및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 제3항), ➁ 교육과학기술부장관으로 하여금 교과용도서의 편찬‧검정‧인정에 있어서 한자혼용을 배제시키도록 강제하는 규정이 있으며(법 제18조), ➂ 초‧중등학교의 교육기관으로 하여금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규정도 있고(이 사건 한자교육배제고시), ➃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하여금 일반국민의 언어생활 속에서 한자가 배제된 국어문화를 확산 및 촉진시키도록 구체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이 있으며(법 제15조 제1항, 제16조 제1항), ➄ 언론기관과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로 하여금 국민이 한자가 배제된 국어를 사용하는 데 기여해야 할 추상적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도 있고(법 제15조 제2항, 제16조 제3항), 그리고 ➅ 위 모든 규정의 기본전제가 되는, 한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국어의 개념을 상정하고 있는 정의조항(법 제3조)이 있습니다.
위 ➀의 규정을 제외하고, ➁➂➃➄➅ 규정의 직접적인 수범자(受範者)는 일반 국민이 아니라 국가기관이나 대중매체 등 사인(私人)이지만, 이들 규정으로 인하여 청구인들을 비롯한 일반국민에게 발생하는 불이익은 단순한 부수적․간접적 효과가 아니라 중대한 기본권제한(基本權制限)에 해당합니다. 이들 규정은 국민의 기본교육과정에서부터 전 국민의 일상적인 언어생활에 이르기까지 한자를 배척 혹은 말살시키려는 입법의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입법의도를 구현하기 위하여 국가기관에게 또는 언론기관에게 구체적 및 추상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등 다양한 행위형식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직접적인 결과로 인해 청구인들은, 위 ‘Ⅳ. 심판대상의 위헌성 1. 기본권의 위헌적 침해’ 부분에서 자세히 논증한 바와 같이,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되는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을 누릴 권리 내지는 자유로운 한자문화향유권, 헌법 제21조의 한자혼용의 표현방식에 의한 의사표현의 자유,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 및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의 행사에 있어서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들 규정으로 인하여 청구인들에게 자유행사에 있어서 불리한 효과가 발생하며, 국가행위가 초래하는 이러한 불리한 효과는 국가에 의하여 직접 의도된 것이고 또한 입법 당시에 그러한 불리한 효과를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책임이 국가에 귀속되어야 하므로, 이들 규정은 자유권의 관점에서 정당화되어야 하는 ‘사실적 기본권제한’에 해당합니다.
요컨대, 이 사건 심판대상규정들은 직접적 또는 사실적으로 청구인들의 자유행사에 심대한 불리한 효과를 초래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됨이 명백하다고 할 것입니다.
2. 기본권침해의 법적 관련성
헌법재판소는 확립된 판례를 통해, 헌법소원 청구인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기본권이, 현재 그리고 직접 침해당한 경우라야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하 이들 요건의 충족 여부에 대하여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가. 자기관련성과 침해의 직접성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과 한자교육배제고시는 청구인들 중 초‧중‧고등학교 재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학습권)과 그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은 청구인들 중 교과용도서를 저작하거나 출판하고자 하는 초‧중‧고등학교의 교사, 대학의 교수, 일반시민 그리고 출판사대표가 교과용도서를 저작하고 출판함에 있어서 한자혼용의 표현방식으로 저작하고 출판할 수 있는 자유를 직접적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으로 인해 초등학교 입학예정인 아동과 그 부모, 초‧중‧고등학교 재학생과 그 부모, 초‧중‧고등학교의 교사 또는 교장, 대학생, 대학원생, 대학교수, 한자‧한문 강사, 공무원, 출판사대표, 기자, 변호사, 목사, 기업체 대표, 회사원, 자영업자, 가정주부, 기타 일반시민으로 구성된 청구인들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등의 자유가 직접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 중 공문서규정(법 제14조)은 청구인들이 이 사건 심판청구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한글로 작성하도록 직접 강제하는 규정이며, 그 밖의 규정들(법 제3조, 제15조, 제16조)은 국어의 개념에서 한자를 규범적으로 배제시킴과 동시에 국가기관과 언론기관 등의 사인에게 한자가 배제된 국어생활을 확산 및 촉진하도록 구체적 혹은 추상적 의무를 규범적으로 부과하는 규정입니다. 비록 이들 규정의 위반에 대한 제재규정은 별도로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국가기관으로서는 법률의 정의규정(定義規定)과 의무규정(義務規定)을 위반할 수 없는 법적 구속력을 받게 되며, 사인 또한 제재 없는 추상적 의무라도 규범적으로 구속을 받는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이로 인해 청구인들은 한자가 배제된 국어생활을 규범적으로 직접 강요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자가 배제된 국어생활의 규범적(規範的) 강요(强要)는 별도의 집행행위를 기다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위 규정들에 의해서 직접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즉, 법규범이 예정하고 있는 한자배제의 법률효과는 다른 집행행위를 기다려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위 규정들로부터 직접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청구인들은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으로 인해 국어생활에 있어서 한자 사용에 관한 자기결정권 등의 자유를 직접 제약받고 있습니다.
결국, 이 사건 심판청구에 있어서 청구인들의 자기관련성 및 침해의 직접성 요건은 충족된다고 할 것입니다.
나. 침해의 현재성
헌법재판소는 확립된 판례로서, 기본권침해가 가까운 장래에 발생하더라도 그 침해가 틀림없을 것으로 현재 확실히 예측된다면 기본권구제의 실효성을 위하여 침해의 현재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청구인들 중에는 초등학교 미취학아동(未就學兒童)과 그 부모가 있습니다. 이들 청구인은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과 한자교육배제고시로 인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기본권침해를 받고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그러나 초등학교가 의무교육이어서 미취학아동은 장차 초등학교에 입학할 것이 확실합니다. 따라서 장래 기본권침해를 받을 것이 틀림없을 것으로 현재 확실히 예측되기 때문에, 청구인들 중 미취학아동과 그 부모는 위 심판대상규정을 헌법소원으로 다툼에 있어서 침해의 현재성 요건을 충족한다고 할 것입니다. 또한 청구인들 중 초등학생(初等學生)은 장래 중학교 입학이 의무교육으로 요구되고 있고, 중학생(中學生) 또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들 학생과 그 부모 또한 침해의 현재성 요건을 충족한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國語生活强要規定)과 관련해서, 청구인들 중 초등학교 미취학아동은 이 규정으로 인해 아직은 국어생활에 있어서 한자 사용에 관한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받고 있는 상태는 아니라 할 것입니다. 간혹 미취학아동이 그 부모의 선택에 따라서 한자를 배우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미취학아동은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을 누릴 수 있는 지적(知的) 단계(段階)는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미취학아동은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으로 인해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현재 침해받고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미취학아동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을 독자적으로 누릴 수 있는 지적(知的) 단계에 이르게 될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이 점은 현재 확실히 예측되기 때문에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과 관련한 침해의 현재성 요건도 충족된다고 할 것입니다.
3. 청구기간의 준수
(1) 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1항은 기본권침해의 사유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그 사유가 있은 날로부터 1년 이내에 헌법소원을 청구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법령소원에서 청구기간의 기산점(起算點)이 되는 ‘법령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한 날’이라 함은 “법령의 규율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적용받게 된 최초의 날”이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설령 청구기간이 지났다 하더라도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 청구기간 요건의 예외로서 헌법소원청구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의 “정당한 사유”라 함은 청구기간 경과의 원인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지연된 심판청구를 허용하는 것이 사회통념상으로 보아 상당한 경우를 뜻하는 것으로, 일반적 주의(注意)를 다하여도 그 기간을 준수할 수 없는 사유를 포함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2)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漢字混用禁止規定)과 한자교육배제고시(漢字敎育排除告示)는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학습권)과 그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제한하는 규정인데, 청구인들 중 초등학교 미취학아동과 그 부모는 이 사건 심판청구 시점에서는 아직 위 기본권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침해받고 있는 상태가 아니므로, 청구기간 경과(經過)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청구인들 중 초등학교‧중학교 학생과 그 학부모는 장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위 기본권의 침해를 받는 것이어서 청구기간 경과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습니다.
(3) 이 사건 교과서 한자혼용금지규정은 청구인들 중 교과용도서(敎科用圖書)를 저작하거나 출판하고자 하는 초‧중‧고등학교의 교사, 대학의 교수, 그리고 출판사대표가 교과용도서를 저작하고 출판함에 있어서 한자혼용의 표현방식으로 저작하고 출판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입니다.
이들 청구인은 현재 교과용도서를 저작하거나 출판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어서 기본권침해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 또한 청구기간 경과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습니다.
(4)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은 모든 청구인들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등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입니다. 이하 청구기간의 준수 여부를 나누어서 살피겠습니다.
(가) 먼저, 한자혼용을 금지하고 있는 이 사건 공문서규정으로 인해 청구인들의 기본권침해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이루어진 시점(=청구기간 기산점), 즉 공문서규정의 규율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적용받게 된 최초의 날은 청구인들이 이 사건 소송대리인과 소송위임계약(訴訟委任契約)을 체결한 날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소송위임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소송대리인이 곧 바로 심판청구서 작성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이 시점부터는 공문서규정의 규율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받게 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소송위임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90일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제기한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는 청구기간을 준수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나) 다음으로, 이 사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강요규정 중 공문서규정 이외의 규정들(법 제3조, 제15조, 제16조)은 청구인들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등을 제한하는데, 청구인들 중 초등학교 미취학아동은 이러한 기본권을 아직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침해받고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청구기간 경과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습니다.
(다) 마지막으로, 공문서규정 이외의 규정들로 인해 미취학아동 이외의 청구인들이 기본권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침해받은 시점(청구기간 기산점)이 언제인지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이들 규정은 국어의 개념에서 한자를 규범적으로 배제시킴과 동시에 국가기관과 언론기관 등의 사인에게 한자가 배제된 국어생활을 확산 및 촉진하도록 구체적 혹은 추상적 의무를 규범적으로 부과하는 규정입니다. 이로 인해 청구인들은 한자가 배제된 국어생활을 규범적으로 직접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청구인들은 원칙적으로 이들 규정의 시행(2005. 7. 28)과 동시에 기본권의 침해를 받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들 규정과 관련한 청구기간의 충족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이들 규정이 가진 특수성(特殊性)이 반영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서도 살핀 바와 같이, 이들 규정은 청구인들을 직접적인 수범자로 하여 금지명령을 내리는 규정이 아니라, 우리말 국어의 개념에서 국자(國字)인 한자를 배제한다는 규범적 선언을 한 다음, 일반국민의 언어생활에서 한자가 점차적으로 소멸되도록 국가기관과 언론기관 등의 사인에게 의무를 지우는 규정입니다. 이로 인해 일반시민인 청구인들은 규범적으로는 한자배척의 국어생활을 강요받게 되었습니다만, 이들 규정이 예정하고 있는 규율의 효과는 규정의 시행과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규정의 수범자인 국가기관 등에 의한 의무이행을 통해 점차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청구인들이 이들 규정으로 인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을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이들 규정은 한자배제(漢字排除)의 입법의도(立法意圖)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어서 일반시민이 그 입법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물론 청구인들 중에는 이들 규정의 제정 당시부터 그 입법의도를 정확히 파악해낸 극소수의 청구인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대다수의 청구인들은 초‧중등학교의 학생과 그 부모, 초‧중등학교의 교사, 대학생, 대학원생, 대학교수, 목사, 기업체 대표, 회사원, 자영업자, 가정주부 등 일반시민이어서 이들 규정으로 인해 한자배척의 국어생활을 규범적으로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들 청구인이 위 규정의 규범적 의도를 파악하여 그 문제점과 위헌성을 인식하게 된 것은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語文政策正常化推進會)가 2012. 7. 31.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그 설립취지를 대외적으로 선포하고 헌법소원청구를 위한 청구인을 모집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이 사건 심판청구가 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1항이 정하고 있는 청구기간을 경과하였다고 하더라도 청구인들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여 청구기간 요건의 예외를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도 헌재 2001. 12. 20. 2001헌마39 결정(7인의 법정의견)에서 “정당한 사유라 함은 … 일반적 주의(注意)를 다하여도 그 기간을 준수할 수 없는 사유를 포함한다.”고 넓게 해석하면서, “청구인이 특별한 과실 없이 공권력작용[여기서는 ‘불기소처분’]이 있은 사실을 알지 못하여 헌법소원의 청구기간을 준수할 수 없었을 때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1항이 청구기간을 설정하고 있는 것은 권리관계를 신속히 확정하여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헌법소원제도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여 헌법질서(憲法秩序)를 수호(守護)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1항의 청구기간 요건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한편으로는 ‘권리관계를 신속히 확정할 필요성’과 다른 한편으로는 ‘기본권보호의 필요성’을 교량(較量)해서, 헌법소원제도의 도입취지가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법적 안정성을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위 심판대상규정은 우리말 국어의 개념요소에서 한자를 배제하는 규범적 선언이고 이 선언을 실현할 의무를 국가기관 등에 부과하는 것이어서, 이로 인한 기본권침해의 실제적 효과는 그 시행 시점에서는 바로 나타나지 않고 점진적으로 강화되어 나타나게 되는 바, 이런 경우에는 권리관계를 신속히 확정할 필요성은 약한 반면 오히려 기본권보호의 필요성은 법집행이 진행되면서 더욱 강화된다고 할 것입니다. 더구나 위 심판대상규정과 같은 규율의 경우에는 청구인들이 행정소송이나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으로 다투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헌법소원심판청구 외에는 달리 기본권구제(基本權救濟)의 길이 없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요컨대, 위 심판대상규정의 특수성과 기본권보호의 특수한 필요성을 고려하여, 이 사건 심판청구가 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1항이 정하고 있는 청구기간을 경과하였다고 하더라도 청구인들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여 청구기간 요건의 예외를 인정해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Ⅵ. 결론
1. 위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헌입니다.
첫째, 정상적으로 기본적인 공교육(公敎育)을 받은 학생(學生)은 자신의 삶을 자기책임 하에서 독자적으로 형성할 수 있도록 그에 필요한 기본적인 교양과 지식을 제공받아야 하며, 특히 어문생활영역에서 자신의 인격을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하고 교과용도서에서 한자의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국민이 기본적인 공교육을 받았음에도 한국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고 대학과 사회에 진출하여 한국어로 인한 어려움을 겪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므로, 교육의 영역에서의 학생의 자유로운 인격발현권(人格發現權)을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둘째, 학교교육에서 한자교육의 여부는 한국어에 대한 가치관과 문화관의 문제로서 학부모 자신과 자녀의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결정이며 자녀의 전체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결정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공교육의 범주 내에서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이 특별히 존중되어야 하는 문화적 영역에서 학부모에게 한글전용의 문화정책을 강요하면서 학부모의 상이한 문화관을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문화적으로 중립적인 학교교육의 요청을 무시하고 학부모의 자녀교육권(子女敎育權을)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셋째,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한자배척․한글전용 문화의 확산을 통하여 한글전용의 국어생활을 실질적으로 강요함으로써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파생하는 청구인들의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自己決定權)’을 위헌적으로 침해하고 있습니다.
넷째,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한글전용의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문화정책의 추진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문화의 자율성과 국가의 문화적 중립성을 요청하는 문화국가(文化國家)의 원리(原理)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9조를 명백히 위반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관습헌법의 성립요건에 비추어 볼 때, “한글과 한자는 대한민국의 국자(國字)로 한다.”라는 규범은 관습헌법에 해당하므로, 한자가 우리의 글자임을 부정하는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불문헌법(不文憲法)에 위반됩니다.
2. 청구인들이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것은, 특정한 이해관계에서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청구인들이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한자문화에 대한 사대주의적 사고나 고리타분한 전통문화를 고수하고자 하는 보수적 사고를 관철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청구인들은 지난 수십 년간 추진된 국가의 한글전용정책으로 인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한국어의 의미가 점차 흐려지고 불명확해지는 것을 크게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한글은 우리의 고유한 글자이고 한자는 중국의 글자이며, 한글전용은 우리의 것을 존중하는 애국적 사고의 표현이고 한자혼용은 사대주의의 발로(發露)라는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思考)는 중대한 오류입니다. 문화(文化)란, 그 기원과 발생지와 관계없이, 하나의 문화공동체에 의하여 수용되어 다른 문화와의 경합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함으로써 그 문화공동체의 고유한 문화로 새롭게 형성되는 것입니다. 우리말 한국어가 한자어와 고유어로 구성되어 있다면, 한자어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고유한 문화인 것이며, 한자어를 표기하는 수단인 한자도 역시 우리의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한자어가 한국어의 주된 구성부분임에도 불구하고, 한자어의 표기수단인 한자를 ‘남의 것’으로 배척하는 것은 자기모순(自己矛盾)이고 자기부정(自己否定)인 것입니다.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면 한자어는 소리만 남고 그 의미는 사라져 버립니다. 한자를 떠난 한자어는 언어(言語)가 아닙니다.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해도 의미가 살아있다는 주장은 과거에 이미 한자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한자를 배우지 않은 국민에게 한자어는 그 의미가 모호한 소리에 불과합니다. 국가의 한글전용정책은, 한자교육 없이도 한자어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거대한 착각 속에서 ‘한자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추진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편향적인 문화정책의 가장 큰 희생자는 한자교육을 받지 못한 젊은 세대, 결국 대한민국을 이어받아 그 운명을 결정할 다음 세대들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청구인들은 다음 세대에 대한 한자교육의 필요성과 한자혼용의 어문생활의 중요성을 절감(切感)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구인들은 어문생활에서 모든 한자어를 한자로 표기할 것을 요청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 생활영역에서 한글전용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적어도 기본적인 한자교육을 바탕으로 한자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한글전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추진되어온 한글전용정책은 ‘단순문맹(單純文盲)’을 퇴치하는 데에는 기여하였으나, 대부분의 국민이 자신이 사용하는 한국어의 의미를 더 이상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실질문맹(實質文盲)’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실질문맹’을 국민으로 가진 국가가 장기적으로 다른 문화적(文化的) 선진국(先進國)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그 후진성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겠습니다. 한자를 배척하고 한글전용의 문화를 고집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미래로 향하는 문마저도 닫아 버리는 것입니다.
첨부서류
1. 소송위임장
별첨자료(목록)
1. 漢字敎育 立國
2. 漢字를 아는 것이 國力이다
3. 漢字는 國語의 기본이다.
4. 漢字文盲 이대로 좋은가
5. 한글과 漢字는 國語의 두 날개
6의 1. 漢字漢文敎育論叢 上
6의 2. 漢字漢文敎育論叢 下
7. 漢字敎育과 漢字政策에 對한 國際學術會議
8. 初等敎育 漢字 敎育의 必要性에 관한 심포지엄
9. 漢字語 指導 效果 檢證을 위한 硏究
10. 請願書·建議書·聲明書 현황
2012. 10. 22.
위 청구인들 대리인
법무법인 신촌
담당변호사 김 문 희
헌법재판소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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