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만드는 곳은 市場이다

우리가 행복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의 善意 덕분이 아니라 그의 이기심 때문이다.
선의(善意)가 아니라 이기심이 행복의 원천

시장경제의 성경이라고 불릴 만한 책이 1776년에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가 펴낸 《國富論(국부론)》이다. 아담 스미스는 이 책에서 정부의 개입이 없는 상태의 자유시장이 경제와 정치의 많은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해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혁명을 맨 먼저 경험한 영국이 주도하는 세계적 규모의 개방체제에 적합한 이론서였고 현재에도 적용되는 생명력이 긴 책이다. 이 책에는 '보이지 않는 손' 등 여러 가지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이 책의 유명한 문장으론 이런 대목이 있다.

"정육점, 양조장, 혹은 빵공장 주인들의 善意(선의)로 인하여 우리가 저녁을 먹게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덕분이다(It is not from the benevolence of the butcher, the brewer, or the baker, that we can expect our dinner, but from their regard to their own interest)."

유익한 일은 인간의 善意(선의)가 아니라 자유시장에서 표출되는 利益(이익)추구의 정신에서 이뤄진다는 지적이다. 아담 스미스는 또 공정하고 투명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商거래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에게 모두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은 이익을 남기니까 파는 것이고 사는 사람은 지불한 금액보다 더 많은 행복감을 그 상품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계산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즉 자유시장은 상거래를 통해서 상인이나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과 행복을 안겨다 준다는 뜻이다. 반대로 북한처럼 상거래를 제한하는 정치제도는 주민들에게 불이익과 불행을 선물한다는 뜻이다. 자본주의 체제하의 행복은 시장과 상거래를 통해서 얻어진다. 시장이 없는 곳엔 有益(유익)도 행복도 없다. 이는 萬古(만고)의 진리이다.

"누군가 부자이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몇 년 전 영국 보수당의 마이클 하워드 의원이 보수주의에 대한 자신의 신조(16개 항)를 신문 광고를 통해 공개했다.

나는 믿는다.
1. 자신은 물론 가족의 건강과 富(부)·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本性(본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2.국민이 인간 本然(본연)의 야망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3. 국민은 그들이 삶의 주인이고 간섭과 지나친 통제를 받지 않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
4. 국민은 커야 하며 정부는 작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5. 관료·형식주의, 갖가지 규정과 조사관, 각종 위원회와 정부기관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인간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6. 모든 국민은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7. 책임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으며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8. 불공평은 우리를 분노하게 하며 기회 균등이야말로 중요한 가치임을 나는 믿는다.
9.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들이 받았던 것보다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를 원한다고 나는 믿는다.
10. 모든 어린이는 자신들의 부모가 老後 평안하기를 바란다고 나는 믿는다.
11. 영국인들은 그들이 자유로울 때만이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
12. 영국은 어떤 경우에도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13. 행운과 타고난 재능·노력, 그리고 富의 다양성을 통해서만이 섬나라인 영국이 고귀한 과거와 약동하는 미래를 가진 위대한 사람들의 고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들의 종이 되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믿지 않는다
14. 누군가 부자이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15. 누군가 지식이 있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무식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16. 누군가 건강하기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가 병들게 됐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無償福祉(무상복지)'는 그 자체로 이미 詐欺(사기)이다!

‘福祉(복지)포퓰리즘’은 선동에서 시작되고, 선동은 ‘詐欺的 용어’로 가능하다. 선동적 용어의 詐欺性을 폭로하지 않고는 福祉포퓰리즘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 ‘福祉포퓰리즘’을 주동하는 세력은 從北, 좌경세력이 핵심이다. 이들은 ‘진보’를 자처하나 본질은 ‘退步(퇴보)’세력이다.

'無償복지’를 주장하는 세력의 핵심들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게 관리되는 미국산 쇠고기를 狂牛病 위험물질이라고 선동하고, 천안함 爆沈(폭침)이 北의 소행이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고, 연평도 도발은 우리 軍이 誘發(유발)한 것이라고 주장한 선동꾼들이다. 이들이 만든 詐欺的 용어를 따라 쓰는 것은 동반자살적 행위이다.

이 세력은 ‘首都이전’(遷都, 천도)을 ‘신행정수도건설’이라고 作名(작명), 국민들을 속이고 정권을 잡았다. 이 세력이 최근 내세우는 이른바‘無償급식’은 그 정체가 ‘세금급식’ 또는 ‘國費(국비)급식’이다. 이른바‘無償복지’는 ‘갚지 않아도 되는 복지’가 아니라 국민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有償(유상)복지’이다. '無償給食’은 '돈으로 갚지 않아도 되는 급식'이란 뜻인데, 학교에서 給食을 하는 業者(업자)는 공짜로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다.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서 業者에게 준다. 그렇다면 '무상급식'이 아니라, 납세자가 음식값을 부담하는 '有償급식' '세금급식' ‘國費급식’이다.

이를 '무상급식'이라고 作名(작명)한 것은 일종의 ‘善心性 詐欺(선심성 사기)’이다. 교육감이 자기 돈으로 급식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선동꾼들에게 넘어가 '무상급식'이라고 따라 부르면 절대로 ‘福祉포퓰리즘’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선동세력이 만든 사기적 용어를 받아쓰는 것은 저들이 만든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겠다는 것과 같다. 정치적, 정책적 用語(용어)를 주체적으로 쓰지 못하면 이념투쟁에서 이길 수 없다.

거짓, 선동, 불법전문 세력을 '민주'니 '진보'라고 불러주면서 이기겠다고 하는 것은 강도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체포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같다. 國防(국방)파괴자를 '國防위원장'이라고 불러주는 언론이 있는 한 從北(종북)세력을 누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최근 등장한 소위‘利益共有制(이익공유제)’도 이른바‘無償給食’에 준하는 ‘사기적 용어’이다.

1. 가장 궁금한 것은 서로 나누자는 ‘超過(초과)이윤’의 기준이 무엇인가이다. 장사를 너무 잘 하면 '초과'한 것이니 벌금을 내야 하나?
2. 超過이윤을 서로 나눈다면 超過손실도 나눠야 맞다. 대기업이 큰 손실을 당하였을 때 납품업체에도 나눠서 부담시켜야 논리적이다. 超過이윤만 나누겠다면 이는 ‘利益공유제’가 아니라 ‘利益수탈제’이다. ‘共有’란 말 속엔 유리한 것도 불리한 것도 공평하게 나눠 가진다는 뜻이 본래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불리한 것은 배척하고 유리한 것만 갖겠다는 건 '共有'가 아니라 '收奪(수탈)'이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란 이야기이다. 富者(부자)나 대기업이 남긴 이익이므로 그런 식으로 수탈해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계급투쟁적 사고방식으로서 '공산주의적 발상'으로 볼 수 있다.
3. "기업들이 물건값을 낮추기 위해 납품단가를 후려치고, 그 결과 (삼성전자처럼) 영업이익이 애초 계획한 10조원이 아니라 17조원이 나오는 것"(조선일보)이란 정운찬씨의 발언은 선동적이다. 기업의 이익은 기술개발, 원가절감 등 여러 요인의 종합적 결과인데,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수탈한 결과라고 단정한 것은 비논리적이다.
4. 정운찬씨는, '강제가 아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이익공유제'라고 作名을 했을까? '제도'는 법률적 근거를 가져야 한다. <이를 잘 실천하는 대기업에 稅制(세제) 혜택이나 공공기관 發注(발주)사업에 우선권을 주는 등 인센티브를 부여해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강제이다.
5.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부터 억울한 대우를 받는 문제는 분명히 있다. 이는 인간사회의 常識(상식)과 信義(신의), 그리고 자유민주적인 기본가치를 손상하지 않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대기업에의 계급적 敵對感(적대감)을 깔고서 펴는 정책은 정의롭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써 보면 毒(독)이다.

2007년 10월4일의 노무현-김정일 합의문엔 남북관계에도 ‘福祉포퓰리즘적 發想(발상)’을 적용시킨 듯한 대목이 있다.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해서 경제협력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확대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有無相通(유무상통)’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서로 융통함'이라고 國語사전에 적혀 있다. 즉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무조건 퍼주는 것을 말한다. 상호주의의 반대말이다. 이런 용어를 公用(공용)문서에 쓴 예는 이것이 처음일 것이다. 좌파정권이 이어졌더라면 북한정권은 수시로 "유무상통의 원칙에 따라 식량을 다오, 돈을 다오, 電力(전력)을 다오"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이 세상엔 공짜가 없다. ‘공짜’는 無에서 有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物理學的(물리학적)으로도 그 타당성이 부정된다. ‘無償복지’는 神(신)도 할 수 없다. 神도 할 수 없는 일을 人間(인간)이 하겠다고 公約(공약)하는 것은 인간과 사회의 기본 작동 原理(원리)를 파괴하려는 反인간적, 反사회적 행동이다. '노르딕 모델(스칸디나비아식 복지 모델)'은 성숙한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한 복지이다. 선동에 쉽게 넘어가는 愚衆(우중)과, 정상배들의 '福祉(복지)포퓰리즘'이 결합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활기가 사라지고 사회윤리가 무너진다. 복지의 기반인 생산력이 약화되면 자유통일과 一流(일류)국가 건설로 가는 動力(동력)을 잃게 된다. '복지포퓰리즘'은 反자유, 反통일, 反선진이다.

철저한 시장경제주의자 예수 그리스도

新約(신약)성경 마태복음 25장 14절부터 29절까지의 유명한 에피소드는 시장경제주의자들에겐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탄압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온 분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예수는 냉엄한 시장경제주의자이다. 아래 대목은 예수가 죽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한 이야기이다.

<또 어떤 사람이 他國(타국)에 갈 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金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리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는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取利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邊利(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쫒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니라' 하니라>

이 에피소드는 자본주의의 윤리, 그 핵심을 말하고 있다.

1. 예수는 商(상)행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돈을 빌어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도 부정하지 않는다.
2. 예수는 공짜심리를 대단히 경멸한다. 예수는 성경에 나오는 富者(부자) 주인의 입을 통해서, 세번째 종이 주인을, 노력하지 않고 돈을 버는 공짜심리의 소유자인 것으로 誤判(오판)하여 한 달란트를 땅에 파묻어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
3. 예수는 자본주의의 큰 동력인 모험을 찬양한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을 칭찬하는 主人(주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설사 손해를 볼 망정 돈은 돌려서 사업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란 점이다.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책망하면서 사업을 하기 싫으면 이자라도 놓았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예수는 현금을 장롱에 쌓아두는 행위를 죄악시한다.
4. 예수는 게으른 것을 惡으로 본다. 세번째 종을 문책하는 가장 큰 논리도 그것이다. 능력이 있으면서 게으른 자는 구원의 대상이 못된다는 식이다. 예수는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나, 게으른 인간을 경멸한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특혜를 하나님으로부터 얻었다면 열심히 일하고 생산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할 의무를 진다. 그는 무능과 無知(무지)를 無産(무산)계급의 미덕으로 선전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억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셈이다.

5. 예수는 열심히 잘 하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효율의 논리에 충실하다. 게으른 종의 한 달란트를 빼앗은 주인은 네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어 열 달란트를 가진 종과 균형을 맞추려 하지 않고 열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어버린다. 자본주의적 경쟁원리를 새마을 운동에 도입했던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은 自立(자립)정신이 없는 마을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는 대신 잘 하는 마을을 돕도록 하여 마을 간에 경쟁을 붙여 사업을 성공시켰다.
6. 예수는 악하고 게으른 자들이 인류 文明(문명)의 짐이 될 것임을 예언했다. 주인이 쫓아낸 악하고 게으른 종은 반성하지 않는다. 그는 슬피 울면서 이를 간다. 복수를 다짐한다.
7. 이런 악하고 게으른 자들에게 공산주의 이념은 아편이 되었다. 게으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는 자칭 평등의 논리, 계급해방의 논리, 가진 자를 저주하는 착취의 논리가 인간의 양심과 열심을 마비시켰다. 게으른 자의 惡한 마음에 파고든 이 가짜 평등의 논리, 해방의 논리가 증오심을 부추기고, 인간의 발전 동기를 말살시켰다.
8. 朱子學(주자학)을 교조적으로 수입한 조선조 시대의 권력 엘리트들은 商행위를 경멸하였다. 士農工商(사농공상)의 조선조 신분질서는 그런 가치관의 반영이다. 주자학은 돈을 죄악시하면서 오로지 독서와 글짓기에 전념하는 무능한 선비들을 淸貧(청빈)한 인물이라 존경했다[반면에 예수의 자본주의 윤리를 계승한 서양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 좋은 데 쓰는 것이 善(선)이라는 淸富(청부)의 윤리를 가졌다]. 자본주의의 씨앗이 도저히 자랄 수 없는 이념적 토양을 가진 곳이 한국이었다. 이런 척박한 토양에서 세계적인 경제大國(대국)과 대기업을 키워낸 이승만,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같은 사람들은 요사이도 욕을 더 많이 먹고 있다.

한 달란트를 땅 속에 파묻어놓고 無爲徒食(무위도식)했던 자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또 다시 다섯 달란트를 만들어 내려다가 실수를 한 것만 들추어내어 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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