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의 姜基甲(강기갑, 前 민노당 대표) 원내대표는 2008년 5~9월 사이 계속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당시 촛불집회는 야간집회로서 집시법 상 不法(불법)집회였다. 姜 씨는 당시 촛불집회의 단골 연사로 대중들을 선동했다. 촛불집회는 2008년 5월 말부터 暴力(폭력)집회로 변질됐지만, 姜 씨의 선동행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척추 골절 수술 등 53명 부상
姜 씨의 불법과 폭력은 국회 안에서도 벌어졌다. 2009년 1월5일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실에선 姜 씨의 空中浮揚(공중부양) 난동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국회 경위들이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不法점거농성을 하고 있던 민노당 당직자들에 대한 강제 해산을 시도 하자 姜 씨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姜 씨는 朴 총장 사무실에 난입해 테이블 위에 올라가 공중으로 몇 번 씩 뛰어올랐다. 내려온 뒤에는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집기를 집어던졌다. 이어 그는 국회의장실을 찾아가 면담을 요청하며 문을 발로 차기도 했다. 姜 씨는 이 사건으로 국회경위과장 폭행 및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민노당이 올린 동영상을 보면 5일 오후 8시경 경위 30여 명이 불법 부착물을 떼는 과정에서 “천천히 해. 의원님이 다쳐. 조심조심” 등을 연발했다. 반면 민노당 측은 경위들을 향해 “×××들아”라고 욕설을 퍼붓는 등 거칠게 저지했다. 이 동영상에는 姜 씨가 경위들에게 발길질을 하는 모습도 담겨 있다.
국회사무처는 당시 민주당과 민노당의 不法점거와 暴力행사로 총 3423만 원의 시설물 피해가 발생했고, 척추 골절로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인 직원을 포함해 53명의 경위와 방호원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2009년 3월2일 연말‧연초 여야 입법대치 과정에서 물리력을 행사한 이유로 姜 씨와 함께 민주당 문학진 의원에 대해 국회의 모든 회의에 30일간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는 ‘출석정지’ 조치를 결정했다.
姜 씨는 그러나 反省(반성)하지 않았다. 그는 2009년 4월22일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또 다시 暴力(폭력)을 사용했다. 당시 민주당과 민노당 소속 의원들이 중심인 ‘한미FTA 졸속비준반대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는 국회 외통위 회의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회의장으로 진입했다. 장내 소란이 벌어진 가운데 박진 위원장이 비준안 상정을 선언하자 姜 씨 등 야당의원들은 “왜 이렇게 통과시켜야 하느냐”고 격렬하게 항의했다. 姜 씨는 이 과정에서 의사봉을 빼앗아 부러뜨리고 마이크를 잡아 뽑는 등 또 다시 난동을 부렸다. 여당의원들은 “왜 남의 상임위에 와서 이러냐”고 맞받았고, 朴 위원장은 “이렇게 되면 강기갑·천정배 의원에게 퇴장을 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姜 씨는 또 2009년 6월10일 院外에서 暴力(폭력)을 사용했다. 이른바 ‘6월 항쟁 계승·민주회복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열린 이날 서울광장 일대에서는 천막을 치고 밤샘농성을 벌인 야당 의원과 경찰이 하루 종일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다. 姜 씨는 전경들 어깨를 타고 올라가 주먹을 휘둘렀다.
쌍용자동차 불법파업에도 개입
姜 씨는 2009년 쌍용자동차 不法파업에도 적극 개입했다. 姜 씨 등 민노당 당직자들은 쌍용자동차 勞使(노사)대화가 재개된 2009년 8월6일 오전 경기 평택공장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 ‘쌍용차를 사랑하는 아내 모임’ 회원 20여명은 姜 씨 등 당직자들을 찾아가 “우리 남편 회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외부세력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며 국회로 돌아가 줄 것을 요구했다.
姜 씨는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느낀다”면서도 계속 자리에 앉아 버티자 일부는 “직접 일으켜 드리겠다”면서 다가섰다. 얼굴에 물을 뿌리는 이도 있었다. 이들은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제발 떠나 달라”면서 눈물을 흘렸다. 20분 정도 흐느끼던 부인들은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니 그만 돌아가시라”고 남편 동료들이 설득을 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姜 씨는 기자회견을 하는 등 농성장을 지키다 오후 9시쯤 현장을 떠났다. 77일간 계속된 쌍용자동차 불법파업은 3000억 원 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냈다.
‘쿠바 무역모델’로 가자는 강기갑
姜 씨가 꿈꾸는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2009년 1월19일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이상적 모델(?)’로 제시했다. 姜 씨는 “지금의 무역 체계, WTO 세계화 같은 기조는 반대한다. 새로운 무역 체계와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쿠바나 베네수엘라처럼 서로 잡아먹는 게 아니고 상생관계를 지속하면서 부족하고 취약하고 없는 것을 도와주고 보완해 주고 함께 성장 발전시키는 무역 체계로 가자는 거다. 제3세계에서 그런 주장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 유수의 경제대국이지만, 쿠바는 GDP규모조차 확인되지 않을 정도로 몰락한 나라이다. CIA의 <월드팩트북>은 PPP(구매력)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GDP를 11위,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각각 87위와 50위로 평가했다.
姜 씨를 인터뷰한 <중앙일보> 기자는 “姜 대표는 북한의 핵실험과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는 끝까지 직접적인 비판을 하지 않았다. 대신 6자회담이 잘 안 되고 남북 관계가 경색된 데 대한 이명박 정부의 책임론을 길게 언급했다”는 설명을 달아 놓았다. 姜 씨는 “금강산에서 우리 관광객이 북한 병사의 총에 맞아 죽었다. 북한은 사과하지 않았다. 그래도 가만히 있어야 한단 말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유감 표명은 하지 않았나? 저는 그렇더라도 단절이라든가, 우리도 못한다는 식보다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하고 똑같은 것인데, 북한이 그럴수록 더 적극적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해야 되는 관계다.”
從北단체 ‘전국연합’ 대의원 자격 유지
姜 씨는 대표적 從北(종북)단체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출신이다. 그는 17대 국회의원 시절에도 전국연합 대의원 자격을 유지했었다. 전국연합은 1991년 설립 이래 從北단체들의 회의체로 기능해오다가 2008년 2월 한국진보연대라는 左派연합체로 解消(해소), 통합된 조직이다. 전국연합은 국보법 철폐-주한미군 철수-평화협정 체결-연방제 통일 등 북한의 對南노선을 공개적으로 추종해왔다. 전국연합은 해마다 수백여 차례의 집회·시위(2006년 한 해 약 800여 차례) 등 행사를 치렀으며,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소위 ‘汎(범)대위’를 조직해 親北反美운동을 벌여왔다. 이 단체가 주도한 대표적 汎대위는 2002년 여중생汎대위, 2004년 탄핵무효汎국민행동, 2005년 평택汎대위 등을 들 수 있다. 전국연합의 후신인 한국진보연대는 2008년 광우병국민대책회의를 주도하기도 했다.
간첩·빨치산 추모제 추모위원으로 참여
姜 씨는 국회 진출 이후 줄곧 院內(원내)에서 쌀 수입 반대를 주도하는 한편 院外(원외)에서는 전국농민회총연맹과 함께 소위 ‘통일농업실현’이라는 이름의 김정일 정권 지원에 주력해 왔다.
그는 2007년 10월13일 ‘간첩·빨치산 추모제 추모위원’으로도 참여하기도 했다. 추모대상인 소위 열사 중 상당수는 건국 이후 간첩·빨치산 활동으로 실형을 받은 인물들이었다. 행사장 전시물은 남파간첩 출신과 빨치산 출신들을 가리켜 ‘동지’와 ‘열사’로 호칭하며, 각각 “통일조국을 위한 사업을 위해 남한에 파견”, “조국통일투쟁에 전념하시다” 등으로 美化(미화)했다.
姜 씨는 또 2005년 7월14일 여야 의원 23명과 함께 소위 미국·일본 등 강대국의 對北인권문제 제기가 ‘북한에 대한 강권적 외교압력 행사’라고 비난하며 이를 반대하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결의안은 “미국 네오콘과 일본의 極右(극우)세력 등 국제사회 일각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북핵 문제 해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亂動’ 주역, 강기갑
-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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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02, 1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