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의 정치와 언론은 아직 朝鮮이다

한국 言論의 생리: 左派 600년, 右派 60년
記者의 사회


先進사회는 좋은 記者들이 많은 社會이다. 기자는 거짓과 사실을 구별하여 알리는 전문가이다. 그런 기자들이 많으면 汚物(거짓)은 제거되고 맑은 물이 흐른다. 기자들이 그런 여과기능을 하지 않으면 사회는 汚水(오수)가 뒤섞인 상수도처럼 거짓말 찌거기로 막혀 장애가 온다.
趙顯五 경찰청장 내정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가명계좌의 존재를 명시하는 발언을 한 데 대하여 한국의 기자들이 보이는 태도는 달을 가리키는 스님의 손가락만 쳐다보고 떠들어대는 모습이다. 趙 내정자는, 한국에서 정보가 가장 많은 사람중의 한 명이다. 그 사람이 한 말을 근거로 후속취재를 하여 가명계좌의 眞僞(진위) 여부를 가려내야 할 사람은 사실확인 전문집단인 언론이다.

기자들은, 검찰이 부인했다거나 前職(전직) 검사는 여운을 남겼다거나 하는 구경꾼 자세가 아니라 직접 진실에 접근하려는 기자정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 노력은 힘이 든다. 기자들은 쉬운 방향으로 간다. 趙 내정자의 다른 문제성 발언들을 끌고 와서 亂打(난타)한다. 중대한 것을 피하고 사소한 데 목숨 거는 모습이다.

기자들중엔 이념적으로 편향된 이들이 많다. 이들은 좌경세력의 부정이나 문제점은 회피하거나 감싸고 대한민국 체제 세력에 대한 공격엔 용감한 경향이 있다. 경찰청장 내정자가 與黨 간부의 가명계좌 존재 가능성에 대하여 언급하였더라면 기자들은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취재경쟁을 벌였을 것이다.

지난 일요일 한국 기독교가 합동으로 8·15 대성회를 서울시청광장을 비롯한 全國 40여 군데서 벌였다. 서울엔 30만 기독교인들이 모였다. 광장뿐 아니라 남대문~세종로 네거리 도로도 사람들로 꽉 찼다. 이 거대한 집회를 保守(보수)신문조차 1단 기사, 사진 한 장 정도로 보도하였다. 좌익들 10명이 시위한 기사보다도 작게 다뤘다.

大聖會에 모인 사람들은 대체로 애국적인 설교와 기도를 하였다.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고 통일을 열망하며 북한동포와 탈북자들의 참상을 同情(동정)하였다. 좌경 기자들 눈엔 이게 못마땅하였을 것이다. 만약 불교도가 이 정도의 人波(인파)를 모아서 정부를 비판하는 행사를 하였다면 머리 기사로 보도되었을 것이다.

한국 언론의 좌경화가 反국가, 反기독교, 反사실적 경향을 띠고 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게 작금의 사건들이다. 한국의 좌익은 從北反韓的(종북반한적) 성향이 강한데 이런 이념적 가치관을 반영한 것이리라.

기자는 신념, 종교, 계층, 필요하면 國籍(국적)까지도 넘어서서 사실에 육박하고 사실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프로이다. 이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저 사람은 부인했다 식으로 이 말 저 말 중계나 하여 혼란을 가중시키는 일은 기자가 아니라도 할 사람들이 많다. 한국은 죽은 기자의 사회인가?



헌법21조: '언론은 사회윤리를 침범하여선 안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言論·出版은 他人의 名譽나 權利 또는 公衆道德이나 社會倫理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言論·出版이 他人의 名譽나 權利를 침해한 때에는 被害者는 이에 대한 被害의 賠償을 請求할 수 있다.

MBC는 광우병 선동 보도로 수많은 사람들의 명예와 권리, 그리고 공중질서와 사회윤리를 침해하였다. 언론자유는 무한대가 아니다. MBC는 언론으로 위장한 선동기관이다. 이들에게 언론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강도에게 총기 휴대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MBC는 헌법을 위반해놓고도 뻔뻔하다. 국민의 재산인 공중파를 빌려가 국민의 재산으로 국민을 괴롭힌다. 헌법의 힘을 동원하여 응징해야 한다.









비판이 직업인 기자는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아야 변협논평을 둘러싼 논란을 보고

趙甲濟
한겨레신문은 5일 전 이런 기사를 올렸다.

<현직 부장검사가 출입기자단과의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해 여기자들의 몸을 더듬는 등 성추행을 해 물의를 빚고 있다. 29일 회식자리 참석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남부지검 최아무개(48) 부장검사는 지난 28일 밤 10시께 서울 양천구 신정동 한 호프집에서 한 종합일간지 ㄱ 기자 등 여기자 2명을 성추행했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된 1차 회식자리에서 소주 2병 이상을 마셔 취한 최 부장검사는 ㄱ 기자에게 “어디 사냐, 이따 같이 나가자”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고, 허벅지에 자신의 손을 얹거나 다리를 올려놓기도 했다. 이어 ㄱ 기자가 자리를 피하자 또다른 여기자인 ㄴ 기자의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기자들이 “지금 실수하시는 겁니다”라며 수차례 경고했지만 술에 취한 최 부장검사의 추행은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직후 대한변협은 이런 논평을 발표하였다.

<검사들을 이끌어야 할 고위직 검찰간부가 기자들과의 회식자리에 여기자에 대한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우리는 먼저 왜 검찰이 언론인과 한계를 넘어가는 술자리를 만들고 여기자들 또한 그런 자리에 응해서 수모를 당하는지 의문이다. 이 사회의 질서와 법을 지키는 걸 그 사명으로 하는 검사는 누구보다도 높은 청렴성과 품위와 인격을 갖출 것을 세상은 요구한다. 또한 무관의 제왕인 기자는 중립적이고 고고한 입장에서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언론의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 국민들의 기대에 비추어 볼 때 이번 부장검사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은 정권말 무너진 공직기강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며 권력에 유착해 편히 취재하려는 언론의 일탈된 행동으로 보인다. 향후 검찰과 언론의 적절치 못한 술자리 모임과 악습들이 없어지기를 희망한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 논평을 비판적으로 보도하였지만 인터넷에 달린 댓글엔 변협논평을 일리 있다고 지적한 것들도 적지 않았다.

아래는 조선닷컴 기사 댓글 두 개이다.


*송효선(dancal)2012.04.03 17:13:53
술이 어느 정도 취하기 전에 만남을 파해야지 술취해서 실수할 때까지 그 자리에 남아서 뭘 취재하겠다는 것인지. 설마 취중진담을 이끌어 내려다가 봉변당한 것은 아닌지? 남자 기자가 갔더라도 술취해서 꼬장 부릴 거 같으면 미리 나와야 한다. 그게 올바른 처신이다.


*한효순(lnike)2012.04.03 16:47:18
엄이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함. 물론 이번의 검사넘은 문제가 많지만 앞으로 이런 자리는 없어져야 함...

한겨레 신문 댓글은 검사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다.

cb1318 (119.206.***.***)11추천12반대1우리나라에서 검사는 법위에 군림하는 사람들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사니까 까짓 거야 뭐 대수겠어요????


한겨레신문은 사설에서 변협을 비판하였다.

<또한 검사와 기자들이 만난 것은 사적인 자리도 아니고 ‘출입기자단’과 검찰 공보관인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의 공식적인 회식 자리였다. 기자로서는 당연히 취재 활동의 연장이었다. 그럼에도 엄 이사는 “왜 검찰이 언론인과 한계를 넘어가는 술자리를 만들고 여기자들 또한 그런 자리에 응해서 수모를 당하는지 의문”이라며 “권력에 유착해 편히 취재하려는 언론의 일탈된 행동”이라는 등 망발에 가까운 내용을 논평이라고 내놓았다.>



정당의 성명서처럼 감정적인 사설이다. 그 술자리가 취재공간이었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된 1차 회식자리에서 소주 2병 이상을 마셔 취한 최 부장검사는"이란 한겨레 보도의 상황은 취재공간으로 보기 어렵다. 그 자리가 취재 자리였는지, 私的(사적) 술자리였는지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회식 비용을 누가 냈느냐이다. 利害(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끼리 식사를 하는데, 한쪽에서 식사 비용을 냈다면 언론은 '향응'이라 보도하였을 것이다. 기자들이 분담하였다면 취재자리가 맞고, 취재윤리를 지킨 것이다.

기자는 남을 비판하고 폭로하는 일들을 많이 한다. 자신들에 대한 비판과 폭로도 각오해야 한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성경 말을 지킬 수 없는 게 기자라는 직업이다. 비판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은 그에 따른 부담도 각오해야 한다. 그만큼 처신에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무관의 제왕인 기자는 중립적이고 고고한 입장에서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언론의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는 변협 논평은 그런 점에선 맞는 말이다.

가장 많은 비판을 하는 기자는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아야 공평하다. 변협논평의 핵심은 취재기자들과 검사가 그런 식의 술자리를 갖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언론사와 기자들이 이런 상식적인 지적에 대하여 너무 감정적 반응을 보이면 국민들은 기자들이 聖域(성역)을 요구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기자에게 비판의 특권을 주는 것은 聖域을 부수라는 뜻이지 특권을 이용, 스스로 聖域이 되라는 건 아니다.



한국 기자들을 부끄럽게 만든 이코노미스트 社說

김정일이 제 命대로 살고 간 것을 개탄하고 정권교체를 강조하다.趙甲濟

어제 서점에서 영국의 권위 있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를 사서 社說(사설)을 읽었다. 김정일 사망 관련이었다. 제목의 副題(부제)부터가 간명하였다.

“地上(지상) 최악의 나라의 정권교체를 바라기만 해선 안 되고 계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첫 문장이 이러하였다.
<정의감이 있는 모든 사람들과 수많은 희생자들에게는 김정일이 제 命(명)대로 살다가 自然死(자연사)하였다는 게 정말 잘못 된 일이었다>

社說은 김정일의 惡行(악행)을 가차 없이 비판하였다. 북한을 지옥으로 만들어놓고 자신은 ‘달콤한 人生(인생)’을 즐긴 자라고 평하였다. 꼬냑을 마시고, 초밥을 즐기고, 핵개발을 하고, 여객기를 폭파하고, 영화에 집착, 남한 감독을 납치한 독재자. 이코노미스트는 김정일에겐 북한이 영화촬영 세트장이었다고 표현했다. 이 무대에서 그는 神(신)을 연기하였고, 인민들을 그를 숭배하는 役(역)을 맡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자연사하는 데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소수 지배층을 보호하고, 뚱보 아들에게 이 무대세트를 인계하는 데도 성공하였다.

<이코노미스트>는 김정은이 인수한 북한의 딜레마에 대하여, ‘개방을 해도, 개방을 안 해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점’이라고 정리하였다. ‘무슨 짓을 하든지 결국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Their dilemma is that whatever they do, North Korea will eventually collapse)는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이게, 중국이 김정일에게 여러 번 개방에 따른 기적적인 성과를 보여주어도 변화를 모색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는 것이다.

이 주간지는 ‘개탄하여야 할 진실’이 있는데, 그것은 주변국들이 김정일 살인정권을 지탱해주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은 세계적인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 한국은 북한을 흡수할 때의 비용을 겁내어, 일본은 통일된 한국을 경계하여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지 않도록 움직였다고 하였다. 이코노미스트의 社說(사설) 결론이 감동적이다.

<김氏 정권은 영원히 버틸 순 없다. 어떻게 하면 정권을 교체할 것인가의 논의를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하여서 뿐 아니라 북한의 잊히고 짓밟힌 인민들을 위하여 그러하다>

왜 이런 社說(사설)을 한국의 대표적 언론에선 읽을 수 없었을까? 이념과 도덕의 기준이 확립되지 않으면 時流(시류)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적 논설, 읽어도 도무지 무얼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글을 쓴다. 김정일 정권으로부터 큰 피해를 당한 적도 없는 영국의 주간지가 이런 분노와 正義(정의)의 사설을 쓰는데 저 악당 손에 수백 만의 人命(인명)을 희생당한 한국의 기자들은 왜 정의를 세우지 못할까? 노예는 제대로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기자들의 노예근성을 드러낸 셈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사설은 국민행동본부나 조갑제닷컴의 論調(논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국에선 이런 글을 과격하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보수층이나 식자층에서도 많은데, 영국에선 常識(상식)이다. 이런 나라가 一流(일류)국가이다.

이코노미스트 사설과 같은 좋은 글은 건전한 도덕성과 이념과 분별력을 근거로 하여서만 쓸 수 있다. 중도로 위장한 기회주의적 정신구조를 가진 이들은 애매모호한 글을 쓴다. 한국사회의 좌경화와 한국어의 한글專用 이후 좋은 글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2012-01-04, 11:11 ]
주진우씨는 자신이 기자인지 선동원인지 스스로 결정해야명백한 허위사실에 대하여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는다면 기자가 아니다. 趙甲濟
주진우 기자라는 사람이 어느 출판 기념회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하였다가 朴正熙 대통령 아들 지만 씨로부터 死者(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였다.

"64년도에 대통령이 독일에 간 것은 맞습니다. 거기까진 팩트인데 뤼프케 대통령을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때 뭐였었냐면요, 독일은 이미 조금 민주화가 되어서 대통령이 오자마자 호텔을 민주화 인사들하고 시민단체 인사들이 데모를 해가지고요 대통령은 다른 데 한 발짝도 바깥에 못나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아니 독재자하고, 우리나라도 그렇잖습니까? 아프리카에서 쿠데타로 정권 잡은 사람이 온다고 해서 막 만나주고 그러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명박도 그러지 않잖습니까?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탄광에 간 거는 맞는데, 나머지는 다 구라(거짓말)입니다, 그거."

주 씨가 너무나 자신 있게 한 이 말은 허위이다. 朴正熙 대통령과 서독 대통령 뤼브케 사이엔 몇 차례의 회담과 식사 자리가 있었고 국내 신문에 자세히 보도되었다(아래 기사 참고. '박정희 傳記'에서 발췌). 주씨는 서독 대통령이, 자신을 찾아온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치부하여 만나주지 않은 것처럼 썼다. 이 사람은 한국을 무슨 식민지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主權(주권)국가 頂上(정상)끼리의 회담이 갖는 외교상의 중요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폭언이자 自虐的(자학적) 생각이다. 박정희를 미워하는 마음이 앞서다가 보니 기초적 사실확인도 생략한 듯하다.

주진우라는 사람이 어느 잡지 기자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박지만씨에게 허위사실 유포에 대하여 인정하고 깔끔하게 사과하여야 할 것이다. 기자는 실수할 수 있다. 誤報(오보)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실수에 대하여 인정, 사과하면 된다. 그렇게 하였을 경우, 지만씨는 고소를 취하해야 할 것이다. 만약 명백한 허위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광우병 선동 MBC-PD들이 그러하였듯이 억지를 부리면서 변명만 한다면 기자가 아니라 선동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주진우 씨는 자신이 기자인지, 선동원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1. 한국 언론의 역사적 전통: 21세기 한국 언론은 아직 朝鮮이다.

가. 조선조의 언론: 언론이 정치를 움직였다. 三司와 吏曹銓郞과 士林이 언론과 여론을 주도, 정치를 이끌었다. 조선조의 정치구조와 언론의 생리는 오늘의 한국과 비슷하다. 宣祖 이후의 지배 관료층을 배출한 士林은 조선조 開國을 반대한 유학자들의 제자들이었다. 생래적으로 反체제적이고 명분론이 강했으며 저항적이었다. 조선조에 살면서 조선조 開國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대한민국에 살면서 建國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심리는 반드시 僞善과 自害로 흐른다. 조선조의 엘리트들은 性理學(朱子學)을 교조적으로 섬겼다. 한국의 정치인과 언론인은 민주주의를 교조화한다. 조선 黨爭의 主무기는 주자학적 명분론이고, 三司와 吏曹銓郞이 조성한 언론과 탄핵이었다. 이들은 실용정신, 尙武정신, 自主정신과는 담을 쌓은 집단이었다.
한국의 언론은 지금도 정치의 主題를 설정하는 힘이 있고, 폭로를 主무기로 삼으며, 보도경향은 反국가, 反기업, 反실용적, 反軍的, 도덕주의의 성향을 보인다. 대중민주주의 시대의 언론이지만 가치관과 행태는 조선적(守舊的)이다. 조선조의 士林은 한국의 在野운동권에 비유된다. 조선조의 정치구조와 한국의 정치구조가 흡사하다. 이런 조선조적 전통-명분론, 위선, 반체제성, 군사-경제-과학에 대한 無知, 사대성, 교조성은 전근대적이고 좌경이념과 통한다. 그런 점에서 조선조는 좌경적 정권으로서 그 전통이 600년에 걸치고, 대한민국 建國 이후 비로소 자유와 경쟁 등 우파적 가치관이 힘을 얻게 된다. 우파 60년, 좌파 600년인 셈이다. 북한정권은 조선조의 후예이다.

나. 開化期의 언론: 근대적 신문의 등장으로 조선조적 언론의 전통을 탈피, 國利民福에 이바지하는 성향을 보인다. 개화운동을 주도한 서재필, 이승만 등은 언론 출판을 통한 국민계몽을 重視하였다. 李承晩은 최초의 일간신문 사장이었고 유명한 논설가였다.

다. 식민지 시대: 국민계몽과 독립운동에 주력하였다. 저항적, 志士的 언론인이 많았다. 조선, 동아일보는 나라 잃은 민족에겐 일종의 在野정부였고 많은 人材를 배출하였다.

라. 대한민국 建國 이후: 언론은 민주화 시대를 맞아 정보의 전달, 輿論의 형성이란 고유한 역할을 함에 있어서 저항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정권에 대한 비판적 보도로 정치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4.19, 10.26, 2.12 총선, 6.29 선언 등 정치적 激變期, 언론의 역할은 다른 나라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조선조적 명분론 정치가 부활하면서 군 엘리트가 退潮하고 현대판 三司와 士林이 정치를 견인하는 형국이다. 司憲府=검찰, 司諫院=언론, 弘文館=대학, 士林=운동권. 조선조의 士農工商 류의 현상도 보인다. 현대판 士는 검찰, 정치인, 기자, 교수 등인데, 이들이 기업인 군인 과학자들(工商)을 누른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조선조적 가치관에 反感을 가졌던 혁명가인데, 이 두 지도자는 군인, 기업인, 과학자, 기술자를 우대, 민족사에서 이들이 처음으로 역사 창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도록 도왔다. 조선의 언론을 지배한 주자학적 명분론은 대한민국 建國 이후엔 민주주의적 명분론으로 代替되었다. 이런 명분론은 민족과 민주를 국가와 國益보다 우선시킴으로써 민족주의를 앞세운 공산당 선동에 먹힐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인 통치 30년은 韓民族 정치풍토에서는 예외적인 시기로서 경제, 군사, 과학, 기술을 重視하는 실용의 시대였다. 민주화는 그런 예외의 시대가 끝나고 통상적인 시대, 즉 文民優位(문민우위)의 명분론 정치로 복귀하는 것=정상화되는 것을 뜻했다.

마.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가 문민화, 민주화로 이행하면서 과거 조선조의 명분론적 朋黨(붕당) 정치 행태로 돌아가는 증상을 보임과 더불어 언론은 좌경화 된다. 북한정권의 끈질긴 對南(대남)공작이 만들어낸 從北(종북) 주사파는 민주주의의 약점을 파고들어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좌경화한 언론은 이런 세력을 진보-민주-개혁세력으로 미화, 이들을 키워주는 울타리가 되었다.

2. 대중민주주의 및 정보화 시대의 언론환경

가. 量的 팽창과 영향력 증대: 신문-라디오-텔레비전-인터넷-SNS 등 언론의 다양화로 사람이 언론과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2011년 방송통신위원회 조사에 의하면 국민들의 매일 텔레비전 시청 시간은 187분, 인터넷 98분, 라디오 71분으로서 하루에 거의 여섯 시간 노출된다. 신문 방송사는 700개를 넘고, 연간 매출액은 약20조원, 언론종사자는 약5만, 기자는 2만 명을 넘는다. 정치, 경제, 문화, 안보 등 거의 모든 國政 분야에서 언론과 홍보는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선거는 조직보다 선전이 더 중요해지고 국가정책은 홍보에 실패하면 진척될 수가 없다.

나. 全국민의 언론 참여: 인터넷의 등장으로 대중도 글쓰기를 통하여 언론활동을 하고 輿論을 직접적으로 형성한다. 公論의 場이 넓어진 반면에 글과 말의 질이 떨어지고 선동성이 강해지고 있다. 漢字말살-한글專用에 의한 韓國語의 암호화 현상이 이런 저질화를 부추긴다.

다. 언론의 윤리 약화: 이념적 좌편향, 상업주의, 선동성, 당파성이 언론의 원칙인 객관성과 공정성을 약화시킨다.

3. 한국 언론의 문제들

가. 언론이 부추긴 從北득세와 漢字말살의 同時진행이 국민의 분별력을 약화시켜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나. 언론의 원칙이 붕괴되고 있다. 좌경화와 한국어 파괴가 동시에 진행되어 文法의 원칙, 憲法의 원칙, 사실重視의 원칙, 公正性의 원칙, 公共性의 원칙, 객관성의 원칙 등이 무너지고 있다. 영향력이 큰 방송과 인터넷 포털의 일탈이 가장 심하다.
다. 조선조의 士林처럼 언론종사자들이 反체제적이고 저항적이며 경제-군사-과학 분야에 취약하다. 정치와 언론이 상호 경쟁적으로 위선적 도덕주의를 심화시킨다.
라. 문법에 맞지 않는 기사가 너무 많다. 논평과 사실보도가 구분되지 않고, 的確한 단어 선택보다는 선동적인 언어를 구사한다. 데스크의 기사 교정 기능이 약화되었다. 한자를 쓰지 않아 한국어 발음이 엉망이 되었다. 短音化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마. 일부 언론종사자들도 좌경화되어 계급적-反軍的-反國家的-反法治的-反자본주의적 성향의 기사를 많이 쓴다. 좌파, 저변층, 북한, 지식인에 동정적이고 국가, 기업, 군대, 미국에 부정적이다. 기자의 약37%가 30대, 40대는 36%이다.
바. 국민교양의 지표가 될 만한, 미국의 뉴욕타임스, 일본의 아사히,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프랑스의 르몽드 같은 고급 신문이 없어졌다. 신문이 국민교양을 함양하는 역할을 포기하였다. “좋은 신문이 없으면 좋은 정치가 없다”는 말이 있다.
사. 이념대결 시대를 맞아 기자사회에서도 당파성이 강해지면서 특종과 심층취재를 重視하는 기자정신이 약화되었다. ‘사실이 신념보다 중요하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아. 좌익세력의 선전매체가 언론 행세를 한다.
자. 3대 공중파 방송의 편향성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탄핵 사태와 광우병 난동 사태 때 3대 방송은 사실상 좌파의 선동기관 역할을 하였다.
차. 방송의 反언론적-反법치적 보도에 대한 사회의 견제력이 약하다.

4. 대책 내지는 해결책

가. 국민 교양의 강화: 분별력 있는 시청자와 독자들이 좋은 언론을 만든다. 까다로운 소비자가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과 같다.
나. 韓國語 정상화: 漢字-한글혼용, 國語-國史 교육 강화 등
다. 선동언론과 기자들에 대한 제재와 견제 강화
라. 기자 재교육의 강화
마. 4.11 총선 이후 희망이 보인다. 언론은 輿論을 만들고, 여론은 言論을 만든다.

5. 언론의 정치적 선동 사례

가. 2003년 김현희 가짜 몰기와 3大 방송
나. 2004년 탄핵 사태 때의 3大 방송
나. 2008년 광우병 亂動 사태와 MBC
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한겨례 등 좌파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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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기자들

시리아 內戰을 취재중이던 일본의 '저팬 프레스' 소속 여기자(山本美香)가 정부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그는 다른 일본기자 한 사람과 함께 격전중인 알레포에 잠입하였다가 참변을 당하였다. 시리아 內戰 취재중 사망한 스무명째 기자이다. 야마모도 미카 기자는 최근 NHK와 인터뷰한 자리에서 "누군가가 기록을 하면 그 분쟁은 빨리 끝나거나 확대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분쟁지역 취재를 계속해 왔다"고 말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딸은 전쟁중인 나라의 어린이들과 여인들이 겪는 고통을 꼭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사실보도에 목숨을 건 그의 숭고한 기자정신과 위험지역을 피해다니는 한국 기자들의 자세가 비교된다.

장준하 죽음에 대한 정치인들의 의혹제기는 기자들이 추락을 목격한 김용환씨를 만나 설명을 들어보면 쉽게 거짓임이 드러나는데,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선동꾼들의 주장만 중계, 쓸 데 없는 논란을 일으킨다. 정보화 사회에서 기자들이 게으르면 白晝의 암흑이 된다. 부지런한 정치인들이 게으른 기자들을 갖고 놀면서 국민들을 속이려 든다. 기자들이 터무니 없는 정치적 폭로를 檢證도 하지 않고 소개하는 바람에 이상한 사람이 당선되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런 기자들은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추행하는 정치인의 共犯이다.

월급을 많이 받고 장비도 좋은 한국의 기자들, 특히 방송 기자들이 시리아 현지 취재를 기피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안전한 국내 취재만 하겠다면 부지런하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새누리당에 불리한 기사는 키우고, 민주당에 불리한 기사는 죽이는 기자들

만약 새누리당이 독립운동가를 잡아 넣던 日帝 고등계 형사 출신이 작사하고 작곡한 노래를 黨歌로 채택, 불렀다면 언론은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언론의 집중보도로 새누리당은 4.11 총선에서 참패하였을 것이다.

지금 민주당은 대규모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하였던 두 사람이 작사, 작곡한 노래를 黨歌로 선택, 부르고 있다. 두 사람은 민족반역자 김일성에게 충성 맹세를 하였던 이들이다. 국가 반역 前歷者가 만든 노래를 부르는 건 영혼을 敵에게 파는 행위이다. 종북 진보당 이석기의 애국가 부정 발언보다 더한 반역적 행위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엄청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제도권 언론이 일체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좌경화된 언론은 좌익에 불리한 기사는 덮고 우파에 불리한 기사는 키운다. 새누리당에 불리한 기사는 키우고, 민주당에 불리한 기사는 죽인다.

총리 내정자의 本名을 쓰지 않는 保守신문들
-母國語에 반역하는 언론인들이 母國語를 팔아 먹고 산다. 보수층은 한글專用으로 母國語를 파괴하고 역사와 전통을 무너뜨리는 신문들의 구독을 거부할 의무와 권한이 있다.
趙甲濟

오늘 조선, 중앙일보를 읽었더니 놀랍게도 총리지명자의 본명을 쓰지 않고 발음기호만 썼다. '鄭雲燦'이 本名이고 '정운찬'은 발음기호이다. 발음기호는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다. 鄭雲燦이란 본명은 '鄭씨 성을 가진 사람이고 찬란한 구름처럼 운이 좋을 사람'이란 의미를 전달한다. '정운찬'은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소리이다. 말을 소리로 전락시킨 셈이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를 흔히 보수신문이라고 한다. 특히 조선, 동아일보는 자신들의 이름을 漢字로 쓴다. 朝鮮日報, 東亞日報라고. 그러면서 신문에 실리는 이름은 한글표기로 푸대접한다. 손님 대접이 말이 아니다.

조선, 동아, 중앙일보는 日本人名, 美國人名에는 친절하게 本名을 표기해준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오바마(Obama)라고 표기한다. 외국인을 우대하고 自國民을 학대한다. 사대주의이다.

保守의 가장 큰 덕목은 전통과 역사의 존중이다. 전통과 역사 존중의 가장 큰 일은 母國語를 가꾸면서 이어가는 것이다. 한국인의 母國語는 漢字語 70%, 한글어 30%로 구성되어 있다. 漢字語를 한글로 표기함으로써 말에서 의미를 떼 버리고 소리로 만드는 신문은 民族문화를 파괴하는 이단세력이지 正統도 보수도 아니다.

母國語를 파괴하면 民族魂도 파괴된다. 민족혼을 파괴하는 신문은 국민교양을 파괴한다. 보수층은, 한글專用으로 母國語를 파괴하고 역사와 전통을 무너뜨리는 신문들의 구독을 거부할 의무와 권한이 있다.

일본인들은 대한민국 대통령과 총리의 本名을 아는데 한국인들은 발음부호밖에 모른다. 한국은 이런 비극적 상황을 만든 언론인들이 엘리트를 자칭하는 사회이다. 言語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들이 言語를 밥벌이 수단으로 삼는다. 母國語에 반역하는 언론인들이 母國語를 팔아서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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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中東의 한글專用은 亡國으로 가는 길

민족반역자이자 인류의 재앙이고 300만 餓死에 책임이 있는 김정일에게 언론이 1998년 무렵부터 '위원장'이란 호칭을 충성스럽게 붙여주기 시작하였다. 정치인들과 일반 국민들도 이 호칭法을 따랐다. 이때부터 김정일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한국 사회에서 확산되었다. '위원장'이란 호칭이 인간의 가치관 변화에 작용한 것이다. 이때부터 '美北'이 '北美'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북한정권을 우호적으로, 미국을 敵對的으로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지난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였을 때 언론은 오전중 '사망'-'자살'-'서거'로 말을 바꾸었다. 언론용어가 '서거'로 통일되는 순간 방송은 물론이고 조선, 동아일보까지 일제히 美化, 추모 무드로 紙面과 畵面을 뒤덮었다. 언론이 '自殺'이란 용어를 유지하였더라면 절대로 그런 분위기는 형성될 수 없었다.

결정적 의미를 가진 용어가 잘못 통용되면 가치관이 뒤집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例는 친북守舊좌익들을 '진보'라고 불러주면서 생긴 폐해이다.

이상의 例에서 우리는 언어가 생각을, 생각이 行動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상화는 韓國語의 정상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국어의 정상화는 文法에 맞는 글을 쓰고, 말을 한다는 점이다. 한국어 文法의 제1조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韓國語는 70%의 漢字語와 30%의 固有語로 구성됨으로 두 가지 文字로 써야 한다. 漢字語는 漢字로, 固有語는 한글로 써야 한다>

이 원칙은 어떤 경우에도 고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主權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게 改正不可 조항인 것과 같다.

따라서 漢字-한글混用인가, 한글專用인가의 논쟁은 의미 없다. 헌법을 지킬 것인가, 지키지 않을 것인가로 논쟁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漢字-한글혼용은 물이나 공기처럼 당연하다.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文法을 지킬 것이냐 말 것이냐로 논쟁을 벌이는 사회는, 더구나 文法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는 쪽(한글專用)으로 결론이 나는 사회는 아무리 잘 살아도 知性이 사라진 未開상태라고 볼 수 있다.

한국어 文法이 한글專用 정책으로 무너진 지 오래이다. 한글專用은 한국어의 70%를 암호나 소리로 만든 文法과 언어 파괴였다. 언어 파괴는 정상적인 사고를 파괴하고 가치관을 전도시키며 드디어 인간의 행동양식에 나쁜 영향을 준다. 文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예절도 憲法도 지키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文法을 깨는 사람과 憲法을 깨는 사람들은 일맥상통할 것이다. 文法파괴는 머리 속의 생각을 파괴하고, 헌법파괴는 생활 속의 질서를 파괴한다. 한글전용으로 文法파괴, 좌익득세로 憲法파괴-한국의 민주주의는 兩面공격을 동시에 받고 있다. 文法과 憲法의 동시 파괴로 국가윤리, 국민정신, 그리고 法질서가 동시에 내려 앉고 있다.

한글전용과 좌익得勢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한글專用에 의하여 무식해진 사람들에게 좌익선동이 잘 먹히기 때문이다. 글로써 먹고 사는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범죄는 國語를 파괴하는 것이다. 國語는 조국이다. 따라서 國語파괴는 國家파괴이다.

놀랍게도 이 국어파괴, 국가파괴에 앞장 서는 것이 조선, 동아, 중앙일보이다. 한국의 민족문화는 태반이 漢字語로 된 역사 자료에 담겨 있다. 朝中東이 한글專用으로 흘러가는 바람에 漢字를 배운 학생들도 漢字를 활용할 기회가 없어 알던 한자도 잊어먹고 있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가장 큰 책임자는 보수신문이라고 일컬어지는 세 신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세대가 漢字를 잊어먹도록 유도하는 세 신문은 自害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글專用은 국민들의 독서력을 저하시키고 국민교양을 파괴한다. 이는 불가피하게 신문구독률의 저하로 나타날 것이다.

요사이 학교에서 포기한 漢字교육을 가정에서 시키고 있다. 父母들이 두 세 살, 유아원 원생일 때부터 한자 교과서를 사와서 방바닥에 한자표를 깔거나 볕에 붙여놓고선 시킨다. 눈물겨운 노력이다. 그런데 아무리 한자를 배우도 이 한자를 써 먹을 방법이 없다. 눈에 한자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신문에도, 訃告란에도, 간판에도, 도로표지판에도, 책에도 한자가 없다. 상형문자인 한자는 일상적으로 눈에 띄어야 잊어먹지 않는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좌경문화인 한글專用을 채택함으로써 진짜 보수세력으로부터는 배신감을, 좌익들로부터는 경멸을 샀다. 조중동이 널리 뿌린 한글專用의 씨앗은 한국인의 정신력을 감퇴시키는 毒藥이 되어 오랫동안, 최악의 경우엔 영원히 迷夢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하고, 一流국가 문턱에서 좌절, 다시 3流 국가 수준으로 내려앉게 만들 것이다. 물론 나라가 망가지기 전에 먼저 朝中東이 망가질 것이다.

세 신문은 대통령, 장관, 총리 이름까지도, 심지어 訃告란에서도 한글로 표기한다. 漢字로 표기하여 뜻을 살리도록 苦心하여 지은 남의 이름을 멋대로 발음부호만으로 적고 있다. 이는 기본권 침해이다. 그러면서 일본인과 미국인의 이름은 한글발음에다가 本名의 原語까지 친절하게 적어준다. '오바마(Obama)' '하토야마(鳩山)'식이다. 이는 사대주의이다. 조갑제는 발음부호이고, 趙甲濟가 나의 本名이다.

영어로 Washington이라고 써야지 그 발음부호를 표기하면 미국인도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한국인들은 정운찬 총리내정자와 축구선수 박지성의 本名을 알려면 일본신문을 찾아서 읽어야 한다. 鄭雲燦, 朴智星이다. 地名, 人名, 社名 등 漢字語 고유명사를 발음부호(한글)로만 표기하면 낱말에서 뜻이 달아나버리고 소리만 남는다. 優味家는 언어이지만 '우미가'는 소리이다. 의미를 전달하기 못하기에. 한글專用으로 言語를 소리로 전락시키고 있는 게 신문, 출판인들이다. 言語의 소리化는 다이어먼드의 쓰레기化와 같은 文化파괴이다.


보수주의는 전통의 계승 발전을 핵심으로 삼는다. 보수로 분류되는 세 신문이, 漢字를 모르는 독자를 가르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들에게 영합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미 한국사회에서 지도력을 잃은 것이다. 이는 미래세대에 대한 교육을 포기한 행위이다.

일본의 초등학생들은 한국에 여행을 와서 漢字銘文을 읽고 이해한다. 한국의 초등학생들은 解讀하지 못한다. 선조들의 文化가 이들에겐 외국인 것이다. 우리의 미래세대를 사실상의 文盲者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이 세 신문이다.

한국 신문의 발행인, 편집인, 편집국장 등 몇 안되는 사람들이 1990년대 중반 진지한 고민 없이, 언어의 중요성에 대한 自覺도 없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하여 한글專用을 결정한 일은 한국 역사상 가장 적은 사람들이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오래 이어질 손해를 끼친 경우로 기록될 것이다. 國語파괴 행위는 國法파괴 행위보다 더 나쁘다. 2009년 한국 신문의 편집책임자들은 이 罪過를 어떻게 갚을 생각인가? 역사의 심판이 두렵지 않은가?




한글專用은 創氏改名보다 더한 민족정신 파괴행위

'사적'이란 낱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이런 漢字語가 나타난다.

史的, 私的, 史蹟, 史籍, 四敵, 士籍, 私敵, 事績, 事蹟, 事迹, 事跡, 射的

의미가 다른 12개 낱말을 '사적'이라고 표기하면 '사적'이 어느 낱말을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다. 한글전용주의자들은 이럴 경우 '文脈(문맥)으로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낱말(單語)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완전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낱말이 쓰여진 文脈의 前後를 참고해야 비로소 뜻을 알 수 있다고 한다면 낱말이 아니라 암호이다. 한글전용은 언어를 암호나 소리로 만든다. 이는 韓國語 훼손 행위이다.

문맥을 참고해야 의미를 알 수 있으니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언어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漢字로 쓰면 그런 시간낭비를 줄이고 의미도 정확하게 전달된다.

'사적'이라고 표기하면 발음을 정확하게 할 수가 없다. '사적'이 '私的'을 표기한 것이라면 '사쩍'이라고 읽어야 한다. '사적'이 '史蹟'을 표기한 것이면 '사-적'이라고 읽어야 한다. '사적'이 '史的'을 표기한 것이라면 '사-쩍'이라고 읽어야 한다. '사적'이 '私敵'을 표기한 것이라면 '사적'이라고 읽어야 한다.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면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없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오해도 낳는다. 즉, 漢字語를 한글로 쓰면 의미도, 발음도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다.

漢字語 고유명사는 한글로 적으면 그 의미가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人名, 地名 같은 것의 한글 표기는 최악의 언어파괴 행위이다. 光州를 광주라고 쓰면 '빛고을'이란 뜻이 실종된다. 廣州를 광주라고 표기하면 '너른 고을'이란 뜻이 없어진다. 韓族과 漢族이 있는데 이를 '한족'이라고 표기하면 우리민족을 중국민족으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

즉 漢字語 고유명사를 한글로 표기하면 낱말은 뜻을 읽고 소리로 변한다. 소리는 암호보다도 더 低차원이다. 固有명사는 지을 때 苦心한다. 희망과 염원과 來歷을 담으려 애쓴다. 그렇게 지은 소중한 이름을 아무 의미 없는 소리로 전락시키는 것이 한글專用이다.

한글專用은 韓國語, 즉 母國語 파괴행위이다. 국민으로서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은 母國語 파괴이다. 이는 민족문화 파괴행위이고, 創氏改名보다 더한 民族魂을 말살하는 행위이며, 교양 파괴로 국민수준을 저질화시키는 행위이다.

한글전용이란 自害행위는 漢字는 외국어라는 거짓선동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어는 30%의 한글어와 70%의 漢字語로 구성되었고, 漢字語는 한자로 써야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다. 즉 한자는 한글과 함께 한국어의 두 表記수단인 것이다. 한국어 낱말의 70%를 차지하는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면 낱말이 암호나 소리로 전락하여 언어생활이 準文盲상태로 후퇴한다.

한글은 최고의 表音문자이고 한자는 최고의 表意문자이다. 두 가지 최고급 문자를 사용할 수 있는 福을 받은 한국인이 그 福을 차버린다면 반드시 재앙을 받을 것이다.











金文洙 경기도 지사가 어느 날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기자들이 '거센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예상된다'고 써요. 그때마다 직원들에게 알아보라고 하면 도전하는 곳도 논란이 일어나는 곳도 없는 거예요. 순전히 기자들이 논란과 도전을 만드는 거예요.'

'논란이 예상된다'는 토를 가장 많이 다는 곳은 방송 뉴스일 것이다. 기자 자신이 시비를 걸고 싶은데 '나는 반대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언론 文法에 맞지 않으니 主語를 감추려고 '논란이 예상된다'고 쓰는 것이다. 그런 반대나 도전이나 논란이 일어나라는 선동이다.

보도국장이나 편집국장은 '논란이 예상된다'는 문장을 언론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그런 문장을 쓰는 기자도 함께.


'파문이 예상됩니다'라는 sbs 기자의 설교조 논평기자는 겸손해져야 한다. 특히 방송기자들은. 趙甲濟
어제 sbs 8시 뉴스는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

<[단독] '교사 수 공개하라' 전교조 압박 파문

<앵커>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전교조와 단체협약을 파기했는데요. 이번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각급 학교의 전교조 소속 교원 수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서 적잖은 파문이 예상됩니다. 우상욱 기자의 단독보도입니다.


<기자>

교육과학기술부는 각급 학교의 전교조 교사 숫자 공개를 의무화하기 위해 법률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오늘(2일)로 입법 예고가 끝난 교육정보공개법 시행령에 전교조 소속 교사 숫자 공개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개 배경과 관련해 교과부의 한 간부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원하는 정보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전교조는 이에 대해 '전교조를 반교육적 단체인 양 호도하려는 행태'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현인철/전교조 대변인 : 정상적인 노조활동을 위축시키고 압박하겠다는 그야말로 전교조 죽이기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이됩니다.]

서울시 교육청도 최근 전교조와의 단체 협약을 파기하기로 하는 등 교육 당국과 전교조의 대결 양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습니다.

교과부나 전교조나, 서로를 꺾어 이겨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더 좋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협의 상대로 여길 때 우리교육 문제해법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적잖은 파문이 예상됩니다>는 蛇足(사족)은 데스크가 삭제했어야 했다. 기자는 자신의 기사를 선전하고 있다. 파문을 일으킬 만한 충격적 내용이라는 강조이다. 파문이 예상된다는 기자의 豫斷(예단)은 전교조를 편들고, 敎科部를 비판하려는 뉘앙스를 풍긴다. 파문이란 부정적 용어 선택으로 해서 문제를 일으킨 것은 교과부가 되어버렸다. 파문이란 용어선택으로 해서 기자의 편향성이 드러난 셈이다.

기자는 마지막 부분에서 마이크를 잡고 시청자를 향해서 말한다.

<교과부나 전교조나, 서로를 꺾어 이겨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더 좋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협의 상대로 여길 때 우리교육 문제해법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보도가 아니라 설교 같은 논평이다. 하나마나한 당위론이다. 시청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할 정도로 수준이 낮다고 보는 모양이다. '파문이 예상됩니다'라는 말을 기사문에 덧붙이고 설교조의 논평을 하는 sbs 기자가 그런 교육을 할 실력이나 良識이 있는가? 기자는 겸손해져야 한다. 특히 방송기자들은.
[ 2008-09-03, 12:31 ]
선배기자들의 쟁취한 언론자유를 팔아먹는 이들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언론이 진실에 침묵하고 권력을 추종했다고 비판하는 것보다 더한 왜곡과 조작은 없을 것이다. 趙甲濟
언론자유를 쟁취해낸 舊시대 기자들

나의 기사를 읽고 욕을 퍼붓는 말중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은 '너가 언제 군사독재정권한테는 그런 말을 했나. 요사이 세상이 좋아지니 그런 언론자유를 누리는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김대중, 노무현에게 감사해라. 옛날 같으면 정보부 지하실에 불려가 몽둥이 찜질을 당했을 너희들이 아닌가. 말 조심하라 운운.' 하는 투의 이야기입니다.

요사이 저희들이 누리는 언론자유는 불완전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비해서 나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 언론자유는 그러면 김대중, 노무현이 내려준 선물입니까. 그 반대입니다. 이 언론자유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 언론인들이 쟁취한 것입니다. 그렇게 쟁취한 언론자유를 김대중, 노무현 두 정권은 세무조사, 소송, 거짓말, 홍위병식 선동으로 낭비합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언론이 진실에 침묵하고 권력을 추종했다고 비판하는 것보다 더한 왜곡과 조작은 없을 것입니다.

한국의 언론은 계엄령 치하에서조차도 침묵해본 적이 없습니다. 李承晩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학생들과 신문입니다. 朴正熙 정권의 붕괴에 있어서도 언론의 사실전달 노력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6.29 선언을 부른 1987년 6월 사태가 언론의 침묵이 있었다면 가능하기나 했겠습니까.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특종이 없었더라면 민주화는 늦어졌을 것입니다. 물론 권력의 주구 내지 선전원 노릇을 했던 언론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요사이 조선 동아일보를 열심히 공격하고 있는 방송들이 주로 그랬습니다.

한겨레 신문 같은, 권위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 창간된 신문들은 언론자유 쟁취 작업에는 동참한 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언론자유를 확장시키는 일과는 별로 관련이 없었다고 봅니다.

언론자유 이후에 언론사에 들어왔던 일부 언론인들이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언론인들이 했던 苦鬪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언론자유의 개척자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고마움을 모르는 행동입니다. 그들이 지금 누리는 언론자유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선배 언론인들이 권력과 싸워가면서, 정보부 조사실에서 고초를 당해가면서 쟁취한 것이지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무임승차자들일 뿐입니다.

오늘날 이 귀중한 언론자유를 싸워서 만들어낸 사람들은 바로 舊시대 언론인들이었습니다. 이 점 오해 없기 바랍니다.






東亞日報에 어떻게 이런 기사가 실리나?


내가 욕쟁이들로부터 뭇매를 맞은 것은 사실이다. 이를 ‘여론의 뭇매’라고 표현하는 것은 욕쟁이들을 성숙한 시민으로 격상(格上)시키고, 욕설을 ‘뭇매’라고 미화(美化)해주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사람은 기자이다. 동아닷컴에 우경임 기자가 어제 쓴 기사의 제목은 ‘좌우 독설 공방 왜?’였다. 이런 대목이 있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등도 '자살을 왜 서거라 지칭하며 추모하는가'라는 요지의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인용문은 나의 글을 誤譯하고 있다. 내가 조갑제닷컴에 써올린 글은, 언론은 기사문에서 ‘노무현 자살’이라고 써야지 ‘노무현 서거’라고 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일반인들이 ‘서거’라고 부르면서 추모하는 것을 비판한 글은 아니었다. 우경임 기자는 ‘자살을 왜 서거라고 지칭하며 추모하는가’라는 잘못된 요약문으로써 내가 일반인들의 추모 자유까지 비판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렇게 하여 나의 주장을 ‘독설’의 범주에 집어넣었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는 표현은 誤報이다. 나의 주장에 찬동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찬동하는 사람들의 글은 대체로 논리적이고 온건하였다. 반대하는 이들의 글은 거의가 욕설이었다. 화장실 낙서보다 못한 수준의 욕설, 그것도 거의가 匿名의 욕설인데, 이것을 기자가 ‘여론(與論)’이라고 부를 수 있나? 이런 욕설을 해대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여론조사에서 포함시키지 않는 중, 고등학생들이었다.

내가 욕쟁이들로부터 뭇매를 맞은 것은 사실이다. 이를 ‘여론의 뭇매’라고 표현하는 것은 욕쟁이들을 성숙한 시민으로 격상(格上)시키고, 욕설을 ‘뭇매’라고 미화(美化)해주는 것이다. 이 글을 쓴 사람은 기자이다. 기자의 임무는 사실을 정확한 용어로 알리는 것이다. 기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나, ‘서거’라고 미화하는 것이 맞나?

2001년 여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동아일보 회장 부인이 투신자살하였을 때 동아일보는 이를 ‘동아일보 회장 부인 투신 서거’라고 기사를 썼던가?

내가 기자들을 향하여 한 말(“사실은 사실대로 써야 한다, 용어가 계급적 차별에 이용되어선 안된다”)은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는 말처럼 언론계의 진리이다. 기자의 진실을 강조하였다고 기자가 뭇매를 때린다. 이런 자기부정이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위대한 민족지(民族紙) 동아일보가 어떻게 이런 기사를 실을 수 있나? 거기는 후배 기자들의 미숙성을 고쳐 주는 국장도, 부장도, 심의실도 없는가? 한 줄의 기사문에 이렇게 많은 편향과 부정확성이 들어 있다면 누가 동아일보를 신뢰하겠는가?

국가와 민족이 어려움에 처할 때 동아일보가 버티어낸 힘은 어디서 나왔던가. 돈인가? 총인가? 진실 아닌가? 진실은 정확한 낱말을 통하여서만 전달되지 않는가? 正名 사상은 언론의 출발점 아닌가?

나의 글은 毒說이 아니라 直說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서거'라고 부르지 않으면 敵으로 간주하는 전체주의적 공포 분위기를 만든 것은 방송이었고 여기에 동아일보 같은 보수신문까지 가담하고 있다면 상식 있는 국민들은 의지할 데가 없다.

나는 38년 전 수습기자 시절 선배 한 분으로부터 들은 말을 기자의 행동윤리로 삼았다.
'시청을 출입하는 기자는 시장을 대하는 태도와 수위를 대하는 태도가 같아야 한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험담에 자극을 받아 한강으로 투신한 南相國 대우건설 사장은 '자살'한 것이고, 기소 직전의 형사피의자가 자살한 것은 전직 대통령이므로 언론까지도 보도문에서조차 '서거'라고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자들이 과연 선배들의 피, 땀, 눈물이 만들어낸 이 언론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가?

동아일보의 訃告欄(부고란)에 등장하는 사람 이름은 한글 表記이다. 부모님들은 漢字로 이름을 지었는데, 이를 한글로 표기하면 이름은 아무 뜻도 없는 소리로 전락한다. 동아일보는 다른 신문들과 함께 한국어의 2대 表記수단인 漢字와 한글중 漢字를 버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韓國語를 써서 먹고 사는 신문기자들이 그 韓國語를 파괴하는 모범을 보인 것이 한국사회의 저질화와 국민 교양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신문들의 이런 자기부정과 우경임 기자의 자기부정 사이엔 아마도 관련성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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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서거'가 맞는 표현인가?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서거'라는 용어는 非언론적이고 非과학적이며 非민주적이다.
趙甲濟

언론이 '노무현 자살'을 '노무현 서거'로 표현하고 있다. '서거'는 '逝去'의 한글표기이다. 逝去는 국어사전에 따르면 '死去'의 높임말이다.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언론에서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元老나 前職 대통령이 죽었을 때 逝去(서거)라는 표현을 해왔다. 朴正熙 당시 대통령이 10.26 사건 때 김재규에 의하여 피살되었을 때도 언론은 '逝去'라고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법이 과연 옳은 것이지 검토해볼 만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서거'라고 표현하는 데 대하여 불만을 가진 이가 많다. 그의 죽음을 매도하여서가 아니다. '서거'라는 언론의 용어 선택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애도'를 강제하는 '유도성'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세력이 만든 '열린우리당'이란 黨名은 이 당의 黨員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도 '우리당'이라고 읽게 하는 일종의 사기적 作名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을 선택한 과정과 고민에 대하여는 同情하고 안타깝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있어서 천재적인 노하우를 가진 친북좌익 세력들과 결정적인 순간에서 가끔 이성 잃는 증상이 있는 한국의 언론들이 합세하여 노무현씨의 죽음을, 증오와 갈등의 굿판으로 몰고가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언론이 일제히 '서거'라고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 그 전주곡이 될지도 모른다.

6년 전 鄭夢憲 전 현대그룹 회장이 對北송금 사건 수사를 받던 중 자살하였을 때 언론은 '정몽헌 회장 자살'이라고 보도하였지 '정몽헌 회장 서거'라고 쓰지는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험담을 듣고 자살한 전 대우건설 사장에 대하여 '南相國 서거'라고 보도하였던 적이 있는 언론이라면 '노무현 서거'라고 보도할 자격이 있다.

언론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평등한 용어를 써야 할 의무가 있다. '서거'를 전직 대통령 專用으로 하는 것은 계급적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정신과 맞지 않다. 1987년 이후 현직 대통령에게까지 '각하'라는 말을 쓰지 않도록 한 나라이다.

'노무현 자살'이 흠 잡을 데 없는 用法이다.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고 민주국가에선 달라야 한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서거'라는 용어는 非언론적이고 非과학적이며 非민주적이다.

'노무현 자살'이라고 써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하여 사람들이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로 서거'라고 쓰는 방법이 있는데 '자살'과 '서거' 사이가 잘 맞지 않는다.

조선일보 사설은 死去라는 표현을 했다. 別世라는 표현도 逝去보단 무리가 없다. 요컨대 死者의 신분에 따른 차등적 표현은 평등하지도 민주적이지도 않다는 이야기이다.
[ 2009-05-23, 17:31 ] 조회수 : 33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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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가 지난 주 게재를 거부하였던 국민행동본부의 광고문안


노사모와 언론은 自重(자중)하라!


국민장이란 국민이 다 弔問客이 된다는 의미인데, 상주측이 조문객들에게 봉변을 가하면서 무슨 국민장인가? 그들의 행동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하여 가졌던 순수한 마음까지 달라진다.
국민행동본부

1. 국민행동본부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反헌법적-反국가적 정책에 가장 치열하게 반대하고 투쟁하였던 단체이다. 그로 인하여 수많은 고발, 고소를 당하였다. 국민행동본부도 노무현 대통령의 在任시절 그를 내란-외환의 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다. 그럼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自殺이란 충격적 소식을 접하고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盧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2. 노무현 전 대통령이 遺書에서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라고 한 말에 留念한다. 국민행동본부를 비롯한 애국세력이 침묵하는 것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故人의 이 遺言대로 敵과 동지들이 自重自愛하면서 그의 죽음으로부터 값진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이다.

3. 이런 自重自愛는 노무현 지지자들(노사모)에게도 요구된다. 노무현 정권의 피해자라고 할 만한 李會昌 자유선진당 총재의 弔問까지 가로막고 계란을 던지는 지지자들은 故人을 두 번 죽이는 행패를 하고 있다. 국민장이란 국민이 다 弔問客이 된다는 의미인데, 조문객들에게 봉변을 가하면서 무슨 국민장인가? 그들의 행동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하여 가졌던 순수한 마음까지 달라진다.

4. 우리는 국민장에 대하여도 반대하는 생각을 가졌지만 침묵하였다. 刑事피의자가 수사를 받던 중에 자살한 것은 司法정의의 具顯을 불가능하게 만든 행위이다. 자살은 어떤 경우에도 美化될 수 없다. 특히 자살공화국이란 汚名을 들을 정도로 젊은이들의 자살이 속출하고 있는데 자살자를 ‘서거’니 ‘국민장’이니 하여 높여주면 자살을 유도할 가능성은 없는지 생각해봐야 했었다.

5. 그럼에도 정부가 국민장으로 결정한 지금 우리는 장례절차가 엄숙하게 거행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 방향으로 협조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서는 노무현 지지자들도 理性을 되찾아야 한다.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면 그보다 더한 증오와 갈등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銘心하여야 할 것이다.

6. 지금 언론은 理性을 잃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를 표시하지 않으면 逆賊이나 되는 것처럼 일종의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기자들이 사실보도 기사문에서 ‘자살’이란 말을 빼고 ‘서거’라고 부르는 데 대하여 비판한 너무나 당연한 글까지 매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탄핵사태 때, 광우병 사태 때 KBS와 MBC가 얼마나 증오심과 갈등을 부추겨 國論을 분열시키고 법치를 파괴하였는지! ‘저주의 굿판’을 벌인 것은 항상 선동방송이었다. 언론은 自重自愛하라!

7. 歷代 대통령들이 下野-피살-투옥-自殺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데는 대통령중심제와 부패를 끼고 가는 정치문화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숭고한 것’으로 昇華시키는 길은 국가지도층이 제도적 개혁을 통하여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이 되지 말자!

8. 김정일 정권이 두번째 核실험을 하여 국가적 위기상황이 조성된 시점에 故人의 죽음을 악용하여 法질서를 파괴하려 한다면 우리는 헌법과 공동체 수호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할 것임을 밝혀둔다. 거듭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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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쑥대밭"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너무 자극적인 한국 방송의 일본 대지진 보도.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휩싸인다."
"폭삭 내려 앉았다."
"망연자실하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송두리째 사라진 도시"
"완전한 쑥대밭"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필사의 탈출"
"극도의 긴장"
"확보하려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 저녁 KBS 9시 뉴스 등 텔레비전 보도에 등장한 일본 大地震(대지진) 관련 용어이다. 너무 자극적이고 과장된 표현이다. 일본 언론은 自國(자국)의 사태를 보도하면서 이렇게 자극적인 용어는 쓰지 않는다. 한국 방송은, '초토화되었다'면 될 터인데, '완전히 초토화되었다'고 강조한다. '쑥대밭'도 과장인데 '완전한 쑥대밭'이라고 힘을 준다. '확보하려는 경쟁'이라고 해야 정확한데 '전쟁'이라고 과장한다.

이런 자극적 표현은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효과는 크지만 부정확하다. 기사는 대표적인 散文(산문)인데, 산문정신은 '담담하고 차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없을 때 과장법을 쓴다. 과장을 자꾸 하면 사람이나 문장의 格이 떨어진다.

한국은, 드라마도 시끄럽고, 지하철 안도 시끄럽고, 영화도 시끄럽고, 대화도 시끄럽고, 뉴스도 요란하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의 반영이다. 또 하나 한글專用의 영향이기도 하다.

최상급의 표현은 아껴두는 게 좋다. 꼭 써야 할 때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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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의 유족을 보여주지 않는 NHK

대처가 늦어지고 있다는 불평이나 남 탓을 하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한국의 공중파는 재난 보도를 할 때 무조건 정부 대처가 엉터리라고 몰고 간다).
趙甲濟

24시간 재난 방송중인 NHK를 시청하니 이런 특징이 발견되었다.

1. 진행자들의 옷차림이나 용모가 평범하다.
2. 말을 조용조용하게 한다. 기자들은 사무적으로, 차분하게 말한다.
3. 울부짖는 사람들이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映像(영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NHK는 아직 사망자의 유족을 한번도 인터뷰하지 않았다. 유족들이 애통해 하는 모습도 일체 보여주지 않는다. 屍身(시신)이나 棺(관)도 보여주지 않았다.
4. 사망자 통계를 보수적으로 잡는다.
5. 피해실태와 정부의 구조 작전은 상세하게 보도한다. 정부의 조치나 발표를 충실하게 전한다.
6. 대처가 늦어지고 있다는 불평이나, 남 탓을 하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한국의 공중파는 재난 보도를 할 때 무조건 정부 대처가 엉터리라고 몰고 간다).
7. 차분한 진행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분위기를 만든다. 일본 대지진에 대하여는 KBS가 NHK보다 훨씬 더 흥분하였다. NHK는, 아수라장, 쑥대밭, 유령도시 같은 극단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다.

[ 2011-03-12, 09:33 ]




텔레비전이 발명된 이후 최악의 편향은 MBC불법 파업 노조가 공정보도를 말하는 건 김정일이 人權을 말하고 김대업이 정직을 설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趙甲濟


텔레비전이 발명된 이후 가장 대규모의, 가장 지속적인, 가장 심각한 조작-편향-과장보도를 일삼은 방송사는 단연 MBC일 것이다. 물론 공산국가 방송사를 빼고.

국민재산인 공중파를 쓰는 공영방송 종사자는 다른 언론기관보다도 더 조심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방송법 제5조는 <방송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고, 건전한 여론형성에 이바지하여야 하며 범죄와 폭력을 조장하여선 안되고, 청소년 교육에 나쁜 영향을 끼쳐선 안된다>고 규정하였다. 좌파정권 등장 이후 MBC가 해온 일들은 이 방송법 규정을 철저하게 짓밟고, 또 짓밟을 자유를 누린 것이다.

광우병 선동, 노무현 탄핵 때의 편향 방송, 2002년 서해교전 때 가해자인 북한 편들기, 폭력시위를 비호하고 진압경찰 흠집내기, 그리고 김현희 의혹제기와 거주지 공개 등등. 공영방송이 선동기관으로 표변, 국민을 탄압해왔다. 조작과 오보임이 밝혀져도 사과도 않는다. 언론은 오보를 할 수 있다. 오보임이 밝혀져도 정정과 사과를 거부하면 그때부터 선동기관이 되는 것이다. 국민재산을 악용, 국민을 괴롭히는 흉기가 된 것이다. 이런 사태에 책임이 가장 큰 노조가 공정보도 운운하면서 불법파업을 하고 있다. 종북 좌파 세력이 이 파업을 지지하지만 국민들은 오히려 골치덩어리가 없어져 마음이 편하다.

이 지구상에서 공정보도를 말할 자격이 없는 언론사 하나만 꼽으라 한다면 MBC이고 파업 노조일 것이다. 공정보도를 말하면서 정치권 도움을 구한다. 그들이 공정보도를 말하는 건 김정일이 人權을 말하고 김대업이 정직을 설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들이 말하는 공정보도는 편향보도를 할 특권의 유지를 뜻한다. 조작과 왜곡 부문에서 기네스 북에 올라야 할 MBC 노조가 이런 상태로 존재하는 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MBC 파업 노조는 公共의 敵이다. 공공의 敵을 편드는 세력도 공공의 敵이다.

*올인코리아 조영환 씨가 요약한 파업노조의 행태이다.

<5개월이나 지속된 MBC노조의 파업은 총선에서 좌익야당이 이길 것에 대비한 정치성 파업이라는 게 우익진영의 분석이고, 그것은 가장 정확하고 공정한 평가일 것이다. MBC노조의 패륜성, 반란성 편파성은 한국 언론역사에서 최악의 사례로 꼽힐 것이다. 광우병 촛불선동 이후에 MBC노조가 국민들에게 보여준 편파적 정치선동은 막가파식 깽판꾼의 억지와 난동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좌익세력이 가진 모든 악덕을 MBC노조는 가장 선명하게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을 날조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상대방의 악을 과장하는 MBC노조의 정치성 파업투쟁은 한국 언론계의 망조든 현실을 가장 잘 대변했다. 김대중-노무현 좌익정권에 너무 깊이 부역하다가 배운 버릇인지 모르지만, MBC노조의 무모한 정치행각은 국민들에게 위선과 횡포의 표본으로 낙인되면서, MBC노조는 최악의 혐오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MBC의 극단적 편향성:「신강균의 사실은」
한국언론학회의 2004년 탄핵방송 평가 보고서 중에서 발췌.

< 정규 뉴스를 보도하는 앵커의 멘트나 기자의 리포트에서는 전체 977건이 기사 가운데서 탄핵 반대 진영에 대한 편향이 발견된 것은 앵커 멘트가 5건, 기자 리포트가 15건에 불과해 상당히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시사ㆍ교양ㆍ정보 프로그램의 앵커 멘트와 기자 리포트는 상대적으로 심한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MBC 앵커 멘트의 47.6%가 탄핵 반대 집단을 두둔한 반면, 찬성 집단을 두둔한 멘트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 리포트에서도 3개 방송 모두 탄핵 반대 집단을 두둔하는 리포트가 찬성 집단을 두둔하는 리포트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여기서도 MBC가 KBS와 SBS보다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그램별로는 연구진이 나중에 통계 처리상의 편향을 줄이기 위해 극단적 사례를 분석 대상에서 제외하고 통계 처리를 했을 정도로 「신강균의 사실은」은 그 정도가 심했다. MBC의 전체 시사ㆍ교양ㆍ정보 프로그램의 리포트 가운데서 21.5%(KBS는 12.7%)가 탄핵 반대 진영을 두둔하는 리포트를 보도한 반면에 「신강균…」에서 방송된 11건의 리포트는 한 건도 빠짐없이 탄핵 반대를 두둔한 리포트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탄핵 반대와 찬성의 일방적인 불균형은 앵커 멘트에서도 11대 0으로 확인됐고, 출연자의 성향에서도 8대 0으로 나타났다. 인터뷰의 편향성은 그나마 탄핵 반대와 찬성이 9대 2로 나타났다. 극단적 편향성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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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방송과 쌍벽! '最多 조작 방송' 기록 세운 MBC


오늘 조선일보 사설의 일부이다.

<검찰은 PD수첩이 문제의 광우병 프로그램 30여곳에서 왜곡·허위·과장을 했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김보슬씨 등 PD 4명과 작가 김씨를 기소했다. PD수첩 제작진은 미국 여성 빈슨의 어머니가 딸이 인간광우병에 걸렸다고 말하지 않는데도 '당신 딸이 인간광우병에 걸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계속 집요하게 질문한 끝에 '만일 내 딸이 인간광우병에 걸렸다면, 내 딸이 어떻게 인간광우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는 답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그러고는 실제 방송에선 앞부분을 빼고 '내 딸이 어떻게 인간광우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는 부분만 내보내 인간광우병과 전혀 무관한 빈슨의 사인을 인간광우병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제작진이 이렇게 황당한 왜곡까지 서슴지 않은 목적은 PD수첩 작가의 이메일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국민의 알 권리나 건강권은 말뿐이고 자신들이 반대하는 정권을 흔들고 무너뜨리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PD수첩 제작진은 이날도 검찰 수사가 '언론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고 주장했다. 날조와 왜곡으로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켜 놓고는 '언론 자유를 행사했을 뿐이니 문제 삼는 것은 나쁘다'는 식이다.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는 이런 악의적 선동과 조작, 무책임까지 보호하지는 않는다.>

MBC-PD 수첩의 광우병 선동 보도는 실수로 빚어진 誤報가 아니다. 개인적 목적을 위하여 사실을 조작한 범죄이다. 오보는 사과하고 정정하면 되지만 범죄에는 罰을 주어야 한다. 50분 방송에서 하나의 사실이 틀렸다고 해도 즉각 바로잡고 사과해야 하는데 MBC의 문제 PD들은 50분간 30여건의 조작, 왜곡, 과장을 하고도 자신들이 잘하였다고 억지를 부리니 이들은 구제불능이다. 반드시 法定 최고형을 때려야 한다.

이들을 언론인으로 간주하고 언론자유 운운하는 것은 치명적 착각이다. 이들은 언론인으로 위장한 선동꾼들이다. 50분간 30여건의 허위, 왜곡, 과장을 할 수 있는 방송은 이 지구상에 평양방송과 MBC뿐일 것이다.

북한정권은 거짓과 폭력를 딛고 서 있는 우상숭배 정권이다. 대한민국은 헌법과 진실, 正義, 자유의 가치 위에 서 있는 民主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 체제, 헌법정신, 국민의 분별력을 유지하려면 습관적 거짓선동으로 국민들을 속이고, 民主정부를 협박하였던 MBC를 법에 따라서 없애버려야 한다. 법대로 하면 MBC는 허가 취소되어야 하고 법을 어기려면 MBC를 살려 두어도 된다.

50분간 30건의 허위, 왜곡, 과장이라면 1.7분간 한 번씩 거짓말을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단연 기네스 북에 올라야 한다. '最多 조작 방송' 분야에서.

*MBC의 5, 6, 7월 전체 사회時事 프로그램 중 광우병 관련 보도 제목(公言連 모니터 팀 조사).

<모니터 결과 방송 3사의 제목과 내용은 촛불 시위 측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KBS는 정부측에 유리한 프로그램이 7.1%, 촛불시위측에 유리한 프로그램이 57.1%, 중립적인 경우가 10% 비율로 나타났다. SBS도 거의 비슷한 수치로 나타났다. 이와 비교해 MBC의 경우에는 정부측에 유리한 프로그램이 단 한 건도 없었으며 90.9%가 촛불시위측에 유리하게 편성되었고 중립이 10%로 나타났다.
우리는 방송 3사의 프로그램이 촛불시위측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음을 확인한다. 특히 MBC는 90.9%가 촛불시위측에 유리하며 중립이 10%이고 정부측에 유리한 프로그램이 단 한건도 편성되지 않는 0%로 확인되는 등 프로그램의 편파성이 가히 극단적임을 본다.>

* MBC의 경찰서장 폭행 비호 보도는 방송법 위반


MBC가 종로경찰서장에 대한 시위대의 폭행을 보도하면서 경찰이 그날 쏘지도 않은 물대포 발사 영상을 배경에 깔아 이것이 시위대를 자극한 것처럼 조작하면서까지 서장 구타 행위를 비호하고 나선 것은 방송법 위반이다. 폭력 시위대에 경찰이 물대포를 쏜 것은 정당한 공무집행 행위이다. 그럼에도 MBC는 이를 비방하는 시위대측의 의견을 부각시키면서 누가 봐도 그날 물대포를 쏜 것처럼 보도하였다. 다른 날에, 다른 상황에서 물대포를 쏘았는데, 보도는 "영하의 날씨에 물대포 진압으로 이미 감정이 격앙돼 있던 상황. 이런 상황에서 경찰서장이 사전 통보 없이 경호조와 채증조를 데리고 시위대 한 가운데를 가로지른 건 시위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운운하여 그날 일어난 상황인 것처럼 왜곡하였다.

방송법 제5조는 <방송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고, 건전한 여론형성에 이바지하여야 하며 범죄와 폭력을 조장하여선 안되며, 청소년 교육에 나쁜 영향을 끼쳐선 안된다>고 규정하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공권력 폭행에 대하여 범법자 쪽의 억지를 그대로 중계한 것, 法집행 행위와 不法 행위를 동등하게 취급한 보도행위는 法 경시 풍조를 심어주는 것으로 방송법을 위반한 셈이다. 방송위원회의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 言論 암흑의 날!희대의 집단오보를 하고도 문책, 사과 없어.

KBS의 새노조가 사실을 조작하여 폭로한 이른바 사찰자료 2600여 건 관련 기사는 한국의 거의 全언론을 최악의 誤報사태로 몰고갔다. 청와대의 해명에 의하여 이른바 동향자료 2600여 건 중 약80%는 노무현 정부 때 작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KBS의 새노조는 노무현 정부 관련은 은폐, 모든 동향파악 자료가 이명박 정부 때 작성된 것처럼 거짓말을 하였고, 다른 언론은 독자적인 검증도 하지 않은 채 이 폭로를 받아 썼다.

언론은 誤報의 책임자를 문책하였어야 한다. 보도국장, 편집국장을 문책하고 독자와 청취자들에게 사과하였어야 했다. 한 언론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보는 할 수 있다. 문제는 오보를 낸 다음의 자세이다. 오보를 바로잡고, 해명, 사과, 문책하면 된다. 이 어느 것도 하지 않았으니 언론이 언론의 윤리를 포기, 선동기관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언론의 정부 비판은 양심 없는 행동이다. 자신의 잘못은 덮고 남의 잘못만 건드리는 언론을 무시하는 게 正義이다. 한국언론사상 최악의 오보를 낸 것보다 그 오보에 대하여 사과하지 않은 것이 더 나쁘다. 오늘은 한국 언론 암흑의 날이다.

다른 분야에서 한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어가지만 언론의 수준은 뒷걸음 친다. 죽은 기자의 사회가 된 지 오래이다. 全언론의 사이비화가 진행중이다. 기자들이 좌경적 이념과 행태에 물들고 漢字말살로 정확한 韓國語를 쓰지 못하게 된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 오늘도 KBS는 國軍을 씹고 북한군을 감쌌다


오늘 밤 9시 KBS 뉴스는 '의혹' '의구심' '의문'이란 말들을 열 번 이상 사용하였다. 그런 감정적인 비판의 대상은 거의 전부가 국군이었다. 심지어 軍이 천안함 침몰 당시의 동영상을 일부만 공개하였는데 이에도 '의구심'이 든다고 보도하였다. 軍 작전과 관련된 동영상은 기밀사항인데, 전부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트집을 잡는다. 이런 KBS를 만족시키려면 國軍은 벌거벗는 수밖에 없다. KBS는 그래도 만족하지 않고 배를 갈라 보이라고 요구할지 모른다.

KBS는 오늘도 天安艦 침몰 원인에 대하여 어제 제기한 황당무계한 암초충돌설에 무게가 실린다는 식으로 몰고갔다. 合參이 이미 암초설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는데도 무슨 특종이나 한 것처럼 밀고나갔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오늘 “사고 해역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암초는 사고 원인이 아니다”며 “海圖에도 표시된 암초가 없다”고 밝혔다. 합참 관계자는 “사고 해역은 섭조개 껍질 등 어패류가 쌓여있는 지역이라 암석처럼 단단하지 않다”며 “만약 천안함이 충돌해도 두 동강이 나지 않고 긁히는 정도 船體 손상만 입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은 또 미국측이 '북한 개입설은 아직 근거가 없다'는 논평을 했다는 것을 아주 친절하게 보도하였다. 어제 김태영 국방장관이 '북한 소행 가능성이 있다'고 정리해주었으면 이걸 믿어야지 굳이 미국측의 원론적인 논평을 인용, 북한군에 유리한 보도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칼 맞은 사람이 찌른 사람을 제일 잘 알지 칼 맞아 비틀거리면서 이웃 집을 찾아가 "아저씨, 나를 찌른 사람이 누구이지요?"라고 묻는 격이다. 이게 사대주의이다.

문제의 기사 제목은 "美, '침몰사건' 北 관련 가능성 거듭 부인"(KBS 인터넷)이었다. 미국이 한국 국방장관의 어제 발표를 정면으로 부인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보도는 그렇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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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미국 정부가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북한이 연루됐을 가능성을 거듭 배제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조사를 지켜보겠다는 신중한 입장입니다.

워싱턴 이춘호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은 오늘 아시아 순방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천안함 침몰과 북한의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대단히 신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녹취>스타인버그(미 국무부 부장관): "제2자가 개입됐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전면적인 조사가 더 진행돼야 합니다."

스타인버그 부장관은 지금은 한국 군 당국이 철저한 조사를 하도록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스타인버그 부장관은 또 비극적인 사고에 대해 한국민들에게 깊은 조의를 표명한다고 말했습니다.

사고 첫날 북한이 연관됐다는 증거를 알지 못한다고 했던 크롤리 미 국무차관보도 오늘 브리핑에서 같은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녹취>크롤리(미 국무차관보): "함정 자체 외에 다른 침몰 요인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크롤리 차관보는 북한 연루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김태영 국방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 연루 가능성을 거듭 부인하면서도 더 이상의 구체적인 언급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한국 정부의 조사결과를 지켜보자는 신중한 입장입니다.

워싱턴에서 KBS 뉴스 이춘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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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조사로 북한군의 기뢰 공격 등의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니 당황한 KBS는 미국측의 하나마나한 논평을 끌고 들어와 국군을 반박하는 형국이다.

KBS가 북한군을 용의선상에서 빼주고 국군이 잘못하여 침몰사고가 난 것처럼 몰고가는 보도를 이처럼 집요하게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軍의 대처 잘못, 구조 작업의 난항을 그토록 트집잡으면서 왜 북한군의 도발 가능성에 대하여는 성의 없이 보도하는가?

군이 KBS의 이런 편향 보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하다. 이번 사건 보도를 통하여 KBS는 국군은 비판하면서 李明博 대통령과 청와대는 좀처럼 비판하지 않는다. 대통령에게는 잘 보이고, 국군엔 가혹하고, 북한군엔 너그럽기가 한량 없는 KBS. 이런 KBS에 국민들이 시청료를 내야 할 이유가 있는가?

KBS는 국군을 향하여 쏟아부은 의문, 의혹, 의구심이란 말을 왜 북한군에 대하여 쓰지 않는가? 대부분의 증언과 정황은, 天安艦 침몰이 북한군이 저지른 테러에 의한 것이란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는데, KBS는 오늘도 국군을 물고 늘어졌다.

대통령에겐 잘 보이려 하고, 國軍은 때리고, 북한군은 감싸는 게 KBS의 社是이고 생존술이라면 자칭 '국민의 방송'을 국민들이 심판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 2010-03-30, 2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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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02, 23:30 ]

뉴욕타임스, '독재자 김정일 急死'라고 제목 달아

"Kim Jong-Il, North Korean Dictator, Dies Suddenly"

미국의 대표 신문인 뉴욕타임스는 김정일 사망 기사 제목을 위와 같이 붙였다. 번역하면 "북한 독재자 김정일, 急死"이다. 한국언론은 '김정일 국방 위원장 사망'이란 제목을 다는데 이 신문은 '독재자'라고 규정하였다. 기자정신이 살아 있는 언론과 魂이 나간 언론의 차이이다.

[ 2011-12-20, 00:09 ]

조선일보, 오늘도 '광주일고 출신' 明記 않아부산저축은행 부정 사건의 핵심 박형선 관련 보도. 다른 언론은 대부분 '광주일고 인맥'임을 明記.趙甲濟
부산저축은행 사건의 본질은, 광주일고 출신들이 경영권과 감사직을 장악, 온갖 부패 부정을 저지르고, 광주일고 출신들(김양, 박형선 등)이 나서서 대외 로비를 통혀여 부정을 은폐하고, 호남지역과 해외에 부실투자를 하여 수兆원에 이르는 부산서민 등의 돈을 날린 점이다. 이 사건은 '광주일고 출신 인맥'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이해가 불가능하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광주일고 출신'이란 핵심적 낱말을 일종의 禁止語로 설정한 듯하다.

오늘도 조선일보는 부산저축은행의 2大 주주이면서 對外 로비를 이끈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 구속과 관련된 집중적인 보도를 하면서 그가 '광주일고 출신'임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어제 은진수 감사위원과 관련된 보도를 하면서는 그가 부산출신이고 부산상고를 나왔다는 점을 친절하게 설명한 것과는 반대이다.

어제 조선일보: <은진수(50·사진) 감사위원은 검찰 재직시절 수사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부산에서 초·중학교를 나온 은 위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2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고, 1988년 행정고시와 사법시험에 잇따라 합격한 '고시 3관왕'이다. 초임 검사 때부터 대검 중수부와 서울지검 특수부에 차출됐다.>

오늘 조선일보는 <(박씨가) 동향이며 고교동문인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을 비롯하여(하략)>라고 했을 뿐이다. 정찬용씨가 광주일고 출신임을 모르는 독자들이 다수이므로 이런 식의 설명으론 박씨가 '광주일고 출신'임을 알 도리가 없다.

반면 SBS, 노컷뉴스, 연합뉴스, 연합뉴스를 실은 경향신문 등 많은 언론은 <박씨는 구속기소된 박연호 회장과 김양 부회장 등 주요 임원들과 광주일고 동문 사이로 지난해 말 기준으로 부산저축은행 지분 9.11%를 갖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하나의 보도지침이 된 것 같은, 조선일보의 '광주일고 禁止語 지정'(?)이 언제 풀릴지 두고 볼 일이다. 5월28일 현재, 조선일보는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관련, '광주일고'란 단어를 쓰지 않은 거의 유일한 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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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은진수가 부산 출신임을 강조


민족과 함께 애환을 같이 해온 이 위대한 신문紙面에 최근 나타나는 지역적 편향성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趙甲濟

조선일보는 오늘자 기사에서 부산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하여 물러난 은진수 전 감사위원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은진수(50·사진) 감사위원은 검찰 재직시절 수사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부산에서 초·중학교를 나온 은 위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2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고, 1988년 행정고시와 사법시험에 잇따라 합격한 '고시 3관왕'이다. 초임 검사 때부터 대검 중수부와 서울지검 특수부에 차출됐다.>

조선일보는 부산저축은행 그룹 금융사기 사건의 主犯집단(이사, 감사, 사외 이사, 핵심 관련자)이 광주일고 출신이란 보도를 한 적이 없다. 이 사건의 본질은 '광주일고 출신들'이 부산서민 등의 돈을 모아 자신들끼리 갈라 먹고, 부정을 서로 덮고, 學緣을 중심으로 거래-로비하고, 호남지방에 집중적으로 부실투자를 함으로써 부산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준 점이다. 이런 學緣-地緣을 설명하지 않고서는 사건의 핵심을 독자들에게 제대로 알릴 수가 없다. 경북고 인맥을 덮고서 하나회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광주일고 출신'임을 明記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 오던 이 신문이 오늘은 왜 은진수씨가 부산에서 초중학교를 나오고 부산상고 출신임을 친절하게 설명하는가? 이 신문은 경상도와 관련 있는 '영포회'(영일 포항 출신 공직자 모임)나 '고소영'(고려대학, 소망교회, 영남인)이란 단어는 거리낌 없이(때로는 집요하게) 쓴다. 국민행동본부의 광고문안에 '광주일고 출신'이란 단어가 들어갔다고 게재를 거부기도 하였다. 민족과 함께 애환을 같이 해온 이 위대한 신문 紙面에 최근 나타나는 지역적 편향성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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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선 및 임상규씨 관련 보도의 차이

<박형선씨는 전남대에 다니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12년,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10개월여 만에 출소했다. 당시 함께 옥고를 치렀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 유인태 전 의원, 이강철 전 노무현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 정찬용 전 대통령 비서실 인사수석비서관,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등은 노무현 정권에서 권력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이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박씨가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부동산 개발사업 등을 벌이며 정·관계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조선일보)
<박연호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의 사돈인 임상규 전 장관은 부산저축은행에 예치했던 예금 5000만원을 1월말 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일보)


<박형선 씨는 박연호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 김양 부회장 등과 광주일고 동문이다. 오지열 중앙부산저축은행장이 사돈이다.>(동아일보)
<(예금을 사전인출한) 임상규 총장은 기획예산처 예산실장과 과학기술부 차관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 출신. 박연호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의 사돈이자 광주일고 동문이다.>(동아일보)

*윤여성씨 관련 보도

다른 신문은 은진수씨에게 로비를 했다는 윤여성씨의 學緣을 아래와 같이 밝혔으나 조선일보는 하지 않았다.
<윤씨는 또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 김양 부회장 등과 고교 동문이라고 주장해 왔다.>(중앙일보)
<구속된 윤씨는 부산저축은행 경영진과는 광주일고 동문으로 특히 김영 부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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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영과 광주일고와 조선일보
'고소영'은 드러내고 '광주일고'는 은폐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보도는 지역감정을 덮는 게 아니라 악화시켜 호남인들을 피해자로 만들 것이다.
趙甲濟

<與 "아니면 말고식 공세엔 대응", 野 "고소영 5남매 전원 리콜">

오늘자 조선일보의 기사 제목이다. '고소영'은 고려대학, 소망교회, 영남인을 가리킨다. 이 신문은 야당의 야비한 선동어를 그대로 받아 썼다.

이 조선일보는 建國 이후 최대규모의 금융사기인 부산저축은행 비리의 주모자들이 '광주일고 출신들'임을 明記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심지어 국민행동본부가 돈을 주고 내는 광고에 '광주일고 출신'이란 말이 있다고 게재를 거부하였다.

조선일보 등 다수 언론의 경상도 때리고(고소영, 영포회의 경우) '광주일고 봐주기'식 보도는, 지역감정을 덮는 게 아니라 격화시키고 있다. 매일경제는 광주일고 출신임을 은폐하기 위하여 '지역 명문고 K고 출신'이라고 적는 바람에 '지역 명문고 경남고 출신'으로 오해하도록 만들었다. 경남고 동창회는 매일경제에 사과, 정정을 요구하고 불응하면 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언론이 기사문의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광주일고 출신 犯法者'를 비호하면 他지역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 절대다수의 선량한 광주일고 동문들과 호남사람들까지 피해자로 만들 것이다.

부산저축은행 사건의 본질은 '광주일고 출신들'이 부산지역의 서민들 돈을 모아 자신들끼리 갈라 먹고 호남지방에 집중적으로 불법-부실 투자를 하여, 수조원을 날려버린 것이다. 부산저축은행의 비리를 감독해야 할 政官界 및 언론계에 대한 로비도 이 인맥이 주도하였을 것이다. 學緣과 地緣이 부정부패의 원인이었다. 이 사실을 설명하지 않는 보도는 얼굴 그림을 그리면서 눈을 그려 넣지 않는 꼴이다.

한국은 아직도 '죽은 기자의 사회'인가? 사회의 公器인 언론이 언론자유를 이렇게 私用하면 언젠가 그 자유를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오늘 기자들이 누리는 언론자유는 선배 기자들이 권력과 맞서 쟁취한 것이다. 공짜로 얻은 자유를 즐기는 젊은 기자들은 기자의 의무를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 2011-05-23, 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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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회’ 관련 기사 총16건, ‘광주일고’라고 한 기사는 全無
언론사 보도 행태 연구(1)/조선일보, 부산저축은행 부정사건 核心 '광주일고 인맥' 한 번도 明記안해
趙成豪(조갑제닷컴)


조선일보는 부산저축은행 비리에 대한 보도를 하면서 광주일고(광주제일고등학교) 출신들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기사와 사설을 통해 정확하게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사설의 경우, 부산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주로 지적한 내용은 ‘금감원에 대한 비판(5월3일)’, ‘금융권의 부도덕성(4월25일)’등이 대부분이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된 데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의 책임이 크다. 금융당국이 부실 저축은행들을 영업정지 시키려고 했다면 미리 치밀한 실행 계획을 수립한 후, 감독관들을 파견해 영업정지 명령과 함께 출입문을 폐쇄하고 전산망 가동을 중단시키는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4월28일자 사설, ‘저축은행 예금 부당인출, 책임질 사람 책임져야’)

“금감원의 윤리수준은 역대 청장들이 줄줄이 감옥으로 간 국세청의 큰형님뻘이다.” (4월26일자 사설, ‘금감원 非理는 개인 非理 넘어선 조직 非理’)

“정부는 부실저축은행 사태가 자칫하면 대형 위기로 갈 수도 있는 초기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절박한 의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5월1일자 사설, ‘저축은행 장부 조작, 금융권 전체 위기로 번질라’)




조선일보 나지홍 기자의 기사(왼쪽 사진) ‘부산저축은행 대주주·감사, 모두 같은 학교·지역 선후배(5월5일자)’를 보면 ‘광주의 명문 고등학교’라는 표현이 나온다. 기사 본문에서 나 기자는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 대주주인 박연호(61) 회장과 김양(58) 부회장, 김민영(65) 부산저축은행장 겸 부산2저축은행장이 모두 광주광역시의 한 명문 고등학교 출신이다. 강성우(59) 부산저축은행 감사는 광주광역시의 다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며 ‘한 명문 고등학교’라고만 썼다. 조선일보는 저축은행 비리 관련 다른 기사에서도 ‘광주일고’라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작년 중순 불거진 ‘영포회(1980년에 결성된 경상북도 영일·포항 출신 5급 이상의 중앙부처 공무원 사조직)’ 관련 조선일보 보도와 ‘(부산저축은행 비리에) 광주일고 출신 개입’ 관련 보도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2010년 7월5일 조선일보 사설 “‘영포회 논란’ 덮어두고선 임기 후반 국정 운영 어렵다”에서 영포회를 ‘포항ㆍ영일 출신 공직자 모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관가(官街)에선 이번 사건이 대통령과 동향(同鄕)인 인적 네트워크에 속한 사람들이 저질러온 월권(越權)의 일부라고들 말하고 있다”며 일각의 소문까지도 기술했다. 또 2010년 7월10일~11일 조선일보 土日섹션 ‘Why’에서도 영포회의 회원 수첩을 입수해 별도의 페이지에 상세히 보도했다. ‘특정지역 인맥’이라는 동일 사안임에도 ‘광주일고 인맥’에 대해서는 조선일보가 묵살한 것이다.




한편, 조선일보 홈페이지 PDF 기사검색에서 ‘영포회’라고 검색어로 검색하면 사설을 포함해 총 16건의 기사가 나오며, 광주일고(광주제일고등학교, 광주제일고 포함)는 검색되지 않았다(注-‘영포회’는 2010년 7월1부터 8월31일까지 검색한 결과이며 ‘광주일고’는 2011년 4월1일부터 2011년 5월17일까지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관련된 사안만을 검색한 결과이다).



[ 2011-05-17, 16:45 ]

[ 2011-05-27, 08:53 ]

[ 2011-05-28, 08:26 ]

*노예근성의 기자들, 죽은 김정일에게 계속 '국방위원장'

死者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직함을 이름 뒤에 붙이지 않고 이름만 써야 한다. 꼭 써야 할 경우엔 '당시 총비서 김정일'로 족하다. 그런데 배운 사람들이 屍身이 된 김정일 뒤에 '국방위원장'이란 反헌법적, 反사실적 직함을 계속 붙인다. 이게 노예근성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김정일 사망을 보도한 한국의 신문 방송 통신사 가운데 단 하나도 '독재자 김정일'이라고 표기하지 않은 것은 言論史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다. 언론자유를 아무리 보장해주어도 노예근성을 가진 기자들이 그 자유를 독재자에게 상납해버리면 도리가 없다. 한국 언론은 지금 白晝(백주)의 암흑속에 있다. 세상은 대낮인데 마음이 어둡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은 사람은 앵커


며칠 전 92세에 사망한 전설적인 미국 CBS 뉴스 앵커 월터 크론카이트는 '미국에서 가장 신뢰 받는 사람'이란 별명을 가졌다. 1980년대 초까지 20년간 앵커(이 단어는 크론카이트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를 하면서 공정하게 사실을 보도하였다. 월남戰에서 크론카이트가 미국 정책에 대하여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것을 본 당시 대통령 린든 존슨은 '크론카이트를 잃는 것은 미국의 중심을 잃는 것이다'는 말을 하고 평화협상으로 전환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크론카이트는 공정한 보도로 국가통합의 상징이 되었다. 요사이 MBC 앵커들은 예외없이 불공정 보도로 국가분열의 상징이 되고 있다. 아무리 많은 예술가, 체육인을 배출하여도 좋은 언론과 정치인이 없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한다. 교묘한 편향보도로 국민들의 분별력을 마비시키고 야비한 논평으로 생각 있는 시청자들의 속을 뒤집어놓는 방송 앵커들을 몰아낼 수 있는 한국이라야 자유통일도, 一流도 가능하다.

광우병 선동 MBC-PD수첩에 상을 주었던 기자협회

희대의 조작 보도에 상을 준 기자가 있는 사회는 '죽은 기자의 사회'이다.


언론과 學界와 법원은 진실과 正義를 유지하는 기관이다. 정당은 정파적으로, 종교는 종파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으나 언론, 학계, 법원은 진실을 추구하고 진실에 기초하여 판단, 행동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직업群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 학계, 법원은 사람들이 판단하고 행동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따라서 이들에겐 정직, 정확, 공정성이 직업윤리여야 한다. 기준이 헝클어진 사회는 혼란으로 간다. 車線이 없는 도로를 질주하면 교통사고가 많이 나듯이 기준이 사라진 사회에선 목소리 큰 사람과 주먹 센 사람이 설친다.

MBC는 2008년 4월29일 PD 수첩을 시작으로 근 석달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과장, 조작하고 不法 야간시위를 엄호하고 경찰을 공격하였다. 이 모든 일이 거짓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언론의 거짓말은 어른이 어린이를 성추행할 때 가중처벌하듯이 가중처벌하여야 한다. 더구나 MBC는 거짓임이 드러났는데도 진심 어린 사과나 책임자 징계를 하지 않고 검찰의 수사에 대하여, 법원의 영장 집행에 대하여도 폭력으로 방해하였다.
한국기자협회(회장 김경호)는 2008년 6월 초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 문제를 다루었던 MBC PD수첩을 ‘이달의 기자상’ 특별상으로 선정했었다. 촛불난동이 한창일 때였다.
심사위원장은 “심사위원 사이에서 職群이 다른 PD의 특별상 수상에 대해 다소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PD수첩'의 광우병 프로그램은 언론 자유를 위해 기여한 프로그램으로 격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모아져 만장일치로 통고됐다”고 밝혔다고 한다(미디어스 보도).
기자협회는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의 단체이다. 이 협회가 그 상을 줄 때는 이미 PD 수첩의 오보와 왜곡과 선동이 다 드러난 시점이었다. '오보와 왜곡인 줄 모르고 상을 주었다'고 변명할 수도 없다. 그런 알리바이가 성립되지 않는다.

PD 저널 보도에 따르면 '이달의 기자상' 예비심사위원장은 '미국산 쇠고기의 문제는 진실과 과학의 문제인데도 한국 언론매체가 정파적 시각으로 전달해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며 'PD 수첩이 진실을 전달하려고 노력했고, 후속편을 보도한 용기를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진실과 과학을 기준으로 하여 평가하니 MBC PD 수첩은 왜곡, 과장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용기라니? 오보하고, 거짓말 하는 것도 용기인가? 진실, 과학, 용기라는 단어에 대한 모독이다.

기자는 신념보다도 사실을 더 중시해야 할 직업인이다. 反美를 신념화한 기자라도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그렇게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기자협회는 사실을 신념에 종속시킨 反언론적 행태를 보였다. 자신의 신념이나 취향을 위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변조하는 행위를 선동이라고 부른다. 선동은 정치인이나 혁명가가 하는 일이지 기자가 할 일은 아니다.

주방장이 든 칼은 맛 있는 음식을 만드는 용이지 살인용이 아니다. 기자의 가장 큰 죄악은 선동을 위하여 직업적 特權을 이용하는 것이다. 기자의 선동은 형사가 강도질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1980년대까지 한국기자협회는 언론자유를 위하여 싸운 단체이다. 희대의 오보와 날조에 상을 준 작금의 기자협회는 언론자유를 남용함으로써 언론자유에 대한 사회적 규제를 자초하는 反기자적 단체로 전락했다. 한국기자협회 소속 기자들이 기자직의 명예 수호를 위하여 自救조치를 취할 때인 것 같다. 기자가 진실의 敵, 공영방송이 공공의 敵이 된 나라가 한국이다.



[ 2009-04-29, 11:01 ]











조선 黨爭의 흐름
安保문제는 주제가 된 적이 없다.
趙甲濟



李重煥이 쓴 「擇里志」란 책에는 조선왕조의 정치가 어떤 운용原理를 갖고 있었느냐에 대한 재미있는 기록이 나온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나라가 삼공육경(三公六卿)을 두고 있지만 언론과 輿論을 중시하고 어떻게 하면 지도자가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서 체면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 법규를 두고 오로지 논의로써 政事를 삼고 있다.
그리하여 내, 외직의 임명과 파직은 三公에게 시키지 아니하고 오로지 이조(吏曹)에 귀속시켰으며 이조의 권한이 무거워질까 염려하여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삼사(三司)관리의 임명과 해임권은 이조판서에게 돌리지 않고 오로지 郎官에게 맡긴 까닭으로 吏曹의 정랑, 좌랑이 또한 언론과 감찰의 권능을 주장하였다. 삼공, 육경이 벼슬은 비록 높고 크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떳떳치 못한 일이 생기면 전랑(銓郞·정랑과 좌랑을 아울러 가리킴)이 문득 三司의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고관들을 논박하게 하였다.
조정의 풍속이 염치를 숭상하고 名節(명분과 절의)을 중하게 여기는 까닭에 한번 탄핵을 받으면 부득불 벼슬을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기 때문에 전랑의 권한이 바로 三公에 겨눌 만하였으니 이것이 대관과 소관이 서로 유지하고 上職과 下職이 서로 견제하여 삼백년 동안 大權奸, 즉 대신으로서 정권을 죄지우지한 이가 없고 신하의 세력이 커져서 제어하기 어려웠던 근심이 없었던 까닭이다.
이는 조선개국을 할 때 고려시대의 君主가 弱하고 臣下가 强했던 폐단을 거울삼아서 보이지 않게 그것을 막으려는 장치를 숨겨둔 것이었다. 이렇기 때문에 三司 가운데서 이름과 덕이 있는 자로서 엄밀하게 뽑아서 銓郞으로 삼게 하되 또한 스스로 후임자를 천거하게 하며 이조판서에게 귀속되지 않게 하였으니 인사권을 중하게 여겨 하나같이 公論에 붙이고자 함이었다. 한번 전랑을 지내면 참으로 다른 잘못이 없는 한 또한 쉽게 영의정, 우의정, 또는 판서 등 公卿에 오를 수가 있다. 그러므로 명예와 利益이 함께 갖추어져 있어 연소한 新進이면 바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여기서 吏曹銓朗(이조전랑)이란 자리가 朝鮮朝 정국에선 핵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조는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관료들의 임명권을 이조, 즉 총무처 같은 부서에 맡겼다. 이렇게 되면 이조의 힘이 또 너무 세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三司, 즉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인사는 지금으로 말하면 국장급인 吏曹銓郞에게 전담하게 하여 상부를 견제하도록 했다는 뜻이다.
司憲府는 지금 식으로 말하면 검찰과 감사원이고 司諫院은 관리들의 잘 잘못을 공론화하는 기능이 있는 만큼 언론일 것이고 弘文館은 교수사회나 학자로 비견될 수 있다. 신진기예의 패기 있는 선비들이 맡게 되는 이조전랑 6명의 직위는 비록 정오품(정랑)아니면 정육품(좌랑)의 높지 않은 직급이었지만 이들은 언론과 검찰 기능을 장악한 三司를 통제하고 있었으므로 장관급인 판서나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도 만만하게 대할 수 없었다. 더구나 전랑은 후임 전랑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이 요직을 누가 차지하느냐가 권력의 장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으므로 당파싸움도 吏曹銓郞의 쟁탈전이었다는 시각이 있다. 이조전랑은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출신이므로 남을 비판하고 잡아넣는 기능을 통제할 수 있었다. 따라서 어느 재상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이 三司를 동원하여 규탄하고 조사할 수도 있어 상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곤 했다.

그러면 중앙정치를 언론과 검찰 및 감사 기능을 장악한 銓郞이 독단할 수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전국에는 여러 학파로 형성된 선비집단이 고을의 서원들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파당을 이뤘다. 이런 집단은 고매한 주자학자들을 중심으로 인맥이 형성되어 있어 학설에 따른 人脈편성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실은 地緣, 學緣, 血緣이 중첩된 인맥구조였다고 한다. 이들은 서울과 지방에서 서원을 중심으로 끈끈한 집단을 형성, 과거제를 통해서 서울에 人材를 공급하는 저수지 역할을 하는가 하면 서울에 진출한 자기들 人脈을 통해서 현실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서원에서 전국에 돌리는 통문이란 것은 요사이로 말한다면 시국선언문 같은 것인데 이것은 山林이라고 불리던 在野 선비사회에서 여론이 되어 이것이 중앙의 성균관을 통하거나 직명상소나 복각 상소의 형태로 조정에 알려지고 때에 따라서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조정에 참여한 고관들도 존경받는 대학자들을 監主라 하여 높이 받들어 모심으로써 지방 在野 지식인 사회가 제도적으로 중앙정치에 관여하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렇게 보면 조선조의 정치에 主役으로 등장했던 세력은 전제권을 가진 왕을 비롯하여 행정권을 쥔 의정부, 언론과 검찰 기능을 쥔 三司, 이 三司를 통제하여 최상층부를 견제하는 이조전랑을 필두로 하는 젊은 관료들, 그리고 중앙을 견제하고 조종하기도 하는 지방의 서원중심 선비집단으로 다양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집단의 상호 견제 때문에 조선조에서는 고려무신정권 때의 최충헌과 같은 실력자가 나타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조선조가 이런 상호 감시 견제 장치를 제도화한 것은 고려 때 王權이 쇠퇴해지고 신하들이 강력해진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런 부작용을 막아보려고 했던 것이다. 즉 신하들끼리의 견제를 강화함으로써 王權을 강화한다는 뜻이 숨어 있었다. 현재적으로 번역하면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하여 언론과 정보, 감사, 검찰 기능을 강화. 관료집단이나 정당의 권한을 약화시킨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당초 의도했던 것과는 반대로 이런 조선조의 정치제도는 강력한 신하도, 강력한 왕도 없는 말하자면 君弱臣弱한 상황을 만들었다. 그 결과로 富國强兵에 실패하고 제국주의 시대를 만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권력을 여러 관료집단 사이에 분산시켜놓으니 끝없는 당파싸움이 계속되었다.

이런 당파싸움은 영원한 勝者도 영원한 敗者도 없는 지리한 싸움이었다. 그 예로 현종과 숙종 때의 당쟁사례를 들 수 있다.
효종이 죽자 효종의 어머니 慈懿大妃(자의대비)가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喪服을 1년간 입어야 하느냐, 2년간을 입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조정에서 대두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절에 대한 서적을 참고로 하여 이런 문제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 책에도 大妃의 상복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래서 영의정 정대화 등 원로대신이 의논하여 자의대비가 1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잠정적으로 결정했다. 西人의 거두 송시열도 1년상에 동의했다. 원래 효종은 차남이었다가 형이 죽는 바람에 세자가 되어 왕이 된 경우이므로 어머니 자의대비는 차남이 죽을 때 하는 식으로 1년간만 상복을 입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西人들과 늘 대립하던 南人들이 들고 일어났다. 남인의 윤선도는 서인들이 1년상을 주장하는 것은 죽은 효종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효종의 형 소현세자의 아들을 정통으로 삼으려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되면 1년상이냐, 2년상이냐 하는 문제는 단순한 장례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政權의 향방이 걸린 정치사건이 된다.

이 논쟁에서 1년상을 주장한 西人들이 이겨 2년상을 주장했던 南人들은 실각당하고만다. 우리나라의 정치싸움의 한 특징은 상복 논쟁과 같은 사소한 문제를 정치적인 사건으로 확대시킨 다음에 死生결단하고 싸운다는 점이다. 어느 나라이든 당쟁도 있고 권력투쟁도 있지만 그런 싸움의 주제가 우리나라와는 다른 것이다.

효종의 죽음 직후에 있었던 상복 논쟁, 그 14년 후 효종의 왕비 장씨가 죽자 이번에도 논쟁이 시작되었다. 장씨의 시어머니인 자의대비가 장씨를 큰 며느리로 대우하여 1년간 상복을 입을 것인가, 9개월간 입을 것인가로 서인과 남인이 대립하게 되었다. 송시열이 영수로 있던 서인은 전처럼 효종의 왕비를 작은 며느리로 대우하여 자의대비가 9개월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남인들은 1년상을 주장했다.

이번에는 현종이 14년 전의 논리를 바꾸어 南人 편을 들어주었다. 송시열을 위시한 서인들은 숙청되고 南人 세상이 되었다. 상복논쟁은 예절에 관한 논쟁으로 끝나야 마땅한데 정치적 숙청으로 연결되었다. 이런 데 이용되는 주자학은 무슨 철학도 종교도 학설도 아닌 권력투쟁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道學정치, 즉 도덕정치를 내세운 주자학이 현실에서는 도덕이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당쟁을 유발한 것이다. 주자학의 논리나 학설들이 남을 함정에 빠뜨리고 제거하는 무기로 악용되었기 때문이다.

어제의 집권자가 오늘은 역적으로 몰리어 죽고, 어제의 역적이 오늘은 권좌에 오르게 되는 일의 일상적인 반복이 바로 조선조 당쟁이었다.
조선조의 당쟁이나 권력투쟁에 불을 당기고 이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이조전랑과 三司, 즉 오늘의 언론과 비슷한 기능을 가졌던 사간원, 오늘의 검찰 감사 기능과 비슷한 사헌부, 오늘의 대학사회와 비슷한 기능을 가졌던 홍문관이었다.

이들은 남의 약점을 확대하고 폭로하고 근사한 규탄의 명분을 만들고 하는 데는 천재적 소양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는 승진하여 우의정도 하고 영의정도 하니 그런 이들의 국가운영이 생산적이고 건설적이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언론이나 감찰기능은 국가에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이것은 보조적인 기능이어야 한다. 국가의 주된 기능은 역시 국방, 외교, 행정, 경제인 것이다. 그런데 조선조에서는 이런 기능보다도 언론이나 감찰기능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정치가 남을 비판하고 잡아넣고 모함하고 선동하는 비생산적이고 부정적이며 소극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조선조 당쟁과 요사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쟁 사이엔 중대한 공통점이 있다. 당쟁이나 정쟁의 중요한 주제는 과거 들추기이다. 과거에 있었던 사건의 해석을 달리하여 과거에 자신들을 탄압했던 사람들을 골탕먹이는 보복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로 현재를 치는 것이다. 정치의 주제는 미래나 현실이 아니고 과거이다. 이런 과거지향적인 정치판에서는 나라를 건설하고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발상이 도대체 나타날 수가 없다.

조선조 당쟁의 또 다른 공식은 政敵을 모함할 때 동원하는 죄목이 거의가 역모였다는 점이다. 역모라고 해야 왕을 선동하여 자신들의 모함에 이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고 역모죄로 걸어야 상대방을 철저하게 말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역모설에 대해서는 진실을 가리는 조사가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권력을 잡은 쪽에서 정치적 목적을 설정해놓고 고문을 하여 자백을 받아내려고 하는데 증거주의나 법치는 아예 낄 수가 없는 것이다.

숙종은 이런 당쟁을 의도적으로 이용하여 왕권을 강화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등극했을 때는 남인들이 집권하고 있었다. 숙종 6년 남인의 영수 허적이 조부의 시호, 즉 죽은 뒤에 공덕을 기리는 이름을 맞아들이는 잔치를 벌이는데 그날 마침 비가 내렸다. 숙종은 허적에게 유악, 즉 비가 새지 않도록 기름을 바른 천막을 빌어주도록 시킨다. 그런데 이 천막이 이미 허적에게 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가 안새는 천막은 군수물자로서 개인이 사사롭게 사용해서는 안되는데 허적은 자신의 권력을 과신한 나머지 이를 남용했다가 숙종의 노여움과 경계심을 촉발하게 되었다. 숙종은 이를 계기로 南人들을 대거 숙청하여 귀양보내고 死刑에 처한 다음 西人들을 중용했다. 이 사건은 경신년에 일어났다고 하여 경신환국이라고 합니다. 환국이란 왕이 직접 나서서 政界개편을 했다는 뜻이다.

경신환국 9년 뒤 숙종은 장희빈에게서 난 왕자를 세자로 책봉하려고 하는데 西人계열의 노론측 대신들이 반대한다. 화가 난 王은 老論의 거두인, 여든살이 넘은 송시열을 유배보낸 뒤 죽이는 등 노론 사람들을 대거 숙청하고 남인들을 등용한다. 1689년에 일어난 이 사건을 기사환국이라 부른다.

다시 그 5년 뒤 이번엔 갑술환국이 일어나는데 숙종은 중전이 된 장희빈에게 정이 약해지면서 장희빈과 내통하고 있던 南人들을 숙청하고 다시 서인측의 노론과 소론 사람들을 등용한 것이다. 그 7년 뒤인 1701년 이번에는 강등된 장희빈을 죽이려고 하는 숙종에게 반대론을 편 서인측 소론이 숙청되고 왕을 편든 같은 서인측인 노론이 정권을 잡았다. 서인들끼리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장희빈의 아들은 숙종이 죽고나서 왕이 되는데 이가 경종이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정권을 잡고 있던 노론측에서는 王의 건강을 문제삼아 왕의 동생인 연잉군, 즉 뒤에 영조가 되는 사람을 세자로 책봉하도록 하고 세자로 하여금 왕을 대리하여 政事를 보도록 하라고 왕을 압박한다.

이 틈을 타서 그 동안 政界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소론이 음모를 꾸민다. 소론은 왕의 편을 드는 것처럼 하면서 세자에 의한 대리청정을 주장하는 노론의 4대신이 실은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무고하여 노론들을 축출하고 다시 정권을 잡았다.

1722년 남인출신 목호룡이란 사람이 이번엔 노론측 4대신의 아들, 조카들이 과거에 경종을 시해할려고 공모했다는 고발을 해 왔다. 요사이 말로 하면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어 노론들을 상대로 한 일대 수사선풍이 불게 된다. 귀양갔던 노론 4대신은 서울로 불려와서 약사발을 마시고 죽는가 하면 관련자들은 모조리 처단되었다. 법에 의하여 사형된 사람은 20여명이고 수사과정에서 맞아죽은 이가 30여명, 친척이란 이유로 죽은 이가 13명, 유배 114명을 낸 사건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녀자가 9명, 연좌된 사람은 173명이나 되었다. 신임사화로 불리는 이 정변으로 노론이 숙청된 이후 정치는 소론이 독점하게 된다.

조선조의 당쟁은 이처럼 어제의 역적이 오늘의 권력자가 되고 오늘의 권력자가 내일은 역적이 되며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지가 되는 식으로 아무런 기준도, 원칙도 없는 권력 그 자체의 끝없는 추구와 모함과 죽임과 복수의 연속이었다. 권력을 놓는다는 것은 유배나 죽음을 의미하는 이런 정치풍토에서는 합리적인 논쟁이나 토론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런 조선조 당쟁 정치가 오늘날에도 모습을 민주주의적으로 바꾸어 우리나라에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신문과 방송에 등장하는 정쟁기사는, 역사물 드라마에서 보는 당쟁과는 등장인물의 복장이 달라졌을 뿐 그 속성은 거의 같다. 모함하기, 과거들추기, 복수, 자체분렬의 연속, 사소한 것에 목숨걸기, 용서없기. 정치 싸움의 주제가 정책이 아닌 붕당적 권력투쟁이란 점에서 같다.



그런데 우리 당쟁사를 보면 당파싸움의 최종적인 결론을 내는 사람은 왕이었습니다. 왕이 아무리 약하더라도 일단은 그 王의 명령에 의하여 누가 죽든지 귀양가고 살아남든지 이기든지 했던 것입니다. 지금의 政爭에서 조선조의 王 역할을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가 궁금합니다. 조선조에서는 모든 권력의 원천은 임금이었듯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권력의 원천은 국민입니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선택하므로 이론상으로는 국민이 왕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만 일상적인 국가정책에 대한 최종결정권자는 아닙니다.

일상적인 업무에서 조선조의 왕과 같은 대권을 쥔 사람은 대통령과 국회입니다.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이 국회를 지배한다면 대통령이 왕이라고 비교해볼 만합니다. 즉, 조선조의 왕이 했던 역할을 지금은 국민, 대통령, 국회가 나누어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민주시대의 왕인 우리 국민들이 지난 50년간 발휘해왔던 정권창출과 교체의 기능은 대강 이러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란 이름을 가진 대왕은 1948년엔 이승만파에게 정권을 주었습니다. 이승만파가 공산주의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켜가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파가 그러나 너무 오만해지고 무능, 무력해지자 대왕은 1960년에 화를 한번 벌컥 내어 이승만을 추방하여 태평양상의 한 섬으로 유배를 보내고 장면을 영의정으로 하는 민주당파에게 정권을 맡겼습니다. 민주당이란 이름 그대로 민주주의를 한번 잘 해보란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면 총리를 배출한 민주당이 노론과 소론처럼 싸우다가 분열하고 정치가 불안정한 틈을 타서 사회가 불안해지고 좌익세력이 등장하고 군대가 공산화의 위기의식을 갖게 되고 이러니까 군대가 쿠데타를 통해서 정권을 잡았습니다. 국민들은 대체로 쿠데타를 묵인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박정희의 집권을 허용했습니다.

국민들은 박정희란 팔팔한 머슴을 잘 부려먹었습니다. 부지런한 이 머슴은 조국근대화란 목표를 걸고 집안을 일으키고 돈을 모아 집안이 부유해지고 식구들이 먹고살게 된 정도가 아니라 공부도 하고 여가도 즐길 수 있을 만한 여유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오래 머슴일을 하다가보니까 자신이 집안의 주인인 줄 착각하고 오만해졌습니다. 그리하여 국민들이 화를 내고 이를 알아차린 그의 부하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했습니다. 우리 국민은 그 뒤 모든 정치인들에게 판을 제공하여 한번 민주주의를 해보라고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른바 1980년 봄의 이야기입니다. 자유가 주어지니까 일대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학생, 노동자, 정치인들이 자제할 줄 모르고 민주화, 임금인상, 그리고 정권교체를 일시에 요구하니 사회가 불안해지고 이 틈을 타서 정치장교들이 뭉쳐서 다시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이때 국민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세력이나 사회안정을 약속한 신군부나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방관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국민들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면 힘이 센 쪽으로 나라가 기울게 됩니다. 그리하여 全斗煥 정권이 들어섰던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때의 중화학과잉투자를 조정하고 물가를 잡아 1980년대를 경제적 태평성대로 만들고 서울올림픽을 유치하여 사회 선진화의 한 계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빵문제가 해결되면 정신적 자유를 욕망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욕망은 민주화 요구로 나타났습니다. 1985년 2.12총선에서 국민들은 어용야당을 외면하고 선명야당을 지지함으로써 민주화를 우리 사회의 대세로 만들었습니다. 그 뒤 우리나라에서는 정권이 혁명이나 쿠데타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전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국민이 조선조의 왕과 같은 힘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런 선거란 기능이 있기 때문에 조선조의 黨爭과 요사이의 政爭이 다소 다른 것도 사실입니다만 많은 부분에서는 닮아 있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의 당쟁이나 요사이의 정쟁에는 外敵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싸우다가는 오랑캐나 북한정권만 좋아하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대주의에 정신이 찌든 때문이고 자주국방을 포기한 때문입니다. 당쟁시대에는 중국이 국방을 대신해주었고 지금은 미국이 북한을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방을 大國한테 맡겨두고 권력투쟁에만 몰두하여 자리다툼만 벌이는 것 이상의 윤리적 타락은 없을 것입니다. 이는 어떤 물질적 부패보다도 더한 정신적 부패인 것입니다. 자주국방을 잊어버린 지도자들은 누가 우리의 진정한 적이며 누가 우리의 선의의 경쟁자인지를 분간할 줄을 모릅니다.

자주국방을 포기함으로써 외부에서 적을 발견못하니까 내부에서 적을 발견한다는 것이 선의의 경쟁자여야 할 상대 정치세력을 적처럼 대하고 말살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누가 적이며 누가 동지이고 누가 경쟁자인지를 구분하는 능력은 국익을 기준하여 고민해본 사람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政爭만 있고 國政은 없고 私益만 있고 國益은 없는 그런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죽은 記者의 사회
2002년 8월20일 사회부 기자들은 「집단자살」하기로 결의했는가?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장(mongo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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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기사를 쓰기 시작한 그날부터 가장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은 「…라고 한다」와 「…이다」의 구별입니다. 「경찰은 A씨가 강도라고 한다」와 「A씨는 강도이다」는 천당과 지옥의 차이, 사실보도와 誤報(오보)의 차이랍니다. 「A씨는 강도이다」라고 기사를 썼을 때는 기자가 그 사실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실이 아닌 경우에는 감옥에 갈 수도 있고, 거액의 손해배상을 물어야 합니다. 「…이다」라고 쓰기 위해서는 기자의 확신만으로는 안 되고 물증이나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따라야 합니다. 그런 확정 판단에 도달하려면 기자는 엄청난 취재를 해야 합니다. 「…라고 한다」고 쓰는 것은 발표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족하지만 「…이다」라고 쓰려면 수사식 취재와 입체적 검증을 해야 합니다.

지난 8월20일 신문과 방송은 흥분된 표현으로써 허원근 육군 일병이 상관의 총에 맞아죽었는데 자살로 은폐 조작되었던 사실이 18년 만에 밝혀졌다고 단정하는 보도를 했습니다. 제가 車中에서 들은 MBC TV의 아홉 시 뉴스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앵커:군복무 중이던 사병이 술 취한 상관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을 군부대가 조직적으로 자살인 것처럼 은폐했던 사실이 18년 만에 밝혀졌습니다.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서 사체에다가 추가로 총질까지 해댔습니다. 철저하게 진상이 밝혀져야 할 것이고 또 책임을 져야 할 줄로 압니다>

「총질까지 해댔습니다」란 표현은 보도문에서 쓰지 않아야 할 감정적 단어들입니다. 앵커는 이 은폐사실을 확신하고 자신의 분노를 집어넣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앵커의 소개에 이어 기자의 보도가 이어졌는데 이런 표현도 있었습니다. 「군헌병대는 (유가족들에게) 몸조심하라며 오히려 협박했습니다」, 「군당국의 주장은 완전한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보도 중간에 기자는 이 사실의 근거를 이렇게 내놓았습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오늘 許일병이 부대內 모 하사관이 쏜 실탄에 가슴을 맞고 숨졌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중략) 의문사위원회는 이번 사건이 권력과 돈이 없으면 자살로 은폐되기 쉬운 軍 의문사의 전형이라고 말하고… (하략)>

거의 모든 誤報에는 그 기사 안에 誤報라는 자백이 들어 있습니다. 이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토록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게 만든 근거는 너무나 허술합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뿐입니다. 그 발표를 근거로 기자가 만나 인터뷰로 내보낸 사람은 총을 쏘았다는 상관이 아니고 許일병의 아버지입니다. 이 기사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許일병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직하게 「…라고 한다」고 해야 하는데, 「…이다」라고 단정했습니다.

즉, 일방적 주장을 진실로 승격시킨 것입니다. 이 승격에 의도가 들어갔다면 造作(조작)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의문사위원회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현재로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기사가 誤報라는 점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요행으로 맞는 것은 도박이지 正報가 아닙니다.

우연히 車中에서 제가 듣게 된 MBC를 예로 들었을 뿐 KBS, SBS, 한겨레신문, 문화일보, 경향신문 등 거의 모든 방송과 신문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許일병 아버지의 주장을 진실이라고 보도하는 형식의 誤報를 했습니다. 조선일보와 국민일보 및 연합뉴스는 기자가 단정하지 않고 「의문사위원회가 밝혔다」는 식으로 보도함으로써 誤報를 면했습니다.

이날 지옥 문턱에 가는 공포를 느꼈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방송과 신문으로부터 범인으로 지목된 모 하사관, 타살을 자살로 은폐했다는 軍 간부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의 법적 신분은 현재 무죄인들입니다. 그런데도 방송과 신문들이 확인 사살, 조직적 은폐,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집중 보도를 하니 제 정신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무고한 사람이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의심을 받아보면 그런 심리적 고통이 육체적 고문에 못지않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1975년에 등산 중 失足死(실족사)한 張俊河씨(전 思想界 발행인)와 사고 당시 같이 있었던 金龍煥씨(고교 교사)가 그런 사람입니다. 張俊河씨를 국가기관이 죽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단체, 그리고 이들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여 의혹을 제기한 방송·잡지·신문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한 그는 1993년 6월호 月刊朝鮮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金씨는 張俊河씨의 장례 직후 잠적했고 최초의 진술 외엔 아직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고 적고 있었다. 이 초라한 사람이 갈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나 슬플 때나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도 잠적인가>

<나는 할 말을 다했는데 나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내가 말을 하지 않았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없었던 일을 지어서 말하라는 것인가.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고 없는 말도, 없는 것도 마음대로 만들어 한 방향으로만 몰아가고 있는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란 말인가. 나는 말할 수도,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에 서서 갈 곳을 잃은 거리의 고아가 되어 버렸다. 신문, 잡지, 텔레비전, 정치권에서 나를 향해 공격해 오고 있다. 유일한 등산 동반자이며 목격자의 증언도 부정한다면 그곳에서 어떤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한방에 같이 있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자식이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했다고 말할 것인가>

張俊河씨를 국가기관이 죽였다면 실족사 장소까지 그를 동행했던 유일한 인물 金龍煥씨가 하수인이 됩니다. 金씨의 주장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면 張俊河씨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억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방송과 신문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공격적으로 정치적으로 의문이 제기될 때 한 개인이 결백증명을 해보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지만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선동가들은 기술적으로 의혹을 제기만 해놓으면 상대방은 守勢에 몰리고 회복이 불가능한 손해를 본다는 점을 이용합니다. 여기에 말려들지 않아야 할 의무를 지닌 직업인이 바로 기자와 검사입니다. 요사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기자들은 선동가들의 선전원으로 전락하고, 검사들은 선동가의 비호자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기자들이 「許일병 사건은 은폐되었다」고 단정하려면 대강 다음과 같은 노력이 따라야 했습니다. 許일병을 쏘았다는 하사관에 대한 면접 취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담당자들에 대한 면접 취재, 剖檢(부검)한 의사들에 대한 다각적인 취재, 현장확인·은폐하는 데 가담했다는 軍 간부들에 대한 직접 취재, 수사 전문가들의 견해, 許일병 주변과 가족들에 대한 취재 등.

이런 노력을 하나도 하지 않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가족의 말만 전하면서 「은폐했다」고 단정한 것은 게으름을 억지로 덮으려는 거의 범죄적 행동입니다. 언론이 許일병을 사살한 범인으로 단정한 당사자의 입장에 서 보십시오. 사석에서 「당신은 살인범이오」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데도 굉장한 고민과 조사가 필요할 터인데 방송과 신문이 수천만 독자 및 시청자들 앞에서 「저 자는 살인자요」라고 공개 고발을 하는 데 있어서 아무 노력도 고민도 하지 않고 그 사람의 반론도 듣지 않고 발표문만 그대로 베꼈다면 이는 한 힘 없는 사람을 상대로 물고문, 전기고문을 한 것보다 훨씬 악질적인 태만입니다.

張俊河씨 실족사 사건의 목격자 金龍煥씨의 고통을 들어보십시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녹화해 둔 것(편집자 注:SBS가 의문을 제기하기 위하여 만든 프로그램)을 보았으나 머리만 아프고 잠도 오지 않고 마음에 괴로움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음날도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해 머리는 무거웠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저의 기억으로는 거의 모든 언론이 판에 박힌 틀의 기사문을 통해서 이렇게 집중적으로, 이렇게 치명적으로(언론 자신과 피해자에 똑같이) 오보를 집단적으로 한 경우는 저의 32년 기자 생활 중 처음입니다. 오보 언론들은 그 뒤 朝鮮日報 사회부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최초의 誤報를 고치지도 않고서 계속 「은폐와 조작」이라고 확정된 사실처럼 밀고나갔습니다. 배짱을 부릴 때가 따로 있습니다. 한국의 사회부 기자들이 「집단자살」하기로 결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2002년의 한국, 정보화 수준이 세계적이란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것이야말로 白晝의 암흑입니다.

기자는 직업적 윤리에 입각하여 모든 발표문을 의심해야 합니다. 왜 전문 수사 능력이 없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를 의심하지 않았습니까. 살해 현장의 목격자가 열 명을 넘는다는데, 어느 軍 수사관도 그들에게 거짓증언을 하라고 압력을 넣지 않았다는데(오히려 바른 말 하라고 닦달을 했다는데), 그 목격자들이 힘 없는 하사관을 위해 자신들은 신세 망칠 것을 각오하고 입을 맞추어 타살을 자살이라고 위증한다는 것이 우리 군대에서 가능했겠느냐, 하는 의심을 왜 하지 않았습니까. 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를 「소설쓰기」라고 부정하는 당사자들의 반론을 싣지 않았습니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구성과 수사행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왜 쓰지 않습니까.

기자들에게 오보를 추궁하면 『시간이 없어서』라고 답합니다. 분, 초를 다투는 사건 기사에서 확인할 여유가 없어 의도성이 없는 오보를 하는 수가 많습니다. 오보는 誤診이나 誤判처럼 줄일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 오보를 수정하는 태도입니다. 이번처럼 첫 보도가 나간 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 많이 나왔으면 최초의 단정보도에서 후퇴하여 반론을 실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 신문은 朝鮮日報 정도였습니다.

오보에도 갑을병이 있습니다. 피해가 구체적이지 않은 오보가 있고, 호랑이 출현 오보처럼 웃음거리를 제공하는 오보도 있습니다. 이번 오보는 한 인간을 살인범으로 몬 것입니다. 저는 제1보에서 오보를 했던 기자들도 이제는 오보였음을 自認하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오보를 수정하지 않고 고집하고 있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의문사委가 대통령 직속이라고 해서 金大中 정권을 믿든지, 誤報를 해도 힘 없는 하사관이 어쩔 것이냐 하는 자신의 비열함을 믿든지, 요사이 사회 분위기가 이런 종류의 오보에는 항의하는 목소리가 별 것 아니더라는 過信에 차 있든지, 군대는 아무리 공격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든지, 본인은 고치고 싶어도 회사에서 밀고나가라고 했다든지…. 이유야 여러 가지이겠지만 주의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이번의 집단 오보 기사에는 記名이 있습니다. 말한 기자, 쓴 기자의 이름이 밝혀져 있습니다. 고소나 소송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두고 두고 오보를 추궁당할 수밖에 없도록 그 이름 석 자가 인터넷에도 올라 있습니다.

기자들이 선동가의 선전원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사례는 너무나 많지만 최근 진행 중인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李會昌씨의 아들 이정연씨와 관련된 고소·고발사건을 한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사회부는 이 사건을 「이정연씨 병역시비 맞고소·고발사건」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표현이 가장 정확하고 공평하다고 판단됩니다.

언론사에 따라 「병역비리 의혹」, 「병역면제 의혹」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이정연씨한테 불리하고 의혹을 주장한 金大業씨한테 유리한, 공정하지 못한 단어 선택입니다. 지금 단계는 이정연씨가 불법적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확증이 없는 상태입니다. 「병역비리 의혹」 속에는 비리와 의혹이란 부정적인 두 단어가 들어 있어 이정연씨가 犯法者라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뒤에 근거 없는 의혹이었음이 밝혀진다면 의혹과 비리라는 말만큼 이정연씨는 피해를 본 셈이 됩니다.

우리 언론은 기소도 되지 않은 사람, 경찰·검찰 같은 수사기관의 수사도 들어가지 않은 상태의 사람에 대해 수사 전문 능력이 의심스러운 한 위원회의 주장을 비판 없이 수용하여 스스로 유죄를 확정선고한 셈입니다. 기자가 보도도 하고 재판도 한 격입니다.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무지막지한 오보가 나오도록 방치, 권장했을 부장, 국장들의 양식입니다. 그 기사는 우선 문법에 맞지 않습니다. 도대체 40代, 50代 부장, 국장들은 어떻게 교정을 보았다는 것인가. 오보 기사 문장 안에 이미 이 보도는 誤報라는 자백이 들어 있는데도(부장이 달리 확인을 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 20년, 30년 경력을 가진 부장, 국장들이 이런 기사를 통과시켰을까요.

젊은 기자들에게 영합한 것인가, 時流에 아부한 것인가, 아니면 좋은 게 좋다는 무사안일인가. 2002년 8월20일은 상당수 고참 기자들도 「동반자살」한 날입니다.

우리 국군의 소신 없는 대응은 또 무엇입니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를 인용한 보도는 국군 지휘부의 명예에 거의 치명적인 손상을 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타살을 자살로 은폐하는 데 軍 지휘계통과 수사기능이 조직적으로 가담했다면 누가 아들 딸들을 군대에 보내려 하겠습니까. 장교들의 명예는 정직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전장에서 허위 보고는 사형감이자 국가의 패망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의문사위원회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만들어진 대통령 직속 기관이기 때문에 軍당국이 억지라는 판단을 하면서도 조심하고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국군은 그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 全斗煥 대통령 시절이니 지금의 우리 軍과는 관계 없다는 생각입니까. 그보다 사소한 비판 기사에 대해서도 법적대응을 서슴지 않던 국군 당국이 왜 당당하게 대응하지 못하여 마치 「許일병 사건 은폐·조작」을 自認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조직의 명예를 自力으로 수호하지 못하는 조직은 무너집니다.

저는 사회부 기자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고문에 의한 조작사건을 많이 취재하였습니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란 책도 썼습니다. 제가 쓴 한 기사는 「신화 1900」이란 연극과 MBC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고문과 조작 사건을 취재하다가 내린 결론은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 즉 엉터리 수사관들에게는 반드시 엉터리 기자들이 공범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는 점이었습니다. 언론의 집중보도로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진범이 되어 버린 사람은 무죄선고를 받더라도 최초의 보도가 만들어 낸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망가진 일생을 살다가 끝나는 경우를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 김기철이란 청년이었습니다. 부산 김근하군 유괴사건의 범인으로 발표되고, 보도되었으나 좋은 변호사와 판사를 만나 무죄로 풀려났던 그는, 고문 후유증과 對人 기피증으로 폐인이 되다시피하여 지내다가 1980년 42세에 요절했습니다. 그는 혼자 살면서 항상 머리맡에 재판기록 보따리를 두고 잤다고 합니다. 이웃사람들은 말이 없는 이 늙은 총각을 「형무소에 갔다온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의심에 찬, 때로는 싸늘한 시각에 그가 답할 수 있는 방법은 재판자료를 보여주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검찰이 한 재소자의 엉터리 提報에 속아 김기철씨를 범인이라고 구속하던 날 신문들은 그를 「살인귀」, 「해병대의 특수교육 경험을 살려 하수인에게 살인방법을 가르쳐 준 國卒의 실업자」라고 사진을 곁들여 대서특필했습니다.

공산주의는 이념에 사실을 종속시킵니다. 좌익은 언론을 계급혁명의 중요 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언론자유를 악용하여 사실의 왜곡·조작·과장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합니다. 좌익이념에 물든 기자들은 기자가 아니라 선동가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의 敵이 됩니다. 기자는 자신의 신념이 사실과 어긋날 때는 신념을 버려야 합니다. 신념과 이념 과잉의 한국 사회에서 사실 추구를 직업으로 하여 여러 면에서 특권을 누리는 기자들에게는 특권에 따른 의무와 냉철한 자기 비판의 자세가 요구됩니다. 권력과 맞서기만 했던 과거보다는 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권력남용에 못지않는, 언론자유에 대한 위협은 「좌파적 선동 분위기의 득세」입니다.

민주주의의 두 實質인 법치와 언론자유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억울한 사람들을 최소화하고 억울한 사람들이 호소할 수 있는 지면과 화면을 제공하자는 뜻이 아닐까요. 기자들이 나서서 억울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들어 가는 사회는 「죽은 기자의 사회」가 아닐까요?●
출처 : 월조
[ 2003-07-03, 12:12 ]


노동신문이 MBC보다 더 공정하지 않을까?90% 對 0%, 48% 對 0%식으로 나타나는 편향성은 病的 상황이다. 趙甲濟
좌편향 勞營 방송이란 비판을 받는 MBC의 편향성을 수치로 보여주면 90% 對 0%, 48% 對 0%식으로 나타난다. 6 對 4 정도의 편향성도 문제인데, 편향의 스코어가 5-1을 넘으면 공정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나치 독일 괴벨스의 宣傳省을 상대로, 조지 오웰의 명작 '1984년'의 眞實省을 상대로, 북한 노동신문을 상대로 편향성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듯이. 한국 언론학회는 2004년 탄핵파동 때의 MBC 보도성향을 분석한 뒤 '극단적 편향성'이란 말을 만들어냈다. 신중한 표현을 쓰는 학자들이 이런 극단적인 표현을 했으니 우직한 국민들의 눈에 비친 모습은 'MBC 미친 방송'(국민행동본부)이다. 좌편향 이념과 철밥통 生理와 기득권 집착이 뒤엉켜서 만들어낸 病的 상황이다.

*한국언론학회의 2004년 탄핵방송 평가 보고서 중에서 발췌.

< 정규 뉴스를 보도하는 앵커의 멘트나 기자의 리포트에서는 전체 977건의 기사 가운데서 탄핵 반대 진영에 대한 편향이 발견된 것은 앵커 멘트가 5건, 기자 리포트가 15건에 불과해 상당히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시사ㆍ교양ㆍ정보 프로그램의 앵커 멘트와 기자 리포트는 상대적으로 심한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시사 프로그램의 MBC 앵커 멘트의 47.6%가 탄핵 반대 집단을 두둔한 반면, 찬성 집단을 두둔한 멘트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부문 기자 리포트에서도 3개 방송 모두 탄핵 반대 집단을 두둔하는 리포트가 찬성 집단을 두둔하는 리포트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여기서도 MBC가 KBS와 SBS보다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그램별로는 연구진이 나중에 통계 처리상의 편향을 줄이기 위해 극단적 사례를 분석 대상에서 제외하고 통계 처리를 했을 정도로 「신강균의 사실은」은 그 정도가 심했다. MBC의 전체 시사ㆍ교양ㆍ정보 프로그램의 리포트 가운데서 21.5%(KBS는 12.7%)가 탄핵 반대 진영을 두둔하는 리포트를 보도한 반면에 「신강균…」에서 방송된 11건의 리포트는 한 건도 빠짐없이 탄핵 반대를 두둔한 리포트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탄핵 반대와 찬성의 일방적인 불균형은 앵커 멘트에서도 11대 0으로 확인됐고, 출연자의 성향에서도 8대 0으로 나타났다. 인터뷰의 편향성은 그나마 탄핵 반대와 찬성이 9대 2로 나타났다. 극단적 편향성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公共의 敵 MBC 한국의 민주주의와 法治주의에 도전하는 MBC를 국민과 국가가 응징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자유통일과 一流국가 건설로 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시험이 될 것이다. 趙甲濟
MBC 노조는 不法파업을 자주 했다. MBC의 상당수 기자들은 不法촛불亂動을 편들었다. 방송법은 방송의 가장 큰 임무가 법질서 존중이라고 못박고 있다. 그렇다면 MBC 노조와 상당수 기자들은 방송을 해선 안 될 사람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法을 우습게 아는 사람을 경찰관이나 검사로 채용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MBC의 PD와 기자들은 안전한 미국산 쇠고기를 위험물질이라고 선동하는 데 국민의 재산인 공중파를 악용했다. 국민재산을 하이재킹하여 私的 목적으로 남용하고 있다. 언론의 생명은 공정성과 진실성이다. 방송법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방송의 의무로 강제한다. MBC는 이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

법질서 존중, 법질서 수호, 공정성과 객관성과 진실성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불법, 선동, 폭력, 편파, 허위의 편에 선 MBC는 公共의 敵이다. 아래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MBC 노조는 20년 전엔 민영화를 주장하더니 이제는 민영화를 반대한다. 私益을 지키기 위한 守舊기득권세력화한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法治주의에 도전하는 MBC를 국민과 국가가 응징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자유통일과 一流국가 건설로 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시험이 될 것이다. 이기주의의 포로가 되어 法도 무시하고 사실(언론의 원칙)도 무시하는 집단에 공중파를 맡겨놓는 것은 組暴을 형사로 채용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이런 MBC를 법대로 하여 허가취소시키지 못하는 정부라면 정권을 반납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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