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과 안철수는 닮은 꼴-富者(부자)좌익

안철수와 김광진, 왜 좌익적 군중인간?
불로소득은 인간을 미치게 만든다
조영환 편집인


안철수와 김광진, 왜 좌익적 군중인간?

최근에 민주통합당의 청년비례대표로 들어온 김광진이 백선엽 장군을 ‘민족반역자’로 매도하고 어버이연합은 ‘나이를 곱게 처먹으라’고 막말하는 등 좌편향적 패륜행각을 벌이다가 국민들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고 문재인 후보의 선거 캠프에서 물러나는 등 곤혹을 치르고 있다. 그가 사회적으로 차별당하고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민중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좌익야당의 청년대표로 국회의원직까지 꿰어 찼지만, 사실상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의 사장일 정도로 김광진은 부르좌 중에 부르좌다. 그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념 때문에 좌익광신도가 되었고, 좌익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까지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거나 혹은 가난한 사람으로서 김광진이 좌익세력의 광신적인 선동대원이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김광진은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부를 감당하지 못해서 체체를 부정하는 대표적인 좌익군중인간이다. 넘치는 복을 떨쳐내기 위해서 김광진은 지금 좌익세력의 맹목적인 광신도 역할을 하면서 자해행위를 하고 있다. 복에 겨운 행운을 누리는 좌익위선자들은 자멸하는 게 하늘의 섭리다.

김광진과 같은 성격을 가진 좌익세력의 얼굴마담이 바로 안철수 무소속 후보다. 안철수 후보는 의사 부모 밑에서 부유하게 자랐고 빈자와는 인연 자체가 없는 부르좌다. ‘집 없는 사람의 설움을 안다’고 거짓말을 할 때에도 안철수는 자신의 소유와 전세 등의 아파트가 3채나 되었다고 언론은 보도한다. 재벌을 욕할 때에도 안철수는 포스코에서 회의 한번에 2천만원을 받는 사외이사를 했다. 안철수가 좌익세력의 도우미가 박원순을 서울시장으로 만드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종북좌익적 대북정책을 떠들어대고, 계급투쟁적 적개심을 가지고 재벌들에 해체를 압박하고, 사회적 약자의 구세주나 되는 듯한 좌경적 행각을 벌이는 이유도 그의 경제적 입지 때문은 아니다. 김광진과 마찬가지로 안철수 후보가 좌익세력의 나팔수가 된 근본적 이유는 그의 이념적 성향 때문일 것이다. 수천억원 대의 거부인 안철수가 빈자의 행세를 하고 빈자의 대변자로 자처하는 이유는 별로 노력하지 않고 떼돈을 번 졸부가 받을 응보로 보인다. 안철수와 김광진은 정당한 노동의 댓가가 아닌 부의 축적 때문에 정신에 저주를 받은 듯하다.

김광진과 안철수의 자기파괴적 행각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사회-정치-심리적 분석가는 바로 군중연구가인 오르테가 가세트일 것이다. 오르테가 가세트는 기존질서를 파괴하고 유토피아를 바라는 ‘군중인간’을 분석하면서, ‘부모세대가 물려준 부를 감당하지 못하는 부자집 망나니 외동아들과 같다’고 판단했다. 오르테가 가세트는 “군중은 주어진 웰빙의 혜택을 누리기만 하려고 하면서 문명의 원칙을 무시하고 이 세상의 이치에 무지하는 고집불통의 부자집 망나니인데, 아무리 높은 귀족의 자녀라고 문명에 감사가 없고 자신을 계발하지 않고 자기교만에 빠진 고집불통의 인간을 군중인간”으로 보았다. 오르테가 가세트는 “군중은 사회적 제약, 기준, 예절, 간접적 소통방식, 정의, 이성 등을 모조리 파괴하고 오직 단순화된 구호를 사회적 난제의 해답으로 강요한다”고 했는데, 자신을 반추할 초월적 전통이나 규범이나 권위가 없이 오만방자한 김광진이나 무책임한 정치적 망상을 쏟아내는 안철수는 이런 군중인간의 표본이다. 이런 무책임하고 몰상식하고 부도덕한 군중인간들이 설치는 사회는 전체주의집단으로 추락할 위험성이 있다.

안철수의 부(富)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벤처기업 육성의 부산물이다. 안철수연구소의 구축과 성장에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벤처기업 지원과 보안프로그램 공공기관 구매가 도움을 줬기 때문에, 안철수는 좌익정권의 특혜를 입는 졸부로 평가된다. 안철수 후보가 좌익세력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는 그의 경제적 성공이 좌익세력의 특혜와 연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철수가 좌익세력의 도우미나 얼굴마담을 자처하는 이유 중에 중요한 변수 중에 하나는 바로 그를 성공자로 만들어준 좌익세력의 영향력(압력)이고, 이 압력은 다가오는 좌익세력의 대선후보 단일화에도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철수는 자신의 삶의 자리 때문에 좌익세력 특유의 위선적 구호인 ‘빈자에 대한 값싼 동정’을 죽자살자 외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안철수가 대표일 때에 안철수연구소에 장애인을 법정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게 고용하고 사회적 기부도 0.7%미만을 했을 정도로 인색하다가, 갑자기 작년에 사회적 기부를 대대적으로 한 것도 정치적 투자로 평가된다. 부자집 망나니와 같은 자기파괴적 허위의식을 뿜어대는 안철수는 급히 망할 악업을 쌓고 있다.

김광진과 안철수의 공통분모는, 바로 자신들의 입지와 생활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허위의식으로, 약자에 대한 값싼 동정심을 무책임하고 위선적으로 뿜어대고 있다는 점이다. 몸은 사치스럽고 무책임한 귀족인데, 입은 가장 청빈한 서민이나 자비로운 치유자(healer)가 되어서 군중들에게 교만한 정치적 메시아로 행세하는 허위의식을 김광진과 안철수가 공통적으로 마음에 품고 사는 것으로 판단된다. 재벌을 악랄하게 욕하면서도 재벌의 특혜를 가장 많이 입고, 빈자를 온몸으로 보살피는 듯하지만 자신의 삶은 초호화판이어야 하는 게 바로 좌익세력의 얼굴마담이나 도우미가 가진 이중적 본색인 것이다. 김광진과 안철수의 약자에 대한 동정심은 하나의 체질적인 허위의식일 것이다. 입으로 값싼 동정심을 쏟아내는 메시아는 반드시 군중을 속이는 위선자가 될 것이라고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는 가장 독하게 경고했다. 자비와 용서의 화신이었던 루터는 최악의 악덕을 ‘거짓 동정심’으로 봤다. 좌익세력이 군중을 미혹할 때에 악용하는 거짓 동정심은 악마의 사술과 같은 것이다. 안철수나 김광진이 숭배하는 좌익 위선자(김대중)는 우익 독재자(전두환)보다 천만배 사악하다.

빅뉴스는 10월 27일 김광진과 안철수의 공동분모를 일부 지적했다. 빅뉴스는 “종북성향과 국가 원로를 모욕하는 막말 파문을 일으킨 민주통합당의 청년대표 김광진 의원이 자시의 싸이월드 홈피에서는 자신의 부모의 재력과 자신의 사치성 생활을 과시하는 공개글을 올려, 정 반대의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며 김광진의 “여자친구 생기면 엄마가 시내에 아파트를 사준데요. 아파트 얻을 때까지만 누가 여자친구 안해줄래요?”라는 트위터 글을 소개했다. 김광진이 얼마나 졸부근성이 강한 군중인간인지 잘 증거하는 단문이다. 그는 아파트로 여자를 미혹하는 졸부의 망나니 아들과 같은 짓을 했다. 빅뉴스는 “이러한 김광진 의원의 글은 20대 시절 부모로부터 아파트를 증여받은 안철수 후보의 행각과 더불어 친노종북 진영 인사들의 이중성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 의식이다. 그나마 안철수 후보는 결혼 선물로 아파트를 받은 반면, 김광진 의원은 여자친구만 생겨도 어머니가 아파트를 사주니, 그때까지 여자친구 해달라며 공개적으로 물질의 힘으로 여성을 유혹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광진은 복에 넘치는 부의 힘으로 여자나 유혹할 수준의 졸부적 윤리의식을 가진 좌익분자로 보인다.

빅뉴스는 “아파트 얻을 때까지만 여친 해달라는 김광진 의원의 공개 제안은 여성착취 혹은 조건만남 식의 성매매 혐의까지 받을 수 있다”며 “김광진 의원은 실제로 부친이 운영하던 명설차라는 와인회사에서 대표자리를 차지했으며 그 회사는 노무현 정권 당시 국민세금 17억원을 지원받아 특혜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 이외에도 해외여행 관련하여 공공연히 게시글을 올려놓고 있다”며 졸부집 망나니 아들과 같은 김광진의 싸이월드에 게재된 글들을 소개했다: 김광진은 “아테네...아빠가 간데... 쳇~ 그래서 난 터키와 이집트를 가기로 했소!(2004.07.06”, “이번 겨울에 저와 터키여행 떠나지 않을래요?(2006.04.09)”, “그때가 그립다. 프리아의 밤부레스토랑이나 모던바자의 독특한 향기도...하리와나3000을 먹던 그날밤도 비스도아이들과 점령했던 옥상도(2004.08.20)”, “생일 일주일 전! 다른 선물은 필요 없고 저 의자에 같이 앉을 참한 아가씨 어디 없을까(2006.04.22)” 여자를 물건 취급하는 졸부집 망나니의 속물근성이 김광진의 천박한 글들에 묻어있다. 이런 천박한 좌익분자가 대한민국을 혁명적으로 뜯어고치겠다고 날뛰고 있다.

빅뉴스는 “이렇게 모친으로부터 여자친구가 생기면 아파트를 선물로 받고 부친으로부터 회사 대표자리를 받았으며, 각종 사치성 해외여행을 다닌 김광진 의원은, 북한 김씨 독재를 찬양하며, 국보법 폐지, 간첩 송두율 옹호하며, 억압된 통치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는 모른 체 하고 있다. 특이 사항은 싸이월드의 게시글 전체가 대부분 여성을 갈구하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여성을 갈구하기 위해 부모의 재력을 끊임없이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게 체질화되어있는 모습이다. 특히 김광진은 2003년부터 간첩 송두율 석방을 위한 1인시위에 나서는 등, 종북의식과 물질주의를 함께 지니고 있어, 매우 특이한 이중인격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한미FTA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보인 친노세력을 비판한 어버이연합에 대해 ‘나이 처먹었으면 곱게 처먹어! 당신 같은 어버이 둔 적 없어!’라 일갈한 김광진 의원은 ‘여자 친구 생기면 아파트 사줄께’라는 자신의 모친이야말로, 나이를 곱게 처먹은 원로의 아이콘이 아니냐는 냉소적인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좌익계급투쟁의 전사 김광진은 부패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봐서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도 김광진 부류의 군중인간으로 보인다. 정치에 무지한 이준석이 언론에 나와서 내뱉는 말들을 보면, 오르테가 가세트가 말한 ‘배운 무식자(learned ignoramus)의 표본이 아닌가 의심된다. 이준석은 24일 연합뉴스TV에 출연하여 “두 분(김광진과)이 친하시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토론회에서도 그 이후의 사석에서도 자주 교류했다”고 답변했고 한다. 이준석은 “NLL 공방이라는 건 우선 사실관계에 있어선 밝혀진 게 많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김종인이나 이상돈처럼 NLL논란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정수장학회 발표는 딜레마였으나, 결국 한 방향으로 가버려 가지고,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 인혁당 사과 발언 때도 그렇고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서 비서진의 문제를 몇 차례 지적했는데, 이번은 후보(박근혜) 본인이 스스로 그런 기회를 만들었고, 스스로 입장을 발표했기 때문에 후보 자신의 책임이다”라고 말한 이준석은, 빅뉴스가 지적한 것처럼, 쟁점에 무지하다. 이준석은 정치공부를 하고 언론을 즐겨야 하는데, 정치에 무식한 말을 마구 내뱉는 전형적인 군중인간이다.

안철수와 김광진이 좌익세력의 아이콘이 되어 세상의 부정과 부패를 일소할 정치적 구세주로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들은 누구보다도 더 부패하고 불의하고 불공정한 윤리의식을 가진 정치적 위선자에 불과하다. 이런 위선적이고 자해적이고 파괴적인 군중인간의 탄생은, 오르테가 가세트가 지적한 것처럼, 부자집 망나니와 같은 그들의 입지 때문일 것이다. 넘치는 복을 감당하지 못하면 안철수와 김광진처럼 자해적인 위선과 패륜의 행각을 하면서 자멸하기 마련이다. 김대중-노무현 집권 이후에 이런 졸부집 외동아들 같은 망나니들이 많이 번성했다. 안철수의 과거 족적을 관찰하면, 위선과 패륜과 반역의 속성을 띠고 있다. 김광진과 안철수가 정치권의 핵심에 진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의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망국현상이다. 부도덕하게 부를 쌓고 청년들을 거짓말로 미혹하는 안철수나 아빠가 사줄 아파트로 여자나 꼬시는 김광진은 선진국의 정치권에는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한국의 천박한 군중사회에서는 좌익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모셔진다. [조영환 편집인: http://allinkorea.net/]


▲ '여자친구 생기면 엄마가 시내에 아파트 사준데요'란 글이 있는 김광진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정치현상 분석의 대가들은 군중을 어떻게 규정했나?(조영환의 요약)

오르테가 가세트: 완전한 직접 민주주의는 전체주의를 초청할 것이다. 군중현상을 무자격자들에 의한 주권행사 혹은 민주적 폭군(democratic tyranny)의 지배. 지식인(귀족)의 군중(천민)화와 군중(천민)의 지식인(귀족)화. 배운 무식장이(learned ignoramus)가 나타남. 공중 혹은 엘리트는 집단에 헌신하면서도 자신의 개체성을 유지하는데, 군중은 집단에 자신의 개체성을 자진해서 포기하는 순응주의자(자발적 노예)이고, 군중은 남에게 부화뇌동하는 게으른 다수의 쭉정이 인간들이다(the revolt of masses p. 14-15). 군중현상은 무자격자들이 소수의 엘리트들의 역할을 차지해서 군중현상이 이 시대의 새로운 병리적 현상이다(the revolt of masses, p. 17).

그는 군중인간은 이 세상은 풍요하고 모든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승리감에 도취된 인간이고, 자신의 도덕적, 지적 능력은 완벽하기 때문에 외부의 간섭이나 충고도 필요 없는 이 세상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인간이고, 자신의 항상 우월한 ‘천박한 관점’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직접적인 행동을 할 왕과 같은 인간이라고 착각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실상 군중인간은 원시적 야만인에 불과한 천박하고 미개한 수준의 정신의 소유자로서 사회의 기존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문명파괴적 인간으로 봤다. (the revolt of masses p. 107) 군중인간은 현대문명의 혜택을 가져온 과학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혜택을 가장 공짜로 누리면서 자유로 불평불만만 하는 부도덕한 부자집 유산상속자의 심보를 가지고 있다. 이런 군중은 본질적으로 천박하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책임을 중시하는 전통적 민주주의에서는 법치를 존중하는데, 과잉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군중인간은 법치를 파괴한다(the revolt of masses p. 18). 민주주의와 기술과학문명으로 너무 풍요해진 군중들이 소수의 엘리트들의 역할인 정치, 판결, 입법 등에서 통치자의 행세를 하는 것이 ‘무자격자의 주권행사’처럼 군중선동정치를 가능케 한다(the revolt of masses p. 24-25). 그는 군중을 ‘자신에게 이렇게 자유와 풍요를 선사한 국가와 국민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패륜적 속성의 인간쓰레기들'이라고 비판했다. 가세트는 입만 열만 ‘미래주의’를 떠벌이는 진보주의자들은 사실상 어제의 입장에서 아무런 모험이나 도전도 하지 않고 내일을 고정적으로 판단하는 사실상 내일이 없는 가장 게으른 군중인간으로 봤다(the revolt of masses p. 49). 군중인간은 삶의 목표가 없고 시류에 떠다니는 부이와 같다고 했다. 그는 게으르고 냉소적인 군중인간을 문명의 기생충이라고 혹평했다(the revolt of masses p. 116).

유럽사회에서 군중이 엘리트를 정복하고 문명을 야만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보일 때에, 헤겔은 묵시론적으로 “군중은 앞으로 내몰린다”고 말 했고, 오그스트 콩트는 “군중이 설치는 시대에 새로운 정신혁명이 없으면, 인류는 재앙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고, 니체는 “나는 니힐리즘의 홍수 파도를 봤다”는 말을 했다고 오르테가 가세트는 소개했다(the revolt of masses p. 59). 오르테가 가세트는 군중의 반란을 예언하면서, “역사가는 오히려 예언가”라고 역사철학을 요약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군중선동세력이 설치는 것을 보면서, 파시즘이나 볼세비즘이나 문화혁명이나 월남패망을 경고하는 역사가들은 예언자에 속할 것이다. 군중을 선동해서 한국사회를 정치적 광신도들의 아지트로 만드는 김대중-노무현 추종세력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망가뜨리는 문명파괴자가 될 것이다.

그는 방자하고 게으르고 공짜스러운 군중들이 현대사회에서 대세를 이루면서 국가를 여론으로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총칼로 침략할 수는 있지만, 지배는 여론으로서만 가능하기에, 오늘날 여론을 조성하는 선동기관들이 이런 무책임하고 파괴적인 군중인간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면, 국가공동체는 붕괴될 수 있는 것이다. 오르테가 가세트는 군중인간이 지배하는 정치는 세계적으로 보편적 현상이라고 지적했다(the revolt of masses p. 146). 너무 풍부해져서 왕보다 더 풍족한 물질과 여유를 누리는 현대인들은 무의미성에 시달리면서 사실은 자살할 정도로 파괴적인 상태에 빠져있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the revolt of masses p. 148)

이 군중인간들에게는 정상적인 권위를 가진 명령기관(정부)이 필요함을 가세트는 역설했다. 정부가 한번 군중선동세력에게 굴복을 하게 되면, 관료들도 거짓과 반란을 부추기는 군중선동세력에게 끌려가게 되면서, 결국 한 나라는 군중의 폭력에 밥이 되어 망할 수가 있다. 독재자가 선동가를 척결하는 경우는 그나마 군중선동가에게 정부와 국민이 먹힌 나라에 비해서 훨씬 더 다행이라는 사실을 가세트는 지적했다(the revolt of masses p. 153) 한번 정부의 지배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군중은 패륜과 반란에 자신감을 얻어서, 파괴충동에 휘둘리면서 이기심의 미로에 빠져 헤매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군중을 제압하지 못하는 경우가 가장 패륜적이고 파괴적임을 오르테가 가세트는 지적했다(the revolt of masses p. 154).

정상적으로 명령하고 정상적으로 복종하는 것보다 더한 자유와 행복을 국가는 줄 수 없다(the revolt of masses p. 157). 군중은 보기보다 어리석기 때문에 국가나 정부에서 그들의 방향을 주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데에 중요한 국가의 의무이다. 군중은 자신이 가장 많이 알고 가장 능력 있고 가장 도덕적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알지 못 한다. 그런 군중에게 정부가 미래를 향한 목표를 제시하고 국민의 투표로 추인하면, 국가와 국민은 매우 유기적인 소속감과 의무감을 가지면서, 방황하거나 대항하는 군중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시저가 망할 때에 소통이 없었다고 가세트는 지적했다. 그리고 선거로 흥한 로마가 선거로 망한 것은 국가적 목표를 추인할 선거가 부정하게 변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the revolt of masses p. 172) 선거는 군중으로부터 권력을 부여받는 과정이기에 국가의 유지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심리적 변수이기도 하다.

현대의 국가는 피(genes)나 땅(nation)이나 언어(civitas) 등으로 단순히 결속되어 유지되기엔 너무도 복잡하다. 통치자가 여론과 잘 소통하지 않고 일만 하는 것은 군중의 시대가 아니라 왕조시대의 미덕일 것이다. 군중의 시대에 소통보다 더 실용적인 미덕은 없지 싶다. 선거와 같은 근원적 소통 말고도 군중의 심리를 잘 파악하는 것은 통치자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군중의 반란에 굴복하는 통치자나 혹은 군림하는 통치자는 반드시 군중의 밥이 된다. 현대국가의 구성과 유지에 종족, 혈연, 지리적 위치, 사회적 계급 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군중의 권력을 어떻게 잘 해석하고 공조하는가이다(the revolt of masses p. 184)

가세트는 군중은 아무런 권위나 외부인의 충고나 도움도 필요하지 않는 완전한 자족적 인간이라고 착각해서 이 세상을 만만하게 보는 교만한 인간이라고 봤다. 군중인간은 이렇게 풍요한 문명이 누군가의 천재적 노력에 의해 달성된 것에 대한 최소한의 감각이나 감사가 없이 공짜로 군중의 특혜만 누려야 한다고 외치는 싸가지 없는 공짜쟁이라고 봤다. 그 결과 극단적인 경우에 유리창을 깨고 빵집에서 빵을 약탈해 먹어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을 정도로 이 세상에 구축된 문명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부자집 망나니와 같은 웰빙족이라고 봤다(the revolt of masses p. 65). 그는 현대의 군중들은 너무 풍요해서, 자족감에 빠진 군중들은 원시적이고, 야만적이고, 무의미한 삶을 살아갈 저주도 동시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the revolt of masses pp. 108-111)

군중인간은 무엇이든지 다 자기 뜻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교만한 인간이다. 그 결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천박한 사회의 기생충으로 전락하고도 수치감을 느끼지 못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누려야 한다고 공동체에 강요하는 폭군이라고 봤다. 오르테가 가세트에게 귀족이란 자신의 능력을 열심히 계발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해 남들보다 더 잘 알려진 성취자라고 규정하면서, 군중은 주어진 웰빙의 혜택을 누리기만 하려고 하면서 문명의 원칙을 무시하고 이 세상의 이치에 무지하는 고집불통의 부자집 망나니인데, 아무리 높은 귀족의 자녀라고 문명에 감사가 없고 자신을 계발하지 않고 자기교만에 빠진 고집불통은 군중이지 귀족이 아니라고 했다(the revolt of masses p. 73).

그런 무기력하고 자신에 갖힌 인간은 자신의 지식과 능력은 남들보다도 탁월하다고 자만하고 있다가, 어떤 순간이 오면 만사에 개입하는 습성을 가졌다고 오르테가 가세트는 주장했다. 군중의 은둔주의는 군중의 과잉참여에 동전의 양면이다. 내 안에 완벽한 대답을 가지고 혼자 고립되어 은둔하다가 갑자기 직접적 행동(폭력)으로 자신의 고집을 공동체에 강요하는 극단적 이중성을 군중은 보여준다(the revolt of masses pp.75-). 군중은 은둔자와 선동꾼의 양면은 마음 속에 품고 있다. 이들에게는 자신을 반성하고 개선할 초월적 전통이나 규범이나 권위가 없다. 그 결과 방자한 자기주장을 사회에 쏟아내게 마련이다. 파시즘은 자기상실의 은둔자들을 광장에 끌어내어 광란자로 만든 현상이다. 은둔주의자가 광신적 선동에 밥들이다.

군중들의 토론이 없는 직접적 의사표현(폭력행사)은 문명을 파괴하게 된다. 군중은 사회적 제약, 기준, 예절, 간접적 소통방식, 정의, 이성 등을 모조리 파괴하고 오직 단순화된 구호를 사회적 난제의 해답으로 강요한다(the revolt of masses p 82). 자유주의자들은 이 세상의 복합성의 애매성을 깊이 고려하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배려와 타협이 가능하지만, 군중인간은 확정적 단순해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무단으로 점거해서 농성과 시위를 하는 것만이 해결의 방식으로 알고 있는 체질적 극단주의자들이다. 자기열등감과 자기확신감을 마음에 동시에 품은 군중인간은 남에 대한 공평한 배려가 없고 굴종하지 않으면 군림한다. 군중현상이 만연된 곳에서는 토론과 타협이 사라지고 쇠파이프를 던 폭도가 문제의 가장 확실한 직접적 해결사들이다(the revolt of masses p9. 82-2).

오르테가 가세트는 기술과학의 발달이 원시적 군중인간을 만들어내는 데에 어떻게 기여했는지(the revolt of masses pp. 85-96)와 혁명이 어떻게 원시적인 군중인간을 만들어내는지(the revolt of masses pp. 97-105)에 대해서도 서술했다. 과학기술은 전문화를 통해서 야만족 군중을 만들어낼 수 있고, 혁명은 문명을 파괴함으로써 야만적 군중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과학자가 자기교만에 빠져서 세상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최악의 무지하고 부도덕한 군중인간이 된다. 그리고 파시즘이나 공산주의는 개인을 집단에 노예로 전락시키고 문명 자체를 붕괴시키면서 인간을 원시적 상태의 야수로 만들 수 있음을 그는 지적했다. 그는 군중은 체질적으로 수구적이고, 대부분의 혁명은 문명을 원시상태로 전락시키는 퇴보운동이라고 했다(the revolt of masses p. 101).

오르테가 가세트에 의하면, 왕조사회가 무너지면서 황제로 등극한 군중의 횡포이 이 민주주의와 과학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의 특징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어떤 권위나 진실이나 공동체도 준중하지 않는 군중인간을 만들었고, 그 예로써 파시즘과 볼세비즘을 들었다. 그는 특히 과학주의가 지나친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전문가가 만물박사가 되면서 보여주는 교만과 무지가 몰고 올 낳은 군중사회도 경계했다.

오르테가 가세트는 군중의 속성은 바로 극단주의라고 했다(extremism as a form of life), Man and Crisis). 국단적 좌절감과 소외감과 박탈감을 가진 군중이 갑자기 자신이 절대자나 되는 것처럼 집접적 폭력을 행사하는 양극적 행동양태를 군중을 보이는 것이다. 지금은 군중이 가장 많은 안락을 공짜로 누기는 시대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군중들은 방황과 공허에 시달리다가, 어떤 결정적 기회가 되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조건반사적으로 모든 복합적인 조건을 단순화시켜서 자신이 오직 유일한 구세주인양 모든 것을 투신하여 싸우다가 좌절하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극단주의자가 바로 오르테가 가세트에게 군중이다. 변두리에 있을 때에 극단적으로 현실을 부정하다가 중심에 접근하면 극단적으로 현실을 장악하려는 것이 군중의 이중성이다.

에릭 호퍼: 좌절과 소외에 시달리는 마음(the frustrated mind)을 가진 군중은 모든 것을 자신이 신봉하는 망상을 위해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다. 사회적으로 좌절된 군중은 기존체제를 타도하기 위해서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확신범이 되고, 그 군중에게 도덕적 성실성(moral integrity)은 중요하지 않다고 봤다. 군중인간은 단방에 모든 삶의 곤경과 문제를 해결할 꿈을 꾸는 광신자로서 마치 고상하고 용기 있고 두려움이 없는 초인간의 상징처럼 보인다. 보통 세속인들은 합리적 계산에 따라서 악과 타협하기도 하고 고통을 피해 도망도 가지만, 확신을 가진 군중인간은 목숨을 던져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용사가 된다. 사실 군중인간은 인생을 망쳐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폐인일 수 있다. 군중인간은 사회적으로 실패해서 좌절된 폐인들이 모여서 사회적 한번의 혁명으로 완벽하게 바꾸겠다는 몽상가들이다.

에릭 호퍼는 종교적 사고방식(희망과 신앙)이 광신적 군중을 키우는 싹이라고 봤으며, 지나친 환상이 없고 자신의 현실에 만족할 줄 아는 자족적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군중인간을 치료하는 것으로 봤다. 에릭 호퍼는 헛된 꿈을 믿는 광신도가 아니면, 좋은 꿈을 믿는 신자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환상을 쫓지 말아야 파괴적 군중인간이 되지 않는다’고 처방했고, 집단적으로는 ‘광신도들이 기존의 시스템을 위태롭게 하면 민주적 국가는 군사적 겨회나 혁명적 정당으로 변해서 광신적 집단을 제압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구스타브 르 봉: 자신의 개성을 잃고 집단에 휩쓸리는 익명의 인간을 군중으로 봤다. 그는 군중을 ‘얼음이 투명하기 때문에 유리가 녹을 것으로 믿는 궤변자’들로 봤다. 군중은 변증법적 논리나 합리적 설명 대신에, 일방적 프로파간다를 훨씬 더 선호한다. 군중은 진리를 오류로부터 구별할 비판정신을 소유하지 못했다. 군중인간은 예속감정의 노예이다. 군중은 우상이 암시하는 단순성과 과장성에 중독되어 광신적 희생을 한다. 군중인간을 미혹하려는(자극하려는) 정치종교지도자는 절대적 확신과 위엄의 소유자이어야 한다. 군중은 우상을 바라기 때문이다. 과장하고, 주장하고, 반복하고, 비합리적으로 우기는 것이 정치선동가의 논쟁방식이다. 군중선동가는 군중에게 ‘신비적 의식(mystique consciences)'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면 군중은 절대 복종하면서 열광주의(enthusiasm)에 빠진다. 즉 군중은 귀신에 들리게 해야 어중이 떠중이로부터 초월해서 영웅으로 자기승격을 하면서, 폭발적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군중은 군중선동가의 신비주의적 기만과 암시에 미혹되어 반지성적 폭도가 된다. 그 결과 사실(reality) 보다는 현상(appearance)에 의존하는 피상적 판단자가 된다. 후기전통사회에서 파편화 해버린 ’중간집단‘에의 소속감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체주의 운동에 가담한다. 혼자 있을 때에는 교양인이 군중의 익명성에 휩쓸리면, 폭도로 돌변한다. 익명성은 군중을 무책임하게 만든다.

구스타브 르봉은 “개인들의 의식적 활동이 군중의 무의식적 행동으로 대체되는 현상은 현시대의 대표적인 특징들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군중의 시대를 선포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합당하고 탁월한 대변혁이 시도되더라도 그런 변혁에 대한 맹목적 열광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다며 군중의 열광주의를 경계했다. “인간들은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들인 이념, 감정, 관습의 지배를 받는다. 제도와 법은 우리의 성격과 욕구의 외면적 표명이자 표현이다”라며 제도와 법률 보다는 인간의 감정과 이념이 더 무서운 정치적 행동에 변수라고 봤(군중의 심리 P. 20).

한 문명의 근간을 이루던 도덕적 세력들이 그 위력을 상실하면 그때부터 이른바 야만족으로 알려진 무의식적이고 사나운 군중이 등장하여 그 문명을 최종적으로 해체시켜버린다(군중의 심리 P. 30). 문명들을 창조하고 지도한 자들은 오직 소수의 지식귀족들이었지 결코 군중은 아니었다. 군중은 오직 파괴력밖에 발휘하지 못한다. 군중의 규칙은 언제나 야만적인 수준에 머문다. 스스로를 방치하는 군중들은 이 모든 조건을 실현할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을 지금까지 변함없는 사실로 입증했다(군중의 심리 P. 32).

한 문명의 구조가 썩으면 그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군중이다. 하지만 군중은 파괴의 힘만 강하다. “세상 모든 사람”은 군중으로 이해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의 지혜를 모두 합해도 볼테르의 지혜보다 못하다’고 말해야 훨씬 정확할 것이다(군중의 심리 P. 52). 군중만이 획득할 수 있는 고유한 특성들이 있다. 첫째 원인은 개인이 군중에 포함되면 단지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들 수가 많다는 생각만으로도 자신이 무소불위의 힘들 지녔다는 감정을 품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는 익명의 군중이 됨으로써 언제나 개인들을 통제하는 책임감도 완전히 떨쳐버리고 무책임하게 된 나머지 자제하려는 생각도 훨씬 덜하게 될 것이다. 둘째 원인은 감염력을 가졌는데, 그것은 군중의 거유한 특성들의 표출여부가 결정되는 과정에 개입함과 동시에 군중이 수용할 유행에도 간섭한다. 셋째 원인은 피암시성을 통해서 군중인간은 선동가에 의해 개성을 박탈당한다. 선동가의 최면에 걸린 군중이 된다(군중의 심리 P. 53).

군중은 의식의 개성이 소멸되는 경향, 무의식의 개성이 우위를 점하는 경향, 감정과 생각이 암시에 걸리고 전염됨으로써 동일한 방향으로 집중이 되는 경향, 암시된 생각이 직접 행동으로 이행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군중의 심리 P. 53).

군중은 충동성, 과잉반응성, 추론력 결핍, 판단력과 비판정신 부재, 과장된 감정표현을 포함하는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군중의 심리 P. 58). 군중의 편협성, 독재성, 보수성. 군중은 오직 단순하고 극단적인 감정들만 인식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암시된 견해, 사상, 신념을 전체로 뭉뚱그려 수용하거나 거부하고, 절대적 진리로 여기거나 절대적 오류로 치부해버린다(군중의 심리 P. 83). 독재성과 편협성을 군중에게 일단 부과되면 군중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들을 실천으로 옮기며 기뻐하기까지 한다. 군중은 강자에게는 순종하며 존경심을 표하지만, 자신들이 받는 약간의 친절도 약점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군중의 심리 P. 85). 군중은 나약한 개인을 상대로는 언제나 거침없이 반란은 일으키고 강력한 권력자 앞에서는 언제든지 비글하게 부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군중은 방자한 무정부주의자와 비굴한 노예의 상태를 왔다 갔다 한다.

군중은 세속적 유습들의 영향력에 너무 깊에 예속되어 있기 때문에, 극도로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무한한 자유를 선사해도 그들은 그런 무질서를 금방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본능적으로 노예상태로 돌아간다(군중의 심리 P. 86). 군중의 보수적 본능은 모든 원시인의 보수적 본능처럼 불변하는 것이다(군중의 심리 P. 87). 군중의 도덕성은 극도로 도덕적이 되다가 극도로 패륜적이 된다. 군중에게 합세한 개인에게 영예감, 명예감, 애국심을 호소하면 목숨까지 던질듯하다, 군중집회에서는 숭고한 도덕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군중심리에 휩싸이면 성적 농담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고 강용석을 죽이지만, 사실은 한국의 언론은 포르노 천국이다. 이레 바로 군중인간의 이중성이다.

군중은 환상과 이미지를 추구하지 진실을 추구하지 않는다. 군중을 상대로 설득을 하려는 정치인은 개념보다는 이미지를 줘야 한다. 군중은 언제나 환상의 창조자에게 더 많은 신전과 동상을 만들었다(군중의 심리 P. 166) 군중은 환상을 선사할 군중선동가를 마치 불을 찾는 불나방처럼 본능적으로 찾아나선다(군중의 심리 P. 20). 군중은 결코 진신을 갈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을 시험하지 않을 증거들은 외면하지만, 자신들을 유혹하는 오류들이라면 무조건 존경하고 신성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에게 환상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그들의 지배자가 될 수 있디. 그러나 그들의 환상을 파괴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들의 희생물로 전락하고 만다(군중의 심리 P. 169).

군중지도자는 이성적 논리보다 감성적 호소가 더 중요하다. “행동가형 지도자들은 주로 병적이리만치 신경질적이고 성마르며 이따금 발광도 하는 미치광이와 거의 흡사한 인간들 중에 배출된다”고 오르테가 가세트는 주장했다. 그들이 신봉하는 사상이나 추구하는 목표가 아무리 부조리해도 그들의 확신은 너무 강력해서, 어떤 이성적 논리도 그들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군중들은 강력한 의지를 지닌 사람의 말을 언제든지 끝까지 경청한다(군중의 심리 P. 179) 군중을 미혹하는 열광적인 선동가는 먼저 자신의 신념에 홀려야 한다. 군중은 노예상태를 원하기 때문에 그들을 노예로 삼을 강력한 확신이나 의지나 폭압이라도 있어야 한다(군중의 심리 P. 183) 군중선동가는 확언, 반복, 전염력을 가진 연설을 할 수 있어야 한다(군중의 심리 P. 187). 군중의 여론과 신념을 유포시키는 것은 감염력이지 이성적 추론은 아니다(군중의 심리 P. 198). 군중을 미혹할 지도자는 언제나 성공해야 하고, 위엄이 없으면 선동에 실패한다. 위엄이 사라지거나 실패한 군중선동가는 즉각적으로 숭배의 대상이 된 강도만큼 돌팔매의 대상으로 전락한다(군중의 심리 P. 209).

군중의 일반적 특성들은 지적인 단순성, 과잉흥분성 피암시성, 감정의 과장표출, 소수지도자에 대한 편중성 등이다. 이는 익명의 군중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실명의 군중들에게도 나타난다(군중의 심리 P. 276). 군중이 선동가에게 복종하는 이유는 지도자의 위엄이지, 어떤 감정이나 이익이나 은혜나 의리 등이 아니다(군중의 심리 P. 20).

윌리암 콘하우저: 콘하우저는 사회적 다원주의(자유민주주의)에 가장 해로운 적으로 ‘군중운동’을 지목한다. “군중운동은 자유민주적 정치체제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졌다”는 게 그의 ‘군중사회의 정치학’에 주제이다(the politics of mass society p. 5). 현대사회의 저변에는 ‘군중성향’과 ‘다원주의 성향’이 흐르면서 경쟁한다고 봤다. 군중운동은 계급운동을 넘어는 개념이기 때문에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에 모두 나타나는데, 이는 전체주의사회로 넘어가게 하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the politics of mass society p. 14-6).

군중성향은 엘리트들에게는 자율성의 상실을 의미하고 일반 대중들에게는 사회로부터의 독립성 상실을 의미한다. 군중과 엘리트가 사회에 책임감이나 소속감을 상실한 원자화된 사회는 선동가에게는 거짓 카리스마를 주고 대중들에게는 거짓 소속감을 준다. 민주주의가 개인의 원자화를 부추기기 때문에, 군중선동과 전체주의사회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군중선동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를 초빙할 수 있다. 군중운동에 대해서는 엘리트주의적 입장에서 군중을 비판하는 경우가 있고, 민주주의적 비평이 있다. 구스타브 르 봉, 오르테가 가세트, 칼 만하임은 ‘문화나 정치에 군중참여의 증대’와 ‘엘리트 독점의 상실’을 다룬 군중이론가들이다. 한나 아렌트는 후자라고 콘하우저는 분류한다(the politics of mass society p. 21-2).

콘하우저는 군중사회의 특징은 ‘권위의 상실’로 가장 먼저 규정했다. 구스타브 르봉의 “문명의 무너뜨리는 수단으로서 군중 혹은 야만주의의 물결”과 오르테가 가세트의 “무자격자의 주권” 등은 군중의 사회적 권위 파괴를 잘 상징한다. 군중은 사회적 지위, 재산, 종교, 전통, 고등교육 등을 경멸한다는 지적을 이들은 한다. 군중의 법이 엘리트의 법을 대체하는 것이 군중사회의 조건이라고 콘 하우저는 지적했다. 르봉이 지적했듯이, 군중은 엘리트의 고유한 영역과 능력을 무시하고, 특정한 자격이 필요한 영역까지 침투해서 공공의 여론이란 이름으로 만사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경향이 있음을 콘하우저도 지적했다(the politics of mass society p. 28)

그리고 콘하우저는 군중사회에서는 ‘공동체의 상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공동체에 소속감과 지도력을 상실한 군중과 엘리트들은 사회를 원자화시켜서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원자화 된 사회에서는 소외와 불안의 감정을 군중들이 가지게 되고 이는 군중들로 하여금 상징이나 리더를 숭배하게 만드는 심리적 조건을 만들 수 있음을 콘하우저는 주장했다. 원자화된 사회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외롭고 불안한 군중은 우상적 상징이나 지도자에 완전히 자신의 개체성을 포기하는 자아상실적 군중운동에 몰입할 수 있음을 그는 지적했다(the politics of mass society p. 32-3). 그는 나찌 독일이 바로 이런 원자화된 사회의 군중운동의 표본이라고 했다. 군중들이 먼저 전체주의운동에 달려들면, 엘리트들도 군중동원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는 군중사회의 조건들로서 사회 전반적으로 자율성이 결핍되면, 엘리트나 대중들이나 군중선동가의 선동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고 봤다. 전통사회가 현대사회로 변동되면서 쉽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 군중현상인데, 원자화된 군중이 소외감과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군중운동에 자신을 던져서 의미를 찾으려(구원을 받으려)고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사회처럼 전통적 소속집단이 사라졌을 때에 무책임한 군중인간이 등장한다. 전통적 권위의 몰락이 소속감이 없는 원자화 된 군중을 양산하고, 이 군중들을 먹이고 기다리던 선동가들이 군중을 동원해서 질서와 법치를 파괴하면서 전체주의를 만드는 군중운동일 벌어질 수 있다. 원자화된 인간은 소외감과 불안정감으부터 도피하기 위해서 카리스마적 인물이나 상징에 예속된다고 콘 하우저는 본 것이다.

콘하우저는 군중의 집단적 행동이 가진 특징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첫째, 군중은 개인의 일상사나 경험과 동떨어진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 결과 엉뚱한 곳에 관심을 가진 군중인간은 현실성과 책임성이 떨어지는 감각을 가지고 사회적 사안들을 해석하고 간섭한다. 그런데 일상사와 많이 떨어진 관심을 가진 군중의 행동은 오히려 직접적이고 자극적이다. 사회적 쟁점들을 해결하는 데에 도덕적, 법률적, 상식적 제한이나 기대를 무시하고 직접 물리적 힘에 의존해서 완전히 해결하려고 한다. 군중인간은 소외를 기반으로 무심한 행동을 한다. 군중운동은 엉뚱한 대상에 관심이 많고, 행동으로 사회질서를 간섭하고, 소속감이 없는 외롭고 고립된 외톨이들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특징을 가진다. 극단주의자 집단은 항상 소외자들의 집단이다.(the politics of mass society p. 43-9).

사회에 잘 연결되었다고 느끼지 못하는 엘리트들이 군중운동을 통하여 사회에 참여하려고 한다. 대중들도 또한 사회에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으면, 대중들도 군중선동에 미혹되기 쉽다. 군중문화는 단일적이고 유동적(혼란스럽다)이다. 군중인간은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느낀다. 자기소외감은 군중으로 하여금 선동에 취약하게 만든다. 군중사회에는 엘리트나 대중들이나 모두 심리적으로 군중선동의 호소에 취약하다(the politics of mass society p. 115).

군중운동의 사회적 원천은 권위로부터의 단절, 공동체로부터의 단절, 사회로부터의 단절 등이 있다. 산업화 도시화 민주화가 직접 군중운동에 원천은 아니지만, 일정한 연관성은 있다. 이런 사회적 변동들은 소외된 원자화된 군중을 만들어 내면서 전체주의적 선동에 취약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군중사회는 전체주의 운동에 취약하다(the politics of mass society p. 121) 소속감을 느낄 공동체나 협회의 쇠퇴로 인해 소외감을 느낀 외톨이 군중들은 전체주의 운동에 미혹될 위험성이 높다. 자신의 개체성을 포기하고 전체주의적 집단이나 선동가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자기포기가 일어나면, 전체주의적 군중선동이 가능하다(the politics of mass society p. 122) 사호구조가 개인에게 문화적 허공이나 사회적 원자화에 원인이 되면, 전체주의가 가능하다(P.126). 밀즈는 자유를 위해서 중간집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the politics of mass society p. 127)

군중운동의 구성원들은 사회에 밀접한 관련을 맺지 못한 소외된 엘리트들, 그리고 주변적 중산층들, 소외된 노동자들 등 모드 사회로부터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사회구성원들이다.

마티 부버: 인간의 물건화로 인해서 생에 대한 무의미성에 시달리면서 공허한 감정을 가진 개인들이 집단에 예속되려는 충동. 인간을 인간으로 스스로 그리고 타인을 대우하지 않는 비인간적 의식이 결국 피조물에 예속되는 비인간화의 본질이다. 군중사회에서는 인간을 함부로 다루는 방자함(arbitrariness)이 난무한다.

탈몬: 완전한 민주화를 요구하는 전체주의자의 군중 장악과 예속의 음모를 경계해야 한다. 이른바 ‘완전한 민주주의 개념’은 사실상 전체주의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그것은 모든 개인들의 주장과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수 군중들의 주권을 한 개인의 의지 속에 예속시키려는 음모다. 오직 하나 밖에 없는 민중의 뜻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의 뜻(의견/권익)을 파벌적, 이기적, 불법적이라고 정죄하는 것이 바로 군중선동가가 말하는 ‘완전한 민주주의’이다. 김대중의 ‘아테네 이후에 최고의 직접민주주의’라는 말은 전체주의적 선동가의 대표적인 본색을 표출한 것이다. 군중의 신격화가 전체주의 운동의 전제조건이다. 군중은 전체주의 운동을 통하여, 인격이 말살된다. 군중은 무의식적 인격에 조종된다. 암시와 감정적 호소에 휘둘리면서, 방자한 폭력배가 된다. 다신주의가가 되어 자신의 지방신들을 만들어 섬기면서, ‘동지와 적의 세계관’에 빠지게 된다.

데이비드 엡터: 개발도상국가에서는 “권위주의적 정부의 부재”가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데에 적이다. 군중의 난동질이 민주화를 파괴하는 데에 가장 해로운 변수라고 주장.

사무엘 헌팅턴: 교육받은 ‘지식군중인간’이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원인임을 지적했다. 합리적이고 권위적인 정부를 지식군중이 거부하는 것을 헌팅턴은 주목했다.

칼 만하임: 유토피안적 의식구조를 가진 군중은 사실(현실)을 왜곡해서 군중운동을 가능케 한다. 그는 '유토피안적 의식구조(환상)가 현실의 중요한 부분을 은폐시킨다. 현실을 오판하게 만든다. 그래서 유토피안적 환상에 대한 신념을 위협하거나 혁명에 반대되는 모든 것들로부터 군중들이 등을 돌리게 만든다'는 주장을 했다. 그는 방자한 군중들이 설치게 방치하면, 방임주의는 전체주의를 허락하는 전제조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브리엘 마르셀: (Man against Mass Society) 인간의 짐승화가 바로 군중현상이다. 군중인간은 지성과 사랑이 사라진 인간 이하의 짐승의 상태가 된다. 인간이 자동기계(automaton)가 되는 상태가 군중현상이다. 그는 인간을 위협하는 두 개의 핵심적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핵무기와 군중운동이라고 봤다. 핵무기는 몸을 파괴하지만, 군중운동은 인간의 인격을 완전히 파괴하는 더 나쁜 인류의 적이라고 봤다. 가브리엘 마르셀은 서구인이라서 그런지 몰라고, “인간의 지성과 사랑을 가르쳐주는 기독교가 악마적 군중운동을 제압할 수 있는 '평화유지자(peace-maker)'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은 반박된 세뇌를 통하여, 인간이라의 동물이 추락될 수있다고 했는데, 기독교가 이에 대한 처방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폴 틸리히: 인간의 자기우상화. 즉 자신의 피(민족)와 땅(국가)를 지방신(절대화)하는 자기우상화이다.

로버트 니스벳: 수백만의 독일 민중이 나찌즘의 교리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독일 민중의 소외감, 환멸감 때문이었다고 봤고, 맑시즘도 군중의 소외감과 환멸감을 악용한다고 주장했다. 소외감과 환멸감과 열등감에 빠진 독일군중이 히틀러를 요구했다. 맑시즘도 사회적 낙오자들이 자신들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병적인 노력으로 군중운동에 참여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해서 생긴 군중운동의 일종이다.

조지 소렐: 거짓 환상을 쫓아서 폭력혁명에 나서는 인간들이 군중들이다. 그 환상은 곧 신화(myth)로서 합리적 토론과 과학적 진실을 배격한 맹목적 행동을 강요한다. 군중은 그래서 자동적으로 폭력적이다. “참된 신화는 미래에 대한 합리적 개념이 아니라, 폭력혁명운동을 일으키게 하는 환상, 꿈 혹은 감각적 충동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군중선동가의 신화에 중독되면, 과학적 분석이나 합리적 토론을 배격하고 맹목적 행동으로 내몰린다. 그는 “신화는 합리적 묘사가 아니고, 행동을 요구하는 영감”이라고 봤다.

히틑러: 소위 객관적 사실 따위의 미지근한 태도로서는 결코 군중을 선동하지 못 한다. 군중을 선동하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입장(one-sided orientation)을 반복해서 강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중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광기로 가득찬 하나의 신념이라고 주장했다.

엘리아스 카네티: 군중은 유리 깨는 소리에 창조의 희열을 느끼는 파괴의 충동자들이다. 야간에 불을 사용해서 군중의 파괴충동을 극대화시키는 수가 있다. 군중은 난폭한 심판자이면서 동시에 희생적 순교자이기도 하다. 강압적 자기주장(aggressive self-assertion)에서 광신적 자기희생(fanatic self-surrender)은 군중의 대표적 속성으로서 동전의 양면이다.

신유길: 군중선동가는 유한한 사물을 절대화 해서, 군중들로 하여금 전적인 헌신(total commitment)을 유도하는 군중예속능력을 지녔다. 미혹된 군중들은 적을 향해서는 강압적 자기주장(aggressive self-assertion)을 하다가, 광신적 자아희생(fanatic self-surrender)을 자신의 ‘우상(개인선동가이나 군중집단)’에 바친다. 군중인간은 ‘위대한 지도자’에게 모든 것을 바치면서, 동시에 군중도 자기영광(self-glorification)을 취한다. 군중이 우상을 섬기는 이면적 원인은 변태적 교만을 표출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신이 되고 싶은 인간이 결국은 노예와 같은 군중의 상태로 잠복해 있는 것이다. 히틀러는 광신적 자아희생을 통해서 땅과 피로 뭉쳐진 전체주의집단과 일체감을 느끼면서 군중이 즐기는 신비주의를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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