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행복을 선물한 朴正熙 대통령
박정희는, 한국인에게 ‘가난으로 부터의 해방’이라는 최고의 자유와 행복을 안겨줬다.
朴承用(교육자, 영문학자)
〈Growth is worth having, especially in the developing countries, where poverty kills people(경제성장은 필수적이다, 특히 가난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개발도상국가에서는.)《The Economist》 2005년 11월 12일字)〉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하면 命대로 살지 못하고 죽는다. 極貧(극빈)의 나라에서 가난하면 굶어 죽고 영양실조에 걸려 죽고 병이 나도 약이 없어 죽고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죽지 않을 사람도 죽는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의 평균수명은 부자나라의 그것보다 훨씬 더 짧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가난한 나라 북한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부유한 국가 한국사람 보다 15년이나 더 짧다.
가난하면 정신도 죽는다. 풀이 죽고 비전도 없어지고 비굴해지고 自暴自棄(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정신은 半身不隨(반신불수)가 된다. 몸과 마음 둘 다를 죽이는 가난의 桎梏(질곡)으로부터 벗어나서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사는 것-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류 공통의 소망이고 이것을 이루는 지도자가 救世主(구세주)이다.
韓國은 박정희라는 구세주의 引導(인도)로 가난이라는 사망의 골짜기에서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Canaan) 땅과 같은 福地(복지)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것은 全세계가 찬탄하는 현대의 神話(신화)이고 奇蹟(기적)이다.
가난으로부터의 자유가 최고의 자유다
1941년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全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다음의 네 가지 기본 自由를 추구해야 된다고 主唱(주창)했다:
첫째, 언론과 표현의 자유이다.
둘째, 신앙의 자유이다.
셋째, 窮乏(궁핍, want)으로 부터의 자유이다.
넷째, 공포로부터의 자유이다.
루즈벨트의 이 네 가지 기본적 자유 중에도 세번 째 자유 즉 궁핍(가난)으로부터의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난하여 굶주리고 病魔(병마)에 시달리면 다른 자유도 제대로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난에서 벗어나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나머지 자유도 누리게 되어 있다. 가난한 나라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루즈벨트의 네 가지 기본적 자유를 謳歌(구가)하고 있는 例(예)는 극히 드물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中東의 부유한 회교국가들 중에는 신앙이나 언론 및 집회의 자유가 제한되는 나라는 있지만 이는 가난 때문이 아니고 이들 나라의 종교적 사회적 특수성 때문이다.
경제발전이 없이는 민주주의의 발전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定說(정설)이 되고 있다(아래 프리드만 참조). 가난한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지지 않으면 진정한 민주주의도 실현불가능하다. 즉 자유와 민주주의는 경제발전을 前提(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빈곤국가의 민주주의와 자유의 성취도는 국민소득의 향상에 비례한다. 국민이 대다수가 등 따시고 배부르게 되면 자유는 저절로 오게 되어있다.
아무리 큰 부자라도 소득이 더 늘어야 되는 이유
하버드大 경제학 교수인 벤자민 프리드만(Benjamin M. Friedman)의 “경제성장의 도덕적 결과”(The Moral Consequences of Economic Growth: 2005)는 18세기 영국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가 처음으로 提起(제기)하였지만 이후로 경제학계에서 소홀하게 취급당했던 경제성장과 행복과의 관계를 철저하고도 세밀하게 탐색한 力作(역작)이다.
아담 스미스는 경제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사회는 그렇지 않는 사회보다도(비록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그 사회가 이미 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달성했더라도) 더 행복하고 더 성공하기 쉽다고 주장하였었다. 스미스의 세계에서는 “국민의 대다수가 가장 행복하고 가장 안락하게 되는 조건은 사회가 충분한 富(부)를 획득하였을 때 보다는 보다 많은 所得(소득, acquisition)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면서 계속 발전하고 있는 국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성장이 중지된 나라에서는 국민들의 생활이 고달파지고 성장이 쇠퇴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국민들은 비참해진다.”
프리드만 교수는 경제성장에 대한 전통적 생각은 너무 偏狹(편협)하다고 주장한다. 재래식 관점은 경제성장의 도덕적 정치적 이득을 輕視(경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승하는 생활수준의 가치는 단지 그것이 개인의 삶의 방식에 가져오는 구체적인 개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終局的(종국적)으로 국민의 도덕적 特性(특성, character)을 형성하는 모습에도 놓여 있다.”
성장하고 있는 경제는 사람들을 보다 더 관용적으로, 분쟁을 보다 더 평화적으로, 민주주의를 더 많이 선호하는 쪽으로 만든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 준다. 경제적 停滯(정체)와 쇠퇴는 狹量(협량, intolerance)과 인종 분쟁과 독재와 연관된다.
이것이 眞理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의 복지에 대한 감각(sense)은 본질적으로 相對的(상대적)이라는 것이 프리드만 교수의 설명이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사람들은 고정된 생활수준에 익숙하게 된다. 그들의 생활수준이 상승하고 있거나(원칙적으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것) 또는 또래보다 더 잘 산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최대로 행복해진다(이것은 상호배타적이라 동시에 실현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두 비교기준(조화로운 것과 사회적으로 분열적인 것)이 상호작용하는 방법이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생활 수준보다도 상대적으로 더 잘 살게 되면 그들의 경제적 위치가 타인과 비교해서 어디에 서 있든 관심을 덜 가지게 된다. 그들이 자신의 과거의 생활수준에 비교해서 잘 살지 않고 있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위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좌절과 狹量(협량)과 사회적 軋轢(알력)이다. 간단히 말해 성장은 물질적 이득(benefits)뿐 아니라 도덕적 이득도 가져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같이 부유한 나라도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유한 나라라도 빠른 자동차나 스마트폰을 위해서 뿐 아니라 에너지와 자금과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개방적이고 포용력이 있고(tolerant) 민주적인 사회를 위해서도 성장할 필요가 있다. 지속적 경제성장은 국민의 행복과 도덕성 함양과 민주주의와 자유의 향유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河海(하해)와 같은 존재
박정희 대통령 在任(재임) 18년 동안 한국은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이것은 이 기간 동안 한국인의 대다수가 5,000년 역사상 과거 어느 때 보다 더 잘살게 되었고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했고 마음이 가장 푸근해졌고 자유가 가장 많이 伸張(신장)되었고 민주주의가 가장 많이 발달해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이 보릿고개의 극빈국가에서 선진富國으로 天地開闢(천지개벽)하면서 민주주의와 자유는 저절로 따라온 것이다.
檀君(단군) 이래 가장 감동적인 국가건설 드라마를 연출한 朴正熙 대통령이 한국인에게 ‘가난으로 부터의 해방’이라는 최고의 자유와 행복을 안겨 준 것이다. 굶주리고 움츠리고 풀이 죽어 살던 한국인들이 氣를 펴고 자유롭게 살게 해준 박 대통령의 河海(하해)와 같은 은혜에 限量(한량)없는 감사를 드린다.
[ 2012-07-20, 11:05 ]
경제성장이 사람들을 더 도덕적으로 만든다!
- 朴承用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13-01-20, 08: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