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드넓은 에리호와 그 주변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떠오르는 상공 아래 점점 작아진다. 나는 아쉬움 반 기대감반의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미래로의 도약을 꿈꾸며 에리호와의 마지막 인사를 한다. 다시 이곳을 방문할 수 있음을 희망하면서, 그리고 내 2년간의 많은 추억거리들을 뒤로 하면서. 이날이 2013년 6월 3일 펜실베니아주 작은 도시 에리에서 나머지 2년 동안의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졸업한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새벽 6시 비행기 안이었다.
학교종이 울린다. 우리반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끝남을 알리며 울려퍼지는 종소리에 교실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하지만 부천석천중학교 3학년 4반에서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교실 안을 떠날 줄을 몰랐다. 그 당시는 2학기기말 고사까지 끝이 나서 모두 들 곧 다가올 겨울방학과 졸업식에 분위기가 한창 들떠 있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자거나, 다른 일을 하여 수업에 전혀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을 예상하여, 매시간 자습시간이나 독서시간을 주셨다. 나도 아빠가 전날 서점에서 사주신 책을 가지고 학교에 갔다.
그 책은 연두색 커버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쌍둥이 형제의 밝게 웃는 모습이 표지에 있는, <쌍둥이형제, 하버드를 쏘다>라는 책이었다. 두번의 자습시간에 나는 그 책을 다 읽었다. 그 책은 너무나 흥미로웠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도 나는 자리를 뜨지 않고 문장들을 읽어 내려갔다. 두 말썽쟁이형제 (안재우&안재연)가 부모님의 권유로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밸리포지 사관학교로 유학을 가,영어와의 싸움에서, 그리고 음악과 스포츠 활동에서 자신들의 엄청난 노력으로 ‘노력하는 바보가 천재를 이긴다’라는 말이 진심임을 증명하며 당당히 하버드 대학에서 입학허가를 받은 내용은 내 자신에게도‘노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큰힘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 좋은 예시였다.
다만 정말 이상했었던 건, 한 장 한 장을 경외심과 존경으로 읽어가며,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내게는 무엇인가 알지 못할 이상한 감정이 퍼뜩 지나갔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분들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그분들을 꼭 만날것이다’라는 생각이 말이다.
책 뒷장의 날개를 보니, 두 쌍둥이 형제의 이메일 주소가 나와 있었다.
나는 몇달을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분들께 내 고민을 풀어놓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아빠가 내 방벽에 붙여 놓으셨던 세계지도를 보면서 외국에서 공부하기를 꿈꾸었던 것을 다시금 희망하는 것이 현재로서 너무 늦지는 않은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성공가능성이 있는지를 말이다. 내 주변인들은 지금 유학을 시작하는 것은 한국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대학교로의 입학에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내 유학을 극구 반대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로 내가 첫딸이고, 가족중에 누구 한명 외국에서의 생활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내 유학결정에 강경하게 반대하셨다. 나도 내 선택이 너무 두려웠고, 단순히 한 책을 통해 살아난 내 꿈의 불씨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타올랐다가 꺼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더 큰 확신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꿈의 불씨가 더욱 커져 큰 불꽃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생각을 말이다.
이메일을 확인했다. 두 쌍둥이 형제중에 큰형인 안재우씨가 나에게 값진 조언이 담긴 메일을 보내주셨다. 이때부터 나는 안재우씨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었는데, 이는 그분이 내 인생에서 큰 영향을 주신 멘토였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내게 자신이 여태껏 받았던 수천 통의 편지중 내것 만큼 큰 호소력을 가진 내용은 없었다고 했다.
선생님도 유학을 가기 전에 나와 똑같이 힘들어 했었고, 고민했었다고 말이다. 선생님은 또 다음날 직접 전화를 내게 해주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선생님과 전화를 통해 내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나의 미국 유학 선택을 적극 찬성했다. 왜냐하면 미국 유학으로 내가 한국의 고등학교 시절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더 많이 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내가 그곳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훨씬 더 성숙해질 수 있음을 그분은 확신했다. 또한 내 꿈과 포부가 큰 이상, 내 선택에 내가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물론 선생님은 내게, 미국에서곧 겪게 될 많은 시련과 逆境(역경) 그리고 헤쳐 나가야 할 많은 장애물들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끊임 없는 노력으로 이겨내기를 서로 약속하자고 했다. 나는 선생님과 이를 굳게 약속했고, 이로써 내 미국 유학 항해의 첫 서막이 올랐다.
미국 고등학교 유학記(1)
- 曺認桯(조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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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6-25, 22: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