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통령은 못되었지만 대통령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한 사람이다.
정치는 말에서 시작되고 말로 끝난다. 정치의 수준은 말의 수준이기도 하다. 6년 전, 칩거 중이던 金鍾泌(김종필) 전 총리를 만났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실업인으로 갔으면 돈관이나 모았을 텐데 정치가는 虛業(허업)입니다. 實業(실업)은 움직이는 대로 과실을 따니까 실업이지요. 경제하는 사람들을 왜 실업가라고 하냐면 과실을 따먹거든. 정치하는 사람은 이름은 날지 모르지만 속은 텅텅 비었거든. 나도 2~3년 후에는 어떻게 살까 걱정이여."
'정치는 虛業이다'는 말이 5·16 군사혁명을 기획, 한국인들의 운명을 바꾼 大政客(대정객) 입에서 나왔다. 그는 대통령은 못되었지만 대통령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한 사람이다. 어제 오랜만에 金 전 총리가 공개석상에 나타나 향기 있는 말을 했다. 박정희와 김종필이 주도한 1961년 5월16일의 군사혁명은 근 800년 만에 군인들이 집권한 민족사의 대사건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한 권력의 기반을 만든 두 사람이 知性(지성), 感性(감성), 교양 등 모든 면에서 당대 최고 엘리트였다는 게 한국의 축복이었다. 좌익 정치인들의 막말이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는 가운데 새삼 애국심과 교양을 갖춘 정치인들이 정치판을 덜 살벌하게 만들던 시절이 그립다.
"전쟁은 군인에게 맡겨두기엔 너무나 큰 일"
1차 대전 때 프랑스를 이끈 정치가 조르주 클레망소는 名言(명언)을 많이 남겼다.
가장 유명한 말은, "전쟁은 군인들에게 맡겨놓기엔 너무나 심각한 문제이다"(War is too serious a matter to entrust to military men.)일 것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大정치가만이 전쟁이란 主題(주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전쟁은 실패의 연속이 승리에 이르는 경우이다(War is a series of catastrophes that results in a victory)"라는 말도 하였다. 지다가 보면 이긴다는 뜻이다. 전투에선 많이 져도 전략적인 決戰(결전)에서 이기면 된다는 의미 같기도 하다. '영국은 늘 마지막 전투에서 이긴다'는 말도 있다.
클레망소가 한 말 가운데 한국인들이 많이 들어 본 듯한 게 있다. '젊었을 때 좌익이 되지 않으면 가슴이 없는 인간이고, 나이가 들어서도 좌익이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는 말의 語源(어원)쯤 되는 名言의 주인공이다.
"내 아들은 22세이다. 그 나이에 공산주의자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父子관계를 끊었을 것이다. 그가 나이 서른인데도 아직 공산주의자라면 꼭 같이 할 것이다."
클레망소는 기복이 많은 人生을 산 사람이다. 그는 政治家(정치가)가 되기 전엔 의사, 언론인, 그리고 反骨(반골)이었다. 나폴레옹 3세에 반대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적도 있고, 파리 컴뮨에 참여하였다. 드레이퓨스 사건 때는 소설가 에밀 졸라를 도왔다. 그는 두 번 총리를 하였다. 두번째 총리직을 맡은 1917년은, 1차 세계대전이 어마어마한 人命(인명)손실을 기록하면서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였다. 프랑스에선 厭戰(염전) 분위기가 팽배하였다.
76세의 총리는 戰線(전선)을 수시로 방문하여 참호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을 격려하고, 反戰(반전)주의자들을 잡아넣으면서 프랑스의 사회 분위기를 바꿔나갔다. 프랑스 일각에선 독일과 평화협상을 시작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지만 클레망소는 '총력전에는 총체적 승리뿐이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의 별명은 '호랑이' '승리의 아버지'이다. 클레망소는, 독일이 항복한 뒤엔 베르사이유 강화회의를 주도하였다. 드골과 함께 20세기 프랑스의 가장 존경받는 정치가이다. 파란만장한 생애를 회고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남자의 人生이 주로 흥미로운 것은 실패하였을 때임을 잘 안다. 왜냐 하면 실패는 그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政商輩와 政治家
* 헨리 키신저(미국 외교가. 1923-): "犯法(범법)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만 헌법을 위반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
* 월터 리프만(미국 언론인. 1889-1974): "지도자에 대한 최종적인 시험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신념과 의지를 심어줄 수 있는가의 與否(여부)이다."
* 조르쥬 퐁피두(프랑스 대통령, 1911-74): "정치가는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고 정상배는 자신을 위해 국가가 봉사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 毛澤東(모택동):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이다. 혁명은 사람들을 저녁에 초대한다든지, 수필을 쓴다든지, 또는 그림을 그리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 헨리 테일러(1800-1886): "정치가에게 중요한 것은 매년 생겼다가 사라지는 20명의 친구가 아니라 20년간 苦樂(고락)을 같이 할 한 사람의 친구를 얻는 것이다."
독일통일을 주도한 위대한 외교-정치가 비스마르크는 정치의 한계를 안 사람이다.
"정치는 정확한 과학이 아니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사람들이 大勢(대세)를 만들 수는 없다. 그 大勢를 타고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뿐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A.J.P. 테일러는 "문명은 보통사람들의 문명화된 습관에 의하여 유지되어 왔다. 현실에 있어서는 보통사람들이 통치자보다도 더 교양 있고 침착했다"면서 정치인들의 역할을 평가절하하였다. 그는 비스마르크를 비판하였다.
"그는 최고봉의 정치적 천재였지만 건설적인 정치가가 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한 요소를 결여하고 있었다. 그는 미래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정치는 말에서 시작되고 말로 끝난다. 정치의 수준은 말의 수준이기도 하다. 6년 전, 칩거 중이던 金鍾泌(김종필) 전 총리를 만났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실업인으로 갔으면 돈관이나 모았을 텐데 정치가는 虛業(허업)입니다. 實業(실업)은 움직이는 대로 과실을 따니까 실업이지요. 경제하는 사람들을 왜 실업가라고 하냐면 과실을 따먹거든. 정치하는 사람은 이름은 날지 모르지만 속은 텅텅 비었거든. 나도 2~3년 후에는 어떻게 살까 걱정이여."
'정치는 虛業이다'는 말이 5·16 군사혁명을 기획, 한국인들의 운명을 바꾼 大政客(대정객) 입에서 나왔다. 그는 대통령은 못되었지만 대통령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한 사람이다. 어제 오랜만에 金 전 총리가 공개석상에 나타나 향기 있는 말을 했다. 박정희와 김종필이 주도한 1961년 5월16일의 군사혁명은 근 800년 만에 군인들이 집권한 민족사의 대사건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한 권력의 기반을 만든 두 사람이 知性(지성), 感性(감성), 교양 등 모든 면에서 당대 최고 엘리트였다는 게 한국의 축복이었다. 좌익 정치인들의 막말이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는 가운데 새삼 애국심과 교양을 갖춘 정치인들이 정치판을 덜 살벌하게 만들던 시절이 그립다.
"전쟁은 군인에게 맡겨두기엔 너무나 큰 일"
1차 대전 때 프랑스를 이끈 정치가 조르주 클레망소는 名言(명언)을 많이 남겼다.
가장 유명한 말은, "전쟁은 군인들에게 맡겨놓기엔 너무나 심각한 문제이다"(War is too serious a matter to entrust to military men.)일 것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大정치가만이 전쟁이란 主題(주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전쟁은 실패의 연속이 승리에 이르는 경우이다(War is a series of catastrophes that results in a victory)"라는 말도 하였다. 지다가 보면 이긴다는 뜻이다. 전투에선 많이 져도 전략적인 決戰(결전)에서 이기면 된다는 의미 같기도 하다. '영국은 늘 마지막 전투에서 이긴다'는 말도 있다.
클레망소가 한 말 가운데 한국인들이 많이 들어 본 듯한 게 있다. '젊었을 때 좌익이 되지 않으면 가슴이 없는 인간이고, 나이가 들어서도 좌익이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는 말의 語源(어원)쯤 되는 名言의 주인공이다.
"내 아들은 22세이다. 그 나이에 공산주의자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父子관계를 끊었을 것이다. 그가 나이 서른인데도 아직 공산주의자라면 꼭 같이 할 것이다."
클레망소는 기복이 많은 人生을 산 사람이다. 그는 政治家(정치가)가 되기 전엔 의사, 언론인, 그리고 反骨(반골)이었다. 나폴레옹 3세에 반대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적도 있고, 파리 컴뮨에 참여하였다. 드레이퓨스 사건 때는 소설가 에밀 졸라를 도왔다. 그는 두 번 총리를 하였다. 두번째 총리직을 맡은 1917년은, 1차 세계대전이 어마어마한 人命(인명)손실을 기록하면서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였다. 프랑스에선 厭戰(염전) 분위기가 팽배하였다.
76세의 총리는 戰線(전선)을 수시로 방문하여 참호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을 격려하고, 反戰(반전)주의자들을 잡아넣으면서 프랑스의 사회 분위기를 바꿔나갔다. 프랑스 일각에선 독일과 평화협상을 시작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지만 클레망소는 '총력전에는 총체적 승리뿐이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의 별명은 '호랑이' '승리의 아버지'이다. 클레망소는, 독일이 항복한 뒤엔 베르사이유 강화회의를 주도하였다. 드골과 함께 20세기 프랑스의 가장 존경받는 정치가이다. 파란만장한 생애를 회고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남자의 人生이 주로 흥미로운 것은 실패하였을 때임을 잘 안다. 왜냐 하면 실패는 그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政商輩와 政治家
* 헨리 키신저(미국 외교가. 1923-): "犯法(범법)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만 헌법을 위반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
* 월터 리프만(미국 언론인. 1889-1974): "지도자에 대한 최종적인 시험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신념과 의지를 심어줄 수 있는가의 與否(여부)이다."
* 조르쥬 퐁피두(프랑스 대통령, 1911-74): "정치가는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고 정상배는 자신을 위해 국가가 봉사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 毛澤東(모택동):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이다. 혁명은 사람들을 저녁에 초대한다든지, 수필을 쓴다든지, 또는 그림을 그리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 헨리 테일러(1800-1886): "정치가에게 중요한 것은 매년 생겼다가 사라지는 20명의 친구가 아니라 20년간 苦樂(고락)을 같이 할 한 사람의 친구를 얻는 것이다."
독일통일을 주도한 위대한 외교-정치가 비스마르크는 정치의 한계를 안 사람이다.
"정치는 정확한 과학이 아니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사람들이 大勢(대세)를 만들 수는 없다. 그 大勢를 타고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뿐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A.J.P. 테일러는 "문명은 보통사람들의 문명화된 습관에 의하여 유지되어 왔다. 현실에 있어서는 보통사람들이 통치자보다도 더 교양 있고 침착했다"면서 정치인들의 역할을 평가절하하였다. 그는 비스마르크를 비판하였다.
"그는 최고봉의 정치적 천재였지만 건설적인 정치가가 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한 요소를 결여하고 있었다. 그는 미래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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