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종교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선량하게 보이는 사람도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면 정부는 인간의 善意와 德性만 믿고서는 움직여질 수 없다.
미국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발명한 것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는 헌법, 야구, 재즈라고 했습니다. 미국 헌법은 미국의 독립이 선포된 11년 뒤인 1787년에 기초되었습니다. 기초위원들은 일흔세 명이었습니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마흔두 살이었고 농부, 사업가, 변호사, 은행가, 학자 등 직업이 다양했습니다. 이들은 존 록과 몽테스큐의 작품을 많이 읽었고 독립전쟁에 참여하 투사들이기도 했습니다. 펜실배니아주의 대표인 존 딕킨슨이란 사람은 「경험이 우리의 유일한 안내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理性(이성)은 우리를 오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새겨 들어볼 만한 내용입니다. 인간 理性이란 것이 엄청 고귀하게 보이지만 그것을 너무 믿어버리면 인간이 獨善(독선)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미국의 헌법기초위원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경험을 이성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영국에서 꽃핀 경험철학과 프랑스와 독일에서 발달한 관념철학의 차이를 여기서 보는 듯합니다.

경험이 중요하다는 뜻은 현실의 중요성과 실천력의 중요성, 그리고 실용정신의 중요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미국헌법의 기초에 중심적 역할을 한 사람은 제임스 메디슨이었습니다. 그는 서른 여섯 살의 젊은 법률가였습니다. 20년 뒤 대통령이 되는 메디슨은 몸이 허약하고 부끄럼 타는 사람이었지만 헌법기초에 필요한 배경지식을 누구보다도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미국 헌법 기초위원들은 정부의 기본 구조와 작동원리에 대해서는 쉽게 합의했습니다. 정부는 국민들의 합의에 의하여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회는 다수의 독재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 어떤 특정 집단이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반드시 균형과 견제의 원칙에 의해서 政權(정권)이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 중앙집권적인 권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권력은 남용되기 마련이라는 것 등등에 합의하였습니다.

메디슨은 국민들이 모두 천사라면 정부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선량하게 보이는 사람도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면 정부는 인간의 善意(선의)와 德性(덕성)만 믿고서는 움직여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이것은 인간의 本性(본성)을 반영한 조직이어야 한다고 매디슨은 말했습니다. 미국헌법의 기초자들, 즉 建國(건국)의 아버지들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죄를 짓게 되는 인간들의 본성을 잘 다스려 이런 성향을 公衆(공중)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돌려놓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미국헌법이 理想(이상)을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국헌법을 기초한 사람들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고 실용정신을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이란 점을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현실과 실천력, 그리고 실용정신에 기초한 이상을 담은 덕분에 미국헌법이 진실로 이상적인 것입니다.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은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우리 헌법 前文(전문)과 미국헌법 前文을 비교하면 우리 헌법 前文이 훨씬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미국헌법 前文에서는 미국의 국가적 목표를 민주주의란 단어를 쓰지 않고 定義(정의)내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국가적 목표는 공동체의 안전보장, 국민들의 복지증진, 그리고 정신적 자유의 신장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 헌법 前文에는 민주개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正義, 인도, 동포애, 세계평화, 인류공영 같은 좋은 말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만 미국 헌법에는 복지, 안전보장 같은 실제적인 단어들이 들어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도 민주주의에 대하여 냉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무슨 하느님이나 되는 것처럼 타는 목마름으로 부르짖는 그런 민주주의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목숨을 걸고 하는 그런 종교교리가 아닙니다.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 개인의 인간적 존엄성을 위하여는 목숨을 걸고 투쟁할 수가 있지만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위한 투쟁은 우상숭배가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미국헌법이 말한 대로 국민들의 복지와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 제도인 것이지 맹목적인 신앙을 강요하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DEMOCRACY를 '민주제도'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는데 일본인들이 '민주주의'라고 번역하니 교조적인 성격이 강한 한국의 지식인들은 이를 무슨 종교처럼 절대화하였습니다.

우리가 헌법을 이야기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헌법이란 주춧돌 위에 세워진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초대 국회의원들을 제헌의원이라고 말합니다. 즉, 헌법을 제정하기 위하여 뽑은 국회의원들이란 뜻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헌법학자 몇 사람들이 모여서 기초한 것이 아닙니다. 국제적 공인속에서 이루어진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 우리 헌법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헌법도 야구처럼 아름다워질 수가 있습니다.

한국인을 행복하게 만든 다섯 문장이 있습니다.

*토마스 제퍼슨이 기초한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의 유명한 귀절: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실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神聖(신성)한 것으로 간주한다.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창조되었으며, 그런 평등한 창조로부터 빼앗길 수 없는 고유한 권리를 받았는데 생명의 保全(보전)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거기에 속한다.>

*1904년 李承晩(이승만)이 獄中(옥중)에서 쓴 '독립정신'의 한 귀절: <부디 깊이 생각하고, 고집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힘껏 일하고 공부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자유의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스스로 活力(활력)이 생기고, 관습이 빠르게 변하여 나라 전체에도 活力이 생겨서 몇십 년 후에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根本(근본)이다.>

*崔南善(최남선)이 기초한 1919년 3.1 독립선언서의 마지막 문단: <우리가 본디 타고난 自由權(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가 넉넉히 지닌 바 독창적 능력을 발휘하여 봄기운이 가득한 온 누리에 겨레의 뛰어남을 꽃 피우리라.>

*李承晩 대통령의 건국 선포일 연설(1948년 8월15일):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믿어야 될 것입니다. 민주제도가 어렵기도 하고 또한 더러는 더디기도 한 것이지마는 義(의)로운 것이 종말에는 惡(악)을 이기는 이치를 우리는 믿어야 할 것입니다. 民權(민권)과 개인 자유를 보호할 것입니다. 민주政體(정체)의 요소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사상의 자유는 민주국가의 기본적 요소이므로 남과 대치되는 의사를 발표하는 사람들을 포용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인민의 자유권리와 참정권을 다 허락하되 불량분자들이 民權(민권)자유라는 구실을 이용하여 정부를 전복하려는 것을 허락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정부에서 가장 專力(전력)하려는 바는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근로하며 고생하는 동포들의 생활정도를 개량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국제通商(통상)과 공업을 발전시킬 것입니다. 농장과 공장의 소출을 외국에 수출하고, 우리에게 없는 필요한 물건을 수입해야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人權(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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