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警 123정 김경일 정장 인터뷰,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船室 진입 시도도 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 맨 먼저 현장에 도착, 많은 승선자들을 구했던 해경 123艇(정) 김경일 정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날 출동상황을 설명해주시오?
“4월16일 오전 8시57분에서 58분 사이에 목포해경 상황실장으로부터 긴급 구조명령을 받았습니다. 수백 명이 탄 배가 전복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임무를 띠고,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13.7 海里(해리) 떨어져 있었는데 즉시 엔진을 全速(전속)으로 돌리면서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9시30분에 세월호에서 1해리 떨어진 해상에 도착, 35분에 短艇(단정: 고무보트)을 내리고, 37분에 船尾(선미) 쪽으로 출동시켰습니다. 그러는 사이 배의 확성기로 ‘퇴선하라’는 방송을 8~10회 했습니다. 123정을 船尾 쪽에 매어두려 했지만 넘어가는 배를 따라 같이 딸려갈 것 같아 船首(선수) 쪽으로 가서 배를 접안시켰습니다. 9시45분부터 사람들이 툭 툭 바다로 뛰어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70도 이상 기울고 있었습니다. 船內(선내) 진입도 시도하였습니다. 이00 경사였습니다.”

海警(해경)자료와 김경일 정장의 증언을 종합하면 李00 경사의 행적은 이렇다.
<9시43분경 좌현 선미로부터 3분의 1 지점 舷側(현측)에 올랐으나 선실 쪽으로 진입하는 입구가 가까이 없고, 내부 구조물까지의 거리는 3m 이상인데 경사가 60도 이상이라 올라갈 수가 없었다. 구명벌을 (발로 차서) 두 개를 바다로 던졌다. 9시48분경, 123정이 船首(선수)에 접안하였을 때 승객들이 조타실로부터 호스를 이용, 탈출하였다. 이들은 나중에 선원들로 밝혀졌다. 李 경사는 123정의 홋줄을 이용, 조타실로 진입, 퇴선방송을 하려고 하였으나 경사가 너무 심해 미끄러져 내렸다.>

김경일 艇長(정장)은 “이 경사가 던진 구명벌 중 하나만 터졌다”면서 “이 경사가 船內(선내)로 들어가려고 해도 통로의 너비가 3m를 넘고(잡을 데가 없었다는 뜻) 절벽처럼 기울어 있어 들어갈 수 없다는 보고를 했다”고 말했다.

김 정장은 “9시50분 세월호가 너무 기울어 123정을 빼기 직전에도 박00 경장을 시켜 조타실에 한번 더 올라가라고 했는데, 로프를 잡고 조타실의 입구 쪽으로 들어가긴 했으나 선체는 80도까지 기울었고 조타실의 경사가 심해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려왔다”고 했다. 해경 자료는 <朴 경장은, 123정이 세월호 선수의 컨테이너 등의 충격 위험으로 이탈하자 승객 1인과 함께 바다로 뛰어내려 123정의 고무보트에 구조되었다>고 썼다. 金 정장은 기울기가 60도가 넘은 상태에서 선실과 조타실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 自力(자력)으로 탈출하는 사람을 구조선에 끌어올리는 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船內에 올라가 구조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대는 고작 20~30분 정도였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경의 구조는 실패하였다고 단정한 데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잘못이 없습니다. 특수 장비가 없는 100t짜리 경비정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하였습니다. 특공대원을 태운 큰 배가 왔으면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만, 60도가 넘었고 계속 기우는 배 속으로 들어가서 구조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바다로 뛰어들거나 船室 바깥으로 나온 이들을 중심으로 구조한 것이 옳았습니다. 우리는 세월호로 달려오면서 승객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표류하고 있거나 구명재킷을 입고 퇴선 대기 상태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조용해서 당황했습니다. 배가 전복하기 직전에 船尾(선미)를 통해서 많이 탈출했습니다.”

그는 조타실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을 구했다고 비판하는 언론에 대하여 “시간에 쫓기면서 이리저리 뛰고 있는데 구출된 이들에 대하여 일일이 신원 확인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언론이 자신의 말을 왜곡하여 전달하는 데 불만이 많았다. 해경이 172명 중 80여 명만 구했다고 비판하는 데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선미 쪽에서 123정 소속 고무보트가 탈출자들을 구해서 어선 등에 옮겨 태운 숫자를 더하면 실제로는 110명 이상을 우리 해경이 구했습니다.”

김 경장은 동영상에 나오는,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기 직전, 선실 안에서 창을 깨려고 의자 같은 것으로 치는 장면은 현장에선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123정 구조원들이 세월호의 顚覆(전복) 직전에 선실 窓(창)을 깨고 여섯 명을 살린 이야기도 했다.
“누군가가 조타실 밑에 사람이 있다 그래 가지고 저희들이 다시 이 망치하고 손도끼를 가지고 들어가서 조타실 아래 3층인가, 4층인가의 선실 창을 깨고 여섯 명을 끌어냈는데 배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몇 명은 구조선으로 옮겼지만 몇 명은 바다로 뛰어들게 하여 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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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專門家는 없고 '얼치기'만 많았다>는 조선일보

지난 4월 말 조선일보는 1면 머리 기사로 해경을 비판했는데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았다. 기사 제목은, <세월호 침몰 순간에도… 초기 구조작업도… 사후 수습 과정도… 현장에 專門家는 없고 '얼치기'만 많았다. 災難(재난) 전문가 아닌 펜대 굴리던 관료가 事故대책 총괄>이다.
이 기사의 副題(부제)는, <① 초기 구조 海警 - 배 밖 선원 구조에만 집중… 갑판으로 승객 대피 유도 못해 ② 사고 수습 정부 - 시종일관 쩔쩔매다가 가족별 전담 공무원 11일 만에야 배치 ③ 침몰 당시 선원 - 처음 탄 항해사가 교신… "위기 상황땐 반드시 선장이 했어야">이다.
뽑음말도 비난 일색이었다.
<구조 다급한 시점에 인양 크레인부터 불러 무용지물
"식당칸에 생존자" 주장에 밀려 초기 골든타임 놓쳐
27인승 소방헬기, 해경과 交信안돼 현장 맴돌다 철수>

너무나 감정적이고 단정적인 다음 문장이 이 기사의 시작이다.
<세월호 침몰 이후 선원들의 승객 대피 유도, 해경의 초기 구조 작업은 물론 실종자 가족 지원 등 사고 수습까지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모든 것이 엉망'인데 어떻게 172명이 구조되고 대부분의 屍身(시신)이 수습되었나?
이 기사는 <사고 당일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해경은 선내 승객들의 대피를 유도하거나 선내에 진입해 구조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썼다. 오전 9시30분 해경은 배 밖으로 나와 구조를 기다리는 승객만 구조하는 데 집중했다는 것이다. <어렵더라도 선내로 들어가거나 선내 방송을 통해 승객들에게 갑판으로 나오라고 알려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고 질타하였다.

조선일보는, 달아난 선장이 해야 할 일을 해경에 돌렸을 뿐 아니라 해경 헬기 구조대와 123정 구조대가 船內로 진입하였고, 조타실에 올랐다가 미끄러졌던 사실도 묵살한 사실 왜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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