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년 전인 1215년 6월15일 잉글랜드의 러니미드란 곳에서 존 왕과 반란 귀족 사이에 문서가 하나 만들어졌다. 세계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문서로 평가된다.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이다. 노르만 정복 王朝의 존 왕은 본토인 노르망디 지방을 프랑스 왕에게 빼앗기고, 영주들에게는 과도한 戰費(전비)를 부담시켜 불만을 샀다. 반기를 든 귀족들이 작당, 이 문서를 들이대고 서명을 압박하였다. 마그나 카르타에는 주로 귀족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63개의 조항이 실려 있는데 특히 유명한 것은 두 개다. 자유민의 人身(인신) 구속과 왕의 과세권을 제한한 조항이다.
<법에 의해서거나 동등한 사람들에 의한 합법적 결정이 내려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자유민도 투옥되거나 재산을 몰수 당하지 않으며, 직위를 박탈당하거나 추방되지 않는다.>
適法(적법) 절차에 의해서만 자유민을 구속할 수 있다는 이 조항은 왕의 자의적 결정이 아니라 법이나 재판에 의해서만 人權을 제한할 수 있다는 法治의 대원칙으로 발전한다. 당시 '자유민'은 귀족, 성직자들을 가리키지만 점점 일반인으로 그 범위가 확대된다.
<왕이 귀족들에게 특별한 금전적 부담(세금, 戰費 등)을 지울 때는 영주들과 성직자들도 구성되는 대회의(The Great Council)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대회의는 50년 뒤엔 의회로 발전한다. 국회의 동의 없이는 세금을 물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의회가 민주주의의 보루가 된다.
즉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이 마그나 카르타에서 출발한 것이다. 핵심은 법을 왕의 專制權(전제권) 위에 놓은 점이다. 권력을 법으로 통제해야만 자유와 인권, 그리고 행복이 보장된다는 고귀한 가치관의 출발이었다.
마그나 카르타는 그 뒤 폐기, 再起(재기), 수정, 재해석의 과정을 거치면서 왕권 약화와 의회 강화로 가는 영국 민주주의 발전 방향의 강력한 論據(논거)가 되는 문서로 기능하였다. 17세기 영국은 內戰, 청교도 혁명, 찰스 1세 참수,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입헌민주주의를 확립한다. 1688년의 명예혁명을 계기로 왕권을 대신하여 의회가 주권을 잡는데 일련의 과정에서 마그나 카르타는 나침반 역할을 했다. 미국 독립운동에서도 마그나 카르타는 자유와 인권을 지키려는 투쟁에 정당성을 부여하였고 헌법에 반영되었다. 마그나 카르타가 힘을 쓴 것은 이 문서를 이용하는 정치가, 학자들이 많았던 덕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