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다'는 뜻을 한 글자에 담을 순 없을까? 漢字를 만든 이들은 困(곤)이란 글자를 생각해 냈다. 나무를 室內에 가두어놓으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죄수'를 한 글자로 표현하려면? 囚(수). 사람을 사방이 벽으로 된 곳에 가둔 꼴이다.
'따뜻하다'를 한 글자에 담는다면? 溫(온). 죄수에게 물 한 그릇을 떠 주는 그 마음을 가리킨다.
'고요하다'는 어떤 글자로? 靜(정). 靑은 청색, 즉 풀을 가리킨다. 爭(쟁)은 다툰다는 뜻이다. 풀은 서로 싸워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의미의 合成 글자이다.
/////////////////////////////////
漢字는 글자 하나 하나에 인간의 생각, 슬기, 경험이 들어 있다. 그것도 가장 압축된 형태로. 이런 漢字를 버리는 것은 先賢(선현)들이 쌓아올린 지혜의 寶庫(보고)를 불태우는 정신적 自殺행위이다.  
漢字를 쓰는 한국 일본 중국에는 言靈(언령)신앙이 있다. 말에도 영혼이 있기 때문에 말을 소중히 하여야 한다는 신앙이다. '죽고싶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면 정말 非命橫死(비명횡사)한다는 믿음이 그런 예이다. 그래서 농담으로도 '죽겠다'는 말을 써선 안된다는 것이다. 
作名을 할 때도 좋은 글자, 의미가 있는 한자를 뽑으려고 애쓴다. 이름이 그 사람의 운명에 상당한 작용을 한다는 믿음에서이다. 예컨대 丁一權이란 이름은 '장정(丁)중에서도 가장(一) 권력(權)이 센 사람'이란 뜻이다. 그는 장정들의 집단인 육군의 참모총장을 두 번 역임했다.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言靈을 화나게 하여 禍(화)를 부른다. 언어를 파괴하는 행위는 공동체의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란 뜻도 된다. 언어야말로 인간과 조직의 정신력과 가치관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이 그릇을 깨거나 더럽히는 자는 문명 파괴자이고, 공동체의 敵이다. 
  
漢字말살은 韓國語를 반신불수로 만들고 있다. 한국어로 먹고 사는 언론인, 출판인, 지식인들이 漢字말살로 母國語 파괴에 앞장서는 나라에서 言靈은 安住(안주)할 곳을 잃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