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세기 동안 세계의 많은 지도자들을 만날 수 있는 특혜를 누렸는데, 이광요 전 수상처럼 많은 것을 가르쳐준 이는 없었다.>
키신저는 이광요를 '달리 비교할 사람이 없을 정도의 지능과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는 워싱턴의 파워 엘리트들이 이광요를 만나는 것을 하나의 자기 학습 기회로 삼았다고 했다. 이광요를 지도자(leader)일 뿐 아니라 사상가(thinker)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이 세계의 본질과 아시아 문제에 대한 그의 분석을, '깊숙한 통찰력'이라고 극찬하였다.
*'싱가포르는 이웃나라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깨끗한 제도를 운영한다. 우리는 법을 지킨다. 우리는 합의나 결정을 준수한다. 그들은 그렇지 못했고 우리는 해냈다. 이게 차이이다.'
*'한 나라가 가진 人的 자원의 질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국민들의 혁신 정신, 기업가 정신, 팀워크, 그리고 노동 윤리가 핵심이다.'
*'앞으로 10년간 세계가 직면할 가장 큰 문제를 열거하면, 첫째는 그리스의 부채 위기, 둘째는 북한의 위협, 세 번째는 일본의 停滯(정체), 네 번째는 이란의 핵개발과 중동 분쟁의 가능성이다.'
*'러시아의 미래는 어둡다. 인구가 줄고 있다. 술, 비관주의, 출산율의 저하, 평균수명의 단축 등. 푸틴은 러시아인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어야 한다. 술을 그만 마셔라, 열심히 일하라, 좋은 가정을 만들라, 아이들을 많이 나으라!'
*'한 나라가 위대해지려면 크기만으론 안 된다. 의지, 단결력, 지구력, 국민들의 기강, 지도자들의 질이 역사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선물한다.'
*'국민들의 역사는 한두 번의 선거 패배나 승리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멈추지 않는 오랜 과정의 결과로서 사람들의 성격에 의하여 결정되는 게 아니고 정치적, 사회적, 국가적 힘의 작용에 의하여 결정된다.'
*'민주 사회는 자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민주 제도가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첫째, 관심이 많고 감시를 잘 하는 유권자 집단이 있어 國政(국정)을 운영할 정치인을 선출한 뒤 여론의 힘으로 그들을 통제해야 한다. 둘째, 민주사회는 정직하고, 유능한 정당이 있어서 국민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어야 한다.'
*'나는 전문가, 사이비 전문가, 특히 정치, 사회 과학 부문 학자들로부터 오는 조언과 비판을 무시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들은 사회가 어떻게 하면 그들의 이상을 충족시킬 정도로 발전해야 하는지, 특히 복지를 어떻게 확대하고, 가난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설명하는 애완동물 같은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을 뿐이다. 나는 그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내가 통치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평가이다.'
*'나는 유럽 기준으로는 사회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중간일 것이다. 나 스스로는 나를 리버럴이라고 여긴다. 나는 기회의 평등을 믿는다. 실패한 사람이 바닥 아래로 전락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나는 시스템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싶지만 그렇게 잘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거나 더욱 노력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나는 고전적 의미에서 리버럴이다. 세계나 사회를 보는 데 있어서 고정된 이론이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나는 실용적이다. 나는 문제에 부딪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최대한의 사람들을 위하여 최대한의 행복을 달성할 수 있는 해결책인가를 탐색한다.'
*''나의 일생은 철학이나 이론에 의하여 인도된 적이 없다. 나는 일을 해 내고, 다른 사람이 거기서 성공의 원리를 뽑아내도록 한다. 나는 이론에 따라 일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어떻게 하면 일을 해낼 수 있을가를 나 자신에게 묻는다.'
*'간략하고, 명료하게 써진 영어 문장이 중요하다. 내가 복잡한 생각들을 간명한 언어로 압축한 뒤 이를 대중을 상대로 생생하게 전달할 수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과 지도자들을 경험적으로 관찰해 보니 한 인간의 능력, 性癖(성벽), 기질은 70~80%가 유전적이다. 지도자로 태어나지 않으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관리자는 가르쳐서 만들 수 있지만 지도자는 타고 난다. 지도자는 특별한 야심과 知的(지적)인 활기와 특별한 끈기와 만난을 극복하려는 의지력이 있어야 한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등소평, 처칠, 드골이다. 드골은 대단한 배짱과 수완의 소유자였다. 등소평은 부서진 나라를 재건,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으로 만든 인물이다. 처칠은 군대가 패배하고 있는 순간에도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고 선언한 의지의 인물이었다.'
*'나는 스테이츠맨(statesman: 위대한 정치가)으로 기억되기를 원치 않는다. 스스로도 나를 스테이츠맨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나를, 신념이 강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끈질긴 사람이라고 여길 뿐이다. 자신이 스테이츠맨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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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요 회고록의 한국 評
<한국인들은 무서운 사람들이다. 그들이 폭동을 일으킬 때 보면 검투사 같은 복장을 한 진압 경찰만큼 잘 조직되고 훈련되어 있다.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거리에서 경찰관들과 싸우는 모습은 전투 장면 같다. 그들은 타협할 줄 모르는 맹령한 성격이고, 권위에 도전할 때는 폭력적이고 정력적이다.>
 
<1986년 전두환 대통령을 만났을 때 그는 북한에 대한 두려움으로 꽉 차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느꼈다. 남한의 인구는 北의 두 배이고, 훨씬 부자이며 미국의 좋은 무기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만난 한국의 모든 외무장관들은 북한의 군사력에 압도된 듯이 말했다.>
<1986년 노태우 장관을 만나니 싱가포르가 부패 문제를 해결한 비결을 물었다. 나는 우리의 시스템을 설명했다. 먼저 정확한 정보, 다음은 非인격적이고 非주관적인 접근, 셋째는 부패 척결 수사에 대한 頂上(정상)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나는 최고 지도층이 흠이 없고, 고위층이 하부층보다 먼저 깨끗해지지 않으면 시간 낭비일 따름이라고 강조하였다.>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방문, 이광요 전 수상을 만나자 자랑부터 하더라고 한다. 매일 아침 장거리 조깅을 한다고. 그는 싱가포르와 한국은 가족의 중요성이나 가족을 부양하는 사회적 網(망) 같은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이광요는 하나를 덧붙였다고 한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공통된 이해관계가 있다고.  
<(김영삼이 주도한 이른바 역사 재판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파멸시켰을 뿐 아니라 현대 한국을 만드는 데 기여한 인물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리하여 한국인들은 모든 권위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거나 시니컬해졌다. 全과 盧는 당시 한국의 기준에 따른 역할을 했을 뿐 결코 악당이 아니었다. 노태우는 다른 군인 출신을 후계자로 삼아선 안 된다는 미국 여론의 압박도 있어 김영삼에게 정권이 넘어가도록 허용했었다. (그럼에도 노태우를 감옥으로 보낸 것은) 다른 나라들의 군사 지도자들에게 나쁜 신호를 보냈으니 대중의 지지를 받으려 하는 민간 정치인에게 정권을 넘기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1999년 한국에 와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이광요는 이른바 햇볕정책에 대하여 이런 충고를 했다.
<남북간에 사람들의 교류가 활발해져야 한다. 연구소끼리, 대학끼리, 여론 형성자들끼리. 그렇게 해야 북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바뀐다.>
김대중은 중국과 북한 관계에 대하여 물었다. 이광요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강택민-김정일이 혈맹관계인 등소평-김일성처럼 친밀하지는 않다. 중국 지도층은 한반도에서 전쟁이나 무질서 상태가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현상 유지를 원한다. 그래야 한국과 교역을 하고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통일이 되면 중국은 미국과 한국에 대응하는 북한 카드를 잃게 된다.>
이광요 회고록 2편의 제목은 '제3 세계에서 1류로'(1965-2000)이다. 싱가포르가 말레이 연방에서 탈퇴, 독립국가가 된 뒤 세계 최고의 도시국가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한 장은 한국에 관한 기술이다. 이광요는 한국인에 대한 첫 인상이 아주 나빴다고 한다.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점령한 뒤 한국인과 대만인을 보조로 썼다. 한국인은 일본 군인처럼 무자비하였다는 것이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기 직전 한국을 방문한 이광요는 <만찬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잡담을 거의 하지 않았다>면서 동석한 박근혜 씨가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다고 하였다. 그는 박 대통령을 이렇게 호평했다. 
<나는 한국을 성공시켜려는 비장한 결의와 강력한 의지에 감명을 받았다. 박 대통령이 없었더라면 한국은 공업국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광요는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대하여는 비판적이다. 한국이 점진적으로 민주화를 하면서 항의 시위를 완화시킬 수 있는 법적 장치를 하였더라면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경찰과 과격하게 충돌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도층과 국민들이 사회적 계약을 재개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역대 대통령들이 기업인과 관리자들을 우대하여 고도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긴 갈등을 해결한 다음엔 한국은 다시 정력적으로 전진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한국인들은 역동적이고, 부지런하며, 의지가 강하고, 유능한 국민들이다. 그들의 경쟁 문화는 그들을 성취 지향적으로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