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李光耀(이광요, 리콴유) 싱가포르 수상이 한국에 와서 盧泰愚(노태우) 민정당 대표를 만났다. 그는 싱가포르가 부패 문제를 해결한 비결을 물었다고 한다. 리콴유는 이렇게 설명했다.
<먼저 정확한 정보, 다음은 非인격적이고 非주관적인 접근, 셋째는 부패 척결 수사에 대한 頂上(정상)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최고 지도층이 흠이 없고, 고위층이 하부층보다 먼저 깨끗해지지 않으면 시간 낭비일 따름이다.>
인구가 약 550만 명인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이스라엘을 닮은 국방제도를 유지한다. 국민총생산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5%로서 한국의 두 배이고, 이스라엘의 반이다. 현역은, 직업군인이 3만 2700명, 의무병이 3만 9800명, 합쳐서 7만 병력이다.
싱가포르는 국민皆兵制(개병제)이다. 18세가 되면 군대에 징집되는데, 연기가 되지 않는다. 重病者(중병자)가 아니면 모두 입대한다. 兵役(병역)특혜는 없다. 심지어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도 군대에 가야 한다. 훈련기간은 3개월이다. 체육선수에게 주어지는 특혜는 훈련기간의 단축이다. 뚱보들에겐 훈련기간을 길게 준다. 제대한 이후에도 예비군에 편입되어 나이 50세(장교)나 40세(사병)가 되기까지 매년 40일간 소집된다. 30만 명이 넘는 예비군이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군대 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은 공무원으로 채용하지 않는다. 싱가포르 군대는 1960년대 후반 이스라엘 군대가 지도하여 만들었다. 이스라엘 고문단은 멕시코 사람으로 위장하여 建軍(건군) 작업을 도왔다고 한다.
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퍼진 가장 큰 이유는 공산당은 깨끗하다는 환상이었다. 아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청렴함을 상징한 인물이 중국의 毛澤東(모택동)과 월남의 胡志明(호지명)이었다. 반면 蔣介石(장개석) 군대는 부패의 대명사가 되었다. 李光耀(이광요, 리콴유)가 싱가포르를 청렴한 나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이유도 여기서 나왔다.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부패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싱가포르의 다수 민족인 중국계의 젊은이들이 蔣介石(장개석) 정부의 부패에 분노하고 毛澤東(모택동) 군대의 청렴함에 끌려 親공산주의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 1959년에 리콴유 일파가 싱가포르 시의회에 진출했을 때 그들은 反부패의 상징으로 하얀 셔츠를 입었다. 공산당 세력은 리콴유의 영국 유학 경험, 골프를 치고 부르주아 생활을 하는 것을 비판했으나 그를 부패로 공격할 순 없었다.
싱가포르엔 영국 식민지 행정기구에서 만든 부패조사국(Corrupt Practices Investigation Bureau: CPIB)이 있었다. 리콴유는 이 기구에 反부패 척결의 全權(전권)을 맡겼다. 부패혐의자 및 그 가족의 은행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부패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의 범위를 넓혔다. 1960년에 법원은 자신의 월급에 비해서 지나친 호화생활을 하는 것 자체를 부패의 증거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리 수장은 자신의 친구나 장관들에 대한 수사를 막기는커녕 장려했다.
*자살한 장관 유족의 부탁을 거절한 非情한 수상
1986년에 국가개발장관 테칭완이 수뢰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테칭완은 무고하다면서 리 수상을 독대하고 싶어했다. 수상은 수사가 끝날 때까지는 만나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그 며칠 후 테 장관은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유서는 이렇게 써져 있었다.
<명예를 존중하는 동양의 신사로서 나는 나의 잘못에 대하여 가장 비싼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족들은 문상 온 리 수상에게 故人(고인)의 명예를 위해서 부검만은 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수상은 剖檢(부검)을 하지 않으려면 자연사를 했다는 의사의 사망진단서가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테 장관이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는 소견서를 냈다. 유족들은 더 곤경에 처했고 결국 싱가포르를 떠나야 했다.
리 수상은 고위 공직자들이 기업체 임원들보다도 월급을 적게 받으면 뇌물의 유혹에 노출된다고 판단했다. 그는 공무원들의 월급을 민간 수준까지 올리는 데 힘썼다. 고위공직자들이 명예와 사명감에만 의존한 채 어려운 생활을 견디게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人材(인재)가 공무원 사회로 들어오지 않는다.
1995년에 리 전 수상의 부인과 아들이 부동산을 5~6% 할인받고 산 것이 문제가 되었다. 부동산 개발업자가 판촉용으로 다른 知人들에게도 그런 할인율을 적용했음이 정부 조사로 밝혀졌다. 이 개발회사엔 리 전 수상의 동생이 비상임 이사로 등재되어 있어 소문이 나쁘게 돌았다. 前 수상의 부인은 결백이 증명된 뒤 할인받은 100만 싱가포르 달러를 정부에 기증하려 했으나 정부는 이런 돈을 받을 법적 근거가 없다고 돌려주었다. 부인은 이 돈을 자선단체에 주었다.
리콴유는 1997년 동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 때 싱가포르가 健在(건재)했던 이유를 부패 청산에 돌렸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등은 위기 대처 능력을 상실했지만 싱가포르는 공직자들이 私心(사심) 없는 객관적 입장에서 정책을 펴오면서 위기를 예견했고, 위기의 소지를 남겨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패 척결에 대한 李光耀의 충고, "정확한 정보가 필수적"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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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15, 23: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