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熙가 독재자? 세종대왕도 독재자라고 욕할 겁니까?"

박정희 대통령 98회 탄신기념식 기념사 (문경 청운각)
여러분 익히 아시다시피 오늘은 98년 전 경북 구미 금오산 자락에서
 한 아기가 죽음과 맞서 싸우면서 태어난 바로 그날입니다.
 태중에 있는 아기의 생명을 앗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던 사람이
 놀랍게도 바로 그의 어머니였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배후에는 가난이라는 원수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98회 탄신기념식 기념사 (문경 청운각)
출처: 회원 꿈나무, 회원 토론방. 
 
 

기념사 (98회 탄신기념식, 2015.11.14.)

 

자리를 함께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

반갑습니다. 

2015 문경 세계 군인체육대회의 기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우리는 더 큰 기쁨을 나누기 위해 다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고윤환 시장님의 감동적인 폐막인사는

우리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그간 많은 분들의 많은 희생과 노고가 있었지만,

특히 대회 유치에서부터 남이 알든 모르든 묵묵히 진력해 오신 

우리지역 이한성 국회의원님의 노고도

결코 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익히 아시다시피 오늘은 98년 전 경북 구미 금오산 자락에서

한 아기가 죽음과 맞서 싸우면서 태어난 바로 그날입니다. 

태중에 있는 아기의 생명을 앗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던 사람이

놀랍게도 바로 그의 어머니였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배후에는 가난이라는 원수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디딜방아 머리를 배에다 대고 뒤로 자빠지는 필사적 방법마저 실패하고,

그 아기가 기어이 태어나고야 말았다는 이 기막힌 사연은

우리의 슬픔이자 기쁨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어머니의 낙태 실패를 두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라고도 한답니다.

양 어깨에 가난이라는 무거운 멍에를 메고 태어난 이 아기가

훗날, 이 나라 이 겨레의 5천년 가난이라는

그 죽음과도 같은 멍에를 벗겨주게 된 것이

이 어머니의 낙태 실패 덕택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구사범학교에서 월 7원하는 기숙사 費를 내지 못하여

고향으로 내려가 장기간 결석을 한 것도,

그 결과 초등학교 6년내내 1등이던

학업성적이 꼴등으로 추락한 것도,

모두 모진 가난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고통에 시달리던 박정희 학생이

문경공립보통학교 훈도 즉 교사로 발령받은 것은

1937년 4월 1일이었으며, 첫 월급이 42원이었다고 합니다.

 

이 월급을 쪼개어,

70전씩 하는 월사금이 없어 등교를 못하는 아이 2명에게

매월 1원씩 학비를 대어주는 일로 시작되는

박정희 선생님의 제자사랑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 집니다.  

검정고무신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부임 이듬해인 1938년 어느 날 조회시간에 맨발로 서 있는 아이를 보시고

검정고무신 한 켤레를 사서 신기시었다는 일화는

동급생 이명자(26회 졸업생)씨가 저에게 들려 준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3학년이었던 전숙희는 공부는 뛰어나게 잘 하였으나,

집은 몹시도 가난하였다고 합니다.  

선생님으로부터 검정고무신 한 켤레를 받아들고 울먹이는

소녀제자, 그를 애처롭게 내려다보시는 선생님.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 옵니다.  

선생님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특히 어리고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시는 일에 유별났다고 합니다.  

동료 교사였던 유증선 선생님은 대통령 서거 후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코흘리개 아이들을 데리고 언제나 같이 웃고 떠들고 노래하는

박정희 교사를 보고 ‘참 특이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교사들은 권위의식이 있어 그런지

코흘리개들과 저렇게 소탈하게 대하는 모습은 못 보았는데...”

 

박정희 대통령께서 늘 힘없고 가난한 자의 편에 서신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국정교과서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박정희 대통령 헐뜯기부터 시작하는  

김정은 역도를 비롯한 국내외 많은 무리들이

이번에도 때를 만난 듯이 날뛰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힐책 거리를 찾다가

아무리 캐고 또 캐도 나올 것이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또 들고 나온 것이

친일, 독재, 인권탄압 논란 등 

이미 용도 폐기된 녹슨 칼들입니다.

 

다카키 마사오로 창씨개명한 것이 친일이라면, 

토요타 타이쥬로 개명한 김대중,

우매하라 케이나츠로 개명한 최규하, 

츠키야마 아키히로 의 이명박..

이들 전 대통령님들이 모두 친일파란 말입니까?

 

국민 대다수가 창씨개명을 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강도를 욕해야지 강도당한 사람을 욕하면 되겠습니까? 

또 하나의 단골 메뉴는 만주군관학교, 일본육군사관학교 입학과

일본군 장교 前歷입니다.

 

일정시대 학생 공무원은 모두 친일파입니까?
독립운동을 한 분들 외에는 모두 매국노들이란 말입니까? 

박정희 대통령께서 친일행동을 했다는 구체적 사실적 증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분은 친일이 아니라 克日을 한 분입니다.

 

인권탄압만 해도 그렇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인권탄압자가 아니라

우리 역사상 가장 획기적으로 인권신장에 기여한 분입니다.  

인권 개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빈곤으로부터 해방일 것입니다.

굶어 죽어가는 북한 사람들에게 무슨 인권이 있습니까?  

독재자라구요?

그럼 세종대왕님도 독재자라고 욕할 것입니까?  

유신독재, 유신독재 하지만

그 기간에 우리 경제와 산업화가 어떻게 달성되었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지기란 사실상 어려웠다.”

“민주화란 산업화가 끝나야 가능한 것이다.”  

‘제3의 물결’ 저자인 앨빈 토플러 등이 한 말입니다.

 

국정교과서는 독재국가에서나 하는 것이라고요?  

우리보다 민주 선진국인 독일 국정교과서 고교상급반 지리 92쪽에서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1960년까지도 남한은 성인 1인당 국내총생산(GDP)가 79달러로

수단 가나 같은 지구상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그 당시 세계은행 보고서는 버마와 필리핀의 앞날을 장밋빛으로 보았다.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에너지원이 없는 남한은 경제적 전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은 세계11대 무역국이며 1996년부터 OECD 회원국이다. (중략) 불리한 자연공간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남한은 경제적 기적을 이루었다.” 

또 독일 국정교과서 중학교 지리 109쪽은 

“남한은 세계경제로 통합되었다. 대통령 박정희는 강력한 손으로 남한을 농업국가에서 산업능력을 가진 국가를 형성하였다. 수도 서울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저 배은망덕한 무리들이 아무리 발악해도 우리의 영원한 스승 박정희 대통령님 영예를 훼기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 그 자체가 그분의 작품이며 이 작품은 역사 속에 길이 남을 명품이기 때문입니다. 

죽음과도 같았던 보릿고개의 상징인 우리 청운각의 저 디딜방아는 오늘도 대한민국의 놀라운 번영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시고 이 자리에 나와 주신 연만하신 제자 분들께 각별한 감사 말씀 올리고 이 날을 다시 한 번 경축하면서 이만 말씀을 줄이겠습니다.

 

2015년 11월 14일

문경 청운각 청운회

박 남 우 근축



https://www.youtube.com/embed/SirSijod2Rg<-----기념식 실황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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