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語는 思想을 담는 그릇이다. 이 그릇이 오염되거나 금이 가면 담기는 思想도 그렇게 된다. 國語는 민족과 국가의 魂, 그리고 역사를 담는다. 國語를 文法에 맞게 아름답고 정확히 써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국민의 정신이 溫全해지고 교양이 함양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국어의 수준을 닮게 된다. 위대한 文明을 남긴 민족과 국가는 國語가 훌륭하였다. 語彙가 풍부하고 문법이 整然(정연)하였으며 문학이 꽃피었다.
<한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공대녀의 패기’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공대녀는 ‘공과대학 다니는 여대생’의 줄임말이다.>
수년 전 조선닷컴에 실린 이 기사는 한국인의 語彙力(어휘력)이 감퇴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工大女라고 쓰면 '공과대학 다니는 여대생'이라고 길게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國語 단어를 國字(漢字와 한글은 한국어를 표기하는 두 가지 文字)로 다시 해설해야 하는 희한한 나라가 되어간다. 한글專用(전용)이 한국어를 암호로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일본 야마카다縣엔 산이 많다. 그래서 山形縣(산형현)이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다, 왼쪽으론 여름에도 눈덮인 山이 보인다. 해발 2200 미터를 넘는 이 山의 이름은 조카이산(鳥海山)이다. 새처럼 높이 바다를 내려다 보는 산이란 뜻이다. 이처럼 漢字地名(지명)은 정보가 많다. 분당의 '야탑동'은 암호, '野塔洞'은 정보다. 들판에 탑이 있었던 동네이다.
구보, 활보, 횡보, 유보는 암호이다. 漢字語(한자어)를 한글專用으로 표기한 결과이다. 驅步(구보), 闊步(활보), 橫步(횡보), 遊步(유보)라고 쓰면 걷는 네 가지 행태-달리고, 활달하게 걷고, 모로 걷고, 느릿느릿 즐기면서 걷는 모습이 정보화된다. 한자의 매개 없이는 한글화된 암호의 정보화가 불가능하다. '가수분해'는 해독이 필요한 암호이나 '可水分解'는 漢字만 알면 이해할 수 있다. 한자를 가르치지 않으면 한국인은 암호와 소리 속에서 의미 정보를 캐내기 위하여 시간과 정력을 낭비해야 한다. 독서가 피곤한 암호풀이가 되면 읽어도 머리에 남는 게 없다. 고급독서도 불가능하다.
 
한글專用에 오염된 기자들이 '최대 400대' '최대 5도' '최대 300km' 식으로 표기한다. 最大, 最高, 最多, 最長으로 구분하지 않고 최대로 통일한 셈이다. 이로써 낱말 3개가 사라져가고 있다.
苦悶(고민)과 苦惱(고뇌), 正確(정확)과 的確(적확)의 차이도 무시하고 고민과 정확으로 단일화한다. 深淵(심연)이라고 쓰면 독자들이 모른다고 생각하여 '깊이'라고 표현한다. 深淵과 깊이는 낱말의 깊이가 다르다.
'중국, 제2위 경제대국으로 등극'이라고 쓴다. '登極'은 왕이나 챔피언처럼 제1인자가 되는 것인데, 漢字 표기를 하지 않으니 그냥 높은 데 오르는 정도로 여긴다.
출판과 언론이 한글專用으로 도는 바람에 어휘력 감퇴의 傾向(경향)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낱말 수가 줄어들고 정확한 단어 선택이 되지 않으며 문법에 맞지 않는 用例(용례)가 茶飯事(다반사)이다.
어휘력은 思考力(사고력), 창조력, 교양, 학문수준, 해독력, 문장력의 근본이다. 국민의 어휘력이 구조적으로 약해지면 기억력과 분별력도 쇠퇴, 좀 심하게 표현하면 집단치매의 길을 간다. 慶州(경주)에 가서 보면 漢字를 아는 일본 초등학생이 漢字를 모르는 한국 대학생보다 문화재에 대한 이해가 더 빠르다.
아이와 어른, 짐승과 인간, 야만과 文明(문명)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은 어휘력이다. 인간은 어휘력 범위 안에서만 생각을 한다. 인간은 어휘력만큼만 성공할 수 있다고도 한다. 국가도 國語 수준만큼만 발전할 것이다.
한국인의 어휘력 감퇴는 從北得勢(종북득세)보다 더 심각한 문제이다. 歷代(역대)정권의 語文(어문)정책이 망가진 게 한국 사회의 혼란을 부른 제1요인이다. 교육은 語文의 정리정돈 없이는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從北은 국가를 파괴하고 語文혼란은 정신을 파괴한다.  
語彙力이 부족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1. 개념이 없다. 槪念語(개념어)의 이해에 약하면 논리적 사고가 부족하여 행동도 뒤죽박죽이 된다. 
   2.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 특히 讀書(독서)의 축적량이 적다.
   3. 남의 말을 傾廳(경청)하지 않는다. 독서를 많이 하지 않아도 남의 말을 귀담아 들으면 어휘력이 풍부해진다.
   4.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략적 思考가 부족하다.善과 惡, 敵과 동지의 문제를 놓고 고민해본 적이 없다.
   5. 말과 글의 중요성과 힘을 잘 모른다.
  
   6. 한글專用으로 쓰여진 책만 읽는다. 이게 또 어휘력을 감퇴시킨다.
   인간은 어휘력 만큼만 성장하고 어휘력 만큼만 성공한다고 한다. 어휘력이 약해지는 과정을 치매라고 한다. 어휘력이 강해지는 과정을 교육이라고 한다.
  漢字를 아는 이들도 苦惱, 的確, 深淵 같은 고급 단어를 기피하고 쉬운 낱말을 찾는 경향이 있다. 한자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한 配慮(배려)인 셈인데, 이게 또 어휘력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사물을 적확하게 표현하려면 漢字語가 필요하고 漢字로 표기해야 한다. 이 활동을 기피하면 精密性(정밀성)이 생명인 과학과 학문은 발달하지 않는다. 과학과 학문의 발달 없이는 文明 건설도 어렵다. 한글專用으로 한국은 정신적, 문화적, 철학적 衰退期(쇠퇴기)로 접어들고 있다. 45년 전 吳之湖(오지호) 선생의 예언은 불행하게도 적중하고 말았다.  
  *다시 읽어보는 吳之湖 화백의 名文 
     
     
     吳之湖화백이 1971년에 쓴 ‘國語에 대한 重大(중대)한 오해’란 70쪽 남짓한 소책자는 67세에 쓴 글답지 않게 힘있는 내용이다. 筆力은 體力이기도 한데 그(1982년에 작고)의 글은 대단한 기백을 느끼게 한다. 그 힘은 그의 울분에서 우러나온 것 같다.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다섯 손가락을 꼽을 수 있을까말까하는 다만 몇 사람 한글주의자의 그릇된 애국심이 禍(화)가 되어 지금 이 時刻(시각), 한 민족의 아들 딸들 모두가 일제히 멍청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이 무서운 현실을 보다 못하여 나는 여기 또 다시 이 글을 草(초)하는 것이다>
  
   이 글은 한글전용론의 허구성을 언어학적으로, 또 문명사의 입장에서 정확히 지적한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한글전용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강력한 논리의 무기를 갖게 된다. 吳之湖는 우리 國語가 한글로 표기될 수 있는 바람, 눈물, 하늘 같은 固有語(고유어)와 주로 고급 개념어가 많은 漢字語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실히 하여 한자가 결코 외국어가 아니라 국어의 일부임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한글로써는 한자어의 발음부호를 달 수는 있지만 뜻을 제대로 전할 수 없으므로 한자의 도움을 받지 않은 國語는 언어가 아닌 소리, 또는 암호화한다고 밝힌다.
  
   <국어에 있어서의 고유어와 한자어와의 관계는 척추동물에 있어서의 근육과 骨格(골격)과의 관계와 같다. 우리말은 漢字語라는 골격을 얻음으로써 軟體(연체)동물에서 척추동물로 진화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 말에서 한자어를 제거하자는 말은 우리 몸에서 척추를 제거하자는 말과 같다>
  
   吳之湖는 우리 낱말 가운데 70%나 되는 한자어의 약 80%는 異義同音語(이의동음어)이기 때문에 한글로 표기된 한자어는 그 뜻을 외울 수 없어 언어가 아니라 소리로 전락한다고 주장한다. 吳之湖씨의 글이 설득력이 있는 것은 통계의 적절한 활용 덕분이다. 吳씨는 ‘우리나라의 한자 字典(자전)엔 한자음이 480여 개가 있다. 이 자전에 수록된 한자가 1만3000여 字이니 1音 평균 30자 가까운 異義同音字가 있는 셈이 된다’고 썼다.
  
   기자는 서울 종로 1가를 지나가다가 한 음식점의 간판에 ‘가연’이라 쓰여진 것을 보았다. 읽을 수는 있지만 그 뜻을 알 수는 없으니 이건 말이 아니라 소리이다. ‘佳緣’의 한글표기인 것 같은데 물론 확실하지는 않다. 이처럼 읽어서 그 의미가 그 자리에서 확실하게 전달되지 않는 언어는 암호이든지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이 吳之湖씨의 되풀이되는 주장이다. 한글의 한계를 분명히 한 吳之湖씨는 한자의 위대성을 강조한다. ‘漢字造語의 만능성’이란 대목에서 吳씨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런데, 한자로는 이것을 완전무결하게 바꿔놓을 수 있다. Philosophy를 哲學(철학), Sociology를 社會學(사회학), Ethics를 倫理學(윤리학)으로 번역하였는데, 이것들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번역된 언어가 原語(원어)보다도 오히려 더 정확하게 그 語彙(어휘)가 갖는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더 분명히 말하면, 언어 자체가 바로 그 언어의 定義(정의)다. 그런 까닭으로, 한자어휘는 漢字만 알면 물을 필요도 없고, 배울 필요도 없다.
  
   이와 같이 한자는
   1. 그 의미의 정확성에 있어,
   2.그 意味解得(의미해득)의 자동성에 있어,
   3. 그 의미 인식의 신속성에 있어,
   4. 소수의 문자로 다수의 언어를 만들 수 있다는 그 경제성에 있어 인간이 문자에게 바랄 수 있는 최고의 理想(이상)을 완전히 실현하여준 文字다>
  
   吳씨는 한자가 배우기 어렵다는 점에 대해서도 異義(이의)를 제기한다. 
   <영어는 우리나라에 있어 대학입시를 치르려면 단어 5천개는 알아야 하고 歐美(구미)에 있어서 사회생활을 하자면 최소한 단어 1만 개가 필요하고 학술을 연구하자면 단어 3,4만개는 있어야 하는데 한자는 3천자 정도만 알면 족하다>
  
   그 이유는 한자의 거의 무제한적인 造語(조어) 능력에 있다. 그는 ‘漢字 3천 자를 알게 되면 서로 연결하여 60만자를 不學而解(불학이해=배우지 않아도 안다)하게 된다’는 것이다. 吳씨는 한글전용을 주장한 정부가 人口調査(인구조사)라고 하면 될 것을 ‘센서스’라고 쓰고 있는 것을 지적하면서 ‘식민지가 인구조사결과를 미국이나 俄羅斯(아라사=러시아)에 보고하려고 만든 것이면 모르되 국민들 절대다수가 모르는 외국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그 底意(저의)가 奈邊(나변)에 있는 것인가.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은 사대사상이고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주체사상이라는 말인가?’라고 痛駁(통박)했다. 한자어를 추방한 그 자리에다가 영어를 가져와 쓰고 있는 오늘날의 허구적인 한글전용을 예언한 말이기도 하다. 이 소책자의 결론 부분에는 어두운 예언이 실려 있다. 이 대목을 기자는 稀代(희대)의 명문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면, 이 땅에서 한자가 깨끗이 소멸한 다음에는 어떤 사태가 惹起(야기)될 것인가.
   1.少數(소수)의 특수 지식인을 제외한 일반 국민은 언어능력의 원시화에 의한 사고능력의 퇴화로 말미암아 국민의 정신상태는 한자 수입 이전의 저급한 단계로 환원될 것이다. 젊은 세대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사태가 이미 진행중에 있다.
   2. 학술을 연구하는 자는 필리핀이나 인도처럼 순전히 유럽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결과 국민은 白人化(백인화)한 소수의 지식귀족과 한글밖에 모르는 다수의 원주민 低知識族(저지식족)의 두 가지 계층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3. 우리의 민족문화는 黃人文明(황인문명)의 일환으로서 한자와 한자어를 바탕으로 생성하고 발전되어 왔다. 우리는 한자를 없앰으로써 이 강토에서 수천년 동안 連綿(연면)히 계속되어온 우리의 고유문화는 그 전통이 단절될 것이다. 그 불가피한 결과로서 국민의 생활감정과 사고방식은 외형적, 또 말초적 면에서 歐美化할 것이다.
   4. 아세아대륙의 10억의 황인종이 향유하고 있는 동양문화권으로부터 스스로 이탈함으로써 한민족은 天涯無依(천애무의)의 문화적 고아가 될 것이다>
  
   한 세대 전의 이 예언은 상당 부분 적중하여 지금 우리 눈앞에서 진행중이다. 최고의 名文은 그 내용의 예언적인 능력으로 더욱 빛난다.












이에 반해 한자는 일부를 제외하고 의미가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부터 2천 수백년 전의 글까지도 거의 완벽하게 해독되고 있죠. 역사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한글만 고집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수백년 전 우리 조상들이 쓴 한문 서적들을, 오늘의 우리민족 대다수가 해독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랑스런 일이 아닐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한자는 우리민족이 수천년 동안 사용해온, 실질적인 우리 문자라고 봅니다. 한자의 始源이 되는 글자, 예컨대 갑골문 등을 발명한 민족이 우리 동이족이라는 것은, 중국고대사학계의 정설입니다. 중국의 임어당 선생도 안호상 선생을 만났을 때, 그렇게 얘기했다고 안호상 선생이 회고한 바 있습니다. 임어당의 말이 아니더라도, 한중고대사를 조금이라도 연구해보는 사람은, 한자가 우리 동이족에서 비롯되었음을 익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떠나서, 한글의 세계적 우수성을 인정하지만, 순수 한글로 만든 문서의 한 가지 흠은, 수천년이 지났을 때 동일 단어라도 語義가 변해 전혀 다른 뜻이 될 수 있고, 새로운 낱말이 계속 생성되어 뜻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불과 수백년 전인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우리말조차 해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국민의 정신이 溫全해지고'
온전의 온자가 좀 ...
"...從北得勢(종북득세)보다 더 암담한 현상..." 이라고 ?
한자문제와 종북문제를 어떤 중요성/비중으로 판단하는지를 알겠음,
漢字를 공부해 보면 압니다. 일단 2천자 정도만 확실히 알면 정보의 質이 다르다는 걸요. 구리시 거리면 금속 copper를 연상합니다만 九里市라고 하면 거기에 맞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서초라고 하길래, 서쪽에 있는 풀인가라고 생각했다가 瑞草 상스러운 풀이란 이미지를 알게 되었고, 부천을 富川이라 쓰면 부유한 느낌이 들어옵니다. 우린 암호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한글 전용을 할려면 저런 지명을 듣고 알 수 있는 고유어로 바꾸든지요, 그런 노력도 안하면서 한글 전용으로만 하는 건 절름발이 언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요즘 인간들은 한자를 알 필요가 없어요!
카톡으로 사진이나 보내며 생각 없이 사는 인간들이
무슨 한자가 필요해요?
책을 안 읽는데 왜 한자가 필요?
연예인들 운동선수들 뒤꽁무니 쫓아다니는데
왜 한자가 필요해요?
한자가 없어서 망하는게 아니고 타락하고 부패해서
망하는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