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反韓 여론이 핵우산 무력화시켜.'
 미국 대통령의 특사로 방한, 청와대에서 한국 대통령을 만난 부통령은 탁자 위에 놓은 커피가 식은 줄도 모르고 한 모금 마시더니 “지금부터 미 합중국 대통령의 제안을 전달하겠습니다'라고 엄숙한 태도를 취하였다.
 <미국은 현재 조성된 한반도의 핵위기와 관련하여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아래와 같은 제안을 합니다. 우리 두 나라의 가장 중요한 공동 목표는 북한정권이 한국을 겨냥하여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막는 일입니다. 물론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 후에는 미국의 상응한 응징이 가해질 것이지만 이런 사후적 조치는 한반도를 핵전장(核戰場)으로 만들 뿐 이성적 해결책이라 볼 수 없습니다.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북한정권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한국은 핵무기가 없고 핵미사일 방어망도 완벽하지 않아 북한의 핵공격을 억지할 수단이 없습니다. 한국인들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한사코 반대하고 있으니 미국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이 제안한 6자 회담에 참석, 북한의 요구 조건을 검토하는 한편, 별도로 북한과 미국이 회담을 갖고 한국전(韓國戰)의 종식 및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북한이 평화협정에 따른 조치로 주한미군 철수나 위상 변경 등을 요구할 경우에도 핵불사용 약속을 전제로 회담에 임할 것입니다.
 북한이 요구하는 한국군의 책임자 처벌과 손해 배상도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한다면 한국 측이 전향적(前向的)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외교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미국의 언론과 여론은 한국에서 전개되는 반미(反美) 시위를 우려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집권당까지도 이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미국의 서해안이 핵공격을 당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을 핵무기로 지켜야 하는지 의문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1950년 북한 공산정권이 남침하였을 때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파병을 결단, 유엔군의 기치 하에 한국을 구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시의 이승만 정부를 비롯한 한국인과 군이 결사항전(決死抗戰)의 의지를 보인 덕분이었습니다.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그런 투지(鬪志)가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敵의 핵무기보다 동맹국의 방어무기(사드)를 더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국민들을 지키기 위하여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피를 흘리라고 명령하기는 어렵습니다. 각하께서도 헌화하신 적이 있는 워싱턴의 한국전 기념물엔 '미국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조국의 부름에 응한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말이 새겨져 있지만 敵보다 미군을 더 미워하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명령에 응할 젊은이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여론을 무시하고 한국 편만 들다가는 이번 중간 선거에서 집권당이 참패할 가능성이 높고 국제적으로도 고립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미국의 반한(反韓) 여론 때문에 미국의 이른바 핵우산 정책 집행이 어려워졌음을 솔직히 시인하는 바입니다.>
 제2의 뮌헨 회담
 미국 부통령이 여기까지 읽었을 때 한국 대통령은 '그만 하시지요'라고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당황하는 미국 부통령을 내려다 보면서 말하였다.
 '6자 회담이 열리면 핵을 갖지 않은 한국의 운명을, 핵보유국가들끼리 결정하는 모양새가 될 터인데, 뮌헨 회담의 재판이 아닙니까? 이는 核으로 한미동맹을 해체시키고 한국과 1 대 1 결전으로 적화 통일하겠다는 북한의 전략에 미국이 동조하는 것 아닙니까?'
 부통령은 이렇게 받았다.
 '각하, 뭔헨 회담과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1938년 9월 뮌헨 회담에 당사국인 체코슬로바키아는 초청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이 체코의 운명을 결정하였지만 이번 6자 회담엔 한국이 참석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점이 있습니다. 히틀러가 체코를 침공하겠다고 선언하였을 때 체코 정부는 군에 동원령을 내리고 싸울 태세를 취하였습니다. 한국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당시 체코의 동맹국이던 프랑스는 군비증강이 충분하지 못하여 체코를 도울 수가 없는 입장이었고 영국은 프랑스가 빠지려 하니 히틀러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미국과 일본은 한국을 위하여 싸울 전력(戰力)이 충분하지만 한국이 앞장 서지 않으니 핵전쟁을 각오하고 북한을 때릴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각하의 말씀에 토를 다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만 한미동맹이 해체된 이후엔 한국과 북한이 1 대 1로 대결하는 것이 아니죠. 2 대 1로 대결하는 것입니다. 북한정권과 한국내의 친북세력이 2이고, 군대를 포함한 한국의 보수세력이 1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중국이 가세하면 3대 1 아닐까요? 이는 정확히 사드 배치 찬성 세력 對 반대 세력이군요.'
 '인간은 가난에 이기지만 풍요엔 진다.'
 한국 대통령이 비감(悲感)한 어조로 말하였다.
 '부통령께선 뮌헨 회담과 닮은 점은 빠트리시는군요. 프랑스가 같은 민주주의 국가인 동맹국 체코를 버린 점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물론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우리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을 처벌하면 일단 위기는 넘기겠죠. 문제는 그 뒤입니다. 북한 측은 핵공갈이 먹히고 있다고 판단,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해올 것입니다. 핵무기를 정치무기, 더 나아가서 통일의 무기로 삼으려 할 것입니다. 한미동맹이 해체되거나 약화된 뒤라면 우리로선 감당할 방법이 없습니다.'
 미국 부통령은 철학적 논평을 하였다.
 '토라스 칼라일이 '영웅숭배론'의 서문에서 한 말이 기억 나는 군요. 인간은 역경(逆境)을 이기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사람은 한 명도 안 된다고 썼습니다. 한국도 미국도 풍요하니 비겁해지는 면이 있죠.'
 부통령은 중국 역사를 전공한 학자 출신인데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김정은이 이번에 쓴 수법은 동양에선 전례(前例)가 있지요. 남송(南宋)에 대하여 금(金)나라가 썼던 전술입니다.'
 한국 대통령은 한국군 장교들의 애독서인 '宋의 눈물'에서 읽었던 유명한 악비(岳飛)의 고사(故事)를 기억에서 되살려 보았다.
 <1140년과 이듬해 금군(金軍)은 올출 장군의 지휘 하에 남송(南宋)을 치기 위하여 남하했다. 이때 남송군(南宋軍)은 여러 방면에서 금군을 격파했는데 그때마다 간신 진회(秦檜)가 남송의 고종에게 아뢰어 이기고 있는 남송군을 철퇴시키고 승장(勝將)을 좌천시키거나 파면했다. 올출은 진회를 이런 식으로 압박한다.
  “강경론자 岳飛(악비)를 죽이지 않으면 평화협상에 응하지 않겠다.” 
  진회는 남송의 충신 악비 부자(父子)를 역모로 몰아 죽였다.
  1206년 남송의 영종 시절 주전론(主戰論)의 대표인 한탁주는 금을 쳤으나 대패했다. 금은 이의 책임을 물어 영종에게 한탁주의 목을 요구했다. 송조(宋朝)는 그를 암살한 뒤 머리를 상자에 넣어 금에 보냈다. 금은 한탁주를 후하게 장사지내 주었다.>
 한국 대통령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미국 부통령을 향하여 말하였다.
 '오늘 부통령을 통하여 미국 대통령의 뜻을 잘 전해 들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답변은 내일 하겠습니다. 한번 더 만납시다.'
 일어서는 부통령의 두툼한 손을 잡은 대통령은 지나가는 말처럼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을 소외시키고 중국이나 북한과 빅딜을 하겠다면 제2의 에치슨 라인을 긋겠다는 뜻인가요? 당시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다른데 말입니다. 한국은 인구가 5000만 명 이상이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이며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세계 일곱 나라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부통령은 이 말에 함축된 의미를 금방 알아차렸다. 한 방 맞은 듯 머뭇 하다가 '그 질문에 관한 답은 내일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자유의 代價는 항상 비싼 법입니다.'
  그날 밤 대통령은 불면(不眠)의 밤을 보냈다. 대한민국이 독립된 민주주의 국가로 존립할 수 있느냐가 자신에게 달려 있고, 그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는 사안이란 점에서 정상(頂上)의 고독은 말장난이 아니라 실제였다.
  수년 전 신문에 났던 '핵 없는 대한민국, 북한의 인질 된다'는 투박한 구호가 현실이 되었는데 한국이 쓸 수 있는 대응 수단은 한국인에 의하여 소멸되어 있었다. 핵무기 개발 능력은 충분하였지만, 사드 등 종합적 핵미사일 방어체제를 건설할 돈도 많았지만, 미국과 일체가 될 정도로 한미동맹을 강화할 시간도 있었지만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무조건적(그러면서도 투쟁적) 평화주의가 한때 위대하였던 국민들을 타락시키고 이 나라를 발가벗겨놓은 사실을 깨달았다. 핵도 없고, 방어망도 없고, 결사항전의 의지도 없는, 살찐 돼지 같은 나라는 굶주린 늑대 같은 북한에 먹히는 게 정의(正義)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한민국도 남송(南宋)처럼 세계사에 자주 등장하는, 배고픈 나라에 먹힌 배부른 나라의 하나로 기록될 것인가?
 그날 밤, 그는 민족사의 정통성을 수호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이럴 수는 없다는 다짐도 해보았다. 한국인은 당대의 최강국과 맞섰던 기록이 있다. 수와 당을 저지한 고구려, 대당(對唐)결전으로 한반도를 민족사의 보금자리로 확보한 신라, 몽골 침략에 40년 동안 버틴 고려, 세계최강의 육군을 패퇴시킨 임진왜란, 소련과 중공의 사주를 받은 북한군의 기습 남침을 저지, 냉전에서 자유세계가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던 이승만과 국군. 한민족(韓民族)의 DNA(유전자)가 된, 군관민(軍官民) 일체의 결사항전(決死抗戰) 전통, 그 불꽃을 살릴 수는 없을까?
 문득 대통령의 머리를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몇 달 전 국민안전처가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합참 차장 출신인 처장이 한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전국의 지하시설을 전수 조사하였습니다. 그동안의 개발 붐으로 지하도, 지하철, 지하실 등이 어머 어마 합니다. 스위스가 全 국민의 120%를 수용할 핵방공호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도 못지 않습니다. 이 지하시설을 유사시 핵방공호로 전환할 수만 있다면 적의 핵공격 제1파를 최소한의 희생으로 견디고, 세컨드 스트라이크 캐퍼빌리티(second strike capability)를 온존시킬 수 있습니다.'
 제1파의 핵공격으로 30만 명이 죽어도 4900만 명은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휴대전화로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를 해안봉쇄할 때의 연설문을 검색해보았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가 선택한 길은 어렵고도 위험한 길임이 분명합니다. 이 길이 어디로 갈지, 얼마나 많은 대가(代價)와 희생을 치러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큰 위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유의 대가는 항상 비싼 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그 대가를 지불하였습니다. 우리가 절대로 선택하지 않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항복하거나 굴복하는 길입니다.'
 대통령은 미국 특사를 다시 만나는 자리에서 이 문장을 꼭 써먹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청와대의 창밖으로 벌써 동이 트고 있었다.












3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해도 4900만이 살수 있다? 그런데 그 30만중에 내가 있다면?
나는 기꺼히 목숨을 버리겠다고 큰 목소리로 외칠수 있을까요?
이곳에 딜렘마가 있는것 같군요.
제1파의 핵공격으로 30만 명이 죽어도 4900만 명은 살아남는다
말도 안되는 이론임
지하철이나 지하터널 지하상가 등에 지하공간에 어찌 4900만이 들어갈수있단 말인가요?
소수가 들어갔다 치자 그러면 뭘 먹고 사는거요?
그렇다 우리는 결연히 맞서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민족이 생존할수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 의 댓가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나는 기꺼히 목숨바칠 각오가 되있다
미국 군인 이 한국전에서 이름도 모르고 맞나본적도 없는 한국인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치지 않았나 이런 숭고한 정신을 우리도 이어 받아야 한다
이젠 뚜벅뚜벅 우리길을 가야한다.
글세요 항복이나 굴복을 선택하지 않을까요 ?
어쩐지 과거를 봐도 믿기가 ...
참으로 명석한 판단이로다. 이런 지모가 있는 탁월한 책사를 어디서 얻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