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참고서인 아버지 박정희를 배우지 않고 최악의 讖書(참서)에 빠지다니!

박근혜 대통령은 위대한 교사, 그리고 후견인을 가졌다. 아버지 박정희. 최단시간에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의 업적을 남긴 세계적 지도력의 비밀을 배워 실천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가까이서 모셨던 이들도 살아 있다. 최고의 참고서를 버리고 최순실이란 최악의 讖書(참서)에 빠졌으니 이것도 운명인 모양이다.
  *지도력의 일관성과 입체성

  박근혜 대통령은 위대한 교사, 그리고 후견인을 가졌다. 아버지 박정희. 최단시간에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의 업적을 남긴 세계적 지도력의 비밀을 배워 실천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가까이서 모셨던 이들도 살아 있다. 최고의 참고서를 버리고 최순실이란 최악의 讖書(참서)에 빠졌으니 이것도 운명인 모양이다.
   
   석유파동과 中東진출, 그리고 중화학공업 건설. 1970년대 한국경제의 3大 주제를 관리하였던 네 인물이 있다. 비서실장으로서 경제정책의 총사령탑 역할을 했던 金正濂, 재무장관과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였던 南悳祐, 경제제1수석비서관과 재무부 장관을 지냈던 金龍煥,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 담당이었단 경제제2수석비서관 吳源哲. 南 전 부총리를 뺀 세 명은 살아 있다.
   당시 金실장과 南장관은 50대, 吳 金씨는 40대였다. 이 네 사람은 30년 전부터 왕성한 저술과 강연활동을 통해서 朴대통령의 업적과 지도력을 전파하였다. 1970년대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이 네 사람의 증언과 기록은 안심하고 인용할 수 있다.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모시면서 國政의 핵심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증언에서 드러나는 朴대통령의 국가경영술은 철학, 전략, 전술, 정책, 실천이 일관되게 흐르고, 입체적으로 짜인 아름다운 건축물 같다. 朴대통령의 국가 운영에서 발견되는 일관성과 입체성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는 골똘한 사색과 독서를 통해서 밑그림을 그리고 거기에다가 치밀한 설계와 신속한 실천, 그리고 철저한 확인으로써 속을 채워갔다. 겉으로는 엄정하고 경직되어 보이는 그의 국가경영술은 안으로 들어가보면 의외로 부드러웠다.
   그는 역사의 原理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여기서 우러나오는 전략과 실천은 단순명쾌하게 정리된 것이었다. 말장난이나 현학적 관념론이 낄 틈이 없는 실용성과 합리성이 거기에 있었다.
  
   박정희는 대구사범 5년, 만주군관학교 2년, 일본 陸士 2년, 한국 陸士 6개월, 미국 유학 1년, 陸大 1년 등 군대에서만 10여년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한국, 미국, 일본식 군사 교육을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받았다. 그는 강한 주체성으로 외래 문물을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독서를 좋아한 교양인이었다. 주체성이 확립된 교양인만이 가질 수 있는 균형감각과 개방적, 입체적 시각이 놀라운 리더십의 바탕이었다.
  
  * 朴正熙 리더십 12계명
  
   1. 화합형 정책 결정: 朴대통령은 무엇보다도 듣는 사람이었다. 엉터리 보고라도 끝까지 들어주었다. 좀처럼 즉석에서 반대하지 않았다. 일단 본인의 의견을 제시한 뒤 主務장관이 다시 한번 심사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라 주무장관이 發案한 정책이 채택되는 방식을 취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야 정책에 대한 주인의식이 생기고 일을 할 때 신바람이 나는 것이다. 朴대통령은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남을 통해서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2. 민주적 정책 결정: 朴 대통령은 어떤 회의에서도 먼저 발언하지 않았다. 토론을 시켜 문제가 제기되고 贊反의견의 방향이 잡혀가면 그때 결론을 도출하고 필요한 보충지시를 내렸다. 당시의 정치체제와는 다르게 경제정책의 결정과정은 민주적이었다.
  
   3. 생산적 회의: 朴 대통령은 월간경제동향보고, 수출진흥확대회의(무역진흥회의), 청와대 국무회의, 국가기본운영계획 심사분석회의, 방위산업진흥확대회의를 정례화하였다. 이들 회의는 대통령이 國政을 종합적으로 규칙적으로 파악 점검하고 살아 있는 정보를 얻는 기회였다.
  
   4. 철저한 확인과 일관된 실천: 朴 대통령은 계획수립에 20%, 실천과정의 확인에 80%의 시간을 썼다고 한다. 중앙부처 및 지방 순시 등 현장 시찰을 자주 한 것도 집행의 확인과 사람들의 士氣 진작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계획의 수정이 필요할 때는 토론절차를 거쳐 신속하게 했다.
  
   5. 국민의 각성과 참여: 朴 대통령은 국민들이 自助정신을 발휘하여 자발적으로 건설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는 인간과 조직의 정신력에 주목한 사람이다. 박정희는 한국인의 민족성처럼 치부되었던 패배의식과의 싸움에 이긴 사람이다. 그는 京釜고속도로 건설 같은 눈에 뜨이는 구체적 업적을 통해서 국민들의 체념과 自虐을 자신감으로 교체해갔다. 의욕을 불어넣기 위해 '새마을 노래', '나의 조국' 도 작사 작곡했다.
  
   6. 정부는 맏형, 기업은 戰士: 朴 대통령은 경제관료와 기업인이 異見을 보이면 많은 경우 기업인 편을 들어주었다. 그는 정부 주도형 경제개발정책을 채택했으나 기업이 엔진이고, 경제전선의 戰士는 기업인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은 기업 엘리트를 존중해주었고, 기업인들은 '대통령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다.
  
   7. 내각에 권한과 책임 위임: 청와대 비서실이 장관 위에 군림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장관의 인사권을 존중했다.
  
   8. 관료엘리트 중시, 학자들은 자문역: 실천력을 중시하던 朴대통령은 집행기관장으로서는 학자를 거의 쓰지 않았다. 학자들은 자문역으로만 부렸다. 거의 유일한 예외는 서강대학교 교수 출신인 南悳祐 부총리였다. 南부총리도 실무능력의 검증을 거친 다음에 重用되었다.
  
   9. 정치와 군대의 압력 차단: 그는 관료들이 國益과 효율성의 원칙하에서 소신대로 일할 수 있도록 군인들과 정치인들의 경제에 대한 개입을 차단하고 견제했다. 군대의 힘으로써 집권한 사람이 군대의 영향력을 약화시킨 예는 매우 드물 것이다.
  
   10. 경제발전 우선주의: 朴대통령은 경제발전이 결국은 안보와 민주주의 발전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先 경제발전, 後 민주화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에 따른 비난에 대해서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로 대응했다.
  
   11. 市場의 한 멤버로서의 정부: 朴 대통령은 정부가 시장의 규제자가 아니라 한 참여자라고 생각했다. 朴대통령 시절의 정부는 시장 지배자라기보다는 시장의 일원으로서 시장 기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정부는 기업가, 은행가, 개혁가로서의 역할도 했다. 電力, 철강 등 민간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은 정부가 公기업을 만들어서 맡아서 하되 경영은 민간기업 방식으로 운영되도록 했다. '官治경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CEO로 뛴 주식회사 대한민국이었다(김용환)'
  
   12. 주요 전략 선택의 적중: 朴 대통령이 채택한 수출주도형 공업화정책, 중점 투자전략, 先성장-後분배 전략, 과감한 외자유치 전략은 모두 성공했다. 朴 대통령은 정책과 전술은 수시로 변경했지만 철학과 전략은 18년 동안 그래도 밀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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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noda74 2016-10-31 오후 6:11

    참서에 빠졌는지 안 빠졌는지
    당사자가 말한 것이 없고
    국가 수사기관이 밝힌 것이 없다.

    그러면 그렇다고 단정을 말아야 한다.

    최순실 사태에 대한 조갑제닷컴의 논조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하자면 '그럴 줄 알았다'이다.
    옛날 최태민 기사를 들쳐내고, 미국 대사도 어쨌네 하면서
    결국은 자기 자랑인 것이다.

    그러면서 조중동 그리고 좌익의 행태에 발을 맞추고 있다.

    조갑제는 불과 며칠 전 글에서
    시위대가 청와대로 몰려들면
    경찰이 민심을 염두해 막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러면 대통령은 하야냐 계엄령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조갑제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믿기지 않고 실망하고 분노한다.

    불법시위대는 해산시키고 주동자는 처벌하는 것이 법치국가의 상식 아닌가?
    경찰은 법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지
    민심이 무엇인지를 기준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인가?

    마치 그런 일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듯 하다.

    과거 좌파 정권은 북한이라는 반국가 단체와 내통했다.
    더 며칠 전 조갑제 사이트는 문재인, 노무현의 북과의 내통을 가리켜
    이정도 사안을 응징하지 못하면 나라도 아니라고 했다.

    그 응징도 아직 못했는데,
    박근혜는 그보다 더 엄중한 죄를 지어서 이렇게 물어 뜯는다는 말인가?

    조중동 기사는 윤창중 사태때와 마찬가지로
    90%는 소설이겠지만 만일 그게 다 사실이라도
    박근혜가 물러나면 친북좌익 천지가 될텐데
    조갑제는 그런 사태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자세다.

    조중동과 좌빨이 피우는 불장난에 자기도 뒤질세라 기름을 붓는다.

    나라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나
    우파인사 보호보다는

    자기자랑, 우파 그룹에 대한 영향력 과시가 먼저인 듯 하다.

  • 넬라판타지아 2016-10-31 오후 5:38

    2016년10월31일자 한 메이저 신문 1면 머리기사는 “우병우.안종범.3인방...
    ‘수족’부터 퇴출,또 A3면에는 18년 곁에 둔 ‘3인방’ 잘려나가...“박근혜 정치 시스템
    붕괴“로 머리기사를 장식했다.이 기사에서 ‘수족’ ‘잘려나가’ ‘붕괴’같은 어휘 선택을
    보면서 내게는 이 기사를 쓴 사람의 평정심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경질.교체.사표수리..퇴진같은 어휘를 써도 의사전달이 충분하건만 구태어 위와
    같은 어휘 선택으로 대통령을 비롯한 대상 인물에게 보다 나쁜 이미지와 데미지와
    위기 봉착을 덧씌우고 싶은 심리가 깔려 있어 보인다.붕괴도 그렇다.
    사람이 몇 명 교체된다 해서 무슨 시스템이 붕괴 되는가?
    하긴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의 죽음과 함께 ‘촉’이 멸망한 사례가 있긴하다.

    재난이나 큰 사고가 났을때 한국 언론이 즐겨쓰는 말초신경 자극용 보도 어휘를 보자.
    생지옥,아수라장,아비규환,초토화,쑥대밭,괴멸,암흑천지,무용지물,통곡,파문,일파만파,
    후폭풍등 정말 지옥을 연상케 한다.

    2011년 수 만명의 인명과 천문학적 재산피해를 남긴 동일본 대지진 때도 일본 언론은
    위와 같은 자극적 표현을 쓰지 않았다.그저 ‘강한지진’ ‘심한지진’ 표현 정도다.
    며칠 후 일본 총리가 지진 피해지역을 방문했을때 한 시민이 총리를 향해 두 손을
    합장하며 공손히 총리를 맞이 하는 모습을 보며, 무엇이 일본인들을 저렇게 만드는
    것일까? 후에 세월호 사고때 대통령이 현장 방문시 모습의 격(格)과 2011년의 장면이
    오버랩되어 비교하며 부러워 한 적이 있다.

    우리도 일본인과 일본 언론처럼 될 수 있을까?

  • 지평선 2016-10-31 오후 5:04

    철저하게 대한민국을 배신하고 ,
    자아를 상실한 후안무치의
    대한민국과 결혼 한더니, 겨우 이거였나 ?



  • 이중건 2016-10-31 오후 4:27

    아래 두분과 생각을 좀 달리-
    최순실에게 자문하는 것이 큰 죄가 아니라고 치자.
    근데 왜 오만방자하고 사치한가이다.
    그런 인간에게 의거했다는 것을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 대한남아 2016-10-31 오후 1:58

    박근혜 대통령이 참서에 빠졌다는 주장은 조선일보가 송희영 사건에 자존심이 상한 언론권력의 수괴인 조선일보가 주동이 되어 만들어낸 말이다.지금 조선일보가 주동이 되어 한겨레 중앙일보 등을 원격조종하면서 담합하여 소설을 쓰고있다.학벌도 시원치 않은 최순실 따위가 무슨 지식과 인맥이 있다고 국정을 논단한단 말인가.박근혜대통령이 최태민 일가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그 딸들과 친하고 그래서 자기 결정에 조언을 들었다고 치자. 그것이 무슨 죄가 되나.지금 언론은 최순실은 무슨 악마나 되는 존재로 조작하여 대통령을 끌어내리려 악을 쓴다.좌익종북세력과 맥을 같이하는 조선일보는 이미 공명정대한 언론과는 멀어진 존재이고 사회악을 저지르고 있다.언론권력은 부패한 공직자보다 더 큰 사회악이 될수있고 그 현상이 지금 나타나고있다.

  • 조선폐간 2016-10-31 오후 1:12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존재하는 시기와 정치적 상황이 다른 상황에서 박정희대통령을 배우라고 하는 조언은 타당하지 않은 조언입니다. 그리고 열거하신 것들은 박근혜 대통령도 익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박정희 대통령때를 살아본 사람은 다 알다시피 그 시절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정치와 기업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국민은 아직 생존의 단계였기때문에 자기 권리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지금처럼 자기의 권리를 과도하게 주장해서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기업과 언론을 장악하고 사탕과 매질을 하면서 이끌던 시대의 것을 배우라고 하시는 것은 너무 안일하고 순진한 발상입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한 것 처럼 되어있는데 박근혜대통령의 지식이 해박하지도 않을진대 그렇게 아무 얘기도 듣지 않고 결정을 내렸을까요? 그렇다면 매사에 최순실말을 듣고 결정했다고 하면 논리고 통하게 되니 그렇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다른 글에서도 밝혔지만 통진당 해산, 개성공단 폐쇄와 같은 어느 대통령도 할 수 없는 일을 해 낸 분이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그분이 그런 판단을 혼자 내리셨다면 정말 유능한 독단적 판단을 내린 경이로운 분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분도 많은 정보와 참모들과 장관들의 얘기를 듣고 판단해서 내린 신 것이겠지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통진당이나 개성공단 폐쇄와 같은 결정은 식을 죽 먹기였습니다. 대통령이 결정하면 어떤 공작을 해서라도 그렇게 되었을테니까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합법적으로 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잘 한 것과 실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언론과 언론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언론과 언론인들에게는 원칙이 통하지 않는 집단이라는 것을 몰랐기때문에 이 사단이 일어난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아버지 박정희대통령에게 박근혜 대통령은 지근거리에서 많이 배웠을 것입니다. 퍼스트레이디까지 했는데 안 배웠겠습니까.. 다만 박정희 대통령은 마음에 안드는 사람들은 중정에 끌고 가서 두들겨 패면서 정치를 할 수 있고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상화이었던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것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살고 있다는 점이 크게 다른 점이지요.. 원칙을 내세워 행동해도 할 수 없는 더러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그녀로서는 패착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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