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族한테 당하는 朴正熙 陸英修 朴槿惠의 '그리스 비극'

한국인은 원래 이렇게 잔인한 민족인가? 우리는 영웅을 가질 자격이 있나?
탄신 100주년 朴正熙를 생각한다

아버지와 딸, 극과 극의 차이가 만든 그리스적 비극
-하나 빠진 것은 관중의 연민이다.

趙甲濟(조갑제닷컴 대표, 박정희 전기 저자)


전두환, 노태우의 충고

2002년 초 박근혜(朴槿惠)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 대통령 출마를 준비할 때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에게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 두 사람의 충고가 같았다고 한다.
“내가 대통령을 해 봐서 잘 아는데 한국에서 대통령직을 끝낸 뒤 칭찬 받기가 매우 어렵다. 박 의원이 그렇게 되면 아버지까지 욕보이게 된다.”
이 말을 전했더니 박 의원은 듣기만 했다고 한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2월17일자에 ‘청와대의 딸’이라는 제목의 무기명 칼럼을 실었는데 최순실 사태를 문학적으로 설명하였다. 박 대통령의 몰락은 신파극과 코미디적 요소(정유라의 애완견이 사건의 발단)가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 비극 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잡지는 그러나 비극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 부족한 게 있다고 했다. 그것은 ‘관중의 연민’(the pity of the audience)이다.
나는 TV토론이나 대중강연장에 나가면 이런 말을 한다.
“우리를 가난과 굶주림에서 구출하고도 비명(非命)에 간 박정희 육영수의 따님에 대하여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무슨 값싼 동정심이냐는 비판이 있을 법한데 의외로 수긍하는 이들이 많다. 이코노미스트는 칼럼의 마지막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부모의 사진들과 유품(遺品)들에 둘러싸여 살면서 그는 젊은 시절의 외로움에서 벗어나 성숙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침을 뱉은 딸

2012년 9월24일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사과를 했다. 박정희의 역사적 평가를 결정짓는 5·16군사혁명과 유신선포는 딸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사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박정희는 한 번도 두 조치가 정치발전을 저해하였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자신의 역사적 결단으로 일기에서도 당당하게 자랑하던 일인데 딸이 사과한다? 나는 ‘이제는 딸이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구나’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 다음 날, 부산 사람이고 경남고 출신이며 골수 박근혜 지지자인 60代 후반 인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말하였다.
“어제 사과하는 것 보고 박근혜에게 정나미가 떨어졌습니다. 아버지를 지키지 못하는 딸이 나라를 어떻게 지킵니까? 보통 아버집니까? 대한민국 최고의 아버지 아닙니까? 아니 딸이 아버지를 고발하여 대통령이 되겠다는 겁니까? 그러면서 어머니를 죽인 김정일은 왜 찾아가 만나요? 박근혜가 사람 쓰는 것 보세요.”
그날 이런 전화도 받았다. 유신시절 정보부에서 근무하였던 60代 인사였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전라도 사람이지만 박정희를 민족의 지도자라고 확신하고 체제를 지키기 위하여 악역(惡役)을 맡았습니다. 그 역할을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박근혜가 무슨 자격으로 죽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사과하나요. 박정희를 믿고 따랐던 내 인생은 뭐가 되나요? 대통령이 된들 좌파에 끌려 다니다가 끝날 것입니다. 차라리 좌파가 대통령이 되어 국민들이 정신을 차리는 게 낫겠어요.”
박근혜 씨는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아버지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아버지를 욕보인 점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통령이 되려면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올해 탄신 100주년을 맞는 이 위대한 인물의 평가에 딸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전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후계자에 성적표에 의하여 역산(逆算)되는 경우가 많다. 박정희의 산업화 성공 덕분에 근대화의 기초를 놓은 이승만(李承晩)이 높게 평가될 수밖에 없고, 전두환-노태우의 성공적 경제성장과 민주화 조치가 역사 속에서 박정희에 대한 부동(不動)의 자리매김이 가능하게 하였다.


박정희의 성적표

32년에 걸친 세 군인 대통령 시절은 고려 무신란(武臣亂) 이후 약 800년 만에 군인이 집권한 예외적 시기인데 예외적 국가발전을 이룩하였다. 이 예외의 시대를 연 박정희는 가난과 망국(亡國)과 전란(戰亂)의 시대를 살면서 마음속 깊이 뭉쳐 두었던 한(恨)의 덩어리를 뇌관으로 삼아 잠자던 민족의 에너지를 폭발시켰던 사람이다. 니체의 초인(超人)에 대한 정의(定義)대로, 썩은 강물 같은 세상을 삼켜 바다 같은 새로운 세상을 빚어낸 사람이다. 쏟아지는 비난에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면서 일체의 변명을 생략한 채, 부하가 쏜 총탄에 가슴이 뚫리고도 ‘체념한 듯 해탈한 듯 담담하게(신재순 증언)’ 최후를 맞은 이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한’ 박정희였다. 그가 죽을 때 ‘허름한 시계를 차고,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핀을 꽂고, 해어진 혁대를 두르고 있었던 것’은, 그리하여 시신(屍身)을 검안한 군의관이 ‘꿈에도 각하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그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세계 역사에서 최단기간에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문명 건설을 이룬 사람으로 기록될 것이다. 키 164cm의 이 작은 지도자의 그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그 성공 원리는 21세기에도 실효(實效)가 있나? 이게 탄신 100주년의 화두(話頭)일 것이다.
1961년 朴正熙 소장이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고 경제개발에 착수하였을 때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93달러였다. 당시 경제통계 대상이었던 103개국 중 87위로 최하위권(最下位圈)이었다.
1위는 2926 달러의 미국, 지금은 한국과 비슷해진 이스라엘은 1587달러로 6위였다. 일본은 26위(559달러), 스페인은 29위(456달러), 싱가포르는 31위(453달러)였다. 아프리카 가봉은 40위(326달러), 수리남은 42위(303달러), 말레이시아는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보다 세 배가 많아 44위(281달러)였다.
지금 독재와 가난에 시달리는 짐바브웨도 당시엔 1인당 국민소득이 274달러로서 한국의 약 3배나 잘 살았고 46위였다. 필리핀은 당시 한국인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한국보다 약 3배나 많은 268달러로서 49위였다. 남미(南美)의 과테말라도 250달러로 53위, 잠비아(60위, 191달러), 콩고(61위, 187달러), 파라과이(68위, 166달러)도 한국보다 훨씬 잘 살았다.
필자의 가족은 이 무렵 파라과이로 이민을 가기 위한 수속을 밟았는데 다행히 잘 되지 않아 모두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나세르의 이집트도 152달러로서 70위였다. 박정희 소장 그룹의 일부는 나세르의 민족주의 노선을 따라 배우려 했었다. 아프가니스탄도 124달러로 75위, 카메룬은 116달러로 77위, 태국은 110달러로 80위였다. 차드 82위, 수단 83위, 한국 87위!
한국은 유신시대로 불리는 1972~1979년에 중화학공업 건설을 본격화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 랭킹에서 도약한다. 1979년에 가면 한국은 1734달러로 59위로 오른다. 말레이시아는 63위로 1537달러였다. 말레이시아가 못해서가 아니고 한국이 잘하여 뒤로 밀린 것이다.
1965∼1980년 사이, 즉 朴正熙 대통령 시절과 거의 겹치는 16년간 한국의 연(年) 평균 GDP(국내총생산) 증가율은 9.5%로서 세계 9위였다. 1980∼1990년의 11년간, 즉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절 한국의 GDP 성장률은 연평균 10.1%로서 세계 1위였다. 군인출신 대통령이 국정(國政)을 운영하던 1965~1989년 사이 세계은행이 세계 40개 주요국 평균 경제 성장률과 소득분배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 성장률에서 1위, 소득분배의 평등성에서도 아주 양호한 국가로 나타났다. 그 동력은 수출입국 전략이었다. 한국은 무역부문에선 세계 51위에서 11위로 도약하였다. 한국은 인권(人權)문제가 국제적으로 거론되지 않는 아시아의 두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두 차례의 진정한 혁명을 뒤집는 민중혁명?

후계자를 누구로 세우느냐 하는 것은 왕조시대 권력자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민주정부에서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중요한 평가 요인이 된다. 박정희는 재임시절 정규 육사 장교집단을 키워 비상시에 대비하였다. 그의 급사(急死) 후 부국강병 노선을 잇는 두 대통령이 장교단 속에서 나오게 하였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전두환 자리에 김대중이나 김영삼이 앉았더라면 오늘 한국인이 기억하는 박정희는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후임자를 결정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가 없게 되었다.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종북 좌파세력이 일어날 것이다. 민중혁명, 촛불혁명이 완성되었다, 이제는 보수를 불태워야 한다, 이승만· 박정희 옆에 박근혜를 파묻어야 한다, 부역자를 숙청해야 한다, 광화문에 단두대를 세우자, 촛불혁명탑을 세우자, 국가기념일로 만들자, 이렇게 나오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60일 뒤의 대통령 선거를 그 분위기 속에 치르려 할 것이다.
한국의 진정한 혁명은 두 번이었다. 첫째는 이승만의 지도 아래 1948년 8월15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민국가를 세운 혁명이다. 조선조와 식민통치의 구(舊)체제를 청산하고 국민이 주권자가 된 새로운 국가체제를 출범시킨 것이다. 두 번째는 5·16 군사혁명이다. 군인들이 주도하여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질서를 바꾸고 기업인, 군인, 과학자, 기술자가 역사의 새 주역으로 등장, 경제개발을 통하여 민주주의가 기능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었다.
계급투쟁론으로 무장한 종북 좌파세력은 공고해진 반공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엎으려 할 것이다. 이는 국가정체성을 부정하는 반역이지만 자신들의 정체와 목표를 민족주의(사실은 인종주의)와 민주주의(사실은 공산주의)로 위장할 것이다.
한국은 반공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적 가치관 덕분에 미국, 일본 등 해양문화권과 손잡고 개혁, 실용, 개방 노선을 걸을 수 있었다. 탄핵과 대선을 거치면서 박근혜 노선이 부정되면 한국은 친북(親北), 친중(親中)으로 집약되는 대륙회귀(回歸)의 노선변경을 겪으면서 개인의 기본권과 국가의 활력이 약해질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 시리아 같은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북한의 핵무기가 끼어들면 민족공멸의 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이 사태를 초래한 것은, 아버지에 대한 딸의 불효(不孝)를 넘어서는 국가에 대한 불충(不忠)이다. 성공한 국가 시스템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권력자의 가장 큰 범죄이다.


엘리트를 가장 많이 만난 아버지

아버지와 딸은 모든 면에서 극과 극이다. 그런 점에서 연구감이다. 아버지는 62년간 교사, 군인, 혁명가, CEO(경영자)의 네 가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딸이 유일하게 아버지보다 잘한 것처럼 보였던 것은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린 점이다. 이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 표가 후광(後光)으로 작용한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국가경영의 귀재(鬼才)였지만 딸은 국가경영의 문란자였다. 가장 유능한 지도자의 딸이 가장 무능하였다는 기막힌 사연의 비밀을 찾다가 보니 간단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대통령 시절 가장 많은 사람들(대부분이 엘리트)을 만났고 딸은 가장 적은 사람을 만났다. 최순실 사건을 가능하게 한 것도 박 대통령의 대면(對面)기피증이었다. 매일 여러 번 만나야 하는 비서실장은 1주일에 한 번도 못 만날 때가 있고 수석 비서관들은 1년에 한 번도 못 만났다고 한다. 주(週) 1회 대면 보고가 관례화되었던 세 명의 국정원장은 거의 만나지 못했고 장관들은 더했다.
청와대 일정표를 보면 하루 2~3회 정도의 의례적 행사 정도이다. 아베 일본 총리의 일정은 다음날 언론에 공개되는데 하루 평균 10명 이상의 장관, 국장, 실장의 보고를 받는다. 박정희 대통령의 재임(在任) 면담 일지(1964.1.4~1979.10.26)를 보면 5656일간 3만9318회의 회의에 참석하고 보고를 받았다. 하루 평균 7회이다. 유신시절 전에 면담자가 많은데, 1964년의 경우엔 4042회의 보고 및 회의였다. 하루 11회이다. 대통령이 똑똑해지는 것은 엘리트를 많이 만나 핵심정보를 보고받는 덕분이다. 이런 지식은 서면 보고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다. 사람을 만나는 것과 활자를 만나는 것은 천지 차이이다. 대면 보고를 많이 받았더라면 최순실 사건도 방지할 수 있었다. 수년 전 기자회견에서 대면보고 문제가 나오자 박 대통령은 배석한 장관들을 향하여 “그게 반드시 필요해요?”라고 묻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대통령이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으면 사람도 정책도 모르게 된다. 활자로 세상을 이해하겠다는 것은 문틈으로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超人으로 만든 것은 교사의 品性

아버지는 왜 사람을 많이 만나고 딸은 피했나? 답은 간단하다. 인간애이다. 사람을 좋아하면 자연히 많이 만나고 싫어하면 적게 만난다. 박정희의 생애는 교사, 군인, 혁명가, 경영자의 네 역할을 해냈지만 그를 초인(超人)으로 만든 기본은 교사적 성품과 자질이었다. 위대한 지도자와 그냥 유능한 지도자를 가르는 것도 교사적 자질의 유무(有無)이다. 문무왕, 세종대왕, 이순신, 이승만, 박정희, 이병철은 바탕이 교사였다. 아래 사람을 단순히 부리는 데 그치지 않고 가르치려 할 때 일과 조직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1961년 5월16일 새벽 군사 쿠데타의 성패를 가르는 곳은 KBS였다. 5시에 예정대로 혁명방송이 나오느냐 못나오느냐가 열쇠였다. 당직을 하다가 혁명군에게 붙들려 온 박종세(朴鍾世) 아나운서는 군모(軍帽)의 별 두 개가 유난히 선명한 장성 앞에 세워졌다. 그는 대뜸 “박종세 아나운서입니까? 나 박정희라고 하오”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즉석 강연을 했다.
“지금 나라가 너무 어지럽소. 학생들이 판문점에 가서 북한 학생들과 만나겠다고 하지를 않나. 국회는 매일 같이 싸움질만 하고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소. 그래서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우리 군이 일어섰소. 오전 5시 정각에 이것을 방송해 줘야겠소”라면서 전단지 한 장을 내밀었다.
혁명공약이 적힌 인쇄물을 건넨 뒤로도 박정희 소장은 군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을 몇 마디 더 보태면서 설득했는데, 그런 그의 모습은 “진지했고, 말에는 조리가 있었다”고 한다. 박종세 씨는 “직접 방송하시고 제가 소개 멘트를 해드리면 안 될까요?”라고 했다. 박정희는 “박 아나운서가 하시오”라고 하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나 단호하였던 것이 오래 기억되더라고 한다.
그는 경제개발만 한 게 아니다. 국민교육헌장 선포, 새마을운동 등 정신 개조 운동을 동시에 하였다. 정신적 자조(自助) 위에 경제적 자립(自立)이 가능하고, 그래야 자주(自主)국방과 자유(自由)통일이 이뤄진다고 믿었다. 국가운영에서 교사적 관점을 항상 깔았다.


꼴찌 학생

민족의 위대한 교사가 되었지만 그는 꼴찌 학생이었다. 박정희가 다닌 대구사범 5년간(1932~1937년)의 성적표는 대구사범의 후신인 경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공개를 금지시켜 왔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었다. 박정희의 집권 시절에 나온 전기류(傳記類)에서는 1등만 한 구미보통학교의 성적표는 소개하면서도 사범학교 시절의 성적은 그냥 ‘우수한 편’, ‘중간 정도’식으로 넘어 갔었다. 나는 작고한 이낙선(李洛善·상공부 장관 역임)이 남긴 메모와 자료들을 1991년에 열람했었다. 그가 육군 소령으로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로 있을 때인 1962년에 모아 두었던 ‘박정희 파일’ 중에서 사범학교 성적표를 발견했다.
박정희는 100명 중 51등으로 합격했으나 1학년 석차는 97명 중 60등으로 내려갔다. 2학년 때는 83명 중 47등으로 약간 올라갔다가 3학년 때는 74명 중 67등, 4학년 때는 73명 중 73등, 5학년 때는 70명 중 69등을 했음이 밝혀졌다. 박정희의 행동 평가도 나빴다. 품행을 의미하는 ‘操行(조행)’은 5년간 ‘양, 양, 양, 가, 양’이었다. 2학년 담임은 그를 ‘음울하고 빈곤한 듯함’이라 적었다. 3학년 때는 ‘빈곤, 활발하지 않음, 다소 불성실’이라 되어 있고 4학년 때는 ‘불활발, 불평 있고, 불성실’이라고 적혀있다.
더 놀라운 것은 장기 결석이다. 2학년 때 10일, 3학년 때 41일, 4학년 때 48일, 5학년 때 41일이다. 기숙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향에 가서 돈이 마련될 때까지 눌러앉았기 때문이다.
박정희 학생의 성적표 ‘취미’란에는 ‘검도’라고 되어 있었다. 이밖에도 박정희는 사격, 나팔, 육상에 뛰어났다. 학업에서는 꼴찌였지만, 교련 시간에는 소대장이었다. 학과 중에서 그래도 성적이 괜찮은 과목은 역사, 지리, 조선어였다. 요사이 교육제도에선 도태되었을지 모르는 성적이지만 인문적 교양을 중시하는 일본식 교육이 그를 버리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박정희는 자녀 교육과 이념 교육에서 실패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로 가기 전 초등학교 교사로 3년간 근무하였던 문경 시절이 그가 지난 교사적 품성을 잘 보여준다. 지금도 제자들이 몇 분 살아있는데, 이들의 증언들을 종합하면 이런 이미지이다. 아침마다 나팔 불고 청소에 철저한 사람, 운동과 병정놀이를 좋아하고 학생들과 잘 놀아 주는 선생, 일본사람들에게 얕보여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투지를 불어넣어주던 분, 빈부귀천(貧富貴賤)을 가리지 않고 제자들을 사랑한 사람, 일본인들도 어려워한 대담한 배짱, 술을 좋아한 교사, 가정 방문을 많이 하고 학부형들과 잘 어울렸던 선생, 나팔·스파이크 달린 운동화·목검으로 기억되는 사람, 그리고 교사로 만족할 분이 아니라는 느낌을 준 선생. 주영배(周永培·전 초등학교장) 씨는 자신이 3학년일 때 막 부임해 와서 담임이 되었던 박 선생을 이런 일로 기억하였다.
“가정실습지도 시 문경에서 12km나 떨어진 벽촌에 있는 저희 집에까지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기뻐서 부모님에게 여쭈었더니 ‘이렇게 먼 곳까지 오시겠니’라고 하셨지만 선생님은 자전거를 타고 정말 오셨습니다. 농촌이라 별다른 접대는 없었지만 만족하시고 가셨습니다. 선생님의 모습이 산모롱이로 숨어들 때는 울고 싶도록 감사했어요.”
박정희는 교사적 군인, 교사적 혁명가, 교사적 경영자였다. 못 살고, 못 배우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情)이 그를 권력자로 만든 가장 큰 동기였다.
반면 그 딸을 대통령으로 만든 동기는 연민의 정도, 국가개조의 야망도 아닌 권력 그 자체였지 않을까? 그는 청와대로 들어가자 한나라당 대표, 새누리당 후보 시절의 활발한 정치인 모습을 벗어던졌다. 옛날 집으로 돌아온 사람의 안도감과 적막감, 목표를 달성한 뒤의 허탈감이 대통령직 수행의 보람과 흥분됨을 잃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에게 권력의지를 심은 사람이 최태민이었다면 집권 이후의 청사진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때 그를 채워줄 인문적 교양은 터득한 게 없었고 철학적 고뇌도 생소하였으리라. 최순실 사건 발생 후에 그와 여당이 저항을 포기하고 무너져 내린 과정, 그리고 새누리당의 배신과 비겁이 더 충격적이다. 한 중국공산당 간부는 “박 대통령은 권력이 선전부의 장악 없이는 유지할 수 없고 국민을 화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점을 몰라 유소기(劉少奇)처럼 인민재판을 당하고 있다”고 평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위대한 교사였지만 두 면에서 실패하였다. 자녀 교육과 이념 교육이다. 자신의 자주국방 노선을 이념적으로 이어받는 정치세력을 만들지 못하여 동상조차 서울 도심에 당당하게 세우지 못하고 있다(지금도 프랑스 정치를 주도하는 드골리즘과 대비된다).


세 사람이 모두 同族의 손에 요절이 난다

극과 극의 아버지와 딸 이야기는 인간의 성취와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스 비극에 어울리는 소재이지만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하였던 대로 하나가 모자란다. 박근혜의 몰락 과정을 어떻게 이기적으로 이용할 것인가 하는 정치와 언론의 계산과는 별도로 비극성에 공감하는 관중(국민)이 있어야 비극은 완성된다. 한국인의 삶을 바꾼 아버지는 부하의 총에, 퍼스트레이디의 전범을 보여주었던 부인은 공산주의자의 손에 죽었고 그 딸은 언론 검찰 정치인들의 손에 빈사(瀕死) 상태이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연민의 정이 없다. 힘없는 사람들에게 박정희가 보냈던 연민은 메아리가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연두순시에서 노동청을 방문하고 아래와 같은 지시를 한다.
“작년에 구로동 어느 수출 공단에 갔을 때입니다. 아주 정밀한 기계를 취급하는 직공인데, 그 아주 작은 이런 것을 들여다보고 작업하기 때문에 시력(視力)이 대단히 피로하기 쉽고 또 어두우면 아주 작업에 지장이 많은데, 가보니 저쪽 구석에서 컴컴한 거기서 일하는데 불은 여기서 거꾸로 뒤로 비치는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데, 현장에 가서 지적을 했지만, 한 가지 간단한 예지만, 책임자가 다닐 때 여기는 전기를 하나 따로 더 달아 준다든지 조명을 더 밝게 해준다든지 이런 건 간단한 착안입니다.
어떤 때 가보면 직공들이 머리가 또 요즘 히피마냥 이만큼 길게 하고 있는데 ‘왜 자네 머리 안 깎느냐?’ 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늦게 일하고 가면 뭐 이발소 가고 할 시간이 없다 그래요. 그런 것은 기업주들이 이발사를 데리고 와서 할 수 있고, 종업원들을 가족같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일을 시켜야 능률이 오르고 생산이 늘고 이러지 그런 정신 안 가진 기업체는 나는 절대 성공 못 한다고 봐요.”
그리스 비극은 못되더라도 국민적 연민의 부족, 이 점이 한국식 비극의 핵심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버지-어머니-딸이 대(代)를 이어서 동족(同族)의 손으로 요절이 나는데 외국 언론이 동정론을 펴는 게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한국인은 원래 이토록 잔인한 민족인가? 과연 영웅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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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벤져스 2017-01-04 오후 10:07

    새해들어 처음 댓글을 달아본다.
    스치고 지나가려다 기가차서 로그인한다
    댓글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박정희는 구국의 영웅이고 반공보수우익의 태두이다.
    그러나 그의 딸은 그 아버지와 시대가 다르니 비교하여 비판하지말라
    둘은 전두환은 박정희와 격이 다른 인간말종 귀태이니 긍정적으로 볼 생각도 말라

    그러나 위의 두가지 사안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역사의식에 근시안적 한국인의 작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소생도 과거에는 위의 글처럼 단순히 생각하였으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진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은 오도되고 왜곡된 역사교육을 받아서 눈뜬 장님 귀머거리가 된지 오래이다
    이제 진실을 파헤쳐 보자
    하나 516 혁명당시 한국은 최빈곤국이었는데 박정희가 먹여살렸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먼저 일제시대를 생각해야 한다
    일제시대는 한국인이 그럭저럭 먹고 살만했고 산업 인프라도 기본은 정비되었다
    그러나 해방이후 100만의 귀국민이 난민처럼 좁은 땅에 돌아오니 먹고살기 피폐하게 된 것이 큰 원인이다.
    일제시대 잘 알려면 티비 드라마 김두환시리즈물 같은 것을 보면 일반 한국민들은 그럭저럭 질서가 있고 기본 문화가 있다는 것이 알 수 있는데 민중의 삶이 바로 팩트이다
    전라도 호남의 곡창지대 김제 만경평야도 일제가 제방을 쌓아 황무지를 옥토로 바꾼 것처럼 조선의 근대화를 주도하여 조선사람이 봉건야만에서 깨어나 근대적 정신혁명을 한 것이리라
    해방 후 무질서와 빈곤 속에서 그나마 있던 기본 생활을 6.25 전쟁이 확 뒤집어버리고
    북한 피난민 100만까지 내려와 남한은 윗글 그대로 빈곤 기아 속에서 거지떼가 득시글거려 아프리카 소국보다 못한 비참한 생활을 하였다
    세계 어느 나라나 전후에는 원래 그렇지 아니한가?
    그러나 한국민들 중 30%는 밥걱정 돈걱정 없었을 것이고 30%는 그럭저럭 쪼달리며 생활하였을 것이고 나머지 30~40%는 입에 풀칠하거나 원조식량에 의존하였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IMF왔다고 모든 한국인이 거리에 내몰렸는 것이 아니듯이 5.16당시에도 잘사는 부류는 잘 살았다는 것이다
    왜곡된 역사교육울 받은 한국인들은 국사책에서 부서진 건물 사진과 때에 쩔어 우는 전쟁고아 사진을 보고 전후 전국토가 잿더미가 되고 모든 한국인들이 거지떼가 된 줄 오해하는데 팩트는 대부분 건재하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전국토가 잿더미가 되었다면 오늘날 서울 역사건물이나 고궁 유적지나 일제시대 건축물 학교 병원 종교건물 공장등이 어떻게 남아나 있겠는가?
    한국인들은 박정희를 무조건 구국의 영웅으로 우상화해서는 안된다
    그는 일제시대의 조선총독부 총독정치를 함에 다름 아닐 것이다.
    총독정치식으로 즉 군대식으로 군국주의 정신으로 패망한 전 식민지배자 일본을 롤모델로 삼아 압축경제성장을 주도하였던 것이다.
    미국의 안보우산 속에서 일본의 기술력과 자금의 지원을 얻어서 경제개발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이 없었다면 급속한 경제개발은 불가능하였는 것이 된다
    일본이 조선을 집어 삼키고 합병을 했을 당시에도 일본은 가난하고 봉건에 쩔은 조선을 근대화시키고자 많은 자본과 가술을 투입하였다는 것은 부동의 사실이니
    일제 근대화시기이나 박정희 개발경제 시대이나 도찐게찐 같은 맥락이 역사의 흐름이다
    이글을 읽은 독자분들은 이제 팩트에 눈을 좀 떴으리라 생각되나
    한가지 더 붙이자면
    전두환도 2대 조선총독에 다름아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전두환이 하늘에서 떨어진 악질 광인이 아니라 전임총독이 이룬 업적을 그대로 물려받아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그런고로 전임 박정희의 동상을 세우거나 영웅화시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후 일본의 군국주의가 패망하였듯이 한국도 군부정치가 몰락하고
    또한 군국주의 패망 후 일본이 자유민주주의로 경제 부흥하였듯이 한국도 군부정치는 역사의 강물에 띄워 보내고 자본주의 경제부흥에 진력하면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도 역사적 사명이다
    끝으로 장군의 딸인 박근헤에 대한 환상도 이제는 버려야 한다
    환상도 기대도 연민도 모두 접어야 한다
    그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그 딸은 딸일 뿐이다
    전혀 다른 별개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도의 간디여사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여사
    필리핀의 아키노여사
    예를 든 여자분들 모두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정치가가 되었으나 별 볼일없이 끝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모든 한국인들이 행복하게 살 때까지 그리고 5천만 중산층이 이뤄질 때까지 열심히 살아야함이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남겨진 과업이 아니겠는가?

  • 지평선 2017-01-04 오후 2:14

    만인은 뿌린대로 = 자업자득 .....
    분노, 원망 , 포기 ,자책 .....
    사람이 될건지 말건지 ? 자기선택의 권리
    국민은 연습장? 들러리 ?
    몰 염치=무모한 행적

    권력을 이용한 편법의 댓가로 ,부와 명예를 ?
    대한민국은 영원히 흘러야 하는 운명 공동체 , 드러운 편법은 가라

  • prince 2017-01-04 오전 12:27

    이제 이념 타령은 지겹다 못해 신물이 날 지경이다. 난 태생적으로 북한을, 물론 김씨 일가와 그 추종세력들,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임에 조갑제씨가 이념 하나로 stereotyping 하는 데 아주 질려 버렸다.
    종북세력들은 물론 제거 1순위 대상이다. 하지만 이제 종북몰이 하나 가지고 지금까지 버텨온 수구세력들도 퇴출 순위 공동 1위다.

  • 이성과 감성 2017-01-03 오후 6:56

    민주주의 수호자님/저 역시 조갑제씨의 생각에 많은 부분에서 동조하고 공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보수내의 여러사람들이 조갑제씨에게 배울게 많을겁니다. 허나 딸에게 자기 아버지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망발을 하는데 그 사람이 조갑제라면 못 본 척 넘어가줘야 하는겁니까?
    조갑제씨의 말 자체가 박근혜가 아버지 박정희에게 패륜을 저지른 것과 같은 심한 표현을 썼는데 뭔 부드러운 말을 해줘야합니까?
    조갑제씨가 이런식의 표현을 한게 이번 한 번도 아닌 것으로 기억하는데 부드럽고 따뜻하게 말한다고 알아들을까요?
    박정희도,전두환도,박근혜도, 노무현도, 조갑제도 비판할게 있으면 비판하는 겁니다.
    그리고 조갑제씨는 어차피 제가 뭐라 떠들던 크게 개의치 않을겁니다.

    그리고 정답과 오답/ 할 말이 있으면 제대로 할 것이지 항상 딴소리. 말귀를 잘 못 알아듣고 동문서답만 하는 줄 알았더니 저열한 짓거리도 자주 하는듯. 우리 한국인들이 모두가 당신과 같지않다는게 그나마 큰 다행.

  • 얼핏보다가 2017-01-03 오후 5:50

    본인은 월간조선 창간...이전부터 조갑제대표를 기억하며 주목한 사람이다.

    이곳에서 조갑제대표를 가장 많이 비판한 사람이기도 하다. 지금은 제법 여러사람들이 부분적으로 조대표의 글을 비판하지만, 여러사람들이 조대표를 비판한 것을 다 합쳐도 본인의 비판한 것과는 비교조차 못할 것. ( 조대표가 이곳에서 가장 비판 댓글을 많이 받은 상황은 두가지....광주518 과 박원순(박주신) 건 이었다..이때의 비판을 전부 합쳐도 본인의 비판과 비교 불가하다는 것.. 오히려 이때는 본인은 논객/조갑제대표를 옹호한 몇 안되는 사람 .)

    요컨데, 조갑제대표가 젊었을 때의 기자정신으로 독재에 반감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박정희대통령에 빠지고, 나중에는 이승만대통령 매니아가 되어가는 과정도 기억한다, 생각의 자유지만, 본인을 조갑제대표의 '저격수'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조갑제대표의 매니아라고 자처한다. 역설적으로 단점이 거의 없는 /엄청나게 많은 다른 보수논객보다 ... 몇가지 단점이 있더라고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이 조갑제대표라 믿고, 그 바탕하에 조대표를 하나하나 비판해 온 이유였던 것. 가장 영향력있는 조갑제대표만 바로서면...대한민국 보수가 바로선다는 확신으로...

    한마디로, 조갑제대표의 군더더기 없는 /명쾌한 논거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주옥같은 논리로 보수가 필요한 논거를 개발하는 것....이점은 본인이 조갑제대표의 매니아가 될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그렇지만, 조갑제 대표는 '부분적'으로 독특한 과장/비약/궤변에 가까운 글도 제법 많다 ( 옳은 논거에 비하면 미미하다고 할만도 하지만..) 본인은 이것을 나름 고치고 싶었기에 참으로 오랜 시간을 조대표 비판해 온 것.

    우선적으로 시급하게 고쳐야 하는 것으로 보는 논거는...박정희에서 이승만의, 대한민국 영웅화 신념은 보편적 타당성이 있다고 보지만, 문제는 여기에 수년전부터 전두환을 추가하려는 조갑제대표의 의중을 발견한 것이며 계속 '끼워넣기식'으로 반복되고 있음. 공과를 구분해주거나/. 아무리 잘 보아주어도 ,전두환의 수많은 행적이 영웅이라고 종합 평가된다면...보수의 이념/가치가 살아 남을 만한 것이 거의 없게된다. 조갑제대표의 수천가지 글/논거 자체도 완전히 자가당착이 된다. 이건 조갑제로 대표되는.. 보수전체의 자살골 그 이상이하도 아니다.

    ( 조영환-논객과 마찬가지로, 조갑제대표를 대충?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전두환 영웅론에 환호하며, 박빠의 근원/TK 패권주의자들이 이런 글에 환호하는 것) .이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면, 좌파박멸은 커녕 ,보수는 자멸한다고 본다 .종북야당의 입장에서 통진당/이석기가 보수의 입장에선 전두환과 '대응'되는 개념,)

    보수가 지리멸렬한 이 싯점에...조갑제대표의 전두환 사랑이 보수의 이념/가치에 정말 합당한지?...이런 전두환을 영웅으로까지 칭송하기 시작한 조갑제대표를 두고 보아야 하는지?...모든 자칭 보수들은 조갑제대표의 글을 자세히 주목하고 , 이슈화해서 결론내야 한다고 본다 . 탄핵반대 연단에서 '전두환 영웅' 운운해 되는 조갑제대표를 상상 한번 해 보시길....이건 종북 좀비언론들에게 웬 떡이냐하는 먹거리를 제공하는 셈.

    추신) 이성과 감성님...늘 소인의 글에 '관심'주셔서 감사. 조갑제대표의 글 이외는 대응 댓글을 자제하지만 귀 성의에 답하고 싶으며 그 하나로, 본인의 인용문구중의 하나이지만, '궤변'으로 제기하신 박근혜대통령/세종시 문제가 왜 보수적 이념/가치 이슈중의 하나인지는 별도로 응답하겠습니다.

  • 정답과오답 2017-01-03 오후 5:32

    야만의 민족
    저열한 품성
    한마디로 말해 순 쌍놈들

    이성씨의 성품이야 말로 한국인의 표준

  • 로얄공인 2017-01-03 오후 5:32

    초대 이승만 박사와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까지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님 들이
    분명 1948년의 빈곤에서 지금의 세계 10위 경제대국을 이룬 70년간의 주역이신데
    이중에서 분명 영웅이신 대통령이 있을 것인데, 과연 누구란 말인가.
    그중에는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이지 않겠습니까???
    영웅을 영웅으로 대접하지 못하는 국민이여야되겠습니까
    혹여 자기보다 못난 대통령이였다고 여겨서 홀대하시는 것은 않으시겠지요 ~~~

  • 민주주의수호자 2017-01-03 오후 2:47

    이성과 감성님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너무 비판이 심한 것 같습니다.
    조금 부드럽고 따뜻하게 말해도 다 알아들을 정도의 인격을 갖춘 분인데..... 아쉽네요
    저는 조갑제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위안과 용기를 얻습니다.
    조갑제 닷컴에 오시는 분들은 포용과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다음을 느끼게 합시다.

  • 이성과 감성 2017-01-03 오전 11:19

    난 조갑제씨의 글에 많은 부분 동의할 때가 많지만 적어도 전두환에 대한 칭송은 들어주기 힘들다.
    전두환도 공과 과가 있지만, 수천억을 먹고도 끝까지 내놓지않고 국민을 우롱한게 눈감아 줄 일인가?
    그런 전두환과 박근혜를 비교하는 것부터가 조갑제씨도 가끔 정신이 왔다갔다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전두환 노태우 한마디를 끌고 와서 조갑제씨는 뭔 말을 하고 싶은건지?
    참으로 쌩뚱맞는 논리다.
    아무리 보수고 뭐고 떠들더라도 현 시대가치에 눈을 감는다면 그건 수구꼴통일뿐이다.

    박근혜가 아버지에게 침을 뱉었다고?
    말이 많이 지나치다.
    조갑제 당신이 뭐길래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에게 이런 험한 소리를 하는가?
    당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조갑제 당신이 책으로만 본 박정희와 박정희를 아버지로 둔 박근혜.
    누가 더 박정희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가?
    오버하지 마시라.
    조갑제씨 눈에는 박근혜가 아직도 20대 나이 어린 영애로 보이는가?

    더구나 박정희와 박근혜에 대한 비교라니..
    애초에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다.
    박근혜도 박정희처럼 18년동안 독재로 정치를 한다면 지금같지는 않았을거다.
    비교할 거리도 안되는 두 사람을 단지 부녀사이라고 동열에 놓고 비교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무리라는걸 조갑제씨도 알텐데 왜 번번히 이런 헛소리를 반복하고 있는건지?
    조갑제씨가 개인 박근혜에 대해서 아는게 얼마나 된다고 함부로 박근혜를 평하는건지는 모르겠으나, 조갑제라는 사람이 갖는 무게감에 비하여 박근혜에 대한 비판의 이유들은 항상 지극히 치졸해 보인다.
    정치인은 비판을 받는게 당연하고 어느 정치인도 비판할거리는 차고 넘친다.
    박근혜도 예외는 아니다.
    허나 조갑제씨는 비판을 하더라도 조갑제답게 하길..
    읽고 있기에 참 민망한 글이다.

  • 한국특파원 2017-01-03 오전 10:32

    잘 읽었습니다...한국사람들은 상식적이고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 나라사랑110 2017-01-03 오전 10:14

    나는 박빠가 아니다, 그리고 조대표님의 사상과 의견을 전폭 지지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애정어린 쓴소리는, 노기 에 가깝다고 본다!

  • 얼핏보다가 2017-01-03 오전 8:34

    먼 옛날 언급은 인용해도, 어제 전두환이 박근혜에 대해서 한말은 의도적으로 인용치 않는 조갑제대표.....

    - " 여자 대통령이 나오니 신통치 않다. ...박 대통령이 똑똑하고 잘하더라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뭘 하겠느냐..."
    박근혜대통령을 폄하/비판한 것이 아니란 자기해명(?)을 억지로 감안해 준다 치더라도... 도데체 무슨말을 하려고 하려는지 ? 이것이 과연 전직 대통령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수준인가??

    - 그리고, “....내가 대통령을 해 봐서 잘 아는데 한국에서 대통령직을 끝낸 뒤 칭찬 받기가 매우 어렵다..."
    이건 또 무슨 수준의 소리인가? 마치 전두환 자신은 큰 잘못이 없이 대통령직 수행을 했고, 잘해도 세상/국민 평가는 늘 박하게 잘못 나온다는 뉘앙스... 하기사 대통령수행시 수천억 밖에(?) 먹지 않았고, 대한민국 방산비리/율곡비리 정도가 최순실 이 저지른 것과 비교가 가능해서 이런 언급을 인용하시는가 ?
    ( 추운말 연단에 선 조갑제대표의 연설이 가슴 뭉클하다고 말했는데..연단에서 전두환을 인용할까봐 겁난다. 전두환 운운하는 순간....좌파좀비 언론들은 웬떡이냐 하면서 신이나서 (?) 인용 보도할 것이며....그러면 , 쑤어논 죽에 콧물 빠뜨리는 격 ! )

    한마디로 상기 두가지 전두환의 말만 들어도, 격/수준을 정확히 보여 주는 바,
    기회만 되면, 전두환과 박근혜대통령을 서로 한 부류로 묶으려 애쓰겠지만, 이건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다.

    조갑제대표는 전두환을 '대한민국 영웅 3인'으로 평가하는지라, 전두환의 예지력(?)을 인용하고픈 의도를 어찌 모르겠냐마는....'전두환의 충고'를 되새겨야 정도로 전두환과 비교되는 이런 글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본다면 더 기가 찬다는 것도 알아야.... 박정희대통령 사후, 박정희대통령 폄하와 자식으로서의 개인적인 추모도 원천 봉쇄한 전두환에 대한 원망"을 수없이 표현한 박근혜대통령의 언급을 모르는체 하지 마시라. ( 박근혜대통령은 전두환을 김대중보다도 더 싫어할지도.) 아울러 김종필은 전두환에 대해 어떤 평가를 했나? 그리고, 전두환은 김대중 재임시절, 전직대통령으로서 단 한번의 비판도 없이 늘 덕담(?)으로 힘을 실어준 행적.....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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