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토끼의 반란
2014년 6월25일 청와대 자유게시판은 전날 사퇴한 文昌克(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와 관련, 朴槿惠(박근혜)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글로 뒤덮였다. 지지를 철회한다는 내용이 많았다. KBS 등의 왜곡보도와 선동된 여론에 굴복한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과 절망감이 묻어나는 글들이었다.
보수층의 朴 대통령 비판은 좌파의 비판과는 차원이 다르다. 공동체의 안전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보수세력이고 이들이 대통령의 주된 지지층이었다. 이들이 비판을 넘어서 반대로 돌아서면 정권이 불안정해진다. 군대에서 사병이 사령관을 욕하는 것과 장교가 비판하는 것은 성격이 다르듯이.
'이제 진정한 여론이 어떤 건지 알게 될 것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안은정 씨는 보수지지층을 '집토끼'에 비유하였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제 법과 원칙이란 가소로운 말은 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껏 어떤 여론을 살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진짜 숨어 있던 여론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보수 지지자들이 집토끼라 생각해서 무시해도 될 거라 생각했다면 이제부터 집토끼들이 화가 나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십시요.>
임미숙 씨는 '전교조보다 의리 없는 대통령'이란 제목의 글에서 <어제 처음으로 민주당하고 전교조가 부러웠습니다>란 말로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 조직에 충성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한 명이든 두 명이든 死活(사활)을 거는데, 대통령은 진실을 코 앞에 놔두고 도망가기에만 바빴습니다. 김종훈, 안대희, 문창극은 대통령이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해서 모두 낙마한 겁니다. 하이에나한테 뜯기든 말든 내버려 두고 방관하는 자세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젠 방송에 나오는 대통령 모습도 보기 싫고 뭐 하나 다 가식으로 느껴지고 모든 게 엉망입니다. 대통령이 보수에 던져준 이 충격파 상처가 대통령 임기 내에 아물 것 같지 않습니다. 이젠 더 이상 보수는 대통령의 팬클럽이 아닙니다. 거짓에 항복하고 왜곡된 여론에 항복하는 대통령의 낮은 수준을 어제 자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는 마음에 안 들지만 대통령을 생각해서 새누리를 찍은 사람들이 엄청 많을 겁니다. 저도 그 중의 한 명이였습니다. 새누리가 무너지면 대통령이 무너지니 그것만을 막아 보겠다고 온 집식구가 투표장으로 향해 새누리를 찍고 왔습니다. 그래서 배신감이 백 배 더 드는 겁니다. 집토끼들이 나가면 집에 다시 들어올 것 같습니까? 한번 배신감을 가지면 그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텐데 왜 문창극 후보를 버리셨습니까? 당신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온 겁니다. 그것도 51.6%가 당신한테 준 권력입니다. 51.6%의 국민을 바보로 만드니 좋습니까? 속 시원합니까? 나라의 국익보다 진실보다 대통령의 인기가 더 중요합니까? 이 상처가 언제 아물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시각부터 대통령과 새누리에 대한 관심 일체 끊을 겁니다.>
원한과 경멸
곽종은 씨는 <문창극 후보가 자진사퇴의 형식을 취했지만 청와대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면서 이렇게 썼다.
<저는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온누리교회 강연 동영상 전부를 시청하였습니다. 그 결과 종교가 없는 제가 온누리교회에 다니고 싶어질 정도로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 강연은 흠을 잡기가 힘든 것이었음을 제 양심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이런 애국자를 청문회에 세울 수 없다면 그 누구를 청문회에 세우려 하십니까! 청문회를 통과해서 꼭 총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민주적 절차에 따라 청문회까지는 가야 그게 정상입니다. 이런 일 하나 정상화로 만들지 못하는 청와대가 무슨 '기본이 바로 선 국가를 위한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야기하십니까? 그러니, 청와대 홈페이지 메인화면 우측 배너 '기본이 바로 선 국가-비정상의 정상화' 배너 당장 내리십시오 !>
한국 보수층의 정치적 판단 기준은 헌법, 사실, 國益(국익)이다. 그들 눈에는 朴 대통령이 선동세력으로부터 국가적 진실을 수호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인기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군주론》의 필자 마키아벨리는 지도자가 피해야 할 점이 두 개 있다고 했다. 경멸을 받는 것, 그리고 원한을 사는 것.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이 지지자들로부터 이 정도의 본질적 비판을 받는다는 것은 '조직붕괴'의 前 단계가 아닌지 주의해야 할 일이다. 집토끼의 반란은 산토끼의 도주와는 성격이 다르다.
세월호 사고와 KBS의 편파 방송 파동을 겪으면서 한국에선 '국가적 진실'을 담보하는 두 개의 기준이 무너졌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대통령의 권위와 보수언론의 신뢰성이 그것이다. 보수언론마저 선동에 합세하고, 대통령이 이에 굴복한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국민들이 기댈 곳을 좁히고, 외교와 안보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다.
히딩크의 관찰
월드컵 준결승전, 브라질-독일戰(전) 축구 중계방송을 보면서도 '조직붕괴'라는 말이 생각났다. 브라질 팀은 개인기는 뛰어나도 조직 윤리가 무너졌다. 군대든 회사든 축구팀이든 모든 조직은 지도력과 팀웍을 바탕으로 조직의 성공(승리, 돈벌이 등)을 목표로 한다. '조직붕괴'가 일어나면 '조직윤리'가 무너져, 上下(상하) 구분이 사라지고, 정상적인 思考(사고)가 마비되며, 개별적으로 행동한다. 세월호 사고도 배가 급히 기우니 선장과 선원들의 조직윤리, 즉 職務(직무)의식과 지휘계통의 작동이 정지된 경우이다. 한국-알제리 축구戰의 전반에서도 한국 팀은 '조직붕괴'의 현상을 보였다. 홍명보 감독은 지도력을 포기한 듯한 표정이었다. 조직 붕괴를 막을 책임은 지휘관에게 있다. 지도자는 어려울 때를 위하여 준비된 사람이다. 모두가 잘 나갈 때는 지도자가 필요 없다.
히딩크 감독은 2002 월드컵 후, '한국 선수들은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잘할 때와 못할 때의 차이가 크다'는 평을 했다. 히딩크 감독이 지휘할 때 한국 팀은 어이 없이 지는 경우가 없었다. 한국선수들의 단점을 보완, 조직붕괴를 막았다는 이야기이다.
한국군은 6·25 남침이란 기습을 받았지만 조직붕괴는 없었다. 후퇴는 했지만 부대 단위의 집단 투항이 없었다. 인천상륙 작전으로 北進(북진)이 시작되자 북한군은 조직이 붕괴, 부대 단위로 항복했다. 한국전 때 주한미국대사였던 존 J 무초는, 1971년 1월과 2월, 워싱턴에서 ‘역사 기록을 위한 肉聲(육성) 증언’ 프로그램에 응했는데, “그날 한국군은 기습을 당하고도 참으로 잘 싸웠다”고 말했다. “한국군의 조직적인 저항과 戰線(전선)의 暴雨(폭우)가 한국을 구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호의 선장은 '이승만級'이라야
그는 李承晩 대통령에 대하여는 비판과 칭송을 섞었다.
<李 대통령은 아주 머리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45년간 한국의 독립이란 한 목표를 위해 달려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었고 이것이 그의 정치적 강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의지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독립투사로 단련된 성격을 국가원수가 되고나서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성적일 때는 훌륭한 역사적 이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아주 高次元(고차원)의 시각에서 복잡한 세계 정세를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감정적으로 되면 그는 독립투사 시절의 본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한국인의 생존과 자신의 생존에 집착했습니다. 그는 의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매우 복잡한 인물이었으나 위기 때 일처리를 잘 했으며 자신의 뜻을 고급 영어로 잘 표현했습니다. 그의 영어는 글과 말 무엇이든지 유창했습니다. 그는 제퍼슨類의 민주주의자임을 자랑했습니다. 이 분야에 대한 그의 레토릭은 미국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외국인 부인(注: 프란체스카 여사)이 그에게 큰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국군은 기습을 받고도 '조직붕괴'를 겪지 않았다. 지휘계통이 살아 있어 후퇴할 망정 부대 단위로 항복하지 않았다. 첫날부터 미군이 곧 도우러 올 것이란 소문이 돌았고, 李承晩(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있어 恐惶(공황)상태에 빠지지 않았다.
李 대통령은 75~78세 사이에 전쟁 지도자 역할을 했다. 그 나이에도 국내외의 敵對(적대)세력-때로는 미국 정부-와도 싸우면서 정권을 유지하고 국가의 방향타를 놓지 않았다. 무초의 평대로 생존의지가 강하고, 어려울 때 일처리를 잘했으며, 아주 高次元(고차원)의 시각에서 복잡한 세계 정세를 정확하게 이해한 덕분이었다. 핵무장한 북한정권, 이들을 추종하는 종북세력, 國力 팽창기의 중국, 전쟁할 수 있는 나라되기를 선언한 일본, '아시아로의 중심 이동'을 정책화한 미국. 그 사이에서 핵무장을 포기한 한국이 있다. 荒天(황천)항해를 각오해야 하는 대한민국호의 선장은 '이승만級'이라야 하는데, 선원들(보수층)에게도 신뢰 받지 못한다면?
3軍團 와해
모든 사고는 군사적 용어로 설명한다면 '기습'이다. 예고되지 않는 장소에서 예고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브라질 축구팀이 7분 안에 네 골을 먹은 것이나 세계최강의 육군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던 프랑스가 1940년 5월 히틀러의 독일군으로부터 '아르덴느 기습 돌파'를 당하자 6주만에 항복한 것은 기습 상황에서 지도력이 마비된 탓이다.
기습을 받는 등 불리할 때도 잘 싸우는 군대로는 영국군, 독일군, 일본군을 친다. 오랜 군사문화, 지휘관의 솔선수범, 강인한 민족성, 평소 훈련이 모인 결과일 것이다. 한국군은 남침 기습을 당하고선 무너지지 않았지만 1951년 5월 동부전선의 중공군 대공세 때는 3군단 2개 사단이 와해된 적이 있다.
5월17일 새벽에 두 사단의 유일한 退路(퇴로)가 지나는 오마치 고개가 중공군에 우회 점령되었다. 3군단 소속 2개 사단 약 2만 병력과 수백 대의 차량이 전방 방어선을 포기, 현리 부근으로 집결했다. 밀려든 병력과 차량으로 폭 5m도 안 되는 좁은 길이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9사단 28연대 副연대장이던 염정태 중령은 이렇게 말했다.
“유일한 후퇴로가 막혀버려 我軍(아군)이 중공군의 포위망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현리 부근에 모여 있던 장병들 사이에는 공포감이 확산되었습니다. 밤이 오고 오마치 돌파에 실패하자 순식간에 집단적인 공황 상태가 빚어졌어요. 아직은 중공군이 현리 쪽으로 집중사격을 하고 있지 않았는데도 장병들은 뿔뿔이 방대산으로 기어올라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휘체계가 무너져버린 것은 적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공포감 때문이었습니다.'
‘영천 會戰(회전)의 영웅’ 劉載興(유재흥) 당시 3군단장은 17일 오후 현리로 비행기를 타고 와서 작전명령을 내린 뒤 군단 사령부로 돌아갔다. 포위망 속의 장병들은 이 비행기를 바라보면서 “야, 군단장이 우리를 버리고 도망간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공황 상태에 빠진 2개 사단은 싸워보지도 않고 방대산(해발 1436m)을 타고 후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하면서 흩어지고 지휘체계는 마비되었으며 조직이 와해되어 버렸다. 군대가 群衆(군중)으로 변했다.
지휘체제가 무너지면 사단장이나 이등병이나 개인으로 돌아가 자신의 體力(체력)만 믿고 제 살길을 찾아간다. 보고체제나 통신도 마비된다. 장교들은 붙잡힐 때를 대비해 계급장을 떼버린다. 옥수수를 먹고 있는 사병에게 허기진 장교가 좀 달라고 해도 거절당한다. 군악병은 나팔이 무겁다고 버리고 갔다. 심지어 시계도 무겁게 느껴져 풀어던져 버렸다. 중화기도 버렸다. 높이 1000m가 넘는 산과 계곡, 강을 건너서 남쪽으로 사흘간 달아나는 과정에서 중공군의 매복, 요격, 추적을 받은 양 사단 약 2만 명 중 6000명 이상이 戰死(전사), 餓死(아사), 부상, 실종되었다.
5월18일, 미군은 국군이 현리에 버리고 간 수백 대의 차량과 대포들을 폭격하여 불태워버렸다. 5월23일 유엔군은 반격을 개시, 失地(실지)를 회복했다. 화가 난 밴플리트 미 8군사령관은 국군 3군단을 해체하여 9사단을 미 3사단에, 3사단을 국군 1군단에 배속시켰다.
6사단의 奮戰
6·25 남침 때 춘천을 지키던 제6사단(사단장 金鐘五)은 압도적 戰力을 가진 북한군 2개 사단의 기습을 받고도 사흘간 버티었다. 국군의 退路(퇴로)를 수원에서 끊어 섬멸한다는, 북한군의 전략을 못 쓰게 만들었다. 춘천에서 북한군의 南進(남진)을 3일간 저지한 것이 한국을 살렸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6사단 소속 중대장이었던 李大鎔(이대용) 씨는 1975년 월남이 赤化(적화)될 때 정보부 소속 공사로서 교민들을 탈출시키고 잔류, 5년간 감옥살이를 한 뒤 생환한 분이다. 그는 6사단이 기습을 당하고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有備無患(유비무환)의 원칙에 충실했다. 북한군 동향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연대장의 지휘하에 壕(호)를 파기 시작했다.
둘째, 공세적 방어로 대처했다. 6·25가 나기 전에 38선상에서 인민군과 전투를 해 보았고 자신감이 생겼다. 인민군이 몰려내려 왔어도 겁을 먹지 않았다. 西北(서북) 청년 출신들이 많아 적개심이 대단했다.
셋째, 砲兵(포병)의 화력 효과가 컸다. 인민군은 사람이 없는 곳에도 무작정 포를 쏴대었던 반면, 우리 포병부대는 전선의 가장 가까운 곳에까지 가서 포격을 했다.
넷째, 연대장(林富澤 중령)의 지휘통솔력이 탁월했다. 평소 사병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따뜻하게 보살폈는데 전투가 벌어지자 후방으로 빠져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최일선에 나와 독려했다. 존경하는 연대장이 포탄이 쏟아지는 戰場(전장)에 의연히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병들의 士氣(사기)는 백배 올라갔다.
다섯째, 地形(지형)의 유리함을 최대한 이용했다.'
프랑스 군의 조직붕괴
가장 센 군대는 지휘관이 미국인, 참모는 독일인, 병사는 일본人인 군대라고 한다. 가장 약한 군대는 지휘관이 중국인, 참모는 일본인, 사병은 이탈리아인이란다. 물론 우스개이다.
프랑스는 문화대국일 뿐 아니라 군사강국이었고 군사적 천재 나폴레옹을 배출한 나라이지만 戰史(전사)를 읽어보면 기복이 심하다. 나폴레옹 군대처럼 영웅적으로 싸우는가 하면 英佛(영불) 백년 전쟁(1415년 아진코트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3분의 1밖에 안되는 英軍에 대패, 1만 명을 잃었다), 普佛(보불)전쟁,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다수 병력을 갖고도 무너졌다. 모든 조직붕괴는 지도층이 위기를 만나 공황 상태에 빠질 때 일어난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구멍이 보인다는 속담에 진리가 있다.
나치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한 달 뒤인, 1939년 10월 독일 참모본부의 정보참모부 西部課(서부과)는 프랑스군의 행태를 이렇게 분석했다.
<프랑스 군인들은 감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전쟁의 목표가 분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면 그들은 임무를 수행하더라도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 이 경우 피해를 크게 보면 부대는 내부로부터 흔들리게 된다. 반면, 프랑스군은 설득력 있는 말을 들으면 쉽게 士氣(사기)가 高揚(고양)된다. 국토를 지키는 전쟁에서는 항상 열정적으로 격렬하게 싸운다. 프랑스군의 핵심적 문제점은 너무 조심한다는 것이다. 대담한 작전으로 큰 전과를 거두는 것보다 안전성을 항상 우선시킨다.>
1939년 12월에서 1940년 초에 걸쳐 독일군 정보참모부 西部課는 프랑스-영국 연합군이 독일의 主攻(주공)이 벨기에 북쪽으로 향할 것이라 믿고 主力 75개 사단을 벨기에 쪽 국경지대로 집결시키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이 主力 가운데는 프랑스의 기계화 사단과 자동화 사단의 거의 전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히틀러는 원래 1940년 1월17일에 프랑스를 기습하려고 하였다. 작전 개시 며칠 전 이 작전문서의 일부를 갖고 가던 장교가 탄 비행기가 악천후로 벨기에 지역에 불시착하였다. 장교는 문서의 일부를 불태웠으나 나머지는 벨기에 군에 넘어갔다. 히틀러는 작전계획이 누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공격을 연기했다.
원래 작전계획은 제1차 세계대전 때의 프랑스 침공 작전과 거의 같았다. 슐리펜 계획이라 불리는 이 작전의 핵심은, 서부전선의 우익에 主力을 집중시켜 벨기에를 돌파하고 프랑스의 옆구리를 강타한 다음 거대한 좌회전을 하여 파리를 포위한다는 것이었다. 만슈타인, 구데리안 등 독일의 몇몇 장군들은 처음부터 히틀러에게 슐리펜 계획의 반복 사용에 반대했다. 히틀러는 이런 반론을 무시했다가 공격이 연기된 상황에서 작전계획을 再考(재고)하게 되었다. 主攻의 방향을 바꾸고 주력군을 전차부대로 변경했다.
창조적 도박이 무너뜨린 무사안일 군대
1940년 5월10일 히틀러는 변경된 계획에 따라 공격을 개시했다. B집단군이 네덜란드, 벨기에로 쳐들어가자 프랑스 영국 연합군은 기다렸다는듯이 主力軍(주력군)을 벨기에로 北上(북상)시켰다. 독일군은 B집단군이 主攻인 것처럼 위장했다. 그 사이 10개 기갑사단을 핵심으로 한 진짜 主力인 A집단군이 벨기에 남쪽의 아르덴느 숲 지대를 지나 프랑스 국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현지시찰도 제대로 하지 않고서 戰車(전차)가 아르덴느 숲지대를 통과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으나 독일군은 쉽게 통과했다. 길가의 나무를 베어 길에 걸쳐 놓기만 해도 기갑부대의 통과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이다.
프랑스군의 정찰기가 대부대의 이동을 탐지하고 상부에 보고했으나 무시당하고 말았다. 그 방향으로 대부대가 기동할 리가 없다는 선입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프랑스군 지휘부였다.
구데리안 장군이 지휘한 독일 기갑군단 선봉은 5월13일과 14일 뮤즈江을 渡河(도하)하여 프랑스 세단으로 건너왔다. 취약한 프랑스 방어군의 저항은 분쇄되었다. 프랑스군 지휘부는 이 지역으로 主攻이 들어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허약한 부대만 골라서 배치했던 것이다.
프랑스의 레이노 수상은 1870년 普佛전쟁의 패전에 이어 두 번째로 세단이 돌파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경악했다. 그는 5월15일 처칠 영국 수상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는 졌습니다'라고 울먹였다. 레이노 수상은 격전 중인 데도 최고사령관인 가믈렝을 웨이강 장군으로 교체했다. 웨이강은 中東(중동)에서 불려와 실전에 임하는 데 이틀을 까먹었다. 그 사이 프랑스군은 돌진하는 독일 기갑군단에 대한 전략을 수립도, 집행도 못하여 반격 타이밍을 놓쳤다.
독일 기갑군단은 후속 부대가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渡河와 진격을 계속했다. 기갑부대는 보병부대의 지원이 없으면 敵陣(적진)에서 고립될 수도 있지만 롬멜, 구데리안처럼 상상력이 뛰어난 장군들의 임기응변에 의해 기갑군단의 진격은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1주간 계속되었다.
독일 기갑군단은 뮤즈강 도하 1주일 만에 도버해협에 도착함으로써 英佛(영불) 연합군의 주력을 북쪽으로 포위하고 얼마 되지 않는 프랑스 예비병력을 남쪽의 파리 방향으로 고립시키는 데 성공한다. 대혼란에 빠진 프랑스의 200만 大軍(대군)은 불과 6週(주) 만에 궤멸된다.
아르덴느 돌파전이라고 불리는 이 작전은 한니발의 칸나에 전투와 함께 세계전사상 가장 뛰어난 우회 기습전으로 꼽힌다. 독일군의 성공에는 프랑스군 지휘부의 무사안일주의를 간파한 독일의 정보부서, 안전보다는 모험과 속도를 중시한 롬멜, 구데리안 등 창의적인 장군들의 역할이 있었다.
프랑스군 지휘부는 당시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수세적이고 관료적이며 책임회피적으로 대처하다가 찬스를 놓치고 기습을 허용하였던 것이다. 독일의 전격전 思考(사고)와 프랑스군의 진지전 思考의 대결에서 이긴 쪽은 새 戰法(전법)으로 모험을 감행한 독일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할 수 없다'
기습을 당하거나 사고를 당하였을 때 조직붕괴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지휘체제가 살아 있어야 한다. 상관의 명령이 먹혀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전 때 가장 잘 싸운 지휘관으로 평가 받는 李秉衡 장군(2군 사령관 역임)은 生前(생전) 인터뷰에서 이런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저는 전투를 통해 적나라한 인간본성을 관찰하면서 그동안 알려진 풍문과 달리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이 용감하게 싸운다는 사실을 인상깊게 체험했습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은 염치가 없고 자기 가족만 생각합니다. 그들은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까’ 하는 염려 때문에 살려고 발버둥칩니다.'
“부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는 것이 전투에서 이기는 최상의 비결이더군요. 이런 사실을 부하들이 이해하면 전투에 임하는 자세가 활기차고, 용맹해지며, 자신들의 생명을 바쳐 지휘관을 보호하려는 행동을 하더군요.
행군 도중에 도로에 나무가 쓰러져 있을 때 부비트랩이 설치되었는지 조사하기 위해 제가 앞으로 나가려면 병사들이 먼저 뛰어가 처리합니다. 지휘관과 병사들이 혼연일체가 되어야만 병사들이 흔쾌히 죽음의 언덕으로 돌진해 가는 용기가 생기는 겁니다.”
“인간은 위기에 닥쳤을 때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표출됩니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군사적 판단을 해야 할 때 軍 경험이 없는 국군통수권자나 정치인들이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軍 경험이 없는 인사들이 우리 사회 지도부를 구성할 때 국가안보에 심각한 부담을 안게 됩니다.”
愛國이란 이웃을 사랑하는 정신
“愛國이란 국가의 주체인 국민, 즉 이웃을 사랑하는 정신입니다. 선진국들은 수많은 전쟁을 통해 국가관과 전쟁관을 길러왔습니다. 전투에서 부상한 戰友를 살리기 위해 업고, 메고 死地(사지)를 탈출하면서 평상시에는 느낄 수 없는 진한 우정과 우애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는, 武士통치의 역사발전단계를 거쳐온 선진국들과 경쟁하려면 국민정신교육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계기로 국민을 산업 노동자와 군인으로 양성하기 위해 그들의 의식수준을 騎士道(기사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교육에 전념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어요. 明治維新(명치유신) 지도부는 사무라이 제도를 폐지하고 선진국의 근대국가제도를 모방하여 국민정신교육을 강화했습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사범학교를 세워 사무라이를 교사로 양성해 평민을 사무라이 정신으로 끌어올리는 교육을 시켰습니다. 日帝시대 교사들이 칼을 차고 교단에 선 이유는 자신이 사무라이 출신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죠.”
“전쟁기념관을 건립할 때의 逸話(일화)입니다. 6·25의 재조명을 위해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참전국 학자들이 모여 심포지엄을 연 적이 있습니다. 전쟁문학을 전공한 미국의 윌리엄스 교수가 날카로운 지적을 하더군요. 미국의 전쟁문학은 영웅을 설정하여 그의 활약과 교훈을 전해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전쟁문학을 분석해보니 내용이 천편일률적이라는 데 놀랐다고 하더군요. 전쟁에서 주인공이 얼마나 고생했고, 고통을 받았으며 비참했는가를 나열하는 수준이었다는 겁니다. 영웅을 만들지 못하고, 전쟁을 개인적인 고통으로 해석, 이를 혐오하는 이유는 국가 지도부가 평민을 양반화하는 국가관 교육을 게을리 했기 때문입니다.”
철저히 비겁하거나 철저히 용감하거나
기습 남침을 당하고도 춘천을 사흘간 지켜내 반격의 시간을 벌게 했던 6사단의 19연대는 북한군의 탱크를 육탄으로 저지하기 위하여 특공대까지 모집했다. 지원자가 30여 명이나 되었다. 獨子(독자), 기혼자, 老부모를 모셔야 하는 사람을 빼니 11명이었다. 선임자는 趙達珍(조달진) 일병. 그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느니 장렬히 싸우다 죽으면 그래도 祖國(조국)을 위해 뭔가 했다는 보람은 안고 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지원했다. 해방되기 전까지 日本(일본)에서 자라 나라없는 설움을 톡톡히 겪은 것도 한 이유였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연대장이 특공대원들에게 화랑 담배 한 개피와 위스키 한 잔을 주었다. 遺骨(유골)을 대신하기 위해 손톱과 발톱, 머리칼을 잘라 하얀 종이에 싼 다음 이름을 새겨 연대에 남겼다. 트럭에 올라 말고개로 향하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얘기를 꺼내는 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술기운이 오르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랐다. '이게 마지막인가' 하는 생각에 자꾸 고개는 하늘로 올라갔다. 슬펐다. 하지만 '갈 길은 이 길뿐'이라고 다짐하니 후회는 되지 않았다.'
이 특공대는 북한군 戰車(전차)에 올라가 수류탄을 안으로 집어넣는 식으로 공격, 여러 대를 파괴하였다.
'말고개에서 육탄 돌격대를 한 이후로는 계속 특공대로 남아 다이나마이트를 몸에 걸치고 다녔다.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갈수록 힘이 들어 한번은 전투 중에 四肢(사지)를 허공에 대고 뻗었다. 총알에 맞아 후송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총알은 비켜가기만 했다. 옆에 있던 분대장은 고개를 들자마자 그만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싸우는 게 내 운명이구나' 싶었다.'
이대용 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수년간 많은 전투를 해보니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의 유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철저히 비겁해서 절대로 先鋒(선봉)에 나서지 않고 후방에만 남아 있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목숨을 내놓고 敵陣(적진)으로 뛰어드는 사람이었다.'
敗戰을 부른 '엠스 전보 사건'
국가단위에서 가장 큰 '조직붕괴'는 국군통수권자이기도 한 최고 지도자가 외교적, 전략적 誤判(오판)을 할 때 일어난다. 과대망상증이나 인기주의에 휩쓸리면 최단기간에 국가를 전쟁이나 亡國(망국)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1870년 초, 독일의 프러시아 王家(왕가,호헨쫄렌)에 속한 레오폴드 王子(왕자)는 혁명으로 공석이 된 스페인 왕위의 계승자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제국은 舊敎(구교)국가인 스페인과 新敎(신교)국가인 프러시아의 연대를 걱정하여 레오폴드의 王位(왕위) 계승에 반대하였다. 필요할 경우 전쟁도 불사한다는 암시까지 주었다. 7월 레오폴드는 왕위 계승 의지를 포기하였다. 이는 비스마르크가 이끌던 프러시아 정부의 외교적 패배로 비쳐졌다.
프랑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過慾(과욕)을 부린다. 프러시아 왕가의 굴복을 요구한 것이다.
프랑스 외무장관(Duc de Gramont)은, 駐(주)프러시아 프랑스 대사(빈센트 베네데티)에게, 프러시아 왕으로부터 '다시는 우리 집안에서 스페인 왕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라는 훈령을 보냈다. 7월13일, 프러시아의 빌헤름 1세는 휴양 중이던 엠스에서 산보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 대사가 접근하여 본국의 메시지를 구두로 전했다. 빌헤름 1세는 정중하게 대사의 제안을 거절했고, 두 사람은 다소 냉랭하게 헤어졌다.
왕의 비서가 두 사람의 대화를 적어 베를린의 비스마르크 수반에게 알렸다. 이는 '엠스 전보'로 유명해진다. 비서가 작성한 보고문은 이러했다.
<국왕 폐하께서 이렇게 써 주셨습니다. '베네데티 백작이 산책로에서 짐을 가로막더니 성가시게 하는 태도로, '짐은 호엔쫄렌 家門(가문) 왕자의 (스페인 왕위) 계승에 관해 다시는 동의하지 않을 것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본국에 전보로 보내도록 윤허해 달라고 요구했음. 그런 식의 약속은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만큼, 이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였음. 물론 짐은 그에게 '짐은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고, 짐보다 당신이 파리나 마드리드를 통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우리 정부가 그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음은 잘 알 것'이라고 말했음.
(장관 중 한 명의 조언을 받으신) 국왕 폐하는 상기 요구사항에 대해 더 이상 베네데티 백작을 만나시지 않겠다 하시고, 이 문제에 대해 백작이 이미 파리로부터 전달받은 것과 같은 내용을 폐하께서 (레오폴드로부터) 확인받으셨으니 대사에게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부관(adjutant)을 통해 전달하도록 명하셨음. 폐하는 각하(비스마르크)께서 이번 베네데티 백작의 새로운 요구사항과 이를 거절한 사정을 우리 대사들과 언론에 알리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음.>
선동된 여론을 따라가다가
비스마르크는 이 電文(전문)을 짜깁기 하여 언론에 공개했다.
<스페인 왕국 정부가 프랑스 제국 정부에 호헨쫄렌의 왕자가 (왕위 계승을) 포기하였다는 통보를 했다는 뉴스가 나온 후, 프랑스 대사는 (빌헤름 1세) 폐하께서, 앞으로 영원히, 호헨쫄렌 家門 사람이 스페인 왕의 후보가 되려고 한다면 이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전보를 파리로 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폐하는 이에 대사를 재차 접견하는 것을 거부하고, 副官을 통하여 더 할 말이 없다는 뜻을 대사에게 전했다.>
프랑스 통신사 아바(Havas)는 비스마르크의 발표문을 번역하면서 중요한 왜곡을 했다. 통신은 대사의 다소 무례한 요구를 '질문'이라고 오역했다. 부관(adjutant)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쓰는 바람에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 식으로 해석했다. 프랑스에서 adjutant는 하사관이지만 독일에선 고급 장교이다. 통신사의 왜곡이 프랑스의 많은 신문에 실렸다.
프랑스 사람들은 빌헤름1세가 프랑스 대사와 조국을 모욕했다고 흥분하게 되었다. 이 보도가 나온 날은 하필 프랑스 혁명 기념일인 7월14일이었다. 감정적인 프랑스인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프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라'고 요구하였다. 이런 反프러시아 정서는 언론을 통하여 베를린으로 전달되어 이번엔 프러시아 사람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이것은 비스마르크가 노린 바였다.
그는 독일통일을 완수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프랑스와 결전을 벌여야 한다고 판단,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대중영합적인 나폴레옹 3세, 언론의 왜곡 선동, 이성을 잃은 군중의 흥분이 내심 전쟁을 바라던 비스마르크에 걸려 든 것이다. 프랑스가 먼저 전쟁을 걸어오니 프러시아로서는 피해자 입장에서 외교적 대응을 하기가 쉬웠다.
외교를 內治에 이용한 인기영합주의자 나폴레옹 3세는 군사적 승리를 확신하였을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도 프랑스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오판하였다. 나폴레옹 3세는 身病(신병)으로 막상 전쟁 개시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워낙 여론이 들끓으니 할 수 없이 7월19일 프러시아에 선전 포고하였다. 당시 프랑스 인구는 4000만 명을 육박했지만 프러시아는 2400만 정도였다. 다수 유럽 나라들도 프랑스의 승리를 점쳤다.
1870년 9월1일 세단에서 나폴레옹 3세와 휘하 군대 10만 명이 프러시아의 참모총장 大몰트케 장군이 이끄는 20만 대군에 포위당하였다가 항복했다. 普佛(보불)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에서 승리한 프러시아는 독일의 수십 개 연방국가를 통합하여 통일독일제국을 건설한다.
세단에서 프랑스군 사령관은 항복 교섭을 하면서 비스마르크에게 이렇게 간청했다고 한다.
'프랑스軍이 명예롭게 항복하도록 해주시오. 우리는 무기를 갖고 편제를 갖추어 퇴각하고, 다시는 프러시아 군대와 싸우지 않겠소. 이렇게 해야만 장차 우리 두 나라 사이에는 원한과 복수전이 없을 것이오.'
비스마르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아는가. 프랑스는 지난 2세기 동안 우리 독일을 서른 번이나 침략하였다는 것을. 당장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비스마르크는 독일군이 파리를 포위하고 있던 기간에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프러시아 王 빌헤름1세를 독일帝國의 황제로 추대하는 대관식을 거행했다. 독일민족으로서는 통쾌한 복수의 상징적 행사였지만 프랑스로서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독일이, 이듬해 프랑크푸르트 조약을 통해서 알자스와 동부 로렌 지방을 프랑스로부터 빼앗아 간 것은 크나큰 후유증을 남겼다. 알자스는 주민이 원래 독일 사람들이었지만 로렌은 프랑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이다.
자존심이 상한 프랑스는 그 뒤 사사건건 독일과 敵對(적대) 관계에 설 수밖에 없었다. 독일과 대항하려는 유럽의 모든 국가는 일단 프랑스와 손잡으려고 했다. 프랑스-독일의 리턴 매치는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불씨는 알자스 합병에서 이미 예비된 셈이다.
핵개발 카드를 공식 포기한 대통령
지난 7월초의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 訪韓(방한)은 국내정치에서 보여준 朴槿惠 식 포퓰리즘이 외교에 적용될 때 親中反日(친중반일) 외교노선을 넘어 親中反美로 흐를 위험성을 노출시켰다. 朴槿惠(박근혜) 한국 대통령과 習近平(시진핑) 중국 주석의 공동성명엔 한국의 安保(안보)와 國益(국익)에 심각한 피해를 끼칠 수도 있는 대목이 있었다.
<양측은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6자회담 참가국들의 공동의 이익에 부합되며, 관련 당사국들이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이러한 중대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
가장 중요한 문장에 北核(북핵)이란 말이 없다. 核을 개발하지 않고 있는 한국을 끌고 들어가 <양측은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이라고 했다. 북한뿐 아니라 한국의 핵개발도 반대한다는 뜻이다. 한국은 국제사회가 北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지 못하고 미국의 핵우산 보장 약속도 믿을 수 없게 되면 국가생존 차원에서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자위적 핵무장을 선언할 권리가 있다.
核미사일을 實戰(실전)배치한 敵(적)의 공격으로 국가가 망하지 않고 국민이 죽지 않으려면 마지막 수단으로 자위적 핵무장을 해야 하는데, 이는 일종의 자연법적 권리라고 할 것이다.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로 하여금 '우리가 北의 핵개발을 막지 못하면 한국이 핵개발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해야 우리의 외교에 힘이 붙는다.
미국 정부도 중국을 압박할 때 '중국이 북핵 해결에 협조하지 않으면 일본과 한국이 핵무장을 할지 모른다'고 말해 왔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통령이 중국 주석에게 우리의 가장 중요한 北核 해결 카드 하나를 바친 꼴이 되었다. 국제관계에서, 특히 공산국가에 대하여 무엇을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은 가장 下手(하수)의 외교이다.
李承晩(이승만) 대통령은 닉슨 미국 부통령에게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나라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미국에도 유리하다'고 충고한 적이 있다. 닉슨은 그 뒤 공산권을 상대하면서 늘 이 충고를 염두에 두었다고 회고록에 썼다. 전쟁범죄의 前科(전과)가 있는 집단이 이미 핵미사일을 實戰배치하였거나 實戰배치가 임박한 상황에서 그 피해 당사자가 가장 유효한 (아마도 유일한) 대응책인 자위적 핵개발 포기를 선언한 것은 국가 생존권의 포기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의 후견자와 손 잡고 '우리는 대한민국의 핵개발을 확고히 반대한다'고 선언한 꼴이다. 강도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왜 피해자(한국)가 '앞으로 우리는 경비원을 두지 않겠다'고 약속하는가?
미국 전술 핵무기 재배치 카드도 포기
'한반도에서의 핵개발 반대'에 이어 '한반도 비핵화 실현'이란 말이 또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마바 대통령과 한 공동선언에선 '북한의 비핵화'라고 하더니 중국과 한 선언에선 '한반도 비핵화'라고 한다. 외교부에 물으면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비핵화'를 의미한다는 해명을 한다. 한국인의 國語(국어)실력을 조롱하는 말이다. 안보외교상 가장 중요한 단어를 상대에 따라 지조 없이 쓰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란 말을 통해서 朴槿惠 대통령은 北核 대응의 또 하나 유력한 카드를 버렸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實戰배치한 상황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대응책은 자위적 핵개발, 미국 전술핵 재배치, MD(미사일 방어망) 건설 등이다. 1990년대 초 미국은 휴전 이후 한국에 배치하였던 전술핵무기를 철수시켰다. 한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가 핵개발을 하지 못한다면 철수한 미군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재배치한 전술핵에 대한 공동사용권도 가져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를 거부하면 핵개발을 하겠다고 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한다.
敵이 핵미사일을 實戰배치한 뒤, 발사단추를 누르면 10분 안에 핵폭탄이 수도권 상공에서 터지는데, 우리는 대응 핵도, 미사일방어망도 없는 무장해제 상태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는 미국의 핵우산 제공 약속을 믿게 하는 유일한 대응책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朴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중국에 약속, 이 카드를 버렸다. '한반도 비핵화'에는 한국에 미국의 핵무기를 재배치하지 않는다는 뜻이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낸 용어이고, 중국 또한 그런 뜻으로 쓰는 데 대한민국 대통령이 동의한 것이다.
6자 회담이란 사기극
중국이 주도한 6자회담은 北核을 저지하는 데 실패하고 北이 핵무장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게 해주는 데는 성공했다. 北核 저지를 위한 강제수단을 배제한 회담이었기 때문이다. 벌써 11년이 흘렀다. 이번 韓中 정상(頂上) 공동성명은 또 다시 <관련 당사국들이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이러한 중대한 과제를 해결해야> 운운했다. <양측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하여 관련 당사국들이 6자회담 프로세스를 꾸준히 추진하며>라고 합의하기도 했다, 北이 핵미사일을 實戰배치하는 단계에서도 아직 한국 대통령이 이 絶體絶命(절체절명)의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만 해결하겠다고, 北의 후견세력에 약속했다. 미국과 일본조차도 北核 제거에 대한 한국의 국가적 의지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피해 당사국이 이렇게 소극적인데 北의 핵무기로부터 크게 위협을 느끼지 않는 나라들이 대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겠는가?
한국으로 시진핑을 초대하여 이뤄진 회담에서 왜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저자세로 일관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언론은 시진핑이 北核 반대를 확고히 했다고 왜곡, 미화한다. 北核 北자도 안나오는 공동성명을 親中的(친중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한국인의 오랜 對中(대중)사대주의 根性(근성)이 좌익득세와 맞물려 되살아나면서 자유와 번영의 생명줄인 韓美동맹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흐름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주는 공동성명이었다.
중국은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국가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래와 같은 문장을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는가?
<중국측은 세계에 하나의 중국만이 있으며, 대만은 중국 영토의 불가분의 일부분임을 재천명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측은 충분한 이해와 존중을 표시하고(후략)>
日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반대하면 韓美동맹 균열
미국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한국 정부도 공식적으로는 한번도 반대한 적이 없다. 그런데 朴 대통령은 시진핑의 페이스에 말렸는지 기존의 정부 방침과 다른 발언을 했다. 한·중 頂上(정상,박근혜-시진핑)은 7월4일 서울 성북동 가구박물관에서 오찬을 함께 하면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헌법 해석 변경에 대해 여러 나라가 우려하고 있고,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이 자위권 확대에 반대하는 상황에 주목하면서 일본 정부가 자국민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정치를 지양하고 평화헌법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방위안보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는 것이다.
고위 외교관 출신의 한 인사는 이런 평을 했다.
'시진핑은 립서비스만 하는데 한국 언론이 너무 미화한다. 중국은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의가 없다.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는 한국에 得(득)이 된다. 우리의 주권을 침범할 가능성도 없다. 우리가 싫으면 얼마든지 한국 영토 내에서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거부할 수 있다. 즉, 유리한 경우만 골라서 취할 수 있다. 한국 대통령이 중국 주석과 함께 집단자위권을 비판했다니! 藥(약)과 毒(독)을 구분 못하고 있다. 정말 이 나라는 큰 일이 났다.'
일본이 동북아에서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거의가 동맹국인 미국이 중국이나 북한의 공격을 받을 때이다. 일본엔 한국에 있는 유엔군 사령부의 후방 기지가 있고, 한국이 북한의 공격을 받을 때 일본에 있는 미군 기지로부터 함정과 전투기가 발진, 한반도에서 작전을 펴야 한다. 이때 일본이 미군을 도우려면(즉, 한국을 도우려면) 집단자위권 행사가 필요하다. 그런 권한이 없다면 미군뿐 아니라 한국군의 對北(대북) 작전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 우리는 안보상 피해를 본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일본 집단자위권 행사 비판은, 敵(북한정권)의 후견세력인 중국 편에 서서 동맹국 미국을 간접 비판하는 모양새였다. 미국의 눈에는, 중국의 심부름꾼 역할에 충직한 것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있다. 韓美동맹이 약해지면, 미사일방어망도 안 만들고, 핵무장도 하지 않는 한국을 중국이 계속 존중해줄까? 朴 대통령은 지금 國力(국력) 이상의 외교를 하고 있는 것 같다. 殘高(잔고) 이상의 어음을 발행하면 부도가 나듯이 國力을 넘어선 강경책을 펴면 외교적 不渡(부도)가 나는 수가 있다.
朴 대통령은 납치자 문제를 둘러싼 日北(일북) 접근도 비판하였는데, 韓日관계가 좋았더라면 일본의 그런 일방적 對北(대북)접근은 한국의 양해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反日(반일)외교의 무력함을 드러낸 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UN헌장도 세계 모든 국가들은 집단적 자위권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한국이 UN에 가입할 때 헌장을 준수할 것을 약속했으므로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논리적으로 반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근혜가 나폴레옹 3세의 외교적 파퓰리즘을 닮는다면?
헨리 키신저는 《외교》라는 책에서 普佛전쟁으로 몰락한 나폴레옹 3세에 대하여 <여론에 민감한 그는 그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외교정책을 오락가락 하게 만들었다>고 혹평했다. 반면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을 목표로 놓고 여론을 이용, 냉정한 외교를 했다. 엠스 전보 사건에서 보듯이 나폴레옹 3세는 여론을 따라갔지만 비스마르크는 여론을 만들었다. 善惡 평가는 달리 할 수 있으나 김정은, 시진핑, 아베가 국가이익을 중심으로 한 외교와 전략을 펴고 있다는 데는 異見이 없을 것이다. 朴槿惠 대통령은? 그가 나폴레옹 3세처럼 國益보다 자신의 인기나 여론(또는 감정)을 더 重視(중시)한다면 시진핑, 김정은, 아베한테 이용당하고 한국은 외교적 부도 사태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사고는 풍랑이 없는 평온한 바다에서 일어났다. 조각배가 아니라 큰 배였다. 뒤집어지는 데 불과 100분 정도 걸렸다. 船社(선사)의 돈벌이 위주의 안전 무시 경영, 감독기관의 결탁, 增築(증축)에 의한 무게중심의 上向, 화물 過積(과적), 固縛(고박) 부실, 평형수 줄이기, 이에 따른 복원력의 약화, 자격 없는 선장과 선원들, 대피 훈련 부족 등의 요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축적되어가다가 10도 정도의 變針(변침)으로 이들 모든 요인들이 결합되어 폭발한 결과였다.
대한민국號에서도 이런 顚覆(전복) 요인들이 쌓여가고 있음은 확실하다. 국가지도부의 무책임과 무능력, 종북반역 세력의 준동, 선동언론의 발호, 국회의 反국가적 행태, 좌편향 국사 교과서, 공무원 집단의 기회주의, 대통령의 인기주의 외교 등이 어떤 외부 요인에 의하여 직렬로 연결되어 폭발한다면 세월호처럼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때 새누리당 정권이 이준석 선장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高地戰에서 勝敗(승패)는 8부 능선에서 지휘관이 일어서면서 '돌격!' 명령을 내릴 때 몇 사람의 부하가 행동을 같이 하느냐에 의하여 결정되었다고 한다. 평소 부하들을 아끼던 지휘관일수록 성공률이 높았다. 정권 지지층이 대통령에 대하여 배신감을 품기 시작한 대한민국에선 그런 결단의 순간이 닥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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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월호 침몰의 특징: 큰 배가, 평온한 바다에서 가벼운 외부 충격(10도 變針)을 받자 잠복했던 여러 요인들이 直列(직렬)로 결합되어 90분 만에 전복되었다. 선장과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도망, 위기에 빠진 승객들을 구해줄 지휘체제가 붕괴된 상태에서 海警(해경) 구조대가 惡戰苦鬪(악전고투) 끝에 172명을 구했으나 300여 명이 사망·실종되었다. 해경에 대한 언론의 선동적 보도와 이에 굴복한 대통령의 ‘실패’ 自認(자인)으로 제2의 해군은 해체 위기를 맞게 되었다.
2. 침몰 원인: 화물 過積(과적)과 固縛(고박) 부실, 增築(증축)에 의한 무게 중심 上向 (상향)이동, 평형수 줄임, 急變針(급변침) 등의 결합.
3. 제도적, 인간적 요인: 1등 항해사, 선장, 운항관리자의 직무유기 및 윤리 부족, 해운조합에 대한 견제와 감시 부족, 돈벌이를 위한 안전의 희생 풍조, 열악한 경영 구조. 위험한 항해를 방치한 정부와 국회, 눈감아버린 언론의 감시 기능 마비 등.
4. 대한민국의 잠재적 침몰 요인: 계급투쟁 세력의 정치권력 장악, 이들이 주도하는 거대한 사회적 선동구조, 국가 지도부의 이념적 무능, 국민들의 분열과 교양 저하, 北의 核(핵)미사일 위협, 자주국방을 포기하고 웰빙에 전념하는 분위기,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 등이 대한민국호의 구조적 복원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5. 이런 잠재적 침몰 요인을 한 덩어리로 결합시킬 급변침과 같은 충격: 종북 좌익 세력의 집권, 北의 핵미사일 위협이나 사용, 테러나 사고, 광우병 난동 때와 같은 거짓선동, 주한미군 철수나 보안법 폐지 등.
6. 대한민국號(호) 복원력의 향상 방안: 核미사일을 맞지 않는 것, 종북정권의 등장을 저지하는 것이 당면 목표이다. 위기 때 선장인 대통령과 공무원 집단이 세월호 선장처럼 도망가거나 敵前(적전) 무장해제를 하지 않도록 붙들어야 한다. 공무원 집단이 체제 수호의 主力軍(주력군)임을 각성시키고 그 임무를 다하도록 견제하고 격려하는 데 애국 운동의 주안점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애국운동은, 종북좌익 세력과 직접 싸우지 말고 정부의 등을 밀어 그들이 가진 거대한 자원과 권한으로 反헌법 세력을 제거하도록 채찍질하는 것이다. 義兵(의병)이 官軍(관군) 역할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좌익 선동에 항복,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금지어로 만들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라고 쓰게 하며, 주체사상을 北의 선전자료로 가르치도록 한 교육부 장관을 파면하고 교육부를 감사(또는 수사)하도록 대통령을 압박해야 한다. 이념무장한 우파 정당 창당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보수 운동 방향의 주체적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우선은 언론의 선동성을 비판하는 데 주력할 때이다. 세월호 보도에선 한겨레와 조중동의 차별이 없어졌다. 대한민국 수호 세력이 기댈 언덕은 없다. 이런 언론은 대한민국과 安保(안보)의 짐이고 危害(위해)요인이다. 애국운동의 이념 방향 전략을 재조직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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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력 문제가 아니라 회복의 문제
예전에 "은마는 오지 않는다"라는 영화를 본일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월남전 참전용사이신데 회사에서 여직원이 타이프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월남에서 기총소사소리가 오버랩되면서 그 트라우마에 견디지 못하고 옥상으로 올라가서 담배를 피워뭅니다. 전쟁터에서의 오랜 초긴장상태가 계속된 결과 극도의 신경강박증에 걸린분입니다. 폭탄에 터져버린 전우의 잘린 팔다리와 내장을 바로옆에서 피비린내와 맡고 직접 본다면 사랑하는 전우들이 바로 옆에서 처참하게 죽는 장면을 수도없이 목격한다면 결코 쉴게 정상적으로 사회에 적응을 할수가 무의식속의 충격으로 깊은 잠을 잘수도 없을 것입니다
. 영화 리셀웨폰에서도 중동전에 참전한 seal 부대출신 형사가 형사생활에 부적응하는 모습을 봄니다. 그러나 흑인동료형사의 끝없는 우정과 관심이 점점 그를 살립니다. 윌리엄 와일러감독이 매가폰을 잡은 우리생애 최고의 해란 영화에서도 2차대전 참전군인들이 두 팔이 잘리고 알콜중독자가 되고 잘때마다 헛소리를 하는 트라우마를 갖고 고향에 돌아와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임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따뜻한사랑으로 재기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였습니다. 대통령님은 어려서부터 청와대란 곳에서 자유롭게 놀지도 못하고 친구들과 사귀지도 못하고 대통령의 자녀로서 절제되고 마음껏 웃지도 못하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남들이 다해보는 만화방도 가지 못했을 것이며 떡복이 오뎅 불량식품도 쉽게 먹어보지도 못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이성교재도 해보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우리에 갇혀사는 것이 어떤것인지 저는 잘 모르지만 쉽지만을 안으셨을 것입니다. 또한 부모님의 처참한 죽음을 격고 18년간 절대적으로 고립된 공간에서 살았던 박근혜님입니다. 젊은 나이에 퍼스트레이디의 무거운 짐을 지셨던 분입니다. 촛불집회때는 마치 아버지 어머니를 잃었던 때와같이 온 국민들이 자신을 버렸다고 느낄만큼, 극도의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발을 하고 구두방에서 구두를 딱으면서 구두딱는 분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저의 유일한 낙입니다.아마 박근혜님도 올림머리하는 시간이 그런 시간이 아니었을까 제경우를 미루어 짐작해 봄니다. 그런 외로운 분에게 힘든시기에 함께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 사람과는 쉽게 깊은 의존적 관계로 빠져들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쓴 성경인 로마서에도 형제를 비판, 판단, 정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누군가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오직 신만이 하실수 있는 영역일 것입니다. 저도 박근혜 대통령이 답답했었는데 그분의 심리에 대한 글들을 다시보고 생각해보니 깊은 연민과 긍휼한 마음이 듭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서 가장 외롭고 힘드신 분이 그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통령으로서 정책수행능력이나 국가수반으로서의 역할의 공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내려지겠지만 인간 박근혜님을 바라보노라면 여성으로서 서구에서도 되기 힘든 대통령이 되신 참 대단하신 분, 그리고 참 외로우신 분이라는 것, 그리고 그 주위에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들이 그 누구보다 필요하신 분, 정말 누구보다 많은 격려와 위로와 사랑의 눈빛이 필요한 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한복을 입으신 사진을 보니까 너무 아름다우신 분, 그리고 수줍음이 많으신 분,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육여사님의 자애로우신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한것같습니다. 다들 좋은 하루되시길 기원드립니다.
박그네 그여자는 반듯이 감옥에 쳐넣어 인생 공부를 다시 시작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자유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만들어 놓은게 그여자 아닙니까.
반듯이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바보는 누가 바보라고 한다고 바보가 되는것은 아닙니다
행동이 바보같으면 바보라는 평을 듣게 되는거죠
여대야소일땐 야권에 발목잡혀 아무것도 못하는걸 넘어
야권편만 들어 괴이한 인물을 주변에 체우더나
여소야대가 되자 바로 탄핵 당하는 멍청이 바보의 표준같은 ....
문창극은 여론의 반전기미가 보이는데 이틀만더 박통이 버텻으면 아쉬움이 있다.
박통의 핵의스탠스는 투자를 하는 제입장에서는 울나라 대중국 해외무역 의존도
무시 안되기에 대선공약 2의한강기적이루기,아버지 업적계승 강박증이 중국에 큰자극 피함. 지금 사드하나 가지고도 기업,경제보복
미국은 이미 안보의집토키로 반미는 안하면서 미국의 아슬아슬한 눈치도보면서 경제안보 둘다가져갈려는 정책인 느킴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자의핵무장으로 막힌속을 확뚫어 좀시원하게 해줬으면 바램이었다. 개성공단을 과감하게 정리한것처럼, 왜 박통인들 아버지의 피를받은 안보관으로 또 그안보관으로 대통된것 알면서도
강하게 못나간것은 경제전쟁시대로 미,중국 사이에서의 고육지책이었다고 이해하는 면이 더좋겠다.
중공의 사드 관련 한국 때리기, 북괴의 암살, 미사일, 핵실험, 트럼프의 당선과 탄핵이 모종의 연결된 공산당 위기에 따른 전술 구사 같은데 대한민국은 종북세력, 고정간첩, 일부 우파의 우매함으로 이런 사태가 된 것 같습니다. 금시안적인 소견으로 이렇게 보고 있으나 보다 확실한 논거로 일복요연하게 작성된 자료로 세상에 알렸으면 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편안할때도 위험을 걱정 하고 ,
어리식은 사람은 위험이 다가와도 편 한듯이 생각한다."( 일련 정종 니치렌 대성인의 금언중) . 이곳에서 수없이 경고를 했지만 , 우이 독경 들이다. 명문 명리의 바람에 중독된 사람들이 권력의 끝을 잡고 , 악을 조장 한 결과이다.
본말이 전도된 가치관을 대청소 할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
망하는 곳에 가보면 망할수 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 한다.
평범속에 비범이 있다 .오만한 문창극과 김평우 .........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돗는다. 무지와 오만과 합작품은 멸망 이다.
모두 뿌린대로 거두어 진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문창극 총리후보를 내칠 때 분노하고 절망하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조갑제선생님의 국가지휘체계가 무너지고 지도자가 경멸당하면 망국이나 전쟁을 몰고온다는 경고가 내 가슴에 사무친다. 이런 일들이 축적되다가 최서원 사건때 너무 빨리 대국민 사과를 한 결과, 그리고 야당추천 총리나 4월 하야를 받아들인다고 한 순간에 국가 지휘체계는 무너져버렸다. 이것이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먼저 비박계의 배신과 친박계의 와해 - 언론의 무자비한 맹폭 - 국회 탄핵사대 - 헌재의 파면 선고 등으로 일사천리로 몰아쳤다. 국군통수권자가 국가수호 의지를 포기해버린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엄동설한에 분노한 태극기 국민들의 피눈물나는 투쟁도 대통령의 파면을 막지 못했고 이제 감옥에 갇히게 될 지휘관을 바라보면서 탄식하고 있다.
조대표님! 당시 이 글을 본적이 있었지만 그땐 크게 실감하지 못했으나 이제 다시 보니 불길한? 예언이 실현된 것 같습니다. 어찌한단 말인가! 조국의 앞날을 생각하니 자다가도 일어나 탄식을 합니다. 기적! 하늘에서 오는 기적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무너지는 조국을 일으켜 세워줄 국부 이승만같은 분을 보내주실 것을!
박근혜 정권이 아니라
광신도 들의 집단 으로 보임
그럼으로 그들은 무너질수밖에 없다 .
내안에 잠든 나의 실체를 외면한 댓가 이다.
다시 소생 하길 바란다면 , 각자의 입장에서 정직하길 바란다.
다시 읽어도 마음 깊이 와 닿는 명문이라 생각한다. 한나라가 닥친 위기는 용기있는 지도자가 국민의 신뢰를 받을 때에만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볼 때 국가적 위기가 닥쳐 왔을 때. 소위 이나라 지도자랍시고 대권도전에 나선 사람들을 믿고 함께 극복할 수 있을런지 의심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기우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최근에 최선을 선택한 적이 없다. 최악을 막기위해 차악을 선택한 것뿐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인지 뭔 보수우익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좌익과 구별하기 힘들고 그 쪽까지 끌어 안으려 애쓰다가 광우병으로 당하고 탄핵으로 망가져 버렸다.
참 병신도 가지가지 한다.. 맹박이는 지가 한일정상화 회담에 감방까지 가며 반대한 업을 지고 당하고, 이 여자는 최태민인지 하는 인연을 끊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을 지켜야 하는 보수우익이나 그나마 안보를 걱정하고 애국할려는 입장에서는 복창이 터질 일이고, 그래서 5명의 무고한 목숨이 희생되었다..
좌익들은 정권을 잡고 한 국가의 모든 체계를 지네들 입맛에 바꾸고 탄핵을 당해도 백번 당할 반역질을 했는 데도 눈 하나 깜짝않하고 큰소리 치고 있다..
내 생각엔 젊은 자들도 좌익이나 종북을 좋아할 리는 없지만, 안보에 관해서는 더 이상 들으려고 하지 않고 미국이 국익을 위해서 대한민국을 포기하지 않을거라는 나름대로의 확고한 의식으로 자신들의 일자리와 부의 축적에 몰빵하고 있어 얘네들에게 백날 안보니 핵이니 해보았자 아무 소용없게 되었고, 꼴통소리만 듣게 되었다..
그러므로 젊은 것들에게 구차하게 손 벌리지 마라.. 다 자기 인생아니겠는가? 결혼을 하던 지랄을 하던 지 인생은 지가 추구하는 데로 사는 거지,, 뭐 어떻게 하겠는가?
이제라도 평생 어려운 여건에서 고생하고 말년을 그나마 편하게 지내야 하는 노인분들에게나 더 신경써야 한다.. 복지도 이 분들을 위해 더 써야 한다.. 내가 매주 집회에 나가보면 노인분들이 여전히 대다수이고 바뀌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큰 집회의 장점이다.. 이분들은 주말에 이 시청앞에 모이는 것을 말년의 큰 애국의 의미로 성화시키면 되는 것이고, 그 어느 세대보다 시간과 여유가 있다는 특징이 있다..
다만, 집회를 지속하기 위해 진행방식이나 노인분들을 위해 앉아서 집회할 수 있도록 주최측에서 배려하고 그 분들을 위한 코너도 만들어서 집회참석에 보람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젊은 것들에 너무 눈치보지 말라.. 그들은 산토끼이고 노인분들이 집토끼인데.. 또 우를 범하는 일을 하지 않길 바란다..
망하지 않는게 다행인가요?
35년전쯤 김용식 외무장관이 쓴 외교비사 30년사를 읽어본적이있다.
이박사의 외교를 여러차례 언급하며 과거 자유당시절에 외교는 경무대 직할이였다고 한다.일개 영사를 임명하는데도 일일히 이박사가
면접보고 물어보고 지시했다고한다.옆에서 직접 외교를 수행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데 교섭엔 천재적이였으며 회담스타일도 참 훌륭했다고 쓰고있다.박근혜와 이승만의 비교는 비교 차체가 불가능하다.
이박사의 혜안과 박근혜의 까막눈 하고는 천지차이다.
이제 조갑제기자도 현실적으로 돌아오는것 같아 다행이다.
빨리 대선열차에 이 웹사이트가 큰역할을 하기 바란다.
시간이 거의 없다.문씨집권을 막기위해선 탁핵이슈 묻어두고
안보이슈로 두들겨 패야 승산이있다.때마침 좋은 소재도 생겨나고있다.사드나 북핵 고도화와 개성공단 금강산이슈등 숨돌림 틈주지말고
몰아쳐야한다.아무래도 우리가 초읽기에 밀릴것같아 걱정이다.
말할것도 없이 잘못과 시행착오를 반성하고 고치지않으면 불행한 역사는 반복됩니다.
정치인,특히 대통령의 잘못과 시행착오는 국가적 불행한사태로 결과되는데 당사자는 국민자신 또는 공동체 전체에 파급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잘못됨을 지적하는 기준과 원칙은 조갑제선생님말씀처럼 헌법과 사실, 그리고 공동체이익에 둔 지적이어야 객관성과 타당성이 담보된다 할것입니다.
최근,박근혜씨의 탄핵사건과 별개로 대통령역임기간중 진행시킨 문제점은 열손가락
으로 부족한 정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성과 재발방지를 위한다 는 명분을 앞세워도 상처를 스스로 드러내는것이 적절치않은 시간대임은 분명합니다. 대회전을 앞두고 있는시점에서 반체제세력에 반대하는 모든 애국시민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위로하고 격려해서 대동단결하여
승리한 이후에 논해도 충분하리라 봅니다.
이번 사태를 어느정도 지나며 보았을 때, 조갑제님의 말과는 다르게 대통령에게 배신감을 가진 집토끼보다는 대통령을 이해와 긍정의 눈으로 다시 바라보게 된 집토끼가 더 많을 것같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보다는 사리사욕에 눈 먼 국회 정치꾼들에 대한 배신감이 더 크고,
오히려 그속에서 싸워나가야했던 대통령의 그동안의 숨은 어려움을 비로소 이해하게된 나같은 집토끼도 있으니 말입니다.
문창극 총리 철회, 세월호 사고에서 해경해체...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에서 대다수의 언론매체는 쓰레기 선동의 역할을 부지런히 하였다. 호시탐탐 박근혜 정권 붕괴를 도모하는 무리들은 계속 기회를 엿보고, 사소하게라도 껀수가 생기면 하이에나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 불합리, 야비함, 불성실에 참을 수 없는 환멸을 느꼈다. 그때, 답답했던 것은 박근혜 정권은 왜 쓰레기에 당하기만 하는 것일까, 국회는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난리법석인데 도대체 제왕적 권력이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왜 바로잡는 방향으로 권력을 쓰지 않는 걸까, 의아했고, 박근혜 정권에 실망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너무도 지저분하여 골치만 아픈 정치분야에 대한 관심은 거의 끄게 되었다.
지금 보니, 전라도 이정현을 측근에 두었던 것이 중대한 오류였던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된다. 이정현은 박근혜 대통령 덕분에 정치적으로 클 수 있었고 입지를 다질 수 있었고, 박근혜 최측근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정현은 전라도 출신이지만 박근혜 정권과 나라의 유지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인 것으로 보였다. 박 대통령도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이정현은 문창극/세월호 상황에서 박 대통령에게 어떤 정보를 취합해서 올렸을까? 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하며 어떻게 보좌했을까? 태극기 집회에서, '이정현 대표님 의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현수막까지 본 적이 있다. 나도 이정현은 전라도에 대한 편견을 그나마 희석시킬 수 있는, 굉장히 올곧은 인물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거짓선동과 마녀사냥으로 어려움에 처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정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뒤통수가 굉장히 얼얼하다.
그러나 탄핵의 상황에서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탄핵이전에는 몰랐고 확인할 수도 없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청렴성'을 알게 되면서 태극기 집회에 나가게 되었다. 탄핵추진과정이 쓰레기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청렴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엄동설한에 태극기기 집회에 동참하여 행진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탄핵을 찬성한 국회의원 중에서 단 1명이라도 그만한 청렴성을 지닌 인간이 있을까? 국회의 큰 기둥인 박지원, 김무성.. 인민재판/마녀사냥의 광기가 서린 청문회의 위원이었던 김성태, 박영선, 하태경... 지금 대선판에 뛰어든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남경필, 안희정에게 박근혜 대통령을 능가하는 청렴성이 있을까... 심지어 졸속판결을 한 헌법 재판관들에게 3개월 동안 박근헤 대통령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까지 파헤친 잣대를 들이댔을 때 한 명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나는 단 1명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명이라도 있다면... 똥 묻은 뭐가 먼지 묻은 사람보고 더럽다고 왈왈 짖는다, 는 역겨움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분노와 환멸, 그리고 허전함으로 몸부림을 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저녁에 잠을 자기 전 이 더러운 부조리가 의식에 떠오르고, XX, 하는 욕이 나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