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의 기자 정신: '카탈루니아 讚歌'

스페인 내전 때 좌파를 돕기 위하여 참전, 총상까지 당한 그였지만 소련과 스탈린의 실상을 목격한 뒤 공산주의 비판으로 돈다.


스페인의 카탈루니아 지방 의회가 어제 독립과 함께 카탈루니아 공화국의 출범을 선언하였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상원의 결의에 따라 카탈루니아 의회 해산과 수상 및 대통령 해임을 명령하고, 선거를 다시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카탈루니아가 이 강제 조치에 불복할 경우 중앙정부가 경찰을 투입하거나 최악의 경우는 군대를 동원해야 한다. 內戰의 우려도 있다. 유럽연합, 독일, 프랑스는 카탈루니아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16세기에 4개 왕국이 합쳐져 생긴 나라가 스페인이다. 카탈루니아는 독자적 언어, 문화, 역사를 가진, 스페인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이다. 그런 독자성을 내세우다가 탄압도 받았다. 특히 프랑코 치하 30년 동안은 자치권도 말도 금지되었다. 

스페인 같은 선진국이 이런 분열 움직임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하다. 미국도 60만 명이 죽는 내전을 통하여 남부의 분리주의자를 제거한 적 있다. 반면 체코는 슬로바키와와 조용히 헤어졌다. 전쟁을 피하면서 분리, 독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런 나라가 진정한 문명국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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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니아는 州都인 바르셀로나로 대표된다.    

스페인 內戰(내전)을 다룬 유명한 소설과 實錄(실록)이 있다. 미국 작가 헤밍웨이가 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쓴 넌 픽션 ‘카탈루니아 讚歌(찬가)’가 그것이다. 관점은 다르다. 헤밍웨이는 좌파에 동정적이고, 오웰은 좌파 편에서 싸웠지만 반대파를 숙청하고 헤게모니를 잡은 親蘇派(친소파)를 파쇼와 같은 집단이라고 비판한다. 역사적 관점에선 오웰의 知性이 헤밍웨이의 낭만주의를 압도한다.

‘카탈루니아 찬가’의 무대는 이 지방의 중심 도시인 바르셀로나이다. 이 도시를 여행할 때 이 책을 갖고 다니면서 읽으면 80년 전의 역사적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자주 나오는 람블라스 거리는 바르셀로나 한 가운데에 난 번화가이다. 카페와 식당이 즐비한 곳이고 밤늦게까지 사람들이 붐빈다. 이 바르셀로나를 무대로 하여 벌어졌던 ‘內戰 속의 內戰’이 ‘카탈루니아 찬가’의 主題(주제)이다.

오웰은 스탈린식 전체주의를 고발하는 두 편의 소설- ‘동물농장’과 ‘1984’- 때문에 反共(반공)자유민주주의자로 잘못 알려지는 경우가 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다.
영국의 엘리트 양성소인 이튼 스쿨을 졸업한 그는 인도와 버마를 다스리던 영국 경찰에 들어갔다. 근무지는 버마였다. 오웰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버마와 인도를 식민통치하던 영국 관리였다. 오웰은 5년간 경찰로 근무한 뒤 사회주의자로 변신한다. 영국의 식민통치 방식을 고발하는 두 글, '교수형'과 '코끼리 쏘기'를 썼다. 조지 오웰은 소설가가 되면서 사용하게 된 筆名이고 本名은 에릭 블레어이다.
오웰은 사회주의 이론에 매료되었으나 경찰 경력 덕분인지 늘 사실을 신념보다 重視하였다. 그는 노동자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기로 했다. 런던의 빈민굴 생활을 거쳐 파리로 가서 접시닦이 일을 했다(이 체험을 토대로 '파리와 런던에서 기진맥진'이란 체험기를 썼다). 여기서 폐렴에 걸려 자선병원 신세를 졌다. 그 후유증으로 늘 시달리다가 47세에 죽은 것도 이때 약해진 폐 때문이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그는 좌파(공화파) 편에서 싸우기로 하고 입국 허가를 받으려 했다. 공산당이 입국 허가를 내주고 있었는데, 오웰에게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하던 '국제여단'에 먼저 가입하면 허가를 주겠다고 했다. 오웰은 이를 거절하였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내전의 실상을 확인한 다음이라야 가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오웰은 '위건 부두'를 탈고하여 출판사에 넘긴 직후인 1936년 12월 스페인으로 출발하였다. 먼저 파리에 들러 평소 존경하던 작가 핸리 밀러를 만났다. 그가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것은 크리스마스 전후였다. 1936년 총선으로 좌파가 집권하자 프랑코 장군의 군사 쿠데타가 시도되었으나 좌파 세력이 저항하고 소련과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이 이들을 지원, 내전이 진행중이었다. 좌파 정부의 한 중심이 바르셀로나였다. 오웰은 좌파 정부군을 돕고 글을 쓸 소재를 찾기 위하여 이 도시에 도착하였지만 어떻게 하면 전선으로 갈 수 있는지를 몰랐다.


‘카탈루니아 찬가’의 도입부는 노동자 계급이 정권을 잡은 바르셀로나의 활기찬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성당은 파괴되고, 팁은 없어지고, 상류층의 사치스런 옷차림은 사라지고, 하층민들은 당당해졌다. 사람들은 서로 동지적 우애를 표시하고 있었다. 오웰은 한 영국 여인의 소개로 바르셀로나 서 부 전선에 투입된다. 그는 버마에서 경찰관 생활을 한 적이 있어 총기를 잘 다루었다. 분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속한 부대는 POUM(Partido Obrero de Unificacion Marxista: 영어로는 Workers' Party of Unified Marxism)이라고 불리는 단체인데 스탈린을 비판한다고 해서 트로츠키파로 분류되기도 하였다. 이 단체의 기관지는 바르셀로나에서 발행되는 신문 중 유일하게 1936년 스탈린의 대숙청과 '재판 쇼'를 비판하였다. 오웰은 당시 몰랐지만 소련 비밀경찰(NKVD)는 좌파 정권 내부에 깊숙이 개입, 스탈린에 비판적인 POUM을 말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오웰은 위험한 선택을 한 것이다.

1937년 2월 오웰의 부인 에일린이 바르셀로나에 와서 영국 노동당에서 이탈한 그룹을 위한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도시의 메인 스트리트인 람블라스에 면한 호텔 컨티넨탈에 방을 구하였는데 바로 근처에  POUM 본부가 있었다. 오웰은 115일간 전선에 있다가 휴가를 얻어 바르셀로나에 와서 부인과 합류하였다. 도시 분위기가 살벌하였다. 스페인 좌파 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파견 와 있던 소련은 프랑코보다 먼저 非공산당 좌파 세력을 제거하기로 하니 좌파들끼리 시가전이 벌어졌다. 오웰은 이 현장을 목격하면서 비로소 소련의 실체를 체감할 수 있었다. 소련 측 선동매체들은 한때의 동료인  POUM을 트로츠키파, 파시스트, 반역자, 살인자, 비겁자, 간첩들이라고 비난하였다.  POUM 세력은 무장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이런 사태를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하였다. 5월7일 정부군이 개입, 시가전은 일단 중지되었다. 오웰은 좌파의 국제적 대동단결은 구호일 뿐이고 소련은 자기 편이 아닌 트로츠키파, 무정부파,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을 말살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소련이야말로 反혁명 세력이 아닌가! 그렇다면 스탈린이 히틀러와 뭐가 다른가? 이는 오웰의 거대한 각성이었다.    

親蘇派(친소파)에 POUM이 몰리는 가운데서 그는 5월10일에 전선에 복귀한다. 전선의 POUM 지원병들은 후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싸우고 있었다. 5월20일 오웰은 목을 관통당하는 총상을 입었다. 병원으로 후송되어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그는 6월20일 바르셀로나에 와서 호텔에 있는 부인을 만나러 갔다. 부인은 귀속말로 '빨리 나가라'고 했다. 소련파가  좌파 정부와 함께 POUM 세력 사냥을 벌이고 있었다. 연행, 집단 학살, 고문이 자행되었다. 오웰도 이 조직 소속이었으므로 잡히면 처형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도망자가 된다. 부인은 호텔에 연금되고, 露宿(노숙)을 해가면서 거리를 방황한다.

경찰은 밤에만 설치고 낮은 자유롭다. 오웰이 안전한 낮 시간에 여기저기 들르는 카페와 음식점 이야기는 바르셀로나 관광 가이드이다. 목숨이 오고 가는 살벌한 분위기이지만 독일이나 소련과는 다르다. 오웰은 스페인 사람들이 성격상 절대로 파시스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스페인人들은, 살벌한 정치상황에서도 너그러움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오웰은 ‘스페인에 대하여는 나쁜 기억이 많지만 스페인 사람들에 대한 나쁜 기억은 없다’고 말한다.

親蘇派 스페인 형사들이 오웰의 부인이 묵던 호텔 방을 급습, 두 시간 동안 수색을 하는데 부인이 누워 있는 침대는 건드리지 않는다. 사실은 이 침대 밑에 불온문서가 숨겨져 있는데도 그들은 스페인 남자의 명예심을 지킨 것이다.  

‘카탈루니아 찬가’에서 오웰은 親蘇派가 스탈린의 꼭두각시가 되어 노동자 계급을 탄압함으로써 계급해방이란 사회주의 혁명을 배신하였다고 개탄한다. 바르셀로나에서 親蘇派가 정권을 독점한 뒤엔 노동자들이 다시 탄압을 받고 자본가들이 回生한다. 형사들은 노동자풍의 사람들을 검문하여 잡아들이고 부유층 같아 보이는 이들은 검문도 하지 않는다.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얻은 교훈은 스탈린주의와 파시즘은 똑같은 巨惡(거악)이란 깨달음이었다.

‘카탈루니아 찬가’를 읽는 독자들은 오웰 부부가 기차 편으로 스페인을 벗어나 프랑스로 빠져나오는 장면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시가전, 암살, 투옥, 처형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스페인을 떠나 7개월 만에 영국으로 돌아온 오웰은 평온하기 짝이 없는 조국의 모습을 보고 걱정한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깊게 잠들어 있는 영국을 보면서 두려워지는 것은, (영국인들이) 폭탄이 터지는 소리에 놀라 잠자리에서 튀어나오기 전엔 잠에서 결코 깨어나지 않을 것이란 예감 때문이다.>

오웰의 이런 예감은 곧 적중하였다. 1939년 8월 스탈린은 히틀러와 손잡고 獨蘇(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음으로써 유럽의 진보적 지식인들을 배신하고 독일이 전쟁으로 달려가는 길을 열어준다. 9월 독일이 폴란드로 쳐들어가자 영국은 비로소 평화지상주의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1938년에 출판된 ‘카탈루니아 찬가’는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전담 출판사가 스탈린 비판 내용을 문제삼아 출판을 거부, 다른 회사를 찾아서 낸 책인데, 1951년 再版(재판)이 나올 때까지 초판 1500부가 다 팔리지 않았다. 오웰은 1950년 47세로 죽었는데, 그때까지 번역판은 이탈리아語뿐이었다. 오웰은 죽기 직전까지 초판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 신경을 썼다.

그 뒤 바르셀로나도 많이 바뀌었다. 프랑코 시절에 핍박을 많이 받았던 카탈루니아 사람들은 2002년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 팀이 승부차기로 한국 팀에 지자 환호했다. 201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페인 팀이 우승하자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처음으로 ‘스페인 만세’와 ‘카탈루니아 만세’를 같이 외쳤다. 바르셀로나 출신 선수들이 대표팀의 主力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한국이 떠오른다. 6·25 남침을 前後(전후)하여 박헌영의 남로당이 김일성에게 배신당하고 숙청당하는 과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남로당 후손들 중에서 오웰 같은 양심가가 나와서 김일성주의를 비판하는 名作(명작)을 남길 때도 된 것 같다.

조지 오웰은 이론과 신념의 포로가 된 지식인들을 싫어하고, 보통사람들의 도덕성을 더 높게 평가하였다. 그의 말년은 공산주의의 악마성과 지식인들의 僞善을 벗기는 데 집중하였다. 매리 맥카시라는 한 좌파 지식인은 조지 오웰이 우파가 되기 전에 일찍 죽어서 다행이란 惡談을 하기도 하였다.

오웰은 인간과 사실과 체험을 소중하게 여겨, 근사한 개념이나 이론의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였다는 점에서 진정한 知性人이다. 영국 저술가 폴 존슨은 '지식인'이란 책에서 조지 오웰의 성실성과 대조적인 존재로 미국 작가 헤밍웨이의 불성실을 비판하였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러 가기 전부터 공산당의 노선에 전폭적으로 동조하고 그들의 선전활동에 협조하였다. 미국 소설가 도스 파소스도 공화파 편을 들었지만 스탈린주의자들의 만행을 비판하였다. 헤밍웨이는, 스탈린의 명령을 받아 동료 좌파들을 무자비하게 암살하고 고문하는 공산주의자들을 변호하였다. 파소스가 스탈린주의자들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헤밍웨이는 파소스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공격하였다. 폴 존슨은 헤밍웨이가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썼다.

1940년에 그가 발표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어보면 헤밍웨이는 공화파의 문제점과 스페인 공산당의 행태를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헤밍웨이는 이런 사실에 침묵하고 있다가 內戰이 프랑코의 승리로 끝난 뒤에야 소설을 발표하였다는 것이다. 폴 존슨은 헤밍웨이는 조지 오웰의 '카탈루니아 찬가'의 발간을 막으려 하였던 자들과 같은 노선을 걸었다고 혹평하였다. 조지 오웰이 진실을 알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공화파 편에서 참전하였던 것과는 반대로 헤밍웨이는 지식인들의 행동을 선동하면서도 막상 자신은 참전하지 않았다. 2차 대전중의 상당 기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팔아 얻은 어마어마한 돈으로 쿠바의 하바나 근교에서 심해 낚시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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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 2017-06-15 오후 6:52

    노무현이도 파업하는 곳을 찿아 다니면서 노동자들을 위하는척 노동자 권리를 쟁취 하라고 선동 하면서 부산앞바다에서 욧트나 타면서 부르조아 생활을 했지요 헤밍웨이와 같은 부류였었군요 공산주의자 좌파들은 이중인격자들의 달인이군요

  • arock 2017-06-14 오후 6:49

    "남로당 후손들 중에서 오웰 같은 양심가가 나와서 김일성주의를 비판하는 名作(명작)을 남길 때도 된 것 같다"라...... 후손 중에 그럴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고, 조지 오웰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남부군을 쓴 고 이태(李泰)씨가 그래도 김일성을 비판한 축에 든다.그도 기자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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